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데미첼리스

 

'''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V. Junior Team'''
<colbgcolor=#dc052d> ''' 이름 '''
'''마르틴 데미첼리스'''
'''Martín Demichelis'''
''' 본명 '''
마르틴 가스톤 데미첼리스
Martín Gastón Demichelis
''' 출생 '''
1980년 12월 20일 (43세) /
아르헨티나 후스티니아노 포스
''' 국적 '''
아르헨티나
''' 신체 '''
184cm | 체중 80kg
''' 직업 '''
축구선수(중앙 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colbgcolor=#dc052d> ''' 선수 '''
CA 리버 플레이트 (2000~2003)
'''FC 바이에른 뮌헨 (2003~2010)'''
말라가 CF (2011~201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3)
맨체스터 시티 FC (2013~2016)
RCD 에스파뇰 (2016~2017)
말라가 CF (2017)
''' 감독 '''
말라가 CF(2017~2019/코치)
FC 바이에른 뮌헨 U-19(2019~2021)
FC 바이에른 뮌헨 II(2021~ )
''' 국가대표 '''
51경기 2골(아르헨티나 / 2005~2016)


1. 개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선수로, 현재 FC 바이에른 뮌헨 U-19의 감독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CA 리버 플레이트


콤플레호 데포르티보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5년 헤나투 세사리니로 이적하였다가 199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연고지를 둔 CA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하였다. 2000년에 1군팀에 데뷔하여 3시즌동안 51경기 1골을 기록하였다.

2.1.2. FC 바이에른 뮌헨


2003년 7월 1일 독일의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였다. 바이에른에 있어서 첫 아르헨티나 선수의 영입이었다. 9월 27일 FC 한자 로스토크 전에서 데뷔하였다. 2003-04 시즌은 부상으로 이탈한 토르스텐 프링스 대신 중앙 미드필드의 위치에서 출전이 많았다.
2004년 여름에 취임한 펠릭스 마가트 감독하에 주전선수로 정착하며 2004-05 시즌, 2005-06 시즌 2관왕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007-08 시즌에는 자신의 기용방식을 두고 히츠펠트 감독과 충돌하였다. 히츠펠트 감독은 데미첼리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시키고 싶어 했지만, 데미첼리스는 중앙 수비수로 출장하기를 희망하였고 클럽에서 1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09년 여름에 반 할 감독이 취임하였는데 그는 홀거 바트슈투버를 기용하며 데미첼리스의 출전 기회는 감소하였다. 2009-10 시즌 리그 및 컵 대회 2관왕에 올랐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에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리그에서 21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았다. 2010-11 시즌 개막전 VfL 볼프스부르크 전에서는 소집을 거부하고 타클럽 이적을 원하였다.

2.1.3. 말라가 CF


2010년 12월 30일, 리버 시대의 은사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의 말라가 CF로 이적하였다. 말라가의 전성기 주축을 이루기도 했는데 '''그아호''' 호아킨 산체스를 비롯하여 이스코, 줄리우 밥티스타, 제레미 툴랄랑, 로케 산타 크루즈, 윌리 카바예로, 카를로스 카메니, 하비에르 사비올라, 헤수스 가메스, 이그나시오 카마초, 루카스 피아존, 세르히오 산체스, 안투네스, 엘리제우 등등 이른바 '''말락티코''' 체제로 구성되었고, 거기서 데미첼리스는 당당히 센터백 주전으로 기용되었으나 팀은 11위로 마감하였다. 이듬해 2011-12 시즌은 계속 센터백의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었지만, 제레미 툴라랑 부상 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는데 좋은 기량을 발휘하며 팀의 4위 마감 및 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2012-13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챔스에서는 말라가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8강 진출에 성공하지만 클롭이 이끄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인저리타임에 두골을 때려박으며 역전을 하는 극장 경기를 펼치자 데미첼리스를 비롯한 선수단은 경기가 끝난후 벌어진 상황에 모두 크게 좌절하였고, 그렇게 쓴맛을 삼켜야했다.

