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복스

 


(위) 윤은혜이희진
(아래) 심은진김이지간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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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
Baby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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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
베이비복스
Baby V.O.X (영어)
장르
댄스, 발라드
리더
김이지
활동 기간
1997년 7월 3일 ~ 2006년 2월[1]
데뷔
1997년 정규 1집 EQUALIZEHER
(데뷔일로부터 9754일째)
소속사
DR뮤직 (1997년 ~ 2004년)[2]
팬덤
베이비 엔젤스[3]
공식색
펄 핑크
로고
[image][4]
1. 개요
2. 멤버
3.1. 주요 활동 연혁
5. 광고 모델 경력
5.1. 국외 CF
6. 팬덤
7. 인기 / 평가
9. 수상 경력
9.1. 시상식
9.2. 가요 프로그램 1위
10. 여담
10.1. 베이비복스의 계보
10.2. 음원 사이트에서 베이비복스를 검색할 때 주의점

[clearfix]

1. 개요


3집 후속곡 Killer 활동 시절[5]
1997년 7월 3일에 DR뮤직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5인조 걸그룹이다. S.E.S., 핑클은 물론이고, 디바보다도 먼저 데뷔한 선배그룹이다. 베이비복스 완전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멤버는 다른 1세대에서 볼 수 없는 보컬, 댄스, 랩파트를 각각 맡는 21세기 현재 완성형 아이돌 구성을 갖춘 유일한 그룹이다. 1세대 아이돌 중 가장 오래 활동했으며 팀 이름 베이비복스의 뜻은 Baby Voice Of eXpression.
1997년 정규 1집 'EQUALIZEHER'로 데뷔한 이들은 2004년까지 한국에서 총 8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1세대에선 디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정규 앨범을 발표한 그룹이다. 1~3집 시절 세번의 멤버 교체가 있었다. 리즈 시절의 구성원은 김이지, 이희진, 심은진, 간미연, 윤은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S.E.S.핑클을 이은 1세대 1군 다시 말하면 경쟁자가 없는 독자노선 1위였다. 또 중국태국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는 남아이돌 보다 큰 거대한 팬덤을 구축한 1세대 유일 한류 여성그룹이다.[6] [7] 베이비복스 팬덤 공식 팬클럽 ‘베이비엔젤스’이며 상징색(풍선색)은 분홍색이다. '한류 1세대'로 무조건 회자되는 이유는 앨범 총판이 해외에서 모든 그룹을 압살하며 중국,일본,한국에서 각각 단독 콘서트를 한 최초의 여성그룹이기도 하다. 당시 베이비복스 중국 팬클럽 베이비엔젤스 in China는 마지막 앨범시엔 10만으로 알려진다. 중국 첫 콘서트는 8만명 전좌석을 매진하였다.
국내외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2004년, 한국 가요계 최악의 사건으로 회자되는 모종의 구설수로 팀 활동을 일시 중단했으며, 이후 멤버들이 악덕 소속사로 악명이 높던 DR뮤직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음에 따라 결국 2006년 잠정 해체된다.[8] 다만 공식적인 해체 선언은 하진 않았고 2006년 2월 "각자의 길"을 선언했다. 이때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각자 활동을 열심히 하고 다시 뭉쳐서 음반을 내기로 약속했다. 여담으로, 멤버 전원이 모두 배우를 겸업 또는 배우로 전업했다. 2005년 윤은혜, 2006년 심은진, 김이지, 2010년 이희진, 2014년 간미연.[9]

