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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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СУ-100
2. 개요
제2차 세계대전당시 소련군이 운용한 자주포[2] 로서 주로 대전차전에 투입되었다. SU-85 자주포를 기반으로 100mm 주포를 장착하고 몇몇 개량사항을 적용한 자주포이다.
3. 개발 과정
소련이 43년 여름부터 양산하기 시작한 SU-85 자주포는 85mm D-5S 주포를 장착하였다. 이 자주포는 대전차전을 주목적으로 하여 개발된 소련의 첫 자주포로서 그 개발 목적은 대다수의 독일 전차를 장거리에서 효과적으로 상대하면서, 거리를 좁힌다면 중전차의 전면까지 관통 가능한 높은 대전차 성능을 가지는 것이었다. 85mm 주포를 장착한 SU-85는 개발 당시에는 이 목적에 충분한 성능을 가졌다고 판단되었으나 곧이어 독일이 판터 같은 더 두꺼운 장갑을 가진 중장갑 전차들을 배치하기 시작하자 배치 첫달부터 화력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SU-85는 화력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사소한 문제점들이 있었는데 대전차전에 있어 T-34와 동일한 45mm 장갑은 충분하지 못했으며[3] 장거리 전투에 효과적인 시야확보 시스템도 필요했다. 이리하여 SU-85는 양산과 거의 동시에 개량계획이 짜여지게 된다.
43년 8월 29일, 85mm보다 더 효과적인 대전차용 주포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 소련군 앞에 우랄마쉬가 가장 먼저 제안한 주포는 122mm D-25로서 SU-85에 122mm를 올려서 대전차용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SU-85에 122mm 주포를 장착하자 기존 SU-85에 비해 무게가 2.5톤이나 증가했고 발사속도가 심하게 느려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여기에 연구가 지속되면서 122mm 주포나 152mm D-15 주포를 T-34를 기반으로 한 중형 자주포 플랫폼에 장착하는 안은 중형 자주포들의 기동성을 심하게 떨어트리고 차체에 큰 무리를 주는 문제점이 생긴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었다. 소련군은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이런 거대한 주포를 중전차와 중자주포에게만 장착하기로 결정하게 되지만 화력덕후 기질에서 오는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여 중형 플랫폼을 강화시켜 저런 거포를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SU-D-15와 SU-D-25 같은 자주포도 별도로 연구하게 된다.
하여간 이렇게 122mm와 152mm가 탈락하자 그 뒤에 테스트된 것은 85mm 장포신포로 이 포는 매우 높은 포구초속을 가졌다. 이 주포는 대단한 관통력을 보여줬지만 포신 자체가 문제가 있었고 세부적인 시스템과 조화가 맞지 않는데다 독일군으로부터 노획한 대량의 전차들을 통해 테스트해본 바 고속으로 관통력을 얻는 저구경포는 경사장갑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을 발견하여 이 85mm 주포는 탈락하게 된다.
이리하여 85mm와 122mm를 테스트해본 우랄마쉬는 그 중간인 100mm~107mm급 주포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 사이즈의 주포를 물색하게 된다.
과거 KV개량형들에게 장착하려고 했던 한때의 유망주 107mm계열 주포는 M60주포가 나왔던 41년 이후 연구가 완전히 중단되었으므로 소련은 43년 11월, 결국 새 자주포에 해군의 100mm B-34 함포[4] 를 개량한 주포를 장착하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44년 1월 15일 T-34를 바탕으로 한 100mm 자주포의 디자인이 끝나고 1월 25일부터 2월 20일까지 새 주포를 장착한 프로토타입이 공장내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2월 25일 프로토타입이 안정성 검사를 끝냈다.
그러나 이런 테스트를 통해 100mm 주포 역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원래 B-34 함포 기반의 전차포는 IS-100 중전차를 위한 것이었고 기존의 SU-85를 기반으로 한 자주포에 장착하기에는 이 역시 크기가 너무 컸다. 이 포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차체 넓이를 늘릴 필요가 있었고 결국 토션바를 뜯어 고쳐야 했지만 그러면 개량에 시간이 많이 걸리며 생산성이 나빠지고 손이 많이 가니까 우랄마쉬는 그냥 이대로 빨리 출시하려고 했다. 이 문제는 다행히도 B-34를 적절하게 줄인 D-10S이 등장하여 해결되게 된다.
