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여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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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90년대 중반~후반대를 주름잡던 라이징 프로덕션 계열 가수를 대표하는 그룹 중 하나.[1]
같은 소속사의 라이벌 그룹인 SPEED의 멤버들처럼 멤버의 전원이 오키나와 출신으로, 후술하듯이 모두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출신이다. 또한 보컬 라인의 경우에는 Mina와 Reina가 맡고, 댄서는 Nana와 Lina가 담당하나, 초기의 곡들은 대부분의 전원이 노래를 하고 있고 중기가 되어서는 가창력이 높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Mina와 Reina의 솔로 파트가 많아서 최근의 곡들에는 전원에게 솔로 파트가 주어지고 있다.
결성 당시에는 NANA, MINA, LINA, REINA의 4명이었다가 2002년에 출산으로 인해서 MINA가 탈퇴하고 그 자리에 AKI가 들어왔으며, 2008년에 AKI가 탈퇴한 후에는 MINA가 복귀했다. 그러다가 2011년에 REINA가 건강상 문제로 인해서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가 2015년 10월에 일시적으로 공연에 참가하고 2017년 5월에 완전히 복귀했다. NANA가 2019년 말에 출산하여 그룹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고, 현재 3인조로 활동 중이다.
활동 초기에는 이탈리아산 댄스 음악인 유로비트를 커버한 곡들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당시 일본에는 '유로비트 붐' 이라고 해서 이 유로비트 음악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그 타이밍을 잘 잡아서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 커버곡을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하여 90년대 후반까지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인기와 판매량이 추락했다. 아직까지도 활동은 하고 있지만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90년대 아이돌 빙하기[2] 시대에 SPEED와 함께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던 여성 아이돌 그룹이고, 고유한 음악 장르와 스타일, 그리고 다른 여성 아이돌 그룹과는 차별화 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보기 힘든 소위 말하는 '센 언니 컨셉' 의 원조 격인지라 여러 모로 시대를 앞선 느낌도 있다. 대략 한국의 베이비복스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맞을 듯.
MAX라는 이름으로 데뷔하기 전 아무로 나미에의 데뷔곡 'Try Me~私を信じて~[3] '로 활동했을 때 백댄서를 했었다. 아무로 나미에와의 인연은 꽤 오래 되었는데, 같은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출신이라는 점이 있는 것과 어릴 적부터 '슈퍼 몽키즈' 라는 이름으로 그룹 생활을 같이 했다는 점 등등이 그 일례이다. 아무로가 임신해서 방송 활동을 쉴 때는 생방송으로 멤버들이 임신 축하 메세지를 보내주기도.
MAX라는 그룹 이름으로 데뷔하였지만 한동안은 아무로의 백업 댄서를 계속 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한 건 아무로의 96년 치바마린 콘서트 때부터. 당시 아무로가 직접 멤버들의 이름들을 호명하면서 소개를 해줬고 관객들에게 'MAX라는 그룹을 잘 부탁한다' 는 멘트를 전했다. 그리고 이후 싱글인 'Tora Tora Tora(Domino)'가 이전과 비교도 안 되는 차트 성적과 판매량을 보여주며 히트했다.
MAX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초창기 싱글들은 모두 이탈리안 유로비트의 번안곡들이었다. 1집은 사실상 외국 유로비트 번안 앨범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오리지널 곡들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1집 이후부터.
6번째 싱글 'Give me a Shake' 가 차트 1위와 함께 50만장의 싱글을 판매하면서 그룹 최고의 히트곡으로 각인시키게 된다. 이 때부터 그룹 노선이 바뀌기 시작하는데, 기존의 유로비트 장르에서 벗어나 R&B 비트의 좀 더 그루브한 노래들을 위주로 싱글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룹 인기는 이전보다 더욱 상한가를 치며 싱글, 앨범 판매량 모두 호조를 띄며 인기 그룹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싱글도 앨범도 모두 판매량이 눈에 띄게 감소. 설상가상으로 메인 보컬이던 멤버 미나의 속도위반 결혼 크리로 인한 갑작스러운 탈퇴 통보로 인해 그룹 활동에 제대로 직격탄을 맞게 된다. 게다가 이 탈퇴 통보는 나머지 멤버들과 상의 없이 소속사와 미나 개인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인한 판단이었기 때문에, 결국 멤버들이 3 vs 1로 갈라서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대기실이나 스케줄에서 멤버들끼리 서로 말도 안 섞고,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며 지냈다고.[4] 결국 미나는 싱글 'Spring rain'을 끝으로 탈퇴를 하게 된다.