2. 멤버



베이비복스 멤버
심은진
이희진
김이지
윤은혜
간미연
1981년 2월 6일

서브보컬



1979년 5월 16일

리드보컬



1979년 1월 31일

리더
서브보컬
메인래퍼
1984년 10월 3일

서브보컬



1982년 2월 2일

메인보컬




3. 활동 역사




3.1. 주요 활동 연혁


  • 1999년 8월 뉴욕 공연
  • 1999년 11월 중국 음반 라이센스 체결
  • 1999년 한일합작 애니메이션 '건드레스' 홍보대사 위촉 및 주제가 'Patron' 녹음
  • 1999년 12월 중국 북경 TV의 '밀레니엄쇼'에서 데뷔 무대
  • 2000년 4월 중국 계림서 'Why' 뮤직비디오 촬영
  • 2000년 6월 NRG, 클론 등과 상해 공연
  • 2000년 8월 세계 맥주 페스티벌 한국대표 출전
  • 2000년 9월 미국 뉴욕, L.A. 한류 미니 콘서트
  • 2000년 10월 22일 ~ 24일 일본 프로모션차 방문, 도쿄 ON AIR WEST LIVE HALL 단독 미니 콘서트 (1천명 좌석 만석)
  • 2000년 10월 28일 중국 계림시 관광사절 위촉 및 감사패 수여
  • 2000년 11월 한국 걸그룹 최초 중국 베이징 콘서트
  • 2000년 12월 2일 일본 Korea Super Expo 2000 슈퍼 라이브
  • 2001년 1월 1일 중국 상하이 TV 주최 '새천년 쇼'에 해외 아티스트 대표 출전
  • 2001년 6월 2일 MBC 일밤 게릴라 콘서트 포항 해맞이 공원에서 9,364명 (비공식 10,000명 이상) 동원
  • 2001년 중국 연예 잡지의 '한국 여성 연예인 가운데 최고 인기 연예인 1위에 간미연
  • 2001년 6월 4일 5집 앨범 아시아 4개국 동시 발매
  • 2001년 7월 ~ 12월 중국 7개 도시 투어
  • 2001년 9월 23일 ~ 28일 중국 3개 도시 '한중수교 9주년 기념공연'
  • 2001년 9월 27일 중국 베이징 '베이비복스 전산학교' 설립
  • 2001년11월 김이지 한중합작 드라마 '적혈매괴' 캐스팅, 회당 개런티 350만원
  • 2002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라디오 방송국 협회가 뽑은 '최우수 한류가수상'
  • 2002년 5월 대만 프로모션
  • 2002년 5월 간미연 한중합작 영화 '와와' 캐스팅
  • 2002년 7월 중국 베이비복스 가요제 개최 1차전 4000여명 지원
  • 2002년 8월 15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서 국내 첫 단독콘서트
  • 2002년 8월 베트남 공연
  • 2002년 9월 태국 'GMM'과 음반 계약 정식 진출 대한민국 가수 최초
  • 2002년11월 17일 일본 NHK 아시아 드림 라이브 한국 대표 출전
  • 2002년 12월 일본 도쿄 TV '플라토닉 체인'에 'Go'가 타이업
  • 2002년 12월 서울가요대상 한류 공로상 1회 수상자[10]
  • 2003년 1월 20일 홍콩 프로모션, 곽부성과 만남 및 중국 신곡 뮤직비디오 촬영
  • 2003년 2월 9일 L.A. 단독 미니 콘서트
  • 2003년 3월 19일 ~ 22일 태국 파타야 뮤직 페스티벌 한국 대표로 출전
  • 2003년 4월 일본 도쿄 시부야 라이브 홀 미니 콘서트
  • 2003년 4월 3일 6집 앨범 전세계 7개국 동시 발매
  • 2003년 5월 20일 'I'm Still Loving You'로 외국인 가수 최초 중국 인민 라디오 차트 1위
  • 2003년 5월 23일 태국 '채널 V' 차트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돈나 등을 제치고 4위 랭크
  • 2003년 7월 26일 몽골 정부 초청 대규모 콘서트 및 감사패 수여
  • 2003년 10월 6일 평양 남북 합동 축하공연 남한 대표 출전
  • 2003년 11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아시아 가요제' 출연
  • 2003년 11월 30일 기네스 북 '국내 엔터테이너로 가장 먼 해외원정기록' 부문에 도전
  • 2004년 3월 대한항공 주최 태국 방콕 팬미팅
  • 2004년 4월 23일 태국의 명문 골프클럽인 방콕CC에 '베이비복스 홀' 등장
  • 2004년 5월 28일 베이비복스 대한항공 홍보대사 임명
  • 2004년 7월 한국전쟁 태국 참전용사 프렌드 쉽 콘서트
  • 2004년 8월 일본 진출 공식 발표
  • 2004년 11월 6일 제1회 중국-동맹 박람회의 폐막식 공연 한국 대표 출전
  • 2004년 12월 18일 중국 베이징올림픽체육관 베이비복스-비 조인트 콘서트

