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레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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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PRESTO / EXCEL[1] / PONY[2]
MITSUBISHI PRECIS[3]
1985년 2월에 포니의 후속 차종으로 출시된 1세대 엑셀(X1)의 세단 타입으로, 그 해 8월에 시판되었다.
1986년 1월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하여 X1 엑셀과 같이 판매되었으며, 그 해 엑셀을 포함해 168,000여 대를 판매해 현재까지 미국에서의 수입차 진출 첫 해의 최다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해 9월에는 5마일 범퍼, 새로운 디자인의 라디에이터 그릴 등이 적용된 미국 수출형 AMX를 선보였다. 1987년 2월에는 전동식 선루프와 자동형 카세트테이프 스테레오 오디오가 장착된 ETR[5] , 그 해 7월에는 1,300cc 엔진이 추가되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1988년 4월에는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10,000대 한정 판매 사양인 올림픽 팩이 출시되었고, 그 해 7월에는 엑셀을 포함해 생산 100만 대를 돌파했다. 1989년에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친 2세대 엑셀은 세단이 대표가 되어 프레스토라는 차명은 소멸했다.
초기 모델은 1.3 FX, SUPER, 1.5 FX, SUPER로 바리에이션되어 있었고, 1985년 8월 세단형인 프레스토가 추가되었다. 이후 1986년에는 3도어 모델인 엑셀 스포트(나중에 스포티로 이름을 바꾼다.)가 추가되었고, 동시에 미국 수출형 모델인 AMX가 추가되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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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택시로도 인기가 많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판에서 장군봉의 택시가 바로 이 차.[7]
X1 엑셀은 1985년 2월 8일에 이전까지 현대자동차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명인 포니의 차명을 계승하며, '뛰어난 포니'라는 의미를 가진 포니엑셀로 출시되었다. 그 당시까지의 가장 특별한 점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승용차로는 최초로 전륜구동이었고, 후드가 열리는 방향이 우리나라의 다른 많은 승용차와는 반대 방향이었던 점이었다.[8][9] 소형차로는 당시 고급 사양이던 타코미터 및 오토 리버스 카 스테레오와 디지털 전자 시계가 장착되었고, 계기판에 도어가 열린 상태를 위치별로 파악할 수 있는 경고등을 기본으로 두었으며, 에어컨은 옵션이었다. 출시 당시에는 1.3FX와 1.5FX, 1.5 SUPER 등 3가지 트림이 있었다. 같은 해 7월 8일에는 5도어 해치백인 엑셀을 기반으로 만든 4도어 세단인 프레스토가 출시되었다.
1986년 1월에 현대자동차는 비로소 미국에 진출하며, 포니 엑셀과 프레스토를 엑셀이라는 차명으로 판매하였다. 미국 진출 첫 해에만 168,000여 대를 팔았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고, 이 기록은 미국에 첫 진출한 자동차 회사 중에서도 현재까지 가장 높은 기록이다. 그러나 잦은 고장과 열악한 사후 처리로 인해 반짝하던 인기는 식어 판매가 감소했고,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미지도 추락했다. 1986년 9월에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AMX(아멕스)가 대한민국에서 출시되며 대한민국의 포니 엑셀이 미국 판매명과 같은 엑셀로 차명이 변경되었고, 3도어 해치백인 엑셀 스포트(이후 엑셀 스포티로 차명이 변경됨)가 선보였다. 1988년 7월에는 프레스토를 포함하여 100만 대 생산을 돌파하였다.
전술했듯이 후드를 여는 방향이 와이퍼 쪽이다. 우리가 아는 것과 반대로 열리며, 플립 프론트 방식을 쓴다.[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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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시장에 미쓰비시 브랜드로 배지 엔지니어링 되었던 차량이다. 미쓰비시 프레시스 문서 참고.
HYUNDAI PRESTO / EXCEL[1] / PONY[2]
MITSUBISHI PRECIS[3]
1. 개요
1985년 2월에 포니의 후속 차종으로 출시된 1세대 엑셀(X1)의 세단 타입으로, 그 해 8월에 시판되었다.
2. 상세
1986년 1월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하여 X1 엑셀과 같이 판매되었으며, 그 해 엑셀을 포함해 168,000여 대를 판매해 현재까지 미국에서의 수입차 진출 첫 해의 최다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해 9월에는 5마일 범퍼, 새로운 디자인의 라디에이터 그릴 등이 적용된 미국 수출형 AMX를 선보였다. 1987년 2월에는 전동식 선루프와 자동형 카세트테이프 스테레오 오디오가 장착된 ETR[5] , 그 해 7월에는 1,300cc 엔진이 추가되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1988년 4월에는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10,000대 한정 판매 사양인 올림픽 팩이 출시되었고, 그 해 7월에는 엑셀을 포함해 생산 100만 대를 돌파했다. 1989년에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친 2세대 엑셀은 세단이 대표가 되어 프레스토라는 차명은 소멸했다.
