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미네 쇼타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야구코치이자 전 일본프로야구 선수. 데뷔 첫 해 혜성같이 등장해 최고의 리드오프 자리에 올라섰으나 바로 다음 해 부터 백업자리도 간당간당한 플레이를 보이며 추락했다. 야마다 테츠토를 거르고 뽑은 1라운드 망픽의 대표 사례 중 한 명. [1]
2. 아마추어 시절
오키나와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2]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스즈키 이치로의 사인을 받은 후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아버지는 육상 코치였기 때문에 중학교 때까지 육상과 야구를 병행했고, 현 대회에서 200m 금메달을 따는 등 촉망받는 육상 유망주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때 육상을 포기하고 야구에 전념하기로 결정.
고시엔에 나간 적은 있으나 별 활약은 없고 대학 진학 이후 대학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거듭나며 국가대표팀에도 뽑히는 등 상위지명이 확실한 특급 유망주로 성장하였다. 실제로 2010년 드래프트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 외에 오릭스 버팔로즈도 1차지명을 했다.[3] 하지만 추첨 끝에 결국 롯데가 지명권을 가져가며 치바롯데에 입단. 계약금만 한화로 거의 10억원을 받았다.
3. 2011 시즌
입단 이후 8월 달에 잠깐 편도선염으로 빠지기는 했으나 그 외에는 거의 전 경기를 출장하며 그 해 데뷔한 신인 중 유일하게 규정타석 달성에 성공하였다.
또한 10년 만에 신인 30도루에 성공하면서 최고의 리드오프로 거듭나는데 성공했다.
시즌 성적은 126경기 타율 .261 2홈런 21타점 30도루. 데뷔 첫 시즌부터 110안타를 치며 100안타도 넘겼다.
4. 2012 시즌
시범경기에서 1번타자로 계속 고용될 정도로 기대를 많이 받았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소포모어 징크스만 보여주면서 24경기 출장으로 1군에 별로 못 있었다. 그래도 2군에서 38도루(11도루자)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했다.
5. 2013 시즌
2012년보다 월등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지만 감독이 주로 플래툰으로 기용하였기 때문에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주로 좌완 선발일 때 선발로 출전하였고 그 외에는 주로 오기노 타카시의 대수비로 기용되었다.
시즌 성적은 106경기 타율 .234 3홈런 11타점 8도루. 하지만 플래툰과 대수비를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150타수도 되지 않았다.
6. 2014~2016 시즌
2014년에는 89경기에 나왔지만 타율은 2할을 겨우 넘겼고, 8도루를 기록했지만 도루자도 6개나 기록하면서 주루 플레이에서도 강점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2015년에는 아예 백업 경쟁에서도 밀려 34경기 출장에 그쳤고, 2016년에는 부상까지 겹치면서 겨우 3경기에 나와 타율 .000을 기록했다.
2016시즌이 끝난 후 2011년 자신이 입단할때부터 달았던 등번호 5번에서 38번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부활에 성공하지 못하고 줄곧 2군에서 보낸 이시미네 자신조차도 순순히 이를 받아들였으며, 훗날 5번은 2017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팀에 입단한 야스다 히사노리에게 들어간다.[4]
7. 2017 시즌
부상에서 회복되었는지 초반에는 스타팅 멤버로도 나오는 등 나름 중용되었지만 1할 7푼이라는 식물타격 때문에 오기노 타카시, 로엘 산토스 등 라이벌들에게 밀려서[5] 중반에 2군으로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6]
시즌 성적은 52경기 타율 .173 0홈런 4타점. 안타를 18개 쳤는데 그 중 16개가 단타였다(...)
8. 2018 시즌
시즌 초반은 2군에서 맞았다가 4월 12일 후타키 코타 대신 1군으로 콜업되어 그날 바로 6번 지명타자로 나섰다. 이날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 후로 한 경기에 대타로 나와 번트를 댄 후 4월 18일 아름다운 2군행. 대신 그 날 선발을 맡기로 한 카라카와 유키가 콜업되었다. 6일 동안 1군에서는 2경기 2타수 1안타를 기록.
4월 28일 기준 치바롯데 꽃미남 투표에서 8위를 기록중(...)[7]
7월 10일 오기노 타카시가 부상으로 2개월간 재활하게 되면서 1군에 돌아왔다.
7월 16일 후쿠우라 카즈야의 대주자로 나와 끝내기 도루자를 기록하면서 말아먹었다.
7월 18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로 폭망.
7월 20일에도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였으나 전 경기와 반대로 3안타로 활약.
오기노의 부상 덕에 얼떨결에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
7월 24일에도 6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한다.
그 후로 몇 경기 더 중견수로 나왔으나 얼마 못가 2군행. 기회를 너무 못 받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올 시즌을 끝으로 방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중.
9. 2019 시즌
일단 이 시즌은 살아남았는데 이구치한테 단단히 찍힌 핵심멤버(?) 중 한 명이라 올해도 앞날이 가시밭길이다.
현재 2군에서 13경기에 나와 타율 .290에 1도루 1도실 기록중. 근데 안타가 전부 단타이다(...)
6월 17일 기준 34경기에서 타율 .211에 2도루로 최악. 안타는 여전히 단타밖에 없다. 이게 1군 성적도 아니고 2군 성적이다.
예상대로 방출당했고 은퇴 의사를 밝혔다. 2군 최종전 때 오랜만에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왔는데 그게 사실상 은퇴경기의 의미였던 것.
