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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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전투에서
1. 제원
2. 개요
3. 개발과정
4. 2차대전기의 IL-2
5. 전후
6. 그 외
7. 매체에서의 등장
8. 둘러보기
9. 참고 링크


1. 제원


IL-2M3 기준
  • 전장 : 11.6m
  • 전폭 : 15m
  • 전고 : 4.2m
  • 익면적 : 38.5㎡
  • 엔진 : 미쿨린 AM-38F V자형 12기통 액랭식 엔진, 출력 1,720마력
  • 자체중량 : 4,360kg
  • 전비중량 : 6,160kg
  • 최대탑재중량 : 6,380kg
  • 최대속도 : 414km/h
  • 항속거리 : 720km
  • 최대상승고도 : 5,500 m (31,825 ft)
  • 상승속도 : 10.4 m/s (2,926 ft/min)
  • 익면하중 : 160kg/m² (31 lb/ft²)
  • 무장
    • 주익에 VYa-23 23mm 기관포 2문 (1문당 150발)
    • 주익에 ShKAS 7.62mm 기관총 2정 (1문당 750발)
    • 후방 포탑에 Berezin 12.7mm 기관총 1정 (300발)
    • RS-82/RS-132 무유도 로켓 8발/4발 혹은 600kg 이하의 폭장 가능

2. 개요



Il-2 슈투르모빅(Ил-2 Штурмови́к)[1]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군용 항공기이다.[2]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맹활약한 소련군공격기.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역에서의 활약으로 독일 국방군Schwarzer Tod흑사병[3]으로 부르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T-34"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IL-2 시리즈의 총 생산량은 3만 6,000대 이상. '슈투르모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소련군(러시아군)이 '대지공격임무를 주로 하는 군용기'를 가리키는 군용항공기의 구분으로, 직역하면 '공격기'가 된다. 가끔 IL-2가 슈투르모빅이라 불리는 건 이 기체가 가장 유명한 슈투르모빅이기 때문이며 원래는 이 기체를 가리키는 고유명칭이나 애칭은 아니다. 슈투카와 비슷한 케이스이다.
소비에트중앙설계국의 기사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일류신이 설계하였으며 강력한 무장과 방어력[4]을 갖춘 걸작 공격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꺼운 강철판으로 조종석을 보강하여 조종사 생존율을 높이고[5] 기관포기관총, 로켓 등 다양한 무장을 탑재하였다.
라이벌인, 나치 독일Ju87 G형과 함께 쿠르스크 전투에서 대활약했다. 당시 독소 양측 전차병들은 서로 상대의 공격기를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3. 개발과정


1938년 말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항공기에 주목한 소련 정부가 소비에트 중앙 설계국에 대지공격기 개발을 지시하였다. 1939년 10월 TsKB-55라고 불린 2인승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하였으나 문제가 드러나면서 엔진을 교체한다.
