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화

 

'''황후화''' (2006)
''滿城盡帶黃金甲''
''Curse Of The Golden Flower''

'''감독'''
장예모
'''제작'''
윌리엄 공
장위평
장예모
'''각본'''
장예모
'''음악'''
시게루 우메바야시
'''출연'''
주윤발
공리
주걸륜
'''장르'''
드라마
'''제작사'''
[image] 에드코 필름
'''배급사'''
[image] 베이징 뉴 픽처 필름
[image] 소니 픽처스 클래식
[image] 영화사 진진
'''개봉일'''
[image] 2006년 12월 11일
[image] 2006년 12월 21일
[image] 2007년 1월 25일
[image] 2019년 12월 16일 (재개봉)
'''상영 시간'''
113분
'''제작비'''
4,500만 달러
'''월드 박스오피스'''
$78,568,977
'''중국 박스오피스'''
$37,471,028
'''북미 박스오피스'''
$6,566,773
'''대한민국 총 관객수'''
897,678명
'''상영 등급'''

1. 개요
2. 줄거리
2.1. 기
2.2. 승
2.3. 전
2.4. 결
3. 역사적 배경
4. 인위성 연출
5. 잔인함
6. 기타


1. 개요


[image]

묘하게 포스터에서 대왕을 좌측에, 왕후를 중간에, 왕자를 우측에 넣었다.[1]
원제는 만성진대황금갑(满城尽带黄金甲). '성 안의 모두가 황금 갑옷을 둘렀네'라는 뜻으로, 황소의 난으로 유명한 당나라 말기의 반란지도자 황소가 지은 시구에서 따왔다.

2. 줄거리



2.1. 기


때는 928년 오대십국시대 후당, 궁궐은 전투에 나간 대왕[2]의 귀환 준비로 분주한데, 대왕은 전투를 마친 뒤 바로 궁으로 가지 않고 천복관역(天福官驛)에 머물러 함께 전투를 치른 둘째 아들 '원걸(元杰)'과 독대한다. 대왕은 원걸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국경지역에서 근무한 점을 이야기하며 '때가 되면 왕위는 네게 넘어갈 테니 감히 넘보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는 함께 궁으로 돌아간다.[3]
대왕은 왕후와 상당히 사이가 좋지 못 해서 전투에 나가기 전 태의(太醫, 왕을 모시는 어의) '장홍유(蔣鴻儒)'에게 왕후가 마시는 탕약에 은밀히 '어떤 약'을 섞도록 해두었다. 대왕의 신임을 받는 장태의는 대왕의 명을 받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태자궁의 궁녀가 된 자신의 딸 '장선(蔣嬋)'을 은밀히 태자와 이으려고 노력한다. 왕후는 장태의가 몰래 섞은 약의 기운으로 굉장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중양절(重陽節)을 지낸다는 이유로 금실로 국화 수를 놓고 있다.
궁에 돌아와 어머니 및 형제들과 만난 원걸은 여전히 대왕과 모후의 사이가 나쁜 것을 본다. 원걸은 대왕이 모후가 일부러 남긴 약을 문제 삼아 다음 날 누대에서의 식사 자리에서 '질서' 운운하면서까지 면박을 주고 아들들에게 모후가 약을 마실 때까지 꿇어앉아 있게 하는 등 약을 억지로 먹인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다.
식사 자리에서 대왕은 왕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묻고, 대왕의 질문에 맏아들인 태자 원상(元祥)은 청주(靑州)로 나가길 원하고,[4] 셋째 아들 원성(元成)은 중양절에 자신을 직령관(궁궐 수비대장)을 맡기를 원한다. 그러나 결국 둘 다 거부당하고 차남 원걸이 중양절의 직령관으로 임명된다.[5]