방출 후 인터뷰를 보니 구단에서 코치나 프런트 쪽 자리를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구단에서 영입 제의가 왔다고 한다. 고민한다는 기사가 나온 거로 봐서는 은퇴를 미루고 다른 팀에서 마지막 도전을 해 볼 수도 있을 듯. 일단 롯데는 1군 코치라는 나름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한다.[8]
결국 롯데의 코치제안을 수용하며 파란만장했던 1라운더 잔혹사를 종결하였다.
11월 17일 팬 감사제에서 은퇴식을 치뤄주었다. 그래도 원클럽맨이라고 챙겨 주는 듯.
10. 지도자 시절
2020년에는 롯데의 1루 주루코치를 맡았다. 딱히 특별히 주루플레이에서 이상한 짓을 한다거나 하진 않는 중. 그러던 중 10월 6일에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대신에 네모토 슌이치가 1군 주루코치로 복귀.
11. 플레이 스타일
발이 빠르다. 발이 빠르기 때문에 수비범위가 넓어서 중견수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자원이다. 하지만 은근히 유리몸 기질이 있다.
타격은 대학 시절에는 뛰어났으나 파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자주 날렸다. 한마디로 똑딱이. 그래도 대학 시절에는 특급 교타자 자원으로 주목받았는데 프로에 가니 교타 능력도 안 통해서 망했다.
12. 연도별 성적
13. 기타
- 동생도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형과 달리 프로에 가지 못하고 실업야구 쪽으로 진출.
- 대학교 때 얼마나 잘했냐면 세계대학야구 일본 대표팀이 이시미네 재팬으로 불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 자신이 상대해본 투수 중 가장 뛰어난 투수로 마에다 켄타를 꼽았다.
- 일본에선 나름 이케맨 대접을 받는 듯 하다. 호불호 갈릴 인상이긴 해도 약간 제프 하디닮은 훈남이긴 하다. 실제로 치바롯데 꽃미남 투표에서 2016년에 5위를 기록했다.
- 사토자키 토모야는 의외로 A급으로 분류했다. 배팅 센스도 있었고 도루 능력도 있었으나 수비에서 입스 비슷한게 와서 송구능력 저하 문제가 온 게 컸다고 평가했다.
[1] 거의 류거나에 버금가는 역대급 신인지명 중 하나. 그러나 류거나보다 나은 건 롯데 말고 오릭스(고토 슌타)라든가 닛폰햄(사이토 유키-4구단 경합), 요코하마(스다 코타), 세이부(오이시 타츠야-6구단 경합. 근데 세이부는 3라운더 아키야마를 건졌다.), 소프트뱅크(야마시타 아야츠구. 여긴 드래프트는 '''야나기타 유키 한 명''' 빼고 다 망했고 육성선수들도 '''4(센가 코다이)''', 5(마키하라 타이세이), 6라운더(카이 타쿠야)만 터지는 진풍경을 연출한다.)등이 같이 망했다는 것. 특히 9명을 뽑아서 그 중 8명이 2020년 현재 은퇴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1명도 라쿠텐으로 가서 거기서 부상으로 육성선수로 강등당한 요코하마가 최악. 사실 이 해 지명된 1라운더 중에서 제대로 살아남은 선수가 별로 없다.[2] 여담으로 어릴 때 야구 연습이 없으면 바다에서 수영하면서 물고기를 잡는 게 취미였다고(...)[3] 사실 롯데도 오릭스도 첫 지명에서 추첨에 패해 두번째 지명을 한 거였다. 여기서 롯데가 이기면서 오릭스는 꿩 대신 닭으로 야마다 테츠토를 지명. 근데 그 야마다도 야쿠르트와 중복지명이었기에 야쿠르트가 야마다를 데려가게 되었다. 결국 3연속 꽝을 뽑은 오릭스는 고토 슌타를 지명하게 되었다.[4] 지바롯데의 고졸야수가 입단하자마자 한자릿수 등번호를 받은건 니시오카 츠요시 이후 15년만이었다.[5] 시즌 초에 중견수 자원만 무려 3명이나 됐다. 문제는 그 3명 다 식물타격... 그나마 오카다 요시후미가 40타수 무안타 행진을 벌이다가 일찌감치 2군으로 밀려나 주었는데 그 유리몸 오기노 타카시가 풀 시즌을 완주하였고, 5월 달에는 또다른 식물타격 중견수 자원 로엘 산토스가 영입되는 바람에(...) [6] 중견수 외 코너 외야수의 경우는 타격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미 좌익수에는 타격왕을 두 번이나 차지한 카쿠나카 카츠야가 있고, 우익수에는 이시미네보다 타격이 좋은 기요타 이쿠히로, 가토 쇼헤이 등이 있기 때문에 이시미네가 갈 곳이 없다. [7] 치바 롯데 마린즈는 매년 꽃미남 1-5위까지를 투표로 뽑는다. 참고로 15-17시즌까지 3년 간 오기노 타카시가 1위를 해서 18시즌에서 그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으로 취급하여 투표가 불가능하다. 인터넷/현장 투표를 받으며 남녀 모두 투표할 수 있지만 여성 표만 집계에 들어간다. [8] 아마 외야수비나 주루코치 쪽으로 추정. 마침 1루 주루코치 네모토 슌이치도 2군 코치로 밀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