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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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사극 드라마 및 영화.
한국에서 사극이라 하면 단순히 과거 또는 과거로 짐작되는 것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전반을 통틀어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과거 역사를 소재로 다루는 극에 대한 다양성이 부족했던 시기의 분류가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고, 실제로는 지극히 이질적인 여러 경향들을 억지로 뭉뚱그려놓은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 역사
2.1. 정통사극과 퓨전사극
사실 대한민국의 사극들은 본래는 정통사극이 주류였다. 이승만 정권 시절의 사극영화들은 모두 정통사극이 많이 주류로 활동했는데, 그 이면에는 정통사극을 통해서 반공통치를 강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래도 그 때는 정통사극들이 영화로써 큰 인기를 많이 받았고, 장면 정권 들어서서도 정통사극의 주류는 계속 유지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군사정권인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뒤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면서 TV 정통사극이 적은 횟수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흥행을 이어갔다. 또한 연산군, 인목대비, 장희빈, 광해군 등의 정통사극 영화와 드라마도 활발히 제작되었다.
이후 별당아씨, 달동네 등이 제작되었고 1970년대에는 정통사극이 점차 크게 유행하면서 인목대비, 상도, 이순신, 서울이여 안녕 등도 크게 유행했다. 또한 영화 쪽에서는 세종대왕, 이순신, 국회프락치 등의 장르가 영화로 많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제5공화국이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최초로 KBS 대하드라마와 MBC 공화국 시리즈, 조선왕조 5백년 등이 크게 인기를 떨쳤는데 KBS의 경우에는 대명, 풍운, 개국, 독립문 등 대하드라마 초창기 4사극이 인기를 끌었으며 연이어 MBC에서는 공화국 시리즈의 첫 번째였던 제1공화국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KBS는 새벽, 노다지, 이화, 토지, 역사는 흐른다 등을 제작했으며 MBC는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를 연속으로 작성했다.
민주화와 직선제에 이어 제6공화국인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차 퓨전사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통사극이 세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얻었는데 KBS에서는 여명의 그날이 방송되었으나 곧 중단되고 MBC에서도 여명의 눈동자가 방송되었지만 외압으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공화국 시리즈의 두번째인 제2공화국도 방송되었다. 그러나 이후 KBS에서는 왕도가 방영되면서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KBS2, SBS 등 다른 방송사로 번져나갔다. 하지만 MBC에서는 90년대 초반부터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나아갔다. 동의보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90년대에는 정통사극의 전성기였는데 파천무가 크게 유행하고 삼국기가 인기를 끌면서 정통사극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KBS1에서는 먼동과 김구를 제작, KBS2에서는 월화정통사극 시리즈였던 한명회, 장녹수, 서궁, 조광조를 제작했다. 모두 그 4사극들은 인기를 끌었다.
SBS도 모래시계를 제작했으며 연이어 장희빈도 방영했을 정도로 그 때는 사극의 전성기였다. MBC의 경우에는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정통사극의 끼가 남아있는지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이란 공화국 시리즈를 연속으로 방영했다. 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사극의 전성기는 더해진다. EBS에서도 제법 정통사극을 제작했으며, KBS 대하드라마는 찬란한 여명을 시작으로 용의 눈물과 왕과 비가 방영되면서 크게 흥행했다. SBS에서도 임꺽정과 홍길동이 방영되면서 흥행했으며 코리아게이트 역시 방영되었다. 그리고 삼김시대도 방영되면서 정통사극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2000년대 김대중 정부 때에도 사극의 전성기는 이어지는데 특히 KBS 대하드라마인 태조왕건이 크게 흥행하면서 사극은 최고 전성기를 맞는다.
연이어 KBS2에서는 전설의 고향을 끝내고 바로 수목드라마에 다시 정통사극을 방영했는데 소설 목민심서를 시작으로, 천둥소리가 방영하고 연이어 명성황후가 방영되면서 큰 흥행을 이끌었다. 반면 MBC는 거의 퓨전으로 전환했는데 허준이 대표적이며, 한 때 대왕의 길로 정통사극을 부활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퓨전사극이 점차 올라오는데 상도와 어사 박문수가 대표적인 퓨전사극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통사극은 전성기를 맞았는데 SBS 역시 여인천하를 방영하면서 크게 흥행하면서 방송 4사가 모두 정통사극의 전성기를 크게 누렸다. 물론 MBC도 이 때 홍국영과 어사박문수를 방영하면서 정통사극을 부활시키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그리고 뒤이어서는 KBS 대하드라마는 제국의 아침과 무인시대를 방영했는데 제국의 아침은 부진한 면도 있었지만 나름 의미가 있었고 무인시대도 크게 제법 시청률을 유지했다.
그리고 KBS2는 이 때 태양인 이제마를 방영하다가 이후 장희빈을 방영하는데 장희빈 역시 좋은 시청률을 거두면서 이 때는 모든 방송이 정통사극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SBS에서도 야인시대가 방영되면서 크게 흥행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정통사극이 점차 몰락의 징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는데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퓨전사극이 많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SBS의 대망도 그랬다. 그러나 여전히 정통사극은 굉장히 사극의 주류를 차지했고 SBS 왕의 여자가 시청률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근근히 정통사극은 버티고 있었으며 EBS의 역사극장이 정통사극의 맥을 유지하게 해주는데 힘이 되주기도 했다. 반면 퓨전사극은 MBC의 대장금이 크게 흥행하면서 타 방송사로 나아갈 길을 마련하였으며 이후 SBS의 장길산이 방영되면서 타 방송사에도 진출한다.
그러나 퓨전사극의 약진에 눌려있던 정통사극이 다시 부활했는데 KBS의 대하드라마에서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되어 크게 흥행하면서 정통 사극은 다시 부활을 한다. 그리고 MBC에서도 영웅시대가 방영되고 연이어 공화국 시리즈의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5공화국과 정하연 작가 작품인 신돈이 방영되고 EBS에서도 명동백작과 지금도 마로니에는 이라는 문화사 시리즈가 방영되면서 정통사극은 다시 크게 부활했다. SBS는 서동요로 퓨전사극을 계속 했다. 연이어서 KBS 대하드라마는 서울 1945로 시청률을 올렸지만 정치적 논란으로 갈등이 있었으며 이후 KBS 대하드라마는 대조영으로 다시 큰 흥행을 맞이했고 SBS는 연개소문을 방영하면서 여전히 정통사극이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MBC는 주몽과 태왕사신기를 방영하면서 아예 퓨전으로 전환했으며, KBS2도 경성스캔들을 방영하면서 퓨전으로 전환했다. 결국 대조영과 연개소문을 마지막으로 정통사극의 침체기가 시작되는데 SBS의 왕과 나는 거의 SBS의 마지막 정통사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 낮아서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배우의 연기가 살아있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정통사극은 점차 침체기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반면에 퓨전사극인 쾌도 홍길동, 최강칠우 등은 크게 유행한다. 하지만 KBS의 경우, 그래도 대왕세종만 해도 그리 큰 침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천추태후 이후로 KBS의 대하드라마는 막장으로 빠져들면서 정통사극은 크게 침체한다. 그래도 시청률이 10% 이상은 유지함으로써 정통사극은 맥을 유지했다. 반면 SBS의 서동요와 MBC의 이산이 크게 흥행하며 퓨전사극이 계속 유행, 그리고 SBS에서는 일지매, MBC에서는 선덕여왕이 유행하면서 퓨전사극은 점차 그 세를 확장해 나간다. 이후 정통사극은 크게 침체기에 빠져드는데 2010년대에 MBC의 동이가 방영되면서 퓨전사극이 점차 인기를 누린다. 그리고 시대극도 점차 SBS의 자이언트로 퓨전화된다. 반면 정통사극은 KBS 대하드라마에만 머물렀고 추노 역시 퓨전사극에 해당되었다. 이후 거상 김만덕, 전우, 명가, 자유인 이회영 등 단편사극들을 방영하면서 정통사극은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이후 삼국 군주 시리즈로 정통사극을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는 듯, 근초고왕과 광개토태왕이 제작되면서 정통사극이 부활되는 듯 했지만 막장이 더욱 심해지면서 정통사극의 막장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제법 있었을 만큼 정통사극의 영향력은 근근히 살아있는 정도였다.
그것을 틈타서 KBS2는 성균관 스캔들과 공주의 남자, SBS는 무사 백동수와 뿌리깊은 나무, MBC는 짝패를 제작하며 퓨전사극을 계속 확장했고 해를 품은 달로 퓨전사극은 크게 인기를 끈다. 그리고 정통사극은 점차 몰락해 가는 듯 하다가 2012년에 KBS1에서 대왕의 꿈을 방영하면서 막장을 벗어날 뻔 했지만 대왕의 꿈은 시청률이 한 자리 수에 머무르며 그나마 근근히 유지하던 정통사극을 더더욱 침체시켰으며 대하드라마를 완전 막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하사극은 주로 장노년층이나 보는 드라마가 되었다. 반면 SBS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 대풍수를 제작하고 KBS2는 천명과 전우치, 각시탈 등의 사극을 제작, MBC는 아랑사또전이나 마의, 구가의 서, 불의 여신 정이 등의 퓨전사극을 연속적으로 제작하면서 퓨전사극이 전성기가 되는 시기가 다가와 버렸다. 그래도 한 때 JTBC에서 정하연 작가의 인수대비가 방영되면서 제법 시청률을 높이고,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을 방영하면서 정통사극은 그나마 숨쉴 수 있는 기반을 여전히 마련할 정도였다. 그러다 2014년에 KBS 대하드라마에서 정도전이 방영되면서 다시 시청률이 높아지고 대하드라마의 영향력이 회복되었으며 정통사극의 영향력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하드라마 막장성으로 인해 제작비가 줄고 정통사극의 횟수가 줄어드는 등 큰 수난을 겪었으며 이후에는 퓨전사극이 유행해서 SBS 비밀의 문과 KBS2 조선총잡이와 왕의얼굴, TV조선의 불꽃속으로 등의 퓨전사극이 다시 전성기를 떨쳤다. 그나마 2015년에 KBS에서 징비록이 방영되면서 정통사극의 영향력이 다시 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근근히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 반면에 퓨전사극은 장사의 신 객주 2015와 육룡이 나르샤, 화정 등이 연이어 방영하면서 영향력을 더더욱 넓게 떨쳤고 2016년에 KBS에서 방영한 장영실은 더더욱 회차가 축소되며 다시 정통사극의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반면 퓨전사극은 하녀들, 마녀보감 등으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으며 마의, 옥중화 등의 이병훈 사극도 퓨전사극에 해당되었다. 퓨전사극은 더더욱 인기를 떨쳐나갔지만 정통사극은 계속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2017년 방영예정이던 다산 정약용이 취소되면서 잠정 중단이 또 됨에 따라 정통사극은 현재 완전히 몰락해서 잠수를 탄 상태이다. 반면 퓨전사극은 구르미 그린 달빛과 화랑, 왕은 사랑한다, 7일의 왕비, 군주 등이 방영되면서 크게 세력을 떨쳐나갔다. 다만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 방영되면서 어느정도 약간 세력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주로 배우들은 정통사극에는 중견 배우들과 원로 배우들이 차지하고 있는 형태이면, 퓨전 사극은 젊은 배우들이 차지하고 있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통사극이 전성기이던 시절에는 한범희, 김명수, 박철호, 전현, 안성민, 황덕재, 안재모, 정보석, 김주승 같은 젊은 배우들도 적지않게 발굴되었다.
한 때 영화 쪽에서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과 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와 1987이 크게 흥행을 거두면서 정통사극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듯 싶었지만 2018년에 터진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 에 중견배우들이 일부 연루됨으로 인해 정통사극은 다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그 뒤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이 결합한 대군-사랑을 그리다로 정통사극의 재기를 시도해봐서 성공하는 듯 했지만, 높은 제작비와 침체된 수익률로 인해 현재는 정통사극을 제작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그 뿐이 아니다. 2017년까지는 그래도 꾸준히 방영되던 퓨전사극마저도 인기가 식어내렸다. 그 뿐 아니라 2018년에는 미스터 션샤인, 백일의 낭군님 등을 빼면 사극이 부진하다. 게다가 2018년부터 시작된 지상파방송의 추락은 사극 방영 가능성을 점점 떨어뜨렸다고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2019년에 다시 KBS1에서 김원봉 관련 대하드라마가 부활할 예정이라 정통사극이 아직까지는 침체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결국 KBS1에서도 대하드라마 부활을 포기하고 대신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특집드라마 형식으로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이 들어서면서 해치, 이몽, 녹두꽃, 나의나라, 아스달연대기, 간택 등이 방영되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사극의 인기는 줄어든 셈이다. 2020년에는 바람과 구름과 비가 방영되었다.
100% 사실에 가까운 사극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상의 인물이나 허구의 이야기를 넣을 수 밖에 없는데 이건 정통사극도 마찬가지다. 야인시대의 금강, 영웅시대의 소선, 대조영의 부기원, 정도전의 양지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따라서 퓨전이냐 정통이냐의 구분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보통 KBS1에서 하는 대하드라마는 정통사극이고 MBC, SBS에서 하면 퓨전사극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대왕의 꿈에서 문무왕과 연화의 로맨스를 보면 정통사극을 표방하기엔 괴리감이 있다. 선굵은 드라마 집필로 유명한 이환경 작가가 최전성기인 90년대에 주몽 대본을 썼더라도 사료 부족으로 인해 퓨전화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의 차이점이 상당히 많은데, 정통사극은 그 사극이 조명하는 시대의 정치,경제,외교,군사,국방,안보,문화,교육, 언론, 법률, 사법 등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경향이 있고, 뿐만 아니라 정통사극은 그 시대의 정치논쟁이나 전투씬, 그리고 파벌투쟁을 제대로 다룬다. 또한 그 시대의 경제나 외교안보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름 정통사극은 사료를 참조하고, 실존인물들이 그대로 나오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정통사극은 그 시대의 정치인, 관료, 판검사, 군인, 언론인, 법조인, 변호사, 기업인 등이 주역 노릇을 한다. 또한 정통사극의 경우는 그 시대의 정치인 외의 직업군들이 나오기는 해도 정치인의 보조도구 역할만 한다. 또한 정통사극은 선악구분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반면 퓨전사극에서는 정통사극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를 다루는 경우가 많고, 로맨스가 상당히 많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그 시대의 정치인 외의 직업군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며, 가상인물들이 나오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한 사료를 참조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한 정통사극은 주인공이 악역으로 나오고 상대가 선역으로 나오는 피카레스크를 참조하는 경우도 많은 반면에, 퓨전사극은 주인공이 선역, 상대가 악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뚜렷하다.
그리고 퓨전사극이나 현대극이 대부분 해피엔딩 또는 굿엔딩으로 끝나는 것에 비해서 정통사극은 대부분 새드엔딩으로 끝난다는 것도 퓨전사극과 정통사극의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2.2. 사극의 트렌디화
2000년대 초중반경까지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 일부 시기는 구당서나 임진왜란기 일본 기록 등 해외기록까지 사극 각본의 주요 원전이 될 사서들을 지금처럼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손쉽게, 현대어로 번역된 자료를 얻기 힘들었다. 즉 정통사극 전성시대의 이환경, 신봉승, 유동윤 등 작가들은 한문 원전을 바로 읽을 수 있는 능력자가 많았고, 사극 작가라는 분야는 거의 학자에 준하는 전문성이 필요해 가볍게 시도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번역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젊은 작가, 기존에 현대극을 쓰던 작가들이 사극시장으로 대거 새로 유입돼 트렌디한 퓨전 사극 시장이 급성장하게 된다.
