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심 기관총

 

'''Maxim Gun'''
''Maxim Gun''
''맥심 기관총''

[image]
<colbgcolor=lightgray><colcolor=black> '''종류'''
<colcolor=black>중기관총
'''원산지'''
[image] 영국
【펼치기 · 접기】
'''이력'''
<colbgcolor=lightgray><colcolor=black> '''역사'''
<colcolor=black>1886년~현재
'''개발'''
하이럼 맥심
'''개발년도'''
1883년~1884년
'''생산년도'''
1883년~불명
'''사용국'''
[image] 소련
[image] 핀란드
[image] 폴란드
[image] 스위스
[image] 루마니아
'''사용된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기종'''
'''파생형'''
MG08
PM M1910
MG94
빅커스 기관총
마식 기관포
24식 기관총
'''제원'''
'''탄약'''
.577/450 Martini–Henry
.303 브리티쉬
'''급탄'''
250발 천제 탄띠
'''작동방식'''
쇼트 리코일
클로즈드 볼트
수랭식 냉각 방식
'''총열길이'''
673mm
'''전장'''
1,079mm
'''중량'''
26.7kg
'''발사속도'''
500RPM


1. 개요
2. 역사
3. 영향
4. 특징
5. 파생형
5.1. MG08 (Maschinengewehr 08)
5.2. PM M1910 (Пулемёт Максима образца 1910 года)
5.3. MG94 (Maschinengewehr Modell 1894)
5.3.1. 제원
5.3.2. 개요
5.4. 빅커스 기관총 (Vickers Machine Gun)
5.5. 마식 기관포 (馬(マ)式機関砲)
5.6. 24식 기관총
5.7. 맥심 37mm 기관포
6. 대중매체
6.1. 영화
6.2. 게임
7. 기타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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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명가 하이람 맥심(Hiram Stevens Maxim) 경의 이름을 따온 기관총으로, '''최초의 자동 발사 기관총'''이다.
현대적인 기관총의 개념을 정립한 혁명적인 무기이며 전장의 양상을 바꾼 역사적인 기관총으로 평가된다. 기관총 뿐만 아니라 모든 자동 화기들의 원조이다. 뒤에 나온 자동소총, 자동권총, 기관단총 등도 결국은 맥심 기관총의 개념을 응용해서 만들어진 무기들이다. 다만 여러개의 총신을 이용하며 모터의 힘으로 격발/재장전/탄피배출이 되는 개틀링 방식의 M61 기관포, M134 미니건 등은 예외이다.
번역은 맥심 기관총이라고 하나 이 총이 나오던 당대에는 기관총(Machine gun)이란 분류가 형성되지 않았므로 영어로는 그냥 맥심 건(Maxim Gun)으로 불린다.

2. 역사


사실 맥심 기관총 이전에도 기관총은 있었다. 역사상 최초의 기관총이라 할 수 있는 개틀링 기관총은 1861년에 개발되었다. 다만 개틀링 기관총은 수동으로 직접 손잡이를 돌려줘야 연속으로 발사되는 방식이었다. 그 밖에도 급탄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원래 미국인이었던 맥심이 친구들과 취미로 사격을 하던도중 격발시 총의 반동 때문에 어깨가 아파오자, 이를 착안해서 격발 시의 반동으로 재장전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다. 1881년 런던으로의 이주 이후 마침내 1884년에 맥심 기관총 프로토타입의 개발이 완료되었고, 이때 맥심은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총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를 쓰러트리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맥심은 가스압 재장전에 관련된 특허도 취득했다.
처음에 맥심 기관총을 눈여겨 본 것은 유럽이었다. 1886년부터 유럽의 아프리카 원정군에, 1889년부터는 싱가포르 방면의 영국군에게 정식으로 납품되기 시작했다. 특히 마흐디 운동을 진압한 옴두르만 전투에서 활약하며 4만에 달하는 마흐디군을 전멸시킨다. 그리고 1899년에 맥심은 영국으로 귀화했고, 1901년에는 기사 작위도 받았다.
맥심은 기관총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발명하였는데,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비행기를 만들어내기 이전에 증기 엔진으로 구동되는 독자적인 비행기를 설계하였지만 결국 비행에는 실패하였다고 한다. 맥심의 비행기
현대화된 최초의 기관총이었으니 만큼 많은 국가들에서 도입하여 사용했다.[1] 당시에는 핸들을 돌리는 개틀링 기관총이 기관총의 전부이던 시절에 이는 획기적인 방식이었고, 이후로 이에 자극받아 여러 다른 개발자들에 의해 경량[2] 자동 기관총들이 속속 개발되고, 독일MG08, 영국빅커스 기관총, 러시아의 PM M1910 등의 파생 지원화기들도 나와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시절 마식 기관포로 들여오긴 했지만 국산화가 되진 못했다. 대신 호치키스 기관총을 국산화(보식 기관포)하는데 성공하였고, 보식은 3년식 기관총, 92식 중기관총 등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3. 영향


