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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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배우, 환경운동가.'''우리가 지구에 산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맙시다. 저 또한 오늘 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4]
—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 주연상 수상 소감 中[5]
데뷔한 시점인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기간 뿐만 아니라 올타임으로 따지더라도 '''할리우드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가장 영향력 있고 위대한 연기파 배우들 중 한 명'''이다.[6]
디카프리오는 자주 언급되는 연기력이나 외모를 넘어서 할리우드라는 산업 시장 자체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사실상 할리우드 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의 연예계에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는 인물들 중 하나'''라고 보아도 될 정도. 20대 초반부터 완성형 미모와 연기력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만, 달콤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예술적 도전과 성취를 통해 숱한 명연기와 걸작들을 남겨왔다.
조지[9] 와 이멀린[11] 사이에서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즉 이탈리아풍의 이름과 다르게 '''독일계 미국인''' 쪽에 더 가까운 것.
2. 상세
4살 무렵부터 CF나 TV 드라마 단역 등에 출연하면서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남다른데 재혼한 아버지 조지의 아내 패기 패러의 아들인 의붓 형이[12] CF에 나오는 걸 보고 자극받은 것이 시발점이라고 한다. 그의 첫 CF는 우유 CF였다.
학창 시절 디카프리오는 학교를 싫어해 시간 때우기 식으로 간신히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오히려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는데 관심이 많은 문제아였다. 그러다가 1991년 코믹 호러물[13] 인 크리터스 3에 출연함으로써 영화계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이 데뷔작은 그의 경력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실 크리터스 1만 해도 흥행도 성공하고 평도 괜찮았지만 시리즈가 갈수록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고 3편과 이후 4편으로 시리즈를 끝마쳤다.
우습게도 잊혀지던 이 크리터스 3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름을 들먹이며 2차 매체 시장에서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디카프리오를 무명 배우에서 유명하게 하는 데 1992년 TV 시트콤《성장통》(Growing Pains)의 시즌 7 출연이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방영되지 않고 여기 출연진들이 월드 스타로 성잔하진 못해 한국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는데, 당시 상당한 인기를 누린 인기 시트콤이었고 디카프리오는 여기서 노숙자 소년 "루크"역할을 맡아 주인공 시버 집안에 얹혀 살게 되어 시즌 7 막판에 하차하기 전까지 준 레귤러 정도의 역할로 이름을 알렸다.[14]
이 후 영화 《이 소년의 삶》에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출연하여 그의 명성에 기 죽지 않고 반항적인 아들 '토비' 역을 멋지게 연기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 세계 비평협회의 최우수 조연상을 수상했고 시카고 영화 평론협회에서 가장 촉망받는 배우로 선정되었으며, LA영화 평론회에서의 신세대 부분에서 두 번이나 수상하였다.
1993년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조니 뎁의 지적장애인 동생 '어니 그레이프' 역을 연기하여 어려운 캐릭터를 잘 연기하였고 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1995년에는 《바스켓볼 다이어리》에 출연하여 방황하는 청소년을 연기하였고 《토탈 이클립스》에서는 랭보를 연기하였다. 이 영화에서의 외모가 디카프리오의 전성기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1996년에는 메릴 스트립과 《마빈의 방》이라는 영화에 충동적인 하이틴으로 출연하였고 이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새로운 스타일로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 디카프리오는 할리우드 핀업스타가 되었다.
1997년에는 세기의 명작 《타이타닉》의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사실 투자자들은 주연 배우로 매튜 맥커너히를 점찍었기 때문에 디카프리오 캐스팅에 반대했지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생각은 달랐고 그의 선택은 적중하여, 이제는 디카프리오의 대표작이 되었다.
《타이타닉》은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11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는 1950년 《이브의 모든 것》이 기록했던 최다 후보 기록과[15] 1959년 벤허, 2004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의 11개 부문 수상과 타이기록이다.[16]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1위 흥행 기록을 달성하였다. 제작비 약 2346억 원을 투자해 무려 약 2조 1642억 원을 벌었다.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되어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것처럼 보였다. 이전까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인상적인 연기를 보인 배우가 잘생긴 외모로 인기까지 거머쥐자 다른 아이돌 스타들이 그래왔듯이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디카프리오는 하이틴 스타에 머무르지 않았다.
2002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출연하였다. 1860년대 초 뉴욕의 격동기 시대를 다룬 영화이며 작품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윌리엄' 역을 맡은 대니얼 데이루이스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이 영화는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었다.
이 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출연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 6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남우 주연상-드라마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2004년에는 《에비에이터》에 출연하였다. 하워드 휴스의 전기 영화이며 휴스 역을 훌륭하게 연기하고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수상에 기대를 하였지만, '''인생을 연기했다'''고 평가 받았던 《레이》의 제이미 폭스가 오스카상을 수상하였다.
《에비에이터》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함께 77회 시상식의 최대 라이벌이었으나 주요 부문에서 모두 밀렸다. 다만 케이트 블란쳇이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스태프 부문에서 4관왕을 달성하였다.
