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에투

 


'''사무엘 에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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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2005 · 2006
2005 · 2006
2004-05 · 2005-06 · 2008-09 · 2010-11
2005 · 2006




'''2005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호나우지뉴
2위
프랭크 램파드
3위
'''사무엘 에투'''

'''사무엘 에투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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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라리가 앰버서더'''
'''이름'''
'''사뮈엘 에토
Samuel Eto'o'''
'''본명'''
사뮈엘 에토 피스
Samuel Eto'o Fils[1]
'''출생'''
1981년 3월 10일 (43세)
카메룬 두알라
'''국적'''
카메룬 [image]
'''신체'''
180cm, 75kg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 선수 '''
카지 스포츠 아카데미 (1992~1996 / 유스)
레알 마드리드 CF (1996~1997 / 유스)
레알 마드리드 CF (1997~2000)
CD 레가네스 (1997~1998 / 임대)
RCD 에스파뇰 (1999 / 임대)
RCD 마요르카 (2000 / 임대)
RCD 마요르카 (2000~2004)
'''FC 바르셀로나 (2004~2009)'''
'''인테르나치오날레 (2009~2011)'''
FC 안지 마하치칼라 (2011~2013)
첼시 FC (2013~2014)
에버튼 FC (2014~2015)
UC 삼프도리아 (2015)
안탈리아스포르 (2015~2018)
코니아스포르 (2018)
카타르 SC (2018~2019)
''' 감독 '''
안탈리아스포르 (2015~2016 / 감독대행)
'''국가대표'''
118경기 '''56골'''[3] (카메룬 / 1997~2014)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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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명 '''
흑표범 (black panther)

1. 개요
2. 클럽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통산 기록
6. 나이 논란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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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내가 바로 아프리카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사실이다.'''[4]

카메룬의 前 축구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바르셀로나,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UCL 3회 우승과 2회의 트레블을 이끌었고, 국가대표로서도 조국에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회 우승 및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했다. 또한 축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2년 연속 트레블과 2개 클럽 트레블을 달성한 선수이기도 하다.[5]

2. 클럽 경력



2.1. 레알 마드리드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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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어린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거의 대부분의 시즌을 다른 팀에 임대를 가거나 B팀에서 잠시 뛰는 등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활약은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1999-2000 시즌에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시즌 도중 RCD 마요르카로 임대 이적하게 된다.

2.2. RCD 마요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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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0 시즌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마요르카로 임대 온 에투는 리그에서만 13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면서 2000-01 시즌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4.4M의 이적료로 마요르카로 완전 이적에 성공했다. 그리고 완전 이적 후 첫 시즌에 주전으로 자리잡아 리그 28경기 11골, 총 33경기 13골을 기록하며 알베르트 루케, 아리엘 이바가사와 함께 삼각편대를 구축하여 팀을 리그 3위 등극과 함께 UEFA 챔피언스 리그로 이끌었다.
2001-02 시즌에는 리그 16위로 추락한 팀과 함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리그에서 30경기 6골에 그쳤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만큼은 9경기 3골을 기록하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시즌 10골은 기록했다. 이후 2002-03 시즌에는 리그에서 30경기 14골, 총 36경기 19골을 기록하는 등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하며 마요르카에게 구단 역사상 첫 코파 델 레이 트로피를 선사했다. 이어서 2003-04 시즌에는 리그 32경기 17골, 총 43경기 22골을 기록하면서 마요르카를 중위권 다크호스 팀으로 만들었다. 특히 친정팀 레알 마드리드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여 레알 킬러로 불리게 된다.
이러한 활약과 레알에게 유독 강한 성향을 바탕으로 2004년 여름이적시장 때 €24M라는 거액의 이적료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6]

2.3. 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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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의 화려한 전성기가 막이 올랐다. 바르셀로나의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2004-05 시즌 25골,[7] 2005-06 시즌 26골, 2008-09 시즌 30골을 몰아치며 명실상부 라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큰 경기마다 결정적인 골들을 터뜨리며 바르셀로나에 수많은 우승컵을 안겨주었다.[8]
특히 05-06 시즌과 08-09 시즌은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즌으로 기억된다. 반면 06-07 시즌에는 전반기를 장기부상으로 날려먹었고, 07-08 시즌에는 호나우지뉴와의 불화로 팀 내 분위기가 엉망이라 다소 침체되기도 했다.
05-06 시즌에는 레알 사라고사와의 원정 경기 도중 사라고사 팬들로부터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들었고, 이에 격분한 에투가 경기를 포기하려 드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동안 축구계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바르사 시절은 에투의 커리어에 있어 최전성기였으며, 이 시기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라리가 3회 우승, 트레블 1회를 이끈 에투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에투는 감독 펩 과르디올라와 불화 끝에 2009년 여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의 스왑딜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이적이 성사되었고,[9] 7월 7일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인테르에 입단하게 된다.

