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유치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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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이 평창이 개최지로 확정됨을 알리는 순간, 아래는 유치위원회 당시 로고.
1. 개최 이전
1.1. 2010년 이전 유치과정
평창은 본래 2018년이 아니라 2010년 동계 올림픽 유치서부터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리고 당시에 국내의 스키장 중에서도 그리고 경기도 권내에 용인이나, 광주의 곤지암에 있는 스키장들을 제외하고 제법 규모가 있던 스키장은 지방의 전라도에 위치한 무주와, 강원도 평창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제적 수준 역량에는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기에 그래서 정부는 그간 거점 동계 스포츠의 메카인 전라북도 무주와 강원도 평창을 기점으로 올림픽 유치지역을 국내적으로 살펴보았고 결국 강원도를 중심으로 하여 동계 올림픽 유치를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2010년도 동계 올림픽에 관련된 유치지 경쟁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물론 2010년도에는 캐나다의 벤쿠버에게 역량에서 밀리면서 유치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2007년 과테말라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유치전 당시에는 대한민국 평창과 러시아의 소치가 2014 동계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거의 2파전 양상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또한 정부차원과 민간인들이 부지를 매입하는 일명 투기자들이 늘어나면서 땅을 거의 매입한 상태였고. 또한 유치 확정만 짓게된다면 즉시 건설이 시작될 수준의 착수 단계까지 도달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평창이 소치를 제치고 유치가 거의 유력수준으로 확정이 될 것처럼 마치 보도되었다. 그러나 결국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결국 소치로 확정되면서 순식간에 국내의 여론은 풍비박산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는 분명 소치가 아닌 평창이 확실시되었던 당시 언론의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또한 여기서 특히 당시 평창 동계 올림픽 위원회에 활동했었다고도 알려진 연예인 안재환씨가 생을 마감하는 사태로도 크게 이슈화되어 나타나고 매입한 땅들에 대한 문제들도 서서히 등장한다.[1]
1.2. 2010년 이후 유치과정
32초부터 나온다.
2018년 올림픽 후보 도시로는 프랑스의 안시, 독일의 뮌헨, 대한민국의 평창 세 도시가 선정되었다.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has the honor of announcing that the 23rd Olympic Winter Games in 2018 are awarded to the city of ''''PYEONGCHANG''''.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영광스럽게 알려 드리는 2018년 제23회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평창입니다'''.
''-자크 로게, 제123차 IOC총회-''
2011년 7월 6일(현지시각)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123차 총회가 열렸다. 평창은 첫 번째 투표에서 과반수의 표를 얻었고 총 95표 중 63표를 얻어 25표를 얻은 독일 뮌헨과 7표를 얻은 프랑스 안시를 압도적으로 따돌렸다.[2]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평창은 50표, 뮌헨은 35표, 안시는 15표로 예상했는데 그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대륙 안배 차원에서 본다면, 2014 소치 올림픽 이후에 유럽에서 연속으로 개최하는 모양새도 보기 좋지 않고,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에 아시아권에도 다시 개최권이 돌아갈 시기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또한 평창이 2번 실패하고 3번째 도전한 것도 동정표를 어느 정도 얻었을 것이다.
평창은 지난 두 차례의 동계올림픽 도전에서 1차 투표 최다득표 후에도 2차 결선 투표에서 연거푸 뒤집힌 두 번의 눈물[3] 이 있었다. 유럽과 북미권 등지의 표가 분산되었다가 2차 투표에서 합쳐지는 현상 때문에 일어난 것. 그래서 이번에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로 한방에 끝내려는 전략을 세웠고 이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4]
평창은 총 95표 가운데 63표를 얻었고 지지율은 66.3%에 달했다. 이는 역대 최다 지지율 순위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라고 한다. 역대 지지율.
전체적으로 균형잡히고 돋보이면서도 깔끔한 PT[5] 로 IOC 위원들의 박수를 받았으며 삼수 과정에서의 학습 덕인지 위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한 적절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 국내 언론들의 평가. 다만 주의할 점이, 쏟아져 나오는 국내 보도자료들을 보면 마치 평창의 PT가 다른 두 PT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수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주요 외신에서 평창의 PT를 뮌헨과 안시의 PT에 비해 특별히 우수한 것으로 평가하는 보도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2014년 올림픽 개최 경쟁 때에 비해 나아졌다는 사실은 IOC 위원의 코멘트를 참고해볼 때 분명한 듯. 한편 독일 민영방송 'RTL' 은 자국의 PT가 기본에 최선을 다했다고 평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한 감이 있었다 #" 는 아쉬움을 같이 내비쳤으며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몽드' 는 이미 자국의 탈락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비쳤고 이는 결정 당일 날 비중 있는 외신으로 오르내렸다.