그러나 여기서 초대형 문제가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소련수뇌부가 후방사수를 없애고 그 자리에 연료를 더 채우라고 요구한 것. 그렇게 되면 후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설계진은 반대했지만, 스탈린의 명령에는 항거할 수 없었고 그래서 1인승 TsKB-57가 만들어졌다. TsKB-57는 1940년 10월 시험비행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었고 1941년 초 양산되면서 IL-2라는 제식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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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IL-2

4. 2차대전기의 IL-2


독소전쟁이 터지자 소련 수뇌부의 이 판단은 제대로 보답을 받았다. 독일 전투기들이 IL-2의 뒤로 몰려와서 공격을 해댄 것. 덕분에 전장에 투입된 IL-2 대부분이 격파당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그러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의사에 거역하는 것은 그 당시 소련에서는 자살행위였고, 결국 야전부대에서 알아서 아래처럼 구식 폭격기나 수송기에서 분리한 포탑 등을 이용하여 후방사수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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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포탑은 당연히 부족했으므로 대부분의 야전부대는 그냥 후방에 기관총을 달고 조종석 뒤쪽에 공간을 만들어 후방총좌로 이용하였다. 물자가 부족한 일부 부대에서는 천으로 만든 임시 좌석이 있었을 정도라고. 그리고 이런 임시방편식 후방총좌는 당연히 중량 증가와 항력 증가로 인해서 로켓 탑재를 줄였음에도 기동성의 저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독소전쟁 초기에 소련 공군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어서 IL-2도 대지공격이 아니라 요격기로 자주 나갔으며, 안그래도 무거운 기체중량과 기동력 저하로 인하여 날랜 독일 전투기들의 밥이 되었다. 가끔씩은 Ju87과 지상공격기 대 지상공격기의 매치를 하기도 했다고.[6]
1942년에야 상부의 허가가 떨어졌고, 후방사수석을 신설한 IL-2M이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장갑판으로 후방사수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무게 문제, 특히 기존 디자인의 기체로는 무게중심이 과도하게 앞으로 쏠리게 되는 문제로 그러지 못하고 측면에만 빈약한 방탄판을 설치하게 된다.[7] 그런데 대부분의 독일 전투기들은 IL-2의 후상방에서 총을 쏘았고, 그쪽으로는 아무런 방호장비도 없었다!
게다가 독일 전투기들이 후방사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일부러 IL-2의 직후방으로 접근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후방사수는 비행기의 꼬리날개가 시야를 방해하고, 기관총 발사시 꼬리날개가 파손되면 비행기가 추락할 것을 우려해서 사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반해 독일 전투기는 맘놓고 후방사수부터 정밀하게 조준해서 끔살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는 IL-2만이 아니라 비롯 비슷한 형태로 후방기총을 장착하는 거의 대부분의 중,소형 폭격기 및 지상공격기 일반의 공통적인 약점이다. 나아가 수직미익으로 인한 사각 이상으로 심각한 약점이 또 있는데, 그것은 (후방-)하방에서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중, 소형 지상공격기들이 그렇듯 캐노피 뒤편에 후방 총좌가 배치된 경우 '하방에서 공격'한다고 해서 (이를테면 독일공군의 Bf 110 야간전투기 등이 하방 방어총좌가 없던 랭커스터등 영국의 중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일부러 '슈레게무지크' 같은 특수 무장을 달거나 한 것 처럼) 딱히 대단히 아래쪽으로 갈 필요도 없다. 거의 같은 고도나 다름없는 아주 약간만 더 낮은 고도로 추격하며 공격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8] 따라서 독일군은 물론이고 연합군의 전투기 조종사들도 이런 방식으로 후방기총을 지닌 적기를 상대하곤 했다.[9] 이는 이후 소련 조종사들이 - 아래 다시 언급될 것처럼 - 공격시 (초)저공비행으로 돌입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어느정도 극복되기는 한다.
아무튼 폭격기나 공격기의 방어 총좌는 적 전투기들이 노리는 제1의 타겟인 이상, 제대로 방어되지 못하는 후방 사수석으로 인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결국 병사들은 후방사수 자리를 거부하게 된다.
