풍수원성당

 

숨어 신앙을 유지한 산골에 세워진 강원도 첫 번째 성당
기본 정보
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 2리 1097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 유현1길 30
전화
033-343-342-0035
팩스
033-343-5694
누리집
풍수원 성당
건축 정보
착공
1905년 / 1912
준공
1907년 / 1913
낙성
1909년 /
문화 유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성당)
(1982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구 사제관)
(2005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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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1. 개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성당이다. 한국에서 4번째로 지어진 성당이고 강원도에서 세워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양식 건축물이라는 특징이 있다.
풍수원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또는 1803년 무렵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우촌이다.
이후 풍수원 교우촌에서는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으며, 1866년(고종 3년, 병인년) 교회 대박해(병인박해)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프랑스인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대주교가 1888년 6월 20일 이곳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프랑스 출신 르메르(Le Merre)이 신부가 부임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당시 풍수원 성당은 춘천시, 화천군, 양구군, 홍천군, 원주시, 양평군 등 12개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고종 33년(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1893∼1943) 신부가 부임하여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건축 양식은 고딕 양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제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한국전쟁으로 인해 건너 뛴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풍수원은 신앙의 요람터요 신앙 선조들의 얼이 담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30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이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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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에 의자가 없다. 바닥에 주저 앉아야 한다. 바닥에 주저 앉아야 하니 당연히 신발을 벗어야 한다. 물론 벽쪽에 방석은 준비되어 있다. 비슷한 역사를 가진 감곡성당에도 의자는 있다. 물론 감곡성당도 마룻바닥이어서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준비되어 있는 실내화를 신어야 햔다.
현재(2018.05.01)는 내부에 의자를 비치하여 앉을 자리를 갖추었다. 물론 지금도 신발은 벗어야 한다.

2.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162호

'''163호'''

164호
홍천성당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강원도 횡성군 소재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에 있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며,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된 벽돌조 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4월 15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사제관은 1912년 착공, 1913년 10월 1일 준공한 것으로 1998년 전시관으로 개조하여 외벽이 원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창호, 바닥, 지붕의 교체가 있었으며, 1997년 수리 후 현재 유물전시관으로 사용 중이다.
문화재청-문화유산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