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챔피언스 리그/2009-10 시즌/결승전
1. 개요
2010년 5월 22일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경기장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 리그 2009-10 시즌의 결승전. 인테르나치오날레가 바이에른 뮌헨을 2:0으로 꺾었다. UEFA 선정 MOM은 디에고 밀리토, 팬 선정 MOM은 베슬리 스네이더르가 수상하였다.
2. 경기 전
인테르는 리그에서 우승, 코파 이탈리아에서 로마를 꺾고 더블을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만이 남아 트레블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역시 리그 우승, 포칼컵 우승으로 더블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으로 두 팀 모두 트레블을 위해 빅 이어만을 노리고 있는 상황. 두 팀 모두 트레블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두 팀 모두 4강전에서 퇴장으로 인해 징계를 받은 선수들이 나오게 되면서 결승전을 앞두고 선수진의 누수가 발생하였다. 바이에른은 프랭크 리베리, 인테르는 티아고 모타가 징계로 출전할 수가 없게 되었는데 바이에른쪽의 타격이 더 크다고 예상되는 편.[1]
3.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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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전반전
바이에른 뮌헨은 전반전 67:33이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이용해 공격적으로 나갔지만, 슈팅 10개 중 하나 밖에 유효슈팅이 만들어지지 못해, 효율 없는 공격만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인테르는 점유율에서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통해 슈팅수 7:10, 유효 슈팅 4:1이라는 절대 꿀리지 않는 공격을 선보였고, 전반 35분 디에고 밀리토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먼저 기선을 제압하였다.
3.2. 후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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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전 골에 급급해진 뮌헨은 점유율 69:31, 슈팅 수 11:4, 유효슈팅 5:3으로 인테르를 강력하게 압박했지만, 아무런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오히려 인테르는 역습 상황에서 또 다시 디에고 밀리토가 70분 경 멀티골을 득점하면서 인테르가 승리하게 되었다.
4. 여담
- 두 클럽은 2014/15 시즌 결승전 FC 바르셀로나와 유벤투스 FC의 경기처럼 이미 국내의 리그와 컵을 우승한 상태에서 트레블을 위한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이긴팀이 트레블의 영광을 차지하는 매치였다는 것.
- 이 챔피언스 리그의 승리로 인테르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이자 유일한 트레블을 이루게 되었다.
- 인테르 팬들에게 있어서는 1965년 우승 이후 반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챔피언스리그의 갈증을 해소해준 단비와 같은 우승이었다.
- 바이에른 팬들에게는 비록 준우승이었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시즌이었던게, 2001년 이후 지긋지긋하게 이어진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부진을 씻는 10여년 만의 결승 진출인데다, 다니엘 반 부이텐 - 마르틴 데미첼리스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센터백 라인을 가지고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까지 거뒀다는게 정말 선방한 것이었기 때문. 역대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팀들 가운데 이정도로 수비력이 가관이었던 팀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2][3][4] 필립 람을 제외하고는 롤러코스터에 가까웠다.[5]
- 조금 다른 의미에서 독일 분데스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 A 간의 자존심대결이 되어버렸다. 09-10시즌 시작 당시만 해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라리가에 이어 이탈리아 세리에 A가 랭킹 3위로 3대 리그에 들고 있었는데, 09-10시즌 내내 분데스리가 클럽의 약진과, 세리에 A 클럽의 부진으로 인하여 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이 승리하게 되면 09-10시즌 종료 시 랭킹 3위가 독일 분데스리가로 바뀔 상황이 된 것. 결국 본 경기에서 인테르가 우승하여 09-10시즌 종료 시 이탈리아 세리에 A(64.338점)가 독일 분데스리가(64.207점)를 간신히 앞지르고 랭킹 3위를 수성했다.[6]
[1] 결국 이는 결승전에서 바이에른의 공격이 아르연 로벤의 개인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2] 무슨 말인지 보고싶다면 16강 피오렌티나전 하이라이트만이라도 보고 오라. 뮌헨 팬이라면 한숨이 절로 나올 경기력일 것이다. 라이브로 봤던 팬들은 말 그대로 멘탈이 하늘로 가기 직전이었을 것. 벼랑 끝에서 아르연 로번의 역사적인 환상골로 기적적인 원정다득점 승리를 거뒀다.[3] 그런데 당시에는 현재처럼 챔피언스리그 16강 경기를 2주에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에 다 했기 때문에 중계 못하는 경기가 굉장히 많았고, 이 경기 역시 국내 중계는 녹방이었다. 단 해외 중계 사이트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다.[4] 심지어 루시우가 인터 밀란으로 떠나자 저 두 센터백 빼고는 서브자원도 전무했다. 프라니치를 풀백으로 쓰고 홀거 바트슈투버를 중앙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었지만 바트슈투버는 유스에서 올라온지 첫 시즌이었던지라 중앙에서는 피차일반이었고, 주로 이 때는 왼쪽 풀백으로 뛰었었다.[5] 풀백에 실험했던 선수들(브라프하이트, 렐)은 모조리 실패, 그로 인해서 람을 다시 우측으로 돌리자 남은 왼쪽자리를 본디 센터백이지만 왼발 킥이 정확한 유스 출신 홀거 바트슈투버에게 맡겨야 했다. 프라니치 역시 기동성이 좋고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보유했으나 주전으로 쓰기에는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레벨이었고, 디에고 콘텐토 역시 딱 땜빵용이었다. 이쪽은 기량이 떨어진다기보단 워낙 유리몸이었기 때문.[6] 참고로 당시에는 랭킹 3위 리그까지만 챔스 진출권을 4팀을 주고, 랭킹 4위인 리그는 챔스 진출권을 3팀에게만 수여하였다. 본 경기 하나로 인하여 11-12시즌까지는 이탈리아 세리에 A팀이 4팀, 분데스리가 3팀이 진출하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