그래서 소련군은 형벌 부대에서 선발한 인원으로 공군 형벌부대를 만들고, 이들을 후방사수석에 태웠다. 물론 딱 기관총 사격훈련만 시키고, 낙하산 따위는 지급하지 않았으며, 그런 것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원래 형벌 부대란 것이 소모품 이하의 취급을 받은데다가, 어차피 비행기가 격추되기 전에 제일 먼저 적 전투기의 집중사격을 받고 죽을 것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죽어도 독일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기관총에 스프링을 달았다는 점이다. 독일 전투기의 총격에 후방사수가 죽을 경우 기관총이 아래로 푹 쳐지는데, 그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10]
그러나 후방사수 역을 맡은 사람이 모두 형벌부대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병사가 후방사수역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으며, 일반 병사들도 이 후방사수자리에 앉아서 싸우다가 전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련측에서는 결국 후방사수 보호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1944년도가 되면 후방사수석 주위에 13mm의 장갑판을 붙이기도 했다. 또한 DAG-10이라는 수류탄 투척기를 달았다.[11]
일단 독일군 요격기가 따라 붙으면 IL-2는 저공으로 내려와서 독일 요격기가 실속으로 추락하게 하거나 후방사수의 기관총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12] 하지만 후반으로 가자 IL-2 파일럿들이 러프베리 원형진 형태의 대공방어편대를 펼치면서[13] 출격해서 독일 요격기가 이들을 공격하기 껄끄러웠다.[14]
그리고 개발된 것이 날개를 15도 정도 후퇴시켜 비행성능을 개선한 IL-2M3이다. 또한 이전 버전에서 후방총좌를 신설하면서 겪은 무게중심 문제도 해결되어 후방 사수석에도 적절한 방어력을 부여할수 있게 되었다. IL-2M3는 1720마력의 미쿨린 AM-38F 수랭식 피스톤 엔진 1개를 탑재하였고 무장은 양쪽 날개에 23㎜ VYa-23 기관포 2문과 7.62㎜ ShKAS 기관총 2정, 조종석 뒤에 12.7㎜ 베레진 UB 중기관총 1정을 장착하였다. 또 동체 안 폭탄창과 동체 아래 100㎏ 또는 250㎏ 폭탄, 주날개 아래에는 RS-82 또는 RS-132 로켓탄을 탑재하였다.
이후에는 대전차용으로 37mm NS-37 기관포[15]를 장착한 "IL-2 Type 3M"[16]버전도 나타나며,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소련군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지속적으로 출격한다.
그리고 2차 대전시기 특히 1943년부터 슈트르모빅의 특징적인 무장으로 사용된 것의 하나는 "PTAB"이다. PTAB은 접이식 안정핀이 달려 있는 2.5kg 중량의 대전차공격용 소형폭탄으로 1.5kg 중량의 성형작약탄을 내장하고 있었다. PTAB은 공격기나 폭격기의 폭탄창에 혹은 48발 들이 카트리지를 이용 대량으로 탑재되어 (개별적으로 투발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물 상공에서 일제히 살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즉 현대로 치면 확산탄이나 특히 '자탄 디스펜서'[17]에 가까운 개념으로 사용되는 무장이었다. IL-2는 PTAB 폭탄 280발을 폭탄창에 직접 탑재하거나 혹은 48발들이 카트리지 4개, 192발을 탑재할 수 있었다. 이는 전선의 "점표적"을, 특히 전차[18]등을 정확히 타격하는 것은 일반 항공폭탄으로는 급강하 폭격으로도 쉽지 않았으며, 당시의 로켓탄 역시 적중률이 매우 낮아 유효한 대전차 공격 수단이 되기 어려웠기 때문.[19] PTAB에 장착된 성형작약탄의 관통력은 70mm 정도로 상면 장갑에 맞히면 티거 등의 독일군 중전차에도 충분히 타격을 입힐 수 있다. "PTAB"은 쿠르스크 전투를 시작으로 IL-2의 주요 무장의 하나로 계속 사용되었다. 물론 PTAB 자체는 소형기체에도 여러발이 탑재 가능한 사이즈의 폭탄이었으므로 Yak-9 등의 전투기나, 폴리카르포프 Po-2[20]에도 탑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열심히 PTAB을 뿌리고 다닌 것은 당연히 IL-2.
중장갑으로 떡칠을 했기 때문에 방호력은 매우 높았지만 다른 연합국의 지상공격기, 예를 들어 비슷하게 떡장갑과 사기적인 맷집으로 유명한 P-47 썬더볼트나, 호커 타이푼보다 폭장량은 떨어졌다. 또한 Ju 87와 같이 족집게처럼 목표를 타격하는 급강하 폭격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공격의 정밀성도 떨어졌다. 게다가 신병이나 다름 없는 초보 파일럿들을 대거 태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역시 소련답게, 워낙 대규모로 생산되고 출격했기 때문에 이런 단점들을 물량으로 상쇄할 있었다.
