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여의전/등장인물
후궁여의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문서. 이름이 공개되지 않아 지위명으로 작성한 전작의 캐릭터 대부분의 문서명과 달리 나무위키:기본방침대로 가능한 본명으로 작성한다.
1. 주요 등장인물
2. 후비들
- 철민황귀비 부찰 제영
품계: 격격→ 철(哲)비 → 철민황귀비(哲悯皇贵妃)
철민황귀비 부찰씨. 1황자 영황과 2황녀의 생모. 홍력이 잠저 시절에 처음 들인 격격[1][2] 으로 부찰 랑화의 친척 언니이다. 상당한 미식가였다고 한다. 홍력이 즉위하기 전에 죽었으며 철비로 추존되었다가 철민황귀비로 다시 추존되었다. 부찰 제영의 죽음은 원작과 드라마가 다른데 원작에서는 김옥연이 자신의 시녀인 정숙을 시켜 그녀의 음식에 상극이 되는 음식을 넣어 식중독으로 죽었으며 당시 홍력은 신변에 없었고 랑화는 왕부에 있었기에 그녀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에 대해 랑화가 혐의자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2황녀를 낳을 때 난산으로 모녀가 다 죽었는데 랑화가 뒤에서 손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돈다.
철민황귀비 부찰씨. 1황자 영황과 2황녀의 생모. 홍력이 잠저 시절에 처음 들인 격격[1][2] 으로 부찰 랑화의 친척 언니이다. 상당한 미식가였다고 한다. 홍력이 즉위하기 전에 죽었으며 철비로 추존되었다가 철민황귀비로 다시 추존되었다. 부찰 제영의 죽음은 원작과 드라마가 다른데 원작에서는 김옥연이 자신의 시녀인 정숙을 시켜 그녀의 음식에 상극이 되는 음식을 넣어 식중독으로 죽었으며 당시 홍력은 신변에 없었고 랑화는 왕부에 있었기에 그녀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에 대해 랑화가 혐의자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2황녀를 낳을 때 난산으로 모녀가 다 죽었는데 랑화가 뒤에서 손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돈다.
- 흔귀비 대미약
품계: 흔(忻)빈 → 흔비
거주지: 경양궁
6황녀와 8황녀의 생모. 명문가 출신이다. 성격은 활달하고 남방형 미인이라고 한다. 여의와 친하게 지낸다. 어화원을 산책하던 중 개가 날뛰어 경시가 다친 것을 보고 6황녀를 조산했고 6황녀는 곧 죽었다. 홍력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비로 봉해준다. 이후 8황녀를 낳았다. 드라마에서는 대미약 캐릭터가 삭제되고 설정은 영귀비 파림씨에게 넘어갔다. 역사와 원작 소설 모두 흔귀비의 소생으로 그리고 있는 6황녀와 8황녀가 드라마에서는 영귀비 파림 씨의 소생으로 그려지며, 미약이라는 이름 역시 영귀비의 것으로 나온다.
거주지: 경양궁
6황녀와 8황녀의 생모. 명문가 출신이다. 성격은 활달하고 남방형 미인이라고 한다. 여의와 친하게 지낸다. 어화원을 산책하던 중 개가 날뛰어 경시가 다친 것을 보고 6황녀를 조산했고 6황녀는 곧 죽었다. 홍력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비로 봉해준다. 이후 8황녀를 낳았다. 드라마에서는 대미약 캐릭터가 삭제되고 설정은 영귀비 파림씨에게 넘어갔다. 역사와 원작 소설 모두 흔귀비의 소생으로 그리고 있는 6황녀와 8황녀가 드라마에서는 영귀비 파림 씨의 소생으로 그려지며, 미약이라는 이름 역시 영귀비의 것으로 나온다.
- 진비 부찰씨
품계: 진(晉)귀인 → 진빈 → 진귀인 → 진빈
거주지: 경양궁
부찰 랑화가 죽고 1년 후에 입궁했다 장정옥이 낙향하고 그의 지지를 받는 부찰씨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홍력이 빈으로 봉한다. 외모는 청순하다고 한다. 의환과 똑같은 임신약을 먹고 있어 불임이다. 육영락과 함께 경시에게 붉은 옷을 선물한 것 때문에 귀인으로 강등되었다가 연완에 의해 빈으로 복위했다. 여의 사후에 연완이 황귀비로서 육궁을 다스리려고 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용비와 영비에게 분노를 표하거나 연완이 대수(50세 이상의 매 10주년 생일)를 축하하기 위해 극단을 불렀을 때 유일하게 좋아하며 참석한다.
실제 역사에서의 진비 부찰씨는 가경 3년에 13세의 나이로 88세의 태상황 건륭제의 수녀로 뽑혔고, 1년 뒤에 건륭제가 사망하면서 줄곧 귀인으로 있다가 도광제 때 할아버지의 후궁 중 홀로 남았으며 항렬이 높으므로 품계를 2품 올려주고 난 뒤에 황고진비가 되었다.
거주지: 경양궁
부찰 랑화가 죽고 1년 후에 입궁했다 장정옥이 낙향하고 그의 지지를 받는 부찰씨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홍력이 빈으로 봉한다. 외모는 청순하다고 한다. 의환과 똑같은 임신약을 먹고 있어 불임이다. 육영락과 함께 경시에게 붉은 옷을 선물한 것 때문에 귀인으로 강등되었다가 연완에 의해 빈으로 복위했다. 여의 사후에 연완이 황귀비로서 육궁을 다스리려고 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용비와 영비에게 분노를 표하거나 연완이 대수(50세 이상의 매 10주년 생일)를 축하하기 위해 극단을 불렀을 때 유일하게 좋아하며 참석한다.
실제 역사에서의 진비 부찰씨는 가경 3년에 13세의 나이로 88세의 태상황 건륭제의 수녀로 뽑혔고, 1년 뒤에 건륭제가 사망하면서 줄곧 귀인으로 있다가 도광제 때 할아버지의 후궁 중 홀로 남았으며 항렬이 높으므로 품계를 2품 올려주고 난 뒤에 황고진비가 되었다.
- 돈비 왕부지
품계: 궁녀→ 돈(惇)상재 → 돈귀인 → 돈빈 → 돈비
거주지: 승건궁 → 익곤궁
어화원 궁녀였으나 여의를 닮아 홍력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다.
거주지: 승건궁 → 익곤궁
어화원 궁녀였으나 여의를 닮아 홍력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다.
