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네 등산철도 철도선
1. 개요
카나가와현 오다와라시의 오다와라역에서 아시가라시모군 하코네마치의 고라역 까지를 잇는 하코네 등산철도의 철도노선이다. 역넘버링에 사용되는 노선기호는 OH . 여객안내에서 정식명칭으로 안내하는 경우는 거의없고, 대외적으로는 '하코네 등산 전차' 내지 '하코네 등산철도선' 등의 이름이 사용된다. 신문 등에서는 노선을 가리키고 회사명(하코네 등산철도)으로 표기하거나, 하코네 등산선, 하코네 등산철도선라고도 불린다.
오다와라-하코네유모토간의 협궤 구간에는 최대 40퍼밀, 하코네유모토-고라간의 표준궤 구간에는 최대 80퍼밀의 매우 급한 상구배가 존재하나, 전 구간을 일반 점착식 철도로 운행한다. 건설에 있어서 스위스의 베르니나 철도을 참조하여 건설하였으며, 그 인연으로 1979년에 하코네 등산철도와 레이티슈 철도는 스위스 관광청의 협조를 얻어 자매철도 제휴를 맺고있다.
1919년에 개업한 철도노선이다. 하코네 등산철도는 오다큐 그룹의 일원이며, 1950년 이후부터 오다와라~하코네유모토 간 오다큐 전철의 열차가 운행하고있다.
일본의 강삭철도 중 가장 가파른 경사와 급커브, 스위치백 등이 있어 산악철도를 소개하는 사이트에서 '일본 유일의 본격 등산전철'이라고도 소개 된적이 있다.
아무래도 등산선이 능선을 따라 지은 노선이라보니 여러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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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유모토역과 고라역 사이의 산악 구간에는 80퍼밀이라는, 일본의 점착식 일반 철도 구간 중에서는 가장 가파른 구배가 존재한다.[1] 80퍼밀은 각도로 환산하면 약 4.6˚에 해당하며, 15m급 차량 2량을 1편성으로 운행하는 본 노선에서 편성 선두 부분과 후미 부분의 고도 차이가 약 3.4m 차이 나는 정도로 단순히 철도뿐 아니라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서도 매우 큰 경사도에 해당한다.[2]
또한 곡선반경도 꽤나 비범하다. 센닌다이 신호장~미야노시타 간, 또 코와키다니~쵸코쿠노모리 간은 r=30m라는 가파른 곡선구간이 있다. 이렇게 가파르게 된 비화가 있는데, 건설시에 '자연 경관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다'라는 전제조건하여 건설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이 지역은 온천에 영향을 줄수도 있다고 하여 터널의 굴착을 할수없게 되어있었다. 또한 산의 능선을 따라 가파른 곡선궤도를 부설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가파른 곡선구간이 생긴것. 반경 30m의 곡선은 3량편성을 기준으로 봤을때, 차량 시작과 끝방향이 60도 정도의 각이 붙는다. 일본의 일반 철도 선로에서 반경 30m가까이 설정되어있는 노선은 특수협궤선, 전용철도 이외에는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듀얼게이지. 이리우다에서 하코네유모토까지는 표준궤와 일본 협궤가 나란히 놓여있으며, 한쪽 레일은 공유하게되는 듀얼게이지가 존재한다. 이것은 협궤를 채용하던 오다큐 전철이 표준궤인 본 노선에 직통계획을 수립하다 생각해낸 방법이다. 운행 초기에는 표준궤가 오다와라까지 듀얼게이지로 부설되었다. 이것은 한쪽 레일을 공유하고 다른 한쪽은 각각의 궤간이 쓰던 방식이었기에, 공유하는 선로가 더 빨리 닳고, 또 신호기 체계도 복잡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협궤와 표준궤 모두 열차 밀도 및 분기기 수등을 고려하면 새계적으로 봐도 이 노선을 능가하는 노선은 없다. 심지어 JR 히가시니혼은 야마가타 신칸센 운행을 위해 일부 오우 본선 구간에서 듀얼게이지를 도입하기에 앞서, 본 노선에서 배우고 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수송력의 차이와 (등산철도 14.4m 3량, 오다큐 20m 4량) 교통약자 배려 대응등의 이유로, 2006년 이후부터는 차고가 있는 이리우다~하코네유모토 구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듀얼게이지가 철거되었다.