2.1.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3년 7월 11일 자유 계약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런데....

2.1.5. 맨체스터 시티 FC


2013년 9월 1일 아틀레티코에서 공식전 출전이 없는 채로 은사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이다.
맨시티 이적 이후 초반엔 어찌어찌 잘 버티는가 싶더니, 머지 않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0년 월드컵에 이청용에게 실수했던 것처럼 이미 그 시기부터 중앙수비로서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빠르고 거친 플레이에 적응해 내질 못하면서, 데미첼리스가 맨시티 수비의 구멍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리그에서도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후반기 들어 대형 사고를 연달아 치면서 맨시티의 붕괴를 이끌었다.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PK + 퇴장을 당하면서 경기를 완전히 망쳐놓더니, FA컵 8강전에서도 PK를 허용하며 맨시티의 탈락에 크나큰 기여를 한 것이다.
사실상 맨시티가 임하는 가장 큰 토너먼트 두 개를 말아먹으면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는 상황. 사실 페예그리니 감독과의 기나긴 인연이 없었다면 꾸준한 선발 출전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후반기부터는 세트피스에서 득점도 자주보여주면서 수비적으로도 폼이 상당히 오르면서 상당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4월엔 팀내 이달의 선수로 뽑힐 정도로 크게 활약했고 덕분에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14-15시즌엔 팀과 함께 침몰하고 있다.(...) 노쇠화가 시작된듯 그래도 시즌 초 아스날과의 리그경기에서 동점골을 넣는등 폼이 올라 적당히 뛰고는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센터백이 추가로 필요한 건 사실.
망갈라나 뱅상 콩파니도 시즌 중반 시점에선 폼이 별로였는데 리그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불안한 맨시티의 수비진에서 가장 일관성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팀은 패배하긴 했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나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오히려 14-15시즌 콤파니나 망갈라보다 데미첼리스가 맨시티 중앙수비수들 중 가장 잘 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
'''그러나 그 다음시즌이 되었고...'''

