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기

 


'''부활의 3대 보컬리스트
김재기
'''
'''출생'''
1968년 12월 28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1] 불광동
'''사망'''
1993년 8월 11일 (향년 24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고가도로
'''데뷔'''
1988년 록 그룹 뉴 작은하늘 'New Little Sky'
'''가족'''
형 김재관, 동생 김재희
'''활동'''
1988년 뉴 작은하늘 보컬
1991년~1993년 부활 보컬
'''신장'''
185cm[2]
1. 개요
2. 김재기와 부활
2.1. 부활의 재기의 가장 큰 밑바탕이 된 인물
2.2. 갑작스럽게 떠난 재기, 하지만 또 다른 희망이었던 동생 재희
2.3. 미완성으로 남겨진 앨범 - 부활 3집 '기억상실'
3. 미디어에서 회상되는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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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가수. 부활의 3집 앨범 기억상실의 타이틀 곡인 '사랑할수록'을 불러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부활의 3대 보컬리스트. '''부활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보컬리스트 중 한 명'''[3]으로 꼽히지만, 3집 앨범 발매 전 불의의 교통사고요절하여 그의 뛰어난 재능을 미처 세상에 펼쳐 보이지 못한 참으로 비운의 보컬리스트라 할 수 있겠다.

2. 김재기와 부활



2.1. 부활의 재기의 가장 큰 밑바탕이 된 인물


1988년에 록 그룹 '뉴 작은하늘'[4]의 보컬로 데뷔한다. 앨범에 수록된 그에 대한 짤막한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Vocal 김재기''' : 저음과 중음, 고음 등의 한계성을 가진 종전의 Vocalist들과 다르게 '''자유로운 곡선 형태'''를 보여주고 있고, 어딘지 모르는 '''우수적인 그의 목소리'''가 귀에 애처롭게 끌린다.

영상에 수록된 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김재기는 데뷔 당시 겨우 20살을 갓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위에 서술된 표현과 같이 중저음은 물론이고 매우 효율적인 비강 컨트롤을 기반으로 한 샤우팅과 초고음역대[5] 까지 완벽히 소화하는 등, '''매우 넓은 음역대'''를 가지고 있는 대단한 신예 보컬리스트였다. 하지만 그룹 '뉴 작은하늘'이 앨범 발매 이후 상업적 성공이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얼마 못 가 해체되는 바람에 별 다른 음악 활동 없이 지내다, 1990년에 김태원의 중학교 친구인 장동명 목사가 불광동에 죽이는 보컬이 있다며 방황의 늪에 빠져있던 부활의 김태원에게 김재기를 소개시켜 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6]
김태원은 교회에서 김재기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곧 바로 부활의 보컬로서 음악 활동을 함께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교회에서 공연을 하던 김재기와 첫 만남을 가진 당시 김태원의 소감에 따르면, 김재기가 예배당에서 노래를 부를 때 그 성량이 '''마이크를 쓰지 않고서도 예배당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게 할 정도'''로 엄청났다고 하며, 우수 어린 허스키한 음색,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김재기만의 보컬 스타일이 바로 김태원이 추구하는 음악성과 잘 어울린다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잘 이어질 듯 하지만, 김재기는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1991년 갑작스레 군입대를 하게 되고, 김태원은 충격으로 다시 방황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7] 하지만 김태원을 방황의 늪에서 끌어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재기였다. 김태원이 감옥에 있을 때 편지를 통해서, 그리고 전역 후에도 김태원을 찾아가서 지속적으로 음악 활동을 독려해 준 사람이었다. 그룹 부활의 재기에 가장 큰 밑바탕이 된 사람이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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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팔씨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김태원(左)과 김재기(右)
결국 김태원은 김재기의 도움에 힘입어 음악을 다시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그룹 '부활'의 세 번째 앨범 '기억상실'의 본격적 앨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1993년 드디어 앨범은 완성을 앞두고 있었고, 일부 곡의 최종 녹음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2.2. 갑작스럽게 떠난 재기, 하지만 또 다른 희망이었던 동생 재희