과거 사극도 결코 서적을 통한 재현과 드라마를 위한 역사적 사실의 일부 수정 등 고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래도 일단 실제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소재이자 곧 주제였고,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게다가 조선왕조실록같은 기록문서들이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광해군 1년인 1609년에 일어난 강원도 미확인비행물체 출현사건이었고 이를 근간으로 종전의 히트작인 별에서 온 그대가 제작, 방영된 것.
하지만 《대장금》을 비롯하여, 2009년의 《선덕여왕》, 2012년의 《해를 품은 달》 등 역사적 사실보다는 캐릭터성에 기반한 시나리오가 등장하며, 역사적인 배경은 설정 정도의 위치로 물러나게 된다. 여기에 연애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작가들이 대거 투입되며, 배우 또한 선이 굵은 배우보다는 젊은 여성층에게 인기있는 선이 가늘고 여린 배우나 아이돌들이 투입되게 된다.어쨌든 캐릭터성에 의존해서 간지러운 연애극을 찍으며 아이돌 예능 보듯이 시나리오를 짜니 역사 덕후는 물론 기존의 사극 시청자들은 뒷목을 잡는 중. 나라가 뒤바뀔 정도의 사건이 십대의 연애 싸움으로 포장되는건 다반사다. 대사도 하오체가 아니라 고하를 막론하고 평어체로 말해서 "이건 옷만 바꿔입은 현대 멜로물이지 사극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듣는 지경.
물론 이런 사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설정 정도로 물러나고, 대신 캐릭터성에 의존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드라마들도 있다. 《대장금》이나 《선덕여왕》, 《추노》처럼 좋은 평가를 받은 드라마도 있으며, 《공주의 남자》처럼 퓨전사극임에도 정통 사극을 자처하는 것들보다 역사적 인물에 묘사가 충실하다는 평을 받은 드라마도 있다. 《해를 품은 달》처럼 배경만 조선이지 명백히 가공 인물이 주인공인 가상의 설정이라면 굳이 고증 여부도 세세히 따지진 않는다.
사실 기존의 사극은 신세대들이 보기에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가 있어서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추다보니 트렌디화와 재해석이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요즘은 판타지를 결합한 판타지 사극들도 등장하는 중.
역사적 배경을 설정으로 넣고, 새롭게 창조된, 혹은 재해석된 인물들로 트렌디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창작을 넣더라도 역사적인 큰 틀은 변경하지만 않으면[1] 역사왜곡이라고 까이진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그 중심인물들을 왜곡하며 사극이라고 장난질을 하는 것. 정통 사극보다는 현대적인 트렌디 드라마에 익숙한 젊은 여성 시청자층을 '쉽게' 공략하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2] 또한 특히 그 역사왜곡과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큰 문제이다. 뭐 사실 이러한 문제는 퓨전 사극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퓨전사극은 대부분 거시적 고증에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특정 시대를 다룬다면 그 시대에 걸맞는 소품과 복식, 배경을 갖추어야 사극이라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3]
3. 특징
3.1. 고질적인 문제점
현재 한국내에서 창작되고 있는 사극에 대해서 사극으로서 갖추어야 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찰 또는 극으로서 지녀야 할 연출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고증과 관련된 부분에서부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오류나 과도한 영웅주의까지 다양하다.
3.1.1. 시대에 맞지 않는 소품
고증 관련해서는 당대에 등장할 수 없는 물건이 등장하거나, 당대의 문화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면 등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조선시대 병사들이 갑주를 입고 다녔음에도 항상 추레한 포졸복만 입고 다니고, 조총이 주력인 시기에 하나같이 활만 쏘고, 환도라는 군졸의 보편적 부무장의 자리를 생뚱맞게 당파가 차지해서는 용도고 뭐고 당파들고 닥돌하다 죽는 건 그야말로 고질적인 문제. 이는 과거 사극을 찍을 때 만들어둔 당파가 워낙에 재고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사실 조총을 위시한 화승총에서도 격발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요소가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법률 상 그러한 점까지 고증하라는 것은 사치를 넘어 불가능에 가깝다.
정작 훨씬 과거 시대인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병사들은 잘만 갑옷을 입고 다닌다. 이는 삼국시대가 한창 정복전쟁이 활발하던 시대였고 고려는 삼국 중에서도 특히 정복전쟁으로 유명한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를 표방했던 만큼 조선시대에 비해서 군사적인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중에는 조선 시대를 다룬 사극들에서 갑주를 입은 병사들이 나오곤 한다. 물론 모든 병사들이 갑옷을 제대로 입고 나오는 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고증오류다. 전근대의 어떤 국가도 모든 병사들이 갑옷을 입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고증오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조선시대에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있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임에도 전혀 등장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 서술은 조총이 쓰이는 시기에 활과 당파를 쓰는 것 자체를 문제삼고 있었는데, 조선은 제반 사정상 후기까지 쭉 궁시(弓矢)를 포기하지 않고 살수(殺手, 단병전 병사)/포수(砲手, 조총과 총통을 다루는 병사)/사수(射手, 궁시를 쓰는 병사)의 3수병 체제를 유지했다. 또 당파는 임진왜란 이후에 명을 통해 전수받은 물건이라 조총보다 오히려 늦게 자리잡았다. 따라서 조총과 궁시, 당파가 한 시대에 쓰이는 건 옳은 고증이다. 다만 궁시는 어디까지나 주력인 조총의 보조역이었으며, 당파는 상대의 장병(長柄) 무기를 걸어 눌러서 제압하는(+화전의 발사대를 겸하는) 병기였지 직접 찌르고 베는 무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진과 대오를 갖춰 연계할 수 있는 다른 병종이 있을 때 제 위력을 냈으며, 무기 자체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고 완력과 담력도 좋아야 했기에 아무나 쓸 수 있는 무기도 아니었다. 진도 안 짜고 우르르 몰려나가 손에 든 거 휘두르는 사극 속 오합지졸은 당파가 있어봤자 제 쓰임을 못 낸다.
이 문제는 2000년대 후반 들어서 해결되는 기미가 보이나 싶더니 이번에는 중세 유럽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갑옷이 등장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덕분에 같은 시기 혹은 비슷한 시기를 다룬 사극에서조차 방송국에 따라 갑옷 및 복식 등이 완전히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한류 열풍에 따라 주 수용층인 해외 여성들에게 깊은인상을 주기 위해서인지, 2017년 드라마 '군주 - 가면의 주인'에서는 조선시대 왕자가 익선관과 푸른 용포에 오페라의 유령 가면 비슷한 것을 쓰고 나왔다. 고려시대 회상 장면 비중이 높은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는 고려군의 갑옷 고증은 말할 것도 없고, 고대 그리스풍의 투구를 쓰고 나오는 등장인물(밀언-강림)도 있다. 역사적 사실에 초점을 둔 작품이 아니긴 하지만 그 투구와 여진어를 성조없는 한국식 억양의 현대 중국어(...)로 표현한 것은 심했다는 평가. 이는 고증보다는 현대의 서구적인 미적 요소를 삽입하다보니 생기는 특징으로 여겨진다.
3.1.2. 가상인물의 난립과 역사왜곡
사건 또는 인물에 대한 오류로는 있어야 할 인물이 안 나오거나 비중이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이 나오는 경우(육룡이 나르샤 등), 죽어야 할 인물이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경우[4] , 더 후세의 인물이 이상하게 꼬여서 나오는 경우나[5] 극의 갈등이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역사적 인물을 왜곡에 가까울 정도로 재해석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광해군, 《조선왕조오백년》의 인조임금과 《불멸의 이순신》의 원균과 일본 측 인물 전원이나 《장희빈》의 송시열과 《명성황후》와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명성황후 민씨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김춘택은 《동이》에서는 '''이름까지 심운택으로 바뀌어 등장'''한다.[6]
다만, 사극에 너무 엄격한 고증의 잣대를 대는 것도 문제가 있다. 애초에 사극은 픽션이지 다큐가 아니며, 다른 해석방향으로 이해할만한 내용이라는 것도 결국 다큐의 관점에서나 적용되는 문제이다. 설사 사극이 광범위한 고증오류를 보여준다 해도, 픽션의 특성을 제대로만 이어간다면 크게 문제될 소지는 없다. 상기한 유의태가 스승으로 등장하는 허준이나, 명성황후가 주인공이니 명성황후가 미화되는 드라마도 픽션의 영역에서 수용될 요소들이다. 이미 광범위한 고증오류를 내포했으나, 픽션으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같은 전례가 있다. 삼국지 연의의 고증오류는 셀 수 없이 지적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걸 가지고 문제로 삼지를 않는다. 사실 이런 한국사극의 고증오류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시청자가 사극을 '''픽션'''이 아닌 '''다큐'''로 이해한다는 것이 문제이지 사극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3.1.3. 기획의도와의 불일치
또한 극 전개를 위해 안이하게 가상의 러브라인을 너무 많이 차용한다. 극 전개라기보다는 한국에서 먹히는 게 이런 멜로계열의 드라마다 보니 시청률을 위해 그런 측면이 크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생긴 대립이 그냥 질투 때문에 그랬다는 식으로 폄하되기 일쑤. (해신이나 불멸의 이순신 등.) 나아가 스토리가 중구난방으로 가는것도 다반사이며 나중에는 이게 지나친 나머지, 정복군주의 이야기를 그린다거나 하는 당초의 기획의도는 어디로 가고, 전쟁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왕실 집안의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다거나, 그 극단적인 반대로도 간다. 당연히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3.1.4. 형편 없는 전투씬
[image]
기황후 장면 중에서 원나라의 수도 대도를 공격하는 당기세의 군. 문단의 내용은 형편없는 전투씬이지만 해당 사진은 대도의 모습도 완전히 잘못 만들었다.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원대의 수도인 대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금방 나온다. 이건뭐 중국 성도 아니고 한국 성도 아닌 끔찍한 혼종이다.
전투씬 규모가 터무니 없이 작으며, 이마저도 동네 양아치들 패싸움 수준으로 묘사했다. CG로 때워도 CG가 형편 없고, 전부 CG라는게 티가 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수준이다. 이건 예산 문제가 아니라 제작진이 '''무능'''하다고 보는게 옳다. 예산 문제면, 태조 왕건, 무인시대와 정도전은 어떻게 설명할텐가? 저 세 작품은 전투씬 자체에 나온 인력이 적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 작품의 전투씬이 형편 없다는 평을 들었던가? 오히려 괜찮은 편이라는 평을 받았다.
예를 들어 태조 왕건에서 왕건 최대의 위기이자 대패인 공산 전투는 3회에 걸쳐 나왔는데 직접 이끈 고려군 정예부대가 매복하고 있던 견훤의 백제군에 괴멸당하고 신숭겸을 잃으면서 처절하게 도주하는 상황을 실감나게 연출했고, 정도전에서 이성계의 원정군이 고려 조정으로 들이닥쳐 벌어진 시가전은 박력있게 연출됐다. 그러나 때깔과 박력 면에서는 개선되었으나, 이 작품들도 기본적으로 패싸움식 난전이라는 한국 사극 전투묘사의 고질적인 약점은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SBS나 MBC에 비해 KBS는 확실히 낫다. 실제로 드라마 대조영의 안시성 전투씬을 비롯해 위에서 언급된 드라마들도 다 KBS작이다.
우습게도 80년대 MBC 사극드라마인 조선왕조 500년과 임진왜란 같은 경우는 전투씬이 요즘 드라마보단 나았다. 수천여명의 엑스트라 동원하고 폭발씬이나 여러 모로 훨씬 돈 더 들인 흔적이 보였다는 점. 물론 당시 인건비가 지금보다 저렴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인건비만을 탓하기에 앞서 주연배우들의 지나친 출연료도 한몫을 한다고 봐야한다.
3.1.5. 총평
물론 비판을 통해서 올바른 역사 지식과 역사관을 전달하고 사극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나치게 원론적인 선에서 머무른 도를 넘은 비난은 옳지 못할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카테고리의 문제나[7] , 현재와 과거의 역사 연구 성과 차이로 인한 오류[8] , 고증을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묘사에 대해서는 극적인 허용으로 보아야 할 것도 있지만, 이후 문제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역시 수정해야 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3.2. 한국 사극의 클리셰
3.2.1. 주인공은 선인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은 선하기만 하고 고결한 인물인데, 이러다 보니 시청자들이 오히려 주인공의 주적을 더 매력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태조 왕건》에서 주인공은 왕건이었지만,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끈 캐릭터는 왕건이 아닌 견훤과 궁예였다. 이는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도 그랬고, 한참 후인 2010년대에도 궁예나 견훤은 인터넷 밈으로 종종 쓰일 정도지만 왕건은 그런게 없을 정도로 인기가 여전히 둘에 비해 낮다.[9] 대조영 역시도 대조영보다는 설인귀가 인기가 높았다.
견훤은 출중한 영웅의 기질과 다혈질적인 성격의 장단점을 흥미롭게 묘사하면서 막장드라마 같은 가정사와 후계자를 두고 벌어진 내부 갈등 같이 입체적인 면으로, 궁예는 재해석을 통해 자신의 불우한 과거에 대한 보상을 스스로 얻어내겠다는 욕망을 내면에 감추고 억누르면서도 진심으로 백성들을 구하려고 노력하던 영민한 군주에서 권력의 단맛과 허황된 목적에 취의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면서 서서히 광기에 찬 폭군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며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었다. 반면 왕건은 그냥 선하고 고결하게 나오고, 후계자 문제는 짧게 지나가고 내부 갈등도 선의에서 나온 갈등으로만 그려졌다. 그나마 배신한 호족들의 가족들을 학살할 때는 냉혈한처럼 묘사되어 궁예와 겹쳐보인다 할 정도였지만 이때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시청자들은 배우 김영철, 서인석의 열연까지 더해져 정말로 진짜 역사인물이 화면에 나와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 카리스마와 성격적인 장단점을 여과없이 드러낸 궁예와 견훤을 매력적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클리셰를 따라가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용의 눈물》과 《무인시대》, 《정도전》, 《황산벌》이 대표적이다. 《용의 눈물》의 전반기 주인공인 이성계는 불세출의 장군이자 호걸이지만 조선 건국과 그 이후에 보여준 행보들을 미화 없이 장단점을 그대로 보여줬으며, 최후를 다룰 때는 그 역시 자신의 야망을 위해 여러 사람을 희생시키고 원한을 산 인간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용의 눈물 전체의 진 주인공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객관적으로 묘사했고, 그의 권력욕과 냉혹함, 호색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옥좌에 오른 뒤 외척들이나 공신들을 숙청하는 대목도 태종 스스로 어거지로 사람을 잡는 거라고 인정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졌으며, 심지어 태조실록을 편찬하고 고려사를 개수하는 장면에서는 역사왜곡을 지시하는 장면까지 있다.