실제 역사에서 돈비 왕씨는 건륭 말기에 최고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었으며, 처음에는 상귀인으로 책봉되었고 그 후 돈빈으로 품계가 상승하였다. 또한 돈비의 딸인 고륜화효공주는 건륭제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에 돈비는 자신의 딸을 믿고 궁녀를 때려 죽이는 중죄를 저지르는가 하면 총애를 믿고 기고만장한 상태로 자신보다 훨씬 일찍 들어온 후궁 선배들에게 오만하게 행동하고 멋대로 굴었던 탓에 평가가 좋지 않았다. 이때는 숭경황태후도 붕어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를 야단칠 사람도 없었던 터라 돈비와 다른 후궁들의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건륭제 사후 어지간한 후궁은 모두 2등급 이상의 품계를 올려주었던 가경제조차 그녀를 그냥 돈태비로 놔두었을 정도다. 결국 건륭제가 죽고 난 뒤 그녀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어, 황궁 내 태비들 사이에서도 왕따 신세가 되고 기고만장하던 과거와는 달리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
- 순빈 곽석특 람희
거주지: 경인궁
몽골 곽석특 친왕의 딸. 총애를 다투지 않는다. 옛 연인인 아낙과 밀회를 하다 여의와 12황자에게 들킨다. 이후 아낙과 도망가려다 실패하고 오체분시된다.
몽골 곽석특 친왕의 딸. 총애를 다투지 않는다. 옛 연인인 아낙과 밀회를 하다 여의와 12황자에게 들킨다. 이후 아낙과 도망가려다 실패하고 오체분시된다.
3. 황실
3.1. 황자
- 1황자 애신각라 영황
철민황귀비 부찰 제영의 아들. 생모인 제영은 건륭제가 즉위하기 전 왕부 시절에 김옥연의 손에 독살되었으며 생모를 잃고 아가소에서 유모에게 학대받는다는 것[3] 을 알게 된 건륭제는 영황을 오라나랍 여의에게 맡겼고, 여의가 냉궁으로 쫓겨난 후 소록균에 의해 양육되었다. 처음엔 온순한 성격이었으나 점점 야심을 키우게 된다.[4] 여의가 냉궁에 간 후, 순귀비에게 키워지게 되는데 순귀비가 자신의 친자식인 영장과 양자인 영황을 대놓고 차별하여 눈치보며 자라게 되었다. 영황은 어머니의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 여의이기 때문에 냉궁에서 돌아온 여의에게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여의는 냉궁에서 막 돌아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서 영황까지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고 영황과는 문안 인사를 받고 선물을 주는 관계로 끝나게 된다. 황자임에도 생모가 일찍 죽어 구박과 멸시를 받고 자라 황위에 대한 욕심을 내게 된다. 랑화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장자라는 이유로 장례식을 이끄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으며, 자신의 부인의 가문이 너무 쳐진다며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의가 만주족이고 가문이 좋은 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뒷배경으로 삼기위해 여의를 자주 찾아가지만, 복진과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여의를 이용하려는걸 여의와 해란이 다 듣게 된다. 여의는 이에 실망하고 해란은 황궁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무정하다고 한다. 영황이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걸 김옥연이 엿듣게 되고 미리 가 영황에게 부찰 제영을 죽인 것이 랑화라 말한다. 그 말을 믿은 영황은 랑화의 장례식에서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아 홍력의 노여움을 사게 되며 황위 계승권을 잃고 병을 앓게 된다. 영황이 시름시름 앓는데 건륭은 볼 생각도 안하고 여의는 의환과 꽃꽃이를 하다가 오늘내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영황을 보러 간다.[5] 영황은 여의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자신의 생모를 랑화가 죽였다고 말한다. 여의가 누가 그런 말을 전했냐고 하자 가비가 전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사망한다. 사후 정안친왕으로 추존. 그후 홍력은 제영과 영황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 단혜황태자 애신각라 영련
건륭제의 2황자.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의 장남. 모후의 지나친 공부열[6] 로 몸이 약하다.[7] 천식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고 랑화는 천식 때문에 말을 타기가 힘든데 황자가 이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대통을 이어받냐며 한탄해한다. 상태가 좀 나아지자 상서방으로 가서 글공부를 했는데 여의는 이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여의가 냉궁으로 간 후, 영련의 상태도 점점 심각해지고 궁 전체가 영련을 위해 기도하는 분위기가 된다. 눈치 없는 해란은 여의에게 소식을 보낸다며 연을 날리다가 랑화, 희월, 아약에게 혼나게 되고 무릎을 꿇는 벌을 받게 된다. 냉궁으로 가서 여의를 보고 돌아온 해란이 흑화하여 소록균, 여의가 랑화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영련을 죽게 만들었다.[8] 해란도 아무런 죄없는 영련의 명줄을 앞당긴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는지 영련을 위해 지전을 태우면서, "나를 원망하지말라. 다 네 엄마의 업보다."라고 말했다. 사후 단혜황태자로 추존된다.
- 3황자 애신각라 영장
순혜황귀비 소록균의 장남. 어렸을 때 랑화의 견제로 힐방전에서 자라게 되는데 유모들이 오냐오냐 키워서 지식이 다른 황자들에 비해서 부족하게 되면서 건륭의 눈밖에 났다.[9] 야심이 강해 영황과 황태자 자리를 놓고 다툰다. 해란의 계략에 빠져 부찰 랑화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홍력에게 슬퍼하지 말라며 큰 형은 슬픔을 억누르고 있지 않냐고 말해 홍력의 노여움을 산다. 결국 영황과 함께 황위 계승권을 잃었다. 이후 형제들 중에서 제일 나이는 많지만 생각하는 게 다른 황자들에 비해 딸리고 문무가 4황자 영성에게 밀려서 건륭에게 구박만 받는 신세가 된다. 건륭이 한향견에게 미치고 자신의 생모는 아픈데 보러오지 않자 화가 나서 민간에서 한향견을 요녀라고 부른다고 말했다가 발차기를 당하고 쫓겨난다. 충격 먹은 영장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생모가 죽은 후 얼마 안 되어 사망한다.
