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른호르스트

 

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의 장갑순양함
4.1. 벽람항로의 캐릭터
4.2. 전함소녀의 캐릭터
5. 독일의 여객선
6. 창세기전 시리즈의 등장인물


1. 프로이센군인


풀네임은 '''게르하르트 요한 다피트 폰 샤른호르스트'''(Gerhard Johann David von Scharnhorst).
1755년 11월 12일 ~ 1813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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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시대의 프로이센 출신 군사전략가. 이름은 샤른호르스트라고도 하고 샤른호스트라고도 하는데, 바이에른 지방 발음으로는 샤른호르스트가 맞고, 좀 더 일반적인 독일어로는 샤른호스트가 맞다. 원래 독일어 발음에서 모음 뒤에 오는 ‚r’ 은 모음을 좀 더 길게 발음해 준다. 한국어에서는 독일어의 r을 '르'로 음역하는 경향이 있어 샤른호르스트라는 표기도 유명하다.
부농의 아들이며 하사관 출신 부친[1]을 둔 사람으로 일찍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군대에 투신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노버에서 1777년 사관학교 졸업 후 독일 내 듣보잡 소국과 하노버 군대에서 싸우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2] 1801년에 프로이센에서 대령 직위와 귀족 대우로 스카우트를 했고 받아 들이면서 프로이센군에 복무하게 된다. 1806년에 나폴레옹군과 싸우다 포로가 되었으나 풀려나, 1807년에 참모총장이 된다. 이때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샤른호르스트를 초빙할 때 육군개혁안을 제출하면서, 만약 이 '''개혁안을 받아들인다면 참모총장의 직위와 귀족 신분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였고 둘 다 받아들여졌다!'''
'''근대적인 참모본부제도를 세계 최초로 창시하고''', 일반 시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여하고 국민군대의 창설에 힘쓴 인물로서 사실상 근대적인 징병제의 시초를 닦은 사람 중 한 명이며, 후일 大 몰트케에 의해 발전된 임무형 전술의 시초를 닦은 사람이다. 전격전이 소설이 된 현재 시점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독일군 전술전략철학인 기동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이래저래 전쟁사에 빠질 수 없는 업적을 쌓은 인물.
앙투안 앙리 조미니와 함께 포스트 나폴레옹 세대의 전략전술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인물. 전쟁론을 집필한 클라우제비츠에게는 사관학교 시절 스승이었고, 이후 참모본부 창설을 비롯한 주요 군 개혁 정책에서도 등용했다. 당연히 전쟁론 저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실무상으로도 대단히 유능한 인물 이었다.
1813년 블뤼허의 참모장으로 러시아에서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던 나폴레옹군을 추격했지만, 오히려 반격당해 전사한다.

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의 장갑순양함


해당 문서 참조.

3.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해군의 전함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참조.

4.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네임쉽


샤른호르스트(전함) 참조.

4.1. 벽람항로의 캐릭터


위의 전함의 의인화형이다. 샤른호르스트(벽람항로) 참조.

4.2. 전함소녀의 캐릭터


위의 전함의 의인화형이다. 샤른호르스트(전함소녀) 참조.

5. 독일의 여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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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저
1934년에 건조되어 샤른 호르스트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독일 로이드 기선소속의 1만톤급 화물 여객선으로 자매선은 그나이제나우, 포츠담이 있다. 이 3척은 브레멘-요코하마를 잇는 고속 극동 여객선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샤른호르스트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당시에 일본에서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었는데, 본국에서의 무전을 받고 기수를 돌려서 고베에 입항했다.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소련을 통해서 유럽으로 돌아갔고 선박은 고베에 장기간 계류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1942년 9월에 일본이 독일로부터 해당 함선을 구매하여 경항공모함 신요로 개조하였다.
참고로 남은 두 자매선의 행방은, 그나이제나우는 1943년 발트 해에서 기뢰를 맞고 침몰한 후 1950년 덴마크에 의해 인양되어 해체되었고 포츠담은 전후 영국에 넘어가 엠파이어 포위(Empire Fowey)라는 이름의 병력 수송선으로 이용되다 1960년 파키스탄에 팔려 1976년까지 카라치제다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으로 운항된 후 해체되었다.

6. 창세기전 시리즈의 등장인물


1의 오마주. 자세한 내용은 '''샤른호스트''' 문서 참고.

[1] 위키백과에서는 부농이며 하사관 출신 아버지로 써있고, 히브리대 전쟁사학과 마틴 판 크레펠트의 저서 <전쟁 본능>에 따르면 아버지가 프로이센 군대 하사관 출신으로 확실한데 동독시절 동독군의 빈약한 역사와 전통성을 만들기 위해 영웅 만들기로 빈농 혹은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 둔갑시켰다고 한다. 대장장이 출신으로 여러 곳에서 써있는 건 이 영향인 듯 함.[2] 이 시기 유럽의 장교들은 타국 군대에서 복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경우가 좀 다르지만 그의 제자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러시아에서 복무한 일이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귀족 장교들이 러시아군 진영에서 회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