2.2. 승


왕후는 자신을 따르는 자객에게 자신이 마시는 약에 대해 조사를 시켰고 마침내 그것이 서역의 초오두(草烏頭)[6]라는 걸 알게 된다.
왕후를 만나고 돌아가던 자객은 태자 원상 및 내시부의 인원들에게 붙잡혀 대왕과 독대한다. 자객의 정체는 한때 대왕과 사랑해 지금의 태자 원상을 낳았으나 지금은 장태의의 아내가 된 원배부인(元配夫人). 그녀는 과거 도위(都尉)에 불과했던 현재의 대왕이 왕이 되고 싶어 양(梁)나라의 공주와 혼인한 뒤 원배부인의 가문에 역모 혐의를 씌워 철저히 파괴해놓고선 이제 와 자신의 초상을 모셔놓고 쑈하고 있는 것에 분개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왕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왕의 추궁에 '아들(원상)이 보고 싶어 왔다'고 둘러댄다. 하지만 대왕은 이미 알아차린 듯.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왕후는 원걸에게 대왕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약에 대한 진실을 은밀히 알렸다. 원걸은 부왕에게 반기를 들 수 없다고 말하나 시간이 되어 모후가 독약이나 다름 없는 탕약을 순순히 마셔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결국 그녀를 돕기로 맹세한다. 그리고 왕후는 여전히 사랑하는 원상에게 자신의 국화 수를 새겨넣은 중양절 의복을 주었으나 그는 완강히 거절하는 한편, 강하게 권하는 모후의 태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대왕은 느닷없이 장태의에게 소주(蘇州)자사 직을 내려 그 일가를 임지로 보냈는데, 장선이 보고 싶던 원상이 몰래 궁을 나와 장선을 만난다. 원상은 장선을 만나 잠자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왕후의 지시로 만 송이의 국화 수가 준비되었고, 병부시랑(兵部侍郞) 오씨까지 여기에 함께 함을 깨닫는다.[7] 그러다 원배부인은 태자가 장선이 함께 있는 걸 보고 홧김에 태자에게 호통을 치는[8] 불경을 저질러버렸고 태자는 불쾌해하며 돌아간다. 장선 역시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태자를 쫒아 홀로 말을 타고 간다.

2.3. 전


대왕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장태의에게 자객들을 보내 그 일가를 습격하고, 궁으로 간 장선과 장태의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원배부인 외에는 모두 살해당한다. 자객대는 원배부인을 추격했으나 도중에 왕후의 사주를 받은 군사들의 공격으로 놓치고 만다.[9] 소주에서 장태의 일가가 공격을 받는 사이 원상은 모후를 찾아가 무슨 짓을 벌이느냐고 따지다가 홧김에 '너를 죽이려고 그러는 거다'라고 소리친 왕후의 말에 충격을 받고는 칼로 목을 찔러 자해를 시도한다.
간신히 목숨은 건진 원상은 병상에서 왕후에게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고, 왕후가 나간 후 들어온 부왕이 '너희(왕후와 원상) 사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자 그만 마음이 약해져 왕후의 계획을 대왕에게 다 털어놓고 만다. 여기서부터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중양절 행사가 거하게 시작되고 원걸은 계획대로 직령관의 권한으로 궁궐 내 병사들을 빼냈다. 때마침 궁궐에 당도한 장선과 원배부인은 궁궐 내에 숨어있던 자객들에 의해 죽을 뻔하다 다시 한 번 왕후를 따르는 병사들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 왕후의 환관을 따라 대왕 일가 앞까지 도달한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대왕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왕후는 원배부인이 원상의 생모임을 폭로했고, 원상과 장선은 자신들이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장선은 큰 충격을 받아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지만 얼마 가지도 못 하고 자객들의 사슬낫에 맞아 죽고, 그녀를 쫒아가던 원배부인 역시 딸의 죽음에 분노해 그녀를 죽인 자객들과 동귀어진하고 만다.[10]
마침내 대왕의 황금 갑옷을 입은 원걸이 왕실 친위대를 이끌고 전원 국화 수가 놓인 천을 목에 두른 채 황궁으로 진격해온다. 이에 자객들이 대항하지만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덤빈 놈들은 전멸해버린다. 황후가 갑자기 국화수를 목에 걸자 이미 원상의 고백을 통해 다 알고 있던 대왕이 '무슨 짓을 꾸미느냐'며 왕후를 조롱하려는 순간, 셋째 원성이 갑자기 칼로 태자를 뒤에서 찔러버리고 원성을 따르는 병사들이 나타난다.[11] 원성은 왕위를 내놓으라고 부왕을 협박하지만, 숨어있던 대왕의 자객들이 습격하여 원성의 수하들은 전원 사망.[12]
원성은 직접 칼을 아버지를 향해 휘두르지만 대왕은 그 자신이 무예가 뛰어난 젊은 원걸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는 무인이라 여유롭게 제압해버린다. 분노한 대왕은 요대를 풀어 내리쳐 자신의 아들을 때려죽여버린다.[13]
동생의 칼에 가슴이 꿰뚫린 원상은 왕후의 품에 안겨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미안하다'는 말[14]을 남기고 숨진다.

