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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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두산 베어스 2군 코치.
2. 플레이 스타일
주로 대수비, 대주자로 출전한다.
10시즌이 넘는 오랜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홈런이 1개라는 것도 대단하고, 홈런을 제외하더라도 커리어하이 시즌이 있나 싶을 정도의 민망한 타율을 보유하고 있다. 타격면에서는 프로 1군 미달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 선수.
그럼에도 14년간이나 가늘고 길게 프로생활을 이어갔는데, 이는 주루와 수비 덕이 크다.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 주로 대주자 스페셜리스트로 활용되었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강명구와 함께 2010년대 리그의 대표적인 대주자였다. 다만 강명구보다는 주루센스가 부족해 주루솜씨가 좀 쳐진다는 평가를 듣는데, 그럼에도 강명구보다도 더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주루 원툴이던 강명구와는 달리 수비가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 외야수비가 좋은 편이라 경기후반 대수비로도 투입할 수 있었고, 대주자로 투입한 후 대수비로 교체없이 바로 수비에 투입한 후 다음 타석에서 교체하면 되기 때문에 대수비요원이 들어갈 엔트리를 한명 아낄 수 있어 백업 선수로서는 굉장히 큰 강점이었다.
본래 내외야 전포지션 수비를 다 보았으나 내야수비는 형편없는 솜씨로 혹평을 들었고, 어깨가 나름 좋은 편으로 외야수비는 뛰어난 편이라 대수비로서는 외야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보통 가장 빨리 노화가 오는 툴이 주루툴이라 대주자들은 20대와 동시에 대주자로서 생명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수비실력이 발이 좀 느려진 이후에도 유재신을 외야 백업으로서 야구선수 생활을 몇 년 더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여튼 비록 야구선수로서 재능은 모자랐지만, 대주자와 대수비라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을 성실하게 맡아서 한 덕분에 가늘고 길게나마 오랫동안 현역생활을 할 수 있었던 좋은 백업 선수였다. 30대가 넘어서까지 대주자 대수비로 활동했으며 30대에 들어서도 체형이 20대때와 크게 변하지 않아 마지막까지 주루능력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의 성실한 자기관리를 엿볼 수 있는 부분.
정말 여담이지만 아쉬움이라면 의외로 대주자나 백업으로 띄엄띄엄 나와서 루틴을 유지할 수 없던 것을 감안하면 통산타율이 2할 5푼으로 백업치고는 썩 나쁘지는 않은 것을 보면 타격 재능이 그렇게까지 없는 편은 아니라, 꾸준히 기회를 좀 더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선수. 2루수 주전 경쟁에 뛰어들어서 주전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으나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너무 일찍 포기하고 빠른 발을 살려 1군에서 대주자로만 쓰며 타격기회를 얼마 안 주다 보니 결국 거기서 성장이 멈추고 대주자로만 남은 선수다. 2008년에 2루 수비를 좀 더 잘 해서 그때 수비형 2루수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더라면 운명이 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야구에 만약이란 없지만.[3]
3. 선수 경력
3.1. 아마추어 시절
부산 사직중과 부산고를 거쳐 1학년 때 북일고로 전학해 졸업했다. 아버지가 롯데 자이언츠 코치로 있다가 한화 이글스 코치로 옮기게 된 영향으로 보인다. 2살 위의 형 유재준도 야구를 했으며, 부산고 3학년 때 천안북일고로 전학 후 경성대학교를 졸업했다.[4]
어쨌든 북일고에서 제법 괜찮은 활약을 선보이며 2006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7순위(전체 56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3.2. 프로 시절
3.2.1.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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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년은 2군에서 지내다가 2008년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무주공산이던 2루수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54경기 93타수 2할5푼8리의 성적으로 주전을 차지하는데는 실패했다. 2009시즌에도 2루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일단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해 2009 시즌 직후 경찰청에 입단해서 2년간 복무했다. 2011년 퓨처스리그에서 0.264의 기록을 냈다. 빼어난 성적까지는 아니지만, 팀에 복귀해서 한 번 경쟁에 도전할 수는 있을 듯 하다.
3.2.1.1. 2012 시즌
4월 중순부터 1군 엔트리에 들었다. 빠른 발로 인해 승부처에서 대주자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원래 3루수를 보고 있던 김민우와 내야백업 지석훈의 부진으로 6월 7일부터 선발 3루수에 투입되었는데, 안정적인 수비 솜씨를 보여주며 구멍 난 3루수 자리를 훌륭히 메꿔주었다. 그러나 6월 15일 롯데전 초반에 어이없는 송구 에러를 연이어 저지르면서 교체당했고, 다음날 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경쟁자인 김민우, 지석훈 또한 그다지 나은 상황이 아닌지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고, 6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에서는 선발 출장하였다. 김현수의 파울 타구를 악착같이 쫓아가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김병현의 환호까지 이끌어 냈다. 김현수가 좌타자인 데다가 김병현에게 1회 투런 홈런을 쳤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김병현 입장에서는 유재신이 정말 고마운 상황.