4. 음반 목록




4.1. 노래방 수록 목록




5. 광고 모델 경력


  • 1999년 앞서가는 패션신도시 '르네시떼'
  • 1999년 햄버거 '하디스'
  • 2000년 롯데 아이스크림 '와'
  • 2000년 거짓말 탐지기 '트러스터'
  • 2000년 LG Logix
  • 2000년 인터넷 쇼핑몰 (한국 쇼핑 관광대사)
  • 2002년 유닉스 이온 헤어드라이기 (1년, 2억)
  • 2002년 그리에이트 셀렉티브 염모제 전속 모델 (1년)
  • 2002년 엘지 텔레콤 (윤은혜 & 은지원) (2억)
  • 2002년 점프밀라노 (6개월 단발 1억)
  • 2002년 적십자 헌혈 홍보
  • 2002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 광고
  • 2002년 에드원 청바지 (6개월 단발 1억)
  • 2003년 Plus Minus (심은진 단독)
  • 2003년 산도물산 A.S.A.P (계약금 2억)
  • 2003년 파이온텍 (3년, 2억 5천만원)
  • 2004년 디카 따우니 (Ddouni) 지면
  • 2004년 FOX ZONE
  • 2004년 안산 스타맥스 타워

5.1. 국외 CF


  • 2000년 중국 기업 北京背背佳科技發展有限公司
  • 2000년 중국 스포츠웨어 업체 뻬뻬지아 CF
  • 2000년 중국 국영기업체 CF
  • 2002년 간미연 과일나라 중국 지면 모델 (1년, 2억 5천만원)
  • 2003년 중국 핸드폰 INNO 90 CF
  • 2003년 김이지 중국 SAMSUNG V4 Camera CF (3억 5천만원)

6. 팬덤


팬클럽 명칭은 베이비 엔젤스 (Baby Angels)이다. 1기는 1998년 창설되었으며, 첫 창단식은 2000년 1월 5일 잠실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다. 기수는 2004년 6기까지. 걸그룹 자체가 팬덤 규모가 약한 게 특성이었지만 당시 S.E.S.의 팬클럽 <친구>나 핑클의 <FINKY> 팬클럽을 이어 가장 규모 있는 걸그룹 팬덤이었다. 애초에 90년대 걸그룹 중 고유 풍선 색깔이 있는 그룹부터가 이 셋 뿐. 첫 창단식에서는 1000여명의 팬들이 모였었고, 가수들이 함께 모여서 공연하는 드림 콘서트에서도 기본적으로 2~300명씩은 모여 베이비복스를 응원했었다. 5집에는 베이비 엔젤스를 위해 윤은혜가 작사한 'To. Angel'이라는 곡도 있다. 팬송은 특별히 없었으나 대부분 'Missing You'나 '내 사랑이기를'이 팬송 역할을 했다.
베이비 엔젤스 응원 도구 펄핑크 풍선[11]
베이비 엔젤스와 베이비복스가 함께 꾸민 행사는 2000년 팬클럽 1-2기 창단식을 시작으로 2002년 3-4기 창단식, 2003년 8월 여름캠프, 2004년 1월 스키캠프 등이 있다. 멤버들의 생일이 1월~2월에 몰려있어 생일파티와 창단식 팬미팅을 한 번에 하는 경우가 있었다. 베이비복스의 음반은 3~4월달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서, 신곡 공개를 팬미팅 자리에서 하기도 했다.[12] 응원 도구는 풍선이며 프론트 색상은 펄핑크. 해당 색깔은 2004년 베이비복스가 활동을 중단한 뒤 2005년 데뷔한 천상지희 The Grace의 팬덤 샤플리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사용했고, 베이비복스의 2기인 베이비복스 리브도 풍선 색깔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사용했다. 하지만 원조 베이비복스 팬덤은 전혀 찬성하지 않은 부분. 심은진과 간미연이 솔로 음반 활동을 할 때도 펄핑크 색상을 그대로 유지했다.
공식 팬카페는 다음에서 운영되던 <예쁜이 베이비복스를 아세요?>였는데, 2006년경 운영자가 회원을 정리한답시고 그 해에 접속 안한 회원들을 모두 탈퇴시키고, 카페 가입에 나이 제한을 걸어두어 이에 불만을 표하는 회원들을 모조리 탈퇴시켰다. 결국 베이비복스의 대표 팬카페로 운영되오던 이곳은 수만 명에 이르던 회원수가 한순간에 3천명으로 줄어들었고, 카페 자체가 한마디로 망해버렸다(...) 결국 현재는 비공개 카페로 전환되어 과거 가입해둔 팬들만 카페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후 임시 카페가 운영되었지만 원조 팬카페 규모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현재 베이비 엔젤스가 집결해 있는 곳은 2013년 개설된 팬사이트 와 DC 베이비복스 마이너 갤러리 정도.

