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1991년

 



'''LG 트윈스 역대 시즌'''
1990년

'''1991년'''

1992년
'''LG 트윈스 1991 시즌'''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페넌트레이스 성적'''
'''순위'''
'''승'''
'''무'''
'''패'''
'''승률'''
'''6'''
53
1
72
'''0.425'''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1.2. 선수 이동
1.3. 신인 선수
1.4. 기타
2. 정규 시즌
2.1. 시즌 전 전망
2.8. 상대 전적
2.9. 수상 및 기록
2.10. 선수별 개인기록
3. 총평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12월 4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2군 투수코치였던 마틴 패튼[1] 코치와 연봉 12만 달러에 1년 코치계약을 맺었다. 다만 백인천 감독과 상의가 없어서 사표 제출의 원인을 제공했다. #
은퇴한 양승관과 유종겸이 신임 코치가 되었다.
베테랑 백업포수 심재원은 플레잉코치를 맡게 되었다.

1.2. 선수 이동


최일언, 예병준, 박성훈, 김신부 등을 방출했다. 유지홍, 양승관, 신언호, 유종겸은 은퇴했다. 양승관과 유종겸은 코치가 되었다. 최일언은 삼성에 입단했다.
1월 9일 태평양에서 방출된 '대도' 김일권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했다. #

1.3. 신인 선수


1차 지명 : 송구홍(선린상고-건국대, 내야수)
1차 지명으로 국가대표 3루수 출신인 건국대의 송구홍을 지명했고 계약금 4천만원에 입단계약했다.
2차 지명 : 이석구(서울고-건국대, 투수) - 강진규(마산고-연세대, 포수) - 나진균(영남대, 외야수) - 김기덕(한양대, 투수) - 소순배(장충고-동국대, 내야수) -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2차지명에서 건진 선수는 사실상 없다. 그나마 고졸 연고 자유 계약으로 입단한 이종열이 2009년까지 활약했다. 그 외에엔 이우수,이병석을 영입했고 시즌 중 재미교포인 윤찬을 영입했다.
여담으로 3라운드에 지명받은 나진균은 나중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사무국장이 되며, 이후 대한야구협회의 사무국장이 되었다.

1.4. 기타


11월 27일 백인천 감독은 김종정 구단 사장과 신라호텔에서 만나 재계약을 요청했다.
12월 1일, MBC 청룡 시절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주니치 드래곤즈와 교류협정을 맺었다. #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8일 동안 김용수를 비롯한 선수, 프런트 16명을 대상으로 백암온천에서 체력강화 훈련을 실시했다. #
12월 11일 백인천 감독이 구단에 사표를 제출했다. 정순명 코치 등[2]코칭스탭의 대우문제 요구 묵살과 패튼 코치 영입 건에서 감독과의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한 것이 이유였다. 구단 측은 백 감독이 구단에 직접적으로 의견 제시를 하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불만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며 일단 본뜻의 파악에 애쓰고 있으나 결코 백 감독과 코치진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행히 12월 19일 백 감독은 김종정 사장과 만나 원년멤버 출신 코치들의 재계약 건 등 사퇴 표명의 원인이 되었던 오해들을 풀고 사표를 철회했다. #
12월 27일 납회식이 있었다.
1월 23일, 걸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30일부터 실시할 예정이었던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계획을 보류했다. 그리고 1월 31일 그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2월 1일부터 진해공설운동장에서 1,2군 합동 전지훈련을 가지는 것으로 변경했다. #

2. 정규 시즌



2.1. 시즌 전 전망


좌투수 유종겸의 은퇴와 김기범의 군입대로 전력 악화를 맞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전력이 남아있고 김일권의 영입과 송구홍의 합류로 LG 특유의 기동력 야구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보여 지난시즌 4강 진출팀인 삼성, 해태, 빙그레와 함께 4강 전력으로 전망받았다.
다만 오프시즌 간 백인천 감독의 사표파동으로 구단과의 좋았던 관계가 흔들리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변수가 되었다.
그리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1군 합류로 휴식일이 사라진 것도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2.2. 4월


김용수와 김기범, 정삼흠은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해 선발의 난세영웅이었던 김태원과 문병권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소총부대 타선은 지난해에 비해 타격 수치가 급락하며 득점력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야심차게 데려온 대도 김일권도 실패작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선두와 승차없는 2위로 4월을 마쳤음에도 득실은 오히려 마이너스. 12승 중 4승이 신생팀 쌍방울, 3승이 지난해 꼴찌 OB를 상대로 했고, 우승후보 해태에 루징, 삼성에 스윕패로 좋지 않았다.