그러나 강정호가 6월 말에 봉와직염 부상에서 돌아오고 7월 중순이 되어 다시 유격수 수비를 맡게되자, 강정호의 부상으로 땜빵을 메우던 김민성이 3루수 선발 출전이 시작되고 있어 주전 자리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12시즌 성적은 85경기 타율 0.235 7타점. 어쨌든 1군 밥은 꾸역꾸역 먹으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대주자 및 내야백업으로도 경기를 꾸준히 출전했다. 정우람 상대로 10구 커트 후 안타라든가, 7월 당시 4할(!)을 기록한 것을 보면 재능은 있다고 보여진다. 특히 발이 빨라서 대주자로 나갈시 홈으로 귀환하는 확률이 대단히 높다. 넥센의 영건 중 하나.
3.2.1.2.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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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신의 '''빠른 발'''을 알 수 있는 7월 5일 경기 당시 운명의 '''홈스틸''' 성공 후 당시 염경엽 감독은 유재신이 늦어서(!) 작전이 실패할 뻔 했다고 밝혔다.
2013 시즌 준비과정에서 신임 염경엽 감독의 인터뷰와 '강명구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유재신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대주자, 대수비 역할로 2013년에도 꾸준히 1군 엔트리에 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외야수 수비도 연습하고 있다고한다. 오키나와 캠프 연습경기에서 대수비로 외야수로 들어갔다. 경찰청 복무시절에도 잠시 외야수로 뛴 경력이 있다. 그 외에 1루수 수비도 연습 중.
주로 대주자와 대수비를 맡고있다. 하지만 팬들은 '발만 빠르다'고 하는데...5월 1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서서 팬들을 경악케했다. 하지만 몸에 맞는 볼로 출루. 그리고...박동원의 병살타성 땅볼에도 2루에서 세잎되면서 동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발이 살려낸 경기.
거기다가 5월 2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9회 말 3:3 동점 상황에서 2루 대주자로 나섰다. 서동욱이 볼 넷으로 1루로 걸어나간 다음 김민성이 타석에 들어왔다. 염경엽 감독은 런 앤 히트를 지시했고, 그것이 성공해서 결승점을 올렸다. 얼마나 발이 빨랐는지 김민성의 안타가 3루를 지나갈 때 이미 3루를 지나고 있었다.
7월 5일 경기에서는 8회말 동점이 된 상황에서 이택근이 안타를 친 뒤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장하였다. 뒤이어 강정호도 안타를 치자 3루로 진루하였다. 이후 LG의 배터리가 김민성을 고의4구로 보낸 뒤 서동욱이 플라이로 아웃된 상황으로 2사 만루 상황에 직면한 상황. 이 때 강정호의 리드폭이 긴 상황에서 봉중근이 2루로 견제구를 던지자 강정호가 시간을 끄는 사이에 홈으로 돌진하여 역대 다섯 번째 '''삼중도루'''를 성공시켰다.
후반기 들어서도 대주자의 임무를 수행했으나, 도루실패나 견제사가 몇 번 나와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 4차전에 대주자로 출장하여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3.2.1.3. 2014 시즌
1월초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외야수로 발표되었다. 완전히 전업할 모양인듯. 그리고 외야수로 새출발하는 김에, 역시나 외야수였던 아버지 유두열이 선수시절 달던 등번호를 따라서 33번으로 바꿔 달았다.[5]
2월 23일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 경기에서 이태양 투수에게 쓰리런 홈런을 쳤다. 당연히 반응은...
4월 15일, LG전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슬라이딩을 하다 무릎 내측 인대 부상을 당하여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상태다.
이후 7월 11일에 일정상 내려간 하영민을 대신해 오랜만에 등록되었다.
8월 1일 엘지전에서 이택근의 대주자로 나갔으나 2루 도루에 실패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지 않았고 합의판정을 요청했으나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 염경엽 감독에게 디스를 받고 2군으로 내려갔다. 염경엽 감독 본인이 직접 언급한 대로, 별 볼일 없었던 자신의 현역시절을 다시 보는것 같아서 더욱 강하게 키우기 위해 문책했다고.
넥센이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면서, 엔트리에 합류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선 대주자로 출장하여, 4차전 7회초에 주장 이택근과 함께 더블스틸을 성공,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쐐기를 박았다.