2. 역사
하코네 등산전차를 부설하는 계획은 1896년에 설립된 하코네 관광철도가 노선을 계획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 계획은 1900년에 코우즈와 유모토를 연결하는 전기철도노선 (오다와라 시내선)을 개업한 오다와라 전기철도가 동년 5월 23일자로 온천마을 (현재의 하코네정)에서 "노선을 우리촌까지 연장했으면 좋겠다"는 노선연장요청을 받은 때부터이다. 오다와라 전기철도는 이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같은해 9월까지 하코네 관광철도의 창립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한 후, 노선 자체는 오다와라 전기철도의 연장선으로 계획한다는 방향을 정하였고, 같은해 9월 임시주주총회에서 부결되었다.
등산전철의 건설 계획이 다시 구체화되는 것은 1907년 스위스에서 등산철도의 현장을 시찰한 사람이 "스위스를 롤모델로, 하코네 등산철도를 건설해야한다" 라는 편지가 오다와라 전기철도에 보내져 온것이 계기가된다. 또한 마스다 타카시(당시 미쓰이 계열 사장)와 이노우에 카오루(당시 일본의 정치가. 여러 장관 역임) 등의 사업가도 이 사업을 오다와라 전기철도에 권고함에 따라 1910년 1월 임시주주총회에서 유모토에서 고라까지 노선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같은해 4월에는 노선연장을 운수성에 신청하고, 다음 달에는 고라역에서 센고쿠를 거쳐 지금의 고텐바선 의 스소노역까지 연장하는 계획을 추가하였다. 1911년 3월 1일에 등산철도 건설면허가 교부되었으나, "자연 경관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것"이라는 조건이 붙여진 상태에서 철도노선 건설을 승인받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건설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영향으로 계획하고있던 자재의 수입이 두절되었고, 건설 공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야카와 교량의 건설은 도카이도 본선의 텐류교량의 트러스 스틸바디가 불허를 받게되었다. 경관 파괴의 우려가 있다고 당시 가나가와 현지사로부터 클레임이들어왔고, 시공법 변경이라는 조건하에 허가를 받게 되었다. 하야카와 교량 가설 공사가 끝난것은 1917년 5월 31일이며, 1915년에 교량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2년 가까이 걸려 가장 난항을 겪은 공사다. 차량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스위스에서 수입할 예정 이었으나 실현되지 않고, 미국제 차량을 구매하게 되었다.
또한 1916년에 실시된 지질 조사에서는 미야노시타에서 초코쿠모노리까지의 구간에 터널을 굴착하는 것은 샤코츠 천의 온천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나무를 무너뜨리지도 못하고, 터널 굴착을 할수도없는 상황이어서 산맥을 따라 궤도를 부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어쩔수 없이 우회 루트로 변경되었다. 당초 계획에 없던 코와키다니역이 이 때 개설하는 걸로 정해졌다.
이런 점에서 공사가 상당히 지연되었고, 건설비도 계획 당초와 비교해 큰폭으로 치솟았다. 결국 자금 조달을 위해 3차례에 걸쳐 사채 발행과 무리한 투자등을 강행하였다.
착공한지 어엿 7년이 경과한 1919년 5월 24일에 마침내 모든 공사가 완료되었다. 같은해 6월 1일부터 하코네유모토에서 고라까지를 잇는 등산전철의 운행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초 등산전차는 산을 오를때만 이용되고 내려갈때는 걸어서 유모토까지 갔어야 했었다.
개통하고 약 4년후,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 대지진이 발생하여 철도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코네유모토역은 뒷산이 무너져 구내가 매몰되었고, 궤도도 대부분이 붕괴 또는 매몰, 건축물도 절반 가까이가 반파되었고, 또한 대부분의 터널도 입구 부분이 붕괴되었다. 결정적으로 교량 1개소를 제외하고 모두 파괴되어 버렸다. 다행히도 가장 걱정했던 하야카와 교량은 경미한 손상과 조금 어긋난 궤간 등으로 큰 피해를 면했다. 7량이었던 등산 전철도 모두 탈선및 전복, 매몰되어 버렸지만, 화재로 소실된 차량은 없었다.
당시에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커 (위치가 아타미쪽 바닷가여서 오다와라 및 이토시 등 이즈 반도는 완전 초토화 되었다.) 조기 복구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같은해에 복구를 준비하였고, 이듬해 1924년 1월부터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다. 복구 공사도 난공사였고, 운행이 재개된것은 하코네유모토역 -데야마 임시정류장 구간이 같은해 9월 10일, 데야마 임시정류장~오히라다이간 / 코와키다니역~고라역 사이가 11월 24일, 미야노시타역 -코와키다니역 사이가 12월 24일, 그리고 오히라다이역~미야노시타역 사이가 12월 28일이었다.