2006년에는 스코세이지 감독의 차기작이었던 《디파티드》에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 있는 장면들을 연출하여 연출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출연하였다. 피의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액션 영화로 아프리카의 독재와 인간들의 욕심으로 고통받는 평민들의 아픔을 잘 표현해냈다. 이 영화는 흥행과 작품성 면에서 인정받았고 의미 있는 결말을 만들기도 하였다. 디카프리오는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라스트 킹》에 출연했던 포레스트 휘태커에게 밀리며 수상에 실패하였다.
2008년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에 출연하였고 샘 멘데스 감독이 연출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도 출연하였다.
2010년 셔터 아일랜드으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보다 더 관심을 받은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미 주연 배우로 디카프리오를 낙점하고 있었다고 한다.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 마리옹 코티야르, 조셉 고든레빗, 와타나베 켄, 엘리엇 페이지 등 화려한 출연진들의 연기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수준 높은 영화의 완성도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태프 부문 4관왕을 이루었다.
2012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 악역으로 출연하였다.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같이 출연했던 크리스토프 발츠가 남우 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수상하게 된다.
2013년에는 고전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캐리 멀리건과 출연하였다. 이후 디카프리오의 역대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받았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출연하였다. 정말 소름 돋는 연기를 선보이면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 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식약청의 횡포에 맞서는 에이즈 환자 연기를 잘 연기 한 매튜 맥커너히에 밀리며 이번에도 수상에 실패하게 된다. 참고로 매튜 맥커너히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도 카메오 출연해 초짜인 디카프리오에게 본인의 성공의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마침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88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디카프리오는 과거 최고의 하이틴 스타에서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들리 스콧, 스티븐 스필버그, 샘 멘데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막강한 할리우드 감독들과 작업하면서 진정한 성인 연기자이자 동시대 최고의 배우로 거듭나게 되었다. 온갖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연기하였으며 오랜 기간 예술 영화에 헌신하고 있다. 또한 디카프리오는 '감정적으로 병든 인물을 표현하는 일은 나에게 진정으로 연기할 기회를 준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티켓 파워를 인정받는 탑배우 중 한명이기도 하다.''' <레버넌트>의 경우 드라마 장르의 특성상 개봉 초기 흥행성에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 또한 흥행 시키면서 티켓 파워를 다시 한번 입증하며 흥행성과 작품성 등을 장악하는 할리우드 1순위 배우 중 한명으로서 다시 한번 입증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하고 난 후로는 환경운동가로써 활동을 하다가 2018년에 이전에 같이 작업을 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신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캐스팅됐으며 2019년 개봉되었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3. 외모
3.1.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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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할리우드 꽃미남의 아이콘'''이었으며 특히 토탈 이클립스-로미오+줄리엣-타이타닉으로 이어지는 전성기 때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꽃미남'''으로 여겨졌었다.[17]
1990년대 당시 매우 동안이었는데, 데뷔작이었던 크리터스3에서 그는 기껏해야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당시 그는 이미 고등학생이었다. 역시 초등학생처럼 보였던 이 소년의 삶 당시[18] 에도 그는 10대의 거의 막바지에 이른 나이였다.[19] 이런 모습은 1990년대 내내 유지돼서 그의 1990년대 필모를 보면 10대 청소년 배역이 아주 많다. 그런데 이 소년의 삶 이후 변성기도 오고 얼굴도 아주 조금씩 성숙해져서 타이타닉 시절에는 턱도 조금씩 갈라지고 하는 걸 보면 그냥 남들보다 느리게 성장하는 체질인 듯.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렇게 어려보이고 소년적인 얼굴과는 다르게 그의 키는 180cm가 넘는다. 나이들어서도 할리우드의 동안 본좌급에 끼지는 않지만 나이치고는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출연했을 당시 이미 33세였다...[20]
사실 10대 후반 디카프리오는 단순히 동안이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성장 자체가 느렸다. 디카프리오는 92년에 찍은 작품들까지 변성기가 오지 않았다가 93년에 촬영한 길버트 그레이프에서야 변성기를 겪는 소년들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그는 만 '''18세''', 세는 나이론 20세였다. 대학교 신입생 나이 때 변성기를 겪은 것. 위에 언급된 시트콤 "성장통"에 출연할 당시 그의 모습을 보면 동갑내기 친구였던 출연한 제레미 밀보다 훨씬 작고 어려보이는데, 실제 밀러는 디카프리오보다 오히려 2살 동생이었다. 저 장면을 찍을 당시 밀러는 고1 나이, 디카프리오는 고3 나이였는데 일반적으로는 저 나이엔 밀러처럼 변성기가 완전히 지나고 성장도 거의 끝나는게 정상이지만 디카프리오는 목소리 뿐 아니라 키도 작았다.[21] 즉, 만 18~19세(대학교신입생) 전후에 변성기가 오고 '''성장기'''가 와서 키도 10cm는 족히 컸다는 소리. 성장이 빠른 서양인들 말고 동양인들 중에서도 저때 성장기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일반적인 남자들에 비해 성장이 최소 몇년은 느린 셈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1990년대 디카프리오는 어려보이는 외모와 달리 상당한 장신이었다. 특히나 1995년 즈음 엄청난 외모와 쭉쭉 뻗은 키는 여자들을 홀리기에 충분한 수준...을 넘어 역사에 길이 남을 수준의 전설이라 평받았었다.