2.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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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투는 데뷔전이었던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라치오 전에서 인테르 데뷔골을 넣었고, 세리에 A 데뷔전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클래스를 보여준다. 이렇듯 이적 초기엔 즐라탄과 에투 모두 좋은 활약상을 보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즐라탄은 부상으로 빠진 메시의 빈 자리를 메우며 에이스로 떠올랐지만 에투는 자신의 주 포지션이 아닌 윙어로 출전하면서 '차비의 패스빨로 먹고 사는 기계'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부진에 시달렸다. 자신의 스타일과 무리뉴가 이끄는 팀의 컬러가 맞지 않은 불상사가 골가뭄으로 이어진 것.
그러나 후반기 들어 에투는 무리뉴의 지도력으로 폼을 되찾지만 즐라탄은 급격한 슬럼프에 빠지면서 둘의 처지가 바뀌기 시작한다. 폼을 회복한 에투는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8강 진출을 이끌어냈으며, 코파 이탈리아 4강 1차전에서도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순도 높은 골들을 많이 넣어줬다. 그리고 둘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맞붙게 되는데, 에투가 득점은 없었어도 공격진에서 제 몫을 다해준 반면에 즐라탄은 최악의 경기력으로 탈락의 원흉이 되고 만다. 결국 인테르가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2-0으로 꺾고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에투는 '''2년 연속 트레블'''과 '''2개 클럽 트레블'''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반대로 챔스 우승을 위해 인테르에서 바르사로 이적했던 즐라탄은 이적한지 한 시즌만에 다시 AC 밀란으로 이적한다.[10]
2010-11 시즌, 다시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바꾼 에투는 리그에서 21골 10도움, 챔스에서 8골 5도움, 총합 37골 16도움을 기록하며 밀리토의 부진과 베법사의 삽질로 칠테르가 되버린 팀을 홀로 이끌었다. 팀은 비록 AC 밀란에 밀려 스쿠데토를 놓쳤으나 자칫 최악이 될 뻔 했던 시즌을 코파 이탈리아 우승, 리그 준우승, 챔스 8강으로 선방할 수 있었던 데는 에투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우승컵이 걸린 코파 이탈리아 결승, 클럽 월드컵 결승,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모두 5골을 기록했고 바이에른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도 1골 2도움으로 원맨쇼를 펼치며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렇듯 매우 뛰어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같은 아프리카 출신의 스트라이커 디디에 드록바에게 인기가 밀리거나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누구냐는 설문에 잘 끼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 이는 에투의 전성기였던 시절 PL에 비해 라리가가 거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데다, 그의 국적이 다름아닌 카메룬인 탓이 크다.[11][12]
나가토모 유토의 증언에 의하면 검열삭제의 크기가 무시무시하다고 한다(...). 팀에 합류 후 처음으로 샤워룸에서 그 크기를 알현하고 믿기지 않아 두 번 쳐다봤다고.
2011년 8월 12일 인테르에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FC 안지 마하치칼라로 이적료 3,500만 유로(약 541억원)에 연봉 2,000만 유로(약 310억원)로 이적,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는 사나이가 되었다.''' 호날두의 연봉이 1,200만 유로(약 186억원)라는 것을 감안할 때 가히 엄청난 액수.

2.5. 안지 마하치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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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350만 유로, 한화 수십억을 탈세한 혐의로 스페인 당국에 고발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고 5년형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진위 여부에 따라 에투의 커리어가 끝장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구단주인 슬레이만 케리모프의 사업실패로 인해 구단이 긴축재정에 돌입해 2013년 8월 30일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안치의 전 단장이었던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공격수 사무엘 에투가 팀 분위기를 망쳤다고 밝혔다.

