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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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6년 1월 16일에 중화민국(대만)에서 시행된 중화민국 총통-부총통 선거. 중화민국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담당했다. 제9대 중화민국 입법위원 선거와 동시에 시행되었다.
중화민국 총통(대통령)과 부총통(부통령)의 러닝메이트제로 치뤄졌으며, 이에 따라 투표용지에 정부총통 후보의 사진이 동시에 실렸다.
2. 배경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 정부는 2014년 홍콩에서 벌어진 우산 혁명 이후로 친중 정책이 대만 국민들한테 역풍을 맞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지방선거도 민진당에 완패하고 레임덕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이에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지방선거를 대승으로 이끈 민진당 차이잉원 대표는 중화민국 대선출마를 일찍이 선언하고 국민당에서는 유력 대선후보였던 주리룬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기세가 꺾인 상태이다. 그 상태에서 민주진보당 출신의 스밍더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당 출신의 친민당 쑹추위 대표도 출마를 선언하게 되었다.
3. 일정
- 2015년 11월 23일 ~ 11월 27일 :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 및 제9대 중화민국 입법위원 선거 후보 등록
- 2015년 12월 14일 : 정부총통 후보 기호추첨[1]
- 2015년 12월 19일 ~ 2016년 1월 15일 : 정부총통 선거운동기간.
- 2016년 1월 16일 : 투/개표
- 투표시간(현지시간) : 08:00 ~ 16:00
- 개표시간 : 투표종료시각 이후
- 2016년 5월 20일 : 중화민국 제14대 정부총통 취임
4. 주요 후보들
4.1. → 주리룬(중국 국민당)-왕루쉬안(무소속)(기호 1번)
주리룬 선거 출마 선언 동영상,
선거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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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운동구호 : one taiwan, 대만, 그것이 바로 힘.
- 러닝메이트 : 왕루쉬안(王如玄)
- 홈페이지 : 국민당 홈페이지를 같이 씀
결국 2015년 10월 17일 전격적으로 후보교체가 이루어졌다. 현 주석인 주리룬이 후보가 된 것이다. 2015년 11월 2위 자리는 차지했으나 아직도 차이잉원 후보에 비하면 많이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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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8일 부총통 후보로 여성인 왕루쉬안(王如玄) 전 행정원 노동공업위원회 위원장(한국의 노동부 장관격)을 지명함으로서 중화민국 역사상 남녀 vs 여남 대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왕루쉬안 후보 역시 천젠런 후보처럼 무소속으로 유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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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장면. 왕진핑 입법원장 - 우둔이 부총통 - 마잉주 총통 - 주리룬 총통후보 - 왕루쉬안 부총통후보 -
4.2. 차이잉원(민주진보당)-천젠런(무소속)(기호 2번)
선거 출마 선언 동영상.
선거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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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현재 제일 앞서나가고 있다. 하지만 쑹추위의 출마로 상당부분 지지도를 잠식당하긴 했다. 그리고 부총통 후보 지명이 난제로 떠올랐다. 가오슝 시장인 천쥐를 지명하려 하나 민진당 당내에서 반발에 부딪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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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15년 11월 16일 천젠런(陳建仁)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2] 부원장을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주요 선거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對)중국 양안정책에 대해서는 '현상유지'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국민당 출신인 마잉주 현 총통이 이른바 3불(三不: 통일, 독립, 전쟁 반대) 개념을 통해 현상유지에 관한 자신의 정책 소견을 명확히 제시했던 것에 비교하면,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평가. 이게 민진당의 한계이기도 하다. 현재 대만의 경제성장둔화를 돌파할려면 좋던싫던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일이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천수이볜 정권 시절 대놓고 대만 독립 정책을 시도하다가 중화인민공화국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았던 적이 있는데, '''차이잉원은 그 당시 대륙위원회 주임(통일부 장관)이었다''' .[3] 이 때의 경험을 알고 있기에 무모한 입장은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양안간 FTA인 ECFA는 반대하지만 TPP에는 찬성한다. 총통에 당선되면 ECFA에 영향이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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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각 정책 부문별 견해를 밝힌 대담집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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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와 비슷한 '돼지저금통' 선거자금 모금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2012년 마잉주와의 총통 선거에서도 활용했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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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홍보용으로 제작된 차이잉원 후보의 캐릭터 제작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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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를 앞두고 함대 컬렉션의 키리시마와 차이잉원의 오너캐를 합성한 물건을 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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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잉주, 시진핑의 양안 정상회담 직후인 11월 10일 중국 본토 네티즌들이 차이잉원 후보의 페이스북에 수많은 비방성 댓글을 게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차이잉원 측은 오히려 자신을 비방하는 중국 네티즌들을 '새로운 친구'(新朋友)들이라고 지칭하며 "대만의 민주, 자유를 마음껏 누리세요"라고 응답하는 대인배적 대응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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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 천젠런 조 유세장면. 제일 왼쪽에 있는 사람은 천쥐 가오슝 시장이다.