우리에겐 걱정이 없다네. 맥심 기관총이 있으니까. 하지만 저들한테는 없지.

- 영국군 사이에 유행했다는 군가[출처]

특성상 기존의 총기들에 비해 간단하게 많은 화력을 순식간에 쏟아부을 수 있어서 잘 자리잡은 기관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물건이기도 하다. 그때까지의 서구 군대는 당연히 원주민들보다는 선진화된 무장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총기의 발사속도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일당백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아프리카의 줄루족이나 남아메리카의 마푸체족은 그런 상황 속에서 용맹함을 발휘하여 19세기까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틀링 기관총과 함께 맥심 기관총이 도입되면서 서방 군대가 압도적인 화력우세를 점해 식민지 원주민들을 확실히 제압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남아프리카의 마타벨레 족이 영국군과 벌였던 전쟁에서의 결과를 들 수 있다. 1893년 영국군 50명이 장비한 기관총 4정의 위력에 영국군 진지 '''1km 내로 단 한 명도 진입하지 못한 채 5천 명이 전사'''했고, 3년 뒤의 전쟁에서도 영국군은 전사자 400명을 낸 것에 비해 5만명이나 죽어나가는 교환비 '''1:125'''라는 참혹한 결과를 마주해야 했다. 당시 마타벨레족의 왕인 로벤굴라는 창과 방패로 무장한 전사 8만 명과 영국제 마티니 헨리 라이플 소총으로 무장한 전사 2만 명을 거느릴 만큼 세력이 왕성했다. 하지만 마타벨레족은 총의 사격법을 제대로 몰라서 아무렇게나 쏘아대어서 명중률이 매우 낮았다.[3]
앞의 마타벨레 족보다는 훨씬 근대화가 잘되었던 수단의 마흐디군도 기관총 앞에서는 갈려나갔어야 했다. 옴두르만 전투에서, 기관총이 버티고 있는 곳으로 돌격했던 마흐디군은 52,000 명 중 1만여 명 가량이 즉사했던 반면, 영국군은 고작 47명의 전사자를 내며 '''1:200'''을 넘는 무지막지한 교환비를 냈었다.
또한, 러일전쟁에서 비록 일본군에게 러시아군이 패배하기는 했지만, 뤼순 공방전 때 맥심기관총으로 방어진을 구축한 러시아군은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4]
기관총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라는 것이 실전에서 증명이 되자 슬슬 이 무기가 유럽인들끼리 싸우는데 쓰이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눈치채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을 들은 맥심의 답변은 너무나도 이상적이었다.

"아뇨, 전쟁을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입니다.(No, it will make war impossible.)"

- 1893년 영국의 한 과학자의 질문 "이 총으로 전쟁이 더 끔찍하게 되지 않겠는가"에 대한 하이람 맥심의 답변

앞서서 개틀링건을 만든 리처드 조던 개틀링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다시피 실제로는 맥심의 답변대로 전쟁이 사라지지는 않았고, 결국 이 기관총을 대량으로 운용하던 유럽의 군대는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자신들이 비웃던 식민지 원주민들처럼 무모하게 적군의 기관총 앞으로 돌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습이 양쪽이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는 참호전이었으며, 가장 끔찍한 사례가 바로 솜 전투였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대항책으로 연구된 것들이 바로 전차, 항공기, 독가스 등이었다. 그리고 맥심의 생각이 현실이 되는 건 좀 더 강력하고 확실하게 모두가 죽을 수 있는 무기가 개발되고 나서였다. 다행히 핵무기는 기관총과 달리 제대로 된 전쟁에 쓰이지 않았으므로 맥심은 어느정도 상호확증파괴 이론에 대한 예언을 한 셈이다.