IL-2는 많이 생산된 만큼 손실량도 엄청났다. 이는 특히 전쟁 초반기에 극심했는데 1942년 봄에서 여름 동안 24소티당 1기의 손실을 겪었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시기에는 손실률이 10~12 소티당 1기까지 치솟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된 후방 총좌 삭제 같은 짓도 있었을 뿐 아니라, 급박한 전황에서 제공권이 열세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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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 전투에서 IL-2는 맹활약했는데, 이 때쯤이면 소련 공군이 동부전선의 제공권을 두고 독일군과 대등하게 싸웠기 때문에 IL-2는 적의 요격기를 신경쓰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래서 떼거지로 몰려오는 IL-2는 독일군 기갑부대에게 저승사자 노릇을 했다.[22] 독일군은 이 IL-2를 가리켜 흑사병이라고 할 정도였다.[23][24]

5.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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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23mm 4정을 장착한 최종개량형인 IL-10이 생산되었다.[25] 이 IL-10은 본래 중전투기였던 IL-1을 복좌식으로 개량한 공격기로 생산한 기체인데, 그 때문인지 속도와 기동성이 굉장히 뛰어났다. 소련내 자체 테스트에서도 소비에트연방영웅이자 37기 격추기록이 있는 조종사가 모는 LA-5FN을 상대로 모의공중전에서 승리(!)하였고, 실전에서도 Fw190을 1기 격추한 기록이 있다. 오죽하면 사령부에서 IL-10은 전투기가 아니라 공격기이니 공중전 훈련좀 그만 시키라고 하달할 정도였다.
IL-10은 전후에도 양산되며 많은 국가에 제공되었고, 6.25 전쟁에도 북한 공군 소속으로 참여하게 되지만 이미 시대는 제트기의 시대, 며칠만에 미국의 P-80 슈팅스타에게 모두 박살났다. 이후 전쟁에 끝날 때가지 제대로된 활약은 거의 하지 못했다. 참고로 북한 공군이 인천상륙작전 이후 김포공항에 버리고 도망간 IL-10 한 기의 사진이 김포국제공항/역사 문서에 있다.
이외에 크기는 살짝 줄이면서 고출력 엔진을 장착해 기동성을 더욱 강화시킨 IL-16 또한 개발되었으나 엔진 문제로 결국 취소되었다. 이 IL-16은 엔진이 2300마력이었는데, 비슷한 체급의 전투기P-47이 2600 마력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실제로 생산되었다면 Yak-3이 동부전선의 스핏파이어라 불린것처럼 IL-16도 동부전선의 썬더볼트라 불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전쟁 당시 김포공항에 버려진 북한 공군 소속 IL-10

6. 그 외


오토 카리우스가 지휘한 6호 전차 티거에게 한 대가 격추된 적이 있다. 편대로 진격해오던 IL-2 중 한 기를 카리우스의 티거가 대공 기총도 아닌 주포로 잡은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독일 기갑사단의 전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26] 티거의 주포인 88mm가 원래 대공포이긴 했지만 티거용은 포신이 짧아지고 앙각이 작아졌음을 고려하면...
다만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전차포로 항공기를 잡은게 처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도 전쟁내내 소련군이 T-34나 심지어 KV-1의 76.2mm 주포로 Bf109Bf110 등의 독일기를 여러대씩 때려잡는 흉악한 짓거리를 하고다녔기 때문. 단 이 경우 모스크바등 주요도시에 대공포를 올인하면서 전선에 대공포가 모자라 전차를 대공포 대용품으로 쓰면서 벌어진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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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내용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차남 바실리 스탈린도 전쟁 당시 IL-2 파일럿이었다. 26번 출격했다고 하며, 20대에 공군 장성까지 진급했다. 26번 출격 이외의 공식 전과로는 독일군의 Fw190의 격추도 있는데 이게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공격기인 A-10으로 공중전용 F-16을 격추한 거나 다름이 없으니 사실이라면 대단한 전과이긴 하다. 하지만, 스탈린 시절에 이미 붉은광장 상공의 시범비행에 대한 책임자를 맡았다가 사고때문에 좌천된 바있고,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하자 군에서 예편해 낙담해서 술독에 빠져살다가 4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전쟁 초기에 우랄 산맥 근처로 공장들을 이전했는데 너무 급하게 옮기느라 지붕을 덮지 않고 공장을 가동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혹한 환경 때문에 생산량이 저조한 와중에 "IL-2는 우리 군의 빵과 공기처럼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현재의 생산량이 너무나 저조한 것에 실망하고 있다"라는 스탈린의 편지를 받자 생산력이 급상승하여 1941년 1134기의 생산량중 독소전 발발후 885기 생산이라는 무시무시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한국전쟁 전에 북한에서 이 기종을 타고 월남한 파일럿이 있다. 당시 정비를 담당했던 사관들은 분해해서 살펴보고 문제가 있던 부분까지 고쳐 놨다고 한다.

