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남북정상회담

 



<colbgcolor=#00224f> '''2000 남북정상회담'''
'''2000年 南北頂上會談
2000 Inter-Korean Summit'''

[image]
'''일시'''
2000년 6월 13일 ~ 6월 15일
'''장소'''
평양직할시
'''주최'''
북한
'''참석'''
'''남'''
'''북'''
대통령 '''김대중'''
국방위원장 '''김정일'''
영부인 '''이희호'''
위원장 부인 공석[1]
'''결과'''
6.15 남북공동선언
1. 개요
2. 진행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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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 6월 13일에서 6월 15일까지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평양에서 진행한 회담.

2. 진행



KTV - '''2000 벽을 넘어'''

“반세기 동안 쌓인 한을 한꺼번에 풀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입니다” - 김대중, 2000년 6월 13일 평양 도착 직후


2000년 4월 10일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2] 박지원이 남북정상회담의 예정을 발표했다. 원래 발표된 일정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였지만, 북한 측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 연기를 통보하고 남측도 이걸 받아들이면서 6월 13일로 조정되었다.
추진위원장은 박재규 당시 통일부장관이였으며, 외교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경제수석·외교안보비서관 등이 위원에 포함됐다. 준비기획단엔 통일부 차관(단장)과 각 정부부처 차관급 및 청와대 경호처장·의전비서관 등이 참여했다.
정상 회담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북한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지속했으며, 북한은 일본, 미국과도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며 국교 정상화 교섭에 나섰다. 김정일의 조기 서울 방문도 예견됐으나 국제 정세의 급변 및 대한민국 국민 정서에 의한 국내의 반감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한관계사의 이정표로 남을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한반도 평화 조성과 햇볕정책의 결실과도 같은 이 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

3. 6.15 남북 공동 선언


자세한 내용은 6.15 남북 공동 선언 문서 참고.

4. 여담


  • 박지원은 “하루 회담이 연기되었고, 출발하지 말라는 통보에도 DJ는 절망하지 않고 추진했다”라며 우여곡절 끝에 정상회담이 열렸다고 밝혔다.

  • 회담을 진행하면서 외교 관례에 따라 남북간의 선물을 교환하였다. 이 중 화제를 모은 것이 바로 였다. 남한에서는 북한에게 '평화'와 통일'이라는 이름의 진돗개 한 쌍을, 북한에서는 남한에게 '자주'와 '통일'이라는 이름의 풍산개 한 쌍을 선물하였다. 이 중 풍산개는 남한으로 들여온 후 '우리'와 '두리'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풍산개들은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사육하다가 2013년에 노환으로 자연사했다. 북한에 보낸 진돗개들은 평양의 조선중앙동물원에서 사육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김대중 대통령김정일에게 제기한 것에 감사를 나타내고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가 김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대단한 승리라고 칭송하기도 했다.[3]
  • 그러나 이 회담은 북한에 돈을 주고 성사시킨 회담이라는 논란이 일었고, 실제로 사실로 드러났다. 대북송금 사건 문서 참고.
[1] 당시 김정일에게는 비공식적인 부인 고용희가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전면에 등장하지는 못했다.[2] 아마 대한민국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맡아 당시 문화관광부의 장관이 발표를 한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2020년 현재에도 대한민국 정부의 대변인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다.[3] 김대통령 핵,미사일 등에 대해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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