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 PUMP
1. 개요
DA PUMP는, 1997년 결성된 일본의 댄스 전문 아이돌 그룹이다.
2. 활동
2.1. 데뷔 이전
초기의 원년멤버들은 모두 아무로 나미에, SPEED의 트레이닝 스쿨로 잘 알려진 오키나와의 오키나와 액터스 스쿨 출신이다. 여기서 켄과 유키나리가 댄스듀오 KEN & YUKINARI를 결성한 DA PUMP의 시초. 둘이 댄스를 중심으로 트레이닝을 정진하던 중 아무로나미에와, 역시 액터스 스쿨 출신이었던 치넨 리나가 소속된 라이징 프로덕션에서 이 둘을 눈여겨보고 1996년에 치넨 리나의 백댄서로 투입시킨다. 이후에는 같은 연습소의 미야라 시노부(SHINOBU)와 헨토나 잇사(ISSA)가 추가로 합류해 'KOOZ'라는 이름의 4인조 그룹을 준비한 게 시초였다. 이후 라이징 프로덕션에서 이름을 바꾼 비전팩토리가 이들을 연습생으로 준비시켰고, 그룹 준비 1개월 뒤에 'Billy The Kids'라는 이름으로 개칭해 데뷔준비조로 내부에서 승격시킨다. 그리하여 1997년 6월에 지금의 팀명인 '''DA PUMP'''라는 팀명을 확정하고, 토가시 아키오의 프로듀싱으로 Feelin' Good - It's Paradise를 발표하며 정식 데뷔한다.
Feelin' Good -It's PARADISE-
2.2. 데뷔 초 (1997~2000)
레이블 에이벡스에서 커팅에지, Avex Trax를 잇는 신생 서브 레이블 'Avex Tune'의 제 1호 아티스트로 다 펌프는 엄청난 푸쉬를 받으며 데뷔한다. 같은 해 8월 요코하마 랜드마크 도크야드 가든에서 열린 데뷔 라이브에서는 무려 5,000명의 인원이 동원되는 등, 막 데뷔한 그룹답지 않게 그 인기가 상당했다. 데뷔음반 또한 상당한 판매고를 올려, 1997년 6월 3주차 싱글차트에서 15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린다. 데뷔조 치고 준수한 성과를 올린 덕에 에이벡스에서는 9월까지 그 활동을 지속하는 등 장기적으로 활동했고, 10월에는 2번째싱글인 'Love Is The Final Liberty'를 발매했다. 그리고 프로모션 행사로 요코하마 가든스퀘어 라이브에서 미니라이브를 개최했는데, 무려 데뷔 라이브보다 3배이상이나 되는 '''18,000명'''을 동원해 인기 아이돌 반열에 오른다. 이때부터 비전팩토리에서는 오기노메 요코-아무로 나미에-MAX-SPEED로 이어지는 아이돌 라인업에서 히트그룹이 없던 남성 아이돌 그룹까지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다 펌프는 잠시 공백기를 가지다 해를 넘긴 1998년에 싱글 Stay Together, ごきげんだぜっ! ~Nothing But Something~을 연달아 발매하지만 잠시 주춤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두 싱글들 또한 준수한 판매고를 기반한 코어팬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자 레이블 에이벡스에서 계속 푸쉬하기 시작했고, 그해 6월 발매된 Rhapsody in Blue가 주간 9위로 떠오르며 다시 상승세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달인 7월 발매된 정규앨범 'EXPRESSION'이 주간 3위의 성과를 올리자, 비로소 그룹의 인기기반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연말에는 1998 NHK 홍백가합전에 첫 참전하며 완전한 인기그룹으로서 입지를 완성했다. 1999년에는 싱글 Crazy Beat Goes On!이 큰 히트를 치며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를 구가했고, 정규 2집 Higher And Higher가 주간 2위의 메가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룹의 장기적인 미래를 엿보게 된다. 또 디스코와 펑크 풍의 레트로 장르를 들고 온 싱글 We can't stop the music도 주간 4위를 기록하며 당시 다 펌프의 최고 주간순위를 기록한다. 다만 이 이후로는 싱글 차트에서는 잠시 주춤하는 모양세를 보인다. 그러나 2000년에 발매한 정규앨범 'BEAT BALL'이 훌륭한 퀄리티와 프로듀싱으로 주간차트 '''1위'''를 거머쥐는 영광을 얻는다.