지진의 피해에서 복귀 한후 1926년 1월 16일에는 코와키다니를 출발한 등산 전차가 미야노시타부근에서 곡선에서 탈선하여 민가로 전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사는 생존해 있었지만, 정신병으로 인해 사고당시가 기억이 안나 결국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속도제어가 안된 것으로 보여지고있다. 이 사고후 잠시나마 1928년 1월에 오다와라 전기철도는 일단 일본전력에 합병했다. 이후 같은해 8월에 다시 하코네 등산철도로 분사화되었다.
일본 전력의 산하회사가 되고 나서, 오다와라에서 고라까지 철도선을 직결운행 할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다. 이 계획은 오다와라에서 카지마츠리까지 궤도선과 별도로 선로를 부설하고 카지마츠리에서 하코네유모토까지 전용궤도였던 궤도선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1927년 4월 1일에 신주쿠역을 기점으로 오다와라 급행철도 (오다큐)가 오다와라역까지 개통되었다. 이에 하코네 등산철도는 오다와라역 구내에 등산전철의 노선 연장을 신청하였다. 1930년에는 오다큐과의 연락에 대해 서로 협정을 체결했다. 1931년 11월부터 카지마츠리와 하코네유모토를 잇는 구간의 개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오다와라역에 노선연장이 인정되는 1934년 부터 오다와라~카지마츠리를 잇는 구간의 공사에도 착수하였다. 1935년 9월 21일에 모든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오다와라역 구내에 운행시할때는 오다큐 측에서 엄청난 협력을 할 것이라고 하였었다. 이와 병행하여 직결 운행을 시작한 후 예상되는 승객증가에 대한 대응책으로 2량 편성으로 운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검토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선로는 최소곡선 반경이 30m라는 엄격한 선형이며, 기울기도 일본 최대급이되는 80 ‰에서도 버틸수 있는 안전한 연결기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철도부 연결기 개발쪽에 자문을 구한 결과, 시바우라제작소(도시바) 설계에 의한 연결기 개발이 실현되었다. 몇 달에 걸쳐 연결 한 상태에서의 시운전을 실시하여 안전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치키 2형의 연결기를 모두 교체했다.
그리하여 동년 10월 1일부터 오다와라역과 고라역 사이에서 등산열차의 직결 운행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오다와라와 고라는 최단 50분으로 연결되게 되었고, 하코네유모토에서 궤도선으로 갈아타고 있던때보다 20분의 시간단축이 실현되었다.
전시체제에 들어서는 1942년 5월 30일자로 오다큐와 하코네 등산철도가 도큐에 먹힌 후, 고토 케이타(도큐의 사장이며, 아무 철도회사를 막 강탈하듯이 인수하여 별명이 '강도 게이타'였다.)가 사장으로 취임하는 등의 사건은 있었지만, 철도에 큰 영향이 아니라 전쟁에 의한 피해도 거의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잠시 동안 등산전차 중 2량이 진주만 공습의 전용차량이 되었다. 1948년 9월 15일에는 아이온 태풍 이 상륙 하여, 철도교량 2개소가 유실되었다. 이외에도 토사붕괴에 따른 궤도의 매몰 등이 있었고, 복구는 이듬해인 1949년 7월 6일까지 늦어졌다.
1946년에는 다이토큐가 책정한 [철궤도 부흥 3개년 계획] 안에는 도큐 오다와라선의 하코네유모토까지의 노선 연장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1948년 6월 1일에 다이토큐에서 분리 독립한 오다큐전철은 같은해 10월부터 논스톱 특급 운행을 시작했다. 이 노선과 경합하는 노선인 도카이도 본선에 제대로 대항하려면 하코네유모토까지 직통하여 관광객을 확실히 끌어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운행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선 연장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었다.
철도선의 궤간은 국제표준인 1,435mm였다. 그런데 오다큐의 궤간은 더 좁은 1,067mm였다. 어느 쪽이든 통일하려고해도 80‰의 급구배를 오르는 능력이 있는 전동차를 만들기에는 당시의 기술도 부족하였고, 1,067mm의 규격에 맞지 않았다. 때문에 철도의 궤간을 1,067mm로 개궤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오다와라선을 1,435mm로 개궤할려니 차량 수가 많은데다 거리도 상당히 많아지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직 전후 부흥개발이 안된 상태에서 그런 부담까지는 무리였다. 게다가, 국철과 화물운송을 하는 당시에 개궤해 버리면 직통운전이 불가능하고, 화물 수입료가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철도의 레일 내부에 협궤 차량을 위해 다른 1개의 레일을 부설하는 듀얼게이지를 채용하게되었다. 또한 공유하는 레일에 대해서는 산쪽 (오다와라역을 출발하면 진행방향 우측)으로 지정하였다. 이것은 만일 오다큐 전철이 탈선을 일으킨 경우에는 바깥 표준궤 철도 레일에 걸려 바다쪽 (진행방향 왼쪽, 국도1호선이 병주한다)로 전락을 방지하기 위한것이다. 보통의 분기기는 가동개소가 2개소이나, 이 듀얼게이지 분기기는 가동개소가 5개소가되는 복잡한 구조로 된다.
