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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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전
2009년 경기도 남부 팬들을 끌어안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6경기 정도를 수원구장에서 열겠다는 의지를 비쳤고, 수원시청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인 듯 하다. SK 측에서는 더불어 2군 구장이었던 숭의야구장[3] 이 사라졌기 때문에 수원구장을 제 2홈구장 겸 2군 구장으로 쓰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 같지만, 결론은 무산.[4] 이후 2군 경기는 연수구 송도 LNG구장에서 치루었고, 인천 앞바다 '''한가운데'''에 있어서 '두바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급하게 마련하다 보니 천연잔디란 점만 빼면 전광판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근처에 쓰레기 처리장이 위치해 있어 악취로 인해 경기가 취소된 적도 있는 등 구장 상태가 심히 안습하다. 이후 2015년 강화군 길상면에 2군 구장 겸 훈련장인 SK 퓨처스 파크를 건설하여 이전하였다.
하지만 이미 송도에 몇 개의 야구장을 더 짓고 있으며, 다 짓게 되면 야구 인프라는 서울 못지 않게 된다.
2. 정규 시즌
시즌 초반은 2007, 2008시즌과 비슷한 양상으로 1위를 수성하는 모습이었으나, 잇단 주전선수들의 부상으로 전력이 약화되면서 3위까지 떨어졌다. 특히 6월 24일 안타를 치고 귀루하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 전선을 이탈한 박경완과 8월 2일 두산 김현수의 직선타구를 맞아 손등이 골절된 김광현의 공백이 상당히 컸다. 그 결과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었던 기아에게 순위를 역전당하게 된다.
6월 25일 기아와 경기에서 12회초 득점에 실패하면서 무승부 or 패배 상황이 되자 타자 김광현, 1루 윤길현, 패전투수 최정이라는 사실상 팬서비스에 가까운 경기 포기의지를 보여주었다[5] 이후 고의패배 논란에 투수가 없었다[6] 고 변명했다. 이는 1년 이후 2011년부터 무승부 → 패배 공식을 일본식 승률계산법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12회말 연장 승리에[7][8] 사기가 더욱 올라간 기아는 7월에 3위 8월 1위로 올라가게 된다. 당시 SK 감독이었던 김성근에게 기자들이 '1위인 기아와의 게임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럼 지금부터[9][10] 전승하면 되겠네'라고 대답한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단순한 포부에 불과할 뿐이라며 웃어넘겼지만...
그 말이 무섭게 SK는 미친듯이 질주하기 시작하여 9월 23일 삼성 라이온즈를 이기고 한국 최다 신기록인 팀 '''17연승'''을 거두고,[11] 그 후에도 승수를 추가해서 아시아 연승 신기록인 '''19연승'''[12] 을 거둔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인 '''3년 연속 6할 승률'''로 시즌을 마감한 것은 덤이다. 중간에 무승부가 껴있어 많은 사람들이 까고 있지만 사실 미국과 일본의 최다 연승기록에도 무승부가 껴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이 무시무시한 연승기록을 본 팬들은 '''"지지 않는 야구"'''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이는 SK 왕조를 상징하는 표현이 된다. 때마침 절대적으로 보이던 기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SK가 3년연속 리그 1위에 도전했으나 '''고추가루포'''로 유명한 LG 트윈스에 딱 한 번 무승부를 당해서(?)[13] 결국 1위 역전에는 실패하고,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14]
19연승의 기쁨도 잠시,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제출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한 김광현과 박경완은 물론, 투수진의 주축이었던 송은범과 전병두까지 제외되어 있었다. 선발 원투펀치와 주전 포수, 전천후 마당쇠까지 빼고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게 된 마당이니 장기로 치면 한쪽의 차, 포, 마, 상을 몽땅 덜어내고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두산 베어스가 롯데 자이언츠를 1패 뒤 3연승으로 가볍게 털고 플레이오프로 올라오면서 양팀은 3년 연속 맞붙는 기연을 만들었다. 1, 2차전을 내주면서 벼랑 끝에 몰렸으나 기적같은 3연승으로 역스윕을 달성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15] 여러모로 10월 13일에 예정되어 있었던 경기가 비로 노 게임이 되면서 두산 베어스에게는 불운을, SK와이번스에는 여러모로 행운이 되었다. 특히 김현수가 잘 던지던 카도쿠라에게 솔로 홈런을 뽑아낸 직후라 그러하다. 그리고 두산은 3년 연속 SK에 막혀 패퇴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래저래 지못미...
그 3년 연속이라는게 (SK기준)
2007년 패패'''승승승'''승
2008년 패승'''승승승'''
2009년 패패'''승승'''승
이다. 이로인해 두산은 포스트시즌 특정팀 상대 홈(굵은 글씨) 8연패라는 기이한 대기록을 수립. 게다가 이후 두산이 그 특정팀을 포스트시즌에서 2018년 한국시리즈에야 만났으며 11월 4일 9연패로 이어가게 되었지만 11월 5일 9연패를 끊어냈다.
3. 포스트 시즌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기아에게 2연패-2연승-패-승으로 치열한 승부를 벌였지만 V3를 목전에 두고 마지막 7차전 9회말 5:5 동점 상황에서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아쉽게도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경기 종료 당시에 해설자들이 SK의 상황을 말했었는데 좀 안습(...) 김성근 감독이 해설자들한테 '이길수 없을것 같다'라고 자주 말했었나 보다(...) 그래놓고 언론에는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췄는데 아마도 선수들 사기 떨어질까봐 이렇게 말한듯 하다. 또한 3, 4차전을 이기고도 준우승을 차지하는 최초의 팀이 되었다. 이래저래 LG에서 3번 준우승하고 SK에서도 준우승한 손지환만 불쌍할 뿐.
