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1960)
1. 소개
전 KBO 리그 선수 및 코치.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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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삼흠, 노찬엽, 김용수, 김상훈
선수 시절에는 '''미스터 청룡 - 미스터 LG'''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동대문중학교에 다닐 때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동대문상업고등학교 (現 청원고등학교)를 거쳤으나, 형의 뒷바라지 속에 어렵게 야구를 했다. 원래는 연세대학교에 진학하려다가 학교 내부의 일로 인해 진학이 무산되고, 1년을 쉬었다가 부산 동아대학교에 진학했다. 1984년 MBC 청룡의 1차 2순위 지명을 받고 MBC 청룡에 입단했다.
1988년에는 삼성의 주전 2루수인 김성래와 타격왕 경쟁을 벌이던 도중 김성래가 무릎 부상으로 순위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후반기 종료 후 0.354의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하게 된다.[3]
1989년 음주운전으로 구속되었던 흑역사가 있지만, 1990년에도 3할 2푼대의 예리한 타격감을 바탕으로 1루수 부문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여기에 MBC 청룡에서 LG 트윈스로 팀 이름이 변경된 소속 팀도 이 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1991년 시즌에는 부진에 빠졌지만, 1992~1993년에 다시 부활하면서 팀의 주포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친정 팀에서의 행복한 선수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93년 시즌 후 한대화, 신동수, 허문회, 김봉재를 상대로 이병훈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고, 해태 타이거즈에서 2시즌을 보낸 후 은퇴했다. 해태 시절에는 나이 탓도 있었겠지만 그가 부상을 입었을 때 해태 구단의 열악한 재활 시스템이 그의 은퇴를 부추긴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 아픈 와중에도 1994, 1995 시즌에 그래도 각각 50경기 이상은 출장했다.[4] 물론 성적이 좋지 않아 활약은 미미했지만.
당시 LG가 김상훈을 트레이드 한것은 꽤나 파격적인 결정이었는데, 김상훈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건 둘째치고 당장 그가 팀에 없으면 1루는 아무런 대안이 없이 바로 무주공산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은 커녕 PC통신도 비교적 널리 보급되지 않던 시절이라 후폭풍을 요즘의 시대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트레이드를 주도했던 당시 운영부장 최종준[5] 은 분노한 팬들에게 살해 협박 전화를 받는 걸로도 모자라서 심지어는 집을 폭파시켜 버리겠다는 협박 전화까지 받은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LG가 김상훈을 포기한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1993년 시즌 중반 까지 LG는 6할 5푼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었고 8월 중순까지 선두 해태에 1.5경기차 2위였으나 8월 이후, 8월 8승1무10패, 9월 7승1무14패로 하락세를 타며 급기야는 서울 라이벌 OB에게 3위 자리까지 내주고 4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4-5-6월 까지 한때 타점 선두에 3할 2푼 2리의 타율을 기록하던 김상훈은 여름 이후 페이스가 급감하며 7-8-9 3개월 동안 2할 4푼 3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성적 하락에 크게 공헌을 했고, 삼성과의 PO 5경기 동안에는 고작 18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팀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 특히 시즌 최종전인 빙그레와의 대전 경기를 앞두고, 코칭스텝에서는 후반기에 타격감도 안 좋으니 준플레이오프를 대비해서 서울에 남아 컨디션을 조절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본인은 2년 연속 시즌 전 경기 출전이라는 개인 목표를 위해 대전에 내려갔다.
이로 인해 구단에서 김상훈이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들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김응용과 마찰을 빚은 한대화가 트레이드 시장에 나왔고, 해태와 카드를 맞추다가 김상훈이 트레이드 카드가 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이광환 감독은 구단이 1993년 시즌을 종료한 후 자신과 아무런 상의 없이 자신의 수족이었던 이종도, 최정기 코치를 경질했다고 구단에 빡쳐 있었는데, 김상훈의 트레이드는 더욱 결사적으로 반대했었다고 한다. 트레이드가 성사되기 직전 LG에서 허문회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트레이드가 파토날 뻔 했었고, 트레이드 파토를 확신한 이광환 감독은 김상훈을 감독실로 불러 “상훈아. 이런저런 트레이드 뉴스로 마음고생이 많았지? 이제 모든 게 끝났으니 운동에만 전념해라. 너는 영원한 미스터 LG야! 알았지?” 격려하였지만, 결국 며칠 후 해태가 LG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서 트레이드가 성사된 것이다.
다행히 트레이드 후 김상훈의 자리에는 신인 1루수 서용빈이라는 대안이 등장하고[6] 1994년 시즌을 LG가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우승하여 이 트레이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어쨌건 트레이드 당시에는 LG가 해태에 조공 트레이드를 했다는 말이 많았고, 또 팬들의 분노도 그만큼 대단했었다. 반대로 해태는 실패한 트레이드의 사례가 되며 해태 팬들에게는 좌타자 잔혹사의 1명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LG 트윈스에서 타격코치를 역임했다. 다만 이 시기 LG 팬들에게 평가가 매우 좋지 않은데, 카더라에 의하면 "'''난 현역 때 3할 쳤는데 너희들은 3할도 못 치냐.'''" 며 선수들을 매일 갈궈댔다고 한다. 저렇게 갈궈댄 것도 은퇴 직전에 해태에서 선수생활을 보냈던 영향도 있었을것이다.