ごきげんだぜっ! ~Nothing But Something~ MV
Rhapsody in Blue 라이브
We can't stop the music MV
2.3. 제 1의 전성기 'If...' (2000)
(뮤직비디오 버전.)[1]
그러던 도중 우타다 히카루를 시작으로 촉진된 당시 일본의 R&B 열풍의 트랜드에 맞추어, 한국과 중국 등의 아시아권에서 유행하던 미디움템포 넘버의 'If...'를 발매한다. If는 주간차트에서는 11위를 기록했으나, 잇사의 절륜한 보컬에 켄의 짐승같은 거친 래핑, 유키나리와 시노부의 인상적인 댄스로 완성된 엄청난 퍼포먼스와 퀄리티, 당시 절정을 달리던 멤버들의 비주얼까지 더해져 주간차트 등장회수 22회 등의 롱런을 한다. If...는 2000년부터 2001년 2년동안 34만 5천여장의 막대한 판매량을 올린다. 그 결과로 일본레코드협회에서 골드 인증을 받고, 2000년 레코드대상에서 금상을 받는 메가 히트곡으로 남는다. If는 한국의 악동클럽이 번안하기도 하였다.
2.4. 마지막 불꽃과 셀프 프로듀싱으로 통한 아티스트화(2001~2005)
'If...'의 대성공으로 에이벡스는 계속해서 미디움템포 넘버의 'Purple The Orion', 클럽에서 유행하는 하우스 넘버의 'CORAZON'을 연달아 발매, 각각 3위 4위를 기록해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리고 We Can't Stop The Music의 뒤를 잇는 펑크넘버 Steppin' and Shakin, 윈터송 컨셉트의 발라드 넘버 All My Love To You 또한 해를 넘는 인기로 정점을 구가한다. 2001년 발매된 베스트 앨범 Da Best of Da Pump도 베스트앨범 구성의 교과서라는 찬사와 함께 훌륭한 구성으로 주간 1위, 2001년 오리콘 연간 앨범차트 14위를 기록하며, 후속성 리믹스앨범인 Da Best Remix of Da Pump도 주간 3위를 기록하며 준수한 매상을 올린다. 이때 그룹 내에서 작곡 등에 관심을 보이던 유키나리가 히트곡 If...를 직접 리믹스해 수록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곧 다 펌프의 아티스트화를 예고하는 전초였다.
그리고 장기적인 공백 후 2002년 6월 발매한 Rain Of Pain은 R&B와 미디움템포에서 더 발전한 투 스텝[2] 사운드로 이루어진 완성도 높은 악곡에 격렬한 퍼포먼스로 공백기를 깔끔히 던지고 주간 4위를 기록하는 등, 히트에 성공한다. 이 싱글부터는 DA PUMP 멤버들 전원이 작사에 참여하는 등, 점차 멤버들의 싱어송라이팅 화가 진행되어간다. 2003년에는 보사노바와 재즈, R&B를 결합한 이채로운 스타일의 Night Walk를 발표, 이 역시 8위의 성적으로 높은 결과를 얻었으나, 이 앨범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4번 트랙인 Make It Hot이었다. 이 트랙은 기존 앨범에 제한적으로 참여했던 다 펌프 멤버 전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셀프 프로듀싱한 곡이었기 때문. Night Walk를 끝으로 다 펌프는 외주 프로듀싱을 졸업하고, 한동안 셀프 프로듀싱의 실력파 아티스트로 자리잡게 된다. 그 다음으로 나온 싱글 'Circle of Life'는 엘튼 존 작곡의 곡을 받아 라이온 킹의 일본판 OST로 수록되었으며, 이때부터 수록곡을 전부 다 펌프의 멤버 전원이 제작했다. 2004년에는 흥겨운 빅밴드 스타일의 힙합 곡 'GET ON THE DANCE FLOOR'를 발매, 멤버 전원의 보컬/랩 파트 분배 및 보컬 잇사의 랩까지 넣는 등, 파트 분배에 있어서 엄청난 진일보를 꾀한다. 2005년에는 멤버 KEN이 전곡 셀프 프로듀싱을 하며 천재성을 보인 빅비트 스타일의 힙합곡 'Like This'를 발매, 잇사에 가려졌던 멤버 켄의 존재감을 보였다. 그리고 10월에는 Bright! Our Future까지 발매하나, 다 펌프의 원년멤버 체제는 여기까지였다.
