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4
ИС-4
'''Объект 70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개발된 소련의 중전차로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딴 스탈린 전차 계열에서 4번째로 소련군에 제식 채용된 전차다.
원래는 3번째로 채택되었어야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동생 IS-3이 먼저 채택되어 4번째로 밀리는 바람에 종전 이후에나 양산됐다. 키릴 문자로는 '''ИС-4'''로 라틴 문자로는 '''IS-4''' 또는 '''JS-4'''로 표기한다.
기존 스탈린 전차의 방어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1943년 ChTZ(당시 '''첼랴빈스크 키로프 공장''')의 SKB-2에서 개발을 시작하였고 1944년 4월 경에는 Object 701의 시제차량 두 대가 제작되었고 시험 주행 후 설계를 개선하여 1944년 말과 1945년 초에 시제차량 두 대를 다시 제작하였다.
기본적인 전면형상은 전측면 장갑의 각도가 조금 더 붙은 상태로 IS-2와 IS-2 1944년형 을 합쳐놓은 것 처럼 생겼다. 기존의 IS-2의 약점이었던 조종수 관측창 부분이 개량되었고 전체적으로 IS-2에 비해 장갑 두께가 훨신 증가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IS-2가 46톤, IS-3가 46.5톤 대인 소련 중전차와는 달리 중량만 50톤 후반 내지 60톤 초반인데 이는 전차의 기동력에 비해 방호력에 투자한 결과로 티거 2에 탑재된 8,8cm KwK 43 (L/71)전차포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장갑을 가지도록 설계되었다.
라이벌인 IS-3가 IS-2와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의 무게를 가지고서도 특유의 뱃머리 형상의 미려한 경사장갑과 이후 동구권 전차를 대표하게 되는 반구형 포탑, 어설프게 성형작약탄을 방어하기 위해 현지에서 용접하여 장착한 닭장이 아닌 설계부터 재대로 도입된 내부 공간장갑 같은 신기술을 대폭 도입하여 기존 IS-2와 동일한 수준의 비교적 얇은 장갑으로도 실질적인 방어력이 대폭 상승한 혁신적인 전차라면 상대적으로 IS-4는 IS-2의 약점을 제거하고 더 두꺼워진 장갑으로 포탄을 막아내는 보수적인 전차에 가깝다.[2]
140mm 전면장갑보다 두꺼운 160mm 측면 경사장갑 당시의 어떠한 포도 막아내는 250mm을 우습게 넘기는 경사포탑 그야말로 사방에 떡장을 발랐다. 이러한 장갑수치는 같은 떡장갑으로 유명한 마우스 전차 랑 비교시 부분우위 부분열세이다. 60톤짜리가 무려 200톤 가까이가는 전차와 방어력이 비슷하다는거부터 이 전차의 위용을 알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실전투입도 못하고 잉여전력으로 구석에 박아둔 것도 두 전차가 매우 비슷하다. 그나마 60톤짜리는 한줌 양산이라도 성공한게 다행인가?
개발된 차량 중 Object 701 No. 5 전차의 생산이 결정되었으나 양산되기 직전 IS-3 전차 생산이 결정되어 양산이 중단되었다. 당시 소련군 수뇌부는 반구형 포탑과 쇄기형의 차체 전면 장갑을 갖춘 IS-3를 혁신적인 전차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지로 생산이 보류되었다는 소리도 있다. 1946년 IS-3 생산이 보류되었고 그 후 1949년까지 IS-4가 생산되었다. IS-4M 전차는 1951년 동안 25대가 생산되었으며 그전에 생산된 전차는 모두 IS-4M 과 같은 수준으로 현대화 작업을 거쳤다. 총 258대가 생산되었고 너무 무거워서 수송이 어려웠으며 소련군의 중전차 운용교리를 충족하기 어려워 모두 극동 지역 주둔군에서 운용되어 IS-3보다 일찍 퇴역하게 된다.
그나마 출처가 있는 사진 몇 개를 추려본다. 1960년대까지 극동 주둔 소련군에 운용되다가 퇴역했다. 이는 소련군이 IS-4의 선조격 IS-2와 배다른 동생 IS-3를 현대화 개수해서 소련군이 해체될 때까지 운용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4][5] 이후 대부분 고정포나 사격표적 등으로 활용되다가 버려졌다.