4. 특징


[image]
World of Guns: Gun Disassembly에서 묘사된 작동방식.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준 최초의 전자동화기지만 구조적으로는 좀 독특한 편인데, 직물제 탄띠를 쓰는데다[5] 최초 사용탄인 .303 브리티쉬가 림드 카트리지이기 때문이다. 탄피 끝부분에 림이 둘러져 있는 형태로 자동 사격 방식에 쓰기 어려운 형태로 간주되어 요즘은 리볼버PKM 기관총 정도에나 쓰이는 탄이다. 현대의 일반적인 총기는 노리쇠가 전진하며 약실에 탄을 넣고 격발 후 후퇴하며 탄피를 빼는 식인데 노리쇠가 전진하려면 림이 탄띠에 걸리므로 맥심에서는 이 방식을 쓸 수가 없었다. 그 결과 탄띠가 약실 바로 위에 들어가서 노리쇠가 탄을 탄띠에서 뒤로 빼낸 뒤 아래로 내려 다시 전진해서 다시 약실에 넣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동일한 노리쇠 하나가 더 그 아래에 붙어있어 탄피 역시 이와 동시에 역시 약실에서 뒤로 빠져 아래로 내려가 배출되는 식이다.[6] 이런 구조 때문에 총 옆에서 보면 장전손잡이가 축을 중심으로 90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며 회전하는 식으로 움직이게 된다. 당연히 이후로는 잘 쓰이지 않은 방식이다.[7]
또한 발열관리에 유리한 오픈 볼트 방식이 보편적인 현대의 기관총과 달리, 이 기관총은 클로즈드 볼트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수랭식 냉각의 특성상 물만 충분하다면 과열의 우려가 사실상 없어서 클로즈드 볼트 방식을 사용하여도 지속사격능력에 별다른 지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형은 수랭식으로, 앞의 긴 원통이 물을 담는 통. 그외에도 공랭식의 요철 냉각핀을 총신에 달거나 총신 자체를 교체하는 모델도 만들어졌다. 이는 이 기관총이 개발되었던 당시의 운용교리가 지금처럼 분대와 함께 이동하며 분대를 지원해주는 '이동 사격'이 아니라, 주요 사격지점에 자리를 잡고 지속사격으로 부대를 지원하는 개념으로 운용되었기 때문. 신뢰성과 성능은 시대를 감안해도 대단히 우수하다.
맥심의 영국군용 버전인 빅커스 기관총의 경우 1차대전 당시였던 1916년 12시간 연속 사격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 바가 있다. 냉각수 보충과 총열교체를 위해 중간중간 중단하기는 했지만 다른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10정의 기관총이 총열 100개를 교체해 가며 1백만 발을 지속 사격했다고 하니 한 정이 초당 2.3발을 쏜 셈이다.
여기에 더욱 괴물같은 일화가 남아 있는데 1963년 퇴역하기 전 재고탄약이 잔뜩 남아있자 1정으로 5백만 발을 쏘는 실험을 한 적까지 있다. 한 시간 반마다 총열을 갈아 가며 7일간 밤낮으로 쉬지 않고 쏴갈겼는데 단 한 건의 기능고장도 발생하지 않았고 총에도 아무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5. 파생형



5.1. MG08 (Maschinengewehr 08)


독일 제국의 경량형.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슈판다우 기관총으로도 불린다. 중국의 24식 중기관총은 이것의 면허 생산형이다.

5.2. PM M1910 (Пулемёт Максима образца 1910 года)


[image]

5.2.1. 제원


'''Пулемёт Максима образца 1910 года'''
'''국가'''
러시아 제국
소련
'''역사'''
'''생산 년도'''
1910년~1945년
'''사용 년도'''
1910년~현재
'''사용 국가'''
러시아 제국
소련
핀란드
폴란드
우크라이나
중국
몽골
북베트남
북한
'''사용된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적백내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돈바스 전쟁
시리아 내전
'''파생형'''
PM M1910/30
'''제원'''
'''구경'''
7.62mm
'''탄약'''
7.62×54mmR
'''급탄'''
250발짜리 탄띠 급탄
'''중량'''
64.3kg (삼각대, 냉각수, 탄띠 포함)
'''전장'''
1,067mm
'''총열 길이'''
721mm
'''발사 속도'''
600RPM
}}}#353535 '''총구 탄속'''}}}
750m/s