이렇게 하여 SU-100은 기존 SU-85에서 100mm D-10S 주포를 장착하고 보다 강화된 75mm 장갑을 가지게 되었으며 고성능의 MK-IV 조준기와 추가적인 전차장용 큐폴라가 장착되어 완성되었으나 곧장 대량 양산되진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100mm B-34 주포는 정작 44년 후반기까지 고폭탄외에는 재고 포탄이 없었다. 이 말은 즉 대전차전을 위해 만든 자주포가 철갑탄이 없어서 대전차전을 못한다는 말이다. 이 문제로 SU-100이 양산되지 못하고 있는 동안 같은 주포를 사용하는 SU-100-2 자주포가 제안되었는데 4월 30일 소련은 이 SU-100-2 역시 프로토타입을 만들라고 지시를 내렸고 SU-100-2의 첫 프로토타입이 5월 8일 완성된다. 이리하여 SU-100과 SU-100-2가 경쟁하게 되었다.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있었던 테스트에서 SU-100은 250km를 이동하며 923발을 사격했으며 1500m의 거리에서 판터와 티거를 박살낼 수 있었고 2000m 거리에서 페르디난트의 측면을 관통할 수 있었다.
7월 1일 SU-100-2도 같은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결과는 SU-100의 우위였다. 그리하여 7월 3일 SU-100이 정식으로 소련군에 제식으로 편입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U-100의 양산은 여전히 순조롭지 않았는데 SU-100의 개량점은 유지하면서 주포를 D-10S 대신 85mm D-5S-85를 사용하는 SU-85의 현대화 개량형인 SU-85M이 제안되었기 때문이다.
100mm D-10S용 BR-412B 철갑탄이 11월에야 완전히 양산되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소련군은 여전히 대전차전용 자주포를 양산해야 했고 그래서 SU-100 대신 315대가 양산된 SU-85M은 SU-100와 개량점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나서 결국 SU-100을 양산할때는 새로 생산라인을 갈아엎어야 했고 이 때문에 대전초 독일군마냥 SU-100 양산에 차질을 주게 되었다.
이런 복잡한 문제가 겹치며 SU-100은 44년 8월부터 양산이 시작되었고 9월부터 출고되기 시작했는데 100mm용 철갑탄이 제대로 보급되는 11월 이전에는 SU-85M와 함께 생산되게 되었다.
4. 실전
이렇게 드디어 양산된 SU-100은 44년 9월부터 전장에 배치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첫번째 연대는 SU-100의 높은 신뢰도와 기동성으로 호평을 했다. 그러나 정작 BR-412B 철갑탄이 도착하는 10월까지는 철갑탄이 없어 훈련용으로만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SU-100은 45년 1월이 되어서야 부다페스트에서 첫 실전을 가지게 되었다.
동프로이센 등지에서 소련군이 공세를 취할때 SU-100은 종종 끝에서 적의 종심을 뚫는 돌격병기로 사용되곤 했는데 이는 빠른 재보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SU-100이 가장 많이 동원된 작전은 45년 3월의 봄의 새싹 작전으로 독일군 제6 SS 전차부대에 대한 역습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SU-100은 독소전 후기에 소련군의 역습을 돕는 역할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판터와 티거2를 포함한 모든 독일 전차에 대해 매우 효과적임을 증명했다.
45년 3월 11일에서 12일부터는 전차부대의 손실이 너무 커지자 SU-100이 잠시 전차 역할을 대신 맡기도 하였는데 3월 15일부터 22일까지 제1 우크라이나 방면군은 21대의 SU-100중 15대를 손실했다. 이 손실은 대부분 적 포격에 의한 것이었고 3대는 늪에 빠진 것을 건져내지 못해서 손실된 것이었다.
베를린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45년 3월 말부터 SU-100 자주포들은 전차군에 소속되기 시작했는데 제1 근위 전차군은 27대의 SU-100을 배속받았고 4월 14일에는 독일 제11 기갑군단과의 전투를 위해 14대의 SU-100이 추가로 배치되었다. 제 2 근위 전차군은 3월 말에 31대의 SU-100을 받았고 4월 초에 15대를 더 받는다. 제 4 근위 전차군은 28대의 SU-100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중 10대는 제6 기계화군단의 것이었고 18대는 제 10 전차군단 소속 휘하의 제 416 근위 자주포단 소속이었다.
베를린 공세가 시작되자 기존의 소극적인 역습임무가 아닌 적극적인 공세임무에 투입된 SU-100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되었는데 4월 17일에는 제 1 근위전차군이 2대의 SU-100을 손실했고 4월 19일에는 7대의 SU-100을 손실했다. 제2 근위전차군은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5대의 SU-100을 잃었고 제 4근위전차군은 4월 16일부터 22일까지 18대의 SU-100을 손실한다.