2.5. 원년멤버들의 탈퇴와 재정비(2006~2009)
2005년 2월 일으킨 음주운전이 뒤늦게 알려져 Bright Our Future 활동에서 배제된 채 근신에 들어갔던 멤버 시노부는 현지에서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오키나와 전통악기 샤미센과, 다채로운 오키나와 전통 음악을 들으며 자숙했다. 처음에는 복귀를 준비하며 멤버들과 사무소를 대상으로 꾸준히 연락을 이어나갔으나, 결국 자신이 열정을 가졌었던 오키나와 전통음악의 다양한 표현을 연구하기 위해 팀 탈퇴를 선언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상당한 인기의 4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가 아이돌을 은퇴하고 국악계로 전향한 셈. 멤버들은 착잡했지만 시노부를 보내주었고, 2006년부터는 결국 3인조로 활동을 재편하게 된다.
이후에는 팀 재편을 위해 임시로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싱글 Alright을 기점으로 복귀해 3인이서 활동한다. 그렇게 활동하며 2007년에는 데뷔 10주년을 맞아 에이벡스의 대대적인 푸쉬 하에 기념 콘서트를 성대하게 개최하나, 콘서트에서 퍼포먼스 도중 잇사가 대퇴부 골절로 중상을 입게 되자 계획하였던 기념활동은 전부 중단되고, 잇사의 재활동안 팀의 향후를 결정할 논의를 진지하게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켄과 잇사가 퍼포먼스 중심의 재편을 논의했고, 멤버 전원이 후배들을 중심으로 신멤버 모집을 시작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팀의 음악적 기반을 탄탄히 했던 유키나리는 퍼포먼스보다 프로듀싱을 집중하고 싶다며, 팀 탈퇴 후 프로듀싱이나 컨셉등의 기획/구성에서 팀을 돕는 형식으로 팀을 재편했다. 이렇게 팀에서 유키나리가 탈퇴하면서 원년멤버들의 2명으로 재편되었고, 여기에 DAICHI, KENZO, TOMO, KIMI, YORI, U-YEAH, KAZUMA 7인이 합류해 총 '''9인'''의 초대형 그룹으로 재편된다. 특히 팀의 비주얼 멤버들이었던 시노부와 유키나리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퍼포먼스 외에도 비주얼을 중요 심사요소로 정해팀의 아이돌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했다. 이렇게해서 발매된 팝 스타일의 썸머송 SUMMER RIDER는 음반시장의 불황과 팀의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오리콘 주간차트 22위를 기록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SUMMER RIDER의 뮤직비디오는 특이하게도 원테이크 형식으로 이루어진, 어찌보면 트랜드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기법을 적용했다. 그러나 SUMMER RIDER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켄은 새 멤버들의 높아진 댄스 난이도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했고, 잇사와 논의한 끝에 팀을 탈퇴해 힙합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를 밟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팀은 또 2년동안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다.
2.6. 침체기(2011~2017)
그룹이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며 재기불능의 상태였다시피 했다. 2011년 싱글을 발매했지만, 바로 이듬해인 2012년 리더 잇사가 약혼자 후쿠모토 사치코와의 결혼을 앞두고 AKB48의 중견 멤버였던 마스다 유카와 잠자리를 지속적으로 가진 것이 폭로되면서 그룹의 이미지가 나빠짐은 물론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마스다도 그룹에서 짤렸지만, 약혼자를 놔두고 불륜이나 진배 없는 짓을 저지른 ISSA에 대한 시선도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
2014년에는 카즈마의 졸업으로 인해 7인조로 재편되었고, 점차 앨범 발매 텀이 길어졌던지라 팬들마저도 다음을 기약할 수 없었다는 점에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2014년 3년 만의 싱글 New Position 발표 후 2015년 베스트 앨범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발매가 연기되었고, 다시금 3년간 음반 활동은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2.7. '''USA 대란(2018)'''
'''2018년 일본에서 가장 흥행한 최고의 댄스 히트곡'''[3] . 2017년 일본 가요계 복고열풍에 오기노메 요코가 있다면 2018년엔 DA PUMP가 있었다.