- 4황자 애신각라 영성
숙가황귀비 김옥연의 장남. 홍력의 등극 후 태어난 첫 황자. 랑화의 총애를 받았다. 랑화 사후 김옥연은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만들기 위해서 엄청 밀어주기 시작했다. 목란사냥터에서 건륭이 야생마를 쫓다가 자객에게 화살을 맞게 되는데 영성이 달려와 건륭을 구했다. 건륭은 자신의 목숨을 구한 영성을 각별히 총애하고 패륵이란 작위를 내린다. 영성과 김옥연은 점점 거만해져서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 김옥연이 영성을 위해 고국에서 온 진귀한 선물을 복진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것. 건륭은 복진들이 황후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지 않고 가귀비를 먼저 찾으러 가는 걸 보고서 기분이 상했고, 함친왕 복진이 들어와 가귀비가 옥씨 일족의 특산품인 황옥을 선물로 주었는데 부담스럽다며 찾아왔다. 영장의 복진이 회임하여 건륭이 순귀비를 보러 오는데 순귀비가 걸은 목걸이가 휘황찬란했으며 황후만이 쓸 수 있는 모란이 있었다. 이를 보고 건륭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순귀비는 가귀비가 양광총독에게 받은 선물을 황후에게 주었다고 한다. 궁궐에서 야생마 한 마리를 길들이는 걸 건륭과 비빈들이 보게 되는데 영성이 자신이 시범을 보이겠다며 야생마를 길들이고, 능운철이 4황자가 매년 목란사냥터로 와서 야생마를 길들였다고 말하면서 의심을 사게 된다. 결국 지나친 욕심으로 영성은 궁 밖 저택에서 살게 되었고, 어머니를 보러 오려면 건륭의 허락이 필요한 신세가 된다. 김옥연은 영성을 부찰 랑화의 양자로 들여 적자의 명분을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여러 죄가 들통이 나서 서인으로 강등되고 영성은 강희제의 12남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 5황자 애신각라 영기
유귀비 가리엽특 해란의 아들. 여의의 양자. 총명하고 성품이 착해 홍력에게 총애를 많이 받는다. 영기는 황위 욕심이 있었지만 해란이 적자인 12황자와 적모인 여의에게 충성하라고 해서 서운한 기색을 보인다. 4황자 영성이 양자로 나가게 되자 5황자 영기가 건륭의 총애를 듬뿍 받게 된다. 패륵에 봉해진 후 건륭이 정해준 악이태의 손녀를 복진으로 맞이했지만 금슬이 좋진 않다. 성인이 된 후 허벅지가 아픈 부골저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강여빈은 부골저를 앓은지 오래 되었는데 피로와 한기가 들면 위험하니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한다. 위연완은 전산파의 딸 전운아에게 해란과 여의에게는 복수할 수 없지만 그 아들에게는 복수할 수 있다고 하여 호운각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패륵부로 보낸다. 영기는 호운각을 애첩으로 두는데 호운각은 영기의 다리를 찬물로 씻겨줘 통증을 악화시킨다. 또한, 여의가 적모이나 곁에 적자가 있다며 결국 팔은 안으로 굽을 거라고 해서 이간질을 시킨다. 영기도 적자가 신경이 쓰인 모양인지 점점 호운각의 말에 흔들리고, 목란사냥터에서 여의가 적자 12황자에 대해 말하는 걸 듣고 여의와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건륭이 한향견에 미치자 아들인 영기가 한향견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한제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라며 아이디어를 준다. 후궁의 일에 간섭했다는 이유로 해란에게 혼나고 영기는 끼어들지 않겠다고 한다. 궁궐에 여의와 능운철의 불륜설이 나돌게 되고 영기는 여의를 위해 능운철에게 스스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며 여의에게 접근하지 말라며 경고한다. 하지만 매화꽃 아래에서 능운철과 여의가 만나고 능운철이 여의에게 매화꽃가지를 꺾어서 주는 장면을 12황자가 목격하게 되버린다. 해란은 능운철을 죽인 후 영기에게 소식을 전했고, 건륭은 능운철을 공동묘지에다가 버리라고 한다. 하지만 여의는 풍수가 좋은 곳에 능운철을 묻어주라 했고, 결국 영기는 능운철을 좋은 묫자리에다 묻어주고 묘비까지 세워주게 된다. 호운각은 영기가 자신에게 너무 잘해주자 죄책감을 느낀건지 위연완이 말한 것과 반대로 행동하며 상처를 강여빈에게 보여주라고 하는데 영기는 여의하고 엮이고 싶지 않다며 거절한다.[10] 위연완은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영기를 죽일 약을 호운각에게 건네지만, 호운각은 그 약을 차마 쓰지 못하고 결국 버려버린다.[11] 결국 상처가 만성이 되었고 그 동안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사망한다. 호운각은 영기가 사망한 후 능운철을 죽이고 능운철의 묫자리를 골라준 게 여의의 명이 아닌 해란이 단독으로 벌였음을 건륭에게 고발하고 독약을 마셔 사망한다. 영기가 적모를 수치스럽게 여겼다는 말은 호운각이 MSG를 친 것이지만, 묫자리를 찾아주느라 건륭의 명을 어겨서 상심했다는 것, 여의와 해란 사이에 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건 사실이다. 호운각은 위연완이 준 분을 버렸으나 케이스는 냅둬서 위연완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해란에게 준다.
영기가 죽는 해는 계황후와 같다. 드라마에서 영기를 영친왕에 봉한 후 밀건법으로 영기를 차기 황제로 고르는데 건륭제가 5황자를 태자로 생각한 것은 맞으나 밀건법으로 적지는 않았다.
- 6황자 애신각라 영용
순혜황귀비 소록균의 차남. 태후의 총애를 받는다. 실제 역사에선 효현순황후의 남동생인 부찰 부겸의 딸을 적복진으로 맞이하였다.
- 7황자 애신각라 영종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의 차남. 조산으로 태어났다. 김옥연이 랑화를 모함해서 매빈의 아이를 랑화가 죽였다며 말심에게 데려갔고, 매빈이 복수하기 위해 말심의 천연두를 영종의 유모에게 옮게 한다. 그래서 영종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천연두가 옮아서 죽었다.
- 8황자 애신각라 영선
숙가황귀비 김옥연의 차남. 영종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태어난 황자라 홍력에게 주목을 받지 못해 옥연이 앙심을 품게 된다. 위연완에 의해 낙마하여 걷지 못하게 된다.
실제로는 황자들 중에서 가장 장수한 황자다. 88세의 나이로 가경제를 넘어 도광 연간까지 생존했고, 막내동생인 영린보다도 오래 살았다.
실제로는 황자들 중에서 가장 장수한 황자다. 88세의 나이로 가경제를 넘어 도광 연간까지 생존했고, 막내동생인 영린보다도 오래 살았다.
- 9황자 애신각라 영유
숙가황귀비 김옥연의 3남. 소설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 옥연이 애지중지했는데 김옥연이 귀인으로 강등되고 소록균이 양육하게 되었을 때 풍한에 걸려 앓게 되었다.[12] 그 와중에 소록균이 준 병에 위연완이 병에 굶주린 쥐를 숨겨놓았고, 유모의 젖내음을 맡고 쥐가 병을 깨뜨리고 뛰쳐나와 영유가 보고 놀라서 경기를 일으켜 죽었다. 드라마에서는 옥연이 임신했을 때 몸이 좋지 않았고[13] 여의를 안길대사와의 사통으로 엮으려는 시도가 물거품이 되면서 아이들은 힐방전으로 가게 되고 자신은 빈으로 강등되면서 충격 받아 더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 와중에 위연완이 일부러 옥씨 왕야가 왕비를 자살하게 만든 탓에 청에 와서 건륭의 꾸지람[14] 을 듣게 되었다는 소식을 옥연에게 전하고, 이에 옥씨 왕야를 구하기 위해 양심전 앞에 무릎 꿇고 머리까지 찧어가며 애걸복걸하다가 결국 사산하게 되었다.
