훙슈주
洪秀柱(홍수주) / Hung Hsiu-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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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정치인. 타이베이시에서 출생한 외성인출처 2세로 본적은 저장 성이다. 부모는 국부천대로 대만에 온 것은 아니고 중화민국이 타이완 섬을 돌려받으면서 왔다가 눌러앉은 것. 아버지 훙쯔위(그 쯔위와 같은 이름이다.)는 외성인이지만 국민당 독재의 피해자기도 하였다. 대만 입법원(대한민국 국회) 부원장(국회부의장)을 역임했으며, 2016년 3월 26일부터 중국 국민당의 주석(당 대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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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중화민국 입법원 부원장(국회부의장) 활동 중 하나.
중화민국 정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중화민국의 정치인이다. 미주리 주립대에서 유학하고 온 뒤에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1980년에 국민당 타이베이현 지구 조장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9년 입법원 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지금까지도 의원직을 역임하고 있다. 2015년 주리룬 신베이 시장의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 불출마에 따라 훙슈주 후보가 중국 국민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받으며 알려졌다. 별명은 '작은 고추'라고.
훙슈주 - 차이잉원 후보의 대결을 대만 언론에서는 "공심채 고추 볶음(辣炒空心菜) 요리 대결"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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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타이완 내에서도 그리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은 아니기때문에 차이잉원에 비해 지지율이 크게 밀리고 있으며, 친민당의 쑹추위가 2015년 8월 5일 공식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자 지지율이 3위로 밀려났다.(...) 주리룬 중국 국민당 대표(주석)는 훙슈주 후보와 친민당 쑹추위 후보간 단일화를 통해 지지율 반등을 모색중이나 많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차이잉원과의 총통 선거 경쟁에서 열세가 계속되면서, 현지 언론들이 국민당 내부로부터 후보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을 계속 보도하고 있다. 물론 국민당과 훙 후보측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는 입장이지만, 이런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권 후보로서 훙슈주 본인의 경쟁력, 입지가 미약함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
9월 3일 계속된 선거 유세 일정으로 생긴 일시적인 피로의 회복을 명목으로 선거 운동의 잠정 중단을 발표했다. 이를 놓고 한때 후보 사퇴를 위한 수순 아니냐는 예측도 나왔지만, 3일만인 9월 6일 기자 회견에서 선거운동 재개를 선언하며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회견 당시 훙슈주는 지지층이 겹치는 친민당의 쑹추위 후보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나의 경쟁자는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 뿐"임을 강조하면서 쑹추위가 자연스럽게 언론과 유권자들의 주목에서 벗어나게 만들려는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10월 17일 대선후보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주리룬 주석이 전격적으로 대선후보로 올라서게 되었다. 다만 대선 이후에는 이 결정이 오히려 지지율을 깎게 되는 결정이 되기도 보는 시각도 있다.
총통 선거후보에서 물러난 이후 한동안 관심권 밖에 있다가 11월 말 총통 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입법위원 총선거에서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지만,[1] 결국 신베이를 포함한 모든 지역구에서의 2016년 입법위원 후보 출마를 포기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다만 이번 대선은 '''아무도 출마하지 않을려고하는 국민당 대선 대표'''로 당당히 나갈려고했다는 점을 볼때[2]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선거는 아니었다.
총통 선거 공식 일정이 시작되면서 당 주석이기도 한 주리룬 후보의 선거본부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선거 이후 당 주석직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약 2개월 후인 2016년 3월 26일의 당내 보궐선거에서, 대의원의 56% 이상을 득표하여 당 주석에 선출되었다. 이로써 국민당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당수에 취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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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주석 취임식에서. 주석직을 상징하는 인장을 전달받고 있다.
훙슈주의 당 주석 취임식에는 국민당의 원로 대부분이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 훙슈주는 "타이완은 민진당의 것이 아니며, '차이잉원파(英派)'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타이완은 모든 중화민국 국민이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는 타이완이다."이라고 언급하는등 민진당과 각을 세울 각오를 분명히 했다. 이와 별도로 국민당을 '''페허 속에서'''(...) 재건하는 것에 힘을 쓸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차이잉원과 천젠런이 취임하는 5월 20일을 당치일이라고 평했다.
중국 정부가 2016년 10월 30일에 홍슈주의 방중을 발표함으로써, 차이잉원 정부를 압박하려는 시도가 있을것을 보인다.#
2017년 5월의 당내 주석 선출을 위한 경선에 재출마했지만, 19%대 득표에 그치며 우둔이 전 부총통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020년 1월 총통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입법위원 총선거에서 남부 타이난에 출마했다. 민진당의 텃밭에서 승부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지만, 결과는 낙선.