2015년 12월 13일 충격과 공포의 홍보영상이 나왔다(...).
2015년 12월 22일, 빗발치는 요구에 드디어 양안관계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였다. 총통에 당선되고 나서도 중국대륙과의 대화는 지속하고, 무력충돌은 없으며, 마잉주 - 시진핑 간 깜짝 정상회담같은 의외의 이벤트 없이 예측 가능한 양안관계를 이끌겠다고 발표하였다. 기사 한국어有溝通(유구통 : 소통함)、不挑釁(부도흔 : 도발없음)、沒意外(몰의외 : 의외의 이벤트 없음)
4.3. 쑹추위(친민당)-쉬신잉(민국당)(기호 3번)
선거 출마 선언 동영상.
선거 광고. 특히 마지막 광고는 쑹추위와 쉬신잉이 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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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운동구호 : 한 걸음을 내딛은, 함께 이 길을 찾아(跨出這一步, 一起找出路). 변화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改變,從自己開始).
- 러닝메이트 : 쉬신잉(徐欣瑩)[4]
- 홈페이지 : http://www.soong.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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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쉬신잉(徐欣瑩)을 러닝메이트, 즉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쉬신잉은 2012년 국민당 후보로 신주(新竹)에서 입법위원으로 출마, 당선되었으나 2015년 초 탈당하여 군소정당인 민국당(民國黨)의 주석을 맡고 있다. 이로써 2016년 대만 총통선거는 3대 주요 후보가 각자 총통-부총통 후보를 남녀 후보가 분담하는 독특한 형태가 되었다. 또한 총통후보와 부총통후보가 모두 당적이 다르다는 진기록도 양성.
선거 초기에는 20% 이상을 획득하며 국민당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나 점점 선거율이 떨어져서 현재는 10%를 겨우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본인은 선거를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공포했지만 국민당과의 단일화도 고려해야할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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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추위 - 쉬신잉 조 유세장면.
2015년 12월 30일 PTS에서 쑹추위의 정치인생을 알려주는 보도를 하였다.
2015년 12월 31일 내놓은 홍보용 노래. 쑹추위 후보도 '''한 마약 하셨다'''(...) 자기 손자를 출연시켰다고.
당연히 뉴스탔다(...).
5. 후보별 공약과 비교
대만 연합보 보도를 중심으로 소개함. (즉, 중국어로 되어있음)
6. 선거 진행과정
6.1. 공식 일정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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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 26일 나온 대만의 여론조사에서 쑹추위와 훙슈주를 합친 것보다도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다시 높아졌다.기사 이렇게 되면 쑹추위 후보는 괜히 단일화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이 2위를 굳히는 것만으로 자기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게 된다!
- 8월 하순 시점에서 본 인터넷 신문 <아시아엔>의 분석 기사[5]
- 중국이 선거를 노골적으로 개입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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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중국 국민당의 대선후보가 주리룬 신베이 시장으로 교체될 경우와 훙슈주 입법원 부원장으로 유지될 경우의 여론조사에서도 차이잉원 후보가 1위를 유지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기사
- 2015년 11월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마잉주 대만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국공내전 이후 66년만의 첫 양안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만 총통선거를 2개월 앞두고 국민당의 대중국 관계 개선 정책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높여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6.2. 공식 일정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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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대만 대선을 40일 앞두고 나란히 대만에 르포 취재를 갔는데 반응이 둘 다 비슷비슷... 기사1 기사2
- 마이너 경제신문인 아주경제에서도 기사를 냈는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와 그리 큰 논조 차이는 없다. 기사
- 2015년 12월 6일 국립대만대학 체육관에서 대만 주요 대학생 연합단체의 초청으로 3대 주요 총통선거 후보들의 청년층 관련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민당과 친민당은 총통 후보인 주리룬, 쑹추위가 직접 참석한 반면, 민진당은 차이잉원 대신 러닝메이트인 천젠런 부총통 후보가 참석했다. 차기 총통선거 승리에 대한 민진당의 여유만만한 분위기를 반영한 듯한 모습.