4. 평가 및 기록
그래도 팀으로 보면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투혼 덕분에 악역이미지가 조금은 벗겨진 상태다. 그도 그럴것이 주전투수들이 줄줄이 부상(김광현, 전병두)입고 그나마 나온투수들도 피로 누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데다가(카도쿠라와 글로버를 제외한 '''투수진 전원'''!) 국가대표 포수(박경완)도 시즌 아웃인 마당에 플레이오프는 역스윕을 달성했고 한국시리즈도 충분한 휴식을 취한 기아의 우세를 점쳤지만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연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009시즌 같은 경우에는 다른 시즌과는 달리 무승부가 없던 경기 취급되는 게 아니라 진 경기 취급이 되었는데, 다른 시즌처럼 무승부가 없던 경기 취급되는 방식으로 계산을 해보면 이 시즌도 SK가 1위였을수도 있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참고로 2009 시즌 SK가 달성한 팀기록을 보자면..
- 팀 타격부문
- 타석(5379), 득점(732), 안타(1303), 홈런(166), 타점(693), 타율(0.285), 출루율(0.369), 장타율(0.453) - 1위
- 도루(181) - 2위
- 볼넷(552), 삼진(892), 타수(4574) - 3위
- 팀 홈런-도루 160-160 최초 달성.
- 팀 내 타자 10명이 두 자릿수 홈런 기록. 정근우가 9개에 그쳐서 주전 야수 전원 2자릿수 홈런이라는 대기록 달성은 아쉽게 실패했다.
- 팀 투수부문
- 이닝(1213), 탈삼진(1032), 평균자책(3.68), 9이닝 당 탈삼진률(7.66) - 1위
- 피안타(1141) 8위, 피홈런 6위(130), 실점(550) 8위, 자책점(496) 8위, 볼넷(519) 5위
- 투수 출장 횟수(556) - 5위
[1] 관중수 확인하는 곳: https://www.koreabaseball.com/History/Crowd/GraphTeam.aspx[2] 정규시즌 2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에 머무름.[3] 2006년까지는 SK 2군이 남구 용현동 인근의 SK 드림파크를 2군 구장으로 사용했지만 지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되었고 문학 야구장이 지어지기 전에 홈 구장으로 사용했던 도원야구장을 사용하였으나 이마저도 철거되고 말았다. [4] 사실 수원에서 홈 경기나 2군 경기를 치르려면 '인천SK'라는 구호를 희생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보면 된다. [5] 당시 SK는 12회말을 막아도 무승부인데 사실상 기록상 패배다. 당시 기아타이거즈 순위는 3위였다. 만약 상대가 두산이였다면 김성근이라면 무리하게라도 무승부로 만들었을 것이다.[6] 왜 개소리에 링크를 걸었냐면 타자 김광현은 그렇다 쳐도 불펜에 이승호, 전병두, 윤길현 등 내보낼 투수는 많은데 굳이 왜 최정을 내서 졌냐는 것이다.[7] 총력전 승부는 선수단에 큰 영향을 끼친다. 다음경기도 있고 연패중과 연승중의 덕아웃 분위기가 다른것처럼 1승이 2승처럼 크게 작용한다.[8] 패넌트 레이스가 끝나고 시즌후 아쉬운 경기로 뽑히는데 기아가 81승 48패 4무 SK가 80승 47패 6무였는데 이는 6월 25일 기아 타이거즈와 무승부를 했다면 기아는 80승48패 5무 SK는 80승 46패 7무가 되는데 이럴 경우 상대전적으로 1위가 결정되는데 7승 10패 2무로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이다.[9] 이 때 SK는 시즌 종료까지 20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10] 차후 김성근 감독이 밝힌 바로는 그냥 던져본 립서비스였다고 한다. 전승 드립은 팬들한테 먼저 나오긴 했었다. 근데 실제로 저렇게까지 연승을 이어나갈 줄은 본인도 몰랐다고 한다.[11] 이 경기로 삼성은 5위를 확정지으며 13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12] 마지막 경기까지 연승이 이어졌기 때문에, 2010 시즌 개막 후 3연승을 포함해서, 최종 연승 기록은 '''22연승'''이 되었다.[13] 2009 시즌의 승률 계산식은 (승수)/(전체경기수) 였기에, 무승부도 패배나 마찬가지였다.[14] 그래도 승률이 0.602이다. 참고로 단일시즌 2위 최고승률은 1992년 빙그레(우승팀인 롯데보다도 1할 가까이 높은 '''0.651'''). 그해 빙그레는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이었다. 정규시즌만 한정하면 2003년 KIA가 현대(0.611)에 2리차, 0.609로 2위를 기록했다.[15] 2연패 뒤 3연승으로 역스윕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경우는 96년 현대 유니콘스가 쌍방울 레이더스를 상대로 이루어 낸 것이 첫 사례이고 이번이 두번째다. 공교롭게도 96 현대와 09 SK는 모두 인천 연고팀이며, 96년 당시 쌍방울 감독은 김성근이었다. 이래저래 묘한 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