베를린 시가전에 돌입하기 직전 제1 근위전차군에게 남은 전투준비 완료된 SU-100은 모두 17대가 되었다.
시가전에서 자주포들은 소규모로 분리되어 전차 및 보병들과 합동 운영하게 되어 있었기에 소규모로 재편성되었다. 예를들어 제9 전차군단 내 95 전차 여단은 7대의 T-34-85와 5대의 SU-100으로 구성되었으며 제7 보병 군단에 배속되어 보병의 지원을 받았다.
4월 28일에는 33대의 SU-100을 가진 제1818, 1415, 1049 자주포연대와 제95 전차여단이 제 3충격군으로 베를린 진공을 맡았다. 4월 23일부터 5월 2일까지 제 2근위전차군은 7대의 SU-100을 잃었고 제 3 근위전차군은 4대, 제4 근위전차군은 3대의 SU-100을 잃었다. 이 손실은 대부분 적병에 의한 것이었다.
5월부터 6월까지 SU-100을 장비한 4번째 연대가 만들어지는데 이 부대는 유럽에서 전투를 하지 못하는 대신 만주에서 일본군을 상대하게 된다.
5. 성능
SU-100의 D-10S 주포는 2차대전 당시 철갑탄 기준으로 독일군 티거2의 주포였던 KwK43의 철갑탄과 동등한 관통력을 보여줘 대부분의 독일 전차를 장거리에서도 간단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종전 이후 빠르게 퇴역한 Kwk43에 비해 구경도 더 크면서 포신도 더 짧고 무게는 절반도 안되었기 때문에 대전 이후 냉전기에도 개량과 새로운 탄을 개발하며 현역으로 사용된 명품 포였다.
SU-100은 소련군이 2차대전 때 사용한 기갑병기 중 실질적으로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병기인 만큼 이전 병기들과 달리 세부 스팩들도 훨씬 뛰어나서 전차장과 포수의 시야 확보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등 소련군 기갑병기치고는 상당히 선진적인 부분이 많다. SU-100의 MK-IV 직사 조준기는 소련 내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었으며 ISU-152에 장비된 장거리 포격용 조준경은 없었으나 이 직사조준경으로도 4km 거리에서 고폭탄 포격이 가능했고 소련군 자주포가 다 그렇듯 그렇게 쓰기도 했다.[5]
일반적으로 독일의 구축전차와 비슷한 역할을 맡아 공격해 들어오는 적 전차를 막아내고 역습을 하는 역할로 사용되었으나 때로는 공세용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시가전에 투입되어 돌격포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에 돌격포 용도로 개발된 자주포는 아니라서 이런 목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돌격포처럼 피해가 컸다. 일단 PaK 40을 중거리에서도 버틸수 있을 정도로 정면이 강화되긴 했지만 시가전은 그렇게 먼 거리에서 쏠 일도 별로 없으며 작정하고 구축한 대전차진지가 있으면 T-34-85나 SU-85에 비해 강화된 정면장갑이라고 해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보조무장인 기관총도 없다는 점 때문에 보병의 대전차 공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다.[6]
보통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SU-100은 그다지 주행성능이 좋지는 못했다. T-34때부터 내려오는 문제점이었지만 정면장갑을 강화하고 크고 긴 100mm포를 달면서 극대화된 것인데, 4호 구축전차에서 생기는 문제는 전부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된다. 특히 무게중심이 나빠진 것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원인으로 전방구통계의 마모는 상당했다고 한다. 이런 사유로 소련도 SU-101같은 후방전투실을 가지고 있는 신형자주포 계획을 하게된다.
반면 생산성이 상당히 우수했는데 44년 8월부터 양산이 시작되었고 그것도 SU-85M과 같이 생산했지만, 45년 초반에 이미 수백대가 쌓였고 전후 위성국등에 대량 공여가 될 정도로 대량생산이 용이했다.
6. 2차대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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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 방치된 SU-100. 내전에 사용된 듯 하다.
46년까지 양산된 SU-100은 차체 부품은 T-34, 주무장은 T-55와 많은 부품 및 탄약이 호환되므로 바르샤바 조약기구같은 소련의 위성국에 대량으로 공여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과 북한에서도 사용하였다. 6.25 때 북한군이 끌고 왔으며 1951년 중공군의 참전 때에도 T-34, IS-2와 더불어 재차 투입, 자주포 용도로 사용되었다. 중공군이 끌고왔던 SU-100 몇대가 유엔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는 중국 문서도 발견되었다. 당시 인민군과 중공군은 지원포격으로 활용할 때 T-34의 85mm보다도 더 효과적이어서 고평가를 내렸다.