듀얼 게이지의 도입으로 문제가 된것은 차량의 연결기였다. 등산전차는 전술한 바와 같이 특별제작된 연결기였지만 당시 오다큐에서는 자동연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중간연결기를 통해 비상시의 연결에 대비하게된다. 하지만 이 듀얼 게이지는 궤도 중심과 차체 중심이 어긋나어 연결기를 통일했다고 해도 연결할 수 없다. 따라서 비상시에 다른 차량에 의한 견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가장 가까이있는 같은 회사의 차량을 구호차량으로 연결하게 되었다. 차체 중심의 차이는 역의 플랫폼과 차량 사이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오다큐 차량은 차체 폭이 2,800mm인 반면, 등산 전차의 차체폭은 2,520mm로 좁다. 선로를 공유하는 쪽으로 플랫폼이 있다면, 등산전차는 30cm 이상의 공간이 가능하게 되었다 . 반면 이는 바꿔말하면 선로를 공유하지 않는쪽에 플랫폼이 있다면, 오다큐 차는 차량과 플랫폼 간의 거리가 30cm나 난다는 소리다.
또한 철도의 가선전압은 당시 직류 600V였고, 신주쿠에서 오는 오다큐의 가선 전압은 직류1,500V였다. 이때문에 오다큐 차량이 드나드는 구간에서 전차선의 전압을 직류 1,500 V로 승압하였고, 하코네유모토역 구내에 절연구간이 설치되었다. 그래서 등산 전차는 여러 전압에 대응하는 장치가 설치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직류 600V 그대로 궤도선에 직접 연결할 수 없게 되었고 , 하코네유모토에서 송전선에 의한 급전을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궤도 조건도 달랐다. 오다와라역 및 하코네유모토역 사이는 가파른 40퍼밀이었고, 비록 하코네유모토역에서 앞의 80 ‰과 비교하면 느슨한 경사였기 때문에, 하코네 등산에서는 이 구간을 '평탄한 선' 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오다큐에서 가장 가파른노선은 25퍼밀이었고, 40퍼밀이라는 경사는 그것을 훨씬 초과하였기 때문에 오다큐 차량에게는 악조건이 된 것이다. 그런 구배가 1km 이상 계속되기 때문에 오다큐 차량의 브레이크 고장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오다큐에서는 개량된 브레이크를 장착한 차량만 운행하게 되었다.
이 밖에 카자마츠리역에 대피선 시설을 신설했다. 또한 운행 구간에있는 터널과 철교등도 검토를 거듭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해결하면서 대응을 진행시켜 갔다. 도쿄시바우라와 자동차 회사의 노동쟁의에 의해 차량 개조가 지연되는 장애도 있었다가 1950년 8월 1일부터 오다큐 전철의 운행이 시작되었다. 운행 당일 하코네유모토역에는 오다큐의 운행 개시를 기념하여 아치가 장식되었고, 오다큐 전철이 도착하면 불꽃까지 발사되었다. 이 운행이 시작하여 오다와라를 이용하여 하코네를 방문하는 이용자가 두배나 늘었고, 철도 이용자 수가 전년에 비해 27%의 증가를 보는 등 이용자 수는 크게 증가 했다.
1964년에는 지금까지 하코네유모토역에 병설되어 있던 주차장을 이리우다역에 인접한 위치로 이전하였다. 1972년에는 열차 집중제어장치 (CTC)가 도입되었다. 1980년부터는 오다큐의 직통 열차의 대형화에 대응한 개량 공사가 시작되어 1982년 7월 12일에 오다큐 직통 특급 열차의 길이 20m를 대응하게끔 개량되었다.