2.1.5.1. 2015-16 시즌

'''1부 리그 정상급 팀 안의 아마추어'''
'''상대팀 승리의 보증수표이자 출전 자체가 마패관광'''[1][2]
15-16시즌엔 오타멘디의 영입으로 확실한 백업으로 밀렸다. 경기 후반부에 수비강화를 위해 교체투입되며 거의 홀딩형 미드필더처럼 뛰는 정도. 그러다 토트넘과의 7라운드 경기에서 니콜라스 오타멘디 와 함께 암걸리는 수비력을 선사하며 4:1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더군다나 둘은 국대 센터백 듀오인데도 합이 이 정도면 정말로 답이 없다.
그리고 13R 리버풀전, 짝인 엘리아킴 망갈라와 같이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여 망갈라와 함께 팀 패배의 주범으로 찍혔다. 이어 14라운드 사우스햄튼 전에서 또(!)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실점상황 외에도 수비에서 하나같이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이라이트는 두샨 타디치가 방향을 꺾을것을 예상했다가 실패하며 자동문을 시전하고 윌리 카바예로 골키퍼와의 1대1 상황을 헌납한 부분.[3] 이날 맨시티는 KDB와 오타멘디의 맹활약, 카바예로의 각성이 아니었다면 털렸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 라운드 스토크 원정에서도 여지없이 가히 극혐급 경기력을 보였고, 물론 오타멘디의 경기력도 절대 좋지 못했지만 보얀 키르키치에게 처참히 털리는 모습은 데미첼리스의 기량하락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감독은 데미첼리스를 남기고 팀의 빅 유망주 중 하나인 제이슨 드나예르를 임대보낸 이유를 팬들에게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4]
그러더니 1월달부터 어느정도 안정감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러고보니 13-14시즌과 14-15시즌 모두 전반기엔 그렇게 욕먹다가 후반기엔 어느정도 안정화된 전력이 있는데 이거 혹시...?
그러나 그런거 없고 2월 6일 레스터전에서 '''3실점에 모두 관여하는(...)''' 도저히 수비수라곤 믿기 힘든 미친 구멍 수비력을 보이면서 팀의 대패를 혼자 이끌었다. 본격 맨시티 망신 제조기. 혹자는 차라리 이럴거면 유망주 토신을 기용하는게 낫지 않느냐는 주장을 했다. 참고로 이날 골의 패턴을 살펴보면 프리킥 때 크로스 수비를 하다가 공중볼에서 로베르트 후트에게 피지컬로 발린 후 왼발슛 허용하면서 1실점, 역습 상황에서 리야드 마레즈의 헛다리에 헛발질로 뚫리며 2실점, 코너킥에서 또다시 후트에게 피지컬로 발리고 헤딩슛 허용을 허용하며 세번째 실점을 헌납했다. 보는 사람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루트로 실점을 내주었다.
그리고 또 2월 22일 첼시와의 FA컵 경기에서 중앙수비수로 출전하였으나 경기력은 심각했다. 전반부터 삐걱대더니 후반엔 실점으로 직결된 프리킥에 PK 헌납에 아주 3부리그도 아니고 '''5부리그 선수급 활약을 펼치셨다.''' 결과는 5:1 대패. 맨시티가 FA컵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치룬 경기라 중원에 유스들이 대거 기용되어 수비적인 부담이 더해진것도 있다지만, 센터백 파트너로 성인팀 데뷔전을 치룬 토신 애더러바이오요의 경기력이 데미첼리스보다 몇 배는 좋았던 것을 생각하면 쉴드 치기도 힘들다.
사실 이런 경기력에도 데미첼리스가 꾸준히 나오는데는 한가지 이유가 있는데 바로 선수단의 줄부상 때문. 페예그리니도 니콜라스 오타멘디를 영입하면서 데미첼리스는 거의 잉여자원 취급을 하고자 한 듯 하지만 콤파니와 망갈라가 자주 부상에 시달리며 어쩔수 없이 데미첼리스가 나오게 된 것. 다만 여기서 페감독이 욕먹는 부분은 제이슨 드나예르를 성급히 임대보낸 것과 유스를 안써먹는 점 때문. 물론 프리미어리그급에서 유스 센터백을 기용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따를 수 있겠지만, 드나예르는 전시즌 임대가서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최우수선수'''[5]에 뽑혔고 남아있는 유스 센터백중 가장 유망한 자원으로 꼽히는 토신 애더러바이오요는 FA컵에 첼시상대로 나와 데미첼리스보다 몇배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챔스 16강 1차전 디나모 키예프 원정에서 맨시티가 3-1로 승리를 거두자 데미첼리스가 안나왔기 때문이라는 댓글이 네이버 기사 베플을 먹었다.