5.2.2. 개요


7.62x54mmR를 사용하도록 변경되었다. 접이식 전용 삼각대[8]에 장착해서 운용하며, 추운 기후의 특성상 물(눈)을 구하기가 쉬워 물 주입구를 크게 했다.[9] 그리고 기존의 맥심의 구리 부품들을 철로 바꿔 생산성과 무게를 줄였다.
위 이미지처럼 포방패도 달려 있었으나 견인시에는 너무 무겁고 불편한데다 사격에도 지장을 줘서 견인시에는 떼었냈다가 설치 후 다시 달거나 아래 타찬카에 설치해서 운용하거나 아예 떼고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종래에는 생산비 절감 차원에서 아예 없애기도 했다. 사실 PM M1910의 초기 모델을 보면 전고가 너무 낮은 거치대를 좀 더 올려서 운용하기 위해 바퀴 안쪽에 지지대도 달려 있었고, 급탄이 원할하도록 포방패에 탄띠를 걸어놓을 수 있는 물레도 달려 있었으나 무게 경감과 생산비 절감을 위해서 다 없애고 총도 약간 개량하면서 위의 이미지가 되었다.
러시아 제국이 주문하여 수입해온 것으로 시작으로 러시아 제국군은 물론이고 그 뒤를 잇는 붉은 군대(소련군)도 사용했다. 소련에서는 적백내전 당시부터 독소전쟁까지 마차(타찬카)에 설치하여 보병지원차량으로 운용하기도 하였고[10], 1939년에 DS-39가 개발됨에 따라 생산이 중지될 예정이었으나, 독소전쟁으로 인해 생산이 재개되어 다시한번 활약한다. 1945년 이후로는 SG-43으로 완전히 교체되어 주변 공산국가들에게 공여되었다.[11]
하지만 소련-중국 국경의 소련군은 '''무려 80년대'''까지 운용했는데,중국군의 인해전술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핀란드는 이를 기반으로 M/09-21과 M/32-33으로 개량하였다. M1910을 카피한 M/09-21와는 다르게 M/32-33은 대공 기관총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며, 최대 850발로 분당 발사속도가 빨라졌다.
제식 채용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는 치장물자로 보관하고 있다. 심지어 돈바스 전쟁에서는 실전에 투입되기까지 했는데 치장물자로 보관되어 있던 것을 우크라이나군이 꺼내서 쓴다는 듯.[12] [13] 또한 시리아 내전에서도 쓰이고 있다.

Forgotten Weapons의 리뷰
독일에서는 아에 통쨰로 노획해서 7.92X57mm 마우저탄을 사용하게 마개조를 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독일의 MG08과 사용 탄을 제외하면 설계가 큰 차이가 없었기에 부품 교체가 쉬워서 가능한 일.

5.2.2.1. 맥심-토카레프

[image]
PM1910을 토대로 총기 기술자 표도르 토카레프가 개발한 경기관총.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5.3. MG94 (Maschinengewehr Modell 1894)


[image]

5.3.1. 제원


'''Maschinengewehr Modell 1911'''
'''국가'''
스위스
'''역사'''
'''생산'''
베른 조병창
'''생산 년도'''
1911년~1946년
'''생산 수'''
약 10,000정
'''사용 년도'''
1911년~1980년대
'''사용 국가'''
스위스
'''사용된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파생형'''
MG94
MG00
MG11
'''제원'''
'''구경'''
7.5mm
'''탄약'''
7.5×55mm GP11
'''급탄'''
250발짜리 탄띠 급탄
'''중량'''
18.7kg
'''전장'''
1,100mm
'''총열 길이'''
721mm
'''발사 속도'''
500RPM
}}}#353535 '''총구 탄속'''}}}
750m/s


5.3.2. 개요


스위스의 면허 생산판. 7.5x55mm 탄을 사용하도록 변경되었으며, 독일의 MG08과 긴밀한 관계를 갖추고 있다. MG11의 경우 독일의 DWM 베를린에서 제조되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1915년부터는 국영 군수업체인 베른 군수공장(Waffenfabrik Bern)이 제조하게 되었다.
1934~1935년 사이에 날씨에 구애받지 않도록 직물제 탄띠 대신에 금속 탄띠로 변경되었고, 소염기가 추가되고 사수가 한 손으로도 발사할 수 있으며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방아쇠 설계를 수정, 대공용으로도 운용이 가능하게끔 개량이 이루어졌다. 1950년대부터는 MG42 기반의 MG51이 등장하면서, 1980년대에 완전히 교체되었다.