초기 모델은 1.3 FX, SUPER, 1.5 FX, SUPER로 바리에이션되어 있었고, 1985년 8월 세단형인 프레스토가 추가되었다. 이후 1986년에는 3도어 모델인 엑셀 스포트(나중에 스포티로 이름을 바꾼다.)가 추가되었고, 동시에 미국 수출형 모델인 AMX가 추가되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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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택시로도 인기가 많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판에서 장군봉의 택시가 바로 이 차.[7]
X1 엑셀은 1985년 2월 8일에 이전까지 현대자동차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명인 포니의 차명을 계승하며, '뛰어난 포니'라는 의미를 가진 포니엑셀로 출시되었다. 그 당시까지의 가장 특별한 점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승용차로는 최초로 전륜구동이었고, 후드가 열리는 방향이 우리나라의 다른 많은 승용차와는 반대 방향이었던 점이었다.[8][9] 소형차로는 당시 고급 사양이던 타코미터 및 오토 리버스 카 스테레오와 디지털 전자 시계가 장착되었고, 계기판에 도어가 열린 상태를 위치별로 파악할 수 있는 경고등을 기본으로 두었으며, 에어컨은 옵션이었다. 출시 당시에는 1.3FX와 1.5FX, 1.5 SUPER 등 3가지 트림이 있었다. 같은 해 7월 8일에는 5도어 해치백인 엑셀을 기반으로 만든 4도어 세단인 프레스토가 출시되었다.
1986년 1월에 현대자동차는 비로소 미국에 진출하며, 포니 엑셀과 프레스토를 엑셀이라는 차명으로 판매하였다. 미국 진출 첫 해에만 168,000여 대를 팔았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고, 이 기록은 미국에 첫 진출한 자동차 회사 중에서도 현재까지 가장 높은 기록이다. 그러나 잦은 고장과 열악한 사후 처리로 인해 반짝하던 인기는 식어 판매가 감소했고,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미지도 추락했다. 1986년 9월에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AMX(아멕스)가 대한민국에서 출시되며 대한민국의 포니 엑셀이 미국 판매명과 같은 엑셀로 차명이 변경되었고, 3도어 해치백인 엑셀 스포트(이후 엑셀 스포티로 차명이 변경됨)가 선보였다. 1988년 7월에는 프레스토를 포함하여 100만 대 생산을 돌파하였다.
전술했듯이 후드를 여는 방향이 와이퍼 쪽이다. 우리가 아는 것과 반대로 열리며, 플립 프론트 방식을 쓴다.[10][11]
2.1. 미쓰비시 프레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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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시장에 미쓰비시 브랜드로 배지 엔지니어링 되었던 차량이다. 미쓰비시 프레시스 문서 참고.
3. 제원
4. 여담
- 네덜란드에서 귀국한 뒤 울산 현대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허정무가 광고에 출연했다.
- 지금도 간간히 보이는 엑셀과 달리 프레스토는 진짜 보기 힘들다.[12] 심지어 90년대 초반에도 이 차를 오래된 차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일례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인 이주노가 데뷔 초기에 이 차를 타고 다녔었는데, 당시 내레이션이 하는 말이 "이주노는 낡은 프레스토를 직접 몬다"라고 했을 정도. 이 때가 1992년이었는데, 프레스토가 단종된지 불과 3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13]
- 부활의 3집 보컬 김재기가 타던 차가 프레스토였다. 40만원짜리 중고차였다고 하는데, 이 차를 타고 가다 사고로 요절했다. 자세한 건 김재기 문서를 참조.
- 크로뮴 유출 사고로 인한 법정 공방을 그린 미국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주인공 에린이 초반에 타는 차로 나온다. 물론 80년대 중후반에 미국에 수출된 현대차의 이미지가 그렇듯 주인공의 경제적 빈곤함을 보여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 전 농구선수 서장훈이 아는 형님 256화에서 프레스토를 보면 그날 시합이 잘 된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시합 갈 때 프레스토를 계속 찾고 못 찾은 날에는 시합하기 전에 찻길에서 프레스토가 지나가기 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5. 둘러보기
[1] 북미/호주 시장 수출명. [2] 유럽시장 수출명. [3] 북미 시장에 3도어 모델 한정으로 미쓰비시 브랜드로 리뱃징하여 판매되었다.[4] 썬루프 세단이라는 광고 캐치프라이즈를 사용하였는데, 이 당시에도 썬루프는 고급 옵션이었다. 인슬라이딩 오픈 방식이지만, 요즘같이 원터치는 아니다.[5] 애초에 "Electronic Tape & Radio Deck"의 약자이다.[6] 이 때 포니엑셀에서 엑셀로 바뀐다.[7] 원작에서는 포니2.[8] 단,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열리는 차종 자체는 많았다. 당시의 BMW 차들도 대개 X1 엑셀과 같은 방향으로 열렸으며, 한국산 자동차 중에서도 기아 브리사가 이러한 방식이었다.[9] 포니엑셀과 프레스토에 플랫폼을 제공한 미쓰비시 1세대 미라지 역시도 이런한 방식으로 후드가 열렸으나, 1983년에 2세대로 모델체인지 되면서 후드가 일반적인 방향으로 열리게 바뀌었다. 이후 현대 2세대 엑셀도 이러한 점을 반영한건지 2세대 미라지 처럼 후드가 일반적인 방향으로 열리게 되었다.[10] 당시의 BMW 차들과 프랑스 차들 중 이 방향으로 열리는 것들이 많다.[11] 당시 국내에 출시된 승용차들 중에서 신진자동차의 코로나(70년식 이전), 기아자동차의 브리사, 피아트 132도 본네트가 이렇게 열렸다.[12] 그러나 광주 한 아파트에서 프레스토 한대가 발견되었다. [13] 이건 그 시대에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는 게, 80년대 후반 국산차의 평균 수명이 3~5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국산차의 품질이 조악했었고, 자동차 회사들도 이에 맞추어 모델 세대 교체를 했기 때문이다. 현대 엑셀 문서에서 국내 평판 부분의 28번 각주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