2.4. 결


그 동안 원걸은 군사를 이끌고 대기하고 있던 부왕의 군대를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대왕의 군대는 공성탑을 밀어 퇴로를 차단하고 궁병들이 교대로 화살을 날려 반란군을 전멸시켰고[15] 원걸을 생포했다. 궁인들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시체가 치워지고 핏물을 뺌으로써 전투의 흔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워졌고 붙잡혀온 왕후측 장수 및 대신들은 모두 처형당한다.[16] 원걸은 부왕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고 덤으로 보위를 이어받는 대가로서 부왕을 배반한 모후에게 탕약을 스스로 갖다 바치라는 제안을 받는다. 원걸은 따르는 척하다가 칼을 빼앗아 들고는 목을 그어 자결해버린다.
왕후는 아들의 피가 뿌려진 탕약을 보고는 오열하며 약그릇을 올린 쟁반을 뒤집어버렸는데 약이 쏟아진 자리가 마치 염산이라도 맞은 듯 연기를 내며 부식되어버리[17]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종결된다.[18]
결국 영화에서 나오는 대왕의 아들 셋은 모두 죽은 것. 왕후 역시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워보인다.[19]

3. 역사적 배경


당나라 멸망 후 여러 군벌들이 스스로를 황제로 자처하며 송이 건국될 때까지 중국이 여러 국가로 나뉘어있던 '''오대십국시대후당'''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 후당 명종 이사원이 병에 걸렸을 때 이사원의 차남 이종영(李從榮)은 부황이 이미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제위를 욕심내어 난을 일으켜 궁으로 쳐들어 왔다가 진압되고 처형된다. 영화 시작 때 '오대십국시대 928년'이라는 자막이 등장하고 둘째 아들의 반란이라는 부분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극중 대왕의 모델이 후당의 명종 이사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설정상 왕후가 '양나라의 공주'로 되어있고, 이사원은 후량을 멸망시킬 당시에 황제는 아니었지만 후량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부부간에 이런 불화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이사원의 아들들은 종(從)자를 항렬로 썼는데 대왕의 아들들이 '원(元)'자를 항렬로 쓰고 있고, 영화 속 장태의의 임지인 소주(蘇州)가 실제로는 후당의 영역이 아니었고, 극중 등장하는 궁궐이 상당히 자금성과 흡사하니[20] 말 그대로 모티브만 가져왔을 것이다. 중국 사극들이 흔히 그렇듯 고증은 기대 안 하는 게 좋다. 하나같이 실제와는 동떨어져있다. 애초에 실제 역사의 사건이나 나라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픽션성이 강한 작품이라 굳이 이런 부분까지 사실적 고증을 지킬 필요성은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4. 인위성 연출