3.2. 200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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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이미지였던 20대와는 달리,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인상이 마초적으로 변하고 있다.[23] 요약하자면 젊은 시절은 '''탈인간급 미소년'''이었고 나이가 좀 들었을 땐[24] '''마초같은 사나이''' 이미지였다. 물론 2020년 현재는 나이 40대 중반을 넘겨서 그런지 아저씨의 느낌이 물씬 난다.
사실 위에 언급됐다시피 성장과정 자체가 일반적인 남자들보다 느렸다는 걸 생각하면 외모가 역변했다기보단 그냥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몇 살 늦은 것일 수도 있다. 그냥 실제 나이에서 4~5살을 빼면 원래 그 나이대 서양인 외모로 자연스럽게 보인다. 예를 들어 20대 초반인 타이타닉 당시가 10대 후반이라고 생각하고, 20대 중후반인 캐치미이프유캔이 20대 초반, 30대 후반인 위대한 개츠비가 30대 중반, 40대 중반인 원스어폰어타임인 헐리웃인이 40대 초반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늙고 있다. 동안으로 유명한 폴 러드, 키아누 리브스, 자레드 레토 등이 젊은 시절의 외모가 거의 안 변하는 것과 다르게 시작 시점이 늦었을 뿐 노화 과정 자체는 자연스럽게 밟고 있다고 보면 된다.
또한 덩치도 서서히 커지며 지금은 엄청난 떡대를 자랑하게 되었다. 당장 레볼루셔너리 로드 때부터 얼굴은 수염을 깎고 1990년대 시절의 모습과 얼추 비슷해졌으나 일반인보다 덩치가 훨씬 커졌으며, 현재 그의 체형인 183cm, 95kg은 야구선수 이승엽과 동급이다. 그리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출연한 브래드 피트보다 훨씬 체격이 컸다.[25]
너무 인상쓰는 연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눈 사이에 주름이 깊게 생겨버렸다. 이마 주름까지 깊고 굵게 생겼는데 이는 최근 작품인 《레버넌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디카프리오의 얼굴 크기 변천사''' 현재 외모를 보면 알겠지만 얼굴이 동글동글한 모양새에 넙데데한 편이다. 절대적인 크기가 큰 편은 아니라고 쳐도, 젊은 시절에 비해 확실히 얼굴 윤곽이 넓게 벌어졌다.[26]
《위대한 개츠비》에서 관객들에게 개츠비가 늙었다는 소리가 마구 들려오는 것을 보면, 세월은 속일 수 없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의 제이 개츠비는 기껏해야 30대 초반의 청년인지라. 사진 속 모습도 실제 영상보다는 좀 젊게 나온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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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 관계
토비 맥과이어와 죽마고우이다. 둘 다 아역배우였던 10대 초반에 디카프리오가 맥과이어에게 다가가면서 친구가 됐으며 이후 30년 가깝게 친구로 지내고 있다. 디카프리오는 맥과이어의 딸 루비의 대부이기도 하다. 참고로 디카프리오가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을 때 소속사에서는 맥과이어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지만 그가 단호히 거절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그 후 본인에게 온 스파이더맨 역을 거절하고 스파이더맨에 맥과이어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맥과이어하고는 수년 만에 영화를 같이 찍었는데 그 영화가 《위대한 개츠비》.
맥과이어 말고도 절친이라 하면 루커스 하스[27] 가 있다. 디카프리오의 파파라치 사진엔 늘 하스가 보일 정도다.
《타이타닉》으로 만난 케이트 윈슬렛과도 아주 절친한 사이다. 촬영 당시 아주 친하게 지내다가 이후 레오가 우울한 시기를 보내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몇 년 뒤에 윈슬렛이 레오의 생일을 기억하고 "네가 그립다"라는 카드와 선물을 보내온 것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아 지금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윈슬렛이 '남편보다 더 남편같은 사람.'이라 언급할만큼 소울메이트로 2012년에 윈슬렛에게 장난스러운 디스를 당하며 화제가 되었다. 일요서울 기사 여담으로 윈슬렛은 샘 멘데스 감독과 이혼 후 네드 로큰롤이라는 남자와 재혼했는데, 결혼식장 입장 때 레오가 에스코트를 서주며 제대로 절친인증을 했다.[28]