2018년 5월 16일, 무려 3년 반만의 컴백을 선언하며 싱글 USA의 뮤직비디오를 선공개했다. 당시 팬들은 오랜만의 신곡이라며 좋아했지만 오리지널 신곡은 아니었고, Joe Yellow의 'USA'의 번안곡. USA라는 곡 자체는 1992년 곡인데, 당시 일본 클럽에서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닐이 아닌 CD로 수록된 적은 없는 숨겨진 명곡이었다. SUPER EUROBEAT에 수록된 것도 무려 '''15년 후'''인 2007년이었을 정도로 묻혀있던 곡이었다. 완전 하드한 유로비트 매니아가 아니면 알기 힘든 곡이었는데, 이 곡을 번안하게 된 이유가 슈퍼 유로비트 시리즈의 창시자이자 에이벡스의 회장인 마츠우라 마사토의 제안이었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이라면 MAX 마츠우라의 유로비트 사랑이 돋보이는 부분.
이 곡이 발표되고 자켓이 공개되고 나서 가장 먼저 열광적인 호응을 보낸 계층이 뜬금 없게도 헬로! 프로젝트 팬덤인 하로오타들이었다. 곡과 자켓과 PV의 묘한 촌스러움과 이해하기 힘든 가사가 하로프로 감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하로오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일부 하로오타들은 아예 USA에 맞춰서 걸그룹 현장에서 쓰는 콜 구호를 치기 시작했는데, 이게 다펌프 팬들로도 전파되어 급기야 6월 6일 산샤인이케부쿠로에서 열린 발매 기념 이벤트에서는 하로오타와 다펌프 팬들이 하나가 되어 콜을 외치기까지 했다. 이 실황을 담은 직캠은 일본 직캠 치고는 이례적으로 무려 100만 건이라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입소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일본의 각종 아침 방송이나 와이드쇼 등에 인터넷 상의 USA 유행이 보도된 것이 6월 초 무렵. 일단 미디어에 보도가 되기 시작하자 열풍은 급속도로 퍼져갔다. 처음에 대중들은 시대착오적인 유로비트 사운드에 당황했지만, 뉴웨이브스러운 80년대 스타일의 가사에 트랜디한 힙합룩의 언밸런스함, 기억하기 쉬운 경쾌한 사운드가 시너지를 일으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안무 역시 최근 힙합 트렌드를 잘 반영한 힛 뎀 폭스나 후렴의 슛 댄스[4] , 그리고 인베이더 포메이션이 화제가 되었다. 여기에 레이블인 에이벡스가 시장의 흐름을 아주 빠르게 캐치해 급하게 방송을 섭외하고, 대대적인 CM을 편성하는 등,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대대적인 푸시를 단행해 결국 빵 터졌다.
USA는 다사이(촌스럽다)와 각꼬이(멋있다)의 합성어인 다사각꼬이(촌스럽지만 멋있다)라는 유행어까지 낳았다. PV와 곡, 가사는 촌스럽지만 댄스나 촌스러운 짓을 진지하게 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멋있다는 것이 일본 대중들의 의견. 원곡 가사 중 'cheek to cheek'를 발음이 비슷한 '지구인(치큐진)'으로 옮기는 등 촌스러움을 계산하고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DA PUMP와 라이징 프로덕션의 팬들은 다 펌프가 드디어 재기에 성공했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오랜 충성팬들과 대중들의 화력이 합쳐져 무려 '''3주간''' 오리콘 디지털 싱글차트 다운로드 순위 1위, CD 싱글차트 9위를 차지하며 부활했다. 여기에 LEAD, w-inds.의 라이징 프로덕션 남성 그룹들까지 대거 컴백하면서 라이징 프로덕션 팬들은 그야말로 축제. 2018년 8월까지도 식지않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2018년 8월 FNS가요제에서는 모닝구 무스메와 함께 USA를 공연한 것이 화제가 되어 다시 한 번 음원 차트 1위로 역주행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인기에 힘입어 무려 21년만에 엠스테 출연이 확정됐다. 이 소식을 들은 DA PUMP 팬들은 지금이라도 엠스테에 출연할수있어 다행이고 축하한다는 응원메시지를 보냈다.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이 되어서도 음반, 음원, 유튜브 추이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어서 10만 장 판매, 50만 건 다운로드, 1억 뷰 기록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2018년 10월 27일 1억 뷰를 넘었다. 유튜브의 경우, J-POP곡 중에서는 2018년 9월 기준 18곡 밖에 없는데다가, U.S.A.는 풀버전이 아닌 페이드 아웃 버전으로 1억 뷰를 돌파하는 것이므로 의미가 더 크다. 추이상 2018년 11월 말, 피지컬 10만장 & 디지털 50만 건을 돌파할 예정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동년배 과거 소속사 동료이자 동향인 걸그룹 MAX와 흡사한 면이 많다. 맥스는 꾸준한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잘 안 풀리다가 뜻하지 않게 병맛스러운 쌈마이 댄스곡 노선으로 방항을 틀면서 호응을 얻게 된 루트를 따라가게 된 셈이다.