3집 앨범 작업이 한창이던 1993년 8월 11일 밤에 김태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불법주차로 인해 자신의 40만원짜리 중고차[9]가 견인이 되어서, 갑작스레 과태료를 낼 돈 34,000원이 필요하다는 김재기의 전화였다. 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김태원은 내가 최대한 돈을 구해볼 테니 기다려 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김재기와의 통화 후에 김태원은 주변의 지인으로부터 돈을 구할 수 있었고, 돈을 다음날 아침에 재기에게 전해줄 생각으로 잠자리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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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기가 바람으로 떠났다'''

김태원의 노트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만다. 어제 통화를 했던 김재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사연인 즉슨, 김재기는 전날 밤 자력으로 이미 돈을 구해서 견인된 자신의 차를 찾아서 공연 활동차 경기도 파주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홍제동 고가도로를 지나다가 마주오던 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어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이었다.[10] 1993년 8월 11일 오전 3시.[11] 비보를 전해들은 김태원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그룹 '부활'의 음악 활동 역시 불투명해 보였다.[12][13]
하지만 김재기는 이미 예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자신과 같은 가수로서의 활동을 준비하던 그의 친동생인 재희에게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한데,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내 자리를 대신해 달라'는 유언 같은 당부를 남겼다고 한다.
김재기가 죽은 이후 그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가 직접 김태원에게 재희를 소개시켜주며 재기와 목소리가 비슷하니 부활 보컬로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이로 인해 김재희는 김재기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음반 활동에서 동생 김재희가 고인 대신 보컬로 서게 된다. 실제 동생 김재희의 음색은 고인의 음색과 많이 비슷했으며, 그것은 김태원에게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장례식 이후에도 한참 그의 죽음으로 슬퍼하던 김태원은 이후 김재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전 김재기가 자주 불렀던 '무정 부르스'를 불러달라고 했고, 김재희는 덤덤히 불러주었다. 이때 김태원은 다시 희망을 보았다고 회고했는데, 처음엔 신중하고 신중한 김태원이 조금씩 녹음에 불렀다. 이후 김재희는 부활의 3집 정규 보컬리스트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타이틀곡 '사랑할수록'의 엄청난 인기 덕분에 형이 생전에 못다한 꿈과 자신이 이루고픈 가수의 꿈을 함께 이루게 되었다.[14]

