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뤽스부르크 왕조

 


1. 개요
2. 본가
3. 덴마크계
4. 그리스계
5. 노르웨이계
6. 영국계


1. 개요


House of Glücksburg
정식명칭 '슬레스비-홀스텐-쇤더보어-글뤽스보어' 왕가(Slesvig-Holsten-Sønderborg-Glücksborg). 현 덴마크, 노르웨이, 전 그리스, 아이슬란드의 왕조이다.
시조 가문은 덴마크의 '올덴부르크 왕가'. 독일 북부 올덴부르크의 백작가문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국이었다. 15세기 중엽 덴마크와 칼마르 연합의 왕으로 선출됨으로써 왕조로 등극하였으며 이 때부터 북유럽사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글뤽스보르 가문은 이 올덴부르크 왕가 크리스티안 3세의 아들인 한스가 창설한 가문인 슬레스비-홀스텐-쇤더보르 가문의 분가(...)이다.[1] 보다시피 분가할 때마다 성이 점점 늘어났다.

2. 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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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에 근거한 본가는 가문 전체를 대표한다. 현 수장은 1949년생인 크리스토프이다.

3. 덴마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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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왼쪽 윗부분과 오른쪽 아랫부분은 덴마크를, 오른쪽 윗부분은 슐레스비히를, 왼쪽 아랫부분 에서 세 왕관은 칼마르 동맹을, 염소는 페로 제도를, 북극곰은 그린란드를 나타낸다. 가운데 위치한 문장은 본가인 올덴부르크의 상징이다.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7세에게 자녀가 없자, 슬레스비-홀스텐-쇤더보르-글뤽스보르 공작 프레데리크 빌헬름의 4남 크리스티안(후의 크리스티안 9세)이 후계자로 지정된 것이다. 올덴부르크 본가가 단절된 이후에 덴마크 왕위에 오르게 된다.
크리스티안 9세의 장남은 프레데리크 8세로 덴마크 왕위를 물려받고, 장녀 알렉산드라는(덴마크의 알렉산드라)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왕비가 되었으며, 차남 빌헬름은 그리스게오르기오스 1세[2]로 즉위하고, 차녀 다그마르(마리아 표도로브나)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가 되는 등 크게 번창하였다.
아울러 프레데리크 8세의 장남 크리스티안 10세는 1918년~1944년 사이에 '''아이슬란드의 왕위'''도 동군연합으로 차지하였으며, 차남 카를은 노르웨이호콘 7세로 즉위하였다.
현 수장은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다.
원래 살리카법이었으나 1953년에 국민투표로 장자상속법으로 바뀌고, 2009년에 절대적 장자상속법으로 바뀌었다.
군주가 될 맏이의 이름으로 크리스티안-프레데리크라는 이름을 교대로 사용한다. 크리스티안 10세-프레데리크 9세-마르그레테 2세-프레데리크 왕태자-크리스티안 왕태손 이런 식.

4. 그리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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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왕가의 문장. 아래 적혀 있는 글씨는 왕실 모토인
"Ισχύς μου η αγάπη του λαού(국민의 사랑은 나의 힘)[3]"
전술했듯이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차남 빌헬름이 1863년, 그리스 왕국요르요스 1세가 되어 50년간 재위하였다. 즉위 당시 17살이었는데, 자신이 그리스 의회에서 국왕에 선출되었다는 걸 점심 먹으면서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 해 오토 왕이 쫓겨나고 새 국왕을 뽑는 국민투표가 있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인 에든버러 공작 앨프러드[4]가 95%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기 때문. 참고로 24만 1,202표 가운데 공화국을 원한다는 표는 93표, 빌헬름 본인은 6표, 나폴레옹 3세는 2표, 전 국왕인 오토의 복위는 1표(...)를 얻었다. 이후 앨프레드가 국왕 후보에서 배제되고, 그리스와 열강들 사이의 조정에 의해 빌헬름이 선택된 것이다.
1924년부터 11년간 그리스가 공화국(그리스 제2공화국)이 된 적도 있었으나, 다시 왕조가 복위했다가 군사 쿠데타를 거쳐 1973년의 국민투표로 제3공화국이 됨에 따라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가 폐위되었다. 1974년에 군사정권이 쫓겨난 이후 다시 왕정복고 국민투표가 치러졌으나 7:3으로 왕당파가 떡실신. 그 뒤로 그리스는 민주공화정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현 수장은 콘스탄티노스 2세이다. 이쪽도 살리카법이었으나 1952년 헌법에서 아들 우선 장자상속법으로 바뀌었다.[5]
쫓겨난 왕가인 만큼 그리스에서의 취급은 매우 박해서, 콘스탄티노스 2세는 폐위된 후 1981년 2월 모후인 하노버의 프레데리카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아테네를 찾은 것을 빼고는 계속 외국을 전전해야 했다. (93년 여름에 한번 입국했던 적은 있었다.) 여권상의 그의 이름은 'Constantine, former King of the Hellenes'였는데, 1994년에 법이 개정되어 적법한 성(family name)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스 시민권과 여권도 몰수당했다. 2004년에는 IOC 위원으로서 아테네 올림픽 참석을 위해 그리스를 찾았는데, 이 때는 덴마크 여권을 통해 입국하였다. 덴마크는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센카셀의 루이제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들 모두를 덴마크의 왕족으로 취급하여 여권을 발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왕가는 46년 동안이나 런던에서 체류하다가 2013년에서야 그리스로 돌아와(실질적으로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2004년~2013년 사이에는 아테네와 런던을 오갔다고 한다.) 현재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포로토 헬리(Πορτοχέλι)에 살고 있다.
콘스탄티노스 2세와 안나-마리아 왕비[6]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및 손주들은 'Prince(또는 Princess) of Greece and Denmark'를 자칭하고 있다.[7]
영국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의 부계가 이 가문에 해당한다. (요르요스 1세의 4남 안드레아스 왕자의 아들)
이 가문도 뿌리인 덴마크 왕실처럼 군주가 될 맏이의 이름을 격대로 사용한다. 콘스탄디노스 1세-파블로스 1세[8]-콘스탄디노스 2세-파블로스[9]-콘스탄티노스-알렉시오스 이런 식.