5.4. 빅커스 기관총 (Vickers Machine Gun)


빅커스사의 경량화된 개량형.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5.5. 마식 기관포 (馬(マ)式機関砲)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맥심 기관총을 들여와 마식 기관포라는 이름을 붙이고 군에 채용하였다. 이후 일본군은 맥심 기관총을 국산화하려 했지만 실패하였고, 대신 호치키스 M1897를 일본군이 쓰는 6.5mm 탄환을 쓸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을 보식 기관포(保(ホ)式機関砲)라는 명칭으로 채용해 한동안 일반 보병이 운용하는 주력 중기관총으로 썼다.

5.6. 24식 기관총


MG08의 중국제 생산버전으로 중일전쟁에서 사용된바 있다. 국민당 마크가 찍혀있으며 총구부분에 원형의 보호마개와 긴 양각대가 특징이다. 원본인 MG08과 달리 일반적인 삼각대를 사용한다.

5.7. 맥심 37mm 기관포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아에 맥심 기관총 사이즈를 포 규격으로 크게 키워서 37mm 규격 기관포로 만들어 버린 물건이다.

6. 대중매체


고종, 군밤의 왕에서 하이럼 맥심이 조선에게 전구 특허를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초도 생산품을 조선에 넘긴다. 특히 자체 생산까지 가능해지면서 그걸 또 트란스발 공화국에 팔기까지 한다.

6.1.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북한군 중기관총으로 나온다.[14] #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북한군 중기관총으로 나온다.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에서는 영국군으로 변장한 모리아티의 암살자들이 기차칸에서 이걸 쏴대 기차 몇칸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셜록홈즈가 립스틱을 탄환 대신 끼워 넣어[* 홈즈는 이전에도 윈체스터 M1887 총구에도 립스틱 뚜껑을 넣어 총이 역화되도록 했다.] 총이 걸렸다. 이후에 사수가 바로 탄걸림을 풀고 다시 사격하지만 옆에서 수류탄을 잡고 있던 암살자가 그를 사수로 오인한 왓슨이 쏜 총에 어깨를 맞으면서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수류탄이 가득 든 가방 안에 떨어뜨렸고... #
[image]
암살(2015)에서는 초반,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려 온 일본군 혹은 관동군이 1문을 작은 수레에 설치하여 끌고와서 사용하지만 안옥윤이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의 가슴을 저격해 사살하면서 무력화되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도 병사들이 라퓨타 로봇에 이 총을 쏘는게 나온다.
봉오동 전투(영화)에서 독립군과 일본군이 쓴다.

6.2. 게임


레드 오케스트라 2에서도 고정 기관총 포대로 나오는데 성능이 평균 이상이다. 근데 이 게임에서 이런 거 오래 쓰다가는 예광탄 때문에 사용하자마자 황천길 간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 PM M1910이 소련군의 중기관총으로 등장한다. 원래 거치 시간이 엄청나게 빠르고 대신 사격각이 좁은 컨셉이었으나 여러 패치를 거친 후 현재는 거치 시간도 좀 길고 사격각도 그리 넓지는 않고 제압 속도도 독일의 MG42보다 느린 구린 유닛이 되었다... 뉴비들 상대로는 그럭저럭 쓸만 하지만 고수 독일 유저들은 쉽게 우회할 수 있다. 그래도 장점이라면 분대원이 6명이라 생존성은 꽤 좋은 편이며 몇몇 빌드에선 여전히 사용된다. 애초에 이거라도 없으면 다른 아군의 기관총팀이 전사하거나 적군 기관총팀을 우회하고 죽여서 노획할수있길 빌어야한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도 몇몇 미션에서 배치되어 있다. 주로 대립 갱단이나 핑커톤같은 적대 세력이 건물이나 마차에 고정시켜 놓고 갈겨대는 물건. 화력은 절륜해서 탄막에 노출되면 체력이 풀로 차 있어도 불과 3~4초 안에 체력이 몽땅 까여 사망한다. 플레이어가 잡고 쏠 수도 있는데 일부 미션에서는 스토리상 필수적으로 사용하게된다. 그 외의 특징이라면 무한탄창이 적용되어 있어 아무리 쏴도 잔탄이 0이 되지 않는다.