이후로는 그야말로 암흑기. 나머지 멤버들은 똑같은 오키나와 출신이었던 멤버 아키를 영입하며 다시 4인 체제를 구축하고 활동하였으나, 이미 팬덤도 미나 탈퇴건으로 인해 붕괴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전과 같은 활동은 불가능했다. 거기다 새로 들어왔던 멤버 아키에 대한 반발도 매우 심해 이리저리 난처하기 그지 없었다. 아키는 춤, 노래, 비주얼 등 다른 멤버들과 비교해 전혀 꿀리지 않는 에이스였음에도 미나와 비교되며 팬덤에서도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샌드위치 같은 상황에 놓이고 만다. 심지어 라이브 현장마다 '아키 탈퇴 시키고 미나 내놔' 라며 항의하는 팬들이 따라다니는 등(...) 여러모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면치 못했다.
결국 2006년 이후로 그룹 활동을 잠정 휴지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가 08년도에 아키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겠다는 말과 함께 탈퇴 의사를 보였고, 이후 이전 멤버였던 미나와 다시 연락이 닿아 예전의 4인 체제를 다시 갖추고 활동하게 된다. 사실 미나도 아예 연예계 활동을 휴지했던 건 아니었고, 지역 방송에서 주관하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댄스 멘토로서 나서는 등 소소하게 활동은 하고 있었지만, 워낙 나머지 멤버들과 불화가 심했던지라 직접 연락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머지 멤버들의 부모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며 다시 맥스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 '여전히 우리가 아닌 타인과 의논하며 해결한다' 라며 나머지 멤버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심지어 리나는 미나가 연예계에 복귀하기 직전까지도 극심하게 반대했다고.
그러나 진심 어린 미나의 설득에 나머지 멤버들도 미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 08년도에 최종적으로 미나의 합류를 선언하며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당시 그룹 자체가 이미 침체기를 지나 추억의 그룹 취급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년의 잘 나가던 언니들이 돌아왔다' 라며 대중들도 크게 반가워했다. 방송 활동도 이전 곡들의 메들리를 부르며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성공적으로 복귀를 이뤄내게 된다.
2011년에는 원년 멤버인 레이나가 임신과 결혼으로 인해 활동을 잠시 멈추었기 때문에, 그 이후 3인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에는 'TACATA' 라는 싱글을 발표하였다. Tacabro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이 곡은 묘한 병맛을 일으키는 뮤직비디오와 가사가 호평을 받았다. 특히 '''리메이크 곡'''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외치는 부분이라든지, '유니버설 언어 타카타' 같은 이상한 가사가 일본인들을 뿜게 만들었다. 유튜브에서 1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미 멤버들이 전부 다 중년이고 활동을 3년 동안 안 한 상태에서 낸 싱글 치고는 꽤 뜨거운 반응. 음판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대신 에어플레이가 폭증하면서 공연에 청신호가 켜졌다.
더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구글 재팬에서 MAX를 치면 연관 검색어가 ''''MAX의 신곡이 이상해''''다! 일본 내에서는 일종의 병신 같지만 멋있어라는, 일종의 병맛 컨텐츠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다. 다만 예전 MAX의 쿨한 아티스트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씁쓸해 하고 있는 듯. 사실 이 MV가 원래부터 B급을 노리고 만든 것은 분명 아닐진데 한 끗 차이로 수작과 괴작을 넘나들게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일본 네티즌들이 이야기하길 "'''전력으로 멋부렸는데 전력으로 싼티나. 그 점이 최고야!'''"
게다가 8월 25일에 방송된 『行列のできる法律相談所』에서 즉석 공연을 선보인 이후 바로 다음날 음원 차트 권외에서 6위로 워프를 하는가 하면, 트위터 키워드로 3000건이 넘는 글이 순식간에 올라오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게다가 발매 한 달 만인 9월 3일에 화요곡 출연이 잡히기도 하여 항간에서는 잘 하면 MAX의 새로운 전성기가 오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
그 이후에도 롱런을 거듭해서 유튜브 조회수는 200만 건을 넘겼고, 아이튠즈는 70위권에서 10위권으로 워프, 무려 10월까지 음악 방송 출연이 예정됐다. 이쯤 되면 확실히 새로운 전성기라 할 수준. 오리콘에서도 11주 연속으로 진입하면서 1만장 판매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으며, 유명 프로그램에 줄줄이 출연하면서 심지어 SMAPXSMAP까지 나왔다. 게다가 음원에서는 지속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는지라 잘하면 연말 음악 프로 한 군데 정도는 출연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베스트 아티스트에만 출연하고 연말 음악 프로에는 나오지 않았다.