5. 노르웨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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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했듯이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8세의 차남 카를이 1905년에 호콘 7세로 즉위하였다. 왕위 계승은 살리카법이다가 1990년에 절대적 장자상속법으로 바뀌었다. 현 가문의 수장은 하랄 5세 국왕이다.
덴마크 왕실이 뿌리지만 군주가 될 맏이의 이름을 격대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호콘 7세-올라프 5세-하랄 5세-호콘 왕태자-잉리드 왕태손녀 이런 식.
노르웨이/왕실 문서 참조.

6. 영국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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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부군필립 마운트배튼이 본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조, 줄여서 말하면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왕조 출신이다. 필립 마운트배튼이 본래 폐위된 콘스탄티노스 1세의 조카였기 때문이다.
부계혈통으로만 따지면 영국의 차기 국왕들은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후예다. 게다가 영연방 국가들 중 영국 여왕을 군주로 모시는 국가들까지 따져보면[10]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등의 국가들도 글뤽스부르크 왕조이다(...)
하지만 영국 왕실은 부계혈통을 이어받든 모계혈통을 이어받든 왕실의 피를 이어받았으면 후대의 왕조 이름도 윈저 왕조로 계속 간다고 선언하였다. 참고로 이 선언을 한 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다.

[1] 또다른 분가로 슬레스비-홀스텐-쇤더보르-아우구스텐보르 가문도 있었으나 1931년 단절. 빌헬름 2세(독일 제국)의 황후 아우구스타 빅토리아가 이 가문 출신이다.[2] 필립 마운트배튼의 조부.[3] 덴마크 프레데리크 7세의 표어였다. (덴마크어로는 Folkets kærlighed, min styrke)[4] 훗날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알프레트가 된다.[5] 당시 그리스 왕가에 남자 계승자가 왕세자 한 사람 뿐이었기 때문. 필리포스 왕자는 영국으로 장가가 버리고, 다른 남자 왕족들은 귀천상혼했기 때문. : 엄밀히 말하면 당시 한명 더 있기는 했다. 요르요스 1세의 막내이자 필립 공의 아버지 안드레이스 왕자의 동생 크리스토포로스 왕자(1888~1940)가 프랑스 오를레앙 가문 출신의 두번째 부인사이에서 낳은 미하일 왕자(1939~). 막내의 늦둥이라 콘스탄티노스 2세(1940년생)과 나이가 비슷했지만(참고로 파블로스 1세도 37세에 결혼했으니 늦은 편), 촌수는 파블로스 1세 & 필립 공의 사촌. 물론 그도 1965년에 그리스 예술가인 마리나 카렐라와 결혼하면서 계승권을 포기했다. 참고로 둘 사이에서는 알렉산드라와 올가라는 두 딸이 태어났는데, 올가는 6촌이자 이탈리아 사보이 왕조 분가인 아오스타 가문의 아이모네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6] 덴마크 프레데리크 9세의 세 딸 중 막내이자 현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막내 여동생. 참고로 부부는 부계로는 8촌 관계이다. 크리스티안 9세-프레데리크 8세-크리스티안 10세-프레데리크 9세-안나-마리아 왕비 / 크리스티안 9세-요르요스 1세-콘스탄티노스 1세-파블로스 1세-콘스탄티노스 2세[7] 덴마크 출신인 안나-마리아 왕비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왕가의 시조인 요르요스 1세부터가 덴마크 왕실 출신이기 때문. 콘스탄티노스 2세 이전 세대 사람인 필립 공(결혼 이전)이나 필립 공의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도 'Prince(또는 Princess) of Greece and Denmark'가 칭호에 붙어 있었다.[8] 3남이라 할아버지인 요르요스 1세의 이름을 쓰지 못했다. 요르요스 1세-콘스탄티노스 1세-장남 요르요스 2세로 이어졌지만 요르요스 2세가 자녀 없이 죽어서...[9] 만약 왕에 즉위한다면 파블로스 2세라고 칭할수 있겠지만, 그리스 왕정이 폐지되었으므로 이후로는 옛 왕족 개인의 이름일 뿐이다.[10]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기존의 대영제국은 해체되었고 여러 나라들이 독립했지만, 정부로서는 독립해도 영국의 왕을 국가원수로 모시는 나라들은 현재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