2018년 11월 26일 HKT48의 7주년 기념 극장공연 「777んてったってHKT48 ~7周年は天神で大フィーバー~」 에서도 복고컨셉으로 이 노래를 커버했다.[5]
2018년 연말의 홍백가합전 출장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빌보드 재팬 연말 랭킹에서 Lemon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이 기세를 몰아 2015년 발매가 중지되었던 베스트 & 셀프 리메이크 앨범 'Neo Best of DA PUMP'를 발매, 첫 주 5만 장이 팔려나가며 호조를 기록하고 있다.
if... New ver MV
인기에 힘업어 Google Pixel 광고도 찍었다!
패러디 영상과 차트 추이는 U.S.A.(조 옐로우) 참고.
2.8. '''인기를 이어갈수있을까(2019)'''
뮤직스테이션 1월 18일자에 신곡 桜(사쿠라,벛꽃)를 최초로 선보였다. if...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에 사쿠라핑거라는 손동작을 더해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가사에 나오는 ファビュラス(fabulous,기막히게 좋은)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었다.
桜 MV+SPOT
싱글 桜는 3월 6일 발매되었다. C/W 악곡의 숫자는 이전보다 줄어들었지만, U.S.A에서 얻은 동력을 이어나가기 위해 에이벡스가 음악 프로그램인 CDTV의 주제가로 타이업했고, 2019년 1월 19~20일 베트남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뮤비도 특전으로 집어넣는 등 구성이 좋아졌다. 타이틀곡 桜와 함께 들어있는 C/W곡 Do it!宙にジャンプ도 멤버들의 랩/일부 보컬 파트 참여가 늘어나, 타이틀곡과 견줄만한 완성도로 상당한 호평을 듣고있다. 한편 3월 31일에는 무려 '''17년'''만에 무도관에서 개최하는 콘서트를 시작으로, 7월까지 전국투어를 개최할 예정이다.
8월 7일, 싱글 P.A.R.T.Y. ~ユニバース・フェスティバル~이 발매된다. 극장판 가면라이더 지오 Over Quartzer의 주제가로 타이업 되었으며, ISSA가 극중에서 가면라이더로 변신하기도 했고, 아예 멤버 전체가 해당 작품의 악의 조직의 일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디지털 음원으로는 약 한달전에 발매 되었는데, 레코쵸쿠 7월 월간랭킹에서 12위를 차지하고, 현재에도 데일리 10위안에 꾸준히 들어오는등 순조롭게 흥행하고 있다.
2.8.1. 차트추이
THANX 앨범은 라인 뮤직에선 스트리밍 차트 9위, 아이튠즈 스트리밍 차트에선 19위로 신규 진입했다. 오리콘 데일리 싱글 차트에서는 桜가 3월 6일에 5위로 첫 진입, 3월 7일에는 4위로 올라섰다. 소니에서 운영하는 음악 서비스 사이트인 Mora에서는 '''1위'''로 첫 진입했다.
3. 멤버
구 멤버로 일컬어지는 원년멤버들의 탈퇴로 인해 현재는 KIMI와 ISSA를 제외하면 보컬이나 랩을 하는 멤버가 없다. 퍼포먼스 중심 그룹으로 변모한 셈. 댄스가 아닌 보컬 파트에서는 그마저도 ISSA가 거의 모든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발매한 싱글 桜에서는 C/W곡 Do it!宙にジャンプ를 통해 다시 파트 분배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원년멤버 시절처럼 제대로된 파트분배가 이루어질지 지켜보아야 할 듯 하다.
3.1. 2기(2009~ 현재)
3.1.1. ISSA(리더)
DA PUMP 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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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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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헨토나 잇사 (邊土名一茶, へんとな いっさ). 1978년 12월 9일 생. 오키나와현 오키나와시 출신. 조부가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쿼터(1/4 혼혈)이다.
여담으로 아버지 헨토나 모토무(辺土名求)와 남동생 헨토나 니체(辺土名二茶)는 프로골퍼로 활동 중이며, 누나 사토나카 챠미(里中 茶美, 본명 헨토나 챠미)도 가수 및 탤런트로 활동한 바 있다. 오키나와 출신 답게 성씨와 이름 모두 매우 특이하여 처음 ISSA의 본명을 접한 일본인들도 읽는 법을 몰라 당황하곤 한다.