- 선거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양대 후보인 차이잉원, 주리룬 후보가 새로운 텔레비전 선거광고를 선보였다. 차이잉원 후보측의 광고는 투표 연령(만 20세[6] 에 해당하는 졸업 예정 여고생들이 교복 치마를 벗어 던지는(속에 반바지 체육복을 입고 있다) 모습과 함께 "새로운 유권자들이여, 그대들의 목소리를 내라"는 메시지를 띄우고 있다. 반면 주리룬 후보측의 광고는 중년 월급 생활자의 모습을 강조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각 후보들이 선호받는 연령대의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내용. 민진당은 20~30대, 국민당은 50대 이상에서 지지율이 높다.
6.2.1. TV 정견발표회
6.2.2. TV토론
- 2015년 12월 27일 치러진 총통 후보 1차 TV토론.
- 참고로 이 총통 후보 토론 사회자는 ACER(에이서)의 스전잉(施振榮, 시진영) 회장이다!
- 해당 토론은 주로 중국과의 양안관계에 대해 주리룬, 쑹추위가 친독립 성향인 민진당 차이잉원에 공세를 펴고, 차이잉원이 맞서는 양상이 되었다. 차이잉원은 "집권하면 중국과의 대화를 지속하고,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래의 진전된 대중국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국과 국민당측이 강조하는 92공식(九二共識)[7] 의 수용 여부에 대해서는 "92공식이 대만의 유일한 선택일 수는 없다"(九二共識是選項,但不是唯一的選項)고 말하여 향후 진통을 예고했다. 대만 현지언론 보도(연합보)
- 간단한 내용 소개 정도는 이 기사로 알 수 있다.
-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가 내용을 요약 했다.
7. 선거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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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장면에 나타난 투표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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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종반 부분.
지역별로 본다면 타이완 섬 서부지역과 핑둥 지역을 전부 앞선걸로 나타났으며 심지어 주리룬이 시장을 지냈던 신베이에서도 차이잉원이 압도적으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주리룬은 푸젠 성 지역과 화렌현, 타이둥현에서만 앞서는것으로 나타났으며 득표율도 2012년 선거때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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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제거리
- 전반적인 선거 진행이 2017년 한국의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 선거 1년 전의 전국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의 정국 주도권 약화, 2) 여당의 지지 하락에 편승한 야당 후보의 여유있는 우세 지속, 3) 선거를 불과 2개월 정도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상회담의 개최, 4) 10% 이상의 의미 있는 지지율을 기록한 제3후보의 등장, 5) 처음에 3위를 기록하던 여당 후보가 선거 진행 과정에서 제3후보를 추월하고 2위로 마무리하는 등이 대표적. 다만 대만의 선거는 2000년부터 우리나라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편이다. 2000년에는 범록련 천수이볜이 범람련인 쑹추위와 롄잔의 표 갈라먹기로 인해 2.5%p 차이로 신승했고[8] , 2004년에는 범록련 천수이볜이 범람련 단일후보로 나온 롄잔과의 싸움에서 0.2%p 차이로 또 신승, 2008년에는 범록련의 부패 이미지로 그야말로 추락하고, 범람련 마잉주가 범록련 셰창팅을 상대로 17%p의 격차로 압승, 2012년에는 범록련에게 범람련 분열이라는 호재가 있었음에도 막판 뒤집기에 실패하여 마잉주가 차잉원에게 6%p 차이로 신승, 그리고 위에서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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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잉원과 주리룬은 처음 만나는 상대가 아니다. 이미 2010년 대만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지방선거에서 신베이시 시장 자리를 놓고 격돌했던 사이. 당시에는 주리룬이 승리했다. 차이잉원은 6년만의 설욕을 노리고 있다.
- 그래서 英倫再戰(차이잉원-주리룬 리턴매치)라고 한다.
- 2015년 12월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7 <깨어난 포스>와 이번 선거를 패러디한 그림. 차이잉원, 주리룬, 쑹추위 등 3대 후보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등장한 모습이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가는 마잉주 총통은 없다.
TV토론을 가지고 포켓몬스터 스타팅 포켓몬과 합성한 짤방도 돌아다닌다(...).
- 2016년 1월 14일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퇴역 장성이 "대만 주민들은 천지 진동의 격변을 겪어야 비로소 각성하게 될 것"이라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아래 대만 문제를 철저히 해결해야할 때가 왔다"라고 하여 중국군의 대만 침공을 주장했다. 다만 아직까지 중국의 군사력이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 해군을 대만 근해에서 완전히 배제할 정도는 아니고 한 10년은 더 필요한데다 어차피 대만의 경제난은 한국처럼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인데 대만 청년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낮아지고, 국민당이 재집권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즉 굳이 지금 상황에서 전쟁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는 뜻.