그러나 16강 2차전에서 콤파니와 오타멘디가 이른 시간에 모두 부상으로 빠져 데미첼리스-망갈라 센터백 라인이 강제 가동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당장 다음 경기가 맨체스터 더비인데 페예그리니 감독의 속이 많이 탈 듯...
결국 맨체스터 더비에 망갈라와 함께 선발 출전했는데 우려대로 '''시원하게 말아드셨다.''' 전반 초반에 돌파를 시도하던 마커스 래시포드에게 함부로 달려들다 한 번에 돌파를 허용해 선제골을 헌납했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뚫리며 자동문 노릇을 제대로 했다. 거기에 후반 초반 조 하트가 데미첼리스에게 패스한 후 주변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하트에게 백패스를, 그것도 너무 약하게 백패스를 한 탓에[6] 앙토니 마르시알이 공에 빠르게 달려들었고 이 상황에서 하트가 슬라이딩으로 급하게 걷어내다가 햄스트링을 다치게 하는 팀킬까지 작렬했다. 이 과정에서 조 하트의 해탈한 표정을 감상할 수 있었다.[7] 이러한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경기 중에 '데미첼리스'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등극했다. 거기에 경기가 0:1로 끝나면서 데미의 실수로 내준 선제골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며 경기 최고의 역적 확정. 참고로 많은 팬들이 우려했던 망갈라는 이날 래시포드와 마타 등 상대선수들을 우수한 피지컬을 이용해 잘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데미첼리스와 더더욱 비교되었다. 특히 래시포드는 전반전에 득점상황과 PK 논란이 있던 두 상황을 빼면 망갈라에게 꽁꽁 묶여 '''거의 아무것도 못하다시피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두 위험상황은 '''전부 데미첼리스쪽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경기 후 영국 언론 미러에서는 데미첼리스에게 무려 평점 '''0점'''을 부여했다. 한 편에서는 0점도 잘 준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데미첼리스가 경기 내내 꾸준히 실책을 저질렀고 팀킬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쳤으며 결정적으로 실점의 빌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비 실책을 종합 선물세트로 보여주었으니 당연히 화가 날 만도 하다.
경기력이 워낙 절망적인 탓에 데미첼리스를 까는 별명이 안그래도 많았는데, 이 경기를 기점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영국 국대에 선발되어 있던 조 하트가 이 부상 여파로 소집 제외되면서 본의 아니게 영국 국대에도 민폐를 끼친 셈이 되었다.
3월 30일 베팅 관련 혐의로 FA에 기소되었다(...).
이후 콤파니가 복귀하고 동시에 망갈라가 킹갓라로 각성하며 투명화되었다. 4월 23일 스토크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나섰는데, 센터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로 나섰다.
시즌 끝난 시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본인은 전시즌이 끝나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스털링,KDB,오타멘디 등 거액을 사용하면서 센터백에 더 투자를 못하는 상황에 4옵션으로 평가받았지만 유리몸인 콤파니와 잔부상에 시달린 망갈라로 인해 본인도 이렇게 많은 출전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데미첼리스를 기용한 페예그리니 감독이 잘못했다고 봐야겠지만 못한 건 못한 것이니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시즌 종료 후에는 계약이 끝나고 본인도 고향팀으로의 복귀 계획을 공공연히 이야기한지라 펩시티에서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2016년 6월 11일 공식적으로 방출되었다. 아르헨 복귀가 점쳐지는 중. 8월 초에는 스페인 언론에서 RCD 에스파뇰과 계약협상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2.1.6. RCD 에스파뇰