시각표현으로 접근하자면 동원한 인원도 어마어마하다.[21] 그러나 입이 딱 벌어지는 숫자의 스케일과는 별개로 군대가 군대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모습이 많다. 왕후의 군대는 반란군 주제에 보초 한 명 안 세워놔서 대왕의 친위대가 몰래 기어들어와 기습 한 번에 전멸한다.[22] 어디까지나 연출적 허용으로써 말도 안 된다는 걸 제작진 역시 알면서 그리 찍었겠지만, 숫자가 1만이나 되는 반란군들이 병종은 창병뿐이고 그들의 무장은 창 한 자루뿐이다. 그걸 투창처럼 마구 던져대는데, 수천 개의 창이 화살비 쏟아지듯 날아가는 그림이 아무리 근사해보일지라도 창 던지고 나서는 그냥 맨손으로 싸우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이후 전개되는 본격적인 전투도 대규모 병력이 맞붙어 싸우는 게 아니고 포위해놓고 성벽에 배치된 근왕군의 사수들이 활을 쏘아 죽인다. 반란군측은 궁병도 없어서 상대도 안 되고 화살 맞아 픽픽 쓰러져나간다. 대체 방패 하나 든 놈이 아무도 없다니.[23]
이러한 포위섬멸이 성립하기까지 과정도 역시 설득력이 궁핍한데, 반란군이 이미 안뜰에 절반이상 진출한 상태에서 근왕군은 내성문하고 궁전사이의 안뜰에 자동문처럼 공성탑을 배치해서 반란군의 진로를 차단하려 시도한다. 고립된 안뜰의 전후방은 좌우폭과 별 차이가 없으므로, 이 때 친위대와 반란군이 똑같은 속도로 이동해도 중간 부분에서 공성탑으로 틀어막는 일은 시간상으로도 거리상으로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란군은 창 한 자루만 들고 전력질주중인데 엄청나게 무거운 공성탑을 옮기는 친위대와는 이동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즉 공성탑이고 뭐고 반란군은 지금까지 뛰어온 것처럼 계속 전진만 하더라도 저지선 중앙을 차폐도중 통과한 후 좌우로 산개해서 무거운 장비를 쓸데없이 잔뜩 들고 있는 친위대를 박살내야 정상이다. 피해는 여전히 크겠지만, 포위를 당하지 않으므로, 영화에서처럼 밀집당하여 화살에 전멸하는 '''인위적인 상황'''도 나올 수 없다. 즉 영화에 나온 공성탑 포위 대치장면이 완성되려면, 반란군은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리고 있어야 한다. 실제 롱테이크로 찍으면 이 부분 시퀀스가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을 궁전 내에서 대왕이 셋째 아들 원상을 때려죽이는 장면을 잠깐 끼워서 어물쩡 넘어가 버렸다.[24]
좌우지간 과잉 인공미, 극적 시각표현을 인위적으로 고조시키느라 연출의 개연성은 내다버린 물량공세 촬영이 찍어낸 근왕군의 반란군에 대한 '''일방적 학살'''은 다른 영화에선 느끼기 힘든 시원시원한 쾌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영화에선 느끼기 힘든 허무감을 주기도 한다. 영화의 분위기도, 등장인물들도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저런 바보스러워보이는 군대와 전투 묘사나 극에 달한 과장 때문에 사람에 따라선 오히려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참고로 왕후의 군사는 최소 1만 이상이다. 극중 왕후가 수를 놓는 국화를 1만 벌 이상 지으라고 명령했다는 게 언급된다.

5. 잔인함


오체분시 같은 노골적으로 수위 높은 장면은 없지만 잔혹한 영화다.
전투 묘사는 공성탑으로 급갑의 병사들을 깔아뭉개고 수만의 금갑 병력을 가둬놓은 뒤 수만의 화살로 대량살상한다. 수천 명의 시체로 산을 쌓다시피 한 전투가 끝나고 핏물이 시내를 이룬 성내를 잠깐 사이에 씻어내버리고 꽃화분으로 장식해놓고는 중양절을 축하하는 말을 내관이 읊는 결말은 소름이 끼칠 정도.
사실 중국, 대만, 홍콩의 무협물은 엄청 잔혹하여 한국에 들어오는 건 대부분 그런 장면들은 삭제된다.[25] 일단 동방불패 영화판만 보더라도 영호충의 동료들이 동방불패에게 무참하게 도륙당해서 시체가 널려있다. 이때문에 국내에선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으나 채널 CGV 방영분에선 추가적인 편집이 있었는지 15세 관람가로 내려갔다.