대한민국의 경우, 전쟁기념관에 한대 전시되어 있는데 불가리아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설명이 잘못되었는데, '''장갑이 얇아서''' 후방에서 자주포로 포격용도로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옳지 못한 서술인데, 이놈의 전면장갑은 75mm 50도 경사로 실질적인 방어력은 티거의 100mm 장갑보다 높다. 유엔군이 끌고 온 이지에잇이나 크롬웰과 비교해도 높은데 잘못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동란 후기엔 거의 모든 기갑차량이 전차전보다는 지원포격의 자주포 대용으로 쓰였고 반대로 초기엔 이놈들도 유엔군을 상대로 전차전을 치루었다.
심지어 이집트같은 당시 소련과 친한 중동국가에도 수출돼서 현지의 기후조건에 걸맞는 약간의 개조를 하여 사용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북베트남군도 베트남전에 사용했는데 딱 자주포 용도로만 쓰였다. 그리고 일부 차량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에 실전에 투입되는 상황까지 있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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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찍힌 사진)
심지어 2015년 예멘 내전에서도 T-34와 함께 후티 반군 소속으로 참가했다!
2015년 승리의 날 행사 때 70주년 기념으로 기갑부대 퍼레이드 앞머리에 T-34와 함께 등장하는 위엄을 보였다.
이외에도 멀리서 보면 야크트판터와 비슷한 모습이기 때문에 소련이 만든 영화에서 독일군 전차 대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워게이밍에서 이 전차를 복원했다.
7. 매체에서의 등장
의외로 인지도가 있는 탓인지 등장한다. 편의상 가나다순으로 기제한다.
7.1. 게임
중국과 북한의 대전차자주포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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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썬더 소련 지상군 구축전차-대전차자주포 라인 4랭크 막바지에 배치되어 있는 SU-100은 100mm D-10S 전차포 1문을 탑재하였으며 적절한 장전 속도와 우수한 명중률과 관통력이 특징이다. 파편량도 상당하며 BR-412D 포탄을 사용할 수 있기에 냉전 시기 전차를 상대로도 우수한 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T-34 차체를 기반으로 설계된지라 기동성과 주행성은 좋은 편이지만 방어력에서 문제점이 쉽게 드러난다.
워썬더 소련 지상군 구축전차-대전차자주포 라인 4랭크 막바지에 배치되어 있는 SU-100은 100mm D-10S 전차포 1문을 탑재하였으며 적절한 장전 속도와 우수한 명중률과 관통력이 특징이다. 파편량도 상당하며 BR-412D 포탄을 사용할 수 있기에 냉전 시기 전차를 상대로도 우수한 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T-34 차체를 기반으로 설계된지라 기동성과 주행성은 좋은 편이지만 방어력에서 문제점이 쉽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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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6티어 구축전차로 등장한다. 전 티어인 SU-85보다 시야가 개선되었지만 달고다니는 포가 무거운 지라 더 느려졌다. 게다가 전면 탄약고라서 재수 없으면 76mm 단 한발로 재장전에 이상이 오는 탄약고 손상에 90mm 이상이 크리티컬에 맞으면 유폭할 수 있다. 습식 탄약고가 정말 필요한 전차다.
화력은 6티어 최강 소련 답게 자주포를 제외한 3위 였으나...9.10 패치에서 일본 중전차 트리가 등장하면서 순위가 4위로 내려갔다.[7]
100mm포와 122mm 포를 선택할 수 있으며 전자는 균형잡혔고, 후자는 고폭탄과 한방 데미지가 뛰어나다. 포성으로 쉽게 구별 할 수 있으며 머즐브레이크가 달린 수백의 유일한 포가 바로 122mm다.
122mm 포를 든다면 조준속도 2.9초라서 남들보다 훨씬 원기옥을 모아야 한다. 구축의 기본인 쌍안경 장전기 위장막보단 습식 탄약고와 조준기를 찾을 것이다. 가끔 300m에서 하탄이 나오는 0.43 명중률을 지녔다. 100mm는 6티어급 치곤 준수한 고폭탄에 조준속도 2.3초라서 한결 다루긴 쉽지만 대치전에서 한 방이 필요할 땐 122mm가 더 좋다. 취향껏 쓰자. 둘 다 쓸만한 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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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6티어 구축전차로 등장한다. 전 티어인 SU-85보다 시야가 개선되었지만 달고다니는 포가 무거운 지라 더 느려졌다. 게다가 전면 탄약고라서 재수 없으면 76mm 단 한발로 재장전에 이상이 오는 탄약고 손상에 90mm 이상이 크리티컬에 맞으면 유폭할 수 있다. 습식 탄약고가 정말 필요한 전차다.