2016년 마침내 디카프리오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타자 윈슬렛이 감격해하는 표정을 짓고, 시상식 후에도 서로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밖에도 올랜도 블룸, 브래들리 쿠퍼와 친분이 있다. 디카프리오가 참여하거나 주최하는 환경 관련 행사, 파티에 블룸도 종종 같이 참석한다고. 쿠퍼는 데뷔 전에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했는데 이때 자신이 일하던 호텔을 디카프리오가 이용하면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고 한다. 쿠퍼는 데뷔한 후에도 그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4년 여름에는 같이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늘상 오만한 바람둥이로 그려지곤 하는 가십지들과는 달리 주변인들의 평가는 활달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평이며, 그렇게 많이 주목되진 않지만 할리우드에서 인맥과 신망이 두텁다. 하지만 절친에게조차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선을 긋는 게 명확하다고.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주변사람을 카메오로 등장시키곤 하는데 영화를 잘 보면 짤막하게 스쳐지나가는 디카프리오의 어머니를 볼 수 있다. 어머니와의 정이 아주 돈독한데, 최근에도 어머니같은 분을 부모님으로 둬서 다행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J. 에드가》를 찍으면서 아들을 자기가 조종하려고 하지 않는 부모를 둔 게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이 모자 사이는 정말 각별해서 신인배우 시절에는 레드카펫에 어머니와 함께 등장한 적도 많으며 해외 홍보 투어시에도 어머니를 동반한다. 2013년 내한 때도 어머니와 함께 왔었다. 또 자신의 어머니만큼이나 외할머니도 굉장히 아낀다.#신인시절 어머니와 함께 레드카펫 사진 #최근 어머니와 함께 참석한 행사 사진
이혼했지만 아버지와 관계도 친밀하게 맺어오고 있으며, 2008년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을 위한 재단(NIAF)의 특별상 수상 때 아버지와 함께 공식적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4.1. 연애
디카프리오의 여성 취향은 금발의 키가 큰 25세 미만의 어린 여성으로 한결같이 확고하다. 수십년동안 많은 여성들과 사귀었음에도 불구하고[29] 늘 비슷한 스타일의 여성들과 연애를 하고 있다. 덕분에 이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과 열애설이 뜰 경우 볼 것도 없이 걸러도 될 정도. 1~2번을 제외하면 한 여성과의 연애 기간이 1~2년 내외로 길지 않은 것도 특징이며 사귀는 여성의 나이는 '''25세를 넘기지 않는다.''' 또한 데이트 코스조차도 늘 고정적인데, 대여한 자전거를 타며 딱히 숨기지도 않고 뉴욕에서 길거리 데이트를 하기 때문에 파파라치에게 어렵지 않게 찍히곤 한다. 금발 여성이 디카프리오와 함께 자전거를 탄 사진이 찍혔다면 연애 중이라는 증명이다.
처음으로 모델인 여자친구를 데리고 등장 한 것은 1996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레드 카펫. 당시 데리고 왔던 여자친구는 모델 크리스틴 장으로,[30] 그 외에 바비 브라운, 브리짓 홀, 브리트니 대니엘, 에바 헤르지고바와도 교제했다.
이후 2000년 4월부터 브라질 출신의 모델 지젤 번천과 사귀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와 최고의 모델의 만남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꽤 오래 교제하여 결혼까지 예측하였으나 25살이 넘기전인 2005년 말에 결별했다.
지젤 번천과 결별한 직후에는 이스라엘 출신의 모델 바르 라파엘리와 2005년 말부터 2011년 5월까지 중간에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과정으로 장기 연애를 했다.
역시 금발에 늘씬한 체형의 여성 배우 블레이크 라이블리하고도 2011년 5월부터 10월까지 5개월 정도 잠시 사귀었었다.
2011년 12월부터는 '''15살 연하'''인 89년생 빅토리아 시크릿의 엔젤 에린 헤더턴[31] 과 사귀었지만 10개월만인 2012년 10월에 헤어졌다. 에린 헤더턴과 결별한 후로 마르가리타 고셰, 마고 로비, 헤더 한, 매덜리나 기니어 등과 스캔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90년대 이후 출생한 어린 여성만 노골적으로 밝히기 시작한다.'''
2013년 5월부터 독일 출신의 모델로 역시 빅토리아 시크릿의 엔젤인 토니 가른과 교제하고 있다. 참고로 토니 가른은 1992년생으로 1974년생인 디카프리오보다 '''18살 연하'''이다.
그 후 토니 가른과 결별하고 16살 연하의 90년생 켈리 로르바흐라는 모델과 만나고 있었으나 2015년 12월에 헤어졌다.
2016년에는 92년생 모델 니나 아그달과 사귀었으나 1년 뒤인 2017년 5월 18일 결별하였다.
2018년에는 모델 카밀라 모로네와 데이트를 하는 게 알려졌다. 카밀라의 원래 머리색은 금발이지만 갈색으로 염색했으며 디카프리오와의 교제 중에도 계속 갈색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카밀라는 1997년생으로, 디카프리오보다 무려 '''23살 연하'''이며, 무려 타이타닉이 개봉하던 해에 태어났다. 심지어 카밀라의 엄마가 디카프리오보다 2살 어리다(...). 지젤 번천 이후 처음으로 레오가 오스카에 동반한 여자친구이며, 2020년 7월 현재까지도 교제하고 있다.
이제 01년생과 02년생도 성인이 되었으니 새 여자친구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디카프리오와 오랜 친구인 케이트 윈슬렛[32] 의 첫딸 미아가 00년생이다.