2014년에는 '情熱のZUMBA' 를 발표했으나 전작 'TACATA' 보다는 약한 반응을 얻었다. 오리콘차트에서도 2주 진입 후 바로 차트아웃됐다. 곡 자체는 상당히 좋았고 뮤직비디오도 잘 뽑혔으나, 남미풍 '''여름 댄스곡을''' 슬슬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에''' 내버린 게 문제. 애초에 'TACATA'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을 때 바로 후속 활동에 들어가지 않고 1년이나 지난 뒤에야 다음 싱글이 나왔으니, 그동안 대중의 관심이 식는 것도 당연했다.
데뷔 20주년이 된 2015년에는 'TACATA'의 컨셉을 굳힐 작정인지 햐다인에게 프로듀싱을 받은 '#SELFIE ~ONNA Now~'[5] 를 발표했는데, 오히려 '情熱のZUMBA' 때보다 더 약한 반응을 얻었다.
20주년 기념으로 발매한 'MAXIMUM PERFECT BEST' 앨범의 신곡으로 세레브로의 'Mi Mi Mi'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했다. 'TACATA'를 기점으로 해외곡 커버로 노선을 잡은 듯. 과거의 유로비트 커버 노선이 생각나는 행보다.
한술 더 떠서 2019년에 나온 'NEW EDITION II ~MAXIMUM HITS~' 앨범에는 신곡 'JAPAN JAPAN JAPAN'이 실렸는데, 이전 해에 DA PUMP가 부른 'U.S.A.'가 오랜만의 유로비트 커버 히트곡이었는지라 MAX 또한 유로비트 커버곡을 오랜만에 부르게 되었다. 원곡은 마우로 파리나가 작곡해서 ALPHATOWN 명의로 나온 'JAPAN JAPAN'. That's Eurobeat 20집에 실린 꽤 오래된 곡이다.[6] 하지만 'U.S.A.'와는 달리 이쪽은 히트치진 못했다. 오히려 'U.S.A.'에 묻어가는 거냐는 반응.
1. 개요
일본의 90년대 중반~후반대를 주름잡던 라이징 프로덕션 계열 가수를 대표하는 그룹 중 하나.[1]
2. 멤버
같은 소속사의 라이벌 그룹인 SPEED의 멤버들처럼 멤버의 전원이 오키나와 출신으로, 후술하듯이 모두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출신이다. 또한 보컬 라인의 경우에는 Mina와 Reina가 맡고, 댄서는 Nana와 Lina가 담당하나, 초기의 곡들은 대부분의 전원이 노래를 하고 있고 중기가 되어서는 가창력이 높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Mina와 Reina의 솔로 파트가 많아서 최근의 곡들에는 전원에게 솔로 파트가 주어지고 있다.
결성 당시에는 NANA, MINA, LINA, REINA의 4명이었다가 2002년에 출산으로 인해서 MINA가 탈퇴하고 그 자리에 AKI가 들어왔으며, 2008년에 AKI가 탈퇴한 후에는 MINA가 복귀했다. 그러다가 2011년에 REINA가 건강상 문제로 인해서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가 2015년 10월에 일시적으로 공연에 참가하고 2017년 5월에 완전히 복귀했다. NANA가 2019년 말에 출산하여 그룹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고, 현재 3인조로 활동 중이다.
- NANA (나나) - 타쿠시 나나코
1976년 3월 25일생, 키 159cm, 혈액형 A형, 애칭은 나나상 또는 나나코. MAX의 리더로 2016년 결혼하여 2019년에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 MINA (미나) - 이노우에 미나코
1977년 12월 29일생, 키 154cm, 혈액형 A형, 애칭은 미나코. 1995년 4월부터 2002년 3월까지 활동했다가 출산으로 인해서 무려 6년 동안의 공백기를 가진 후 2008년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 LINA (리나) - 마츠다 리츠코
1977년 2월 26일생, 키 159cm, 혈액형 O형, 애칭은 클릭! 멤버들 중 아직 현재까지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자이기도 하다.
