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야 케이
1. 소개
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야구선수. 포지션은 1루, 3루, 좌익으로 전형적인 코너라인만 맡은 중장거리포 노망주다.[4]
2. 선수 경력
고교 시절에는 2루, 3루 ,유격을 왔다갔다했던 거포 내야수였다. 코시엔 출전은 현 대회 결승에서 패한 것이 최고라 경험이 없지만 고교 통산 46홈런을 기록한 거포 유망주인데다 유격수가 가능한 선수라서 공수가 모두 수준급인 선수로 주목받았고 결국 치바 롯데 마린즈의 4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2.1.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거포 유망주답게 2년차부터 2군 4번타자를 꿰차는 등 기대를 많이 받았으나 1군에서는 대타, 대수비 위주로 나왔으며 그마저도 좋지 못했다. 거포 유망주라면서 똑딱질만 해댔다.
일단 2군에서는 2007년 홈런 8위, 2008년 홈런 8위, 2011년 홈런 6위, 2012년 홈런 2위, 2015년 홈런 2위를 기록하면서 2군에서는 더 보여줄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군만 오면... 2016년에는 팀에 쓸만한 1루수가 없었기 때문에 전 해에 홈런 페이스도 좋았다는 이유로 주전 1루수로 자주 나왔다. 마침 2군 본즈 라이벌[5] 이노우에 세이야가 15년에 부진했고, 16년에는 1군에서 주전 1루수를 경쟁하긴 했지만 호소야에 비해 컨택이 너무 안 좋아서 자멸해주는 덕분에 꾸준히 주전 1루수로 나오고 데뷔 첫 시즌 100안타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6] 그러나 컨택은 .275로 평균 이상이었지만[7] 거포라면서 홈런을 너무 못 쳤다... '''풀 타임을 뛰었는데 1루수가 3홈런이라는 것은 당연히 자격 미달.''' 이 해부터 좌익수 겸업을 시작했다.
결국 2017년에는 사실상 좌익수, 1루수 백업으로 추락했다. 타율도 1할 대로 추락...
2.1.1. 2018 시즌
2군에 박혀 있다가 6월 13일에 드디어 콜업되었다.
그러나 대타, 대수비 위주로 나오다가 6월 30일에 천관위를 1군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3주도 못가서 도로 말소.
1군 성적은 6경기 9타수 2안타 타율 .222 0홈런 0타점.
2군 성적은 7월 5일 기준 45경기에서 타율 .301 4홈런 29타점 OPS .841로 더 보여줄 게 없다.
일본 위키백과를 보면 2016년에 호소야가 드디어 도약했다고 했는데 현실은 걍 플루크...
8월 21일 야스다 히사노리 대신 1군에 콜업됐다.
9월 2일 기준 10경기에서 타율 .214로 나아진 게 없다. 심지어 안타 3개 친게 전부 단타다.
9월 22일 후쿠우라 카즈야가 2000번째 안타를 치게 되자 그 자리에 대주자로 들어가서 1득점을 올렸다. 그러나 타석에는 못 올라왔다.
9월 23일 야스다 히사노리의 대주자로 나와 1도루를 기록했다. 타석에는 바로 앞 타자 미키 료가 병살을 치는 바람에 들어서지 못했다.
9월 29일 대타로 나와 아웃.
시즌 최종 성적은 21경기에서 4안타 0홈런 1도루 타율 .182. 최악.
2.1.2. 2019 시즌
2군에서 타율 3할 7푼대에 OPS 1.100을 넘기는 폭격 끝에 4월 16일 오카를 대신해서 1군에 올라왔다.
4월 17일 2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출장했지만 무안타.
그 후로 타석에 올라오는 일 없이 대주자로만 나오는 중. 그렇게 발이 빠른 선수도 아닌데 유재신마냥 전문 대주자로만 나오고 있다(...)
그리고 5월 6일 이노우에 세이야의 대주자로 나와 견제사를 당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 후 1루 대수비로 들어갔다.
5월 8일 대타로 나와 땅볼아웃.
5월 17일 에무라 나오야의 대타로 나와 땅볼아웃. 한 1주일에 한 타석 나오는데 타격감이 좋을리가..