사귀는 여성의 외모 외에 나이대도 비슷하다는 것이 알려지며 레딧에서 이런 정리짤까지 만들어졌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디카프리오의 나이 곡선은 갈수록 올라가 이젠 '''나이 50'''을 바라보는데, 상대 여성들의 나이 곡선은 10년동안 '''절대 25살'''을 넘기지 않고[33] 제자리다(...). 헐리우드에서도 유명한 얘기라서 2020년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호스트로 나선 리키 저베이스에 의해 신랄한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
5. 다른 모습들
자신이 직접 영화사 '애피언웨이(Appian Way)'[34] 를 설립하여 《에비에이터》에서는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여러 영화에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며, 영화 감독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라,[35] 일본 입국 할 때마다 초합금 시리즈를 싹쓸이해가는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쟈포네스크 기질도 때때로 보인다고 한다. 또한 스시도 좋아해서 성게알을 한 번에 1,000달러씩 사 먹기도 한다고.[36]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랬듯이 디카프리오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1995년부터 일본의 여러 광고에 출연했는데,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37]
기모노 입거나 검도를 하는 등, 그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잭 니콜슨 표정 개인기가 있다. 실제로 나이 먹을수록 생김새도 잭 니콜슨을 닮아가고 있으며 잭 니콜슨을 자신의 연기 롤 모델로 삼는 듯하다.[38] 참고로 이건 일본 예능에서 보여준 개인기인데, 미국에선 이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진지한 배우 부분이나 환경운동가 면만 부각되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컬처쇼크 수준의 충격을 받는 듯하다. 유튜브 댓글 반응을 보면 그야말로 충공깽.
6. 이름
어머니 이멀린이 디카프리오를 임신했을 때 이탈리아의 미술관에 갔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상화를 보는 중에 태아가 발로 차는 듯한 태동이 느껴져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디카프리오의 말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이것을 우주의 신호라고 생각했다고.
이름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란 정식 표기는 제22차 외래어 심의회에서 표준 표기법으로 결의했다. '레오나르도'의 표기는 이탈리아인에 한해 표준 표기법으로 인정한다. Leonardo DiCaprio라는 이름만 보면 정말 이탈리아인처럼 보이지만, 미국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또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므로 영어식으로 불러줘야 마땅하다. 그러나 보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쪽이 널리 퍼져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미들 네임이 빌헬름(Wihelm)이라는 사실도 언급하고 있는데, 영어식 발음이 아닌 독일식으로 빌헬름이라고 발음하고 있다. #
1990년대 후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10대 소녀팬이 한국에서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는데, 이 때 학교앞 서점에서 팔던 디카프리오 화보집에는 디카프리오 본인이 이탈리안 혈통을 스스로 마음에 들어해서 영어 발음인 리어나드, 리어나도, 레오나드 보다는 또박또박 '레.오.나.르.도.'라고 불리우는 걸 더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실려있었다. '디캐프리오'라는 라스트 네임 자체도 카프리 섬 출신자 라는 뜻이 있다고 해서 더 그렇다는 근거도 나름대로 제시. 하지만 이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팬덤을 형성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변명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39]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이 항목에도 나오는, 한 때 디카프리오와 연인 관계였던 지젤 번천은 이름이 독일식으로 보이고[40] 브라질인인데도 한국에서는 포르투갈어식도 아니고 독일어식도 아닌 영어식으로 부르는 것이 널리 퍼져서 영어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아예 표준이 되어버린 경우이다. 이와 같이 비영어권 인물도 영어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디카프리오는 영어권 출신 인물인데도 영어식으로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특이한 사례이다.
7. 제작자 활동
'''애페인 웨이 프로덕션'''의 설립자로 2004년에 세워 종종 마틴 스콜세지와 협력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에비에이터, 셔터 아일랜드, 레버넌트 등이 있다.
2016년에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을 하였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기 영화, 캡틴 플래닛 실사 영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기 영화, 타임머신 2번째 리메이크 등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공동 제작에 나설 예정이다.
8. 환경 운동가
동물 보호, 환경 관련 단체에 지속적으로 기부하거나 환경 관련 행사도 지속적으로 주최할 정도로 환경보호 운동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동물보호주의자이기도 해서 채식만 한다고 한다. 사실 예전에 배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원래 꿈은 해양 생물학자였다고 한다.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11번째 시간"과 "비포 더 플러드"가 있다. 그리고 《오펀》과 《레드 라이딩 후드》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실제로 디카프리오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기재ㆍ작성 내용을 보면 죄다 환경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디카프리오는 어렸을 적부터 멸종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주말이면 자연사박물관에 가서 동물들을 관람하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를 안 했다면 해양학자가 됐을 거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환경 문제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 활동해 왔다.
1998년 영화 '타이타닉' 촬영 후 디카프리오 재단을 설립하는 등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디카프리오 재단은 앞서 해양 보호를 위해 70억 원을 기부한 바 있으며 디카프리오는 지난 2014년 UN으로부터 '평화의 메신저'로 지명돼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연설하기도 했다.
2014년 9월 20일에 UN 평화 사절로 임명되었다. 며칠 뒤인 9월 23일에 열린 UN 기후정상회의에서는 지구의 기후변화와 대책에 대해 논하는 간단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4분짜리 연설 비디오 링크''' 그 이후에 마크 러팔로와 함께 친환경 시위에 같이 나간 적도 있는 걸 봐서는 환경운동에 대한 열정이 강한 듯 보인다. 또한 2014년에 시작한 52 헤르츠 고래를 조사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5만불을 기부하기도 했다.