- REINA (레이나) - 미야우치 레이나
1978년 1월 6일생, 키 157cm, 혈액형 AB형, 애칭은 레이나, 레레코. 1995년 4월~2011년 7월까지 활동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에 기간 한정으로 데뷔 20주년 공연 활동을 했고, 2017년 5월에 복귀했다.
- AKI (아키) - 마에다 아키
MAX의 전 멤버로 1980년 10월 22일생, 키 164cm, 혈액형 O형, 애칭은 아키쨩. 결혼과 동시에 그룹을 임시 탈퇴한 MINA의 뒤를 이어서 활동한 멤버로 2002년 7월부터 2008년 8월까지 활동하였다. 과거에는 D&D의 Chika와 MISSION의 오리 타미유키, 이시카와 아이리와 함께 4인조 밴드인 Hipp's의 멤버로 활동했었다. 싱어송라이터를 목표로 하기 위해서 2008년 8월 말에 탈퇴한다. 2014년에 결혼했으며, 2015년 10월에는 기간 한정으로 데뷔 20주년 공연 활동을 했다.
3. 역사
활동 초기에는 이탈리아산 댄스 음악인 유로비트를 커버한 곡들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당시 일본에는 '유로비트 붐' 이라고 해서 이 유로비트 음악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그 타이밍을 잘 잡아서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 커버곡을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하여 90년대 후반까지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인기와 판매량이 추락했다. 아직까지도 활동은 하고 있지만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90년대 아이돌 빙하기[2] 시대에 SPEED와 함께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던 여성 아이돌 그룹이고, 고유한 음악 장르와 스타일, 그리고 다른 여성 아이돌 그룹과는 차별화 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보기 힘든 소위 말하는 '센 언니 컨셉' 의 원조 격인지라 여러 모로 시대를 앞선 느낌도 있다. 대략 한국의 베이비복스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맞을 듯.
MAX라는 이름으로 데뷔하기 전 아무로 나미에의 데뷔곡 'Try Me~私を信じて~[3] '로 활동했을 때 백댄서를 했었다. 아무로 나미에와의 인연은 꽤 오래 되었는데, 같은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출신이라는 점이 있는 것과 어릴 적부터 '슈퍼 몽키즈' 라는 이름으로 그룹 생활을 같이 했다는 점 등등이 그 일례이다. 아무로가 임신해서 방송 활동을 쉴 때는 생방송으로 멤버들이 임신 축하 메세지를 보내주기도.
MAX라는 그룹 이름으로 데뷔하였지만 한동안은 아무로의 백업 댄서를 계속 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한 건 아무로의 96년 치바마린 콘서트 때부터. 당시 아무로가 직접 멤버들의 이름들을 호명하면서 소개를 해줬고 관객들에게 'MAX라는 그룹을 잘 부탁한다' 는 멘트를 전했다. 그리고 이후 싱글인 'Tora Tora Tora(Domino)'가 이전과 비교도 안 되는 차트 성적과 판매량을 보여주며 히트했다.
MAX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초창기 싱글들은 모두 이탈리안 유로비트의 번안곡들이었다. 1집은 사실상 외국 유로비트 번안 앨범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오리지널 곡들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1집 이후부터.
6번째 싱글 'Give me a Shake' 가 차트 1위와 함께 50만장의 싱글을 판매하면서 그룹 최고의 히트곡으로 각인시키게 된다. 이 때부터 그룹 노선이 바뀌기 시작하는데, 기존의 유로비트 장르에서 벗어나 R&B 비트의 좀 더 그루브한 노래들을 위주로 싱글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룹 인기는 이전보다 더욱 상한가를 치며 싱글, 앨범 판매량 모두 호조를 띄며 인기 그룹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싱글도 앨범도 모두 판매량이 눈에 띄게 감소. 설상가상으로 메인 보컬이던 멤버 미나의 속도위반 결혼 크리로 인한 갑작스러운 탈퇴 통보로 인해 그룹 활동에 제대로 직격탄을 맞게 된다. 게다가 이 탈퇴 통보는 나머지 멤버들과 상의 없이 소속사와 미나 개인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인한 판단이었기 때문에, 결국 멤버들이 3 vs 1로 갈라서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대기실이나 스케줄에서 멤버들끼리 서로 말도 안 섞고,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며 지냈다고.[4] 결국 미나는 싱글 'Spring rain'을 끝으로 탈퇴를 하게 된다.