2.3. 미완성으로 남겨진 앨범 - 부활 3집 '기억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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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3집 '기억상실'은 1993년에 발매되었다. 처음에는 시들한 반응에 김태원은 또 실패했다 생각했으나, 타이틀 곡 '사랑할수록'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앨범 발매 후 근 10개월 만인 1994년 하반기 당시 최고의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었던 KBS 가요톱10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이 곡이 담긴 3집 앨범은 1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는 등 그룹 부활은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멋지게 부활하게 되었다. 특히 3집은 부활 역사상 가장 높은 음반 판매고를 올린 정규앨범으로 기록되기도 한다.[15]
하지만 이 앨범에서 김재기의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는 '사랑할수록'을 포함하여 모두 3곡 뿐이다.[16] 그래서 이 앨범은 미완성이고, 그래서 이 앨범은 더 절절하다. 김태원은 앨범의 나머지 부분을 김재기에 대한 추모로 채웠다. 앨범의 전체적인 정서는 그리움과 아련함이다. 김태원은 이 앨범을 통해 '감성적 록'이라는 부활의 노선과 색깔을 새롭게 제시했다. 그저 '결이 곱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김재기의 목소리는 김태원의 음악 안에서 절정을 이룬다. 김태원의 기타 역시 전과 같은 속주나 기교 중심의 연주 대신 철저히 김재기의 목소리에 맞춰 선을 그려가는 예술을 나타낸다.
그런데 김재기의 음색이 녹음된 3곡 모두 사실 앨범 최종본으로 녹음된 트랙이 아닌 데모 트랙으로 녹음된 것이었다. 여러가지를 체크하고 수정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보는 Take 1으로 이루어진 가이드 녹음. 김재기는 3집 앨범 작업을 하면서 '사랑할수록'을 비롯한 노래 3곡을 처음으로 데모 트랙 녹음만 마친 상태에서, 얼마 안 있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버린 것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김재기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세션의 진행상황은 이러했다. 낮에는 원래 타이틀곡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소나기'의 녹음을 진행했고[17], 잠깐 쉬는 시간에 신곡 '흑백영화'를 리허설 형식으로 최초로 녹음했다.[18] 이 곡의 코러스 부분은 김재기가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가사인데, 이는 당시 <희야>를 제외하고 김태원이 다른 사람에게 가사를 맡긴 유일한 곡이다. 이후 저녁 시간에는 <사랑할수록>의 스튜디오 데모를 단 한 번 녹음했다고 한다.[19] 그 후 스튜디오 대여 시간이 끝나자 김재기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먼저 스튜디오를 떠났고[20] 김재기 혼자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남았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김재기는 이 데모 트랙들을 그대로 이 노래를 앨범에 실을 생각으로 부른 것이 아니었으며, 한 번 불러 녹음한 후에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버려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데모 트랙임에도 불구하고 김재기가 워낙 잘 불러준 덕에 김태원이 부활 3집을 김재기의 유작이라는 차원에서 김재기의 음색이 담긴 트랙으로 앨범에 무난히 실은 것인데, 이들 중 '사랑할수록'이란 곡이 완전 대박을 치게 된 것이다.[21]
김재기의 데모 녹음 트랙이 그대로 담겨진 앨범의 곡을 들어보면, 1번에서 묘사한 김재기의 가창력에 대한 김태원의 서술이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재기의 가창력은 무척 대단하다. 이게 데모 트랙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미 완성도가 높은 트랙이기 때문이다. 만약 고인이 지금까지 생존하여 음악 활동을 했다면 한국 록 보컬의 전설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다.
3집에서 그가 부른 곡들 중에 '소나기' 역시 서정적인 곡으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이후 부활의 보컬들인 박완규, 이성욱, 정단, 정동하가 각각 베스트 앨범 '이솝의 붓'과 7집 'Color'의 CD2, 9집 'Over the rainbow', 'Live & Unplugged'에 곡을 리메이크했다. 이승철도 이 곡을 리메이크하여 자신의 정규 4집 앨범에 수록하기까지 한다.[22] 원래 이 노래는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노래였는데, 김재기의 죽음으로 김태원이 그에 대한 추모와 회상을 주제로 내세웠다고 밝혔다. 2011년에는 나는 가수다 경연에서 가수 박정현의 미션곡으로 선보였다. 박정현이 부른 '소나기'는 하림이 서정성을 극대화 시킨 아일랜드 풍의 포크록 스타일로 편곡하여 멋지게 재해석하기도 했다.[23]
3집의 '8.1.1'이란 트랙은 연주곡으로, 그가 사망한 8월 11일을 추모하는 의미로 넣은 것이다. 그리고 명곡 '흑백영화' 역시 김재기가 후렴을 불렀으나, 그가 뜻하지 않은 사망으로 이루지 못하자 김태원이 1절과 2절의 앞부분을 그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녹음했다고 한다. '흑백영화'의 가사는 김재기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가사이며, 당시 김태원이 작곡한 곡 중 유일하게 다른 사람에게 작사를 맡긴 곡이라고 한다. 만약 김재기가 살아있었다면 다른 곡들의 가사도 그에게 부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원이 김재기를 얼마나 아끼고 인정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또한 3집에 숨겨진 어쩌면 굉장히 섬뜩한 사연으로, 3집에 수록된 '' 이라는 연주곡은 원래 김재기의 보컬곡으로 쓰이기로 예정된 곡이었으나, 김재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김태원의 코러스만 들어간 채 연주곡으로 앨범에 실리게 된다. 그 이후 2004년에 원티드서재호가 이 곡을 취입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녹음을 준비하던 중 김재기의 사망일 2004년 '''8월 11일'''에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이후 또 다른 원티드의 멤버 하동균의 코러스만 실린 채 연주곡으로 남아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의 삽입곡으로 쓰이게 되었다.