- 10황자 애신각라 영모
서비 엽혁나랍 의환의 아들. 의환이 가짜 임신약을 먹지 않아서 생길 수 있었지만 그동안 먹은 가짜 임신약의 부작용이 축적된 탓에 몸이 약했다. 흠천감의 예언 때문에 궁밖에서 자라게 되고 가까스로 죽기 전에 궁으로 들어오나 결국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다.
- 11황자 애신각라 영성
숙가황귀비 김옥연의 4남.
드라마에서는 김옥연의 다른 황자들이 부각되지만 실제 역사에서 11황자 영성은 유력한 황태자 후보 중 하나였으며 적복진의 출신 가문이 건륭제의 황자들 중 가장 좋았다. 11황자 영성의 적복진은 효현순황후의 동생인 부찰 부항의 적녀였으며 부찰 부항의 누나인 효현순황후의 친조카였다. 그러나 명문가 출신 적복진을 들였다고 해서 태자 후보인 것은 아니다. 강희제의 8황자 윤사가 친왕의 외손녀이자 명문가 출신 곽락라 씨와 혼인했다고 해서 강희제가 태자로 생각한 게 아니듯이. 또한 문무가 뛰어나고 지혜로웠다고 한다. 다만 구두쇠 같은 면모와 무예를 그닥 좋아하지 않고 결단력이 약해서 건륭제가 그 부분을 좋아하지 않아서 가경제에게 제위가 넘어간다. 그렇다고 영성과 가경제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으며 영성이 가경제보다 오래 살았다.
드라마에서는 김옥연의 다른 황자들이 부각되지만 실제 역사에서 11황자 영성은 유력한 황태자 후보 중 하나였으며 적복진의 출신 가문이 건륭제의 황자들 중 가장 좋았다. 11황자 영성의 적복진은 효현순황후의 동생인 부찰 부항의 적녀였으며 부찰 부항의 누나인 효현순황후의 친조카였다. 그러나 명문가 출신 적복진을 들였다고 해서 태자 후보인 것은 아니다. 강희제의 8황자 윤사가 친왕의 외손녀이자 명문가 출신 곽락라 씨와 혼인했다고 해서 강희제가 태자로 생각한 게 아니듯이. 또한 문무가 뛰어나고 지혜로웠다고 한다. 다만 구두쇠 같은 면모와 무예를 그닥 좋아하지 않고 결단력이 약해서 건륭제가 그 부분을 좋아하지 않아서 가경제에게 제위가 넘어간다. 그렇다고 영성과 가경제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으며 영성이 가경제보다 오래 살았다.
- 12황자 애신각라 영기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의 장남.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효현황후의 자식과는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15] 여의는 12황자가 태자가 아닌 친왕의 작위를 받아서 편안하게 살면 된다며 황위 욕심이 없다고 한다. 여의는 5황자 영기를 양자로 삼아서 해란과 같이 키웠고 5황자가 똑똑해서 5황자를 태자로 밀어준다. 12황자는 능력이 5황자보다 못해서 건륭에게 학업을 비교당했고 궁에서는 여의의 입지가 좁아져서 찬밥 신세가 된다. 건륭에 의해 여의가 12황자 양육권을 박탈당해서 연희궁[16] 에서 자라게 된다. 예비 액음주의 계략으로 자객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고 크게 놀란다. 하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 앞에서 싸워서 울면서 자기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싸우지 말라고 한다. 능운철이 여의를 구한 후 둘 사이에 추문이 돌게 되고 12황자도 알게 된다. 위연완이 12황자의 음식에 손을 대서 환각을 보게 되는데 하필 고자가 된 능운철과 여의가 만나 매화를 주는걸 보게 된다. 원래는 능운철이 매화를 꺾어 용패에게 건네는 장면이었는데 12황자는 능운철이 여의에게 준 걸로 착각했다.[17]
드라마에서는 여의가 유폐된 후 건륭이 여의를 놓아주기 위해서 황귀비의 예로 장례를 치르라고 하는데, 12황자는 챙기지 않는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인데 역사적으로 12황자가 아무런 시호도 작위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경제는 건륭이 죽어서야 다라패륵으로 추존해준 걸로 보아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는 눈치를 본 것 같다.
- 13황자 애신각라 영경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의 차남. 태어나자마자 산파 전씨에게 질식사당한다. 드라마에서는 산파 전씨가 여의의 아이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며 마사지를 해서 난산으로 만들었다.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게 되었고 죽어서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건륭은 흠천감에서 상서로운 아이라고 했고 적자이기 때문에 크게 기대했는데 죽자 크게 상심해한다. 도서황자로 추봉하고 단혜황태자의 능침에 합장된다. 그러나, 역사에서 13황자 영경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게 아니며 죽고 나서 건륭은 어떠한 시호도 내려주지 않았다. 또한, 아무리 상서로운 아이라고는 하나 이미 적자가 있는 마당에서 적자라고 또 기대한다는것은 무리가 있다.
- 14황자 애신각라 영로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장남. 몸이 허약하다. 병에 걸려 요절했다.
- 15황자 애신각라 영염[18]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차남. 훗날의 가경제가 된다. 황자들 대부분이 죽거나 병약하고 황위계승권을 박탈당하는[19] 등 멀쩡한 황자가 없기에 후계자가 되었다. 아가소에서 힐방전으로 처소를 옮긴 후 어머니와 1년에 한 번꼴로 만난다. 위연완이 죽은 후에는 진완인이 양육.
실제 역사에서는 멀쩡한 황자들은 물론이고, 가경제보다 오래 산 황자들도 많았다. 건륭 대에는 강희제 때처럼 황자들의 권력 다툼이 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역사에서 가경제를 효의순황후와 함께 양육한 후궁은 진완인이 아닌, 경공황귀비로 추존되는 육목평이다. 그리고 효의순황후 사후에도 궁에서 양육되었다는 드라마의 내용과 다르게 효의순황후 사망 1년 전, 14세의 가경제는 훗날 효숙예황후가 되는 희탑랍씨를 적복진으로 맞고 출가한 상태였다.
- 16황자 애신각라 영권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3남으로 요절했다.
- 17황자 애신각라 영린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4남.
