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on Come on 마산스트리트여
1. 소개
2007년에 발표한 노브레인의 정규 5집 '그것이 젊음'의 수록곡 중 하나이다.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가 경상남도 마산시 출신이라서 이 곡을 썼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곡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옛 마산시와 통합된 경상남도 창원시를 연고지로 둔 KBO 리그 팀 NC 다이노스가 팀 응원가로 쓰게 되면서'''부터이다.
한때는 NC 다이노스를 대표하는 응원가로 야구팬이 직접 뮤비를 만들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높은 지지도를 보이는 노래였지만 2019년부터 후술하는 이유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 응원단상에서 이 노래가 나왔고 시상식 후 선수단의 자축 기념촬영 시간 때 응원단이 이 노래를 틀었기 때문에 2021년부터는 응원가로 다시 부를 가능성도 있다.
2. 가사
3. 여담
- 2015년에 이 곡은 하마터면 NC의 응원가로 쓰이지 못할 뻔 했다. 이유는 '콜라빛 나는 바닷물'이라는 표현이 일부 시민들과 시의원에 의해 문제가 된 것. 지금은 마산 앞바다가 깨끗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산 앞바다는 더럽다'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자 창원시에서는 NC 다이노스에게 사용자제 요청을 보냈고, 구단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원곡의 가사를 일부 수정하여 사용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들이 "모두가 함께 웃으며 부를 수 있는 창원의 노래"를 원했고, 결국 마산 스트리트는 응원가로써 남을 수 있었다.
-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가 계속되면서 이 노래를 작곡한 이성우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데, 응원가로 이 노래를 쓰는 것을 무료로 허락했기 때문이다. 옆동네가 부산 갈매기를 못 쓰는것과는 대조되고 있다.
- NC 다이노스가 홈 구장을 옮긴 2019년부터는 응원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전술한 응원가 저작권 문제 때문이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로 사장됐는데, 창원 새 야구장 명칭 선정 논란에서 구 마산 지역 정치인들과 토호들이 지역 이기주의로 점철된 막말과 억지 주장을 하면서 마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구단이나 팬들에게 금기어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물론 노래 자체는 별 문제가 없을뿐더러 원작자인 이성우가 야구장 명칭 문제에 대해 특별히 언급을 한 적도 없고[8] , 오랫동안 응원가로 사용됐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다시 응원가로 쓰자는 의견도 간간히 나오고 있으나 묵살되고 있다. 대신에 구단은 마산이 아닌 창원 NC를 강조하는 새 응원가로 응원을 하고 있다.
[1] 바닷물이 콜라빛이 나는 이유는 예전 산업화로 인해 마산항 바닷물이 더러웠기 때문이다. 실제 '마산만을 살립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공익 캠페인이 지역 내에서 전개된 적도 있었다. 현재는 시에서 '''수질 오염으로 폐쇄된 해수욕장을 재개장(!)할 정도'''로 수질 개선 사업을 많이 한지라 깨끗하다.[2] 모 시의원이 이 가사가 지금 마산이랑 맞지 않다면서 당분간 NC 다이노스와 창원시가 협의하여 사용하지 않다가 2015년 9월 13일부터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3] 실제로는 커온 중앙동이라고 불렀으나 가사집에도 '거주하던'으로 씌여있다. 기타리스트가 가사를 듣고 가사집에 받아적어서 나온 실수라고 함.[4] 실제로 보컬 이성우가 살던 중앙동 집이 몇년만에 찾아가니 없어졌더라..는 사연이 담긴 가사라고 본인 SNS에 밝힌 바 있다.[5] '죽여 준다'의 동남 방언이다.[6] 야구장 전광판에는 '쥑인다!'로 자막이 나온다. 마산아재도 쥑인다고 부른다! [7] 서울의 찬가는 1969년 발표됐고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원곡이 1969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조용필이 독집 앨범에 실어 히트한 것이 1976년으로 알려져 있다.내 고향 충청도는 19세기에 지어진 구전 민요가 1970년대에 올리비아 뉴튼 존의 버전으로 국내에 보급됐고 1976년 조영남이 번안해서 발표했다.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는 1979년에 발표됐고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는 1982년,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1986년에 발표됐다.[8] 오히려 이성우는 이 사건으로 피해를 봤다. 금전적인 이득은 어차피 없었다지만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대중들이 자신의 노래를 그만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술인으로서는 당연히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