2.3. 5월


쌍방울을 상대로 스윕승, 빙그레 원정 첫 경기 승리로 4연승으로 5월을 시작했으나 정삼흠이 혹사 여파로 빙그레와 해태와의 경기에서 3패를 기록, 4연패를 당하며 주춤하게 된다. 결국 백인천 감독은 지난해에 했던 방법이었던 김용수와 정삼흠의 보직을 바꿨고 초반에는 그게 먹혔다. 그리고 김태원과 문병권의 부활투로 롯데와 OB에 위닝을 거둔다.
그러나 삼성과의 안방 시리즈에서 어떻게든 시즌 첫 삼성전 승리를 위해 김용수를 3연투시키는 무리한 총력전을 벌였으나 세 경기 모두 난타전 끝에 근소한 점수차로 패하며 큰 타격을 입었다. 태평양 원정에서 문병권과 김태원이 완투를 기록하며 스윕승을 가져갔지만 곧바로 천적 빙그레와의 홈 2경기- 롯데와의 4연전 - 해태와의 홈경기까지 7연패를 기록하고 5할이 깨지고 2위에서 6위로 단숨에 추락하며 5월을 마감했다. 결국 김용수는 선발로 복귀했다.

'''LG의 작전이라면 뻔한것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기동성을 살린다는건데 작년에 엉겁결에 당했지만 올해는 마음대로 안될걸요'''

- 1991년 6월 2일 경향신문 기사

LG가 6위로 휘청거리자 저마다 위의 말을 한마디씩 한다고 경향신문에서 다뤘다. 지난해 백인천 감독이 히트앤드런 작전을 구사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 재미를 봤으나 이번해에는 각 구단이 이에 철저히 대비하여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것이였다.
전 OB 감독이자 다음해 LG 감독이 될 이광환 감독은 LG 야구를 3가지 특징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무사에 주자가 1루에 나가기만 하면 영락없이 히트앤드런, 도루, 보내기 번트 등 작전을 건다는 것. 보내기번트 자세를 취했다가 볼카운트가 유리해지면 강공으로 밀어붙이고 안되면 다시 보내기번트를 시도하여 상대 수비를 교란시킨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무사 OR 1사에서 볼카운트가 2~3까지 가면 무조건 런앤드히트 작전을 구사하고 세 번째는 라인업에 신인을 넣었다가 찬스가 오면 주전을 투입, 선수들의 경쟁심리를 통해 효과적으로 득점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이에 LG의 작전에 철저히 대비하는 삼성(6패)과 빙그레(2승1무5패), 해태(2승5패), 롯데(3승6패) 등이 LG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LG의 부진 원인은 각 구단의 견제가 심해진 탓도 있지만 LG 특유의 작전을 수행할 선수들의 배팅감각이 전만 못하기 때문으로도 분석되었다. 백인천 특유의 끊어치는 배팅폼이 흐트러지며 방망이가 숨을 죽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게다가 김기범, 정삼흠, 김용수 등 대부분의 투수들이 혹사로 구위가 떨어져 상대 방망이를 막아내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있었다.

