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합당
1. 개요
핀란드의 중도우파 정당.
2. 명칭
"국민연합당"은 영어명인 National Coalition Party를 번역한 것이며, 국내 언론에서도 이 쪽으로 많이 부른다. 다만 핀란드어명은 그냥 "국민연합"을 의미하며, 스웨덴어명은 단순히 "연합당"을 의미한다.[1] 즉 영어명은 두 명칭의 절충명이라는 얘기.
약칭이 핀란드어명과 스웨덴어명이 따로 있는 몇 안 되는 정당인데, 핀란드어명은 Kok이고, 스웨덴어명은 Saml이다.
3.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18년 12월 9일, 보수우익 민족주의 정당 핀란드당과 중도보수 청년 핀란드당의 당내 우파가 합당하여 창당되었다. 청년 핀란드당의 당내 좌파는 국민진보당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는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로 대표되는 수꼴 보수주의 정당이었다. 구 귀족과 율사, 지주들의 당. 한국의 한국민주당과도 비슷한 포지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전간기에 라푸아 운동과 합작하여 핀란드의 파시즘 준동에 기여한 흑역사가 있다.
맨챌래 반란과 스빈후부드의 대통령 낙선을 전후로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에게 당권이 넘어가면서 파시즘과 단절하고 대기업을 옹호하는 시장주의 정당으로 체질개선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내전 이전까지 국민의 절반의 지지를 받은 기반을 그대로 계승한 사회민주당, 토지개혁과 임야개혁을 주도하며 농민의 지지를 받은 중앙당과는 달리 국민연합당은 특정한 기반을 두지도 못했으며, 1970년 처음 원내 2당에 오르기 전까지는 3, 4위에 머무르는 게 기본이었고 1987년에 취임한 하리 홀케리 이전까지 총리조차 배출하지 못했다.[2][3]
2011년 20.44%의 득표율로 44석을 건져 처음으로 원내 1당이 되었으며, 이 덕에 처음으로 원내 1당 신분으로 총리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2015년 도로 원내 3당으로 밀려났고, 2019년에도 이 상황은 유지되었다.
이렇듯 여러 면에서 안습한 위치에 있지만, 현재 3,40석 대를 기록하는 건 그래도 20석 대에 머물던 과거에 비하면 세가 많이 성장한 거다.
4. 이념
중도우파 정당으로 자유보수주의를 표방하며, 유럽 인민당에 소속되어 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상당 기간을 사민당 등을 비롯한 좌파 정당들과도 협력한 전적이 있어서인지 종종 포괄정당(catch-all)으로도 분류된다. 특히 친이민, 친성소수자 정책 등이 대표적인데, 다른 유럽 국가들의 중도우파 정당들이 해당 정책들에 회의적인 부분들이 있는 점이 대비된다.[4] 사민주의적 전통이 강하며 소수자 친화적인 북유럽 선진국의 중도우파 정당은 문화적 자유주의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의 온건당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페테리 오르포 현 대표 치하에서는 반이민 정책들이 부분 도입되면서, 과거보다 좀 더 우향우하였다.[5]
[A] A B 핀란드어[B] A B 스웨덴어[1] 참고로 스웨덴의 중도우파 정당 이름이 중도연합당(Moderata Samlingspartiet)이다.[2] 전후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가 이 당 소속으로 총리를 지냈지만, 그도 정확히 취임한 시기는 1944년으로 전쟁 중에 취임한 것이었으며, 일전에 1918년 단 6개월 간 이 당의 전신인 핀란드당 소속으로 총리직을 지낸 적이 있었다.[3] 핀란드에서는 원내 1당이 총리를 배출하는 것이 관행인데, 1987년 총선 당시 사민당이 원내 1당이 되었지만 정부 구성에 실패해, 원내 2당인 국민연합당의 홀케리 대표가 총리에 취임했던 것.[4] 당장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도 부분적인 이민 통제를 지지하며,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민련 치하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탓에 가려지는 사실인데, 이것도 사민당과의 대연정 때문에 이루어진 것.[5] 물론 이는 핀인당의 돌풍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2019년 총선 이후 국민연합당이 야당으로 남으면서 향후 더욱 더 우향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