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트-레벨리 M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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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35. 공랭식이다.
1. 개요
2. 제원
3. 상세
3.1. M1935
4. 기타
5. 둘러보기


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이탈리아 왕국의 수랭식 중기관총.

2. 제원


'''피아트-레벨리 M1914'''
''Fiat–Revelli Modello 1914''
'''종류'''
기관총
'''국가'''
이탈리아 왕국
'''역사'''
'''개발'''
아비엘 베텔 레벨리 디 베아우몬트
'''개발 년도'''
1910년 / 1934년 (M35)
'''생산'''
브레시아나 사회 광공업, 피아트
'''생산 년도'''
1914년~1920년
1935년~1940년 (M35)
'''생산 수'''
47,500정
'''사용 년도'''
1915년~1945년
'''사용 국가'''
이탈리아 왕국
'''사용된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블로러 전쟁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파생형'''
피아트 M14 항공형
피아트-레벨리 M1935
'''제원'''
'''구경'''
6.5mm, 8mm
'''탄약'''
6.5x52mm 카르카노
8x59mm RB 브레다 (M35)
'''급탄'''
5발 클립 10개[1]가 정렬된 탄창 (50발)
탄띠 급탄 (M35)
'''작동 방식'''
지연식 블로우백
'''중량'''
17.08kg (물 포함시 21.5kg)
17kg + 23kg 삼각대 (M35)
'''전장'''
1,410mm, 1,250mm (M35)
'''총열 길이'''
645mm
'''발사 속도'''
400~500RPM, 600RPM (M35)
'''탄속'''
800m/s, 750~760m/s (M35)
'''유효사거리'''
700m, 1,000m (M35)
'''최대사거리'''
3,000m, 5,200m (M35)

3. 상세


페리노 M1908[2]을 독자적으로 개량한 것으로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루이지 카르도나에 따라 채용이 결정되었다.
이 기관총이 채용된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있었고, 당시 이탈리아 왕국군은 보유하고 있는 기관총이 없었다. 그런데 서부전선에서는 MG08처럼 기관총이 맹위를 떨쳤던지라 불가피하게 기관총 국산화가 시작되었다.
지연식 블로우백을 사용하고 소총탄 클립을 이어서 끼운 특유의 탄창[3]을 사용해 반동식에 탄띠 급탄을 사용했던 영국의 맥심 기관총이나 빅커스 기관총과는 구조면에서 전혀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복잡한 탄창 구조 탓에 급탄 불량을 일으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름공급장치를 써서 탄에 기름칠을 하도록 했지만 이탈리아군은 사막에서 전투가 많았기 때문에 '''역으로''' 모래와 먼지가 달라붙어 그다지 좋은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일부 M1914들은 항공기 기총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예광탄이 영 좋지 않아 위력이 부족했고 위에서 상술한 작동 불량이 있었기에 1917년부터는 그냥 빅커스 기관총이나 루이스 경기관총을 사용하게 된다. 또한 L3L5의 초기형 등 전차의 동축 기관총으로도 사용되었다.

3.1. M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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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구경탄을 사용했던 M1914의 위력부족을 느끼면서 1930년대 즈음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4] 새로운 중기관총으로 8x59mm RB를 사용하는 공랭식 기관총이 요구되었고, 피아트사와 브레다사가 시작하였다. 그렇게 피아트사에서 나온 것이 M1935. 브레다는 M37과 M38을 내놓았다.
기존의 6.5mm보다 더 강력한 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반동을 줄이기 위해 발사시 총열이 후퇴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 방식은 과열이 일어나기 쉬운데다가 쿡 오프 현상으로 이어지는 단점이 있었다.[5]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총열 교체를 위한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두었는데, 이렇게 손잡이로 조작하는 총열교체는 나중에 FN MAG가 사용해서 유명하다. 다만 FN MAG의 총열교환방법은 체코의 Vz.26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로크 핀을 추가해서 2단식의 지연기구를 마련하는 것으로 안정성을 확보했다. M1914에서 보여왔던 기름공급장치를 대신하기 위해 몇 가지 대책을 세웠지만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아 나중에 다시 기름공급장치가 추가되었다. 기름공급장치는 당대 기관총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클립이 정렬된 탄창을 사용하는 M1914와는 달리 탄띠로 급탄하는 방식으로 기본적으로 50발이 연결된 금속제 탄띠를 사용하지만 계속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어 100발 이상 연결할 수 있고, 300발을 수납할 수 있는 탄통을 구비하고 있다.[6]

4. 기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랭식에 탄띠 급탄을 사용하는 M1935가 등장했으나, 생산량이 받쳐주지 못한 탓에 전군에 지급되지는 못하고 M1914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런 이유로 비슷한 성능인 브레다 M37과 같이 사용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7] 황당하게도 이탈리아는 12.7mm탄을 사용하는 브레다-SAFAT기관총을 동시기에 생산하고 있었는데, 이 중기관총은 오직 항공용으로만 사용되었다. 브레다-사파트는 M1919를 기반으로한 기관총으로 M2의 .50구경에 비하면 절반가까이 약한 탄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히 중기관총이라고 1만J은 나온다고 한다. 여러므로 이탈리아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여줬다면 보여준 이야기이다.[8]

5. 둘러보기








[1] 이후 20개로 증가[2] 150정 정도만 생산되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도 사용되기는 하였다. 참고로 이 기관총의 무게는 총이 27kg, 삼각대'''만 56kg이다.''' 총 83kg으로 다른 수랭식 기관총들보다 더 무겁다![3] 소총탄 클립을 끼워서 장전하는 일본의 11년식 경기관총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이쪽은 클립을 미리 끼워둔 탄창을 사용한다.[4] 당시 일본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기존의 소총탄보다 강력한 탄을 사용하는 소총과 기관총을 개발한다.[5] 혹시 이해가 잘 안된다면 주퇴기가 달린 포를 생각하면 된다. 발상은 괜찮지만 기술이 못따라온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런 스타일의 기관총이 없는 것을 봐서는 기관총 반동을 제어하는 데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6] 그런데 탄띠를 물려도 이탈리아 공업력의 문제였는지 총에서 잔고장이 잦아 지속사격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경쟁작인 브레다 M37이 20발 보탄판을 쓰는데도 이탈리아 병사들의 회고에 의하면 장전을 좀더 자주 안해줘도 되는 걸 빼면 M37이 M1935보다 관리하긴 쉬웠다고 한다.[7] 둘다 정확한 생산량을 집계하긴 어렵지만, 브레다사쪽이 생산을 더 많이한 모양이다.[8] 당연하지만 비슷한 성능의 무기를 병행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운용하기도 불편하고 생산성에도 나쁘다. 심지어 8mm탄은 새롭게 채택된 탄환이기 때문에 기존의 어떤 무기와도 호환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