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확

 



韓確
1403 ~ 1456
1. 개요


1. 개요


'''성종의 외조부이자 명나라 영락제, 선덕제의 처남'''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명나라 초기의 문신.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 시호는 양절(襄節)이다. 본관은 청주 한씨.
그의 딸 중 둘은 왕족과 결혼했는데, 한 명은 세종의 서자 계양군의 아내이고, 다른 한 명은 다름아닌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이다. 또한 한확의 3남 한치례(韓致禮)는 세종의 적녀 정의공주의 차녀와 혼인했다.
그가 이렇듯 왕가와 중첩된 혼인을 할 수 있었던데는 그의 매형이자 처남이었던 명나라 황제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명나라의 관료이자 조선의 대명 외교통이었다. 이를테면 친중파 정치인의 한 사람. 그의 누나가 영락제후궁 강혜장숙여비(康惠莊淑麗妃) 한씨[1][2]고, 여동생은 선덕제의 후궁 공신태비(恭愼太妃) 한씨다.
강혜장숙여비 한씨가 순장을 당하고 난 뒤 조선 출신 환관들이 영락제의 손자 선덕제에게 여비의 여동생 한씨가 언니처럼 절색이라고 하자,이번엔 아예 한확의 여동생을 후궁으로 데려오라고 지명까지 하게된다. 당시 한확의 여동생 한씨는 앓아누운 상태였는데, 이 때 오라버니 한확이 약을 지어오자 '''"벌써 누이 하나를 팔아 부귀가 지극한데 나까지 팔아 호사를 누리려는가??"''' 라며 울었다고한다. 그녀 입장에서는 어린 나이에 시들어버린 언니의 죽음을 보고서도 자신조차 명나라 황제의 후궁으로 보내버리려는 오라버니가 원망스러웠던듯. 자신이 공녀로 바쳐진다는 소리를 듣자 애지중지했던 혼수를 칼로 찢고 패물을 내던져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시름시름 앓아 예정된 시기보다 1년 늦게 명나라 행을 하게된다. 그녀가 명나라로 떠나던 날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녀를 태운 가마가 명나라로 향하자, 이를 보며 사람들은 ''' "언니가 생매장 당한것도 억울한데, 이번엔 여동생이 산송장이 되어 떠나는구나''''' 라며 비통해했다고한다. 명나라로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울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비극적으로 죽었던 언니와는 달리 남편 선덕제 사후에도 여러 명나라 황제들의 존경을 받으며 성화제까지 살아 황실 어른으로 대접받고 천수를 누린다. 조금만 처신을 잘못해도 피바람이 부는 중국 황실에서 명나라인도 아닌 조선인이었던 그녀가 몇대에 걸쳐 살아남은 것을 보면 명나라 황실에 가서도 꽤 슬기롭게 처신한듯. 성종실록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그녀 덕분에 한확 뿐만 아니라 조카들까지 명나라를 왕래하며 호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이처럼 한확은 누나와 여동생의 희생 덕에 조선 조정 안에서도 굳건한 위치에 서게된다. 명나라 두 황제의 처남이라는, 조선시대에 전무후무한 위치에 있었던 그는 세조의 첫 아들과 본인의 딸을 결혼시킴으로서 국구까지 오른다.
영락제는 뛰어난 외모를 가진 여비를 사랑한 나머지 그를 광록시소경에 봉하였고[3], 그의 잘생긴 외모에도 호감을 갖고 심지어 부마로 삼으려고도 했다[4]고 한다. 이런 일화에서 보이듯, 한확을 비롯해 세 남매 모두가 외모가 절색이었던 걸로 보인다. [5] 두 누이 모두 황제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권세도 막강해져서 세종조차 "이 사람은 내가 벌 줄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보고 '누이들을 팔아 권세를 누리는 구나' 라며 욕을 했다고. 세종세조가 그의 딸을 며느리로 삼은 것에는 이러한 사실도 고려해서였을 것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 직후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어 세조의 행위는 정변이 아닌 양위였다고 변호했고, 귀국하던 중 객사했다.[6]

2. 한국 사극



[1] 한확의 누나 한씨는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 공녀로 뽑혀 영락제의 후궁이 된다. 뛰어난 외모와 함께, 영락제의 비위를 잘 맞췄던 그녀는 총애를 받아 여비(麗妃)로 책봉된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던 영락제는 곧 죽게되고, 그녀 역시 명나라의 관례에 따라 남편 영락제의 뒤를 따라 순장되고 말았다. 단순히 외모가 뛰어나단 이유로 정든 조국과 가족을 떠나 20대의 어린나이에 말도 안 통하는 명나라에 바쳐졌던 한확의 누나는 겨우 24살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된다. 죽을 때의 일화는 더욱 슬픈데, 죽기 직전 그녀가 '어머니, 저는 갑니다.. 어머니 저는 갑니다...' 라고 울부짖는 도중에 집행관이 그녀의 목을 매달아 말도 끝내지 못한채 죽었다고한다. 약소국의 비애와 아직도 순장을 폐지하지 않은 명나라의 추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 실제 한반도에서는 신라가 순장의 마지막이다.[2]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장영실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한다연'(정유미 役)이 이 여비 한씨를 모티브로 한 인물로 보인다. 한다연 역시 영락제의 후궁이 되어 순장당한다.[3] 이 때 그의 나이 겨우 15(!!)살이었다. 이 정도 나이면 명나라는 커녕 조선에서 벼슬하기도 어려운 나이인데, 이 일화는 그가 어릴 때부터 출세가도를 달렸다는 것을 보여준다.[4] 이렇게 되면 영락제는 처남을 부마로 맞으려 것이니 피는 이어져있지 않아도 조카와 삼촌이 결혼할 뻔한 것...... [5]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 9월 11일 무인 5번째기사 . 황제가 인종 황제(仁宗皇帝)의 딸로 아내를 삼게 하려 하니, 한확이 노모(老母)가 집에 있음으로써 사양하여 그만두었다. [6] 야사에서는 계유정난과 단종 복위 사건으로 원한을 너무 많이 사서 그 원혼들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객사가 좋지 않은 죽음의 형태로 인식된데다가 일반인도 아니고 권신이 객사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아 이런 이야기가 생겨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