극동지역과 소련-중국 국경지역, 핀란드와 폴란드에서는 주로 포탑만을 분리하여 콘크리트 벙커 위에 얹어 고정포 운용되다가 버려졌다. 사할린이나 쿠릴 열도에서 역시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해안포로 운용하다가 버려졌다.
현재 외형이 온전하게 전시된 IS-4는 5대 미만으로 이중에서 '''주행이 가능한''' IS-4는 쿠빈카 전차 박물관에 보존된 IS-4M 한 대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2001년 행사 때 주행했던 것으로 이때를 이후로 행사를 뛰지 않아 이마저도 현재까지 주행이 가능한지는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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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안 245, 설계안 244와 마찬가지로 IS-85를 약간 개량하고 SU-100의 포와 동류의 100mm D-10T 포를 장착한 모델이다. 이 포는 122mm보다 더 높은 관통력을 가졌고 화력도 괜찮을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22mm에 비하면 여전히 화력이 약했으며 100mm포의 원본인 100mm B-34는 해군에서 쓰이다가 육상용으로 전용되고 있는 중으로서[6] 아직 신형 철갑탄의 개발이 덜 되었으며 신형 중전차의 주포로는 공급문제에 휩싸일 위험이 있었다. 고로 IS-122와 경쟁했으나 패배했다. IS-122가 IS-2로 이름이 변경될때 IS-100은 IS-4로 변경된다. 개발이 취소되고 IS-4의 네이밍은 설계안 701에게 넘어간다. 자세한건 IS-1 4.1 목차 참조.
IS-4의 현대화 개량형으로 1951년에 25대가 양산되었고, 그 뒤 먼저 양산된 기존의 IS-4들이 이와 준하는 수준으로 개량되였다.
기존 포탑의 단점을 해결하고자 IS-4 차체를 기반으로 포탑을 재설계한 설계안이다.
모 게임의 영향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Объект 701'''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개발된 소련의 중전차로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딴 스탈린 전차 계열에서 4번째로 소련군에 제식 채용된 전차다.
원래는 3번째로 채택되었어야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동생 IS-3이 먼저 채택되어 4번째로 밀리는 바람에 종전 이후에나 양산됐다. 키릴 문자로는 '''ИС-4'''로 라틴 문자로는 '''IS-4''' 또는 '''JS-4'''로 표기한다.
2. 상세
기존 스탈린 전차의 방어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1943년 ChTZ(당시 '''첼랴빈스크 키로프 공장''')의 SKB-2에서 개발을 시작하였고 1944년 4월 경에는 Object 701의 시제차량 두 대가 제작되었고 시험 주행 후 설계를 개선하여 1944년 말과 1945년 초에 시제차량 두 대를 다시 제작하였다.
기본적인 전면형상은 전측면 장갑의 각도가 조금 더 붙은 상태로 IS-2와 IS-2 1944년형 을 합쳐놓은 것 처럼 생겼다. 기존의 IS-2의 약점이었던 조종수 관측창 부분이 개량되었고 전체적으로 IS-2에 비해 장갑 두께가 훨신 증가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IS-2가 46톤, IS-3가 46.5톤 대인 소련 중전차와는 달리 중량만 50톤 후반 내지 60톤 초반인데 이는 전차의 기동력에 비해 방호력에 투자한 결과로 티거 2에 탑재된 8,8cm KwK 43 (L/71)전차포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장갑을 가지도록 설계되었다.
라이벌인 IS-3가 IS-2와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의 무게를 가지고서도 특유의 뱃머리 형상의 미려한 경사장갑과 이후 동구권 전차를 대표하게 되는 반구형 포탑, 어설프게 성형작약탄을 방어하기 위해 현지에서 용접하여 장착한 닭장이 아닌 설계부터 재대로 도입된 내부 공간장갑 같은 신기술을 대폭 도입하여 기존 IS-2와 동일한 수준의 비교적 얇은 장갑으로도 실질적인 방어력이 대폭 상승한 혁신적인 전차라면 상대적으로 IS-4는 IS-2의 약점을 제거하고 더 두꺼워진 장갑으로 포탄을 막아내는 보수적인 전차에 가깝다.[2]
140mm 전면장갑보다 두꺼운 160mm 측면 경사장갑 당시의 어떠한 포도 막아내는 250mm을 우습게 넘기는 경사포탑 그야말로 사방에 떡장을 발랐다. 이러한 장갑수치는 같은 떡장갑으로 유명한 마우스 전차 랑 비교시 부분우위 부분열세이다. 60톤짜리가 무려 200톤 가까이가는 전차와 방어력이 비슷하다는거부터 이 전차의 위용을 알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실전투입도 못하고 잉여전력으로 구석에 박아둔 것도 두 전차가 매우 비슷하다. 그나마 60톤짜리는 한줌 양산이라도 성공한게 다행인가?