7. 매체에서의 등장


2차대전 소련 공군의 상징과도 같은 기체다 보니 2차대전 소련군을 다룬 매체, 주로 게임에서 T-34와 더불어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SD 세계대전에서 '슈투르모빅'이라는 이름을 달고 소련군 유일의 공중 전투유닛으로 등장한다. 인구수를 무스탕과 동일하게 3을 차지하고 공대공 능력이 약하지만, 공격기답게 매우 튼튼한 내구도와 화끈한 공대지 화력을 자랑한다.
네이비필드에서는 소련의 2차 뇌격기로 등장한다. 지상공격기인 슈투르모빅을 왜 뇌격기로 등장시켰는지는 의문...이 아니라 뇌격기 기종으로 IL-2T라는 파생형이 있었다. 다만 어뢰를 달고다니는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소련은 2차 대전 당시에 항모를 운영한 경력이 없어서 게임에 나오는 소련 항모들의 거의 전부가 페이퍼쉽이거나 가상의 항모다. 이에 따라 함재기 또한 대충 끼워 맞춘 듯하다. 성능은 꽤나 발군. 어뢰의 속력이 매우 빠르고 안전거리가 짧아 적중률이 높다. 더불어 방어력과 내구력도 좋은 편. 대신 데미지가 약하고 속력이 느리다. 자리잡기가 중요한 뇌격기에게 느린 속력은 좀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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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2 (1941)
IL-2 (1942)
✙IL-2 (1942)
IL-2 M-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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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2-37
IL-2M (1943)
IL-2M 3식
IL-2M "복수자"
워 썬더에선 후방기총이 없는 1941년 / 1942년 형 IL-2와 후방기총이 달린 IL-2M 37mm 기관포 탑재형과 탑재하지 않은 IL-2M Type 3, 엔진출력이 향상된 대신 폭장량이 줄은 IL-10과 후방기총을 강화한 IL-10 1946년형으로 제법 다양하게 등장한다. 일단 공격기지만 장착한 23mm 기관포가 워낙 좋은지라 공중전에 나설 수도 있다. 다만 공격기의 한계상 전투기를 상대로 싸우기는 조금 버거운 게 사실. 자세한 건 워 썬더/항공 병기/소련 트리/공격기를 참고.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선 소련 공격기 트리에서 4티어에 시제기형인 BSh-2, 5티어에 후방기총이 없는 IL-2, 6티어에 후방기총이 장착된 IL-2(t), 7티어에는 IL-2의 개량형들이 등장하는데, 지상공격에 유리한 IL-8과 공중전에 유리한 IL-10이 등장하며, IL-10의 마개조형인 IL-10M도 중국 8티어 프리미엄 기체로도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두드러지는 튼튼한 방어력과 37mm 이상급 기관포와 폭탄, 로켓까지 장비한 화끈한 화력이 인상적이지만, 기동성은 IL-10이 아니면 날랜 편이 아니라 후방에서의 적 공격엔 좀 힘든 편. 그나마 후기 기종들은 방어 수단으로 후방 기총이 있지만, 이마저도 없는 IL-2는 초 저고도에서 적이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폭탄으로 견제하는 것 아니면 꽤 힘들다. 자세한 건 월드 오브 워플레인/소련 테크 트리/공격기를 참고. 프리미엄 5티어 공격기에 IL-2 야전개량형이 있는데, 이 기종은 37mm가 아닌 23mm로 무장한 대신 후방 기총이 장착되어있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선 소련군으로 플레이 하면서 공중지원형 스킬을 사용시 IL-2가 날아온다. 적을 공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찰도 잘 한다. 심지어 물자 투하 스킬을 사용 시에도 IL-2가 날아오는데, 그냥 날아올 때는 확인이 불가능 하지만 격추 당할 때 떨어지는 걸 보면 IL-2가 맞다. 수송기는 나올 일이 정말 없어서 그냥 모델링을 하지 않은 듯 하다.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소련군 1티어 공격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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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게임 IL-2