3. 미디어에서 회상되는 '김재기'


2008년 김태원이 예능 프로 첫 나들이를 한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서 김태원의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오랜만에 지상파에서 언급되기 시작하였으며, 2010년 8월 20일에는 SBS 맛있는 초대에서 김태원이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김재기와의 에피소드 및 그에 대한 김태원의 안타까운 심정을 꽤 깊게 그려내기도 했다.[24]
2010년 12월 18일에 김태원의 음악 일대기를 그린 KBS 드라마 스페셜 '락 ROCK 樂'에서 김태원의 음악 인생에서 큰 도움을 주는 인물로 비중 있게 그려졌으며, 2011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김태원이 김재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의 이야기가 꽤 비중 있게 다뤄졌다.
2011년 5월에 나는 가수다 경연에서 김재기가 부른 '소나기'가 박정현의 미션곡으로 선보이면서 그에 대한 소개가 나오기도 했다.
2013년 10월 12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추모 특집에서 동생 김재희가 출연하여 '사랑할수록'을 열창하였다.
2016년 5월 10일에 방송된 EBS 리얼극장에서 김재기의 동생인 김재희, 그리고 큰형인 김재관[25]이 함께 출연하여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하며 대화하는 컨셉으로 김재기의 갑작스런 요절로 인한 아픈 가족사와 관련해 두 사람의 솔직한 생각을 나누는 모습을 소산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1] 불광동은 1979년에 신설된 은평구로 넘어가게 된다.[2] 여담으로 삼형제가 키가 큰 편이다. 동생인 김재희가 179cm이고 맏형인 김재관 또한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방송에 나온 김재희하고의 투샷을 보면 못해도 평균이상인 174cm정도 되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3] 인상이 강한 보컬로는 박완규이승철이, 부활 역사에 공이 가장 큰 보컬로는 정동하가 꼽히지만, 김재기는 부활로써의 대작이자 유작으로 남은 노래가 부활 역사상 최고의 대곡 중 하나로 불리며 죽은지 한 세대가 다 지나가는 오늘날에도 기억되고 있어 역시 최고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4] 1984년 결성된 록 밴드 '작은하늘'에서 형 이근형이 동생 이근상에게 그룹 명을 물려주며 멤버를 재정비한 그룹이다.[5] 작은 하늘 시절에 부른 저녁 노을이란 곡에선 3옥 솔#을 내지르는가 하면, 하늘이란 곡에선 3옥타브대의 초고음을 '''20초 이상''' 쩌렁쩌렁하게 내질러 유지하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뉴 작은 하늘 시절 곡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인 끝없는 환상 역시 3옥타브 이상의 고음들이 난사되는 괴랄한 난이도의 곡인데, 김재기는 이걸 쩌렁쩌렁한 성량으로 그냥 소화해 버린다; 3옥타브 미를 찍는 고음곡으로 유명한 나자레스의 love hurts로 부활 오디션을 봤는데, 마이크 없이도 어마어마한 성량으로 노래를 너무 쉽게 소화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김태원이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6] 참고로 장동명 목사는 김재기 뿐만 아니라 당시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를 모두 연결해준 사람으로, 김재기와 함께 김태원의 가장 큰 은인이다.[7] 이 때 김태원이 대마초 흡입으로 2차 구속이 되기도 하였다.[8] 김태원 역시 '김재기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부활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당시 김재기의 도움은 가히 절대적이었다.[9] 현대 프레스토였다.[10] 김태원의 음악 일대기를 그린 KBS 드라마 스페셜 '락 ROCK 樂'에서는 그 당시 김재기 소유의 중고차가 등장하는데, 와이퍼가 고장나서 작동되지 않았으나 수리비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빨래줄을 연결하여 수동 조작하게끔 만들어 놓았고, 김태원이 조수석에 타고 김재기와 함께 갈 때 수동으로 조작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비가 많이 내렸지만 김재기 혼자 운전한 탓에 와이퍼를 작동시킬 수 없어서 그냥 운전하다 시야 미확보로 인해 사고가 난 것으로 묘사되었다.