이후로는 그야말로 암흑기. 나머지 멤버들은 똑같은 오키나와 출신이었던 멤버 아키를 영입하며 다시 4인 체제를 구축하고 활동하였으나, 이미 팬덤도 미나 탈퇴건으로 인해 붕괴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전과 같은 활동은 불가능했다. 거기다 새로 들어왔던 멤버 아키에 대한 반발도 매우 심해 이리저리 난처하기 그지 없었다. 아키는 춤, 노래, 비주얼 등 다른 멤버들과 비교해 전혀 꿀리지 않는 에이스였음에도 미나와 비교되며 팬덤에서도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샌드위치 같은 상황에 놓이고 만다. 심지어 라이브 현장마다 '아키 탈퇴 시키고 미나 내놔' 라며 항의하는 팬들이 따라다니는 등(...) 여러모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면치 못했다.
결국 2006년 이후로 그룹 활동을 잠정 휴지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가 08년도에 아키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겠다는 말과 함께 탈퇴 의사를 보였고, 이후 이전 멤버였던 미나와 다시 연락이 닿아 예전의 4인 체제를 다시 갖추고 활동하게 된다. 사실 미나도 아예 연예계 활동을 휴지했던 건 아니었고, 지역 방송에서 주관하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댄스 멘토로서 나서는 등 소소하게 활동은 하고 있었지만, 워낙 나머지 멤버들과 불화가 심했던지라 직접 연락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머지 멤버들의 부모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며 다시 맥스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 '여전히 우리가 아닌 타인과 의논하며 해결한다' 라며 나머지 멤버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심지어 리나는 미나가 연예계에 복귀하기 직전까지도 극심하게 반대했다고.
그러나 진심 어린 미나의 설득에 나머지 멤버들도 미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 08년도에 최종적으로 미나의 합류를 선언하며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당시 그룹 자체가 이미 침체기를 지나 추억의 그룹 취급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년의 잘 나가던 언니들이 돌아왔다' 라며 대중들도 크게 반가워했다. 방송 활동도 이전 곡들의 메들리를 부르며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성공적으로 복귀를 이뤄내게 된다.
2011년에는 원년 멤버인 레이나가 임신과 결혼으로 인해 활동을 잠시 멈추었기 때문에, 그 이후 3인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에는 'TACATA' 라는 싱글을 발표하였다. Tacabro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이 곡은 묘한 병맛을 일으키는 뮤직비디오와 가사가 호평을 받았다. 특히 '''리메이크 곡'''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외치는 부분이라든지, '유니버설 언어 타카타' 같은 이상한 가사가 일본인들을 뿜게 만들었다. 유튜브에서 1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미 멤버들이 전부 다 중년이고 활동을 3년 동안 안 한 상태에서 낸 싱글 치고는 꽤 뜨거운 반응. 음판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대신 에어플레이가 폭증하면서 공연에 청신호가 켜졌다.
더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구글 재팬에서 MAX를 치면 연관 검색어가 ''''MAX의 신곡이 이상해''''다! 일본 내에서는 일종의 병신 같지만 멋있어라는, 일종의 병맛 컨텐츠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다. 다만 예전 MAX의 쿨한 아티스트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씁쓸해 하고 있는 듯. 사실 이 MV가 원래부터 B급을 노리고 만든 것은 분명 아닐진데 한 끗 차이로 수작과 괴작을 넘나들게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일본 네티즌들이 이야기하길 "'''전력으로 멋부렸는데 전력으로 싼티나. 그 점이 최고야!'''"
게다가 8월 25일에 방송된 『行列のできる法律相談所』에서 즉석 공연을 선보인 이후 바로 다음날 음원 차트 권외에서 6위로 워프를 하는가 하면, 트위터 키워드로 3000건이 넘는 글이 순식간에 올라오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게다가 발매 한 달 만인 9월 3일에 화요곡 출연이 잡히기도 하여 항간에서는 잘 하면 MAX의 새로운 전성기가 오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
그 이후에도 롱런을 거듭해서 유튜브 조회수는 200만 건을 넘겼고, 아이튠즈는 70위권에서 10위권으로 워프, 무려 10월까지 음악 방송 출연이 예정됐다. 이쯤 되면 확실히 새로운 전성기라 할 수준. 오리콘에서도 11주 연속으로 진입하면서 1만장 판매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으며, 유명 프로그램에 줄줄이 출연하면서 심지어 SMAPXSMAP까지 나왔다. 게다가 음원에서는 지속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는지라 잘하면 연말 음악 프로 한 군데 정도는 출연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베스트 아티스트에만 출연하고 연말 음악 프로에는 나오지 않았다.