- 2016년 중화민국(대만)에 체류하고 있는, 신당인TV의 영국인 출연자 벤 헤지스(Ben Hedges, 郝毅博)가 만든 14대 대만 총통선거 10대 관전포인트 동영상인데 약을 제대로 빨고 만들었다(...). 유창한 중국어는 덤. 주리룬 후보가 차이잉원을 계속 언급한다고 어둠의 차이잉원 바라기라고 하지를 않나.. 이 때 나오는 노래는 바로 이거(每次都想呼喊你的名字 - 永邦)다.
- 위의 동영상 제작자가 만든 또다른 영상. 이것도 만만치 않게 약을 빨았다.
- 선거를 앞두고 한국의 걸그룹 TWICE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방송에서 청천백일기를 보인 것이 논란에 되어 중국 출연 정지를 발표하자, 대만의 주요 정당과 후보들도 앞다투어 관련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이는 선거를 위해 정치와 무관한 개인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만하다. TWICE 쯔위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참조.
- 중국 국민당은 당 페이스북에 청천백일기와 함께 "우리의 국기, 쯔위를 지지한다"[9] 는 메시지를 올렸고 #, 쑹추위 후보도 유사한 입장을 나타냈다 #. 다만 대만 반중국여론이 심한 대만 현재 상태로는 오히려 역풍이 되었다.
-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대만단결연맹측은 마잉주와 국민당 정부의 친중 정책에 책임을 돌리는 주장을 했다#. 민주진보당 측은 차이잉원 후보가 직접 "모든 중화민국(대만) 국민은 국가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국기를 들 수 있다" "이는 국민의 권리로 억눌려서는 안된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모두가 함께 지지해야 한다"라며 쯔위를 지지하고 있다 #.
[1] 국회 의석 수 대로 기호를 부여하는 대한민국 선거와 달리 중화민국 선거는 각 후보 간 무조건 추첨제로 기호를 뽑는다. 그래서 같은 정당 후보라도 기호가 제각각이다. 추첨결과에 따라 같은 정당 후보가 어디서 1번으로 나올 수도 있고 어디서는 5번으로 나갈 수도 있다.[2] 대만 총통부 직속으로 설치된 인문, 사회, 과학기술 부문을 망라한 국립 연구기관이며, 국부천대 이전인 1928년에 설립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대한민국 학술원에 해당하는 곳. '아카데미아 시니카'(Academia Sinica)라는 라틴어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다(영어에서도 번역하지 않고 라틴어를 그대로 쓴다). 원래 하나였던 연구 기관이 양안으로 분단되었기 때문에 대륙에도 (라틴어로) 동일한 명칭을 쓰는 기관이 있는데(인문사회과학 분야는 독립해서 별개의 기관을 둔다), 여기는 영어에서는 번역해서 Chinese Academy of Sciences라고 한다. [3] 이 부분은 천수이볜이 취임 초기 대만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에 따른 국민당 지지층의 반발, 불안을 무마하기 위해 친국민당 성향 인사들도 일부 기용하는, 일종의 '거국내각' 성격의 일환이었다. 여기에 차이잉원이 국민당 출신이면서도, 독립 성향인 리덩후이 전임 총통의 정치적 영향을 받은 인물이란 점이 감안되었다.[4] 본래 국민당 당원이었으나 2015년 1월에 탈당하고 3월에 민국당을 창설했다.[5] 해당 기사의 저자인 허영섭 씨는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2011년 <대만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던 국내의 대표적인 대만통이다.[6] 중화민국 헌법 제130조 중화민국 국민 중 만 20세가 된 자는 법에 따라 선거권이 있다. 이 헌법 및 법률에 별도의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만 23세가 된 자는 법에 따라 피선거권이 있다.(第一百三十條 中華民國國民年滿二十歲者,有依法選舉之權。除本憲法及法律別有規定者外,年滿二十三歲者,有依法被選舉之權。)[7] 리덩후이 총통 시절인 1992년 중국과 대만 양측이 비공식 협상을 통해 합의한 양안관계 원칙. "'하나의 중국'을 수용하되, 해석은 중국과 대만 각자의 방식을 존중한다"(一中各表)로 요약되는데, 독립 성향인 민진당은 "국민적 합의가 없고, 중국 주도의 통일을 인정하는 불리한 조건"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으로 치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과 채택한 6.15/10.4 남북 공동선언에 대한 보수 반공진영의 부정적인 입장과 비슷한 셈.[8] 심지어 사상 최초의 선거로 인한 정권교체라는 것까지 똑같다.[9] 支持國旗,支持周子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