4. 해설자 경력
1996년 SBS에서 라디오 해설을 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2011년까지 SBS ESPN에서 해설위원을 맡았다.[7] 좋아하는 아이템은 '''초시계'''. 명대사로는 "다음 공은 직구 아니면 변화구입니다"가 있다. 전문성은 야구 좀 봤다 싶은 사람이면 누구든 늘어놓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만 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며(...), 그렇다고 이병훈처럼 만담이 재미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야구계 '''최악'''의 해설을 논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름. 중계석에 앉아 놀다가 가는 느낌인게 준비 하나도 안 한 티가 팍팍 난다. 결국 2011 국내 프로야구 해설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SBS CNBC의 일본프로야구 중계와 SBS ESPN의 아마야구 중계 해설만 담당했다. 그러고 보니 김상훈과 이병훈, LG에서 해태로 이적한 듀오가 나란히 해설을 했다는 점이 흥미거리.
그의 어록을 살펴보자.
- "지금 상황에서 투수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직구 아니면 변화구거든요?"
- 10회말에, "아 지금 홈런치면 끝내기 홈런이죠!!"
- 캐스터 : "저 선수는 어떤 선수입니까?" "네! 유격수입니다!"
- "변화구를 잘던진다는건....좋은투수란 겁니다!"
- 볼 카운트 0-3에서 "지금은 무조건 스트라이크 던져야 해요"
- 중간계투로 신인 투수 등장...
"캐스터 : 저 선수는 어떤 투수입니까?" 김상훈: "어제 나온 투수 입니다."
- "홈런을 맞으면 평균자책이 올라가죠."
- "주자가 많이 나가면 아무래도 점수가 많이 나죠"
- "2스트라이크 3볼이니깐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고, 타자는 안타를 떄려내야 합니다!!"
- "파울플라이를 못잡은건 타자에겐 다행한일이고 투수나 포수에게는 아쉬운 일이죠!"
- "보내기 번트라는건 잘 대는것보다 정확히 대는게 중요합니다."
- 10회말 홈팀 한점 뒤지고 있는데, "여기서 점수를 못내면 끝나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 "야구에 연승보다 중요한 것은 연패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오늘 경기는 굉장한 빅게임이기 때문에 1점을 선취한 팀이 50%는 승리한다고 봐야합니다."
- "10점차가 나니까, 이건 힘들죠. 10점차라는건 11점을 내야한다는 거거든요!"
- 9회말 위기상황에서..
캐스터: "이런 상황에서 투수는 어떤구질을 던져야 하나요?" 김상훈: "직구와 변화구 중 가장 자신있는 것을 던져야 합니다."
- 이대호가 파울플라이 아웃되자, "지금 잡지 못했으면 파울인데...."
- "아 네 저 투수는 좌완 투수죠. 왼손잡이니까요!"
- "아 저 선수는 이제 들어가야죠. 삼진을 당했거든요!"
- "아.. 임태훈 선수 이젠 직구 던질 타이밍입니다. 방금 변화구 던졌거든요."
- "방어율이 3점대라는 것은 한경기를 완투했을 때 석점을 줬다는 것입니다!"
- 100번나와서 30번치면 3할타자고 29번 치면 2할타자죠
- "구원투수 등판 '이 선수 9이닝에 탈삼진이 9개네요. 탈삼진을 1이닝에 1개씩 잡았다는 뜻입니다."
- "구톰슨선수는 2점대 방어율이니깐 기아는 3점만 내면 이기고, 김광수선수는 5점대 방어율이니깐 LG는 6점을 내야 이기는 겁니다."
- "출루율이 5할이면 2번중에 1번은 나간다는 거죠."
- "500도루라는건 50도루를 10년 동안 해야되는겁니다."
- "34경기 연속출루는 34경기동안 슬럼프가 없었다는 거죠."
- 언젠가부터 스위치 히터인 SK 최정이 왼쪽 타석에 들어서자
"아~최정 선수가 왼쪽 타석에 들어서네요??"
- 방금은 김원섭이라 세잎이지 다른 선수라면 어림없는겁니다. 왜냐하면 중견수 이대형선수가 어깨가 굉장히 강합니다. [8]
- "발빠른 타자주자 김상현(1980)으로 봤을때는 더블아웃은 힘들었다고 보입니다." [9]
- "정보명 선수 저 선수는 방망이에 공을 잘 맞춥니다. 리그에서 수준급이에요."
그리고 정보명이 아웃되자, "방망이에 공을 잘 맞추는것보다 잘 때려야 합니다. 정보명 선수는 때리는걸 못해요."