201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합류함으로써 첫 부자(父子) KS 출전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출전한 3차전에 대주자로 나와서 도루 실패를 기록하였다. 덕분에 넥센 팬들에게 시즌 때의 삽질과 합쳐져 신나게 까였고, 엔트리 낭비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넥센의 준우승 직후의 기사에서, 2014 시즌 중반부터 부친의 병세가 더욱 위중해지면서 마음고생을 겪었다는 것을 밝혔다. 이 기사 이후 부친이 위중하다는데, 정상적인 멘탈로 야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라는 옹호 의견도 생겼다.
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6] 연봉은 2014년 4,200만원에서 200만원이 떨어진 2015년 4,000만원에 재계약했다.[7]
3.2.1.4. 2015 시즌
3월 28일 개막전에서 연장 12회말 대타로 출전했으나, 스크라이크존 한가운데에 오는 공인데도 몸을 비틀어 피하다 삼진을 당하는 몸개그(...)를 보여주어 모두를 아연하게 했다. 바로 다음 타순인 서건창이 끝내기 홈런을 날려 다행히 묻혔다.
5월 28일 삼성전에서 9회말 대타로 출전했으나 3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올시즌 유재신의 안타는 과연 언제 나올 것인가.
6월 4일 한화전 8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대타로 출전, 드디어 안타를 때려냈다. 다만 2루 주자 박헌도가 홈에서 아웃되면서 첫 타점은 다음 기회로...
6월 13일 kt전에서 전날 부상으로 이탈한 이택근 대신 선발 중견수로 출장해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더불어 나름 깔끔한 수비도 보여줬다. 혀갤은 엔트리 잡아먹는 염감의 양아들인줄 알았더니 타격 수비 다 되는 만능 플레이어였다며 경악과 경탄을 금치 못했다(...).
6월18일 롯데전에서는 7회에 대주자로 출장한 후 8회 2사 2루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타점을 추가했다.
7월3일 두산전에서 8회초 무사 1,2루에서 박동원의 대주자로 나와서는 정말 어이가 없는 견제사를 당하며 팀 패배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당했다.
7월 21일 잠실 LG 1차전 9회초 2사 만루 기회에서 적시 2루타로 2타점을 올렸다. MOM 으로 선정되어 인터뷰까지 하게 된 것은 덤.
예상 외의 중견수 활약이 이어지자 킹재신 갓재신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대주자로 나가서 뻘짓하는 횟수가 다시 늘어나자 클래스는 어디 안 간다고 한탄하는 혀갤러들이 많다.
8월 22일 잠실 LG전에서 9회초 이택근의 출루 이후 대주자로 나갔는데 주루하다가 수비방해로 아웃되는 역대급 본헤드 플레이를 보여주며 또 다시 빈축을 샀다.
3.2.1.5. 2016 시즌
팀의 중심 타자들이 모두 빠져 나간것도 있고 넥센의 대타들마저 빠져나간 상황이기 때문에 서동욱, 김지수 등과 함께 출장 기회를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타격과 주루 센스만 좀 더 좋아지면 1번 타자까지 노려 볼 만하다.
2015 시즌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벌크업에 나섰다고 한다. "전문 대주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은 마음이 있고, 언제까지 발로만으로 먹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인 데다가 암 투병 중인 아버지 앞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결심으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
4월 28일 마산 NC 2차전에서 대주자 후 대수비로 들어와 경기를 승리로 종료시키는 호수비를 선보였다. 이 공으로 다음날 선발 중견수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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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고척 SK 4차전에서는 시작부터 호수비를 작렬, 이효봉으로부터 "유재신은 오늘 이미 수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라는 극찬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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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고척 SK 5차전에서도 포수 김재현이 던진 견제구를 2루수 유격수 모두 빠뜨린 것을 건져서 3루로 달려가는 주자를 잡아내는 강견을 선보였다. 이날 안타 도루 볼넷 호수비를 보여주며 혼자 야구한다는 평을 들었다.
5월 1일 고척 SK 6차전에서도 또다시 호수비를 하면서 시리즈 내내 1일 1호수비 이상을 적립했다.
5월 8일 고척 KIA 6차전에서는 9회에 1루수 대수비로 출전하였다. 6-6 동점이던 9회말 공격때 상대가 고종욱을 거르고 유재신을 선택했는데, 무사1,2루 찬스에서 초구는 번트 실패, 2구는 강공 전환으로 파울을 만들면서 역적이 되나 싶었는데, 끈질긴 승부로 풀카운트까지 끌고갔고, 6구를 좌중간 깊숙이 쳐서 끝내기 안타라고 생각하고 덕아웃에서 물병들고 뛰쳐나오기까지 했으나, 전진수비를 했던 상대 중견수 김호령이 미친듯이 쫓아와서 잡아버리는 바람에 다잡았던 영웅 찬스를 날려먹고 말았다. 그리고 진짜 영웅은 역시 대주자로 들어와 5번타순에 기다리던 박정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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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에는 도루 성공 뒤 공이 낫아웃이 된 틈에 3루까지 내달려 타자였던 김하성을 살리고 자신도 살면서 넥센 팬들에게 칭송받았고 이후 안타로 홈을 밟았다.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
6월 21일 삼성전에서 1점을 더 벌리는 적시타를 쳤다. 문제는 이 적시타가 점수차를 4점으로 벌리면서 김세현의 세이브 기회가 날아가버린 것.. 1안타 1타점 1도루 1득점을 기록했다.