《무인시대》는 아예 주인공 5인 중 4명은 권력에 의해 타락한 무인들이며[10] , 나머지 1명은 타락한 악인은 아니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한계에 부딪쳐 발버둥치다 비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정도전》의 경우 주인공을 개혁가로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로 정도전의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부분들을 그려냈다.[11] 《황산벌》의 경우 한국 사극에 만연한 민족주의와 영웅사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또한 계백은 가족들이 당할 수모를 면하게 해주기 위해서라지만 직접 가족들을 죽였고,[12] 김유신은 병사들의 독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화랑들을 자살돌격을 시켜 죽음으로 내몰아 둘 다 선인과는 거리가 먼 냉정하고 현실적인 지휘관의 모습으로 나온다. 후속작인 평양성에서도 주인공인 거시기는 선악의 구분 없이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는 평범한 병졸이며, 김유신도 전작보단 둥근 면이 있지만 여전히 냉정한 지휘관으로 나온다. 고구려 측 주인공인 연남건 또한 호탕한 애국자이긴 하지만 선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는 《주몽》의 소서노와 《천추태후》의 천추태후, 《근초고왕》의 근초고왕과 《기황후》의 기승냥. 사실 기황후의 기승냥은 그냥 역사왜곡이다.
사실 주인공을 선인으로 묘사할 경우 정말로 역사적으로 선한 인물이었다면 선하게 묘사하되 인간적인 단점들도 보여주며 그것을 극복하거나 성장해가는 모습을 미화나 왜곡없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게 묘사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악인형 주인공이라고 무조건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냥 악인이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면 삼류악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묘사를 얼마나 설득력있게 풀어주느냐가 핵심이기도 하다.
3.2.2. 적은 전부 악인
적대인물의 역사적 의의는 무시되고, 무조건 극악무도한 나쁜 인물로 묘사된다. 게다가 그 방법이 지극히 유치해서 실소를 금치 못할 때가 있다. 특히 이병훈 사극이 그렇다.
이를테면 정순왕후 김씨 같은 경우,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론 딱히 악역이라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정조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을 보면 상당한 경우 100% 악역으로 등장한다. 이렇다 보니 사극에서 매력적이고 이중적인 면모를 가진 악역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처음에 나빠보이는 놈이면 그냥 나쁜 놈.
이에 대한 몇 안되는 예외가 김영현#s-2 작가인데, 선덕여왕의 미실 등 그가 맡은 대부분 드라마에서 악역을 입체적, 매력적으로 그리려는 성향이 강하다.( )
그리고 KBS 대하드라마 중에서도 이런 클리셰를 나름대로 벗어난 작품들이 있다. 대조영의 경우 설인귀, 이해고, 측천무후 등 적대 세력 주요 인물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설인귀의 경우 주인공 대조영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태조 왕건 역시도 선술했듯 궁예나 견훤이 왕건보다 인기가 좋았다. 정도전에서도 이인임이 드라마 초반 인기에 기여할 정도로 매력적인 악역으로써 호평받았고, 그 외에도 정도전의 대업에 반대하던 정몽주 및 온건파 사대부들, 신권 중심 체제에 반대하던 이방원 등을 단순히 악인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꽤나 입체적인 인물들로 표현하였다.
3.2.3. 주인공의 고난
물론 주인공이 고난을 겪는 것이야 극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시대와 고증을 무시하여 비정상적인 고난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거의 찌질이가 돼버리거나 명예훼손을 겪을 정도다. 한국 사극은 정도가 너무 심해서 거의 마조히즘 수준이다.
《해신》에서 '주인공의 노예 체험'이 시작됐는데 사실 장보고는 기록상으로도 매우 한미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소싯적에 노예체험을 잠깐 시켜도 역사적으로도 그리 억지가 아니었는데, 이 클리셰가 일반화되면서 엄연히 금수저 물고 태어났을 사람들까지 자꾸 초반에 노예 체험을 필수요소마냥 겪는데, 천민의 설움 및 밑바닥 인생도 경험해봐서 아는 지도자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이다. 정작 웃기는 건 진짜로 어렸을 때 밑바닥으로 떨어져 고난을 겪다가, 훗날 대성한 미천왕, 고려 현종 같은 케이스는 인지도의 미비 때문인지 다루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발해 선왕처럼 실제로도 고난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조차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 외에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역적 가문이라는 고증에도 맞지 않는 고난을 덮어씌운 것이 대표적이다. 이순신의 가문인 덕수 이씨는 이순신과 이이의 등장 이전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일반적인 양반 집안이었으나 이순신과 이이 이후로 명문가로 자리잡은 가문이다.《광개토태왕》에서 있지도 않은 형 담망과의 왕위 계승 논란과 역시 지겹도록 우려먹는 국상 일당의 반란도 있다. 《선덕여왕》의 경우 선덕여왕이 자신을 죽이려는 칠숙을 피해 몽골 근처의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도망치며 온갖 고생을 하는가 하면 그 실크로드에서 로마 사람을 만나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물론 그러지 않은 드라마들도 있는데, 해신 방영하기 이전의 태조 왕건의 경우 왕건은 금수저로 별다른 고난 없이 성장했고, 그나마 궁예가 어릴 적에 신라의 왕자에서 세달사의 중이 되는 과정에 고난을 겪긴 했지만 승려 생활은 아주 짧게 다룬 데다[13] 삼국사기 궁예 열전에 나온 만큼 역사왜곡이라 할 수는 없다.
3.3. 한국 사극의 고증무시 사례 및 암묵의 룰
3.3.1. 각본 연출 관련
3.3.1.1. '''전쟁'''
- 개인이 수천 단위로 죽어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까지도 손쉽게 멸망당할 전쟁이 사극에서는 높으신 분들의 서바이벌 게임이다.[14] 이런 경향은 특히 고대사 사극에서 심한 편인데, 단순히 조연들의 분노나 라이벌 의식으로 가볍게 전쟁이 벌어지는 일도 다반사이다. 물론 인류 역사상 라이벌 의식이 발단이 된 전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었음에도 쏙 빼놓는건 비판받아 마땅하다.[15]
- 전쟁이 중심이 되는 사극에서는 시기적 문제를 넘어서 그림이 되는 전쟁 장면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기록은 무시하고 역사서를 새로 쓰는 한이 있더라도 전투장면은 넣고 본다. 가령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두 드라마인 《연개소문》의 살수대첩과 《대조영》에서의 안시성 전투는 나올 이유가 없었지만 극 초반에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집어넣었다. 《광개토태왕》의 서막을 장식한 요동성 전투의 경우는 시대 배경, 공간 배경, 등장인물을 싸그리 씹어먹은 대표적인 경우인데, 아예 공격측과 수비측의 자리를 바꾸었다.
- 주인공이 어려운 싸움에 출전하기 전에 연설할 때는 "가기 싫으면 안 가도 좋다"고 외치지만 휘하 장졸들 중 단 한명도 이탈하는 사람은 없다. 한술 더 떠서 사지로 간다고 알려주면서 가기 싫으면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거나 아예 나를 따르려거든 유지를 남겨라고 엄포를 놓아도 변함이 없다. 충성심을 확인하는 차원이라지만 직속 부장이나 개인 사병들은 몰라도 일반 병사들에게 이러면 죄다 이탈한다.[16] 물론 그 싸움은 90%의 확률로 대승을 거둔다.
- 전투는 무조건 백병전. 진법 전술 그딴거 없다. 정말로 가뭄에 콩 나듯 한두번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보여주기식으로 방진짜서 한번 충돌한 다음 곧바로 적군 아군 할거없이 뒤엉켜서 패싸움을 벌인다. 활이랑 총, 화포 등등이 나와도 역시 몇번 쏜 다음 바로 우당탕. 보통 공격측이 돌격하고 수비측은 적당히 쏘다가 맞 돌격하는 형식으로 달려가다 화살에 맞건 말건 상대한테 먼저 붙는 게 중요하다. 한국 사극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제작비 및 인원 부족을 변명으로 할 수도 없는 게 비슷한 조건에서도 제대로 된 전투를 보여준 사극도 있었기 때문이다.
- 특정 맹수나 비기 등이 사기적으로 나온다. 일례로 천추태후 1화에서는 거란군이 초원에 전투용으로 훈련시킨 곰들을 몇 마리 풀었더니 고려 기병 전체가 우왕좌왕하다가 거의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심하면 군사 훈련으로 사냥을 하던 시절에 엘리트 부대라고 할 수 있는 기병대가 이런다면 군대라기보단 마적 떼에 가깝다.
- 장군은 항상 앞장선다. 행군 시에는 무조건 선두에 서서 병력들을 직접 인솔하는데, 왕명을 받고 출정식을 할 때면 몰라도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전장에서까지 이 짓을 한다. 싸움에도 직접 참가하는데 말단 장교도 아니고 최고 지휘관이 앞에서 칼질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정신나간 상황이다.[17] 사기 증진을 위해서 그랬다 쳐도 말단 장교가 아닌 지휘관이 직접 저 짓을 한다는건 이미 진 싸움이거나 지휘관이 병사들을 이끌지 않으면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상황이다.[18]
- 그래서인지 장수는 공격력도 맷집도 일반병과는 다르다. 졸병 하나를 잡는 데는 칼질 한번이나 화살 하나로 충분하지만 장군을 잡을 때에는 칼빵이나 화살빵을 최소 열 번은 넣어야 한다. 그냥 검 하나만 든 장수가 창 든 병사 여럿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데, 일일이 칼 부딪히며 싸우는 것은 장수가 아니다. 그냥 한 번에 몇 명씩 베어야 한다. 괜히 몸을 한 바퀴 돌리면서 상대방을 베고 상대방 역시 몸을 돌리면서 쓰러지는 것이 포인트. 철갑옷을 입었건 가죽 갑옷을 입었건 주인공의 횡베기에는 자비가 없다.
- 주인공 및 주연급은 일당백이다. 사극을 보다보면 장수나 왕은 적진에서 무쌍난무하고, 졸개들은 그냥 칼이나 창만 들고 있다가 죽는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다 폼생폼사라서 투구나 방패같은 거추장스러운 건 집어치우고 칼 한자루만 꼬나쥐었는데도 수십명이 넘는 중무장한 적병들을 상처 하나없이 썰어넘기는 신기를 보인다. 적병들이 주인공에 대한 예우를 어찌나 철저히 해주는지, 어떤 상황에서든 비겁하게 한꺼번에 덤비지 않고 1:1로 덤벼주는 것은 덤이다. 단, 주인공의 힘을 부각하기 위해서나 장수가 죽을 때의 연출은 일대 다수이다.
- 수성전 시 장수는 총지휘관이건 아니건 모두 '문루에 서서' 지시를 한다. 이건 최일선에서 나가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장소만 성곽이지 지휘관이 백병전에 참가해 투닥투닥댄다.
- 전투신 찍을 때 전사자 수를 너무 과장해서 늘린다. 한 예로 찬란한 여명의 신미양요, 병인양요 장면에서 조선군이 미군, 프랑스군과 대등하게 싸운 것처럼 묘사해 역사적으로 막강했던 두나라 군대가 화력으로 열세였던 조선군의 화승총과 대포에 수십 명씩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19] 2014년 최대 흥행작 《명량》에선 무리하게 백병전을 넣어서[20] 조선군 대장선 희생자가 많았던 것으로 묘사해 이순신장군의 명량해전 전공을 왜곡해버렸다.[21] 이쪽은 고증오류이긴 한데 《징비록》에선 탄금대 전투의 실제 왜군 사상자는 150여 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왜군이 병력의 반을 잃었다고 설명한다.
- 검이든 화살이든 복부만 피격 당한다. 근접 무술의 경우 자기가 다른 사람의 복부를 공격한다는 것은 동시에 자기의 복부도 공격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공격 당하지 않을 상황에서만 상대의 복부를 노리는 게 정상이다. 자신의 방어를 위해서 상대의 몸체에서 돌출된 팔을 우선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병기술의 기본인데 한국 사극에서는 팔을 피격 당하는 일도 없고 팔이 잘리는 일도 없다. 화살이나 총을 쓰는 사수들의 경우 가급적 몸을 낮추거나 벽, 방패 등 엄폐물에 숨기고 얼굴과 팔만 약간 드러내서 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사수들은 복부에 투사체를 맞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안구, 얼굴, 팔, 손, 목에 관통 당했지만 한국 사극에서는 찾기 어려운 장면이다.[22] 연출을 위해서는 엑스트라들이 칼빵을 맞을 때 최대한 요란하게 쓰러져야 하는데, 겨우 팔 스쳤다고 몸이 360도 돌아가진 않을 것이니 가급적 몸통이 피격당해야 어울릴 것이다. 화살 맞는 장면은 화살을 미리 꽂아놓고 카메라만 돌리거나 카메라 바로 뒤에서 초근접샷을 날려 촬영한 뒤 적당히 편집하는데, 이 역시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복부나 가슴이 적절할 것이다. [23]
- 예산 문제로 인해 수만의 대군이 부딪히는 장엄한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화면 상에는 수십 명 정도가 패싸움하는 수준으로 연출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비슷한 수의 출연자들을 데려다 놨는데 어디 방송사는 뒷배경에 깃발을 채우고 CG를 덧붙이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연출하지만 모 방송사는 몇천 군사가 있는 이쪽팀이나 대군을 끌고왔다는 저쪽팀이 꼴랑 몇십명만 데리고 허허벌판에 서 있어서 다 뽀록나는 걸 보면 그냥 제작진의 역량 문제다. 극단적으로는 2만 군사의 보급 부대가 수레 4대랑 병사 7명으로 구성된 촌극도 일어난다. 여기서 나온 게 유명한 식권 2만장 드립.
- 야간 전투가 많다. 배경이 어두우면 적은 인원인게 티가 덜 나며 소품 몇개 태워먹으면 아무리 발로 찍어도 화면이 꽉 찬다. 당연히 화살은 불화살.
- 상당수의 장수들이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투구를 잘 쓰지 않는다. 주연급은 그냥 안 쓴다고 봐도 무방한데 해당 배우를 캐스팅하는데 얼마를 들였는지를 생각해보면 투구는 주인공 얼굴을 가리는 장애물일 뿐이다.[24] 반대로 졸병들은 동네 농민군이 아니고서야 100% 풀세트 착용.
- 무장이 과거 군제에 맞지 않다. 빈말 아니고 거의 대부분의 장수와 병사들이 칼만 들고 싸운다. 로마제국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검은 전쟁터의 주요 무기가 아니었다. 설령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난전 상황이며, 진형을 갖추고 싸울 때에는 방패를 같이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잡졸들까지도 검을 들고 싸우는 것과 달리 칼과 방패를 든 병사는 상당한 정예병에 속하며, 대부분의 병사들은 창을 쥐어주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 사극은 이게 너무 심해서 창은 거의 장식품에 가깝고 대부분의 전투씬을 칼싸움으로 만들어버린다. 멀쩡하게 창들고 있던 병사가 갑자기 교전이 벌어지자 창은 사라지고 칼들고 싸우고 있다.
3.3.1.2. '''정치/외교'''
- 왕의 견해가 마음에 안 들면 논리적 설득 없이 일단 "아니되옵니다"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시전한다. 신하의 잘못이 드러나 왕이 꾸짖으면 "소신을 죽여 주십시오"가 자동으로 나와야 하지만 물론 죽고 싶어하는 신하는 한 명도 없다. 여기서 더 나가면 왕이 펄펄 뛰면서 죽여달래서 죽여준다고 하고 신하는 5초만에 생각이 바뀌었는지 "고정하십시오" 멘트를 친다. 또한 왕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답변으로는 만병통치약급에 해당하는 답변인 "망극하옵니다."를 남발한다. 왕이 자기 말대로 안 따라주면 지들끼리 모여서 주상이 제정신이 아니라든가 말세라는 등 왕의 뒷담화를 깐다.[25]
- 적은 무조건 악하고,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적을 베지만 아주아주 자비롭고 선량한 인물로만 그리는 '1차원식 묘사'가 너무 많다. 또한 암군이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거나, 성군이 사실은 겉만 번지르르한 막장 군주였다는 이론을 펼친다. 근거는 별로 없다. 그런 걸 새로운 해석이라고 포장할 여지도 있겠지만,[26] 새로운 해석이라는 걸 하려면 기본 사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치밀한 주장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는 없다고 해도 좋다.