해당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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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참고 링크



[1] I(대문자 i)하고 l(L 소문자)로 쓰는게 맞다. 일류신(Ильюшин) 설계국에서 설계한 기체인데, 이 시절에는 설계국 기사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썼다. 일류신은 한 사람이므로 맨 앞글자만 대문자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두 사람이면 MiG, 세 사람이면 LaGG처럼 대문자가 여러번 나오게 된다.) 키릴문자로는 Ил-2이여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로마자로는 구별하기 어려워서 보통 IL-2로 쓰곤 한다.[2] 항공기 전체 생산량으로는 세스나 172가 자리를 물려받았다.[3] 비슷하게 소련 해군 육전대도 흑사병이라고 불렀다. 이는 해군 육전대 제복이 검은색 세일러복이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일반 보병 전투복 디자인으로 바뀌나 색은 검은색을 유지했다.[4] 설계 당시 날개를 단 탱크라는 생각으로 설계했다고 한다.[5] 이른바 욕조형 구조라는 것이며, 미국의 A-10도 따라할 정도다.[6] 이를 반영한건지 워 썬더에서 이벤트로 그 두 전설들에게 서로 공중전을 시켰다.[7] 이 무게중심 문제는 이후 주익을 약간 뒤로 후퇴시킨 IL-2M3에서 해결된다.[8] 이런 문제 때문에 중폭격기 혹은 중형 폭격기 중에서도 여러 기종이 미익보다 뒤쪽의 기체 후미에 따로 공간을 만들어 후미 총좌를 설치하지만 소형의 단발기들이 이런 해법을 쓰기 어렵다. 중, 소형 공격기나 급강하 폭격기 등이 임무의 특성상 대체로 전투기들보다 낮은 고도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또 뭐라고 해도 '6 o'clock high'가 가장 위험한 방향이니 사각이 있는 걸 알면서도 그냥 캐노피 뒤편에 후방 사수석 하나 더 만드는 선에서 때우는 것이다. 단발 공격기/폭격기가 그 이상의 수단을 강구 하기는 어렵다. 예외가 있다면 2차 대전 시기의 단발 폭격기/공격기 중 최고의 덩치를 자랑하던 '어벤저'가 기체 상부의 후방 총좌 외에 기체 하부에도 후방 기총을 추가로 설치한 정도.[9] 이를테면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과달카날 전투를 다룬 화에서도 미 해병대 소속 와일드캣 전투기 조종사가 바로 이런 식으로 일본군의 D3A 급강하 폭격기 편대를 격추시키는 일화가 등장한다. #(동영상의 40분 정도부터 해당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2차 대전 극초반 잠시 사용되던 영국의 "괴팍한 터렛 전투기"에 대해서도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은 같은 전법을 사용한 바 있다.[10] 이 방법을 고안한 자는 레닌훈장을 받았다! 흠좀무.[11] 이 수류탄은 발사후 낙하산이 펴진 뒤 3초 후 폭발하였다. 격추용이라기 보다는 요격코스를 방해하는 심리용 무기였다.[12] 그저 평범한 저공이 아니라 거의 '지면을 면도하듯'('shaving flight') 초저공으로 비행하는 경우도 흔했다. 좀 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NOE' 비행. 이런 초저공 비행은 위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일반적인 소형 공격기들의 조종석 뒤에 설치된 방어총좌의 사각인 하방으로 적 전투기가 따라붙을 공간을 주지 않는 유용성도 있다. 