6월 25일 LG전에서 7:6으로 앞선 10회초에 나와 이택근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승부에 쐐기를 박는 적시타를 만들었다.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멀티히트를 하면서 타율을 다시 2할대로 끌어올렸다. 도루 2개를 기록한 것은 덤.
6월 25일 엘지 원정 2차전에서는 무려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그 중 뒤에 안타는 연장 10회초 7:6에서 1점을 벌리는 적시타였다! 엘지가 그 앞에 김택형에게 볼넷을 줬는데 거기에 비수를 꽂아버렸다.
6월 한달간 12타수 7안타로 엄청난 타격을 보이고 있다.
7월 3일 9회말 2아웃에서 임창용을 상대로 풀카운트 접전 끝에 침착하게 8구만에 볼넷을 나가 2아웃 1, 2루 상황을 만들었으며, 박정음의 극적인 적시타에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가는 득점을 이뤄낸다. 연장 11회 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희생 번트를 시도하였으나, 번트를 너무 잘 대서 희생 번트가 아닌 번트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다음 타자 박정음이 끝내기 안타를 쳐서 경기가 그대로 끝. 경기 종료 후 장내 MVP에 고종욱, 박정음 다음으로 유재신도 함께 호명되었다.
7월 4일 기준 최근 30일간 21타석 18타수 10안타 5타점 3볼넷 3삼진 8도루 1도실 타출장 .556/.619/.556 ops 1.175라는 믿기힘든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향간에는 해적네의 맥선장과 영혼이 바뀌었다고 한다. 적절한 작전과 대주자로의 활용으로 거의 승리 토템 취급.
7월 20일 경기에서 팀이 승리한 이후 인터뷰 중인 팀의 왕고참에게 케이크 테러를 자행했다.
9월 1일 부친상으로 인해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발견 당시에 신장암 말기라서 손쓸 방도가 없었다고. 팀에서는 삼우제까지 보장해 준다고 밝혔다. 부친상 이후에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성적이 눈에 띄게 하락했다. 충격이 꽤나 컸을 것이다. 대주자로 나올 때마다 도루실패를 적립하며 팬들의 속을 여러번 태웠다.팬들 입장에선 욕할수도 없는 노릇이라 속이 더 탔을 것이다.
3.2.1.6. 2017 시즌
감독이 바뀌면서 유재신을 포함한 염벤저스 멤버들이 찬밥이 됐다. 그나마 박정음은 시범경기 등에서 종종 쓰였고, 강지광은 아직 유망주라 할 수 있는 어린 나이기 때문에 기회가 많지만, 유재신은 시범경기에도 개막 이후 엔트리에서도 전혀 보이지 못하고 2군에만 눌러앉아 있고, 나이도 제일 많아서 잠재력은 커녕 노쇠화나 걱정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미래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2016년까지는 그의 경쟁자 허정협이 염경엽 감독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쯤 찍혀서 거의 1군에 못 올라오고 유재신이 붙박이 주전을 했는데, 감독이 바뀌자 이전 감독과 스타일이 정반대여서 허정협 또는 박정음 위주로 기용하고 유재신은 감독에게 반쯤 찍혀서 밀려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즉 2016년과 2017년에 두 선수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문제는 허정협과 박정음은 유재신을 2군 보내기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는 점.
5월 13일 앤디 밴 헤켄이 전날 5이닝 4실점으로 부진한 뒤 허정협과 함께 말소되자 강지광과 함께 1군으로 올라왔다. 당일 삼성전에서 송성문의 대타 이택근과 교체되어 좌익수 수비를 1이닝 소화했다.
5월 14일 삼성전에 9번 중견수로 출장했으나 4타수 무안타 1삼진으로 부진했다.
5월 16일 한화전에서 8회 2사에서 고의사구로 출루한 이택근의 대주자로 투입되었으나 다음 타자 김웅빈이 삼진 아웃을 당해 득점하지 못했다. 이후 9회 좌익수로 투입되어 1이닝동안 수비를 맡았다.
5월 17일 결국 1군에서 말소됐다. 강지광이나 박정음 등 라이벌들이 부진하지 않은 한 다시 올라오기 힘들어 보인다.
5월 31일 박정음이 부진으로 말소되어 다시 1군으로 콜업되었다.