- 근대적인 기준으로 선역은 자주적이다. 강대한 군사력, 대외적인 확장, 혹은 배째라 외교. 세종대왕이 명나라와 대립한다거나 선덕여왕이 신라는 여인을 왕으로 삼았기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고 한 당나라 사신을 잡아 가두기도 한다.[27]
3.3.1.3. '''아역'''
-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면서도 어린시절부터 다루는데, 본래는 그들의 역사적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어느새 주객전도가 되어서 개연성 따위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아역배우를 통해서 인기를 끌거나 실제로는 없는 드라마를 창조하기 위해서인 목적이 대부분이다. 특히 멜로라인을 어린 시절에 다 만들어버리는데, 특출나게 기록이 남아있는 조선시대 이후의 몇몇 인물들이나 기록이 상대적으로 많은 군주급 인물들 제외하면 어린 시절에 뭐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신라의 왕녀가 예언 때문에 버려져서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라며 로마 사람까지 만나는 기행을 선보이며 "그럼 궁궐에서 공주 수업 받으면서 편하게 살았다고 쓰인 책이라도 있냐?"고 우기는 식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기록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사막에서 먼 이국 사람을 만났다는 기록도 없다[28] . 게다가 이게 로맨스 RPG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 출생의 비밀은 기본 클리셰. 위의 '주인공의 고난'과 엮여서 어린 시절에 밑바닥 인생으로 굴러떨어지는 연출은 널리고 널렸다. 《선덕여왕》에서는 주인공이 아예 서역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라기도 한다.
3.3.2. 소품 연출 관련
3.3.2.1. '''복식'''
- 조연들은 그런대로 상투를 제대로 틀고 있지만, 주인공은 장발에 봉두난발이다. 봉두난발은 천민들이나 하고 다니는 머리스타일이었고, 더욱이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윤기가 흐르는 생머리는 없었다. (물론 저 윤기는 가발을 쓴 거라 그렇다는 변명은 되지만) 혼인을 안 하면 상투를 틀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정작 미혼 남성이 트는 총각머리나 떠꺼머리는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한 쌍상투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29]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상투에 장발이라는 해괴한 스타일도 나온다. 이건 머리숱이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다.[30]
- 조선시대 내시는 항상 초록 단령에 뿔 없는 사모라는 해괴한 차림으로 나온다. 구한말 사진이나 남아있는 초상화 등을 보면 내시의 관복과 일반 관리의 관복은 다르지 않았다.
- 조선시대 사극에서 귀고리를 착용하지 않는다. 원래 한복은 저고리, 바지, 귀고리, 건이나 갓 등의 모자류가 기본 구성이다. 남자의 귀고리 착용이 금지된 건 조선 선조 때다. 남자의 귀고리 착용이 금지되는 (음력)1572년 9월 28일 이전까지는 남여 불문하고 기본적으로 귀고리를 착용해야 한다. 귀걸이[31] 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미약하지만 목걸이와 팔찌도 있기는 했다고 한다.[32]
- 한복도 시대를 뛰어넘어 조선시대 후기의 복장이 가장 보편적이다. 대다수의 사극이 사용하는 말총으로 만든 흑립은 성종 즈음에서야 나온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바구니처럼 엮어서 만든 흑립을 써야 맞다. 시대에 따른 옷깃 형태 변화나 저고리 길이 변화도 전혀 고증되지 않는다. 허리 위로 올라가는 저고리는 임란 이후에야 등장하는 것이고, 조선 전기의 저고리는 허리 아래로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그나마 대체로 용의 눈물과 대왕 세종 이후로는 조선 전기를 다루는 창작물에서는 대나무 흑립이나 긴 저고리 등 시기에 맞는 고증을 하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치마 역시 어깨에 걸쳐 입는 디자인은 구한말에 이화학당의 교장이었던 미국인 저넷 월터에 의해 보급된 것이며, 본래는 치마말기로 허리에 두른다. 짧은 저고리와 어깨허리가 있는 치마가 조합된 포대자루같은 펑퍼짐한 치마저고리 디자인은 근현대에 들어 만들어진 모습이지만 조선시대 배경인 사극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펑퍼짐한 한복을 입는다.
- 삼국시대 복식은 더욱 심각하다. 높은 확률로 국적과 시대를 알 수 없는 의상이 등장한다. 와우 천직업 티어셋에서 따온법한 정체모를 판떼기를 붙여놓은 한푸라든가 아니면 얄짤없이 당나라 한푸에 가까운 의상이라든가. 심지어 고려시대 이후에 생긴 동정과 옷고름을 달아놓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나 유행했을 당나라 한푸 스타일 복식을 원삼국~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사용하는 등, 국적과 시대를 초월한 고증을 선보인다. 그리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옷과 머리모양이 더욱 화려해진다.
- 삼국시대 두식도 복식 못지않은 수준이다. 베게를 연상케하는 정체모를 거대한 머리나 중국 두식에 가까운 머리가 자주 등장할 뿐, 고구려 벽화를 통해 알 수 있는 머리만 해도 묶은 중발머리[33] , 환계[34] , 쌍계[35] , 후계[36] , 얹은머리[37] , 채머리[38] , 푼기명머리[39] 등 다양한 양식이 있으나 사극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조선시대도 양호하지는 않은데, 미혼녀의 머리는 귀밑머리만 주야장천 나올 뿐, 새앙머리나 낭자쌍계는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새앙머리는 실제로 그 머리를 하지도 않았던 궁중 나인들이 주야장천 하고 나오며, 어린 아이의 바둑판머리, 기혼자의 조짐머리, 또야머리, 개수머리, 코머리, 민상투나 쌍상투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기와집 한 채 값에 맞먹었다던 가체를 누구나 올리고 등장한다.
- 백성들의 위생상태도 심하게 좋다. 당장 20세기 초 대한제국 시절 사진들만 봐도 현대와 비교해보면 백성들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다는걸 한 눈에 알 수 있는데 사극에서는 노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옷도 멀쩡히 입고 전쟁때도 숯으로 보이는듯한 검은 재를 얼굴과 옷에 묻힌게 다다.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서울)에서 사용한 무려 약 70% 이상의 지출이 똥치우기에서 발생했다. 심지어 기원전을 배경으로 하는 주몽에서조차 깨끗한 거리와 깔끔한 백성들이 지나다닌다. 귀족문화는 커녕 나라라고 하기도 뭣한 부족국가 시대인데도 왕족들은 먼 미래인 조선시대 왕족보다 훨씬 화려하게 치장하기도. 서양의 고대나 중세를 다룬 역사물들을 본다면 일반인들의 처참한 위생상태나 어찌어찌 가리기만한 복장을 입힌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 3~5세가 아닌 여자가 배씨댕기를 착용한다. 원래 배씨댕기는 서너 살 가량의 어린 여자아이가 숱이 적은 머리를 꾸미기 위해 착용한 것인데, 사극에서는 청소년에서 성인까지 죄다 착용하고 나온다.
- 대수머리를 할 때 목 아래에서 끈으로 고정한다. 원래 대수머리는 얹기만 하지, 끈으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물론 조선시대 배경 사극에서 다 그런 건 아닌데 작품별로 끈이 안 달린 대수머리가 나오기도 하고 끈이 달린 대수머리가 나오기도 하여 모든 사극의 문제점은 아니다. 공중파 3사 중 사극 제작 노하우가 가장 뛰어난 KBS에서 방영한 사극들의 경우 대체적으로 고증에 알맞은 대수머리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밖에 KBS 아트비전에서 제작된 소품들을 대여해서 재활용하는 JTBC 사극에서도 종종 고증에 알맞은 대수머리가 나오는 편.
- 조선시대 사극에서 성균관이 등장하면, 유생들이 입는 청금복은 십중팔구 청색 옷에 검은 금을 단 유복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태종 대에 처음 제정된 후로 수시로 바뀌었다. 시대에 따라 청금난삼, 흑령+유건, 청금단령, 청색 옷에 검은 금을 단 유복, 벽색 옷 등으로 변했으며, 영조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홍단령과 청단령, 흑단령을 구분하여 입어야 한다.
-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 심청색 적의가 등장한다. 조선의 치적의가 나오더라도 세자빈이 대홍색 적의를 입고 있다. 심청색 적의는 황제국을 자청한 중국의 것으로, 대한제국 이후에나 등장해야 하며, 치적의는 왕비는 원적문 51개를 배치한 대홍색 치적의를, 대비는 구성이 왕비와 같은 자적색 치적의를, 세자빈은 원적문 36개를 배치한 아청색 치적의를 입었다.
- 여말선초를 제외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왕비, 상궁, 후궁, 공주를 비롯한 왕실여성들이 죄다 당의를 입고 나온다. 하지만 당의는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재위 시기때부터 입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이 되며, 그 전에는 장삼, 장저고리, 단령 등을 입었다. 게다가 당의에 항상 용 모양이 수놓아진 보가 달린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 보가 당의에 달리기 시작한 건 거의 구한말 조선 말기고 그 전에는 주로 당의의 어깨 부분 문양으로 신분을 구별하는 경우가 많았다.
- 궁중 여인들이 배씨댕기와 첩지, 가체가 융합된 정체불명의 장신구를 착용한다. 본래 족두리와 화관을 고정하는데 쓰이는 첩지가 점점 화려한 장식같은것이 붙어 배씨댕기처럼 거대해지더니 아예 고증이 전혀 안 된 정체불명의 장신구가 되었다.
- 조선시대 사극에서 나인이 새앙머리를 한다. 원래 새앙머리는 왕가나 민간을 가리지 않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하는 머리였다. 다만 궁녀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는데, 어린 견습나인 중에서도 지밀, 침방, 수방 소속의 견습나인만이 할 수 있는 머리였다. 사극에서 견습나인을 생각시라 싸잡아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지밀, 침방, 수방의 견습나인만이 불릴 수 있는 호칭이다. 이들은 새앙머리를 한다 하여 생각시로 불렸다. 궁녀는 관례를 치르면 나인이라 해도 머리를 올렸다.
- 조선시대 사극에서 견습나인이 다홍치마와 노랑저고리를 입는다. 원래는 검정, 하양, 엷은 옥색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고종 이후에나 궁인들이 노랑저고리와 다홍치마를 많이 입으면서, 견습나인은 연두색이나 남색 저고리와 진분홍 치마, 분홍 저고리와 남색 치마 조합만 입게 된다. 이마저도 노랑저고리와 다홍치마는 아니다.
- 왕이 공식적인 일과 후에도 곤룡포 차림이다. 원래 왕족들은 공식적인 일과가 끝나면 일반 한복을 입었다.[40] 이는 조선 이전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다른 나라 전근대 군주들도 공식적인 일과가 끝나면 군주 전용 의상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 신분이 높든 낮든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백의민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흰색 옷을 자주 입었다. 백성들이 너무 흰옷만 입자 일부러 색이 있는 옷을 입도록 했는데도 백성들이 흰옷을 고집해서 실패한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나마 최근 시대인 일제강점기의 사진만 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 재탕이 많다. 문제는 이전 시대를 다룬 사극의 복식을 조선시대에도 재탕한다는 점. 심지어 삼국시대가 배경이라면 복식 고증이 조선시대 이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아예 판타지 한푸나 RPG 게임 갑옷에 가까운 의상이 등장하는데, 그걸 이 사극, 저 사극에 재탕 삼탕을 한다. 선덕여왕에서 사량부 부원의 복식이 동이에서는 모자만 덧붙여서 포졸복으로 재활용했다.
-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 연지화장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여자들은 양 볼에 연지를 찍는 화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댕기를 드릴 때 세 번 접어 고무줄로 묶는다. 원래는 다른 끈을 사용하지 않고 댕기만으로 묶어야 한다. 머리를 땋다가 적당한 위치에서 댕기를 대고 합쳐 땋는다. 그러다 고를 만든 뒤 남은 가닥을 머리와 합쳐 땋다가 묶어 늘어뜨렸다.
- 신발 고증의 경우 목화 소품으로 고무 밑창을 단 물건을 신고 있는데, 우수한 고증으로 유명한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사용된다.# 이 덕분에 조선의 막강한 과학 기술력 등의 농담이 종종 나온다. 물론 현대인의 발은 당시의 신발을 그대로 신기에는 부적절하므로[41] 이 부분은 연기자의 발을 보호하는 측면이 크다보니 시청자들도 크게 비판하지는 않는다. 사실 리인액트먼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양덕후들도 신발 고증은 대충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고. 비슷한 맥락으로 고대 오리엔트 문명,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서양 사극에서도 기병들이 등자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등자 없이 말을 타긴 위험하기 때문.
-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도 짚신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통일된다. 신라나 가야의 짚신은 실 유물은 거의 전해지는 게 없으나 짚신모양 토기에서 짚신의 형태와 결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표현하고 있고, 백제 짚신은 실제로 발굴된 유물만 무려 60점이 넘는다.[42] 그렇지만 한국 사극 중 가장 우수한 고증을 선보인 근초고왕에서도 변함없이 앞총이 빽빽한 조선시대 짚신을 신고 있다. 물론, 시간과 예산 문제도 있고, 고대의 짚신은 학계에서도 진중하게 다루지 않아서 복원 시도도 거의 되지 않는 만큼 무작정 비판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 주인공을 포함한 남성 주요 등장인물들은 내시도 아닌데 매끈매끈하게 면도를 하고 다닌다. 최근 로맨스 중심의 퓨전사극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문제. 우리나라는 옛부터 수염을 남성의 상징이자 멋으로 여겼고 조선에는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내관이 아닌 이상 면도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고, 설령 면도를 하려고 했다 하더라도 현대와 같이 성능좋은 면도날은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털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를 자랑하는 남자는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로맨스 중심의 퓨전 사극은 주요 타겟 시청자층이 젊거나 어린 여성들이기에 주연 배우도 당연히 잘생긴 미남배우가 맡는 것이 보통이고, 그런 배우들의 미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수염이 없는 것이 좋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수염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43]
3.3.2.2. '''갑옷'''
- 한국 사극의 한국 갑옷 고증은 대부분 매우 심각하다. 하나같이 시대불명의 전신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는데, 그런 갑옷은 동양적인 느낌은 들지 않고 서양 판타지를 방불케 한다. 주연의 경우에는 중국 갑옷인 명광개를 입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는 것이 다반사이다. 차라리 명광개 정도면 다행일까, 대부분의 고려시대 이전을 다룬 사극에는 어디 특촬물에나 나올법한 전신슈트가 튀어나온다. 채색도 상당히 조악해서 재질도 철제라기보단 싸구려 EVA폼이나 플라스틱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나마 근초고왕/대왕의 꿈처럼 당대의 찰갑/판갑을 재현하려 애쓴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리니지 갑옷. 자료가 풍부한 조선시대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가 적지만, 당장 고려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면 그냥 판타지 영화 하나 따로 찍어도 될 정도로 웃지 못할 갑옷 디자인이 나온다. 흔히 갑옷을 비판할 때 반지의 제왕 찍냐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각종 갑옷들은 각계의 전문가들이 총출동해서 중세 스타일을 재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서 판타지를 배제하고 갑옷만 봐도 매우 훌륭한 고증을 선보인다. 사실 고대의 갑옷도 고구려 벽화나 동시대 중국/일본 유물 등을 통해 어느정도 재현이 가능하지만 드라마 제작진들은 대개 고증에 관심이 없다보니 비판을 받는다. 가장 극단적인 것은 태왕사신기와 주몽이다. 그리고 갑옷 제작 기술 수준이 조선시대는 되어야 제작 가능할 것 같은 갑옷들도 시대를 거슬러 등장한다. 특이한 경우로 명량의 도도 다카토라의 갑옷은 고증을 충실히 하면 개그캐릭터가 되어버리기에 원형을 적절히 변형하며 고증을 포기한 경우가 있다. 조선시대 갑옷의 경우 여말선초를 제외하면 배경이 조선 후기가 맞든 아니든 간에 고위 장수들이 무조건 조선 후기의 두석린갑을 입은 때가 있었는데(특히 임진왜란을 다룬 사극), 실제 두석린갑은 진짜로 해당 갑옷이 존재했던 조선 후기 기준으로도 의장용에 불과해서 실전에서 입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배경이 조선 후기라도 고위 장수들이 군사훈련 장면에서만 두석린갑을 입고 실제 전투 장면에서는 두정갑을 입고 나오는 게 고증에 맞는다. 그래서인지 징비록을 기점으로 배경이 조선 후기가 아닌 조선시대 배경 사극에서는 더 이상 두석린갑이 나오지 않고 있다.