[11] 그로부터 11년 후 원티드의 멤버 서재호도 교통사고로 같은 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12] 김태원은 이 날 비보를 전해 듣고서 자신의 일기장에 ''''아, 재기가 바람으로 떠났다''''라는 한 문장으로서 자신의 심정을 기록했다. 남자의 자격 '내 친구 김태원, - 남자, 그리고 친구 알기' 방영분에 그 일기 구분이 나온다. 이후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김재기에게 34,000원을 건네주지 못한 것에 ''''죽는 날까지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13] 사고 지점이 홍제고가도로였는데, 이후 2012년에 중앙버스전용차로 설치로 인하여 철거되었다.[14] 하지만 김재희의 가수로서의 행운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부활의 4집이 대중성을 잃으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여 결국 4집을 끝으로 부활을 탈퇴하고, 1997년부터 솔로 앨범을 선보이고, 가무진이라는 예명으로 다시 재기해 보려 하지만 신통치 않았다. 현재 뮤지컬과 CCM 가수로 활동 중이다.[15] 1994년 음반 판매량 2위였다.[16] 나머지 두 곡은 '소나기'와 '흑백영화'.[17] 원래 이 녹음본은 김태원이 녹음에 대해 만족하지 않아 폐기하고 다음날 재녹음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18] 김재기의 사후 해당 트랙은 당시 완성되지 않았던 절 부분은 김태원이 가사를 붙여 김재기의 목소리를 따라해서 녹음하였고, 코러스와 하이라이트 부분은 이 날 녹음한 김재기의 목소리가 쓰였다.[19] 이 역시 다음날 다시 녹음할 예정이었다고 한다.[20] 녹음을 진행한 김도향의 스튜디오가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일찍 출발했다고 한다.[21] 김태원은 자신이 앨범 작업을 할 때 최종 녹음 과정이 무척 까다롭기 때문에, 만약 이 곡이 정식으로 최종 녹음 과정까지 완료되었다면 엄청난 퀄리티를 가진 곡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원곡의 경우 상당부분 기술적으로 숨겨두고 있긴 하지만 특히 <흑백영화>에서는 뭔가 이질적인 보컬 파트의 녹음 상태, 테이크 끊어간 흔적, 호흡 처리 등이 남아있어서, 당시에도 노래는 잘하는데 녹음이 잘못된 것 같다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22] 사실 이승철은 솔로 데뷔 때 '마지막 콘서트'로 인기를 얻었을 때부터 이미 이런 리메이크로 자신의 곡으로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가 부활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건 꽤 된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희야', '슬픈 사슴', '회상 3'...[23] 하지만 박정현 본인도 걱정했던 부분과 같이 국내 정서상 다소 생소한 스타일의 음악이었던지라 투표에서 7위를 하는 아쉬움을 가져오기도 했다.[24] 사실 그 이전에도 가끔 과거에 대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본인이든 기자든 김재기의 이야기를 꼭 꺼냈다. 김태원은 그때마다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 정도로 아꼈던 인물이 김재기였다. 어느 방송에서나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1993년으로 돌아가서 흐름을 바꾸고 싶다고 했고, 가장 애착이 남는 곡은 '사랑할수록' 혹은 '소나기'라고 언급한다. 언젠간 김재기 가요제를 꼭 열고 싶다고.[25] 김재기와는 6살 터울, 김재희와는 9살 터울의 큰형으로, 유년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생업 때문에 집을 비우는 부모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동생들인 김재기와 김재희를 뒷바라지 해주었다. 학교에 상담도 큰형이 대신 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