2.4. 6월


해태와의 홈경기에서 악몽같은 8연패를 끊어낸 뒤 OB-쌍방울전 위닝, 롯데-쌍방울전 루징으로 월간 5할승률을 사수하다가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였던 삼성 원정에서 정삼흠의 활약 덕분에 스윕승을 기록, 전반기를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승차 +2에 4위로 마감했다. 노찬엽과 윤덕규가 3할 타율을 넘기며 분전해줬지만 주축 타자들의 노쇠화 문제와 김동수의 소포모어 징크스, 김상훈의 부진, 박흥식의 부상 등 이유로 타선의 위력이 떨어졌고, 투수진도 문병권과 김태원이 지난해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김용수와 정삼흠, 김기범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특별한 독주체제가 없었던 지난해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승률 6할을 상회하던 해태의 독주와 함께 중위권은 2위부터 6위까지 승차가 얼마 나지 않는 1강5중2약의 대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해 6월 꼴찌까지 내려갔다가 8연승과 함께 연속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며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린 것과는 다르게 1991년의 LG는 초반 반짝 선두경쟁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탔고 6월에는 승률 5할 근처에서 시소게임만 했다. 월간성적은 11승8패(승률 .579)로 해태 다음으로 2위였지만 월간 득실과 기대승률은 -2와 .489로 5위라 승률에 비해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자칫하면 후반기에 급격히 내려갈 수 있는 복선은 이미 보여지고 있었다.

2.5. 7월


후반기 개막 후 8경기 6승2패로 2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정삼흠이 빈볼시비로 퇴장당하고 1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당하며 투수 운용이 꼬였다. 그러면서 삼성과 빙그레에 루징시리즈, 태평양에 스윕패를 당하며 5할 승률과 4위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그나마 정삼흠이 돌아온 이후 선두 해태와의 7월 마지막 시리즈에서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며 어떻게든 5할과 4위 자리는 사수했다.

2.6. 8월


빙그레전 4연패를 시작으로 쌍방울전 루징- OB전 루징- 롯데전 루징- 삼성전 루징- 롯데전 루징- 빙그레전 3연패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던 한 달이었다. 위닝시리즈는 태평양과의 3연전이 유일했으며 월간 성적은 8승19패로 월간 승률이 3할에도 못 미쳤다. 툭하면 상대 선발들의 완투승, 완봉승을 헌납하는 등 방망이는 무력했으며 시즌 내내 혹사당한 투수들의 구위들은 떨어져 경기 막판 승부처에서 무너지곤 했다. 결국 아슬아슬한 5할 승률과 4위를 지켜내지 못하고 롯데에게 4위 자리를 내주고 5위로 내려갔고 사실상 포스트시즌과 멀어진 채 6,7위 태평양과 쌍방울의 추격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7. 9월


백인천 감독이 지난 달 구단에 사퇴 통보를 한 것이 드러났다. 감독과 선수 간 불화 등이 드러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주축 선수들까지 라인업에서 빼버리는 등 맥빠지고 의욕없는 경기력으로 10연패를 했다. 9월 12일 쌍방울 원정에서는 쌍방울의 구단 최다득점, 최다안타 기록 등의 허용팀이 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9월 15일 더블헤더 2차전에서 이기며 창단 첫 꼴찌만 면했으며 최종 순위는 7위가 유력했으나 쌍방울이 잔여 경기를 모두 패하며 가까스로 신생팀 쌍방울과 공동 6위로 마쳤다. 이조차 2년 연속 꼴찌가 확정된 라이벌 OB의 막판 선전 덕에 얻은 민망한 6위였다.

2.8. 상대 전적


LG 트윈스 1991년 팀별 상대 전적
상대 팀
승 - 무 - 패
승률
승패마진
우열
'''삼성 라이온즈'''
'''6 - 0 - 12'''
0.333
-6
'''절대열세'''
'''해태 타이거즈'''
'''6 - 0 - 12'''
0.333
-6
'''절대열세'''
'''빙그레 이글스'''
'''3 - 1 - 14'''
0.194
-11
'''압살'''
'''태평양 돌핀스'''
'''10 - 0 - 8'''
0.556
+2
'''우세'''
'''롯데 자이언츠'''
'''6 - 0 - 12'''
0.333
-6
'''절대열세'''
'''OB 베어스'''
'''11 - 0 - 7'''
0.611
+4
'''우세'''
'''쌍방울 레이더스'''
'''11 - 0 - 7'''
0.611
+4
'''우세'''
총합
'''53 - 1 - 72'''
'''0.425'''
-19
'''순위''': 6 / 8
  • 분류 기준
    • 남색은 압도(승률 ≥ .800)를 뜻한다.
    • 청색은 절대우세(.650 ≤ 승률<.800)를 뜻한다.
    • 하늘색은 우세(.550 ≤ 승률<.650)를 뜻한다.
    • 녹색은 백중세(.450 ≤ 승률<.550)를 뜻한다.
    • 오렌지색은 열세(.350≤승률<.450)를 뜻한다.
    • 적색은 절대열세(.200≤ 승률<.350)를 뜻한다.
    • 갈색은 압살(승률<.200)을 뜻한다.