- KBS에서만 일어나는 고증오류인데, 고려시절에 사병들이 조선 중후기 스타일의 두정갑을 전군 착용하고, 조선군이 포졸복만 달랑 입고 다니는 촌극이 자주 일어난다. 용의 눈물시절부터 제작한 고려말 사병용 두정갑을 대량 제작한 이후로, 무인시대, 정도전에서도 이 고려군 두정갑은 꼭 나왔는데, 이 사극들이 여말선초를 다루면 조선 때부터 사라진다. 거기에 조선 초에 등장한 팽배수가 고려시기에 나온다.[44]
- 장군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갑옷을 입는다. 밥 먹을 때도 입는다. 조정에서 회의할 때도 입는다. 실제로 이랬다가는 곧장 반역죄로 엮어서 목을 치는 게 가능했는데도 말이다. 실제 무관들은 훈련이나 비상사태, 전시에만 갑주를 입었지, 평상시에는 궁궐에서 상복을(평상시 입는 관복) 입고 다녔다. 궁궐 안에서 갑옷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해할 목적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고, 그 상대방이란 당연히 왕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국방부장관이 국무회의에 단독군장을 하고 총을 휴대한 채 들어가는 셈이다. 중국사에 등장한 독재자들을 묘사한 부분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궁에서도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다닌다는 표현이다. 그만큼 비정상적인 행동이고 상식 밖인 행동이라는 뜻이다. 삼국지를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도 궁 안에서 갑옷입고 칼 차고 다니는 인물은 동탁이나 조조 뿐이다. 하지만 동탁과 조조는 한(漢) 황제로부터 구석(九錫)이란 9가지 특혜를 부여받았고 9가지 특혜 중 '납폐(納陛)' 즉, 황제 앞에서 자유롭게 신을 신고 칼을 찬 채로 알현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구석이란 특혜 자체가 대부분 중국 역사에서 조정 실권자의 압박에 의해 황제가 원치 않게 내린 특혜였기 때문에 독재자의 상징으로 인식된 부분이 있다. 이 모든 걸 다 제치고서라도 문제가 있는데, 갑옷은 일상생활 하기 불편하다. 무인 중심이었던 고려 무신정권, 중국의 유목민계 정복왕조들, 가마쿠라 시대 이후의 일본조차도 무인 지배세력들이 평소에는 갑옷을 입지 않았는데 문인 중심이었던 한민족 국가들과 중국 한족 왕조 그리고 헤이안 시대까지의 일본이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 주연급 장수는 투구를 안 쓴다. 천추태후나 선덕여왕 등의 드라마에서 장수들이 죄다 투구를 쓰지 않고 등장한다. 엑스트라가 아닌 이상 절대로 투구를 쓰지 않는다. 실제 강선식 라이플이 등장하기까지는 투구는 원거리 병기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수단이었고,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원거리 병기에 의한 사상이 절대 다수였는데도 말이다. 투구로도 모자라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면갑까지 쓰는 판이었고, 이렇게 투구를 쓰고 면갑으로 얼굴까지 보호하는 장수는 사실상 화살로는 죽일수가 없었다. 이것은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고증을 포기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투구 때문에 배우들의 얼굴이 가려 잘 안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려말 활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린 이성계도 온몸을 철갑으로 감싼 왜구 적장 아기발도를 그냥은 죽일 수가 없어서 부장과 함께 화살로 면갑줄을 맞춰서 벗긴후에 맨얼굴을 쏴서 잡았다. 최근 중국 사극인 신삼국에서도 여포와 조운이 적과 대결하던 중 무기를 맞아 투구가 떨어진 상황이 나온 바 있는데 만약 투구를 안 썼다면 그야말로 죽을 상황이었다. 물론 절대로 투구를 쓰지 않은 장수도 실제로 있긴 있었다. 바로 손견인데, 그래서 손견은 뒤통수에 화살 맞고 전사했다. 하지만 사실 투구 안 쓰는 걸로 유명한 장수가 같은 시대에 한 명 더 있었으니, 바로 원소. 이 자는 심지어 자기 병사들한테조차 투구를 쓰지 않고 싸우게 했다.
3.3.2.3. '''무기'''
- 가장 강력하고 익숙하고 쓸모 많고 대중적인 도끼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백병전에서 무기는 무조건 칼 아니면 창이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서 강도가 높아진 검과 기마술이 확산되면서 필요가 커진 창이 도끼의 수요를 밀어내긴 했지만, 당장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무기의 비중을 살펴보자.[45] 검을 지닌 하급 병졸들은 그 살벌한 전장에서 방패하나 없이 검 한자루만 들고 나대다가 전사한다. 그나마 도끼로 유명했던 캐릭터가 무인시대의 금강야차와 안시성의 활보한다.
- 그마저도 창은 장식용 또는 포졸용 무기로 쓰이고, 실제 전투 장면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칼이다. 굳이 멋있다는 점 이외에 특별한 이유를 찾자면 크고 무거운 무기일수록 다루기 어렵고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창은 단순한 찌르기 만으로도 위력적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멋진 장면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기마전의 경우에도 칼을 쓴다고 까는 의견이 보이는데 이는 잘못된 비판이다. 대열을 갖추고 정면에서 돌진해야만 위력이 나오는 기병창에 비해 곡도로 구성된 기병도는 적은 훈련량으로도 꽤 쓸모가 있었으며, 기병이 보조로 물러난 근대의 기병 후사르는 죄다 기병도를 들고 싸웠다. 흔히 검병이 창병에 비해 훈련이 더 필요해서 당연히 말 위에서도 그러겠거니 생각하겠지만 대열이 갖춰져야 쓸모있는 창을 말타고 쓰기위해선 훨씬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46] 물론 마상에서 칼 못쓸것도 없긴 하지만 마상에서 다루기엔 애매한 검의 길이때문에 마상검술을 제대로 해먹으려면 사용자가 월등히 실력이 좋아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애먹으며 마상에서 칼질하느니 차라리 창같은 장병기 드는게 훨씬 효율이 좋다.(...) 다만 이건 진짜 실전 이야기고 거창돌격이나 말위에서 고삐를 놓은 상태로 양손무기를 쓰는 것 등은 제작비(CG, 인건비 등)나 배우들의 안전문제 때문으로 너무 현실성에 치중해서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사극계가 이런 노하우가 전혀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예전부터 중국이나 일본 사극들의 경우엔 멀쩡하게 장수들이나 병사들이 말 위에서 창, 언월도, 모 같은 장병기를 사용하는 장면들이 그대로 나오고 서양사극계도 마찬가지다. 즉 한국사극계는 이런 기술을 재현할 능력이나 노하우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이런걸 넣었다간 제작비와 CG 문제, 배우들의 안전문제가 심각해져 안 넣는다고 봐야 타당하다.
- 조선시대를 다루는 사극의 창은 당파로 통일된다. 물론 당파는 적군의 공격을 창날로 막아내기 수월하다는 잇점이 있었지만 창보다 짧고, 만들기도 어려우며, 무게도 더 나가기 때문에 결코 주력으로 쓰일만한 무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정작 당파라는 것 자체가 명나라 후기 척계광[47] 이 왜구를 토벌하면서 새로 개발한 신무기로,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때에서야 명군이 들어오면서 도입된다. 고로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주력병기는 당파가 아니라 일반 창이었다. 그리고 당파는 삼지창과는 다르다.
- 이미 조총이 보편화된 조선 후기에도 포졸들이 당파 들고 어리버리하게 따라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쓰는 조총도 무조건 심지에 불 붙여서 발사, 장전 그런 거 없다. 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2010년에 추노라는 걸출한 고증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분명히 비무장한 범죄자에게도 포졸은 육모방망이는커녕 창부터 들이댄다.
- 활 쏘는데 검지로 시위를 당기는 서양식 활쏘기, 정확히는 '지중해 사법'을 구사한다. 검지를 포함한 네 개의 손가락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이 사법은 엄연히 정식으로 있는 사법이긴 하지만 동아시아의 사법은 결코 아니다. 몽골이 원류이며 중국과 한국에서 주로 쓰인 활쏘기 기법인 '몽골리안 사법'에 의하면 엄지로 당겨야 한다. 게다가 엄지에 끼는 깍지는 어디로 갖다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 엄지손가락이 너덜너덜해지기 십상. 이 몽골리안 사법은 최종병기 활에 매우 자세히 나온다. 그나마 이 부분은 추노와 최종병기 활 이후로 많이 지적되어서 그 후로 상당히 개선되었다.
- 산적이나 왈패들이나 사대부나 정규군이나 궁중별감이나 전부 칼을 손에 들고 다닌다. 가끔 다른 손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으면 칼을 든 손을 바꿔서 연기한다. 동개일습과 환도 띠돈매기는 어따 갖다버리고 등장인물 전원이 손에 칼을 들고 서서 뻘쭘하게 이야기할 때도 있다. 소품이라도 칼이 꽤 거추장스러울 텐데 연기자들도 힘들 듯.[48][49]
- 조선시대 배경 사극에 등장하는 칼은 모조리 일본도다. 정확히는 칼자루나 칼날, 코등이 등의 부품이 전형적인 일본도인데, 칼자루에 X자로 감는 끈인 츠카이토(つかいと)부터 칼날에는 요코테와 하몬까지 정성들여 재현한데다, 코등이도 칼날 양쪽에 일본도 코등이 특유의 구멍인 소병궤헐과 궤계혈이 나 있는 물건들이 쓰인다. 길이가 환도치고 너무 길다는 것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50] 물론, 임진왜란 이후에는 일본도 형태의 칼이 유행하기도 했고, 한국 장인들이 환도를 일본도 형태로 만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환도의 본래 형태와는 많은 거리가 있는 물건들이다. 적어도 조선 초중기 배경 사극에서 조선인들이 일본도를 많이 사용하는 건 빼도박도 못하는 고증오류다. 이는 예산 문제로서 국내 도검사에서 주로 취급하는 물건이 일본도이기 때문이다.[51] 소품용 가검의 경우에도 환도를 고증에 알맞게 제작할 경우 예산 문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미리 구해놓은 일본도 가검들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추노와 뿌리깊은 나무 이후 제대로 된 환도를 소품으로 사용한 예가 많아지고 있으나, 2015년 이후에도 상당수의 사극에서 인물들이 일본도를 썼다.
- 칼을 들고 조금만 움직여도 금속성의 소리가 난다. 검을 뽑을 때는 기본이고[52] , 심지어 그냥 들어올렸는데도 '채앵!'하면서 금속성의 소리가 난다. 진검을 만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 칼은 그렇게 쉽게 금속성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실제 진검이 아닌 조잡하기 그지없는 소품을 사용하면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것 보단 효과음을 추가하는 게 더 박력(?)있어 보이기 때문일지도. 때문에 효과음 자체를 없앤다기 보단 조금 더 고증에 맞는 효과음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53]
- 칼싸움을 하다가 칼을 서로 맞대고 힘겨루기하는 장면이 꼭 나온다. 실제로 이런 짓 하다간 유술에 걸리기 딱좋다. 군사들이 씨름이나 레슬링을 배우는 것도 바로 이런 난전상황에서 상대를 메치고 완전히 쓰러뜨리기 위함이다. 검사는 칼만 가지고 싸우지 않는다. 주먹질도, 발길질도 모두 검사의 무기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는가. 사실 이런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방패를 안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 야습하는데 장비에 잿물 바르기 같은 간단한 준비도 안해가서 조명에 날붙이가 반짝거린다. 실제로 이러다간 당연히 적에게 들킨다. 보초병은 괜히 세워두는 게 아니다.
3.3.2.4. '''경제'''
- 계산은 무조건 화폐로.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때도 화폐를 사용한다. 한국 역사에서 한국의 정부에 의해 유통된 최초의 화폐는 고려 성종 때 만들어진 건원중보이며[56] , 이것도 사용이 잘 안 돼서 목종 때는 관영 상점에서만 겨우 사용되었을 뿐이다.[57]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의 영향으로 지폐의 일종인 저화가 쓰이기도 했지만 어음 수준이었고, 조선에 들어서는 태종, 세종대왕이... 이후 효종조의 김육에 이르기까지 경제에 대해 지식이 있는 재상들이 화폐를 유통시키려고 갖은 힘을 썼으나 안습. 숙종조에 가서나 겨우 화폐경제가 정착할 수 있었다. 다만 주몽에서는 중국 화폐인 명도전을 사용하므로 아주 틀린 고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조선을 도와주러 올 때 군량은 사다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거의 챙기지 않고 그 대신 돈으로 챙겨왔는데, 조선에서 그 명나라 돈이 씨알도 안 먹혔다. 정상적인 상거래가 불가능하자 명나라 군대는 약탈로 이를 충당했다. 다만 이는 일부러 어기는 측면이 강한데, 일일이 비단이나 쌀을 건네주는 장면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번거롭고, 무엇보다 사극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상업작품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어느정도 잘 보여야 하기때문이다. 한국은 17세기~18세기에나 돼서야 화폐경제가 활성화되는데[58] 이는 부족국가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의 형태를 가진 나라중에서는 매우 늦게 화폐가 자리잡은 나라다. 비록 조선이라는 나라가 농업중심의 사회였고 상업의 발달이 미비해서 그럴수밖에 없었던거지만, 전문적인 역사 지식이 없는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미개하게 보일 수 밖에 없어 암묵적으로 고증을 어기는 현실. 특히 사극의 해외수출이 빈번해지는 지금은 외국 시청자들의 시선을 고려해서라도 화폐 고증은 전혀 기대 할 수 없다. 사실 화폐 문제는 중국의 사극도 문제가 많아서 무협과 관련한 작품은 죄다 주요 화폐로 은자를 사용한다. 은자를 말 그대로 주요화폐로서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은 거의 청나라 시대에서부터이다.