6. 기타


  • 본래 세트장 건설 계획이 있었지만 완공이 못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존에 있던 세트장을 활용해버리는 바람에 궁궐이 자금성 같이 되어버렸다. 세트장은 영화가 상영한 뒤에 완공됐다고. 타 사극용 촬영장과 결혼식장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 >"경고했지 않느냐, 오직 내가 주는 것만 너의 것이지 네가 나의 것을 빼앗을 순 없다고."
이 영화에 중국 영화 특유의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는데, 그것이 "중앙정권에 감히 덤비지 마라"라고 한다.[26] 만약 이런 정치적 메시지가 사실이라면 영화 속에서 궁궐을 자금성과 비슷하게 묘사한 게 납득이 가기는 하다. 자금성의 주변은 현대 중국의 정치적 중심지이고, 자금성 옆 중난하이는 중국 주석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극중의 왕후측 군대가 황금색인데 이 색은 오행에 맞출 경우 '토', 즉, '흙'을 상징한다. 현 중화인민공화국은 오행상으로는 '화', 즉, '불'인데 흙은 불을 상생해주는 관계로 오행상생설에 입각하여 해석하면 오행이 '불'인 중화인민공화국을 계승할 정권은 오행이 '흙'이 된다. 오행설에 맞춰서 영화 정황을 감안해서 해석하자면 현 정권의 뒤를 이을 생각하지 마라는 해석이 가능하기는 하다. 현재 대만이 (중국 기준) 중화민국 잔당들에게 점령되어서 건재하다는 점을 볼 때 대만을 노린 정치적 메시지가 있는것이 아니냐는 억지해석이 가능하기는 하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어거지에 가까우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무엇보다도 이 해석대로라면 대왕이 중국 정부를 상징한다는 말인데 여기서의 대왕은 폭군에 냉혈한이다. 대왕만 문제인게 아니라 왕후는 맏아들(물론 친아들은 아니지만)과 간통하고 둘째아들과 반역을 꾸미며, 막내아들도 분수도 모른채 조잡한 반역을 꾸미는 그야말로 막장집단이다. 정말로 프로파간다 영화를 이 따위로 만들었다면 감독이 먼저 코로 마라탕 먹을 노릇. 감독의 전작 영웅에서 노골적인 통일 메시지를 보여주었는데 이 감독의 대작 사극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많이 받는다.
  • 주윤발이 연기하는 '대왕'이라는 캐릭터를 보면 부마사위장인어른의 국가를 털어먹고 호사스럽게 사는 모습이 마치 수문제수양제를 섞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군의 대부분의 장식은 물론이고 궁녀환관들의 옷 장식에도 금실을 쓸 만큼 엄청난 사치를 부리고 있다. 그 이외에 귀한 약재를 대량으로 달여서 대왕의 증기 찜질용으로 쓰고 있다.
  • 이 영화 속 왕실은 아직까지도 중국 네티즌들이 뽑은 '창작물 속 최악의 집안'으로 꼽히고 있다. 독보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 집안의 표 수가 2~5위까지의 모든 표를 합친 것보다 많이 나왔다고. 지금이야 상영 당시에 비해서는 받은 표수가 적지만 아직도 1위다. 이 영화가 상영된 직후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격차를 보여준 수준.
  • 이 영화에는 원전이 있는데 1930년대에 나온 중국 희곡 '뇌우'다. 1920년대 중국의 한 가정이 겪는 하루를 중심으로 중국 근현대사를 풀어가는 내용. 거기서 가족간 인물관계만 따오고 시대배경을 바꾸어 재창조한 것. 콩가루 집안 막장 드라마는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배경이자 도구일 뿐 원작의 진짜 중요한 핵심은 격동기의 중국 역사라는 점에서 아주 특이한 각색이라 할 수 있다.
  • 영화 엔딩에 나오는 주걸륜이 부른 국화대는 명곡 취급을 받으며, 한국에서 중국 음악 대회나 중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데서 부르는 사람들이 꼭 한 명씩 있다.
  • 무엇보다도 볼거리가 화려하고, 보는 내내 "와~ 많다..."라는 생각만 수도없이 드는 영화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과는 다른 노선의 화려한 영상미의 극치를 달린다. 스포주의
  • 등장인물들이 모두 무술의 달인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관 출신인 대왕이나 둘째 아들 원걸 및 군인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첫째 아들 원상이나 원배부인 등도 서로 맞붙는 장면을 보면 나름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장면에서 원상이 원배부인에게 일격을 가하고 환관들의 보호를 받는 장면은 그야말로 포풍간지.[27] 뿐만 아니라 원배부인의 딸인 궁녀 장선도 어머니에게 배웠는지 제법 민첩한 동작을 보여주는데, 자객단이 던진 갈고리칼을 2번이나 피한다.[28] 제대로 무장을 시켜놓으면 어지간한 자객단 한두 명은 베어버릴 기세다.