2.9. 수상 및 기록


: 김상훈, 이광은 (18개)
: 정삼흠 (15패)
: 문병권 (19개)

2.10. 선수별 개인기록


투수 타자

3. 총평


디펜딩챔피언답지 않게 몰락해버린 시즌이다. 시즌 시작 전부터 해태의 김응용 감독이 LG의 순위를 정확히 6위로 예측했다. 1990년의 우승이 여러 가지 호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루어졌고 시즌 전 별다른 전력보강이 없었기 때문에 하위권으로 떨어지리라는 근거였는데 이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시즌 시작 전부터 백인천 감독의 재계약 건을 둘러싸고 잡음이 있었으며 어찌어찌 함께 가기는 했으나 지난해만큼의 팀 응집력이 나타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혼의 야구'를 표방했던 백인천은 아직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은 상태에서 계약경신을 요구하며 구단과 마찰을 빚었고 그 와중에 겉도는 선수들이 나타났으며 이에 환멸을 느낀 백인천이 시즌 도중 재계약 포기를 공언하면서 팀분위기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결국 LG는 전반기에 4위에 간신히 턱걸이했으나 결국 후반기 연패를 밥먹듯 하고 와르르 무너지며 신생팀 쌍방울과 동률 6위로 시즌을 마치고 말았다. 그나마도 LG가 시즌을 먼저 마친 뒤 쌍방울이 마지막 4경기를 모두 패해서 공동 6위였다.
지난해와 거의 똑같은 선수층을 갖고도 상전벽해 현상이 나타난 것은 구원전문으로 일가견을 가졌던 정삼흠이 5월 초 3연속 구원실패로 마무리투수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선발과 구원을 왔다갔다하며 마구잡이로 등판하던 김용수마저 방전되어, 전반적으로 투수력이 버텨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90년 18승을 올렸던 김태원은 10승이나 줄어든 8승에 그쳤고 언더핸드 문병권도 10승에서 3승으로 급전직하했다.
전년도에 타선의 중심에 섰던 김동수가 타율 2할도 못치는 2년생 징크스에 빠지고 김상훈도 부진을 거듭, 김재박과 이광은은 노쇠화를 드러냈고 시즌 내내 꾸준하게 잘 쳐준 타자는 3할을 넘긴 윤덕규와 노찬엽이 유이했다. 8구단 체제로 휴식일이 사라진 것도 특정 투수에 의존하는 운영과 노쇠화된 타선 모두에 큰 악재였다.
백 감독의 재계약 포기선언을 서슴없이 받아들인 LG 구단은 정규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1군 위주에 2군선수를 얹어 미국 교육리그에 단일팀을 파견하는 등 구각을 깨고 새로운 팀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광환 전 OB 감독을 사령탑으로 받아들이고 김재박, 이광은 등 노장선수들을 은퇴시킨 것은 이런 수순을 따른 것이었다. 이광은은 코치로 돌아섰으나 김재박은 LG의 코치계약 제의를 거부, 선수로 뛰겠다는 의사를 밝혀 태평양 돌핀스에 사상 최초로 무상 트레이드됐다.

[1] 시애틀 매리너스, 밀워키 브루어스, 보스턴 레드삭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메이저리그에서 16년 선수생활 동안 114승 109패 25세이브를 기록했다.[2] 정순명 투수코치를 포함하여 김용달 타격코치, 김봉기 주루코치, 최정기 배터리코치, 하기룡 2군 투수코치, 최정우 2군 타격코치 등 백인천 감독의 요구로 1990년 초 팀성적 좋을 시 보상을 구두약속받고 계약금 없이 1년간 계약한 코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