개발된 차량 중 Object 701 No. 5 전차의 생산이 결정되었으나 양산되기 직전 IS-3 전차 생산이 결정되어 양산이 중단되었다. 당시 소련군 수뇌부는 반구형 포탑과 쇄기형의 차체 전면 장갑을 갖춘 IS-3를 혁신적인 전차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지로 생산이 보류되었다는 소리도 있다. 1946년 IS-3 생산이 보류되었고 그 후 1949년까지 IS-4가 생산되었다. IS-4M 전차는 1951년 동안 25대가 생산되었으며 그전에 생산된 전차는 모두 IS-4M 과 같은 수준으로 현대화 작업을 거쳤다. 총 258대가 생산되었고 너무 무거워서 수송이 어려웠으며 소련군의 중전차 운용교리를 충족하기 어려워 모두 극동 지역 주둔군에서 운용되어 IS-3보다 일찍 퇴역하게 된다.
3. 말로
그나마 출처가 있는 사진 몇 개를 추려본다. 1960년대까지 극동 주둔 소련군에 운용되다가 퇴역했다. 이는 소련군이 IS-4의 선조격 IS-2와 배다른 동생 IS-3를 현대화 개수해서 소련군이 해체될 때까지 운용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4][5] 이후 대부분 고정포나 사격표적 등으로 활용되다가 버려졌다.
극동지역과 소련-중국 국경지역, 핀란드와 폴란드에서는 주로 포탑만을 분리하여 콘크리트 벙커 위에 얹어 고정포 운용되다가 버려졌다. 사할린이나 쿠릴 열도에서 역시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해안포로 운용하다가 버려졌다.
현재 외형이 온전하게 전시된 IS-4는 5대 미만으로 이중에서 '''주행이 가능한''' IS-4는 쿠빈카 전차 박물관에 보존된 IS-4M 한 대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2001년 행사 때 주행했던 것으로 이때를 이후로 행사를 뛰지 않아 이마저도 현재까지 주행이 가능한지는 불명이다.
4. 같은 명칭의 다른 전차
4.1. IS-4/IS-100/Object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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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안 245, 설계안 244와 마찬가지로 IS-85를 약간 개량하고 SU-100의 포와 동류의 100mm D-10T 포를 장착한 모델이다. 이 포는 122mm보다 더 높은 관통력을 가졌고 화력도 괜찮을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22mm에 비하면 여전히 화력이 약했으며 100mm포의 원본인 100mm B-34는 해군에서 쓰이다가 육상용으로 전용되고 있는 중으로서[6] 아직 신형 철갑탄의 개발이 덜 되었으며 신형 중전차의 주포로는 공급문제에 휩싸일 위험이 있었다. 고로 IS-122와 경쟁했으나 패배했다. IS-122가 IS-2로 이름이 변경될때 IS-100은 IS-4로 변경된다. 개발이 취소되고 IS-4의 네이밍은 설계안 701에게 넘어간다. 자세한건 IS-1 4.1 목차 참조.
5. 파생형
5.1. IS-4M
IS-4의 현대화 개량형으로 1951년에 25대가 양산되었고, 그 뒤 먼저 양산된 기존의 IS-4들이 이와 준하는 수준으로 개량되였다.
5.2. ST-I
기존 포탑의 단점을 해결하고자 IS-4 차체를 기반으로 포탑을 재설계한 설계안이다.
6. 매체에서의 등장
모 게임의 영향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6.1.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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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지상군 중전차 트리에서 IS-4M으로 5랭크에 등장한다. 전면의 경우 힛탄이나 128mm가 아닌 이상 무적이다. 가장 큰 약점으로 차체전면 상부중앙에 돌출된 조종수 관측창은 방어력이 떨어진다. 물론, 각을 주거나 하면 관통당할 확률이 상당수 줄어들어 대부분 씹힌다만 간혹 각을 잡고 들어오는 애매한 상태에서 관측창을 쏘면 되려 포탑링에 맞아 IS-4M의 승무원 모두 저승길 동무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건 덤이다.