7. 인기 / 평가


1세대 걸그룹 중에서 S.E.S.핑클하고 유일하게 대적가능한 팬덤과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13] <야야야>, <Change>, <Get Up>, <Killer>, <Missing You>, <Why>, <배신>,<Game Over>, <인형>, <우연>, <Go>, <나 어떡해>, <바램> 등이 있다.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으로 비교하면, 원더걸스소녀시대의 양강 구도 사이에서 전성기를 누린 카라[14]2NE1[15], miss A, f(x)[16] 정도의 위치였으며 한류 프리미엄을 붙이자면 티아라 최전성기, 그리고 최정상 걸그룹들의 하향세 이후 국내에서 전성기를 확고하게 한 점은 씨스타 때와 비슷한 위치로 볼 수 있다. 2010년대 중반~2010년대 후반으로 비교하면 SM의 레드벨벳이나 YG의 BLACKPINK정도에 있다. 국내에서의 입지는 레드벨벳이랑 비슷하고, 해외 활동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점은 BLACKPINK와 비슷하다. 일각에서는 Apink, 걸스데이, 여자친구[17]의 인기와 영향력을 베이비복스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국내나 해외에서의 영향력 모두 비교했을 때 베이비복스는 저 세 그룹보다도 높은 단계의 인기를 자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초·중·고 여학생들의 야영, 수련회수학여행 장기자랑 시간에는 베이비복스의 노래는 매우 흥했다.[18]
베이비복스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샤크라디바 등과 비교해도 격차가 현격했다. 팬덤이나 대중성, 음반 판매량 역시 S.E.S.핑클 다음으로 3순위였다. 이처럼,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라이벌이 없는 걸그룹계의 독보적인 3인자의 위치였다. 물론, 그 이후로 몇 팀이 한꺼번에 1위를 다투는 춘추전국시대 같은 혼돈양상은 있었지만, 베이비복스처럼 독보적인 3인자 이미지의 걸그룹은 현재까지도 전혀 없다.# 사실 말이 3인자지, 그 시절 핑클과 S.E.S.가 거의 비등대등한 인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2인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총 음반 판매량이 100만장을 넘는 몇 안되는 걸그룹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역대 걸그룹 총합 판매량 5위를 기록.
1위는 TWICE, 2위는 S.E.S., 3위는 소녀시대, 4위는 핑클이다. 베이비복스가 소속되어있던 기획사의 거지같은 역량과 규모를 감안하면,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둔 셈이다.[19] 사실상 연말 가요 시상식 대상 수상만 못했을 뿐이지 여러 대내외적인 상황을 보면 굉장히 놀라운 성과라고 볼 수 있다.[20]
1999년부터는 중국 시장에 진출했는데, 현지에서 크게 성공해 원조 한류 걸그룹으로 불리게 된다. 중화권 인기를 발판으로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사랑받았었는데, 태국에 진출한 1호 가수 역시 베이비복스였다. 이 외에 일본, 베트남, 대만, 홍콩 등에 진출해서 한류의 불모지였던 2000년에 유일하게 아시아 전역에서 콘서트를 하고 공연을 하는 가수가 되었다.
특히 2003년 외국인 가수로는 최초로 중국의 인민 라디오 방송인 '음악지성 중국유행가요배행방'에서 현지 가수들과 겨루어 중국어로 부른 신곡 'I'm Still Loving You'로 전체 차트 1위에 등극했고, 같은 해 몽골 대통령에게 초청받아 국빈 대접을 받으며 공연한 바 있다. 2014년 KBS 2TV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서 걸그룹 달샤벳의 멤버 수빈이 밝힌 일화로, 동남아 지역이나 중국 쪽에 공연을 하러 가면 "베이비복스를 아느냐?"라고 질문 받는다고 말했고, 아직까지도 꽤 해외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이비복스의 기획사에서 배출된 라니아베이비복스 리브(2기) 역시 아시아 지역에선 베이비복스의 활동 덕택에 나름 수월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또 베이비복스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안티 세력이었다. 인기도 물론 많았지만, 1999년 당시 10대들의 우상으로 불리던 H.O.T.문희준과 간미연의 열애설로 곤욕을 치루며 안티팬도 팬 수만큼이나 많게 되는 현상을 보였다. 당시 안티들이 했던 행동들은 아직까지도 길이길이 레전드로 남아있는데, 대표적으로 99년 간미연 살해협박 사건이 있다. 당시 안티들의 기행 모음.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이 정도로 욕을 먹었던 연예인도 사실상 간미연이 유일무이할 듯.[21]