- 김상훈 " 오늘 선발인 로페즈 선수가 잘하려면 김상훈 포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캐스터 " 오늘 포수는 차일목 선수군요"
- "투수 앞 땅볼은 6-4-3 으로 처리해야죠!!" [10]
1, 커브 그립을 잡아주며, 캐스터가 구질을 묻자 "아, 변화구 같은데요?" "변화구 맞네요"
- 1루주자가 자꾸 저렇게 하게 되면 타자가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승부를 할때는 가만히 있어주는 거에요.
- 세데뇨의 투구가 손에서 빠져 백스톱을 맞추자 "메이저리그경험이 없어서 그러는 겁니다." [11]
- 페타지니가 8개구단 공공의적이 되고 있습니다.[12]
- 투수가 교체되고 타자가 그 투수의 2구를 쳐서 안타 만들어내자 .
"아~ 역시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라는 말을 정확하게 실행했네요"
- 6-4-3병살은 안됩니다 .병살을 쳐도 4-6-3을 쳐야 됩니다. [13]
- 투수입장에서 빗맞은 안타가 나오면 기분이 굉장히 나쁘다면서 하는 말..
"차라리 투런홈런을 맞으면 속이라도 시원~할텐데요." [14]
- 안치용같은 대타자가 주전라인업에 들지 못하는 엘지의 타선은 최강이지만 타격 10걸안에 3명이 포진한 두산의 타선은 그렇게 강해보이지 않는다.
- 김정민과 조인성을 합치면 국내야구 역사상 최고의 포수가 탄생한다.
- "아킬리노 로페즈 선수는 등번호가 44번이고, 류현진 선수는 99번이죠. 9땡이 4땡을 이겼습니다. 허허허."
- 오선진 선수는 학창시절 별명이 오선지였을겁니다.
- 중계화면에 뚱뚱한 여자가 잡히자 "허허 큰 침대가 필요하겠는데요"
- 더블 플레이 하나, 병살타 3개............
- "볼넷보다는 장타를 맞는것이 좋습니다!"
- "조인성선수 평가할때는 타율을 보지 말고 홈런 6개를 봐야 하는 겁니다!"
2011년 말 실질적인 모교[15] 인 청원고 야구부 감독에 취임해 2014년까지 재임했다.
2015년 당시 SPOTV에서 KBO 리그 시범경기 해설을 하기도 했다. 이후 정규리그에는 나오지 않았고 아마야구 중계만 간간이 나왔다.
현재는 족발집을 운영한다고 한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1] 1980학번. 연세대에 진학하려 했으나, 내부 사정으로 1년 건너뛰고 동아대에 진학.[2] 197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3] 김성래는 0.350를 기록함.[4] 1994시즌 광주 홈 개막전에서 김성한을 대신하여 1루수로 선발 출장할 정도로 트레이드 초기에는 기대를 받았었다.[5] 후일 단장으로 승진하면서 어윤태의 뒤를 이어 전성기를 이어가게 된다.[6] 그러나 서용빈은 신바람 야구 신인 3인방이라는 상징적인 타이틀을 받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한 해는 단 3시즌 밖에 되지 않으며 데뷔 시즌이 커리어 하이로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하며 스타급로 성장하진 못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넘어 팀레전드로 불리기에도 충분한 김재현과 류지현에 비하면 딱 원클럽 프랜차이즈 수준에서 마무리된 선수 경력은 상당히 비교가 되긴 하다.[7] 2008년엔 SBS의 지상파 해설을 맡았던 박노준 해설위원이 우리 히어로즈의 단장으로 부임하자 SBS 지상파에서도 프로야구와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해설도 했다. 이후 박노준이 단장 자리에서 내려온 다음에 해설위원 자리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케이블에서만 출연.[8] 이대형은 고교 시절 투수로서 혹사당한 경력이 있어 KBO의 대표적인 소녀 어깨이다[9] 참고로 김상현은 14시즌 동안 54도루/25실패 성공률 68% 기록했다. 게다가 김상훈이 중계하던 당시 무릎부상이 심해져 잘 뛰지도 못했다. 빠르다고 할 수 없다.[10] 투수는 1번이다. 만약 6-4-3을 시도한다면 투수-유격수-2루수-1루수 총 4번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만약 타자주자가 빠르다면 100% 세이프다.[11] 정작 본인도 메이저리그 발 끝도 못대보았다.[12] 페타지니가 뛰던 시절은 8개 구단이다.[13] 나름 우측으로 쳐야 된다는 논리같은데 병살은 병살이다[14] 빗맞은 안타는 실점하지는 않지만 투런이면 즉각 2실점이다[15]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는 청원고 야구부 역사를 찬찬히 훑어 보면 알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2000년 12월 1일에 청원정보산업고(동대문상고에서 교명 변경) 야구부가 청원고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청원정보산업고를 2001년부터 청원여고로 바꿔 운영하려는 학교의 방침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