3.2. 황녀
- 단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착. 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의 장녀. 몽고로 화친을 갔다. 준가르와 청의 전쟁이 끝난 후엔 태후의 곁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달와제가 쿠데타를 일으켜 남편을 죽였는데 건륭이 재가하라고 했다. 건륭이 선조의 예를 들며 원래 만주에 재가의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태후는 입관한지 100년이 흘러서 풍습이 바뀌었는데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냐며 실망한다. 달와제와 혼인한 후 임신해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건륭이 여동생을 보러 오는데 항착은 군신의 예로만 대한다. 이에 건륭은 항착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전작의 롱월공주에 해당하는 캐릭터. 원작에서도 롱월은 화친갔다. 여의에게 예전에 옷을 만졌다가 쳐낸 일에 대해 말하자 여의는 태후와 자신의 고모의 사이가 좋지 않기에 거리를 두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 유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제. 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의 차녀이며 장친왕이 태후를 대신하여 그녀를 양육하게 된다.[20] 원래 몽고로 시집을 가야 했으나 또다시 딸을 먼 곳으로 시집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태후의 개입과 여의의 도움으로 화경공주가 대신 갔다. 다만, 건륭 대에는 몽고 왕족과 공주가 혼인을 해도 북경에서 살았으므로 이는 잘못된 고증이다.
전작의 령서공주에 해당한다. 여담으로 유숙장공주 역 배우 왕학윤은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 위영락의 딸인 소화공주(고륜화정공주)로 나온다.
- 3황녀 고륜화경공주 애신각라 경슬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의 차녀. 홍력의 유일한 적녀라 오만하며, 후궁들을 무시한다.[21][22] 그러나 부모에게는 효성스럽다. 처음에 랑화는 딸이라는 이유로 경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23] 이후 영종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숙장공주 대신 몽고에 시집갔다.[24][25] 랑화는 하나 남은 딸마저 자신을 떠나게 되자 그제서야 자책한다.[26]
화의공주 경시의 사망 이후, 건륭의 부름으로 자금성으로 귀환한다. 아들 경우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을 뻔했고, 그래서 아이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남편이 첩을 엄청 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슬이 과이심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하자 건륭은 과이심 친왕이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고 경슬에게도 잘 대해주지 않는다며 자금성에 머무는 걸 허락한다. 경슬은 여의가 자신을 몽골로 시집 보내도록 황제와 태후를 움직이는 바람에 상심한 어머니가 죽었다고 여겨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또한 여의는 계후이고 자신은 적출 공주이니 여의가 자신에게 모후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복수를 위해서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몽골 출신 후궁과 위연완[27] 과 함께 지내며 여의에게 복수한다. 드라마판에서는 5황자 영기의 장례식에 참석한 영비 파림씨로부터 위연완의 야심을 언질 받게 된다.[28] 이에 사실 확인을 위해 환관을 잠복시켰고, 15황자 영염에게 "아바마마에 대한 효심도 중요하지만, 어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위연완의 말을 전해 듣는다. 영비의 언질이 틀리지 않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건륭에게 이를 알려 위연완이 자식들의 양육권을 모두 박탈당하게 만든다.
실제 역사에서는 고륜화경공주가 몽골 과이심 왕에게 시집을 간 것은 맞지만 몽고로 간 것은 잘못된 고증으로, 화경공주는 효현순황후 사후에도 북경에 거주했다. 유일한 적녀여서 건륭제가 엄청나게 총애했기 때문. 또한 영종 사망 → 효현순황후 사망 → 화경공주 하가 순서인 드라마와는 다르게 실제 역사는 화경공주 하가(건륭 12년 3월) → 영종 사망(건륭 12년 12월) → 효현순황후 사망(건륭 13년 3월) 순서이다. 드라마에서는 액부와 첩을 두고 살고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나오나 실제 액부와 화경공주는 금슬이 좋았으며 1남 4녀를 낳았다.
- 4황녀 화석화가공주 애신각라 경연
순혜황귀비 소록균의 딸. 몇 안되는 공주라 홍력의 총애를 받는다. 부찰 랑화의 동생인 부찰 부항의 차남 복륭안과 결혼한다.
- 5황녀 고륜화의공주 애신각라 경시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의 딸. 실제 역사에선 봉호를 받기 전에 죽었다. 이름인 경시는 당태종과 장손황후의 요절한 딸 진양공주의 아명인 시자에서 따왔다. 원작에선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려죽는다. 드라마에선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어화원에서 오빠인 12황자 영기와 놀다 김옥연이[29] 풀어놓은 개가 달려들어 발작을 일으키다 이내 사망한다.
- 6황녀
영비 파림 미약의 장녀. 소설에서는 흔귀비 대미약의 소생인데, 드라마에서는 영비 파림씨와 대미약을 하나로 합치는 바람에 영비의 딸이 되었다. 5황녀 경시가 개에 당해 쓰러졌을 때 영비도 크게 놀라는 바람에 결국 임신 6개월째에 유산되었다.
- 7황녀 고륜화정공주 애신각라 경완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장녀. 태어나자마자 위연완이 아닌 영(穎)비 파림씨에게 키워졌다. 나중에 위연완이 되찾으려 하자 자신의 어머니는 파림씨라며 거부하고 위연완이 여의를 해쳤다고 생각한다.[30]
- 9황녀 화석화각공주 애신각라 경운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차녀. 위연완의 실언 후 힐방전에서 유모들 손에서 자라며 위연완과는 1년에 한 번 꼴로 만난다. 성장한 후에는 아들, 특히 15황자 영염에게만 신경 쓰는 생모에게 냉담하게 대한다. 한향견을 바친 장군 오아 조혜의 아들 오아 찰란태에게 시집간다.
- 10황녀 고륜화효공주
돈비 왕부지의 딸. 화의공주를 닮았다하여 홍력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
실제 역사에서의 고륜화효공주는 오히려 아버지인 건륭제의 외모며 성격, 재능을 유난히 닮아 여러 면에서 출중했던지라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그녀의 친모인 돈비도 덩달아 대우받았다. 딸을 각별히 사랑한 건륭제는 고륜화효공주가 후궁 소생의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고륜 공주로 봉해주었을 정도.[31]
이후 건륭제의 총신 뉴호록 화신의 아들과 결혼했다. 하지만 건륭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가경제가 화신의 전재산을 몰수하는 바람에 돈을 아끼며 살아야 했고, 시댁이 고륜화효공주에게 의지하고 살았다고 한다.
이후 건륭제의 총신 뉴호록 화신의 아들과 결혼했다. 하지만 건륭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가경제가 화신의 전재산을 몰수하는 바람에 돈을 아끼며 살아야 했고, 시댁이 고륜화효공주에게 의지하고 살았다고 한다.