  • 2018년에 이 영화에 나오는 한푸가 주목받고 있다. 대담한 가슴 노출 및 화려한 의상때문에 그런 듯. 실제 당나라 여성의 의상은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아 다른 시대와는 좀 다른 의상이었다고 한다.#
  • 이 영화에서 가장 꼬맹이 포지션인 셋째 아들 원성을 연기한 배우가 요즘 중국 연예계에서 잘나가고 있는 배우 진준걸이다. 덕분에 이 사실을 알고 “이 꼬맹이가 진준걸이라고?!”라고 꽤나 충격을 먹는 중국 드라마 팬들이 많은 편. 배우 진준걸은 이 영화 말고도 대당영요, 천하장안 등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 많이 출연했다. 천하장안에서는 무려 당태종 이세민을 연기했는데 광전총국의 만행으로 인해 4년 가까이 방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1] 중국과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임금의 좌측에 2인자가, 우측에는 3인자를 놓았다. 좌우의 2, 3인자를 중국 수나라~당나라 시기에 상서좌복야, 상사우복야라고 불렀는데, 좌측이 우측보다 높은 서열이었기에 상서'''우'''복야보다 상서'''좌'''복야가 더 높은 대우를 받았다. 상서좌우복야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2] 한국에서 영화관 상영시 자막 번역을 '황제'라고 했지만, 실제 극중에서는 '황제(皇帝)'가 아니라 '대왕(大王)'이라고 부른다(왕자들은 부왕(父王)이라고 부름). 마찬가지로 공리 역시 '황후'가 아니라 '왕후'(왕자들 입장에서는 '모후(母后)')이다.[3] 여기서 둘의 사이가 험악해보이긴 해도 어쨌든 대왕이 둘째인 원걸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반란을 일으킨''' 왕자를 살려둔 것으로 모자라 (험지이기는 해도) 군권을 다시 맡겼던 것이다. 후술될 첫째와 셋째의 상태를 생각하면 가장 재능이 있는 원걸은 대왕에게 있어 대체 불가능한 왕자나 마찬가지다.[4] 왕후는 대왕 몰래 의붓아들 원상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고, 때문에 원상은 모후를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상이 장선과 노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불 같이 화를 내고 그가 외방으로 가길 원한다는 말에 크게 동요하는 모습으로 원상에 대한 왕후의 비뚤어진 애정을 볼 수 있다.[5]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원걸은 '''반란을 일으켰던''' 왕자다. 그런 그에게 중앙의 군권을 다른 왕자들 다 제치고 줬을 정도면 왕이 최소한 원걸의 능력은 인정했단 것. 원걸이 정말로 죄를 뉘우친 건지 확인하고자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6] 실제로도 쓰이는 약으로서 투구꽃 뿌리로 만든다. 보통 마비증세를 다스리기 위해 사용했으나 요동 지역에서는 이 독을 이용해 사냥을 하기도 했으며, 냄새가 없고 혀를 마비시키며 맛이 몹시 맵고 쓰며 성질이 뜨겁고 독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영화상에서는 하루에 반 돈씩 여러 달 복용하면 미쳐버린다는 설정이 붙었다.[7] 국화 수가 봉기군의 표식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병부까지 대왕에 대한 반역에 가담했다는 의미가 된다.[8] 지금의 태자인 원상과 장선은 둘 다 원배부인이 낳았다. 즉, 이 둘의 관계는 이부남매끼리 이어지는 것이다.[9] 이때 하늘을 날라다니며 굉장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화살 공격에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인다.[10] 이 부분이 좀 엄청난데, 맨손으로 자객들의 목을 꿰뚫어버린다. 그러다 난입해오는 반란군의 군사들이 던진 창에 맞아버렸다. 왕후 편인 반란군이 역시 왕후 편인 원배부인을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니고 달아나는 환관들을 향해 무차별로 던진 창에 어쩌다 걸려버린 것.[11] 중양절에 직령관으로 임명해달라던 것이 원성이 모반을 꾸민다는 암시였다. 자신이 지휘할 수 있는 군사를 원했기에 왕실 호위대를 이끄는 직령관 자리를 달라고 한 것.[12] 원성을 따르는 병사들은 인원도 분대급도 안 되는 데다 다들 원성과 키가 비슷할 정도로 시퍼렇게 어린 애들이 다수이다. 애당초 대왕이 궁궐 곳곳에 배치해둔 자객들과 병사들 수만 한 개 군단급 정도이니 머릿수부터 상대가 안 된다. 아마 원성이 어린만큼 내부 중요인물만 장악하면 어째어째 끝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하필이면 같이 역모를 벌여도 (황후의 안배가 있었다지만) 만 단위의 병력을 지휘한 원걸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다.[13] 원성은 옷 속에 갑옷을 입어 만일에 대비해두었는데 그 갑옷이 황제만이 쓸 수 있는 황금색이었다. 이걸 보고 더 빡친 대왕은 요대로 갑옷의 보호를 받지 않는 부위, 즉, 머리를 후려쳐 죽였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온 몸이 다진 고기가 될 때까지 요대로 채찍질을 했다.