2015년 자신의 재단을 통해 환경 보호 기구에 1500만 달러(약 171억 원)을 기부했다. 기부한 돈은 '아마존 워치' '세이브 더 엘리펀츠' '월드 와일드라이프 펀드' 등 각종 환경 보호 기구를 통해 야생동물 보호 및 아마존 정글 보호에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에 대한 음모(cowspiracy)를 총괄했다. 축산업이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41] 을 샅샅이 파헤치며, 주제를 확장해 동물권 및 올바른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본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소감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Before the Flood)’을 찍었으며, 실제로 비포 더 플러드를 통해서 '환경 기후 변화에 관심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면서 도널드 트럼프를 간접적으로 디스하기도 하였고, 나중엔 아예 직접적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공직을 맡아선 안 된다는 말을 하였다. #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에 만나기도 했다.#
2019년 8월에는 아마존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니거나 호화 요트를 타고 다니며 파티를 하는 모습이 자주 파파라치에게 찍혀 위선적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9. 아카데미 시상식과의 질긴 인연
할리우드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배우들 중 한 명인데도 유독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만 상복이 없었다. 우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표작으로 손 꼽히는 타이타닉 부터 남우주연상 이야기가 나왔지만 수상에 실패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J 에드가》로도 노려봤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않았다. 주인공 존 에드거 후버 역의 디카프리오보다 오히려 클라이드 톨슨 역의 아미 해머가 더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아카데미 수상만을 노리고 노골적으로 진지한 연기만을 골라 한다면서 오히려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아카데미가 좋아할 법한 실화 바탕의 영화, 유명 감독의 영화 위주로 출연하여 지나치게 오스카상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게 주된 비판의 내용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영화기자 백은도 채널 CGV에서 생중계한 제88회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에서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지켜보며, "이제 부담감 없이 즐겁고 가벼운 영화에도 나오는 디카프리오를 한 번 보고 싶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를 놀리는 유명한 드립이 있다. 일명 '오오 린다 아임쏘리 린다'. 찰진 필력으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장면 연출을 담아낸 덕택에 많은 국내 커뮤니티에 퍼져 디카프리오를 놀리는 밈이 되었다. #1 이 트윗 내용은 레진코믹스에서 작품을 연재했던 '하양지'가 남긴 트윗인데 작가 본인이 "내 작품보다 이 트윗이 몇배는 더 유명하다"고 씁쓸한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국내 언론에서 이 밈을 다룬 적도 있다. #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드디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도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
2013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다니엘 데이루이스, 크리스토프 발츠, 제니퍼 로렌스, 앤 해서웨이가 함께 모여서 웃는 짤이 있는데 거기다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놀리는 내용이 있다.[48]
9.1. 징크스 분석
그동안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데이트될 때마다, 실존인물의 혼이 빙의된 듯 신들린 연기를 펼친 다른 연기자들 때문에 수상에 실패하였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5개 후보중 4개 후보가 실존인물을 연기하였는데, 놀랍게도 디카프리오는 두 가지 징크스를 모두 뚫고 수상했다.
여담으로 이번에 신들린 연기를 펼친건 같이 출연(?)한 곰이라 곰에게 상을 줘야 되는데, 곰이 오스카 상을 손에 쥘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레오가 대신 받았다는 드립이 흥했었다.
9.2. 결국 오스카를 수상하다
하지만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73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 그리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마침내 대망의 88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게 되었다!''' 사실 디카프리오가 레버넌트로 상을 받은 것에 대해선 이견이 좀 있었다.[51] 레버넌트로 받은 것에 대해선 이제 레오도 오스카 탈 때가 되지 않았나하는 분위기가 한 몫한 걸로 보여진다. 오스카 애프터 파티에도 트로피를 들고 입장했다고 한다. # 그리고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수상소식은 방송사 뉴스 속보로도 전해졌다.#
평소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아 수상 소감 중에도 레버넌트 촬영 비화를 언급하며, 지구 온난화는 실존하며 온난화로 인한 피해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약자들과 후세를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위터 공식발표에 따르면 오스카 수상 직후 1분당 무려 44만건 이상의 트윗이 올라왔으며 이 기록은 신기록이라고 한다. 이전 기록은 2014년 오스카 엘렌 드제너러스와 탑배우들 셀피로 분당 255,000건.Thank you all so very much. Thank you to the Academy. Thank you to all of you in this room.
감사합니다. 아카데미와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I have to congratulate the other incredible nominees this year.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신 다른 모든 후보 분들께도 경의를 표합니다.
The Revenant was the product of the tireless efforts of an unbelievable cast and crew.
레버넌트는 함께 작업해 준 연기자들과 제작진분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가능했습니다.
First off, to my brother in this endeavor, Mr. Tom Hardy.
우선 이 노력을 함께해 준 나의 형제 톰 하디
Tom, your talent on screen can only be surpassed by your friendship off screen.
톰, 당신이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거침없는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건 스크린 밖에서 느낄 수 있는 우정뿐일 겁니다.
To Mr. Alejandro Iñárritu, as the history of cinema unfolds, you have forged your way into history these past two years.
이냐리투 감독님, 영화사가 시작된 이래로 당신은 지난 2년을 위해 착실히 전진하셨습니다.
What an unbelievable talent you are.
당신은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Thank you to you and Chivo for creating a transcendent cinematic experience for all of us.
초월적인 영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신 치보 감독님께도 감사드립니다.