국민당에서 일국양제를 주장[3] 하고 있는 인사이다. 2020년 리덩후이 전 총통이 죽자 대만 가치 혼란의 시대가 끝났다고 논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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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의 정치인. 타이베이시에서 출생한 외성인출처 2세로 본적은 저장 성이다. 부모는 국부천대로 대만에 온 것은 아니고 중화민국이 타이완 섬을 돌려받으면서 왔다가 눌러앉은 것. 아버지 훙쯔위(그 쯔위와 같은 이름이다.)는 외성인이지만 국민당 독재의 피해자기도 하였다. 대만 입법원(대한민국 국회) 부원장(국회부의장)을 역임했으며, 2016년 3월 26일부터 중국 국민당의 주석(당 대표)이 되었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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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중화민국 입법원 부원장(국회부의장) 활동 중 하나.
중화민국 정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중화민국의 정치인이다. 미주리 주립대에서 유학하고 온 뒤에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1980년에 국민당 타이베이현 지구 조장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9년 입법원 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지금까지도 의원직을 역임하고 있다. 2015년 주리룬 신베이 시장의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 불출마에 따라 훙슈주 후보가 중국 국민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받으며 알려졌다. 별명은 '작은 고추'라고.
2.1. 2015년: 대선 출마와 사퇴
- 관련항목 :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
훙슈주 - 차이잉원 후보의 대결을 대만 언론에서는 "공심채 고추 볶음(辣炒空心菜) 요리 대결"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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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타이완 내에서도 그리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은 아니기때문에 차이잉원에 비해 지지율이 크게 밀리고 있으며, 친민당의 쑹추위가 2015년 8월 5일 공식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자 지지율이 3위로 밀려났다.(...) 주리룬 중국 국민당 대표(주석)는 훙슈주 후보와 친민당 쑹추위 후보간 단일화를 통해 지지율 반등을 모색중이나 많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차이잉원과의 총통 선거 경쟁에서 열세가 계속되면서, 현지 언론들이 국민당 내부로부터 후보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을 계속 보도하고 있다. 물론 국민당과 훙 후보측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는 입장이지만, 이런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권 후보로서 훙슈주 본인의 경쟁력, 입지가 미약함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
9월 3일 계속된 선거 유세 일정으로 생긴 일시적인 피로의 회복을 명목으로 선거 운동의 잠정 중단을 발표했다. 이를 놓고 한때 후보 사퇴를 위한 수순 아니냐는 예측도 나왔지만, 3일만인 9월 6일 기자 회견에서 선거운동 재개를 선언하며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회견 당시 훙슈주는 지지층이 겹치는 친민당의 쑹추위 후보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나의 경쟁자는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 뿐"임을 강조하면서 쑹추위가 자연스럽게 언론과 유권자들의 주목에서 벗어나게 만들려는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10월 17일 대선후보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주리룬 주석이 전격적으로 대선후보로 올라서게 되었다. 다만 대선 이후에는 이 결정이 오히려 지지율을 깎게 되는 결정이 되기도 보는 시각도 있다.
총통 선거후보에서 물러난 이후 한동안 관심권 밖에 있다가 11월 말 총통 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입법위원 총선거에서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지만,[1] 결국 신베이를 포함한 모든 지역구에서의 2016년 입법위원 후보 출마를 포기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다만 이번 대선은 '''아무도 출마하지 않을려고하는 국민당 대선 대표'''로 당당히 나갈려고했다는 점을 볼때[2]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선거는 아니었다.
2.2. 2016년: 당 주석 취임
총통 선거 공식 일정이 시작되면서 당 주석이기도 한 주리룬 후보의 선거본부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선거 이후 당 주석직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약 2개월 후인 2016년 3월 26일의 당내 보궐선거에서, 대의원의 56% 이상을 득표하여 당 주석에 선출되었다. 이로써 국민당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당수에 취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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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주석 취임식에서. 주석직을 상징하는 인장을 전달받고 있다.
훙슈주의 당 주석 취임식에는 국민당의 원로 대부분이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 훙슈주는 "타이완은 민진당의 것이 아니며, '차이잉원파(英派)'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타이완은 모든 중화민국 국민이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는 타이완이다."이라고 언급하는등 민진당과 각을 세울 각오를 분명히 했다. 이와 별도로 국민당을 '''페허 속에서'''(...) 재건하는 것에 힘을 쓸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차이잉원과 천젠런이 취임하는 5월 20일을 당치일이라고 평했다.
중국 정부가 2016년 10월 30일에 홍슈주의 방중을 발표함으로써, 차이잉원 정부를 압박하려는 시도가 있을것을 보인다.#
3. 이후
2017년 5월의 당내 주석 선출을 위한 경선에 재출마했지만, 19%대 득표에 그치며 우둔이 전 부총통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020년 1월 총통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입법위원 총선거에서 남부 타이난에 출마했다. 민진당의 텃밭에서 승부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지만, 결과는 낙선.
국민당에서 일국양제를 주장[3] 하고 있는 인사이다. 2020년 리덩후이 전 총통이 죽자 대만 가치 혼란의 시대가 끝났다고 논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