3.3. 선대
4. 심복들
- 태감 왕흠
건륭제의 태감. 부찰 랑화가 지속적으로 총애를 받기위해선 황제의 심복에게 환심을 사야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시녀 연심을 왕흠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왕흠은 변태였던지라 연심을 학대하고, 랑화는 이를 알고도 무시했다.[32] 2권에서 고희월을 범하려 했다는 죄로 사사되었다. 사실은 그 모든게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연심의 계획으로, 연심에 의해 춘약을 과다복용한 왕흠이 환각을 보고 고희월에게 달려든 것이다.
- 이옥
건륭제의 태감. 영민하여 건륭제의 신임을 받지만 왕흠의 시기를 받았다. 왕흠이 죽은 후 수령태감이 된다. 왕흠 밑에서 고생할 때 여의가 잘 대해주었기에 여의에게 호의적이다. 뿐만 아니라 여의의 시녀인 쇄심을 좋아해서 여의를 지지한다. 그 때문에 여의를 모함하기 위해 쇄심을 고문한 김옥연을 싫어하게 되고, 건륭의 명으로 그녀를 빈으로 강등하고 그녀의 친아들의 양육권을 빼앗으면서 제대로 복수한다.
이후 김옥연 소생의 8황자 영선이 낙마하여 다리를 다치게 되자 여의가 건륭에게 조사를 부탁한다. 능운철과 이옥이 각각 조사를 했는데 능운철이 말의 안장에 침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으나, 이걸 그대로 고하면 5황자가 혐의를 받게 되고[33] 황후인 여의가 피해를 받는 게 싫었던 이옥이 은침이 발견된 것을 숨기자고 한다.[34] 위연완이 사사될 때 강여빈과 짜고 독약에 고통을 증대시키는 약을 넣어 위연완을 고통스럽게 죽게 하였다.
이후 김옥연 소생의 8황자 영선이 낙마하여 다리를 다치게 되자 여의가 건륭에게 조사를 부탁한다. 능운철과 이옥이 각각 조사를 했는데 능운철이 말의 안장에 침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으나, 이걸 그대로 고하면 5황자가 혐의를 받게 되고[33] 황후인 여의가 피해를 받는 게 싫었던 이옥이 은침이 발견된 것을 숨기자고 한다.[34] 위연완이 사사될 때 강여빈과 짜고 독약에 고통을 증대시키는 약을 넣어 위연완을 고통스럽게 죽게 하였다.
- 소심[35]
부찰 랑화의 시녀. 랑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나 연심의 일로 랑화를 믿지 못하게 되었고, 노모의 병을 고치기 위한 산삼을 얻기 위해 옥연의 첩자가 되어 옥연이 저지른 악행을 여의와 랑화의 짓으로 조작하였다. 랑화가 죽은 후 옥연이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자살을 종용해 기둥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드라마에서는 소련이 부찰 황후를 위해서 악행을 김옥연, 고희월과 함께 벌인 것으로 나온다. 랑화가 물에 빠졌을 때 김옥연이 주운 비녀[36] 를 떨어트리게 되는데, 김옥연이 이를 주웠고 최종적으로는 랑화의 시녀 소심이 비녀를 손에 쥔 채[37] 살해당한다.
- 쇄심
건륭제의 잠저 시절부터 여의를 보필해 온 시녀로서 비록 아약이 더 오랜 세월 여의의 곁에 있었지만 여의는 쇄심에 대한 신뢰가 더 깊었다. 넌씨눈급의 눈치와 분수를 모르는 아약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주인을 둘이나 모시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이 상황을 참고 또 참는다.[38]
결국 아약이 여의에게 초특급 통수를 날리자 여의와 같이 냉궁으로 쫓겨나서 원귀들로 가득 찬 냉궁에서 여의와 서로 의지하면서 3년간의 시간을 보낸다. 가귀비가 안길대사와 여의가 사통했다고 모함하여 익곤궁 사람들이 신형사로 끌려가 모함을 받게 된다. 가귀비가 후궁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연회에서 태후가 쇄심의 형벌을 약하게 하라고 했음에도 일부러 강하게 하여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다. 그래도 강여빈이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면서 재활을 통해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된다.
태의 강여빈과 같은 고향사람이자 서로 좋아하는 사이. 나중엔 둘이 혼인했기 때문에 쇄심 대신 용패가 여의의 심복이 된다. 혼인 이후에는 용패가 더 자주 나오는 편.
결국 아약이 여의에게 초특급 통수를 날리자 여의와 같이 냉궁으로 쫓겨나서 원귀들로 가득 찬 냉궁에서 여의와 서로 의지하면서 3년간의 시간을 보낸다. 가귀비가 안길대사와 여의가 사통했다고 모함하여 익곤궁 사람들이 신형사로 끌려가 모함을 받게 된다. 가귀비가 후궁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연회에서 태후가 쇄심의 형벌을 약하게 하라고 했음에도 일부러 강하게 하여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다. 그래도 강여빈이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면서 재활을 통해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된다.
태의 강여빈과 같은 고향사람이자 서로 좋아하는 사이. 나중엔 둘이 혼인했기 때문에 쇄심 대신 용패가 여의의 심복이 된다. 혼인 이후에는 용패가 더 자주 나오는 편.
- 용패
쇄심이 혼인한 후에 들어온 여의의 시녀. 황제의 딸 용상궁이 모티브인 듯하다. 여의가 황귀비가 되어 육궁을 통솔할 때 용패가 불의에 참지 못하고 태감에게 따져서 여의에게 호감을 사게 되었다. 익곤궁으로 와 여의의 수발을 들게 되는데 황후 책봉식에 신경을 많이 써서 여의의 오른팔이 된다. 여의가 황후가 된 다음 날, 비빈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자리에서 가귀비에게 일부러 침이 굵은 귀걸이를 나눠준다. 가귀비가 끼기 싫어하자 용패가 나서서 황후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라며 더러운 눈물을 흘리지 말라며 제대로 보복한다. 나중에 가귀비가 부귀를 산책시키다가 여의와 마주치게되고 여의의 딸 경시를 두고 여의에게 그렇게 약한 애를 키워서 뭐하냐며 불경한 말을 한다. 이때 용패는 자신이 황상과 황후를 대신해서 가귀비를 벌해야겠다며 싸대기를 때린다.[39] 자신이 노비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후궁들에게 사사건건 대꾸를 하며 여의의 명이 없는데 후궁의 뺨을 때리는 등, 위아래가 없다.
드라마 마지막 화에서 유폐에서 풀려난 여의와 함께 차를 마시며 자신을 심복으로 삼아준 여의에 대한 고마움을 얘기하며 끝까지 그녀에게 충성한다. 이후 여의의 임종을 지키고, 여의를 따라 자살했다고 한다.