6월 3일 허정협의 대수비로 투입되었는데, 그 후 돌아온 타석에서 시즌 첫 안타를 쳤다. 그러나 2루주자가 홈을 가지 못해서 타점은 없었고, 직후 김민성의 병살타로 인하여 득점도 하지 못했다.
6월 4일 선발 출장해서 1안타를 치고 그 직후 도루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득점은 실패.
6월 6일 허정협의 대주자로 투입되었는데, 귀신같은 2루 도루실패를 기록하였다. 그 직후 주효상의 2루타가 터졌기 때문에 도루자만 안 당했어도 넥센이 SK에게 끝내기 패배를 당하지 않고 연장전까지 끌고 갈 수 있었기에 안타까운 일.
6월 7일 또 대주자로 투입되었는데, 이때 모두가 아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도루 타이밍을 잘못 잡고도 태그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세이브하였다.
한두번 선발로 나온 거 외에는 주로 대주자 혹은 대수비로 나오는 중. 그러나 염경엽과 다르게 현 감독은 유재신을 지명대주자/대수비로 생각하지 않고 땜빵으로 생각했는지, 임병욱이 부상에서 회복된 6월 15일에 바로 2군으로 보내버렸다. 라이벌이 추가되어 더 암담해진 상황.
임병욱이 엄지 인대 파열로 시즌아웃되자 또 다시 올라왔다. 이후 대주자로 투입되었고, 타석에선 삼진으로 물러났다. 7월 6일 기준 타율 0.231, 출루율 0.231, OPS 0.462. 한마디로 무툴.
3.2.2.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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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1.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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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려운 시즌을 보내다, 7월 31일 김세현과 기아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었다.[8] 마이클 초이스까지 합류하며 박정음이나 고종욱마저 주전을 장담하기 어려워졌고 임병욱까지 복귀하게 되면 도저히 넥센 1군에서는 백업이고 뭐고 자리가 날래야 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직행이 유력한 KIA에서의 포스트시즌 작전수행 및 수비 백업, 그리고 군입대가 임박한 김호령 포지션의 내년 시즌 백업 역할까지 그나마 활약할 길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KIA행이 개인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어 보인다. 김세현-이승호의 1:1트레이드가 부담스러워 끼워졌다는 평도 많긴 하지만.
넥센팬들은 손동욱을 미심쩍어 할지언정 유재신을 아까워하진 않는다. 잉여자원 잘 보냈다는 반응.
이적 후 최원준, 김선빈과 더불어 유격수로 투입될 듯 하다. 2군에서 유격수 수비 훈련을 받았다고.
8월 22일 2대 7로 크게 뒤진 9회말 롯데전에서 1사 1,2루의 2루 주자 버다디나의 대주자로 투입되었고, 장시환의 송구실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다만 경기는 3대 7에서 손승락에게 틀어막히며 패배.
8월 26일 유격수로 대수비로 들어와 9회말 평범한 유격수 땅볼로 굴러간 공을 1루 주자를 잡겠다고 2루로 송구했는데 공이 빠졌다. 그 다음 타자도 유격수 땅볼을 쳤지만 결과도 똑같았다. '''2번이나 2루로 송구 실책'''을 범하면서[9] 위기를 자초했으며 박진태의 세이브를 날림과 동시에 강판시켰다. 그리고 서동욱과 자리를 바꾸면서 1루수로 들어갔다. 덕분에 8:4로 쉽게 이길 경기가 8:7진땀승으로 변해버렸다. 해설들도 상당히 어이없어했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표정보니까 불쌍해보인다.
이 때문인지 28일 임창용, 최정민과 함께 1군에서 말소됐다. 20여일 뒤인 9월 17일에 이진영이 2군으로가고 다시 1군에 돌아올 수 있었다.
9월 20일 경기에서는 경기후반 한점차인 상황 1사 2루에서 대주자로 나왔는데 후속타자 김선빈의 중견수 키를 넘기는 깊은 플라이때 3유간 갈팡질팡하다 태그업을 못해 득점에 실패하며 개처럼 까였다. '''정상적으로 3루 태그업을 했다면 이후 김주찬 타석 때 피콜로의 폭투가 나와 동점 득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루툴도 사라진 듯.
28일 한화전 8회초 초구 안타를 치고 나간 대타 이명기의 대주자로 투입되어 희생번트-안타로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중견수로 투입되어 8회와 9회 각 1아웃을 잡았고, 9회초 희생번트도 댔다.
201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외야수로 포함되었다. 중견수를 볼 수 있어서 무분별한 대타 사용 후 대수비로 투입할 수 있고 발도 빨라서 대주자 감으로는 제격이기 때문인 듯. 단기전에서 대주자 한명의 역할이 생각보다 큰 점을 감안한 선택으로 보인다.