- 조선시대 사극 중 언제 어디서든 주막, 술집같은 시설이 있다.[59] 다만 고려시대에는 객관, 다점 등의 상업 시설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도 수도를 비롯한 몇몇 대도시에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3.3.2.5. '''기타'''
- 술을 마시면 안주를 절대 먹지 않고, 잔치가 열리면 밥을 절대 먹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소품 음식은 맛보다 화면에 나오는 연출을 위해 종종 가짜를 만들기도 한다. 소품이 진짜 음식일 경우엔 장시간 촬영을 하다 보면 식거나 굳으며 맛이 떨어지며 맛은 둘째 치더라도, 소품 음식을 먹는 신이 나올 경우엔 NG낼 때마다 다시 찍으면서 배우가 계속 먹다보면 연기에 지장이 가는데다가 소품이 너무 줄면 촬영에 지장이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 술만 마시거나[60] , 안주나 밥 등을 먹더라도 먹는 척만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하정우의 먹방이나 대장금처럼 먹는 것이 중요한 내용의 경우 배우들이 진짜로 먹는다.
- 김치가 현대식 김치인 경우가 많다. 현대에는 채소 자체를 개량된 품종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현대에 먹는 노랗고 통통한 배추가 사극에 등장하면 안된다. 김치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과일이나 채소, 음식 고증 자체가 암담한 수준이다. 현대의 한식은 전통음식과 거리가 꽤 멀다.
- 조선시대 사극에서, 견습나인은 무조건 생각시다. 원래 생각시는 새앙머리를 할 수 있는 지밀, 침방, 수방의 견습나인만을 말한다. 원래 새앙머리는 일반 미혼녀의 머리였다. 그러나 궁녀에게는 왕족을 바로 곁에서 보필하거나, 침구를 만들거나, 옷에 들어가는 자수를 놓는 등 왕족과 밀접하게 연관된 세 부서의 견습나인에게만 허락되었다.
- 건물들이 조선 후기 양식이다. 다층 건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 건축 문서 참조. 조선 이전으로 갈수록 건물 규모가 거대하고 화려했으며, 2층 건물도 많았다. 삼국시대에는 지붕장식인 치미 높이가 180cm일 정도였다. 교과서에 숱하게 언급되는 목탑부터가 다층 건물이다. 가야의 고상식 가옥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남은 게 조선 시대 건물 뿐이니까. 돈 썩어 넘치는 위키러, 역덕은 나중에 사극 촬영하면 후원이라도 한 번 해보자.
- 의원이 높으신 분들을 상대로 진맥을 할 때 실을 매어서 실 끝에 느껴지는 진동으로 진맥을 한다. 호기심 천국에서 실제 한의사가 사극에 연출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실을 매어서 실험하는 장면을 보였는데 불가능하다는 게 밝혀졌다. 지체 높은 여인들을 진맥할 때 손목에 얇은 천을 감고 진맥을 했다고 하는데 이게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1995년에 출간된 민담집인 '보배쌈지'(황구연 저)의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삼계탕에 거의 비슷한 방법의 진맥법이 나오기는 한다. 문제는 해당 저서가 '민담집'이란 이름답게 거의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모아둔 책이라는 점. 게다가 해당 에피소드 내에서도 등장인물의 뛰어난 면모를 두드러져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로, 실타래 진맥이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점을 이미 보이고 있기 때문에..
- 여러 사람이 식사를 할 때 독상이 아닌 겸상을 한다. 겸상문화 자체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는 각자 상을 받는 독상문화였다.[61]
- 삼국시대 이전의 사극에서 등장인물이 한자식 이름을 쓴다. 한자식 이름이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 건 남북국 시대 이후이며 삼국시대 이전의 모든 사람은 순우리말 이름을 썼다. 사서에 기록된 삼국시대 이전 사람들의 인명은 원래 순우리말 이름인 것을 뜻에 맞추어 중원식 이름으로 바꾸어 기록한 것이다. 즉, 천명 공주니 덕만 공주니 하는 거 다 고증오류다. 다만 이 경우 원래의 순우리말 이름을 알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어느 나라 사극이든 간에 전근대의 언어를 완전히 고증하는 건 어렵고 고증하더라도 현대인인 시청자(드라마)나 관객(영화)이 알아듣지 못하니 편의상 현대 언어에 대충 옛날 느낌을 가미할 수 밖에 없다.[62] 한국의 사극 말투가 딱 그런 케이스.
- 여자들이 죄다 겨드랑이 털을 밀고 있다. 한국에서 여자들의 겨드랑이 털이 터부시되는 시기가 언제부터였는지 알면 명백한 고증오류이나, 배우의 이미지라던가 작품 분위기를 해치는 문제가 있어 거의 지켜지지 않는편이다.
3.3.3. 기타 연출 관련
- 초반에는 화려한 싸움 장면이나 중국 등, 해외 로케이션으로 찍은 웅장한 풍광이나 무희들이 대규모로 화려하게 춤추는 장면이 들어가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물론 그 뒤로는 그저 줄곧 골방에서 등장인물 클로즈업 하는 장면.
- 효과음은 '두둥!'이 60%를 차지하며, 왠지 방에 있는 사람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장면이 방영분의 40%는 차지한다.
- 제작비가 부족하면 화면에는 20명인데 100명이라고 우기기 식의 숫자 불리기도 많으며, 또는 CG를 동원해 숫자를 불리기도 한다. 다만 이것조차도 안습이면(...)
- 가끔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통합되기도 한다. 물론 가끔 실제 가능했다는 인물도 있긴 하지만, 당연히 극소수인 데다가 전설 같은 이야기다. 역참제를 이용한 파발에게도 불가능.
- 이따금 일본 닌자의 영향을 받은 특수요원 같은 부하가 있다. 좋은 예가 불멸의 이순신의 날발이와 대조영의 금란.
- 요즘에는 명칭 붙이는 것에도 귀찮아졌는지 어떤 인물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도 시호나 묘호를 붙여 호칭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극단적인 사례가 장옥정 사랑에 살다인데, 인현왕후를 인현이라 부르고 인경왕후를 인경이라 부른다(...).
- 후궁이 자기 자식에게 어머니라 자청한다. 또는 후궁 소생의 군이나 옹주가 생모인 후궁에게 '어마마마'라 한다. 후궁은 자기 자식이라 해도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왕의 자식들은 적서 불문하고 공식적으로 왕비의 자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궁중에서 '어마마마'라 불릴 수 있는 이는 왕비, 대비, 세자빈 등의 정실 뿐이다.
- 조선시대 사극에서 왕족에게 무조건 마마를 붙인다. 마마는 왕과 왕비, 상왕과 대비, 세자와 세자빈에게만 허락되는 호칭이다.[65] 다른 왕족에게 마마라고 했다가는 목이 날아가도 할 말 없다.
- 왕자가 성인인데도 길례를 치르지 않는 사극도 있다. 조선시대 왕족들은 대부분 10세를 전후하여 혼사를 치렀다. 대군 - 사랑을 그리다의 경우 모티브 인물들이 벌써 애 낳고 손자 본다고 했을 시기에 솔로로 왕자들끼리 이 여자랑 결혼할 거라 하고 있다...
- 삼국시대 사극에서도 왕족에게 마마라 한다. 마마가 원나라 이후에 중국에서 들어온 말임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나으리, 기하, 어라하 같은 표현을 구현 못하겠다면, 차라리 폐하나 전하 등의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원나라 이전의 중국이 배경인 중화권 사극을 수입할 때도 왕족에 대한 호칭을 마마로 번역한다.
- 기생이 매춘부처럼 묘사되며, 사창가가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사창가는 일본의 요시와라에 가까운 체계이며, 기생은 예술가지 창녀가 아니었다.[66] 조선 후기의 삼패기생조차 최소한의 예술적 소양은 갖추고 있었다. 실제 매춘부 역할을 한 이들은 들병이, 화랑유녀, 작부, 사당패 등으로 따로 있었다.[67]
- 왕이나 양반이 기방에 간다. 높으신 분들은 수준 높은 기생을 자기 집 후원이나 경치 좋은 곳에 따로 불렀지, 기방에 직접 가지 않았다. 기방에 가는 이들은 하급 관리나 왈자패, 돈 많은 평민층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생이라고 무조건 기방에 있는 건 아니었다.
- 기생집에서 한 방에 여러 명의 기생이 들어간다.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조선 말기의 기록에는 여러 무리가 좌정한 방에 한 명의 기생이 투입되었다고 하며, 같이 있는 이들에게 동의를 얻고 기생에게 부탁하여 가무를 감상하는 형식이었다. 이런데도 돈 꽤나 많지 않고서는 기방 출입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기방에 가는 이들은 돈이나 힘만 있지, 교양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류[68] 였던지라 어린 기생의 경우 여러 사람 앞에서 옷을 벗겨 희롱하는 등 성폭행에 가까운 일을 관례처럼 당해야 했다. 이는 기생의 기둥서방인 기생서방이 손님들에게 따로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기생이 기방에 빨리 적응하고 순응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 왕이나 장군은 보이스를 엄청나게 깔고 중후하게 말한다.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사극에 왕으로 출연했던 배우에 따르면 목소리를 깔고 말하는게 사실성은 떨어지지만 뭔가 현대극과 다른 느낌을 시청자들에게 주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대사를 친다고 한다.
-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을 보자마자 급제하면 곧바로 군수나 암행어사라는 높은 관직 받는다. 실제 과거 제도는 시험 한 번 보고 장원을 했다 하더라도 문과는 소과-성균관-대과의 테크트리가 있고 무과는 종사관-만호-첨사의 테크트리가 있다
- 당시 시대에는 여성은 지금처럼 자기 의사를 내비칠 수도 없었다. 근데 요즘 주인공이 여성인 사극은 여주가 한참 높은 분한테 뭐라 따져도 아무런 처벌이 없다. 뭐지? 남장여자물로 보면 왕에게 스스럼없이 따지는데 드라마여서 넘기는 거지 현실이었으면 목 댕강이었다. 하물며 미천한 신분의 여성이면 드라마속 대우는 처절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4. 자주 듣는 대사들
- 네 이놈!!
- 이런 괘씸한 자를 봤나!
- 물렀거라!
- 뭣들 하느냐! 당장 이 ○○을 끌어내지 않고!
- 들라 하라.
- 밖에 아무도 없느냐. / 게 아무도 없느냐.
- 이리오너라
- 주상!
- 주상전하 납시오~[69]
- 전하[70] !
- 나를 따르라
- 천세[71]
- 주리를 틀어라!
- 풍악을 울려라!
- 죄인은 나와서 오라를 받으라!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나이다.
- 황송하옵니다.
- 죽여주시옵소서.
-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 송구하옵니다.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억울하옵니다!
- 저 놈의 목을 쳐라!
- 저 놈을 매우 쳐라!
- 네 죄를 네가 알렷다!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 뭐라?
4. 작품 목록 (드라마 / 영화)
4.1. 시대별 구분
4.1.1. 선사시대, 고조선, 원삼국시대
이 시대는 사료가 너무 부족하여, 거의 사극으로 다루지 않는 편이다. 사실 석기시대는 사료 자체가 없는 시대라 무슨 스토리를 쓰든 간에 거의 100% 창작이라고 보면 된다. 석기시대에 누구누구 살았는지, 어떤 날에 누가 어떤 행위를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런 걸 알 수 없기 때문.[72]
그래도 석기시대와 고조선은 한국사기에서 최초로 나왔다.
한국사기에서 단군의 고조선은 건국만 간단히 나오고, 위만조선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뒤 위만조선의 최후와 왕검성 전투가 나왔는데, 고증은 전부 고구려 사극 때 사용했던 것을 그대로 이용했다(...). 그래도 그동안 사극에서 언급만 되었지, 영상화는 된 적이 없는 고조선이 사서를 고증한 정통 사극으로 처음 등장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할 듯. 판타지 드라마로는 태왕사신기의 초반에 배용준이 환웅 역을 맡으며 홍익인간의 뜻을 펼치는 장면이 나오고, 판타지영화 단적비연수 역시 선사시대의 토테미즘을 다루나, 사서를 제대로 고증한 사극이라 하긴 어렵다.
원삼국시대의 경우 2006년에 주몽이 방영되어 크게 인기를 끌긴 했지만 원삼국시대 배경 사극의 활발한 제작으로 이어지진 못했는데, 바람의 나라는 높은 시청률에 비해 화제성이 부족하여 현재는 많이 잊혀졌으며 자명고와 김수로는 아예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수로는 가야를 배경으로 한 사극으로는 최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4.1.2. 삼국시대
2000년대~2010년대 초반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많이 제작되었다. 사료가 매우 부족한 시대이므로 구조적으로 작가의 상상의 여지가 대거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덕후, 특히 고증덕후들이 이 시대 배경의 사극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에게 고루 호평받는 작품은 《황산벌》 정도, 《근초고왕》도 고증 '한정'으로는 호평을 받았다.
4.1.2.1. 삼국통일전쟁 시기(7세기)
전체적으로 골고루 다루는 조선시대와 달리 600년이 넘는 시대 중에서 사실상 이 시기, 7세기가 전체 삼국시대 사극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삼국시대 왕이나 배경을 다룬 사극 중에서, 중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전성기 왕들과 7세기를 제외한, 나머지 왕들이나 시대적 배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거의 찾기 힘들다.
7세기는 삼국시대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많은 고증 자료와 풍부한 기록을 갖고 있는데다[73] 한국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던 스펙타클한 시대였기 때문에[74]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 이 시기가 대부분이었다.
- 작품으로는 《계백》, 《대왕의 꿈》[75] , 《대조영》, 《삼국기》[76] , 《서동요》[77] , 《선덕여왕》[78] , 《안시성》, 《연개소문》[79] , 《칼과 꽃》, 《평양성》, 《황산벌》등.
4.1.2.2. 삼국통일전쟁인 7세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대
이쪽은 주로 각 나라의 건국기나 전성기를 대표하는 왕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만 신라의 진흥왕은 주인공으로 나온 적이 없다.
삼국 중 초기 역사가 그나마 많이 나온 건 고구려이며, 삼국시대 사극에서도 가히 원 탑으로 영상화 된 편. 7세기를 제외한 삼국시대 사극 중에선,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거의 대부분이다. 왕은 동명성왕, 유리왕, 대무신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등이 등장했다. 다만, 대무신왕 이후로 조연으로나마 등장한 고국원왕 이전의 12 왕[81] 들은 사극은 커녕 대중매체 자체에 중심이 되어 다뤄진 적이 없다. 물론 드라마 자명고에서 모본왕이 아역으로 등장하긴 한다. 또한 예외로 소설로나마 주인공으로 등장한 미천왕 정도가 있다.
삼국 중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백제는 전성기인 근초고왕과 삼국통일시기인 7세기를 제외한 나머지, 백제 역사의 7할이 넘는 나머지는 주연은커녕 조연으로도 나온 적이 별로 없다. 그나마 조연이더라도 비중 있게 나온 게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맞서 싸운 진사왕, 아신왕. 마지막으로 신라와 한강유역을 다투고 관산성 전투로 유명한 성왕 정도.[82] 의외로 조연으로 많이 나온 거 같지만, 온조왕 빼면 주인공인 고구려, 신라에게 얻어 맞는 역할이었다(...)
신라 역시 초기 기록과 고증 자료가 적고 대중들의 인지도도 낮아서, 6세기 말~7세기 이전은 거의 영상화 되지 않았다. 광개토왕 시기를 다룬 사극에서 내물왕이 잠깐 등장하는 정도가 예외. 《선덕여왕》 초반부와 《화랑》에서 6세기를 다뤘기에 진흥왕을 여기서 잠시 볼 수 있다. 그 이전의 왕이자, 한국사 시험 단골인 지증왕, 법흥왕조차 사극에서 나온 적이 없다. 그리고 백제, 고구려와 달리 건국시조인 박혁거세도 TV 사극에서 나온 적이 없다. 삼국통일시기에 신라가 주인공처럼 나오거나, 통일 신라 덕분에 백제보다 많이 나온 거 처럼 보이지만, 6세기 중반 이전으로 한정하면 고구려, 백제보다도 나온 게 드물다.