H.O.T.가 은퇴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직접적인 오프 공격 세력은 많이 잦아들었지만, 이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했다. 단지 스캔들 뿐만 아니라 소속사에서 과도하게 푸쉬했던 섹시 컨셉과 실력 논란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 두 점 모두 요즘 시점에서 보자면 크게 문제 될 부분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1990년대 후반 립싱크를 자주 하긴 했지만 라이브 무대에서는 AR 없는 쌩라이브를 선보였고, 라이브 체제로 바뀐 2002년 '우연' 시절엔 안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였고 여러 사이트에서 다시금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이 시절 베이비복스의 섹시컨셉은 솔직히 요즘 기준으로는 귀엽기까지 느껴진다(...)
동시대 활동했던 핑클이나 S.E.S.를 보자면 , 두 그룹은 가창력 담당 각각 1명과 그 외 비주얼 담당이 따로 구성되어 있었다. 베이비복스의 경우 메인보컬 2명(이희진, 간미연), 서브보컬 2명(심은진, 윤은혜), 랩 1명(김이지)으로 안정적으로 구성된 포지션으로 현 시대 걸그룹의 시초이며 전 멤버가 비주얼 멤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히 20-30대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룹이었다.[22] 김이지의 경우 요즘 여자 아이돌 그룹 래퍼 포지션의 시초였다. S.E.S.핑클도 이벤트성으로 아주 잠깐 랩은 했었지만, 랩을 실제로 배우고 담당하던 김이지의 랩과는 비교 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중국이나 태국 등 해외에 진출해서 대박친 것도 현 아이돌의 해외 진출의 밑거름이 되었다. 베이비복스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지는 의의. S.E.S.와 핑클이 국내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로 걸그룹 시장을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했다면, 베이비복스는 걸그룹 시장의 새로운 길 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불려온다.
베이비복스가 다른 걸그룹과 달리 컨셉적으로 달랐던 것은 더 파워풀하고 시원시원한 안무를 했었다. 걸그룹에서 최초로 센 컨셉을 내세웠던 탓인지, 디바와 같이 가끔 쎈 캐릭터로 분류는 되지만(앨범 컨셉과 실제 센거에는 차이가 있다)앨범 컨셉상에서 걸크러쉬는 베이비복스가 유일하다. 베이비복스는 데뷔때부터 유독 독자노선을 선호했다. 1집에서 여성 인권과 관련한 갱스터힙합을 시작으로 주로 걸크러시를 바탕으로 다양한 느낌을 추구해 왔다. 유일한 청순, 귀여운 컨셉은 2집 야야야, Change가 유일한데 살랑살랑 춤출거 같은 곡에서도 조차 락킹, 각기, 전갈춤등 남자 아이돌이 할만한 댄스 브레이크를 선보여 같은 시기 동기들과의 차별성을 두어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2집의 ‘차별성’의 성공은 소속사의 프로모션 방향 유턴의 큰 동기부여가 된다. 결국 3집에서 베이비복스만의 ‘아이덴티티’라고 볼 수 있는 진정한 걸크러쉬 컨셉과 칼군무가 ‘Get Up’라는 타이틀곡으로 확립되었다.
현재 K-POP 걸그룹 모습을 보면 베이비복스와 가장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 베이비복스가 다시 재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아기자기한 율동 수준의 안무를 어필했던 당시 걸그룹과는 달리 곡마다 정확한 방향성과 컨셉을 잡아서 활동했던 게 베이비복스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다.

