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아담 2세

 


'''Hans-Adam II'''
''''''왕호''''''
한스아담 2세 (Hans-Adam II)
'''''''출생''''''
1945년 2월 14일 (79세)
스위스 취리히
'''''''재위''''''
리히텐슈타인의 공작
1989년 11월 13일 ~ 현재
'''''''배우자''''''
마리 아글라에 (1967년 결혼)
'''''''자녀''''''
알로이스[1]
막시밀리안 왕자
콘스탄틴 왕자
타차나 공주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2세
'''''''어머니''''''
조지나 폰 빌체크
1. 개요
2. 생애
3. 가족 관계
4. 기타


1. 개요


리히텐슈타인의 현 공작.
풀 네임은 요하네스 아담 페르디난드 알로이스 요셉 마리아 마르코 다비아노 피우스 ( Johannes Adam Ferdinand Alois Josef Maria Marco d'Aviano Pius )

2. 생애


1945년 2월 14일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프란츠 요제프 2세 공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는 스카우트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장크트갈렌 대학교 비즈니스 및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노쇠한 아버지를 대리해 섭정이 되었으며 1989년 프란츠 요제프 2세가 서거하자 공위를 계승했다.
유럽의 군주들 중에서 가장 부자이며[2] 유럽의 군주들 중에서 가장 권력이 크며 공화제를 포함해 전세계의 상징적 국가원수 중에서 권한이 제일 많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재산은 '''8조 원에 달한다.''' 모나코 그리말디 가문보다 5배 부유하며 노르웨이 글뤽스부르크 왕조보단 400배 부유하다. 알로이스 세자를 '''섭정(Regent)'''[3]으로 임명하고 국내의 전권을 이양하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공위(公位)는 한스 아담 2세에게 있다.

3. 가족 관계


1967년에 6살 연상인 위치니츠와 테타우의 마리 킨스키 여백작 (Countess Marie Kinsky von Wchinitz und Tettau)과 결혼했으며, 3남 1녀를 두었다.
장남 알로이스 (Alois Philipp Maria , 1968. 6.11 ~ )는 한스 아담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나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 사관학교에 다녔다. 6개월 동안 홍콩과 영국에서 콜드 스트림 가드에서 근무하였고 잘츠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전공하였다. 1993년에 바이에른 왕가의 소피와 결혼하여 3남 1녀를 낳았다. 후계자로서 2004년 이후 섭정을 하고 있다. 공작위 승계 2순위로 알로이스의 장남이자 한스아담의 장손자 요제프 벤첼은 1995년생이다.
차남 막시밀리안 (1969 ~ ) 은 파나마 출신의 패션디자이너 안젤라 브라운과 결혼했다. 그녀는 유럽 왕가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이며 슬하에 아들 1명을 두었다.
삼남 콘스탄틴 (1972 ~ ) 은 헝가리-루마니아계 여백작인 마리 가브리엘레 프란치스카와 결혼해서 2남 1녀를 두었다.
막내 딸 타차나 (1973 ~ ) 는 독일의 필립 폰 라토르프 남작과 결혼해서 2남 5녀를 두었다.

4. 기타


의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본인의 사고방식에서는 도무지 용인할 수 없었는지 법안에 서명하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빌 게이츠에게 나라를 팔아버리고, 나라 이름도 마이크로소프트로 바꾸게 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떠나겠다."는 협박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왜 오스트리아인가 하면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본래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로서 오스트리아 황제의 봉신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가 안슐루스로 인해 독일에 합병당하기 전까지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현재의 리히텐슈타인이 아닌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하고 있었다. 리히텐슈타인 공과 공족들도 오스트리아 제국(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장군과 외교관으로 많이 활약했었다.
공가 입장에서는 사실상 세금이 없는 수준의[4] 나라를 공작가 사유재산으로 먹여살리는 수준이니 의회가 거역할 수가 없다. 반항했다가는 일단 나라가 한 번 뒤집어지고 그 다음에는 굶어죽는다. 결국 알로이스의 고집을 꺾지 못한 의회는 할 수 없이 그의 거부권을 수락했고, 이에 따라 알로이스는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한 몇 안 되는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그래서 리히텐슈타인은 유럽에서 최후의 "전제군주제" 국가라며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고 까이기도 하지만, 나라가 너무 작아서 관리가 너무 잘 되는데다, 국민들도 공작가의 재산과 능력으로 복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 공가의 강력한 왕권을 오히려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다.
[1] 공위 후계자[2] 1위 한스아담 2세, 2위 룩셈부르크앙리, 3위 모나코알베르 2세, 4위 '''영국엘리자베스 2세'''[3] 조선으로 치면 대리청정[4] 세금이 아예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최소한의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와 같은 제도는 있되 그 비율이 상당히 낮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