철도를 이용하는 관광객은 증가하고 1991년에는 연간 수송 인원이 1천만명을 넘어 섰다. 이 당시 하코네를 방문하는 관광객중 52%는 어떤 형태로든 하코네 등산 철도를 이용했다. 당시의 등산열차는 2량 편성 에서 15분 간격이 최대 수송 능력이며, 골든위크와 하코네 다이묘행렬이 개최되는 11월 등 등산 열차를 타는데 2시간 대기하는 상황까지 될 정도로 혼잡하였다. 하지만 특유의 선로 조건에서 무작정 증차시킬수 없기 때문에 열차를 최대 3량 편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철도선 하코네유모토역에서 고라역까지의 각역은 개통 이후 2량 편성에 대응한 시설이되고, 모든 역에서 홈 연장 대응 공사가 실시되었다. 가장 난공사였던 것은 토노사와역의 공사였다. 승강장 양측이 터널에 둘러싸여있고, 개업 당시부터 고라방면 변압기가 터널 내에 설치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역으로 가는길은 좁은 인도가 있을뿐 대형 화물차가 가기 어려워서 대형 기계를 도입 할수 없었다. 따라서 고라측의 터널 확폭은 거의 모든것을 굴착기 공사가 아닌 수공사로 시공하게 되었고, 수공사로 인해 난공사가 되었다. 토노사와역 공사만으로 총 공사비 20억원 중 절반가량이 소요되었다.
이 외에도, 변전소의 증강과, 가선 전압을 600V에서 750V로 승압하고, 일부 차량의 2량 고정편성화 등이 이루어졌다. 토노사와역 공사가 예정보다 일찍 끝나 당초 1993년 10월부터 예정되어 있던 3량 편성 운행이 그해 7월 14일부터 3량편성으로 운행하는걸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하코네유모토역까지 운행하는 오다큐 전철은 20m급의 차량이 최대 6량 편성인 반면, 등산 열차의 수송능력은 전장 15m급의 3량 편성이 다였기 때문에 운송의 효과가 별 없었다. 따라서 1995년 이후 골든위크등 특히 다객이 예상되는 날에는 하루 동안의 등산 전철을 하코네유모토역과 고라역 사이에서만 운행하고 오다와라역 및 하코네유모토역 사이는 오다큐의 6량 편성의 완행 열차를 운행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또한 각역에서 승차위치도 오다큐 차량과 등산전차는 달랐고, 카자마츠리역에서는 홈길이가 짧아 오다큐 차량은 도어컷을 사용하여 수동으로 문을 여는 상태였다.
또한 장애인 대응에도 문제가 생겼다. 오다큐 차량과 등산 전차는 차체 규격이 다른데다 듀얼 이지는 각 차량의 중심이 어긋나는 문제 때문에 교통약자의 대한 배려도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러한 사정으로부터 먼저 2000년 12월 2일 다이어 개정으로 낮 동안의 오다큐 전철 직통 갯수를 증가시켜 오다와라~하코네유모토 간을 운행하는 등산전철은 아침 저녁에만 운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 또한 2006년 3월 18일 다이어 개정으로 오다와라~하코네유모토 간 열차는 모두 오다큐 차량으로 대체되었다. 이후에 오다와라~이리우다 사이의 듀얼 게이지는 순차적으로 철거되었다 현재 이리우다역에 등산철도의 차고가 있기 때문에 이리우다~하코네유모토 구간만 듀얼게이지가 남아있다. 2008년 3월 15일 다이어 개정에으로 카지마츠리역의 개량 공사 완료에 따라 도어컷이 해결되었고, 이후 오다큐 차량은 특급열차를 제외한 일반열차로는 4량 편성으로 운행한다.
또한 큰 해일피해를 가져온 동일본 대지진 이후 오다와라 시내에서 해발 표시가 곳곳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하코네 등산철도가 공표했던 수치와 다르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여, 2013년 11월에 수정되었다.
2019년 10월 13일 하기비스에 의해 오히라다이~코와키다니 간을 중심으로 토사유입과 교각유실 등 막대한 피해를 받아 하코네유모토~고라 구간이 장기 불통 되었다. 하코네 등산철도는 같은해 11월 22일에 이 구간의 운전 재개를 2020년 가을 무렵으로 발표했지만, 이후 2020년 7월 하순으로 앞당겨 그해 7월 23일에 운전을 재개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9개월 만에 전 구간에서 운전을 재개했다.
3. 역 목록
[1] 일본 전체의 철도 노선으로 보면 아프트식 철도인 오이카와 철도 이카와선의 90퍼밀에 이은 2위에 해당한다.[2] 여담으로 건설당시의 일본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은 단연 신에츠 본선의 우스이 급구배 66.7퍼밀 구간이었다. 또한 이 노선의 배경이 된 베르니나 철도는 70퍼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