[14] 당신의 계획을 누설해서(망쳐서) 미안하다, 당신의 사랑을 몰라줘서 미안하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등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15] 대왕이 셋째 아들 때려잡고 별궁에서 나왔을 때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기껏해야 15-30분 정도. 1만 명의 친위대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간 것.[16] 끌려온 사람들 중에 금갑을 입은 장수들 외에 관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다. 평상시 대왕의 통치에 불만이 있는 세력이 많았던 듯.[17] 즉, 강력한 산 같은 성분으로 먹으면 죽는 약이었다. 앞서 대왕이 원걸에게 직접 황후에게 약을 바치라는 말도 이에 대한 암시였다. 네 어미의 목숨을 네 손으로 끊어 모든 문제를 종식시키라고 했던 셈.[18] 후당의 몰락을 암시하는 부분으로 생각된다.[19] 대를 이을 아들이 없고 이미 황제도 노쇠하여 시기상 후당은 몰락하고 후진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20] 카더라에 의하면 예산을 아끼기 위해 기존의 자금성 세트장을 활용했다고 한다.[21] 어느 정도 스케일이 있는 중국 사극의 특징으로 84부작 삼국지 또한 인민해방군을 동원했다.[22] 보초들은 원상이 연회를 베풀어준다면서 다 철수시켰다.[23] 심지어 방패를 들고 있었다 해도 반란군을 포위한 채 내려다 보며 활을 쏘는 근왕대의 궁수들을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24] 변명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친위대는 원래 대왕을 최근접 보호하는 직속 부대다. 따라서 왕후는 대왕의 마지막 방패이자 왕궁 반란에서 당장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거대 전력을 몽땅 자기 편으로 포섭한 것이고, 따라서 대왕이 반란 계획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소수의 비밀 경호부대(갈고리 부대)로 이런 반란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반란군 입장에서는 승리를 당연히 확신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규모 병력이 나타났으니 잠시 패닉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왕후가 내부에서 호응해서 대왕을 생포 혹은 살해하여 근왕군을 굴복시켜주기를 잠시 기다렸을지도 모르고. 또한 반란군의 무장이 빈약한 것은 친위군이 중무장을 하려 한다면 대왕의 의심을 살 것이 분명하므로 중양절 경비 목적에 맞는 경무장 상태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대왕이 반란 계획을 미리 알고 준비한 이상, 친위군이 어떤 무장을 하고 어떤 전술을 쓰려고 하던 간에 대왕은 친위군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충분한 병력과 장비를 동원했을 테니 달라지는 것은 없다.[25]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 적벽대전의 경우 기존의 중화권 무협물의 대규모 전투 장면들 중 상당히 순화된 축에 속한다. 그래도 일부 병사들이 몸의 일부를 불에 붙이는 자살공격과도 같은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지만…대부분 중화권 무협영화에선 그러한 충격적인 전투 씬이 많이 묘사된다. 비슷한 때 개봉한 명장(영화)에서도 대사도 있는 조역이 대포의 직격을 코앞에서 맞아 산산조각나거나 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나온다.[26] 참고로 중국엄격한 검열과 정치적 메시지를 강조하는데, 예를 들면 흑사회가 나오는 영화가 나오면 무조건 자수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물론 흑사회 항목을 보면 중국에서 소탕해야 할 악으로 규정했기에 이를 다룬 영화를 아주 싫어할 만하다. [27] 환관들도 모두 무술을 하듯 자세를 취한다. 환관은 동아시아 국가 왕실에서 왕을 호위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조선시대 환관의 주요 임무중 하나가 변란시 왕을 업고 도망가는거였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 멸망때 숭정제의 최후를 지켜준 사람도 환관이었다. 또한 청나라 강희제도 권신 구왈기야 오보이를 제압하는 친위 쿠데타 때 그 동안 키워온 친위부대를 투입하였는데, 이들이 환관이었다는 얘기도 전한다.[28] 한 번은 방심하는 사이에 던진 것인데 흘려서 피했고 다른 한 번은 손발을 제압당한 상황이었음에도 허리를 뒤로 꺾어 피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