그룹의 얼굴마담이자 메인보컬, 간판 멤버. 현재 팀에 남은 유일한 원년멤버로 팀을 유지시키기 위해 혼신을 다한 멤버로 평가 받고 있다. 탁월한 보컬 능력으로 팀의 구심점이 되는 핵심 멤버이다.
엄청나게 화려한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SPEED의 우에하라 다카코, 시바사키 코우 등등 사귀었던 상대들도 당대 잘나가는 연예인들만 골라 사귀는 수준이었다. 2011년 여배우 후쿠모토 사치코와 약혼하여 결혼할 예정이였으나, 마스다 유카와의 불미스러운 숙박 스캔들로 인해 후쿠모토 측에서 약혼을 파기한 흑역사가 있다.
2018년 6월, 일반인 여성과 입적했음을 보고하였다.
2018년 방영 시작한 가면라이더 지오의 오프닝 Over “Quartzer”[6] 를 부르기도 했다. 2003년 가면라이더 555의 오프닝 Justiφ's을 부른지 15년만이다.[7] 이후 극장판 가면라이더 지오 Over Quartzer에서는 '''아예 ISSA 본인이 직접 출연한다.'''
3.1.2. Y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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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2월 9일 생. 각트의 댄스팀 멤버로 명성을 떨쳤으며, 2008년 다펌프의 신멤버 모집 때 각트의 권유로 멤버가 되었다. 히로시마현 출신.
3.1.3. T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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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2월 2일 생. 안무 제작을 담당하고있다. 아이치현 출신.
3.1.4. KI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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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4월 14일 생. 현 2기 멤버 중 랩을 담당하고 있으며, 켄의 탈퇴 이후 공백이 생긴 랩 파트를 주로 커버하고 있다. 본격적인 솔로 음악활동은 아직까지 없지만, 피처링이나 참여곡으로 자신의 래핑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출신.
3.1.5. U-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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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9월 17일 생.
3.1.6. KEN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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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월 21일 생. 상당히 수려한 비주얼로 여성 팬들이 상당히 있는 멤버이자, 댄스 테크니션이 뛰어난 멤버로 해외 대회들에서 여러번 우승을 차지한 전력이 있다. 2018년 1월에는 솔로 DVD집인 'MY NAME IS KENZO'를 발매했고, 그해 중순에는 Korea Dance Delight vol.4에 참여하면서 방한하기도 했었다. 후쿠오카현 미야와카시 출신.
3.1.7. DAI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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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 4일 생. 팀의 막내이다. 토치기현 출신.
3.2. 탈퇴/졸업 멤버
원년멤버(1996(연습생)~2009)
- KEN(2009년 탈퇴 후 솔로 전향): 1979년 12월 17일 생. 랩 담당. 오키나와현 우라소에시 출신.
- SHINOBU(2006년 탈퇴): 1980년 2월 15일 생. 댄스 담당. 오키나와현 야에야마 제도 타케토미초 출신.
- YUKINARI(2008년 탈퇴후 프로듀서 전향): 1978년 11월 5일 생. 댄스 및 프로듀싱 담당. 오키나와현 나하시 출신.
[1] 싱글 USA의 메가히트로 DA PUMP의 역대 뮤직비디오들이 다시 에이벡스 유투브 계정에 올라왔는데, If는 과거곡들 가운데 유일하게 300만뷰를 돌파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불리워지는 명곡이다.[2] 우리나라에선 신화(아이돌)의 I Pray 4 U 등이 잘 알려져있다.[3] 그냥 최고의 히트곡이라고 하먼 요네즈 켄시의 Lemon이 우위지만 U.S.A. 역시 SNS, 미디어에서의 화제성이나 롱런 면에서 뒤지지 않았다.[4] 슛 댄스는 미국 본토를 넘어 전세계적인 트렌드로 한국에서는 펜타곤의 <빛나리>에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같은 시기 LDH 사단의 GENERATIONS도 슛 댄스를 들고 나왔으나, USA와 겹치는 바람에 묻혔다.[5] 오프닝 무대에서 프로듀스 48에 참여한 무라카와 비비안이 DJ를 진행하며 랩을 하는 모습을 선보여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6] 스에요시 슈타의 피쳐링[7] TV판 한정. 2007년에 가면라이더 THE NEXT의 주제가인 "Chosen Solder"를 불렀으니 가면라이더 시리즈 전체로 따지면 11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