Thank you to everybody at Fox and New Regency, in particular Arnon Milchan. You were the champion of this endeavor.
폭스와 뉴리젠시 관계자분들과 특히 이 노력에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밀찬 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My entire team.
저와 함께하는 팀도요.
I have to thank everyone from the very onset of my career.
제 경력이 시작된 순간부터 말씀드려야 되겠군요.
Mr. Caton-Jones for casting me in my first film. Mr. Scorsese for teaching me so much about the cinematic art form.
제 첫 영화에 캐스팅해주신 마이클 케이튼 존스 감독님. 영화 예술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
To Mr. Rick Yorn, thank you for helping me navigate my way through this industry.
릭 욘 대표님, 이 산업에서 좋은 길로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And to my parents, none of this would be possible without you.
그리고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And to my friends, I love you dearly, you know who you are.
내 친구들, 스스로 누군지 알겠지만 정말 사랑하고
And lastly, I just want to say this: Making The Revenant was about man’s relationship to the natural world, a world that we collectively felt in 2015 as the hottest year in recorded history. Our production needed to move to the southern tip of this planet just to be able to find snow.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레버넌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나 작년 2015년은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되었으며 저희가 촬영 당시 눈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남쪽 끝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Climate change is real. It is happening right now.
기후변화는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It is the most urgent threat facing our entire species, and we need to work collectively together and stop procrastinating.
(기후변화는) 전 인류와 동물을 위협하는 가장 긴급한 위협이며, 전 세계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We need to support leaders around the world who do not speak for the big polluters or the big corporations, but who speak for all of humanity, for the indigenous people of the world, for the billions and billions of underprivileged people who will be most affected by this, for our children’s children, and for those people out there whose voices have been drowned out by the politics of greed.
환경 오염을 범하는 거대 기업을 위한 지도자들을 대변하지 않는, 그러나 전 인류와 원주민, 생태 변화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혜택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우리 자녀들의 아이들, 탐욕스런 정치인들에 의해 목소리를 내지 못한 분들, 이런 분들을 위해 대변하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지지해야 합니다.
I thank you all for this amazing award tonight. Let us not take this planet for granted.
우리가 이 지구에 산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맙시다.
I do not take tonight for granted. Thank you so very much.
저 또한 오늘 밤 이 영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수상 소감 전문
한편 시상식이 끝난 뒤 트로피 실물을 수령할 때 이에 대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오스카 트로피는 시상식장에서 곧바로 수상자의 이름을 새긴 뒤에 주는데 디카프리오는 트로피에 이름을 새기는 담당자에게 "이걸 매년 하셨죠? 저는 이런 식으로 하는 줄 몰랐거든요."('You do this every year? I wouldn't know'.)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트로피를 어떻게 보관하죠?"("How to take care of it? How to maintain it? what does it need?")라고 말했다. 즉 그동안 아카데미상을 못 받아서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어떻게 다루는지 모른다는 자학 개그이다.
1년 후인 2017년 2월 26일(현지 기준)의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전년도 남우주연상 수상자로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엠마 스톤에게 전달했다.
여담으로 오스카 수상 이후 필모 갱신 기산이 갑자기 늘어났다. 레버넌트 이후 차기작까지 무려 4년! 오스카를 수상하기 전에는 거의 1년 단위로 영화를 찍었다는 점에서 오스카를 받고나서 의욕이 식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후 디카프리오는 복귀하면서 오스카를 받은 이후 천천히 쉬면서 환경운동 등에 전념한 것이라고 밝혔다.
10. 필모그래피
- 필모그래피만 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선구안을 가진 배우임을 알 수 있다.
11. 수상 경력
12. 기타
- 로버트 드 니로에 이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페르소나#s-2와도 같은 배우다. 2000년대 이후 스코세이지 영화에는 거의 다 출연했을 정도.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에 출연하였다. 또한 스콜세지의 차기작인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에도 출연이 예정되었다.[75]
- 대한민국에서는 성우 강수진이 디카프리오 역을 전담한다. 안드로메다로 가는 캐스팅을 자랑하는 MBC조차 건드리지 않는 확고한 전담 중의 하나이다. 예외로 《아이언 마스크》에선 김영선이 디카프리오의 배역을 맡은 적이 있고,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선 김승준이 디카프리오의 배역을 맡은 적도 있다.
- 크리터스 3의 충격이 컸는지 작품 선정을 매우 신중히 하는데, 그 덕에 디카프리오의 필모그래피는 타 배우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근데 디카프리오가 출연을 거절한 작품 중에는 현재 어마어마한 배우들의 등용문이 된 작품이 여러 편 있다. 기획 단계부터 아예 디카프리오를 염두하고 만들어진 《프라이멀 피어》의 주인공 에런 역은 에드워드 노턴이 맡게 되면서 노턴의 놀라운 데뷔작이 되었고, 디카프리오의 출연작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역은 크리스찬 베일이 맡게 되면서 베일이 기존 아역배우 이미지에서 탈피해 성인 배우로 등극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 또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 역할으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제작사가 스타 캐스팅을 원해서 디카프리오를 추천했으나 놀란 감독이 베일을 끝까지 고집했다고. 놀란 감독과는 후에 '인셉션'으로 만나게 된다.