8. 사건사고




9. 수상 경력



9.1. 시상식


<rowcolor=#FFFFFF>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8년
12월 18일
제9회 서울가요대상
인기 가수상
Baby V.O.X II
12월 27일
SBS 가요대전
여자 신인상
1999년
12월 11일
KMTV 가요대전
본상
Come Come Come Baby
12월 14일
제10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2월 31일
MBC 10대 가수 가요제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
2000년

itv 한국최고인기연예대상
10대 가수 부문 본상

11월 9일
제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신세대중창가요부문 수상

12월 6일
제11회 서울가요대상
인기 가수상
Why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SBS 프로듀서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청소년 부문 올해의 가수상
2001년
12월 9일
(주) 모델라인 주최
가수부문 '베스트 드레서' 수상


itv 가요대상
청소년 부문 인기상
Boyish Story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청소년 부문 올해의 가수상

제1회 애견문화인의 상

2002년
12월 6일
제13회 서울가요대상
한류 공로상
Baby V.O.X Special Album
12월 13일
제17회 골든디스크상
인기 가수상
12월 28일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한류공로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본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청소년 부문 올해의 가수상

중국 라디오방송국협회가 뽑은 '최우수 한류가수상'

2003년
12월 10일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Devotion
12월 12일
제14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본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청소년 부문 올해의 가수상
2004년
12월 10일
제15회 서울가요대상
한류공로상
Ride West

태국 채널 V 어워드
아시아 센세이션상


9.2. 가요 프로그램 1위


총 6회 1위
<rowcolor=#FFFFFF> 날짜
방송명
곡명
비고
1999년
8월 3일
KBS 뮤직뱅크
Get Up
(1회)
MVP
10월 31일
SBS 인기가요
Killer
(1회)
1위
2002년
6월 9일
SBS 인기가요
우연
(3회)
1위
6월 16일
1위
(2주 연속)

6월
KMTV 쇼! 뮤직탱크
1위[23]
2003년
6월 1일
SBS 인기가요
나 어떡해
(1회)
뮤티즌송

10. 여담


  • 원래 팀명은 '베이비복스'가 아니라 '복스'였다. 그래서 1집 초창기 때는 '베이비복스'가 아닌 'V.O.X'로 소개된적이 종종 있었다. 1집 프로모션용 LP를 봐도 팀명이 'V.O.X'로 기재되어 있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베이비'는 1집에서만 쓰는 서브 타이틀이라고 소개했고 '귀엽다, 상큼하다'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2집 이후에 '베이비'를 떼고 새로운 서브 타이틀을 붙이고 '○○복스'로 컴백할 예정이라는 카더라도 있었다. 하지만 팀명에 대한 계획은 자연스럽게 사라진 듯.
  • 당시 동료지간이었던 디바와 사이가 실제로 안 좋았다(...) 데뷔 초에는 그럭저럭 별 문제 없이 동료로 지냈던 것으로 보이는데, 99년 디바의 채리나가 탈퇴하고 나서 몇 번 충돌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2002년 KMTV 시상식에서 두 그룹간의 합동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디바의 지니가 베이비복스와 방송을 하고 싶지 않다며 호텔로 잠적하는 일이 벌어져 기사로도 보도됐었다. 이들은 2011년에 되어서야 강심장에서 만났는데, 알고 보니 모 방송 녹화 중 간미연이 디바를 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가 인사를 대충 하는 걸로 오해했고, 비키가 간미연에게 한 소리를 하면서 이후 두 그룹간의 사이가 냉랭해졌던 것이라고. 이 방송에서 비키는 "왜 선배가 리허설하는데 졸아?"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베이비복스가 디바보다 2개월 먼저 데뷔한 선배였다는 것이 알려져 모두 멘붕했다. 사실 두 그룹 모두 멤버 교체가 있던 그룹이라 족보가 꼬이는 상황이기도 하고, 데뷔 1-2개월 차이에 선후배를 따지는 것도 애매한 상황이긴 하다. 정황을 볼 때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모 케이블 방송에서 직접적으로 경고까지 했던 디바 쪽이 조금 예민했던 게 아닐지. 어쨌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이들은 쿨하게 화해했다(?)[24]
  • 베이비복스는 동생 멤버들이 언니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데뷔 당시 소속사 사장이 여성 그룹끼리는 충돌이 많을 거라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멤버들에게 직접 지시한 사항인데, 이것 때문에 '군대식이다', '언니들이 동생들의 군기를 잡는다'라는 소문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멤버들은 존칭을 쓰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 하도 사람들이 군대식이니 어쩌니 말이 많아서 말을 놓을까도 시도해봤는데, 너무 오랫동안 존칭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어색해져서 포기했다고 한다.[25] 그리고, 1집 때부터 함께 해온 김이지와 이희진은 초창기 때부터 무명 시절부터 고생도 같이 해오고 남다른 사이라 방송에서는 이희진이 김이지한테 존칭을 사용하지만 사석에서는 말을 튼 것으로 보인다.
  • 멤버 전원이 예능감이 그닥이다(...) 물론 이희진이 희자 캐릭터로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으나, 정작 본인은 방송 울렁증이 있어서 예능은 주로 심은진, 간미연이 출연했다. 하지만 딱히 재미는(...) 후에 윤은혜가 X맨을 계기로 예능과 연기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만 그건 해체 후였다.
  • 베이비복스의 준말로 사용되는 '베복'은 팬덤 내에서 금지어다. 사실 그냥 줄임말인데 왜 금지어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당장 다음 사이트에서 과거 '베복' 키워드로 검색할 경우 심각한 안티성 글이 90% 이상이었다. 워낙 안티 세력이 많았던 그룹이라 잠깐 검색해봐도 왜 금지어로 지정한 것인지 알 정도. 그래서 멤버 본인들도 '베복'이라고 줄여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과거 방송에서 모 출연자가 '베복'이라고 불렀을 때 안티용 용어라고 정정해준 적도 있었다. 요즘 들어서는 팬덤 내에서도 '베복' 용어에 대해 그닥 개의치 않지만, 여전히 '베복'보다는 차라리 '복스'라고 줄여 부르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팝 계의 비슷한 경우로는 머라이어 캐리 팬들이 '멀캐'로 줄여 부르는 걸 싫어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10.1. 베이비복스의 계보