드라마 마지막 화에서 유폐에서 풀려난 여의와 함께 차를 마시며 자신을 심복으로 삼아준 여의에 대한 고마움을 얘기하며 끝까지 그녀에게 충성한다. 이후 여의의 임종을 지키고, 여의를 따라 자살했다고 한다.
- 말심
고희월의 시녀. 희월이 죽고 출궁한 후 혼인했지만 남편이 천연두에 걸려 죽고 자신도 전염되자 몰래 궁에 들어와 주인의 복수를 위해 장춘궁에 천연두를 퍼트리려 하나 들어가지 못하고 장춘궁 쪽을 바라보며 죽었다.
드라마에서는 고희월이 죽은 후 말심은 내명부 창고에서 일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천연두에 걸려서 옮게 되었다. 부찰 랑화에게 고희월의 복수를 해주고 싶어 처음에는 해란에게 연락했다가 여의가 거절하자 정숙에 의해 매빈을 만나게 된다. 부찰 랑화의 임신으로 여의가 육궁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궁에 천연두 환자가 있음에도 내보내지 않아 영종이 천연두에 걸려 죽게 되었다.
- 정숙
김옥연의 시녀. 조선출신. 의녀였기 때문에 약에 통달하다. 옥연이 여의를 사통 혐의로 모함할 때 필적을 모방해 여의를 곤경에 빠트렸다. 조사하면서 자긴 한자는 모르고 훈민정음 밖에 못 쓴다고 했지만 들통났다. 결국 실패하고 조선으로 돌려보내진다.
5. 태의
- 제여
홍력이 회임시키고 싶지 않은 후궁들의 약을 담당한다. 사실은 태후의 사람이다.
- 강여빈
쇄심과는 동향 사람으로, 서로 좋아하다가 결혼했다. 그 이후로도 여의를 돕는다.
6. 기타
- 길태빈
선제의 길빈으로 26세에 숭경황태후에 의해 냉궁으로 쫓겨나 태후를 마귀할멈이라 부르며 매우 증오한다. 냉궁에서 고생이 많았는지 35세인데 노인으로 보인다고 한다. 태후를 찔러 죽이려하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숭경황태후에 의해 냉궁간 것 때문에 중국에선 농담으로 여빈이라는 말이 나온다.
- 위부인
위연완의 어머니. 무식하고 욕심이 많으며 아들밖에 모른다. 연완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들만 편애하여 공부시키고 자신에게 그러지 않았다고 불만을 품었다. 연완이 후궁이 된 후에도 돈이 부족하다가 조르고 황손을 낳아야한다고 부담을 주었다. 연완이 회임한 후에 입궁하였는데 딸에 의해 여의를 저주하고 어화원에 개를 풀어놓고 해란의 조카를 매수하고 연완에게 임신환약을 먹였다는 누명을 쓴다. 연완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생의 안전을 언급해 위부인이 그대로 죄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연완에게 황후가 되라는 말을 남기고 사사당했다.
[1] 그러나 랑화가 제영이 철비로 추존된다는 말을 왕흠에게 듣고 한 말에 따르면 자신이 처음 복진으로 시집왔을 때 홍력이 여의와 희월의 처소에만 가서 랑화의 친정에서 랑화가 자식이 없을까봐 들인 사람이라고 한다. 친정에서 제영이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가 곧 랑화의 아이라 했고 그게 랑화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2] 다만 철민황귀비 부찰씨는 건륭제가 처음으로 들인 만주 정황기 소속의 격격으로, 만주 양황기 소속의 효현순황후 부찰씨를 복진으로 맞이하기 1년 전에 들인 사람이다.[3] 이 부분은 드라마와 원작이 다르다. 원작에서는 옥연의 부추김을 받아들인 랑화가 직접 한 일이며 드라마에서는 옥연의 사주를 받은 랑화의 시녀 소련이 몰래 손을 쓴다.[4] 드라마에서는 착하지만 자신이 장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런 면을 적모인 랑화가 거슬려 한다. "서장자가 감히 적자의 머리 위에 서려고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5] 영황이 살아있을 때는 죽어도 보러 가지 않다가 곧 사망할 것 같다는 말에 건륭 역시 영황의 잠저로 향했으나 결국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고 비통해하는 홍력의 모습이 참 가관이다.[6] 원작에서는 여의가 6살밖에 안 됐는데 상서방에서 공부시키냐며 놀랐다.[7] 그러나 모후인 랑화의 말에 따르면 태어났을 때는 울음소리가 우렁찼다고 한다.[8] 드라마에서는 해란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다. 영련의 직접적인 사인은 처소로 날아든 갈대였는데, 직전에 해란이 갈대를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안 그래도 천식으로 오늘내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여의에게 씌워진 혐의가 고희월을 위시한 황후파의 모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해란이 손을 써서 명을 앞당겨버린 것.[9] 드라마에서는 힐방전으로 가는 장면은 삭제되었다. 랑화가 죽고난 후 영장과 소록균의 대화에서 이 내용이 나온다.[10] 그 뒤에도 소뢰자가 강여빈에게 보여주라고 하는데 여의가 엮여서 일 만들기 싫다고 거절한다.[11] 이전 문서에서 호운각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써있었는데, 호운각이 드라마 82화에 약을 버리는 장면이 나오며 구체적으로 영기의 상처를 어떻게 했는지는 드라마에서 묘사되지 않는다.[12] 9황자가 풍한에 걸렸을 때 강여빈이 쇄심의 다리에 대한 복수로 약에 쓴 약재를 추가해 9황자가 못 마시게 만들어 병을 악화시켰다. 심지어 김옥연이 유난을 떨어 시달리던 유모들도 약이 너무 쓰자 마시지 않아서 병이 더 낫지 않았다.[13] 임신한 몸으로 랑화의 장례를 치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이는 자업자득인데 랑화의 죽음에 옥연이 가담했기 때문이다.[14] 이 일을 처음 이옥에게 들었을 때 건륭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결발처(처음 맞이한 정실)에게 잘 대해 주지 않다니. 정도 의리도 없고 결발처를 자살하게 하다니 사람도 아니다."라고 한다.[15] 김옥연이 4황자를 효현황후의 양자로 들이려고 할 때, 계후의 아들은 정처의 아들과는 다르고 효현황후 소생들은 태어나자마자 후계자로 인정했는데 12황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16] 유비 해란의 처소[17] 사실 직접 준거나 용패에게 건네서 여의에게 준거나 뭔 큰 차이가 있겠냐만은...[18] 이후에는 이름을 옹염이라고 개명한다.[19] 김옥연 아들들. 