- 역시 1974년생으로 동갑내기인 배우 크리스찬 베일과 라이벌 관계라는 평이 있다.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이전에도 같은 배역에 물망으로 동시에 올랐거나 같은 배역을 두고 경합한 적이 많았기 때문. 아역 배우 시절에 《이 소년의 삶》에서 베일은 디카프리오와 같은 배역을 두고 경쟁했으나 디카프리오에게 밀렸다. 《타이타닉》의 주인공인 잭 도슨은 원래 베일이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남녀 주연 모두 영국인일 수 없다는 이유로 디카프리오에게 돌아갔다. 《아메리칸 싸이코》의 남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 역시 베일이 내정되어 있었으나 제작사가 흥행을 원해서 당시 세계적인 스타였던 디카프리오에게 갈 뻔했다. 이 영화를 위해 오래도록 준비하고 있던 베일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 다행히 베일의 간청과 디카프리오의 거절로 최종적으로는 베일이 했다. 이밖에도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에서 둘 다 레골라스로 물망에 오른 바 있다. 디카프리오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으나 무명 시절이 길었던 베일은 마침내 놀란 감독에게 배트맨으로 발탁되어 톱스타가 되었다.
- 트레이드 마크는 '소리치는 장면'이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유독 작품 속에서 갑자기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하는 장면이 많다.## 아무래도 멀쩡한 역할보다는 어딘가 문제가 있거나 독특한 성격이거나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는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이 아닐까.[76] 특히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보면 시종일관 폭발하는걸 볼 수 있는데 심지어는 내레이션에서도 폭주를 한다. 물론 또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는 헤어스타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화없이 유지해온 금발 올백 스타일. 이마를 안 깐 사진이 매우 드물다.
- 인터뷰 자료에 의하면 학창 시절의 성적은 그냥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시험날에 자기 앞자리에 공부를 잘 하는 놈이 앉으면 그 날은 아주 점수가 잘 나왔다고 한다.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실제로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 정치성향으로는 우선 민주당 지지자이며, 특히 버락 오바마의 지지자이다. 디카프리오는 오바마를 지지하면서 그 동안 내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대통령감이라며 오바마를 극찬했다. 그리고 오바마와 함께 환경 문제를 토론하는 영상을 찍었다.
- 퓨처라마에서는 젭 브레니건에게 내동댕이쳐진다.
- 포뮬러 1 선수인 니코 로즈버그와도 상당히 외모가 비슷하다. 그리고 이 둘은 외모뿐만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내지만 트로피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둘 다 2016년에 각각 오스카 수상자와 월드 챔피언에 등극했다.
- 제 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레이디 가가와 부딪친 적이 있다. 여우주연상을 호명받아 무대로 나가는 레이디 가가와 테이블에 앉아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팔이 부딪친 해프닝인데 이때 그의 살짝 당황한 표정이 주목을 받으면서 인터넷에서 밈화가 되었고, 이를 소재로 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상 타기"라는 인디게임이 개발되었는데 여기서 레오나르도 캐릭터가 오스카상 트로피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나가고 그를 막는 장애물은 타이타닉의 빙하, 기자들, 맷 데이먼, 에디 레드메인, 마이클 패스벤더 등이 나오고[78] 마지막으로 레이디 가가가 등장해서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해본 유저들의 반응은 “재미있긴 한데 이 게임 만든 사람 진짜 못됐다(…)”
- 2019년 폴 토마스 앤더슨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신작 제의를 받았으나 둘다 거절했다고 한다. # 아마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출연하느라 그런 듯.
- 2019년 12월 30일 여자친구 및 친구들과 서인도 제도의 어느 섬 근처 바다 위 호화요트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바다에 빠져 11시간이나 버티다 익사 직전 상태의 남자를 극적으로 구조한 소식이 2020년 1월 9일에 밝혀져 화제가 됐다. #
- 2012년에만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위대한 개츠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세 편을 촬영하는 강행군을 펼친 뒤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잠정 무기한 활동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파파라치들에 의해 동료 연예인들과 마이애미에서 휴식을 취하는 디카프리오의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 장고: 분노의 추적자 촬영 중, 손에 피가 나는 상황이 발생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나가면서 명연을 보여주었다.
- 2013년 3월 7일에 《장고 : 분노의 추적자》의 프로모션을 위해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 입국했다. 입국장에서부터 많은 팬들이 디카프리오의 사인을 받기 위해 북새통을 이뤘고, 리츠 칼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쇼케이스를 가졌다. 하지만 중후한 외모의 아저씨가 된 디카프리오에게 여성 사이트들의 여성팬들은 20대 리즈 시절 땐 일본만 주야장천 가더니 아저씨가 다 된 이제서야 오냐며 원망을 보냈더라는 후문도 있었다. 한편, 디카프리오는 태어나서 이렇게 대단한 환영은 처음 받아봤다며, 나중에 한국에 또 방문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후 수상 소감 중. 연설 중에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어필했다. 할리우드가 진보적인 성향이 강해서 찬사를 받는 한편, 미국의 보수 언론은 영화 시상식 마저도 정치판[79] 의 일환으로 쓰려 한다며 깠다.
- 한문을 쓸 줄 알고 잘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