DR뮤직은 오로지 베이비복스 시리즈로만 가수들을 운영하고 있다.

10.2. 음원 사이트에서 베이비복스를 검색할 때 주의점


본 문서의 다른 문단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소속사 DR뮤직은 베이비복스의 후속 그룹인 '베이비복스 리브'를 데뷔시킨 후 2집에서 베이비복스 리브의 이름을 베이비복스로 바꾸었다. 그와 함께 음원 사이트에서 기존 베이비복스의 가수명을 '베이비복스 1기'로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2017년 현재까지도 베이비복스로 검색하면 베이비복스 리브의 음원이 나오고, 원조 베이비복스의 음반을 찾으려면 베이비복스 1기로 검색해야 한다. 가수명으로 검색할 때는 자동완성 기능이 있으므로 상관 없지만, 곡명으로 검색할 때는 혼동의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일부 방송에서 원조 베이비복스가 나올 때 베이비복스 리브의 리메이크 음원을 내보내는 사고가 있었다. 2019년 KBS 해피투게더에 10년만에 심은진이 출연했는데, BGM이 리메이크 음원으로 흘러 나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사례.
현재 멜론의 경우 원조 (1기) 베이비복스는 '베이비 복스'라고 표기 되어 있으며, 베이비복스 리브는 '베이비 복스 2기'로 나와 있다. 지니는 아직까지 베이비복스 1기로 표기 중이며 검색 결과가 상단에 나오지 않고 묻혀진다.