8월 10일 프리메라리가의 팀 RCD 에스파뇰과 자유계약으로 이적료없이 1년계약을 채결했다.

그러나 반 년 동안 시즌 1경기 선발출장 1경기 교체 출장 한 것이 전부였으며 결국 현지시각 1월 10일자로 RCD 에스파뇰과 상호 해지 하며 자유 계약 신분이 되었다. MLS로 향하느냐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느냐 고민 중이라고 한다.

2.1.7. 말라가 CF


2017년 1월 17일 말라가 CF로 자유이적하며 3년 반만에 말라가에 돌아왔다.
시즌 막바지 은퇴 선언을 했으며, 2017년 5월 22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최종 라운드에서 은퇴 경기를 치른다.#
은퇴이후 말라가 CF의 코치로 부임하여 미첼감독을 보좌한다.

2.2. 국가대표


호세 페케르만 감독에 의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소집되어 2005년 11월 12일의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하였다. 2007년 9월 11일, 호주 전에서 A 매치 첫 골이 되는 결승골을 넣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한국전에서 전반 종료 직전 어리석고 쓸데도 없는 볼 컨트롤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이청용에게 볼을 뺏기고 골을 허용해 2:1로 만들며 한국에게 추격의 희망을 심어주었다.[8] 당시 아르헨티나전을 시청하던 한국의 바이에른 팬들은 과연 명불허전 데미첼리스 실수 한 번 할 줄 알았다며 자못 기꺼워했다. 하지만 이후 그리스전에는 선제골로 만회했다.
이후 대표팀에서 탈락했으나, 13-14 시즌 후반의 활약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 스쿼드에 턱걸이 재승선. 이후 초반엔 잘 나오지 않았으나 토너먼트로 가면서 출전하기 시작해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준우승에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역시나 결승전 연장전에서 마리오 괴체의 결승골을 허용하면서 독일에게 우승을 헌납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파이터형 중앙수비수. 다이나믹한 태클이나 몸을 직접 부딪히는 수비에 강점이 있고, 키는 184cm로 센터백치고 큰 편은 아니지만 위치 선정과 몸싸움이 좋아 공중 장악력도 좋은 편이다. 뮌헨 초창기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주 뛰었던 만큼 볼 운반 능력에도 일가견이 있다.
반사신경이 둔하고 발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9] 볼 운반은 준수하나 본인이 수비 라인을 리드하고 거기에 맞춰 패스를 적절히 배급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 역시 한계. 거기에 기복이 심하고 잔실수가 잦다는 점도 문제. 컨디션이 좋을 때는 상대 공격수들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가 되지만 못 할때는 본인이 경기장에서 지워진다(...).
잔실수가 많은 점 때문에 FC 바이에른 뮌헨 시절 초창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나섰다. 잔실수를 해도 뒤에 커버를 해 줄 수 있는 수비수들이 있고, 어느정도 볼순환에 기여해 줄 수도 있고, 순수한 수비력 자체는 좋은 편이기 때문에 홀딩 미드필더로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본인이 중앙 수비수로 뛰고싶어하는 성향이 강해서 몇 차례 이적을 반복했다.
2010년대 들어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단점이 더욱 두드러져서 빠른 공격수들에게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래도 체구가 좋아서 몸싸움이나 공중볼 경합에 큰 문제는 없었고 볼 운반 능력도 건재하여 여러 문제점에도 페예그리니 체제하 맨시티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꾸준히 중용되었다. 그러다 커리어 말기에 이르러 속도와 민첩성은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강점이던 단단한 몸을 통한 경합 능력도 크게 하락하면서 조용히 은퇴했다.
[1]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2] 팬들 사이에서 후반 막판 데미첼리스가 교체출전하면 스타크래프트의 마패관광을 시전하는 것과 동급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3] 그나마 이 부분은 카바예로가 타디치의 슈팅을 막고 세컨볼까지 선방해내면서 위기를 넘겼다.[4] 물론 결과론적인 해석이 좀 끼어있고 페감독의 결정이 아주 이해 못 할 결정은 아니다. 오타멘디는 새로 영입한 선수라 성공할지 알 수 없고, 망갈라는 다들 알다시피 최악의 시즌을 보냈으며 콤파니는 심각한 유리몸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인 드나예르를 믿고 가기 불안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결정이 되었지만.[5] 최우수 수비수도 아니고 최우수 '''선수'''였다.[6] 하트도 데미첼리스가 무난히 처리할거라 생각하고 다소 물러나있었다.[7] 본래 마르시알과의 충돌이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충돌한것은 아니고 슬라이딩 과정에서 근육을 다친 듯 하다.[8] 그러나 이는 당시의 응원도구였던 부부젤라 때문에 주변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던 탓이다. 물론 실수에 대한 책임을 소음에게 떠넘길 수는 없겠지만.[9] 유소년 선수 시절 교통사고로 아킬레스건에 이상이 생긴 이후로 잘 뛰지 못했다고 한다. 아킬레스건 부상이 축구선수들에게 상당히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점을 생각하면, 만약은 없다지만 이 부상이 아니었으면 데미첼리스는 훨씬 대성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