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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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4년 이란 테헤란에서 개최된 제 7회 하계 아시안 게임. 사상 최초로 '''서아시아 및 중동지역'''에서 열리게 된 첫 경기대회이다.
2. 메달 순위
3. 이모저모
-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 국제 축구 경기에서 원정 팀에게 악명높은 아자디 스타디움이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시절의 이름은 '아리아메르 경기장'이었고 물론 여자도 입장할 수 있었다.
- 마라톤 종목이 제외되었다. 고대 페르시아를 그리스가 이긴 것을 기념해서 하는 경기였기에 당연히 페르시아의 후신인 이란에서는 개최할 수 없었던 것.
- 중국과 북한과 몽골 등 아시아 공산권 국가들이 처음으로 출전한 아시안 게임이다. 단 북베트남은 참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1982년에 처음으로 통일 베트남이 참가하였다.
- 중국이 아시안 게임에 들어오게 됨에 따라 대만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 중동전쟁에 대한 항의로 이스라엘이 참가하는 경기마다 아랍국가들과 파키스탄, 중국, 북한이 보이콧의 의미로 기권을 날렸다.
- 남베트남이 마지막으로 참가한 대회다. 1975년에 공산화된 뒤 다음다음 대회부터는 통일 베트남으로 출전.
- 이 대회부터 실론이 스리랑카 국호로 참가했다.
- 대한민국과 북한의 종합순위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역도 선수를 하다가 은퇴하고 국회의원을 하던 신민당의 황호동 의원이 테헤란으로 급파되어 역도 슈퍼 헤비급 경기에서 인상 2위, 용상 4위, 합계 4위를 차지하여 은메달을 땄다.[1]
- 한편 북한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축구에서는 이미 결승 진출이 불가능해지고 3,4위전 진출시 상대로 북한을 만나게 될 상황에서 최종전 말레이시아전을 일부러 져서 고의로 탈락하는 승부조작을 저지르기도 했다. 정작 그렇게 올라간 말레이시아에게 북한이 졌다는 건 함정.
- 북한의 역도 3관왕인 김중일 선수가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뽀록나서 금메달을 모두 박탈당했다. 아시안 게임에서 금지약물 복용으로 메달이 박탈된 첫 사례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대한민국에 종합순위에서 밀리게 되었다. 역도 3관왕은 이 대회에서만 가능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는 인상과 용상의 합계로 순위를 매기지만, 전국 체전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합계뿐만 아니라 인상, 용상만의 순위도 각각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 대회에서는 역도 강국인 이란이 메달을 많이 딸 목적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방식으로 인상, 용상 성적을 따로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 개최국 이란은 일본에 이어서 종합순위 2위를 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하계아시안게임 메달순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이겨본 적이 있는 두 국가 중 하나.
[1] 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황호동의 평소 체중은 슈퍼헤비급의 한 단계 아래인 헤비급에 해당했다. 황호동은 헤비급(당시 90-110킬로그램)이 아닌 슈퍼헤비급(110 이상)에 참가하기 위해 열심히 먹어서 체중을 늘려서 간신히 계체량을 통과했다. 다른 선수들과 정반대 방법으로 체중조절을 한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언급했지만 세계선수권대회 방식으로 메달을 수여함에 따라 메달 획득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대회의 슈퍼헤비급 입상자들은 오히려 헤비급 입상자들보다 기록이 저조했다. 역도연맹이 황호동의 복귀를 요청한 것도 사실 이것을 노린 것이었다. 당시 헤비급 한국 대표는 윤석원이었는데, 황호동과 윤석원의 인상 기록은 같았다. 그렇지만 황호동은 2위, 윤석원은 4위였다(윤석원은 용상과 합계에서는 각각 3위를 해서 동 2개를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