이 외엔 가야의 《김수로》 정도가 있다. 그 외에 삼국시대 초기 국가 중, 나름 네임드급 국가인 부여는 《주몽》에서 사극 역사상 최초로 등장했고, 주몽 스토리상 당연하겠지만 주배경으로 나왔다. 다만, 이 두 드라마는 거의 판타지나 마찬가지라 고증은 기대하지 말자. 특히 주몽은 방영 당시에도 한국판 반지의 제왕이라고 엄청나게 까였었다.
4.1.3. 남북국시대
한국 사극에서 가장 소외받는 시대 중 하나. 이 시대 전반적으로 통일신라는 전쟁이 거의 없고 정치적 암투나 간간히 벌어지는 태평성대가 와서 시청자의 눈길을 휘어잡을 자극적인 소재가 비교적 적은 편이고,[83] 한국 사극에서 소재로 인기가 많은 '외적의 침략'도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신라 외에 발해는 대조영 시대 정도를 제외하면 기록이 고대왕조 중에서도 특히 워낙 적어서 뭔가 연출하기가 상당히 어렵다.[84] 그러나 의외로 이 시대를 소재로 했던 사극은 숫자는 적지만 흥행에 성공한 비율은 높다. 《해신》, 《원효》, 《무영검》 등이 있으며 《대조영》과 《태조 왕건》은 이 시대의 전후에 걸쳤다.
4.1.4. 후삼국시대
한반도 유일의 전국시대형 시대임에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전국시대가 사극 소재로 인기가 매우 높은 것에 비해서 비교적 소외되는 편인데, 우선 한국 사극은 대체로 내전보다는 외국의 침공에 포커스를 맞추는 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시대를 다룬 최고의 히트작 《태조 왕건》 때도 큰 문제였듯 '''시대배경상 연출해야 할 대규모 전쟁이 너무 많아서 제작비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궁중암투물이 아닌 이상, 전쟁이야 어느 시대나 어느 정도는 있지만 후삼국시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으로 연출해야 하며 생략하면 스토리 진행이 막힌다. 게다가 《대조영》과 삼국 대왕 3부작 이후 2010년대 들어서 한국 사극이 점차 저예산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라도 앞으로도 후삼국시대를 본격적으로 관통하는 드라마가 다시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4.1.5.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이전 삼국시대보다는 사료가 풍부하지만 조선시대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사료가 적고 고증의 어려움이 있어 자주 다뤄지지 않는 편. 오히려 사료가 더 적은 삼국시대보다도 더 적게 다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다. 《태조 왕건》의 흥행으로 한때 고려사 시리즈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왕건》 이후로는 크게 성공한 경우가 없는 편.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사극으로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천추태후》, 《무인시대》, 《무신》, 《신돈》 등이 있다.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는 왕건의 아들들의 이야기를 다루기는 했으나, 애초부터 원작인 보보경심의 청나라 강희제의 아들들의 이야기를 대입시킨 것이라, 한국 사극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다.
- 여말선초: 고려 말기부터 조선 개국 시기까지의 혼돈시기는 왕조교체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암투가 자주 일어나고 공민왕, 최영,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 이방원 등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고 드라마적으로도 매력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자주 소재로 다뤄진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개국》, 《용의 눈물》, 《대풍수》,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영화 《무사》가 있다.
4.1.6.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자세한 기록 덕에 모든 시기를 사료에 입각해 다룰 수 있으며, 기록이 너무나 자세한 관계로 고대사 사극과는 반대로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가령 정도전(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문서나 징비록(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문서를 보면 작중 자잘한 에피소드마다 일일이 남아있는 기록과 드라마 내용을 대조하고 있다.
모든 시기가 자주 다뤄지지만, 현종이나 세도정치기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세도정치기는 그나마 순조는 정조시대 사극에서 세자로 얼굴을 비추고, 철종은 흥선 대원군이 주인공일 때 집권 전 모습으로 종종 나오지만, 헌종은 제대로 나온 사극이 없다. .
보통 조선시대 정통 사극은 여말선초와 임진왜란, 구한말 시대의 3개 시대가 가장 인기가 높고, 종류도 많다. 아무래도 이 시대가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고 드라마적으로도 매력있는 인물이 많기 때문.[85] 그다음은 장희빈(숙종) 시대나 단종~연산군 시대가 많이 다뤄지는 편이다.
남자가 주인공일 경우 주로 임진왜란이 많이 다뤄지고 여자가 주인공일 경우 주로 장희빈이 많이 다뤄진다. 따라서 사극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여자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인물은 장희빈이다.
왜 조선시대만 사극으로 나올까
- 여말선초: 상단 고려 문서 참조.
- 조선 창업기 (태조~태종, 세종)
- 단종과 세조, 한명회(계유정난~사육신)
- 인수대비와 성종, 폐비 윤씨와 연산군 인수대비가 성종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부터 폐비 윤씨와 인수대비의 고부갈등, 폐비 사사 이후 연산군의 복수 등이 그려진다.
- 중종~명종 치세: 조광조, 문정왕후, 정난정, 황진이, 임꺽정 등
- 임진왜란: 선조, 이순신, 원균, 권율, 류성룡, 광해군,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전쟁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드는 단점이 있으나 조선이 최종적으로 승리한 전쟁이고 반일감정에 편승할 수 있으며[86] 전쟁영웅이 많이 등장한 시대이기 때문에 인기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 병자호란 등 인조 치세: 정통사극보다는 주로 퓨전사극의 배경으로 자주 쓰이는 편. 정작 병자호란을 중심적으로 다룬 사극은 별로 없고 삼전도의 굴욕 이후의 조선이 주로 배경이 된다.
-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 숙빈 최씨: 내로라 하는 여배우들은 서로 이 배역을 맡으려고 했으며 실제로 김혜수는 장희빈 한 번 해보려고 《바람난 가족》의 캐스팅을 수락하고 촬영시작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캐스팅을 취소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장희빈역 유경험자라는 것 자체가 탤런트들 사이에서는 미모로서 인정받았다.
-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
- 조선의 천주교 박해: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조선시대의 순교성인들을 다룬 단편 사극을 제작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중요한 사건이기는 하나 종교와 연관된 소재인지라 가톨릭 계열 방송국인 평화방송에서 제작된 사극을 제외하면 소재로 쓰인적이 없다.
- 개화기와 구한말: 고종과 흥선 대원군, 명성황후 민씨 등. 사실 이 시대는 극적인 인생을 산 인물들이 굉장히 많은데, 개화기를 중심으로 한 사극은 주로 대원군이나 고종 내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만 개화기 초반 외에 대한제국 선포~경술국치 기간은 거의 드라마화되지 않았다.[87] 서양 문물과 서양인들이 밀려오는 개화기라는 특성상, 아래의 현대사 파트를 제외하고 서양인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기.[88] 또한 조선인(주로 지배층) 배역들의 복식도 전통적인 한복에서 서양식 양복, 제복 차림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4.1.7.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
-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를 받은 시대이기 때문에 정치사가 주요 소재로 다루어지는 다른 시대들과 달리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89] 를 위시한 김두한 이야기가 많다. 《여명의 눈동자》, 《서울 1945》[90] , 《각시탈》, 《경성스캔들》 같은 작품도 존재한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1950년대~1960년대에는 일제에 항거하는 애국지사들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 6.25 전쟁: 특히 KBS의 《전우》가 유명. 3번이나 만들어졌다. 영화도 자주 만들어지고 천만 관객 돌파의 《태극기 휘날리며》도 이에 속한다. 흥행에 실패한 드라마 《로드 넘버 원》도 이 시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 군사정권 및 경제개발: 대표작으로는 《제4공화국》, 《제5공화국》 등의 공화국 시리즈와 《코리아게이트》, 《영웅시대》, 《자이언트》 등이 있다.
- 문화사 시리즈: 2004년과 2005년데 EBS에서 제작한 드라마로 1950,60년대 사회상과 문화 사조(문학, 공연예술, 대중문화 등)를 다룬다. 문화사 시리즈 1편은 명동백작, 2편은 지금도 마로니에는.
-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부터는 너무 현재의 정치와 연관이 깊기 때문에 정치 드라마보다는 응답하라 시리즈류의 일상물이 더 유명하다. 사극보다 시대극으로 보는것이 더 정확하지만 KBS의 아름다운 시절, 복희 누나, 별이 되어 빛나리, 그 여자의 바다 등의 TV소설 시리즈나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도 넓게 보면 여기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5. 기타 관련 문서
[1] 아예 사건전개가 바뀌거나 사건전개의 중요한 인물이 사라지거나 하는 등[2] 이는 방송사에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시청률만 바라보고 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세태가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사극을 기피하는 시청자가 주로 여성 시청자층 이기 때문에 보다 사극에 쉽게 끌어들이기 위해 로맨스라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3] 가령 100년 뒤에 현재의 대한민국을 그리면서 홍길동이라는 가상의 대통령을 넣는다고 해 보자.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니 고증에 신경쓸 필요 없다'면서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폴더폰을 쓴다거나 486 컴퓨터를 쓴다거나 삐삐를 들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해도 되는가?[4] 죽은지가 수십년이나 되었는데도 멀쩡하게 살아있었던 대조영의 고돌발, 계필사문, 설인귀, 걸사비우가 대표적이다.[5] 대표적인 예가 허준의 유의태. 유의태로 추정되는 '유이태'라는 인물은 150년 후 숙종때의 사람이다. 허나 이 경우에는 원작 소설 자체가 이런 오류를 가지고 있으므로 원작 충실에 따른 어쩔수 없는 오류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6] 그러나 광해군, 인조, 원균, 명성황후의 공통점은 각본가 입장에서 미화를 시켜야 드라마틱한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많은 잘못된 정책을 펼친 바 있는 광해나 인조, 선량하기 짝이 없는 영웅을 사사건건 모함하는 무능의 극치(원균)나 망국의 위기에서 부정축재에 여념이 없었던 국모 같지도 않은 국모(명성황후) 가지고 시청자들이 흥미 있게 볼 만한 플롯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7] 고전소설이나 만화를 재창작한 것으로 봐야하는 《쾌도 홍길동》이나 《일지매》, 일종의 가정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봐야 하는 《바람의 화원》 등.[8]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이 공유되기 이전 사극들에는 야사나 연려실기술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양녕대군이 의도적으로 세자 자리를 포기했다는 설.[9] 특히 김영철은 태조 왕건을 제대로 본 적 없거나 인터넷 밈 등으로나 접해봤을 10-20 세대들조차도 알고 있으며, 본인도 이 밈들에 대해 즐기고 있다.[10] 실제 역사에서도 무신정권 집권자들은 권력을 잡기 전과 후가 확실히 달랐다.[11] 아예 '''주인공'''인 정도전이 자기 자신을 '''괴물'''이라고 칭하기도 하였고,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철저히 '''악당'''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특히 이숙번이 자신의 뜻에 반대할 때에 가차없이 응징하던 장면 등으로 이를 상기시킨다.[12] 아예 아내는 어떤 이유를 붙이던 결국 죽으면 뭔 소용이냐는 일침까지 날렸다.[13] 어린 소년 궁예가 머리를 깎는 장면 바로 다음이 10년 뒤 청년이 된 궁예가 하산하는 대목이다.[14] 왕의 사랑놀음 때문에 반란군 수장이 군사들 죽이면서 와도 장군들이 손놓고 있었던 적도 있긴 하다.[15] 유럽의 역사를 예로 든다면 일단 신화이기는 하지만 여자 하나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고, 모두 일곱 차례 벌어진 이탈리아 전쟁 가운데 4번이 합스부르크 황가에 대한 프랑스의 라이벌 의식이 발단이 되었다.[16] 실제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이러다가 군단병들이 진짜로 해산되는 바람에 망한 적이 있다.[17] 병법에서는 장수가 앞에 서는 것을 바보짓으로 규정한다. 상식적으로 지휘관이 죽으면 예하 부대가 혼란에 빠질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18] 이 때문에 낙동강 전선에서 소대장들은 보통 하루나 이틀만에 전사했고, 사나흘 버티면 많이 버틴 것 이며, 한달을 버티면 환갑잔치를 하기도 했다...[19] 실제론 두 양요에서 프랑스, 미군 전사자는 합쳐도 열 명도 채 안 된다.[20] 명량해전 당시 안위의 판옥선에서 백병전이 일어났지 대장선에서 백병전이 일어나진 않았다. 조선군이 도선 백병전을 꽤 자주하긴 했는데 화포로 한번 두들기고, 화전과 궁시로 재차 공격해 확실히 약화시켜 놓은 다음 왜선에 뛰어들었지 처음부터 냅다 백병전을 벌이진 않았다. 애초 영화에선 세키부네들이 너무 크다.[21] 난중일기에 나오는 명량해전에서 조선군 대장선 전사자는 두명이며 조총에 맞아 전사했다.[22] 이 점을 신경쓴다 해도 분명 숨어서 쏘는데 무조건 가슴이나 복부만 피격당한다.[23] 모 사극에선 피 터지는 장면을 촬영할 때 갑옷에 장치를 설치한 뒤 스태프가 몇 미터 거리에서 쏴 터뜨리는 방법을 썼는데, 팔뚝이나 머리에 이 장치를 한다면 단번에 티가 날 것이다. 물론 카메라에는 피격당하는 보조출연자만 나왔다.[24] 여담으로 이러한 경향은 영화나 드라마 뿐이 아닌 비디오 게임에서도 심하다. 일례로 미니어처 게임 워해머 40000에서도 대부분의 진영에서 지휘관과 유명 인물이 헬멧을 착용하지 않으며,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경우 졸병들은 전투복의 바이저를 내리지만 주연 급은 바이저를 한결같이 올려 얼굴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라고 서술되어있는데 아니다. 스타크래프트2의 경우 레이너, 타이커스, 워필드 역시 전투 시에는 내리는 걸 확인 할 수 있으며 마앤블이나 스카이림 같은 게임은 투구가 굉장히 중요하게 나타지만 사극이나 워해머, 위쳐등의 창작물이 투구를 안쓰는 이유는 단순히 캐릭터성 강조하기 위함이고 스타2 워필드 역시 블리자드가 절박함을 표현하기위해서 워필드가 히드라와 싸우는 구간에서 바이저를 올리는 부분을 확인 할 수 있다.[25] 이 클리셰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용의 눈물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관료들의 국무회의가 대단히 상세하게 묘사된다. 특히나 태종이 주도하여 세종의 장인이었던 심온을 사사하는 숨가쁜 대목에서도 김종서, 이종무 등을 불러들여 국방 대책을 논의하는 장면을 넣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부분.[26] 사실 의자왕이나, 선조, 인조, 루이 14등, 일반인들에게 답도 없는 암군으로 알려진 왕들도 사실 상당히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든지, 의외로 지적인 면모가 있다든지, 나름 한계를 인식하고 상황을 타파하려고 노력했다든지, 무능함이 실제보다 과장됐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인조만 해도 친명배금으로 명에 대한 사대에 집착하다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조선의 전력을 냉정히 파악하고 전력 증강에 상당히 절박하게 노력했다는 연구 결과들을 찾아볼 수 있다.