5월 20일 1군에서 말소. 말소 전 성적은 12경기 7타수 무안타 타율 0.000
또 2군을 폭격하면서 6월 9일 1군에 돌아왔다. 이날 대타로 나와 시즌 첫 안타를 쳤다.
6월 12일 대타로 나와 1타점 적시타를 쳤다. 시즌 첫 타점.
6월 16일 대타로 나왔으나 고대로 아웃당했다. 타율은 .167까지 추락.
6월 18일 대타로 나온 후 좌익수로 들어갔다. 2타수 1안타 기록.
6월 19일 대타로 나와 안타를 쳤으나 이후 주루사를 하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팀은 이미 3점차로 이기던 중이라 승리.
6월 21일 대타로 나와 초구치고 아웃.
교류전이 끝난 이후로는 이노우에 세이야 대주자나 하다가 2군으로 사라졌다.
2.1.3. 2020 시즌
2군에만 있다. 타카하마 타쿠야와 함께 2020년 롯데 내야진 중 가장 벼랑끝에 몰린 상황.
10월 6일, 1군에서 일어난 집단 코로나 감염사태 덕분에 기적적으로 1군에 콜업되었다. 무려 12명이나 말소된 상황이라 기회가 돌아왔다. 이날까지 2군에서 45경기 2홈런 23타점 2도루(2도루자) 타율 .288에 OPS .773으로 무난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10월 11일 대주자로 시즌 첫 출장을 했다. 그러나 그것을 끝으로 10월 16일 1군에서 말소. 방출이 사실상 확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도 쓸놈쓸의 피해자가 되니까 일본 웹에서도 이구치 감독이랑 호소야가 마주친다면 '''"너는 누구니? 이름이 뭐야? 어느 팀 소속이야?"'''라는 말을 감독이 할 거라는 드립이 나오고 있다(...).
결국 11월 4일 1차 방출자 명단에 들었다. 시즌 기록은 1경기 0타석 출장에 그쳤다.
3. 플레이 스타일
입단 당시에는 거포형 내야수로 주목받았고 2군에서는 중장거리포 정도의 장타력을 보여주지만 1군에서는 똑딱질만 한다. 다행히도 컨택은 1군에서도 나름 먹히는 편. 하지만 선구안은 좋지 않다. 주루는 그래도 평타는 치는 듯. 2군에서는 두자릿수 도루도 한 걸 보면 터지지 못한 툴가이.
4. 기타
- 고등학생 때 무시무시한 파워 때문에 별명이 군마의 고질라였다고 한다.
- 자신이 태어날 때에 해체한 록밴드 BOØWY의 팬이라고 한다.
- 마린즈 마스코트 중 하나인 즈 쨩이랑 절친이라고 한다(...) 즈 쨩은 껌 아저씨라고 호소야를 부른다고... 이외에도 2014년에 방출당한 헤이우치 히사오, 이시미네 쇼타가 즈 쨩의 절친이라고 한다.
- 고교생 드래프트 중 최하위 픽이었으나 드래프트 동기 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뛰고 있다.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동기까지 합쳐도 네모토 슌이치가 은퇴하면서 호소야가 유일한 현역이 되었다. 또한 2019년 시즌 이후 후쿠우라 카즈야가 은퇴하게 되면서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멤버 중 유일하게 일본프로야구에서 현역으로 뛰는 내야수가 되었다.
[1] 현재는 이세사키 시[2] 등장곡이랑 응원가가 일치히다. 단 원래는 응원가랑 다른 곡을 쓰다가 최근에 바꾼 것.[3] '''Oh yeah~ 細谷圭 細谷圭 オオオ...(오 예~ 호소야 케이~ 호소야 케이~ 오오오)''' 일본 응원가 치고는 매우 심플하다.[4] 아마추어 때는 사실 유격수였고 지금도 시키자면 유격수도 볼 수 있는데 2019년 현재는 주로 코너라인만 맡는다.[5] 말이 좋아서 라이벌이지 호소야는 풀타임으로 뛰게 해도 15~20홈런 정도의 중장거리포였고 이노우에는 풀타임으로 뛰게 하면 30홈런 이상도 기대해 볼 만한 진퉁 슬러거였다.[6] 사실 이 시즌에 주전으로 발돋움한 것은 시즌 초에 대타로 나와 역전 만루홈런을 날리는 임팩트있는 활약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7] 그래봤자 규정타석 미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