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택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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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5대 통일부 장관
현인택
玄仁澤 | Hyun In-Tak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일'''
1954년 9월 27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무근성[1]
'''본관'''
연주 현씨
'''최종 학력'''
UCLA 국제정치학 박사
'''가족'''
아내 황병완, 슬하 1남 1녀
'''약력'''
제35대 통일부장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
고려대학교 기획예산처 처장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편집위원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상임이사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자문위원
제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 인수위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사회과학원 연구위원
한일포럼 운영위원
1. 개요
2. 학력
3. 경력
4. 일생
5. 강의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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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정치학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정년퇴임하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제35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2. 학력


1968년 제주북국민학교
1971년 제주제일중학교
1974년 제주제일고등학교
1978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1981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석사]
1990년 UCLA 국제정치학 박사[박사]

3. 경력


1990. 8.~1992.10. 사회과학원 연구위원
1992.10.~1995. 3. 세종연구소 부연구위원
1995. 1.~1999.12.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1995. 3.~1997. 2.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1997. 3.~2002. 2.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1999. 9.~현 재 (사)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략연구’ 편집위원장
2000. 1.~2000.12.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2000. 7.~2001. 6.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통일정책분과)
2001. 1.~2008.12.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2002. 3.~현 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2. 6.~2003. 2. 고려대학교 기획실장
2002. 7.~2004.11.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2003. 4.~2010. 9. 고려대학교 2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2003. 7.~2004. 6. 통일부 정책자문위원(남북회담분과)
2005. 1.~2005.12.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2005. 2.~2005.11. 고려대학교 기획예산처장
2006. 1.~2006.12 한국정치학회 이사
2006. 1.~2006.12. 한국국제정치학회 국제정보분과위원회 위원장
2006. 3.~2008. 2.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회 합참분과 위원
2007.12.~2008. 2.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2008. 4.~2009. 2.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통일정책분과)
2008. 5.~2009.2.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2009. 2.~2011.9. 제35대 통일부장관
2012. 3.~2013. 9. 고려대학교 4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4. 일생


현인택은 1954년 9월 27일 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무근성에서 택시운수사업과 목재사업을 하던 현계호 선생(2012년 작고)과 이순자 여사(2018년 작고)의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제주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서울로 상경하여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원래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고려대학교의 학교 신문인 '고대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동아일보 광고 사태를 보고 기자의 꿈을 접었다. 그 후 그는 학사를 졸업하고 향후 주미대사외교부장관, 고려대학교 총장 서리를 역임하는 한승주 교수의 지도 하에 그의 첫 번째 제자로 석사를 졸업한다.
그 뒤 1년 간 잠깐 고려대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다가 1984년 미국으로 떠나 UCLA 박사 과정에 입학한다. 박사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도 약 3년 간(1987 - 1990) 조교를 역임한 그는 1990년 한미일 외교를 다룬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채 한국으로 귀국한다.[2]
1990년 8월 귀국 후 사회연구소에서 근무 후 1992년 10월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95년 3월, 자신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의 조교수가 된다.
고려대에서 조교수 - 부교수 - 정교수를 역임하고, 통일부에서 여러 직책을 맡으며 국내 외교안보 학계에서 일약 유명 교수로서 명성을 얻었다. 또한 역시 고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 그의 주요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3] 구상에 기여했고, 김하중 통일부 장관에 이어 제35대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된다.
임명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의혹으로 낙마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4] 2009년 2월 12일 통일부장관에 공식 취임한다.
2년 동안의 통일부 장관 재임기에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을 겪었고, 때문에 제대로 된 남북대화 기회는 없었다. 그나마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타계 당시에 조문 사절로 방문한 북측 대표단과 접견했던 정도가 있었을 뿐.

5. 강의


학부에서는 국제정치학의 기본 이론들을 살펴보는 '국제정치론(1학기)'과 미국 행정부외교 정책을 살펴보는 '미국외교정책론(2학기)'를 강의한다.
그 외에도 가끔 '동북아국제관계'[5], '현대국제정치외교세미나'[6], '국제사회와 국제정치'[7]를 강의한 적이 있다.
대학원에서는 '국제정치접근법(1학기)'와 '한국과동북아국제질서연구(2학기)'를 강의한다.
강의는 PPT 등 자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판서와 말로만 진행된다. 따라서 강의하는 모든 내용이 곧 시험문제이다. 이 때문에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기자처럼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래도 수업 도중 가끔씩 본인의 장관 시절 경험, 유명인과의 만남 에피소드를 얘기하기도 한다.
처음 수업을 듣다보면 두서없이 느껴지지만, 듣다보면 체계적인 강의 진행에 학생들이 호평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다른 강의들과 호환성이 좋아서 다른 전공을 듣다보면 그가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목소리가 매우 작다. 그런데 마이크를 잘 안 쓴다.

6. 기타


- 규제를 싫어하며, 장관 시절 본인의 직접적인 소관 분야는 아니었지만 편의점 내 의약품 판매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전해진다.
- 박사 학위 논문에 'For Parents'(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침)이라고 쓴 바 있다.
- 색소폰 연주를 기가 막히게 잘 한다.

- 젊었을 때와 지금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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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사] 논문은 'ASEAN의 統合理論的 考察 : 成長의 要因과 統合의 限界', 지도교수는 동(同) 대학 정치외교학과 한승주(韓昇州) 교수[박사] 논문은 'Between compliance and autonomy : American pressure for defense burden-sharing and patterns of defense spending in Japan and South Korea', 지도교수는 Hans H. Baerwald[2] 박사 과정을 밟던 중, 훗날 학풍과 정책 노선에서 상반되는 행보를 나타내는 연세대학교문정인 교수(당시 메릴랜드 대학교 박사과정, 같은 제주도 출신으로 사이가 각별)과 공동으로 논문을 집필하기도 한다[3] 북한이 비핵화와 시장 개방을 하면 1인당 gdp를 3000까지 올라가게 한다는 정책[4] 특히 북한 연구가 전문이 아니고, 한미동맹 강조 등 보수 우파에 가까운 입장을 견지해 통일부 장관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만약 외교부 장관이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정도에 임명되었다면 반응이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5] 2004년 1학기[6] 2004년 2학기[7] 2006년 2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