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사회민주당
1. 개요
Suomen Sosialidemokraattinen Puolue
수오멘 소시알리데모크라티넨 푸올루에. 약칭 앳새데페(SDP)[3]
핀란드의 사회민주당. 현존하는 핀란드의 정당들 중 가장 오래된 정당이며, 후술하겠지만 몇 가지 특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다. 또한 현재 핀란드의 집권여당이기도 하다.
2. 역사
1899년 '핀란드 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당, 1903년 '핀란드 사회민주당'으로 개칭했다. 사회민주당은 1907년 설립된 핀란드 최초의 노총 SAJ와 밀접하게 제휴, SAJ 조합원은 모두 사민당원으로 가입했다. 이런 사민당과 노총의 관계는 21세기 현재까지 이어진다.
1905년 혁명 이전에는 지하에서 무장봉기를 준비하는 등 저항운동을 했지만, 혁명으로 의회개혁이 이루어지자 선거에 참여했다. 당시 핀란드 우파는 핀란드계 민족주의, 스웨덴계 민족주의, 러시아 제정 협조주의, 농본주의 등이 뒤섞여 지리멸렬했던 반면 좌파는 사회민주당으로 대동단결해 사회민주당은 독립 이전까지 원내 제1당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핀란드 대공국 시기 정치는 거의 핀란드 총독에 의해 임명되는 핀란드 원로원에서 담당했고 의회는 거수기관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큰 힘을 가지지 못했다.
1916년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은 200석 중 103석을 얻어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하면서, 그동안 의회정치를 방해해온 총독부가 없어졌다. 그 여세를 몰아 사회민주당이 주도해 핀란드 독립을 선언하려 했지만, 우파들의 사주를 받은 러시아 공화국 케렌스키 정부가 무력개입해 의회가 해산당해 무위로 돌아간다. 뒤이어 치러진 재선거에서 단독과반을 상실하게 되자 당의 지지기반인 노동자들이 분노, 러시아의 볼셰비키들처럼 무장봉기를 할 것을 요구했다. 사민당 지도부는 봉기 직전까지 봉기에 소극적이었으나, 노동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기에 기호지세로 끌려가게 되었다.
핀란드 내전은 독일 제국의 개입으로 우파의 승리로 돌아가고, 내전때 적군을 지휘했던 핀란드 사회민주당 정치인들은 대거 소비에트 러시아로 도피했다. 도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파에게 학살당하거나 투옥되었다. 하지만 지도부가 날아갔을 뿐 핀란드 유권자 절반의 지지를 받고 있던 사민당의 기반은 날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친미파 개량주의자 배이뇌 탄네르의 새 지도부 하에 사민당은 1919년 선거에서 80석을 얻으며 불과 1년만에 부활한다. 한편 오토 빌레 쿠시넨 등 소련으로 도피한 이들은 핀란드 공산당을 창당했다.[4]
탄네르 지도부 하의 사민당은 수권정당의 지위를 회복했지만, 1920년대-1930년대 핀란드는 자생적 파시즘이 준동하면서 좌파가 집권할 만한 상황이 되지 못했다. 1926년 탄네르가 총리가 되어 입각했지만 소수여당내각이었기에 큰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사민당은 여러 차례 우익정당들과 함께 연정하여 '국민통합'을 거들었다.
겨울전쟁 이후 사민당은 계속전쟁에 대한 찬반을 두고 분열이 일어났다. 주류는 국민통합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에 반발해 평화주의를 주장한 당내 좌파가 탈당해 나갔다. 계속전쟁 이후 핀란드가 소련에 예속되면서 공산당이 합법화되었고, 공산당은 사민당 탈당파와 연합해 핀란드 인민민주동맹이라는 교섭단체를 형성했다. 2차대전 이전까지 언제나 1위 정당 자리를 다투었던 사민당은 이 때 지지세력의 절반 가량을 인민민주동맹에 빼앗기면서 순식간에 불구(...)가 된다.