'르 피가로' 도 안시는 프레젠테이션에서 크게 뒤쳐졌다고 평한 바 있다. #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요인에 대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및 각 외신들의 평가 1, 2도 있다. 한편 IOC 위원이기도 한 모나코 대공 알베르 2세는 "평창의 PT를 세 번째 들으니 내용이 훨씬 좋아졌다" 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국제대회만 하면 남북 문제와 세계 평화를 들먹여서 이제 식상하다는 평가도 있어서 상당히 신선하고 좋은 이미지를 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실향민의 눈물을 PT 영상에 직접 실었던 2014년에 비해 2018년 PT 영상에선 남북평화라든가 통일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2010년 11월 남북 관계에만 의존하다 유치에 실패한 2022년 월드컵을 생각하면 이는 상당히 신선한 변화였던 셈. 아마도 남북 관계에만 의존하다 말아먹은 유치전이 좋은 반면교사가 되었던 듯. 평창 올림픽 유치에 악재가 있었는데 평양과 철자가 비슷하다는 것. 단어 처음과 끝이 'Pyeong ??ang' 으로 비슷해서 오해하기 쉬운 철자였댄다.
또한 평창 올림픽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및 정부 관계자들의 노력과 대한민국 국민, 평창 시민 모두의 노력으로 만든 결과이며, 특히 당시 IOC 위원이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이 크게 작용했다. 이건희 회장은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여러 IOC 위원들에게 평창을 선택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큰 도움이 되었다. 평소 스포츠광이고 동계 올림픽 유치에 열심이던 이건희 회장은 와신상담 끝에 결국 평창 유치 확정이 발표되자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보이기도했다.
한편 뮌헨의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은 "'''우리 떨어진 게 평창 너님들 3수한 거 때문에 동정표 받아서 그런 거임요'''" 라고 말해서 국내 여론의 빈축을 샀다. 관련 기사. 그런데 사실이기도 하다. 보통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전에서 3연속 도전하면 불쌍해서 표 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저걸 패배의 주원인으로 꼽을 순 없다. 3번 도전해서 안 된 도시들도 많고 스웨덴의 경우 도시를 바꿔가며 무려 7번을 도전했지만 아직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도 동정표가 많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평창으로서는 유럽 표 결집이 안 된 것이 행운이었다는 것이 중론. 전체 IOC 위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유럽 위원들이 각국의 이해득실 여부에 따라 평창으로 역결집을 해버린 것이다. 2020 하계올림픽 유치전에 나서는 도시로 이탈리아의 로마, 스페인의 마드리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와 경쟁하던 프랑스마저도 내심 안시가 떨어지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파리의 2020 올림픽 유치 도전을 위해서라고 했다.
즉,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한결같이 2020 하계올림픽 유치를 원하는 상황에서 2018 동계올림픽을 유럽이 따내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고 그 결과가 유일한 비유럽 후보였던 평창으로 유럽 표가 역결집한 것이다. 지난 두 차례의 도전에서 1차 투표 1등하고도 2차 투표에서 역전패를 한 이유가 유럽표 결집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2020 하계올림픽 덕을 평창이 본 셈이다. 그러나 막상 2020 하계올림픽은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 도쿄로 결정되었고 프랑스 파리는 2024년에 개최한다.
한편 네티즌마다 "진정한 유치 수훈자는 누구냐" 면서 정치적인 이전투구를 벌이기도 했다.
총회가 열린 더반은 이번 올림픽 유치로 약속의 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이곳이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세 번이나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더반은 1974년 7월 3일 홍수환이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상대로 15회 판정승을 거두고 챔피언으로 등극한 곳이었다.[6] 그리고 올림픽 유치 1년 전인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이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을 쟁취한 곳도 더반이었다.
[1] 물론 안재환씨의 경우에는 생을 마감한 이유가 이후의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그가 죽은 영향들 중에서 2014년 평창의 올림픽 유치 실패에도 영향이 분명 있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평창유치 실패 최대 수혜주가 한진고속을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동양고속이었다. 뭔말이냐면 한진고속을 인수하면서 서울-전주 고속버스 배차 절반이상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주에도 부동산이 엄청 많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즉 평창유치실패시 다음은 전주무주올림픽 유치가 가장 유력했었다. 하지만 18년 평창유치 확정으로 피똥싸면서 파라곤으로 유명한 동양건설을 토해내는 수모를 당하고 만다.[2] 1차투표 3전전승! 첫번째 두번째 도전에서 모두 1차투표는 이겼지만 과반수에 못미쳤다. 하지만 세번째에서는 6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1차투표에서 결정이 났다.[3] 2003년 프라하 총회에서의 탈락과 2007년 과테말라시티 총회에서의 탈락.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4]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말하자면,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8로 끝나는 해는 모두 아시아에서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1998년 나가노, 2008년 베이징, 2018년 평창. 하지만 이 징크스는 2028년에 미국 LA에서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서 끝나게 되었다. [5] 프레젠테이션[6] 경기 결과도 결과지만 경기 직후 국제전화로 한국에 있던 어머니에게 외친 '''"엄마야?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이 더 유명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