7. 기타


하이럼 맥심의 아들인 하이럼 퍼시 맥심도 총기계에서 괄목할 만할 업적을 남겼는데, 바로 1902년소음기를 발명한 것이다.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서 최종병기나 아주 강력한 연사무기로 자주 등장하며,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을 모두 거쳐 사용되었다. 물론 2차 대전 무렵이면 이미 낡은 개념이 되어 슬슬 퇴역하기 시작했으나 독소전쟁 소련군 같이 전쟁 내내 요긴하게 운용된 사례도 있다. 신뢰성은 현재 기준으로도 높은 총기지만 구식 설계라 26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15]와 큰 부피로 기동성이 매우 낮고, 총탄구경, 연사력, 화력은 M60 기관총, MG3급의 지원화기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 물론 한 개의 거점에서 몰려오는 적군을 밤낮으로 막아야 한다면 이만한 총도 없겠지만 참호전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고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거점 방어용 중기관총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제3세계에서 드문드문 보인다.
[image]
2014년 10월,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이 총이 발견되었다. 노보러시아 반군외에도 2019년 8월에 방송한 KBS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135회에선 우크라이나 정부군 또한 참호전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소련에서는 아예 맥심 기관총을 주제로 한 음악도 만들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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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덴마크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재정부담 때문에 도입하지 않았다.[2] 현대적 개념에서는 물론 무거운 중기관총이지만, 포가에 얹어서 개틀링 기관총 운용하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게 사실이다.[출처]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3] 출처: 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 332쪽/ 도현신 지음/ 시대의창[4] 한편 일본은 봉천회전에서 러시아군의 5배에 달하는 호치키스 기관총을 동원하여 마찬가지로 러시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5] 러시아군 사양인 PM M1910의 경우, PKM 탄띠를 쓰도록 개량된 것이 있고 돈바스 전쟁에서 해당 개량형이 사용되고 있다.[6] 마찬가지로 림드 탄을 쓰는 현대의 PKM도 탄띠에서 탄을 뒤로 당겨 빼내 아래로 내려 약실에 밀어넣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구조 자체는 상당히 다르지만, 탄을 뒤로 당겨 탄띠에서 빼낸다는 점만큼은 동일하다.[7] 하지만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공학적 구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8] 견인하기 쉽게 바퀴를 달았고, 뒷부분은 안쪽으로 접을 수 있다. 이는 SG-43의 삼각대도 마찬가지.[9] 물론 초기 모델은 이런 물 주입구가 없었고, 수냉식 커버도 밋밋했다.[10] 백군도 운용한 것을 보면 이 개념은 기동전이 주였던 1차대전 동부전선 당시부터 있었던 것 같다.[11] 그 예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한바 있다.[12] 전선의 큰 변동 없이 장기간의 대치가 지속되는 상황이라면 이런 구식 수냉식 기관총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겁긴 해도 신뢰성은 비교적 충분하고, 지속사격능력만큼은 현대의 다목적 기관총보다 우수하니까. 물론 구형 수냉식 기관총 한 정을 쓰는 것보다는 더 적은 인원으로 운용 가능한 현대 다목적 기관총을 여러 정 쓰는 것이 더 유리하기는 하지만, 현대식 기관총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구형 수냉식 기관총도 충분히 쓸만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재는 군용으로는 사장된 탄을 쓰는 다른 맥심 계열 기관총과 달리, 이 기관총의 사용탄은 현대에도 널리 쓰이는 탄약이라 탄약 호환 문제도 거의 없다. 탄띠 또한 기존 PK 계열의 물건과 서로 상호 호환이 가능하기에 별 문제 없이 쓸 수 있는 것이다.[13] 아에 탄 수급이 원활하다는 특징 덕텍에 탄약 수급이 힘든 타국 맥심 기관총들에 이 물건의 노리쇠 부품과 총열으로 교체해 탄 수급을 더 쉽게 하기도 한다. 주로 똑같이 수량이 많고 구조상 차이가 적은 MG08에 자주 PM1910의 부품이 끼워지는 편.[14] 정확하게는 러시아 버전 PM M1910[15] 16kg인 '''미니건보다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