물론 이런 초저공 비행의 목적은 방어상의 편의 뿐 아니라, 독일군이 공습을 알아채고 대비하기 전에 기습하기 위한 이유이기도 했다. 지면을 '면도하듯' 날아온 IL-2들이 종종 언덕 뒤에서, 심지어는 숲 뒤에서 튀어나와 독일군을 덮치는 일도 흔했다.[13] 8기 정도로 편대를 짠 IL-2들이 목표 상공 위에서 원형으로 방어대형을 짜고 선회비행을 하다가, 한 두 기씩 빠져나와 지상에 공격을 가하고 다시 방어대형으로 복귀하는 전술. 쿠르스크 전투 때 부터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종종 "죽음의 원 Circle of Death"이라고도 칭해졌다고 한다. 물론 공중전으로 치면 사실 평범한 '러프베리 원형진'이지만, 밑에 있는 독일 지상군의 기분으로는 '죽음의 원' 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14] B-17의 경우, 한두대의 후방기총의 사격은 별 문제가 안되지만 여러대가 방어대형을 짜고 비행하면 돌입이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한다. 물론 IL-2와 B-17의 체급과 후방기총의 숫자가 동급은 아니지만 꽤 까다로웠을 것이다.[15] 비슷한 시기에 슈투카 역시 37mm 대공포를 지상공격용으로 장착하였다.[16] 다만 특히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떡장을 바른 독일의 중전차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상면장갑을 노려 공격한다 해도 효과를 보려면 40도 이상의 거의 급강하 폭격에 준하는 고각도에서 사격해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적잖았다. 때문에 전투 효율이 생각보다 적다고 여겨져 비교적 소량인 약 3500대 정도의 생산에 그쳤다고 한다. (2차 대전기 소련의 기준에서는 이 정도가 소량생산이다...)[17] 이를테면 한때 토네이도 전폭기의 무장이던 MW-1, JP-233 자탄 디스펜서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된[18] 이건 '점표적'이고 '방호된 표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움직이는 표적이기까지 하다.[19] 이 때문에 앞에 언급되는 "IL-2 Type 3M"이나 슈투카의 '카노넨포겔' 및 호커 허리케인도 40mm 기관포를 탑재한 대전차 공격 전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기체들은 일단 화기의 무게와 부피 덕분에 비행성능이나 항속거리 등이 확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고, 대전차 공격 이외의 범용성이 별로 없는 기체가 되는 것 역시 당연지사다. 게다가 슈투카의 37mm 기관포 탑재형의 경우 총 1문당 12발의 탄약만을, 허리케인의 40mm 기관포 탑재형도 15발의 탄약 밖에 적재하지 못했다. 1문당 50발 씩의 탄약을 탑재한 IL-2의 37mm 기관포 탑재형은 그나마 양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대신 폭장량은 최대 600kg에서 200kg으로 1/3로 줄었다. 허리케인의 40mm 기관포 탑재형은 이보다 조금 더 나았던 듯 하지만, 슈투카의 37mm 탑재형은 그 이외의 폭장능력은 사실상 포기했다. (덧붙여 급강하 폭격용의 '다이브 브레이크' 또한 삭제되었다. 어차피 쓸 일이 없으니. 셋 중 위력도 가장 강하지만 동시에 중량도 가장 큰 화기를 탑재한 덕분이다. 슈투카 G형에 탑재되었던 BK-3,7 기관포의 중량은 무려 295kg. IL-2 Type 3M에 탑재된 NS-37 기관포 - 중량 140kg - 의 두배이다.) 즉 '전용 대전차 공격기'라고 해도 오늘날 A-10 같은 항공기가 하듯 미사일과 폭탄 잔뜩 달고 기관포탄도 1000발씩 싣고 전장 상공을 주구장창 떠다니며 보이는 족족 박살내는 '탱크킬러'와는 거리가 멀었다. 현재로 따지면 대전차 미사일 2~4발 탑재한 '경량 무장헬기' 미만의, 공격기 한 대가 떠서 '운좋으면' 전차 한 대 잡고 - 역시 어느정도는 운이 따라줘야 돌아 - 오는 이상이 되지 못한다. 