소련 지상군 중전차 트리에서 IS-4M으로 5랭크에 등장한다. 전면의 경우 힛탄이나 128mm가 아닌 이상 무적이다. 가장 큰 약점으로 차체전면 상부중앙에 돌출된 조종수 관측창은 방어력이 떨어진다. 물론, 각을 주거나 하면 관통당할 확률이 상당수 줄어들어 대부분 씹힌다만 간혹 각을 잡고 들어오는 애매한 상태에서 관측창을 쏘면 되려 포탑링에 맞아 IS-4M의 승무원 모두 저승길 동무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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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테크 트리 중전차가 기동형 중전차와 장갑형 중전차로 분리 이전까지는 9티어 중전차로 등장하였으나... 분리 이후 10티어 장갑형 중전차로 등장한다. 실로 고증을 뛰어넘는 버프를 먹었다. 소련의 레일건으로 불리는 10티어 122mm M62-T2 주포를 최종포로 달 수 있지만 스톡포는 무려 7티어 122mm D-25T 주포다. 미리 T-10의 최종포인 122mm M62-T2 주포를 연구한 뒤 자경으로 최종 포탑과 현가장치를 단 뒤에 이 포를 달아서 ST-I 때와 IS-4 때 고생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세한 사항은 월드 오브 탱크/소련 테크 트리/중전차#s-4.5를 참조하라.
소련 테크 트리 중전차가 기동형 중전차와 장갑형 중전차로 분리 이전까지는 9티어 중전차로 등장하였으나... 분리 이후 10티어 장갑형 중전차로 등장한다. 실로 고증을 뛰어넘는 버프를 먹었다. 소련의 레일건으로 불리는 10티어 122mm M62-T2 주포를 최종포로 달 수 있지만 스톡포는 무려 7티어 122mm D-25T 주포다. 미리 T-10의 최종포인 122mm M62-T2 주포를 연구한 뒤 자경으로 최종 포탑과 현가장치를 단 뒤에 이 포를 달아서 ST-I 때와 IS-4 때 고생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세한 사항은 월드 오브 탱크/소련 테크 트리/중전차#s-4.5를 참조하라.
6.2. 모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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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viet JS-4 Heavy Tank 05573
1:35 스케일로 개량형 IS-4M을 제현했다. 트럼페터 특유의 약간 밋밋한 질감을 빼면 이정도면 살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좀 비싸다는게 흠으로 2014년 4월 달에 발매했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IS-4를 프라모델로 발매했다. 여담으로 이 해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트럼페터가 무서운 기세로 새로운 스탈린 전차의 킷을 뽑아내고 있다.
Soviet JS-4 Heavy Tank 05573
1:35 스케일로 개량형 IS-4M을 제현했다. 트럼페터 특유의 약간 밋밋한 질감을 빼면 이정도면 살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좀 비싸다는게 흠으로 2014년 4월 달에 발매했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IS-4를 프라모델로 발매했다. 여담으로 이 해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트럼페터가 무서운 기세로 새로운 스탈린 전차의 킷을 뽑아내고 있다.
7. 둘러보기
[1] 동시대 차량과 비교했을 때 60톤급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꽤나 속력이 빠른 것을 볼 수 있다. 우측 제원표 상단 사진과 동일한 차량이며, IS-4 중에서 '''유일하게''' 주행이 가능하나, 이마저도 2001년 행사 때 주행했던 것으로 이때를 이후로 행사를 뛰지 않아 이마저도 현재까지 주행이 가능한지는 불명이다.[2] 물론 IS-4도 IS-2와 비교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듯 상당한 장갑형상 변경이 있었다. IS-3와 대칭되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보수적인 설계인 것이지 IS-4가 그냥 IS-2에서 장갑만 늘어난건 아니다.[3] 해당 게시자에 따르면 1984년까지 핀란드 국경에 고정포로 운용된 IS-4M의 포탑이라 한다.[4] 당시 다 해결하지 못한 결함들과 IS-2에 비해 퇴보한 승무원 거주성, 과도한 중량 탓 때문이었다.[5] 이후 T-10이 개발될 때도 한계중량을 50t 미만으로 정한 것의 가장 큰 이유는 철도로의 원할한 수송을 위해서였다. 여름만 되면 지랄맞은 라스푸티차가 열리는 당시 소련의 열악한 교통망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6] 이 포는 견인포로는 1944년부터 쓰이게 된다. 반면에 122mm A-19는 M1931과 M1937의 두 버전으로 이미 붉은 군대에서 대량으로 사용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