화력은 6티어 최강 소련 답게 자주포를 제외한 3위 였으나...9.10 패치에서 일본 중전차 트리가 등장하면서 순위가 4위로 내려갔다.[7]
100mm포와 122mm 포를 선택할 수 있으며 전자는 균형잡혔고, 후자는 고폭탄과 한방 데미지가 뛰어나다. 포성으로 쉽게 구별 할 수 있으며 머즐브레이크가 달린 수백의 유일한 포가 바로 122mm다.
122mm 포를 든다면 조준속도 2.9초라서 남들보다 훨씬 원기옥을 모아야 한다. 구축의 기본인 쌍안경 장전기 위장막보단 습식 탄약고와 조준기를 찾을 것이다. 가끔 300m에서 하탄이 나오는 0.43 명중률을 지녔다. 100mm는 6티어급 치곤 준수한 고폭탄에 조준속도 2.3초라서 한결 다루긴 쉽지만 대치전에서 한 방이 필요할 땐 122mm가 더 좋다. 취향껏 쓰자. 둘 다 쓸만한 포다.
소련의 구축전차로 등장한다. 사용하려면 무기고 업그레이드에서 100mm 주포 업그레이드를 하면 SU-85를 업그레이드 가능하다. T-34/85보다 기름 소모량도 적고 SU-100의 대전차 능력 하나는 절륜하다. 대신 맷집이 약한 것이 큰 흠.
8. 기타
일본과 국내에서는 '주코프'라는 별명이 붙은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원흉은 역시나 타미야. 초창기의 타미야는 제품들에 멋대로 별명을 붙이기로 악명높아, AMX-30에 '나폴레옹,' 야크트판터에 '롬멜' 따위의 별명을 붙여 출시했다. 그리고 국내 프라모델 회사들이 해당 제품들을 당연히(?) 카피해 출시하는 과정에서 그 별명들까지 진짜 이름인줄 알고(…) 그대로 붙여 버린 것.
그나마 SU-100은 국내 인기가 낮을 것이라 생각되었는지 당시 프라모델은 카피되지 않았지만, 몇몇 서적 등(예시)에서 해당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여 사용했다. 해당 서적 목차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야크트판터 또한 '롬멜 야크트 판터'라 적혀 있다. 아무런 근거도 의미도 없는 별명들을 멋대로 지어 붙인 타미야와, 그걸 또 일말의 검증조차 없이 카피만 해대기 바빴던 당시 국내 업체들의 환장의 콜라보가 나은 촌극.[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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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제품. '''쥬-코후(ジュ-コフ)'''가 압권이다. 다른 버전들(#1, #2)에서도 그대로 쓰여 있는 걸 보면 꽤 오랫동안 쓰인 듯하다.
9. 둘러보기
[1] 원판인 T-34에 2정씩이나 장착되어있는 DT 기관총조차 없다.[2] 소련군은 구축전차라는 편제가 없었으며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양산하여 사용한 자주포들은 모두 다목적 자주포였으며 적 전차를 직접 상대할 수 있는 대전차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SU-85와 SU-100은 다른 자주포들과는 다르게 직사포를 달았으며 특별히 대전차전에 더 중점을 두고 개발된 것이었다.[3] 3호 돌격포와 4호전차의 공격에도 1000m에서 뻥뻥 뚫리는데 판터나 티거의 경우엔 말할 필요조차 없다. T-34-85의 경우 포탑이 90mm여서 1000m 거리에서라면 어느정도 안전하지만 차체는 그대로여서...[4] 코라급, 리가급 등의 조그마한 초계함들이 주로 사용했으며 키로프급 같은 순양함들도 작은 배들을 처리하기 위한 근접방어용 소형부포로 많이들 달고 다녔다. 소비에츠키 소유즈도 부포로 채용하려고 했었다.[5] 애초에 SU-100도 자주포 연대 소속이다.[6] 물론 주변에 보병이 있을 확률이 높겠지만, 명색이 기갑차량인데 보병이 달려올 때 막을 수 있는 것이 주포 하나뿐인 것은 꽤나 불리한 점이다.[7] 1위는 KV-2의 152mm이며 2위는 O-I의 15cm, 3위는 프리미엄 구축전차 SU-100Y의 130mm. 공동 4위는KV-85의 122mm. 122mm 시제품이 있어서 이는 고증에서 벗어나질 않는다.[8] 비슷한 사례로 '파이팅 몬스터'라는 정체불명의 명칭으로 알려진 M103이 있다. 근원을 추적해 보면 역시나 일본에서 멋대로 붙인 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