이는 당시의 일반 전투기, 전폭기나 급강하 폭격기가 폭탄 한두발 달고 날아가 표적 하나에 폭탄 하나 떨구고 돌아오는 것과 별로 다르지도 않은 것이지만, 다만 2차 대전 당시의 범용한 일반적인 공격기나 전폭기가 사용할 수 있던 무장으로 전차라는 '방호된 이동하는 점표적'을 격파하기 매우 어려웠던 때문에 이런 유형의 전용 기체도 만들질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데 만일 다른 임무에도 활용가능한 범용한 기체로도 대전차 공격 소티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줄 수단이 있다면? 즉 전체적으로 따지면 범용한 공격기, 전폭기에 '전차 한 대 잡자고 소형폭탄 200개를 무차별 살포하는 무장시스템'을 탑재해서 쓰는 것이 '대구경 기관포를 탑재한 대전차 공격 전용기'를 따로 만들어 쓰는 것 보다 실제로 더 경제적인 수단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걸 쓸 군대가 '소화기나 소구경 대공화기에 피격되는 정도는 엔간하면 그냥 씹고 계속 날아다닐 만큼 튼튼한 공격기는 잔뜩 있지만 숙련된 조종사는 부족한 공군'이라면, 몇 발 탑재하지도 못하는 포탄을 적 전차에 - 그것도 관통이 가능한 정확한 부위에 - 명중시키기 위해 더 오래, 더 난이도 높은 비행을 하(고 따라서 더 많은 위험요인을 감수해야 하)는 대신 그냥 휙 지나가면서 폭탄 무더기 주욱 뿌려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적절한 방책일 것이다. 사실 미사일이 일반화된 지금도 대전차/대장갑 자탄형을 포함해서 다양한 종류의 클러스터 폭탄은 근접항공지원의 단골 무기의 하나이다.[20] 구식화된 복엽 훈련기였으나 야간폭격 등에 사용되기도한[21] 물론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미국의 자원 지원으로 인한 기체 방호력의 향상과 소련 공군의 성장으로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반면 독일은 영국과 미국의 폭격 공세로 인해 서유럽에 상당한 전력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에 기체 성능에서는 여전히 소련 공군에게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그 격차는 대전 초만큼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었고, 소련 공군이 숫적 우위를 바탕으로 독일 공군에게 우세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교환비 자체는 독일 공군이 와해되기 전까지 독일 공군이 앞서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전쟁 최후반이 되면 독일공군은 방공전투만 치르기도 벅찬 지경이되어 지상 공격을 나설 상황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래도 전투 손실의 다수는 전투기보다는 폭격기나 공격기일 수밖에 없으니. 물론 누구처럼 자살공격기를 날려 마지막까지 상대에게 에이스가 될 기회를 조공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22] 23mm 기관포는 당시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의 웬만한 장갑차량은 걸레짝으로 만들 수 있었다.[23] 소련군 해군 육전대에게도 이 별명이 붙었다.[24] 재미있는 점은 당시 소련 기갑부대 역시 무시무시한 기관포를 탑재한 Ju87 G형, 일명 "카노논포겔"을 매우 두려워하였다는 점이다. 이 사람의 영향도 있었다.[25] 다만 IL-10은 1944년 첫 비행을 마친 후 1945년 독소전 후반기에 실전을 치뤘고, 그 당시에는 IL-2와 마찬가지로 23mm 2정과 7.62mm 2정을 장착하고 있었다.[26] 오토 카리우스 회고록을 읽어 보면 맨날 똑같은 경로로 가길래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세팅해놓고 쐈는데 격추했다고 한다. 우연과 계산의 합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