[27] 실제 역사에서는 완전히 정반대다. 당태종이 여왕이라 나라가 어지럽다고 하자 신라 사신은 다만 "예"라고만 답하고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28] 이 경우 분명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으니 개연성 논쟁이 될 수밖에 없는데, 상식적으로 공주 수업 쪽이 그럴듯한가. 아니면 집에서 수천킬로 떨어진 곳에서 로마인을 만나는 것이 있을 법 한가?[29] 일본 사극도 고증에 충실하긴 하지만 촌마게를 젊은 배우들이 싫어해서 고증에 철저하지 않는 매체에서 덥수룩한 산발의 낭인으로 설정이 애용된다.[30] 다만, 이 머리는 삼국시대에 한하여 고증오류가 아닐 수도 있다. 양직공도를 보면 신라 사신이 상투+장발로 추측되는 머리를 하고 있다. 머리의 반 가량은 위로 올라간 채 관모에 가려져 있는데, 그 아래로는 머리가 치렁치렁하고 부스스하게 늘어져있다. 조선시대에 이 머리를 한다면 얄짤없이 해괴한 머리로 본다.[31] 귓바퀴에 거는 장신구.[32] 목걸이와 팔찌는 삼국시대에 성행했으나 조선시대에 많이 쇠퇴했다.[33] 단발머리를 묶은 것. 묶은 다발을 위로 반전시키기도 했다.[34] 머리를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비녀로 고정하거나, 떠구지 모양의 둥근 테로 만들어 장식한 머리.[35] 머리 정수리 부근에 두 개의 상투를 솟게 한 것으로, 머리를 늘어뜨리거나, 땋거나, 머리를 두 갈래로 나눈 것을 구부려 얹거나, 둥근 뿔 모양으로 빗어올린 뒤 천으로 고정시키고 늘어뜨리거나, 땋은 머리를 하여 뒤로 늘어뜨리는 등 다양한 유형이 있었다고 한다.[36] 중앙을 높게 올리고 뒷머리를 늘어뜨린 머리.[37] 삼국시대의 얹은머리는 머리를 그대로 올리고 바싹 붙여 틀어올리거나, 땋아서 틀어올렸다.[38]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머리.[39] 머리를 하나로 묶어 뒤로 늘어뜨리고, 일부를 빼내어 양 볼에 늘어뜨린 머리.[40] 그나마 취침 장면을 찍을 때는 일반 옷차림이긴 하다.[41] 사극도 아닌 시대 고증 예능 프로그램인 렛츠고 시간탐험대에서 출연자들이 진짜 당대에 신었던 짚신 같은 신발을 신은 바 있는 데, 연기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고통을 호소했다.[42] 짚이나 부들같은 유기질 유물이 1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다수 보존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43] 대개 입욕문화가 없거나 낮은 수준의 문화권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 북유럽의 바이킹, 일본과 같이 입욕문화가 있는 문화권에서는 몸의 잔털, 머리카락, 손/발톱 등을 다듬는 문화가 발달되었다. 고대 입욕문화의 끝판왕인 로마는 더 말할것도 없다.[44] 다만 한손검으로 무장하고 방패를 든 병종은 삼국시대 (고구려군의 경우 벽화에서도 확인 가능#) 부터 확인이 가능하므로 그렇게 크게 틀린 사항은 아니다. 물론 고려 초기에 환두대도가 아닌 환도형태의 칼을 든 팽배수라면 당연히 오류겠지만[45] 안악 3호분의 대행렬도를 보면 창병이 12명, 부월수가 10명, 창기병이 8명, 궁수가 8명, 검병이 4명이다.[46] 이게 오히려 잘못된 고증이다. 머스켓 티어로도 픽 픽 죽어나가는 기병이 기관총에 돌격하는 것은 맨땅에서 진형 안갖추고 패싸움하는 한극 사극급의 뻘짓이다.[47] 1528년 출생, 1588년 사망. 그러니까 임진왜란 바로 전 시대의 사람이다.[48] 추노나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그래도 이 점에 대해 제대로 고증이 들어간 편인데, 뿌리깊은 나무의 경우에는 띠돈으로 허리에 차기도 하고 손으로 들기도 하는데 운검의 경우 손으로 칼을 잡는 경우도 흔했다. 다만 문제는 칼을 두 손으로 받쳐들어야 맞다는 것이지만... 일단 허리춤에 패용하는 것이 나오니 잘 고증했다고 볼 수 있다.[49] 이에 대해 한 사극덕후가 실제로 KBS 아트센터를 방문하여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도대체 왜 사극에서 환도패용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냐고 따져 물었을 정도. KBS 제작진들 왈 사극 속 환도패용 고증이 어긋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나 환도 띠돈 매기를 하면 극 중 인물들이 걷거나 뛸 때 덜렁거려서 카메라에 그 모습이 이상하게 찍히기 때문에 연출진들이 싫어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그나마 띠돈을 잘 재현한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액션신에서는 무조건 칼집을 버리고 촬영했고 비교적 정적인 장면에서만 띠돈 패용을 재현했다. 상기한 이유와 마찬가지 이유일듯 하다. 이는 바래 아래 서술 내용과도 바로 연결되는데 어디까지나 보조무기인 환도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생긴 문제다. 환도 항목을 참고하면 알 수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나 직후에 잠깐 길이가 길어졌을 뿐 대개 1m가 안되는 크기다.[50] 다만, 주인공이 중도 수준의 짧은 칼 한자루를 들고 휘두르면 아무래도 모양이 잘 나지 않을테니 칼 길이는 멋을 위한 극적인 허용으로 보는 것이 옳다. 당장 일본 시대극이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일본도의 경우에도 흔한 우치가타나라기보다는 노다치에 근접할 정도로 큰 물건들도 자주 표현된다.[51] 이는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전통 도검류를 접하기 힘들어지고 조선으로 이주해온 야쿠자들의 일본도나 조선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신군도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한국인들도 동아시아 도검류 하면 일본도를 떠올리게 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52] 칼집이라는 건 유사시를 대비해 날을 항상 날카롭게 관리해야 하는 칼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반대로 날카로운 칼에 인명이 상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때문에 칼이 딱 들어맞도록 만들며 사극에서 흔히 들리는 철커덕 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뽑을 때 역시 '스릉'따위의 날카로운 소리가 아닌 '스륵' 정도의 조용한 소리가 난다. 반대로 그런 소리가 날 정도로 헐렁하다면 애초에 칼집의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사실, 칼집도 금속으로 만든 서양 군도나 고대 로마군의 검 같은 경우 뽑을 때 쇠와 쇠가 마찰을 하기 때문에 금속성 소리가 나긴 한다. 그러나 칼집의 소재가 다른 조선 환도나 일본도 같은 경우 정말 뽑을 때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53]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는 것이,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칼뽑는 소리나 칼끼리 맞부딪치는 소리들은 촬영 중에 나는 소리가 아닌 촬영 후 편집과정에서 '일부러 집어넣은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박력과 연출. 당장에 칼끼리 칭!챙!창! 하면서 싸우는 소리를 안 넣으면 그냥 쇳덩이 부딪히는 틱!택!탁! 정도의 맥빠지는 소리만 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과는 달라도 예술적 허용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54] 화포에 발사되는 포탄은 무게와 중력가속도가 합쳐진 충격력으로 목표에 피해를 주는 무기지 목표에 맞아 폭발하여 피해를 고폭탄이 아니다. 물론 비격진천뢰 같이 폭발하는 포탄도 조선시대에 실존했지만 어디까지나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조선시대 포탄, 특히 해상전이나 공성전에서 등장하는 포탄은 폭발하지 않는 평범한 쇠공이었다.[55] 명중한 부분이 예를 들어 성벽이어서 돌 파편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포탄 자체가 터져서 피해를 주는 걸로 묘사된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전투신을 잘 보자.[56] 그 이전에 명도전, 반량전을 비롯해서 중국돈이 쓰인 흔적은 보인다.[57]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화폐를 사용하려면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고 상업이랑 각종 산업이 발달해야 하는데 이때는 그렇지 못했다. 화폐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조선 후기는 이양법의 확대로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어 상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이 발달되니까 화폐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58] 물론 이때도 완전히 활성화된게 아니라 개화기에나 가서야 정착이 되었다.[59] "주막이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종 이후 쯤으로 짐작된다.) 때부터일 것이다. 주막은 상공업의 발달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과연 임진왜란 이전에 지방 곳곳에 주막이 출현할 만큼 상품경제가 발달했을까?"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60] 술도 과음시 지장이 가는 건 맞기에 소량만 준비하거나 아예 물이나 음료수로 술을 대체한다.[61] 조선 중종 때 '이동'이란 사람은 자신이 아버지와 겸상하여야 하는 것에 분개하여 아버지를 밥그릇으로 때려죽인 사건이 있었을 정도였으며, 이 사건은 정상참작이 이루어져 사형을 면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남북한 같으면 정상참작 자체가 말이 안 됐겠지만...[62] 잔 다르크를 주인공으로 한 서양 사극에서 잔 다르크가 잔 다르크로 불리는 것도 고증오류인데, 실제로 잔 다르크는 살아생전에 주안 다르크로 불렸다. 현대 프랑스어권의 잔(Jeanne)에 해당하는 중세 프랑스어 이름이 주안(Jehanne)이었기 때문이다.[63] 다만 이계안은 SBS 홍길동에서 냉철한 활빈당 간부역을 했고 이희도는 공주의 남자에서 철저한 모략가인 한명회역을 멋지게 연기했다.[64] 당연히 요즘 나오는 담배인 궐련이 아니라 담뱃대다.[65] 조선 후기에는 세자빈도 '마마'가 아니라 '마노라'로 불렸으며, 다른 왕녀와 왕자는 혼인 전 궁에 살 때는 '아기씨', 혼인하고 봉호를 받으면 왕녀는 '공주/옹주 자가', 왕자는 '대군/군 대감'으로 불렸다. [66] 춘향전이 대표적인 예인데 변학도는 서얼이긴 하나 양반의 피가 흐르는 기생 성춘향에게 매추부를 요구했다가 거절하자 감옥에 가뒀다.[67] 다만 예술가로서의 기생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들은 자신의 생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서양의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처럼 높으신 분들의 경제적 후원이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팔거나 의뢰를 통한 수고비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지만 기생들은 자신의 작품활동이 경제적 이익으로 직결되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생들은 암암리에 매춘을 통한 생계와 재산축적을 하기도 하였다. 기생들의 매춘은 여성의 지위가 낮고 할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당시 사회상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자연 사건, 미투 운동처럼 여성의 지위가 개선된 오늘날에도 여성 연예인들 및 예술계 여성 종사자들이 성 관련 유혹에 시달리는 것을 본다면 과거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68] 왈자패, 하급 관리, 돈 많은 평민층[69] 조선시대 이전과 대한제국 시기에는 황상 및 황상폐하로 나왔다. 그리고 '성은'은 '황은'으로 변경.[70] 단, 고려 초기와 대한제국 시기에는 폐하[71] 단, 고려 초기와 대한제국 시기에는 만세[72] 떄문에 단군의 고조선 역시 그 사료가 매우 간략하기 때문에 사극으로 만들기 매우 힘들다. 나오면 거의 100% 작가가 창작해야 하는 수준.[73] 삼국시대를 기원전 1세기 부터라고 했을 때, 한중일 삼국의 역사자료를 뒤지면 7세기 삼국통일전쟁시 자료 100년치가 그 이전 600년 동안의 자료 양과 비슷하다.[74] 현대적 개념의 전면전인 6.25 전쟁을 제외하면 한국사에서 가장 큰 전쟁이었다.[75] 이 시기를 다룬 작품중에서는 삼국통일전쟁과 나당전쟁 모두를 관통하는, 삼국통일전쟁의 정석이라 할만한 작품인데도 정작 삼국통일전쟁은 후반부에 급하게 휘몰아치고 끝냈다.[76] 요즘 사극들이 워낙 고증을 안들호로 보내버려서 과거미화에 힘입은 것도 있지만 고증을 꽤 잘하기는 한 편. 근데 사실 《허준》 이전까지는 트렌디 사극, 퓨전 사극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고 어설프게라도 고증을 하고 보는 게 대세였다.[77] 백제가 주인공인 몇 안 되는 사극 가운데 하나로, 마지막 한두 화에서 무왕대 신라와의 전쟁을 묘사했다.[78] 어쨌든 마지막에 백제를 멸하는 것까지 다루기는 하니까... 학계의 정사인 삼국사기가 아니라 위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화랑세기의 내용을 차용하였고 그마저도 MBC 사극의 특징인 주인공 노예만들기, 하늘의 계시 등과 같은 요소들이 많이 개입되어 '사'극으로서의 가치는 많이 떨어지지만 어찌되었든 작품의 인기는 대단했으며 특히 미실은 주인공 이상의 인기를 얻었다.[79] 여당전쟁도 삼국통일전쟁의 일부이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고구려가 망한다.[80]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마지막 편에서 전투 과정이 내레이션으로만 묘사된다.[81] 민중왕부터 모본왕, 태조왕, 차대왕, 신대왕, 고국천왕, 산상왕, 동천왕, 중천왕, 서천왕, 봉상왕, 미천왕까지.[82] 사실 저 시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중적인 인지도도 엄청 떨어지는데다, 삼국사기를 들춰봐도 기록이 너무 빈약하여 사극으로 만들 내용이 적긴 하다. 만든다면 사극이 아니라 그냥 역사 재창조해야 할 정도. 10년 이상 집권했지만, 역사 기록이 A4지 한 장도 못채우는 왕이 한둘이 아니다. 백제의 중앙집권틀을 만들었다는 고이왕도 밑에 신하들이 누가 있었는지 거의 알기 힘든 판이다. 나름 백제에서 중요하다는 침류왕, 동성왕 등도 마찬가지.[83] 하지만 중반부터는 귀족들과 지방 호족들의 권력다툼이 심해져 반란과 쿠데타, 국왕 시해 등 정치적 혼란이 몰아친다.[84] 더 이전 시대인 삼국시대 중 기록이 빈약한 백제나 가야보다도 발해가 기록이 더 적다.[85] 일본 사극에서 가장 있기있는 3대 시대는 헤이안 말의 겐페이 전쟁, 전국시대, 그리고 막말~메이지 유신 때이다. 이때도 한국의 3대 시대처럼 이 시대가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고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 많기 때문, 중국도 가장 인기 있는 시대는 초한대전, 삼국시대다. 역시나 중요하고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 많다.[86] 임진왜란 못지 않게 크고 참혹한 외적의 침략이었던 여요전쟁, 여몽전쟁, 병자호란 같은 경우 사극 소재로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 편인데, 거란, 몽골, 만주족이 현재 민족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별다른 민족감정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거란족은 원나라 때 몽골족에 동화되어 사라졌음, 몽골족은 독립국가를 이루어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유지하고 있으나 옛 몽골 제국에 비하면 한참 약소국임, 만주족은 청나라가 멸망했을 뿐더러 전통복식을 제외하면 한족 문화에 거의 동화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음), 지금도 대한민국과 경쟁관계인 일본과 달리 드라마 내에서 아무리 적으로 띄워도 주목받기는 어렵다.[87] 2002년 MBC에서 최익현의 이야기를 다룬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를 만들었다.[88] 중화권 사극과 일본 사극 또한 한국사의 개화기, 구한말과 겹치는 시기인 청나라 말기/메이지 시대 배경 사극이 중화민국(중국 대륙 시절)/다이쇼 시대 이후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을 제외하면 사극들 중에서는 서양인이 가장 많이 나온다.[89] 일제강점기를 넘어 1970년대까지 다룬다.[90] 일제강점기를 넘어 6.25 전쟁까지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