10월 29일 한국시리즈 4차전 김민식의 대주자로 9회 투입되어 상대 포수 양의지의 타격방해 실책, 희생번트로 3루까지 진루한 뒤 김주찬의 타석 때 진루 판단미스로 견제사 당할 뻔했으나 양의지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고 이후 진루타로 5점째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한승택과 교체되었다.
딱히 크게 한 건 없지만, 1패 후 4연승으로 팀이 우승을 차지하며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아버지인 유두열은 1984년 롯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MVP를 수상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박철우, 박세혁 부자 이후 사상 두번째로 우승반지를 가진 부자가 되었다.
3.2.2.2. 2018 시즌
2018년 3월 24일 kt wiz와의 개막전에서 9회말 2사 1점차 상황에서 최형우의 대주자로 들어왔으나, 최원준의 타구가 오태곤에 잡혀 경기가 종료되어 득점에는 실패했다. 그 후 몇 번 대주자로 나오다가 조용히 2군으로 내려갔다.
4월 29일 김지성이 말소된 자리에 다시 올라왔다. 다음 날 김지성은 웨이버 공시됐다.
5월 2일 롯데전에서 최형우의 대주자로 들어와 볼넷과 2루타를 때린다.
5월 3일 엄청난 호수비로 한승혁의 실점을 막아주었다! 좌익수 최형우, 나지완이 모두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대체자로 나와 멀티히트도 쳤다.
5월 10일 두산전에 8회초 최형우의 대수비로 출전했고, 10회 첫 타석에서 함덕주의 공을 밀어쳐 우전 안타를 기록했다. 11회 수비에서는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공을 다이빙캐치로 잡아냈다. 팀은 11회 안치홍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
5월 13일 삼성전 8회초 2루 도루를 성공했고, 최충연의 폭투성 투구로 3루로 이동. 버나디나의 적시타로 한 점을 추가했다. 9회말 강민호의 외야 뜬공을 잡아 아웃카운트 하나를 추가했다. 외야수 수비로도 나름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는 중.
5월 19일 SK전에 선발 9번으로 출전하여 4타수 2안타와 좋은 수비 하나로 맹활약 하여 인터뷰를 했다.
5월 20일 SK전에서 좌익수 수비를 하다가 왼쪽 다리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하여 나지완으로 교체되었다. 결국 다음날인 21일에 말소되었다. 그나마 부분파열인게 다행.
7월 현재 재활군에서 재활중인데, 햄스트링 부상이 처음이라 선수 본인이 많이 힘들어한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약 3주동안 콜업되어 지난해 받은 우승반지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살아난 타격감과 호수비로 미친 존재감을 뽐냈고 호평을 들었다. 팬들은 빨리 부상이 회복되어 다시 1군으로 콜업되기를 바라는 중. 작년에 트레이드되어 같이 온 동갑내기 투수와는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7월 23일부터 재활을 마무리하고 2군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데,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보살은 덤. 다만 뇌주루도 있었다. 재활은 잘 된 듯.
8월 6일 SK와의 퓨쳐스리그 경기에서 5타수 3안타를 쳤다. 최근 들어 퓨쳐스리그에서 물오른 타격감을 보여주는 중.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곧 콜업이 될 기세이니 기대해봐도 좋을듯.
전반기에 타/출/장 6/6/8 ops 1.511 wRC+ 307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이대로 유지한다면 역대 단일시즌 최고 ops와 wRC+를 거둘수 있을 듯. 심지어 득점권 타율은 10할이다. 치면 점수인 셈.
예상되어 확장 엔트리에 콜업되어 백업 외야수로 출장중.
9월 9일 삼성전에서 깔끔한 중견 수비를 보여줬고, 6대 4로 지고 있던 와중 3루타를 쳐냈다. 이후 정성훈의 2루타로 득점에 성공에 한 점을 추격하는데 일조했다. 다만 이날 경기는 패배.
10월 4일 SK전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자신의 1군 첫 홈런을 역전 만루홈런으로 장식했다. 이는 유재신의 데뷔 13년만(3838일)의 첫 홈런포였으며, SK 에이스 김광현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홈런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4회말 SK 와이번스의 1사만루 찬스에서 이재원의 담장을 넘을 뻔한 타구를 엄청난 호수비로 막아내며 공수 모두에서 엄청난 활약을 해냈다. 이날 홈런으로 유재신은 역대 최고령 데뷔홈런 기록을 경신했다.[10] (이 기록은 2019년 5월 31일에 한화 이글스의 김종민(12115일)이 다시 갱신한다. 또한 KBO에서 첫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때려낸 18번째 선수가 되었다. 이날 경기는 여러 번의 만루위기에도 불구하고 불펜의 호투와 유재신의 호수비 덕에 7-3 KIA의 승리로 끝났다.