처음부터 건륭은 이들을 공녀의 자식이라 하여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20] 드라마에서는 의환의 아들 10황자를 함친왕부에 보내면서 함친왕 부부가 유숙장공주를 양육했다고 한다. [21] 드라마에서는 어느 정도냐 하면, 7황자 영종 사망+랑화의 급격한 건강 악화 직후 진행된 동순(東巡)에서 건륭, 랑화, 여의, 록균이 랑화의 건강을 주제로 얘기 중인데, 록균의 "황후마마가 건강하셔야 신첩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어마마마는 국모이시니 당연히 부처의 보호를 받으실 것이며, 너희는 그래봤자 첩실일 뿐이니 어마마마를 잘 모시기나 하면 된다"고 한다. 다만 랑화와 홍력이 있는 곳에서도 대놓고 저런 말을 한 이유는 고륜공주인 경슬이 황귀비보다 높은 위치이기 때문이다.[22] 이 성격은 태후마저 잘 알고 있는데, 태후의 심복 복가의 대사에서 "(유일한 적녀라는 이유로) 화경공주의 성격이 몹시 오만하니 몽고로 화친을 보내는 것이 그 성격을 죽여놓기엔 딱 좋다"며 대놓고 언급된다. [23] 7황자가 죽고 난 직후 아파서 누워있는 랑화에게 "동생이 (먼저) 갔어도 어마마마께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어마마마의 의지할 곳이 되고 어마마마를 위해 힘낼게요"라고 하니 돌아온 랑화의 대답은 "딸이 무슨 쓸모가 있니, 아들이 있어야만 금상첨화의 구실을 하는 거잖니."라는 한탄. 이 말에 경슬이 울먹이자 이내 랑화도 딸을 다독이면서 네가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고는 했지만.[24] 원래는 유숙장공주가 시집갈 듯 했지만 남은 딸마저 몽고로 시집보내고 싶지 않던 태후가 매빈에게 경슬을 시집보내게 만들라며 종용했고, 매빈은 "유숙장공주마저 몽고로 시집가면 태후의 세력이 더 커지게 된다"며 건륭에게 유숙장공주 대신 경슬을 시집보낼 것을 권유한다. 여의 역시 경슬을 치워버리고자 같은 말을 하고, 결국 건륭은 유숙장공주가 아닌 경슬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경슬에게 차마 직접 말하기는 두려운지 여의와 록균을 통해 경슬을 설득할 것을 지시한다. 이때 록균은 경슬을 좋은 말로 달래려고 하고, 그러면 네 딸을 시집보내지 그러냐는 경슬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자 지켜보고 있던 여의는 되려 경슬에게 "사람은 자리에 맞는 책임감이 있고, 이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대놓고 말한다. 록균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하자 여의는 경슬이 부모의 고심을 모르니 명확히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은 나라와 부찰 가문을 위해 네가 가야만 한다는 랑화의 설득에 시집가게 된다.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으며 "황가에서 태어났지만 처지는 촌부보다 못하다"는 한탄에서 경슬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난다.[25] 다만 이는 드라마적 허용 혹은 고증 오류인 것이, 고륜공주인 경슬은 화석친왕과 같은 품계인 황제의 유일한 적녀다. 경슬이 거만한 것은 사실이나 도를 넘은 적은 없다. 오히려 일개 후궁에 불과한 여의가 고륜공주에게 대국을 생각해서 몽골로 화친을 가라며 대놓고 요구한 것이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된 행동이다.[26] 경슬은 랑화의 사망 이후 예정대로 몽고로 화친을 가고, 2년 후 여의의 황후 책봉식에 참석한다. 경슬은 여의의 황후 책봉식 책사로 자신의 외삼촌인 부항(랑화의 남동생)을 쓴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게 되지만 건륭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며 일축한다. 건륭이 돌아간 이후 경슬은 죽은 랑화의 초상화 앞에 절을 하며 총애는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이니 자신이 꼭 돌아와서 복수를 해주겠다고 다짐하며 여의의 책봉식이 끝나고 다시 몽고로 돌아간다.[27] 7공주 출산 이후 답응으로 강등된 위연완이 자신의 외아들 경우가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준 것을 계기로 위연완과 결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건륭의 총애를 되찾고자 했던 위연완이 경우를 이용하여 벌인 자작극.[28] 파림씨: "황후의 자리만을 탐하는 사람이 자식 교육은 어떻게 하겠습니까?"[29] 사실 위연완이 몰래 김옥연의 개를 빼돌려 풀어놓은 것이었다.[30] 드라마에서는 경완의 이런 말을 듣고 눈이 뒤집힌 위연완이 그 입 다물라며 볼을 꼬집고, 지나가다 등판한 태후 앞에서까지 아이에게 양어머니는 친어머니보다 친밀하지 못한데, 양어머니가 어떻게 진심으로 아이를 아끼겠냐는 말까지 해버린다. 안 그래도 건륭과 양아들-양어머니 관계인 태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로 들렸는지 아이는 누가 키우고, 또 누구를 따르고 싶어하느냐에 따라 누구의 아이인지 결정된다며 경완이 원하는 대로 영비가 계속 키우게 해준다.[31] 일반적으로 청나라에서 황제의 적녀는 고륜 공주로 봉해졌고 서녀는 화석 공주로 봉해졌다. 조선으로 치면 고륜 공주는 '공주' 에, 화석 공주는 '옹주'에 해당하는 셈. 물론 조선의 공주, 옹주와는 달리 모친의 지위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예외도 있었다.[32] 드라마에서는 소련이 연심이 말하려는 것을 가로 막는다.[33] 8황자 영선은 5황자 영기에게 기마를 배우고 있었다. 이미 가귀비의 4황자가 건륭의 눈밖에 나 사면초가에 빠진 가귀비는 이 사고가 5황자가 영선을 견제했기 때문에 일으킨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8황자 낙마사고의 범인으로 5황자로 몰아갔다.[34] 영선이 불구가 되어 아프다고 우는데도 가귀비에 대한 악감정과 여의를 위한답시고 그대로 숨겨버린다. 이로 인해 낙마 사건의 진범이 누군지 가귀비도 건륭도 알 수가 없었다.[35] 드라마에선 소련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친정시녀라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원작에서는 연심이 친정시녀이다.[36] 소록균의 것인데, 홍력이 각 비빈들에게 어울리는 꽃비녀를 만들어서 보내줬던 것.[37] 랑화의 장례식 준비로 분주할 때 옥연의 시녀 정숙과 몰래 만나서 전해받는다.[38] 원래는 200냥에 팔려와 주방에서 장작을 패는 노비였다고 하며 이 부분에 대하여 아약이 나는 팔기 출신이고 너는 200냥에 팔려왔다며 그녀의 면전에서 대놓고 비웃는다.[39] 경시가 가귀비가 키우는 개에 놀라서 쓰러지자 건륭이 부귀만을 냅두고 다 치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