2014년에는 '情熱のZUMBA' 를 발표했으나 전작 'TACATA' 보다는 약한 반응을 얻었다. 오리콘차트에서도 2주 진입 후 바로 차트아웃됐다. 곡 자체는 상당히 좋았고 뮤직비디오도 잘 뽑혔으나, 남미풍 '''여름 댄스곡을''' 슬슬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에''' 내버린 게 문제. 애초에 'TACATA'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을 때 바로 후속 활동에 들어가지 않고 1년이나 지난 뒤에야 다음 싱글이 나왔으니, 그동안 대중의 관심이 식는 것도 당연했다.
데뷔 20주년이 된 2015년에는 'TACATA'의 컨셉을 굳힐 작정인지 햐다인에게 프로듀싱을 받은 '#SELFIE ~ONNA Now~'[5] 를 발표했는데, 오히려 '情熱のZUMBA' 때보다 더 약한 반응을 얻었다.
20주년 기념으로 발매한 'MAXIMUM PERFECT BEST' 앨범의 신곡으로 세레브로의 'Mi Mi Mi'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했다. 'TACATA'를 기점으로 해외곡 커버로 노선을 잡은 듯. 과거의 유로비트 커버 노선이 생각나는 행보다.
한술 더 떠서 2019년에 나온 'NEW EDITION II ~MAXIMUM HITS~' 앨범에는 신곡 'JAPAN JAPAN JAPAN'이 실렸는데, 이전 해에 DA PUMP가 부른 'U.S.A.'가 오랜만의 유로비트 커버 히트곡이었는지라 MAX 또한 유로비트 커버곡을 오랜만에 부르게 되었다. 원곡은 마우로 파리나가 작곡해서 ALPHATOWN 명의로 나온 'JAPAN JAPAN'. That's Eurobeat 20집에 실린 꽤 오래된 곡이다.[6] 하지만 'U.S.A.'와는 달리 이쪽은 히트치진 못했다. 오히려 'U.S.A.'에 묻어가는 거냐는 반응.
4. 발매한 음반
4.1. 싱글
4.2. 정규 앨범
4.3. 편집반
[1] SPEED, DA PUMP, 윈즈, 아무로 나미에 등이 소속되어 있다.[2] 80년대 말 오냥코클럽 이후 일본에서는 여성 아이돌 가수가 인기를 못 얻는 아이돌 빙하기가 이어졌다. 물론 히카루GENJI, V6, SMAP 등 쟈니스 아이돌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남성 아이돌 쪽은 사정이 다르다.[3] 원래는 엘레나 고비의 노래. Lolita라는 이름으로 발매했다.[4] 그도 그럴 것이 무명 시절부터 그룹 시절 병풍 생활과 아무로 나미에의 백댄서 활동까지 버텨가며 동거동락한 멤버들이었는데, 자신들에게 말 한 마디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 자체에 매우 멤버들이 빡쳐있었다고.[5] 체인스모커스의 '#SELFIE'를 리메이크.[6] 1990년 곡으로, 원곡이 1992년 곡인 'U.S.A.'보다도 2년 전 곡.[7] Virginelle의 'Kiss Me Kiss Me Baby' 를 커버.[8] Domino의 'Tora Tora Tora' 를 커버.[9] Mega NRG Man의 'Seventies' 를 커버.[10] Dolly Pop의 'Take My Gum' 을 커버.[11] MAX의 대표곡. 신곡을 발표하고 방송에 출연할 때 신곡과 함께 가장 많이 부르는 곡이다.[12] SPEED에게 프로듀싱을 해준 이즈치 히로마사의 음악 프로젝트였던 HIM(Hiromasa Izuchi Melodies)이 'AQUARIUS' 라는 제목으로 했던 곡을 리메이크.[13] 한국에서도 피플크루의 '새마을 운동' 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원곡인 밴드 ELO(Electric Light Orchestra)의 올드 팝송 'Last train to London' 에서 후렴 부분 반주를 가지고 3인조 여성 그룹 아토믹 키튼이 리메이크곡으로 했던 'Be with you' 의 일본어 번안곡. [14] 후에 Christine이 'Rain' 이라는 커버 곡으로 'Super Eueobeat 168'에 수록한다.[15] 애니메이션 캣츠 아이 오프닝 곡 'CAT'S EYE' 의 리메이크.[16] 첫 주에 42위로 진입했으나 2주차에 순위 갱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