3.2.2.3. 2019 시즌
부상과 문선재의 이적으로 인해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하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4월 5일 콜업되었으나 별다른 활약이 없었고, 4월 14일 말소. 이후 4월 30일에 다시 콜업되었고, 5월 10일에 다시 말소되었다. 이 기간동안 백업 외야수로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예년과 달리 2군을 폭격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백업 외야수들이 공수주 모든 부분에서 부족한 면을 보이자 수비와 주루에서 강점을 보이는 유재신을 기용해야 하는 의견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6월 19일 SK 선발로 김광현이 나왔는데 2018 시즌에 킬러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줬음에도 김광현과 전혀 상대를 해보지 못하고 팀도 패배해서 왜 쓰지 않았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 이후 선발로 나온 LG전 두 경기에서 모두 안타와 타점을 신고했기에 더 아까웠던 부분.
이후 여타 시즌과 다름없이 백업 외야수로 시즌을 마감했다. 8월 중순 경찰 야구단에서 전역한 김호령과 역할을 교대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김호령의 허리 부상때문에 시즌 종료까지 1군 엔트리에 남아 외야 백업 역할을 했다.
3.2.2.4. 2020 시즌
본래 33번을 달고 있었던 김주형이 2019년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등번호를 아버지의 번호로 바꿨다.
백업 외야수 자리를 두고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경쟁자인 박준태가 키움으로 트레이드됐고, 이인행의 은퇴와 김호령, 이창진의 부상으로 백업 외야수 자리는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한편 히어로즈에서 함께 왔던 김세현이 SK로 떠나 혼자 남게 됐었는데, 얼마 후 이전 팀에서 같이 뛰었던 장영석이 이적해 왔다.
5월까지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데, 대다수의 팬들은 중견수 백업 이우성의 '''12타수 무안타'''라는 롯데의 정보근, 김준태보다도 못한 타격을 보고 유재신을 그리워하고 있다. 다만 유재신의 성적도 2군에서 1할대라...
10월 30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타격에서의 기대감은 없고 30대 중반의 나이와 주루 1툴이어서 현역생활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았고 결국 은퇴했다.
4. 지도자 경력
4.1. 두산 베어스 시절
2021 시즌부터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활동한다. 김주찬, 김지훈, 정병곤과 함께 왔다.
5. 기타
- 아버지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극적인 7차전 역전 3점 홈런을 치며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유두열이다. 등번호인 33번은 과거 아버지가 쓰던 번호. 201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외야수로 투입되어 팀의 우승으로 아버지처럼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부자가 선수로서 모두 우승을 하게 된 두번째 사례.[11]
- 얼굴이 곱상하고 앳되어 보이지만 선수 경력이 꽤 긴 편이다. 2006년 현대에 드래프트되었으니... 동기가 무려 강정호와 김세현이다. 2016년에는 넥센 외야진 중 이택근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이)택근이 형 다음으로 외야수 2번째 나이
- 별명으로는 유채꽃. 2008년 군입대 전까지만해도 상당히 훈남이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유재신이 3루수로 들어가면 3루에 꽃이 피었다는 드립이 나왔다. 또 다른 별명으로는 남창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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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훈남이었다는 증거[image]
그리고 그 별명을 본인도 알고 있다- 발은 빠르지만 2013년 7도루 8도실, 2014년 2도루 2도실을 기록할 정도로 주루센스가 좋은 편은 아니다.[12] 여기에 주루사, 견제사도 상당히 많아서 굳이 지명대주자로 1군에 둬야 하는지 넥센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 내외야 전포지션을 소화한다지만, 사실 수비포지션이 없다고 할 정도로 수비능력이 떨어지며[13] , 그렇다고 타격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1군 철밥통이라서 염재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와 관련해서 유재신이 염경엽 감독의 토템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약점이던 수비는 이후 외야수로 완전히 전향하고서는 오히려 최대 강점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문자 그대로 환골탈태.
- 그러나 2015년 임병욱이 대주자로 나오면 99%의 확률로 견제사를 당하는 경이로움을 보여주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질듯 하다가, 여전히 견제사로 죽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대신 7월 27일까지 도루자는 없다. 6번 시도 6번 성공 성공률 100%(!!) 그러나 그 다음날 경기에 도루자를 하나 추가했다(...).
- 2017년부터 전문 대주자 자리마저 지키지 못하고 2군 붙박이로 밀렸다. 실제로 1군에서 뛴 3경기 중 대주자로는 딱 한 경기 나오고 다른 두 경기는 선발과 대수비로 출전하였다.
- 염경엽 감독의 양아들로 불리게 된 선수가 두 명 추가됨에 따라, 염벤저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역 염벤저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양아들 소리를 듣기 시작해서 염벤저스 1호기 등으로도 불린다.