[1] 공식적으로 해체발표는 안했지만 활동기간은 2006년까지다. 멤버들도 해체 안했다고 언급했었다.[2] 심은진을 제외한 4명은 이미 2004년 10월에 계약이 종료된 상태였지만, 2005년까지 DR뮤직 측에서 매니지먼트를 했다.[3] 1998년 창설되었다. 기수는 6기까지.[4] 이 로고는 2002년에 열린 공모전에서 뽑힌 작품이다.[5] 왼쪽부터 윤은혜-심은진-이희진-김이지-간미연순이다.[6] 한국에서도 물론 매 앨범마다 히트곡과 꾸준한 인기를 누렸고, 총 5곡의 1위곡이 있다. 특히 10대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7] 국내에서는 (보이그룹: H.O.T.·젝스키스, 걸그룹: S.E.S.·핑클)에 이은 1군 그룹이었다는 점과, 더 나아가 한류의 중심이었다는 특이점이 있다.[8] 자세한 이유는 아래 소속사 비화 항목을 참고.[9] 이 중 간미연은 가수 활동과 병행하고 있지만, 최근 드라마 여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10] 2002년 첫 신설된 '한류 공로상' 부문의 첫 수상자가 베이비복스고,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2004년에도 베이비복스가 수상했다.[11] 비슷한 색상인 NRG 팬덤과의 구분을 위해 5.5집부터는 공식 로고가 담긴 풍선을 사용.[12] '우연'의 첫 무대 역시 팬미팅 현장에서 선보였다.[13] 단, 1집7집 활동곡들은 제외.[14] 인기 투톱 걸그룹의 양강구도 사이에서 전성기를 누린 점, 무엇보다도 해외(베이비복스는 중국, 태국, 카라는 일본) 활동으로 엄청난 인기를 몰았다는 점이 공통점이다.[15] 단 2NE1 같은 경우 데뷔 시기는 2009년으로 원더걸스나 소녀시대보다는 2년 늦은 후배 걸그룹이었고, 2009년 데뷔하자마자 2NE1이 전성기를 국내에서 구가한 시기는 원더걸스가 무리한 미국 진출로 국내에서 인기가 떨어진 시점이라 전성기가 서로 겹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9년부터 걸그룹의 패자로 등극한 소녀시대와는 전성기가 겹친 편이었다.[16] 이들 또한 사실 원더걸스와는 전성기가 서로 겹친 편이 아니어서 양강 구도 사이에서 전성기를 누린 그룹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17] 여담이지만 간미연은 베이비복스가 끝나고 쏘스뮤직에 잠시 몸을 담았었는데 그래서 여자친구 데뷔 때에 간미연의 응원영상이 있다.[18] 사실 베이비복스 곡들이 안무도 잘 구성되어 있고, 춤 대형도 가장 보기 좋다는 5인조 그룹이라서 유독 여학생들 장기자랑 시간에 인기가 많았었다. 심지어 간미연이 안티로 고생했던 시기에도 장기자랑 때는 서로 간미연 파트를 하겠다고 싸움판을 벌이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고 한다. [19] 중소기업 기적의 첫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90년대 후반, SM엔터테인먼트DSP미디어,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메이저 급 기획사들이 생겨나고 1세대 아이돌 판이 생겨나면서부터 베이비복스같은 경우처럼 영세한 작은 기획사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그룹을 만들어낸 경우가 거의 처음이다. 비슷한 경우로는 NRG가 있었으나 이들도 DR뮤직만큼 작은 규모는 아니었다.[20] 사실 아이돌 걸그룹이 가요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우가 굉장히 적은 편이다. 지금은 폐지된 지상파 3사 연말 가요 시상식과 현재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메이저 시상식들인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멜론 뮤직 어워드 모두 전부분을 합쳐서 대상을 수상한 아이돌 걸그룹 팀은 핑클, 쥬얼리, 원더걸스, 소녀시대, 2NE1, miss A, TWICE 이렇게 총 7팀 밖에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보이그룹 아이돌이나 솔로가수의 대상 수상 횟수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심지어는 1세대 걸그룹의 투 탑 중 한 팀이었던 S.E.S.와 롤리폴리라는 메가 히트곡으로 연간 1위를 차지한 티아라, 나 혼자와 Loving U라는 대히트곡 2연타 홈런을 날린 씨스타마저도 대상 수상을 하지 못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베이비복스의 가요 시상식 대상 수상 실패가 흠집으로 평가받는 일은 적다.[21] 물론,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면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불렀던 이지연이 있긴 하다.[22] 베이비복스의 리즈 시절인 3~5집 앨범 프로듀서를 김형석이 맡았으며, 이 때문에 김형석과 친분이 있는 김조한과 힙합 그룹 X-Teen 등이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보컬은 물론 랩 퀄리티도 좋았다.[23] 링크[24] 2003년 초 한 방송에서 베이비복스의 이름을 내걸고 복스 멤버들이 서빙을 하는 기부금 마련 자선행사(일일주점)를 열었는데 당시 참석한 많은 연예인 중에 채리나도 있었다.[25] 사실 군대식인 것도 말이 안 되는데, 군대에서는 원래 서열이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에게는 말을 놓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트집잡기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