소련은 사민당을 적대시하고, 농민당이나 국민연합당 같은 우파정당을 대화 파트너로 선택했다. 오죽하면 1959년에는 소련이 사민당 내각을 트집잡아 핀란드에 경제제재를 가했을 정도였다. 이에 농민당의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은 소련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사민당 내각을 실각시키고 이 상황을 해결해 자기 권력을 공고히 했다. 소련의 이런 의중에 따라 사민당은 1960년대 입각을 할 수 없었다. 사민당이 소련의 용서(?)를 받아 입각할 수 있게 된 것은 1966년에 이르러서였다.
1991년 소련이 망하면서 사민당은 비로소 그 영향에서 확실히 벗어났다. 1995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200석 중 63석을 얻으며 2차대전 이후 최대 선전을 거두었다. 하지만 2015년 선거에서는 34석으로 참패하면서 역대 최악 성적을 갱신하며 제4당으로 전락했다. 2017년에는 제2당 핀인당에 분열이 일어나 청색미래당이 분당해 나가면서 어부지리로 제3당이 되었으나 의석수는 그대로였다.
이후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꾸준히 올라가 2019년 4월 총선에서 핀인당과 1석 차이로 제1당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중앙당-연합당-핀인당 연정이 이루어지면 과반을 넘기 때문에 정권 탈환은 요원해 보였으나 사민당-중앙당-녹색당-좌파당-스웨덴인당의 5당 연합으로 집권에 성공하여 총리직을 얻었다. 코로나 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덕분인지 2020년 6월 4일 기준 지지율이 23.2%까지 올랐다.
3. 성향
- 복지정책 확대, 성소수자 권리, 스웨덴계 권리, 공교육 기금확대
- NATO 가맹 반대.
- 화력발전 반대. 원자력발전 옹호.
- (취업)이민 반대. 극우라고 알려진 핀인당보다 더 엄격한 입장이다. 난민 같은 인도적 이주나 결혼이민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핀란드 문화를 이해하고 핀란드 사회에 동화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취업이민은 직접적 타격을 받는 노동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이라 그런지 부정적인 편이다. 사실 핀란드 사민당이 좌파답지 않게 이민에 적대적이라기보다는, 핀인당이 극우답지 않게(...) 이민에 덜 적대적이라고 보는 게 맞다.[5]
4. 각종 기록
- 현존 핀란드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 (1899년 창당)
- 세계 최초의 여성 의원 배출정당 (1907년)[6]
- 사회주의 정당으로서,[7]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단독과반 달성 (1916년)
- 핀란드 최초로 연정 없이 자당 의원들로만 내각 구성 (1926년)[8]
- 핀란드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 배출 (2000년)
- 세계 최연소 여성 정부수반 배출 (2019년)
[1] 핀란드어[2] 스웨덴어[3] 독일 사회민주당은 에스페데(SPD)로 다르다.[4] 1920년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 대통령이 내전기 대사면령을 내리면서 일부 사람들은 핀란드로 재귀국했다. 하지만 끝까지 소련에 남은 사람들은 1930년대 대숙청 때 쿠시넨을 제외하고 모조리 목숨을 잃는다.[5] 여담으로 뉴질랜드 노동당도 이민 문제에서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6] 핀란드는 1906년 세계 최초로 '제대로 된' 여성참정권을 보장했다. 핀란드보다 앞서 여성에 참정권을 수여했다고 알려진 뉴질랜드는 선거권만 주고 피선거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 1906년 의회개혁으로 핀란드에서는 24세 이상의 모든 남녀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가졌다.[7] 개량주의 정당인 현재의 핀란드 사민당과 달리, 당시 핀란드 사민당은 독일 사민당의 에어푸르트 강령과 대동소이한 카우츠키주의 강령을 채택하고 있었다.[8] 핀란드 내전 당시 핀란드 적군 측 정부인 인민대표단도 사회민주당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지만 여기서는 1918년 건국 이후만 카운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