- 넥센의 선수단에서 김세현과 함께 전신격인 현대 유니콘스부터 2017 시즌까지 쭉 넥센과 함께해온 원년멤버였다. 단 기아로 트레이드되면서 창단 당시의 멤버들은 코칭스텝들을 제외하면 현재 넥센의 선수단에 04년도 순수신인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오주원과 03년도에 입단한 이택근 둘만 남게 되었다.[14]
- 데뷔 13년차까지 1군에서 기록한 홈런이 없었다. 넥센 시절에는 대주자로 주로 출장했고, 기아로 이적한 후에도 대수비, 대주자로 출장하여 타석 수 자체도 적었기 때문. 호리호리한 몸매라서 장타를 뽑아내기 어려운 신체적 조건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마침내 2018년 10월 4일 문학 SK전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커리어 1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것도 그랜드 슬램으로 말이다.[15]
- 김광현을 상대로 강한 편이다. 2014시즌부터 2018시즌까지 총 6번의 대결동안 5타수 3안타에 2루타 1개, 홈런 1개, 볼넷 1개로 타출장이 0.600/0.677/1.400 이라는 초월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다만 표본이 작다는 점은 걸리는 부분. 그 6번의 대결동안 김광현의 공에 단 한번의 헛스윙이 없고 파울을 양산해낸 것으로 보아 김광현이 던지는 공을 무지 잘 보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통산 첫 홈런도 문학런이라고 불리는 담장 살짝 넘어가는 수준이었지만 바로 위에 써진 것처럼 김광현을 상대로 친 만루홈런이었다. 애초에 대주자, 대수비로 나서는 경우가 많아 타석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도 표본이 적은 것의 원인이긴 하다.
6. 연도별 성적
[1]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본 적이 있다. KIA 이적 후에는 유격수, 1루수 등 내야수로 교체출전 혹은 포지션 변경이 몇 차례 있지만 주로 외야수로 뛰고 있다.[2] '''넥센의 유재신 안타, 워어어어어어워~x2.''' 원곡의 '하지만 나는 너 좋아, 사랑할 지도 몰라' 부분에 맞춰 부르면 된다. 문제는 유재신은 전문 대주자라 타석에 들어서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 응원가는 1년에 2~3번 듣기도 힘든 희귀한 응원가다.[3] 이 가정에 딱 들어맞는 선수가 한때 한솥밥 먹던 선수이자 유재신에 밀려났던 NC 다이노스 소속 지석훈이 있다. 지석훈도 물방망이 소리를 들었지만 수비에 강점이 있어서 계속해서 1군에 박아놓고 경험치를 키우다보니 공격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백업롤 정도는 충분히 맡을 선수로 탈바꿈했다. 또한 유틸리티로 뛰면서 쌓인 풍부한 경험 덕에 여전히 뛰어난 수비는 덤.[4] 유재신의 부산고 동기는 정의윤과 이왕기, 유재준의 부산고 동기는 장원준, 박근홍(부산고 시절에는 박정태)이 있다.[5] 이와 관련하여 이장석 대표는 '33번은 전형적인 거포 타자들의 번호이지 않나. 유재신 선수는 0번이나 99번 같은 번호가 어울리는데..'라고 코멘트.[6] 당연히 옹호 의견 여부가 생기던지 말던지다...모든 야구 팬들은 당시 유두열의 소식을 듣고 나서 쾌차와 유재신의 멘탈 회복을 진심으로 바랬기 때문.[7] 사실 저 정도로만 깎인 것도 어느정도 배려가 맞는게,시즌 내내 무지하게 못했다고... 물론 저 상태에서 무지하게 잘하는 게 이상할지도.[8] KIA에서는 손동욱과 이승호를 넘겼다.[9] 안치홍이 두 번 다 공을 받으려다 넘어졌다.[10] 생후 11276일. 이전 기록은 강명구의 11142일.[11] 첫번째는 두산 베어스 소속 박철우-박세혁 부자. 박철우 - 87 해태, 박세혁 - 16 두산 시절 선수로 첫 우승을 경험했다.[12] 참고로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대주자인 강명구는 통산 도루111, 도실23 도루성공률 82%를 기록중이다.[13] 내야수 경쟁에서 밀려난 가장 큰 이유가 불안한 수비, 특히 형편없는 송구능력 때문이었다.[14] 이중 이택근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LG 트윈스에 있었기 때문에 현대 시절부터 넥센 시절까지 쭉 함께 해온 선수는 오주원 뿐.[15] 다행히 이 홈런공은 찾았는데, 기아 팬 유명 컬렉터가 주운 사람에게 10만원을 주고 구입해서 김선빈을 통해 그 공을 직접 돌려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