2.6.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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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 시즌 첼시의 감독으로 복귀한 무리뉴와 재회하게 되었다. 에투가 영입되면서 첼시의 공격진은 페르난도 토레스, 뎀바 바, 로멜루 루카쿠 등 과포화 상태가 되었고 결국 루카쿠가 임대를 떠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리그 4R 에버튼전에서 첼시 소속 데뷔전을 가졌다. 다만 경기내내 마타와 포지션이 겹쳤으며,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5R 경기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경쟁자인 토레스가 좋은 폼을 보여준 지라 주전 경쟁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7R 노리치 전에서도 전성기의 폼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리그 8R 경기에서는 후반 20분에 드디어 에투가 득점에 성공했다! 아자르의 패스를 받고 그대로 때린 슛이 골대 안으로 들어간 것. 이날 해설을 맡은 장지현 해설위원은 드디어 최전방 공격수가 득점을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최전방 공격수의 부진이 너무 길었다. 여기에 도움까지 기록하면서 1골 1도움으로 팀의 완승에 기여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 샬케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30분에 중계진이 존 테리를 카메라로 포착하고 있을 즈음에 갑작스레 에투가 골을 넣었다. 다시 확인해보니 힐데브란트 골키퍼가 골킥하려는 것을 에투가 막은 것이 그대로 골대 안으로 굴러들어가면서 선제골이 된 것이다. 이로서 에투는 이번 시즌에만 두번의 거대한 예능을 보여주며 수많은 축구팬들을 웃음짓게 만들어주었다 그 뒤 별다른 일 없이 전반이 종료되고 후반, 절박함이 느껴질 정도로 공격적으로 밀고 올라오는 샬케에게 에투는 후반 8분 만에 윌리안의 스루패스를 받아 추가골을 선사했다.
11R WBA전에서는 전반 종료 직전 아자르의 슈팅이 골키퍼의 손을 맞고 나온 것을 상대 수비수 리지웰이 머뭇거리는 사이 에투가 재치있게 슈팅하여 선제골을 넣으면서 리그 2호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후 경기내용은 썩 좋지 못했고, 팀도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하지만 에투가 첼시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다. 전성기 때에 비해 스피드가 상당히 느려졌고, 무엇보다 1대 1에서의 득점을 못 하고 있다. 덕분에 첼시는 올 시즌에도 해결사 공격수 없이 보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투가 다른 공격수들보다는 폼이 괜찮다는 것과, 골 감각은 조금이나마 살아 있어서 가끔씩은 골을 넣어준다는 것이지만...
15R 스토크시티전에서 후반에 들어온 에투는 자신은 선발로 뛸 만한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하는 끔찍한 모습을 보이며 1월 이적 시장에서 보강이 필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단지 원톱 뿐만 아니라 3선 역시 보강이 필요하다고 팬들은 부르짓고 있다. 팀은 1-0 패배를 당했다.
18R 스완지전에서는 간만에 선발출전했지만 무리뉴 감독이 대놓고 경기 후 공격수의 골 결정력 부진을 언급할 정도로 답답했던 경기였다. 무수히 많은 찬스가 나왔으며 특히 마타는 두번이나 결정적인 찬스를 에투에게 떠먹여 주었으나 에투가 날려먹었고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에투가 그나마 움직임이 가장 좋다는 것이며 그 대체자들은 더 답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2선이 탐욕을 부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선이 볼 키핑 부족, 골 결정력 부족, 연계력 부족으로 버벅거리기만 하며 상대팀에게 역습 찬스를 줄 기회를 제공하기까지 하는데 2선이 알아서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19R 리버풀전에서는 지난 경기에서 부진했는데도 불구하고 선발출전하여 결정적인 찬스에서 골을 넣으면서 지난 경기의 까임을 어느 정도 해소시켰고, 동시에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에투가 가장 잘하니까 계속 선발로 나오는 거다'''라는 주장에 신빙성을 얻게끔 하였다. 그리고 리그만 3골 밖에 안되는 거지 챔스, 리그컵, 리그 모두 합쳐 스트라이커 자원 중 가장 공격 포인트가 높은 선수는 에투다. 2013년까지 총 5골 5도움이라고(...).[13]
그러던 리그 22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 선발출전하여 전반 16분에 에투가 때린 슈팅이 절묘하게 캐릭의 발에 맞고 굴절되어 들어가면서 첼시가 선제골을 넣었다. 운과 슈팅 감각이 모두 제대로 겹친 훌륭한 골. 이후 전반 종료 직전 코너킥 찬스에서 케이힐의 땅볼 패스를 절묘한 위치에 서 있던 에투가 툭 하고 찬 것이 데헤아를 맞고 들어가면서 첼시가 2골차로 앞서나갔다. 그리고 후반 4분 만에 또 다시 에투가 코너킥 찬스에서 케이힐의 헤딩을 데 헤아가 막고 흐른 볼을 그대로 밀어넣으면서 '''2012년 4월 29일 토레스의 해트트릭 이후 거의 1년 9개월 만에 첼시 공격수가 해트트릭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개인 통산 14년 연속 두 자릿 수 골을 기록하면서 개인의 커리어도 제대로 쌓았다. 여담으로, 이 때 해트트릭을 하고 세리머니를 하는 중에 첼시 편 볼보이의 손을 잡아줬는데, 당시 볼보이였던 소년이 현재 첼시의 선수인 캘럼 허드슨오도이라고 한다.
25R 뉴캐슬과의 경기에서는 후반 17분에 첼시의 코너킥 찬스에서 윌리안이 코너킥을 올렸을 때 에투가 음비와와의 몸싸움 과정에서 페널티 킥을 유도했다. 이를 아자르가 성공시키면서 득점에 일조했지만, 전체적으로 이날에도 골결정력은 답이 없었던지라 살짝 아쉬웠다.
이상하게 첼시 이적 뒤에 굉장한 예능(?)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중 카디프전에서의 행동은 반칙이다. 즉 오심(...).
3월 9일 29R 토트넘 전에서 에투는 전후반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1골 1도움으로 나타났다. 팀도 4-0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선제골을 넣고 한 노인 세리머니[14]는 백미 중의 백미였다. 이후 챔스 갈라타사라이 16강 2차전 홈 경기 선제골, 31R 아스날 홈 경기 선제골 등 넣으며 3월에만 3경기 3골이라는 대활약을 펼쳤으나 아스날전 선제골 이후 6분 만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 토레스와 교체되어 들어왔다.
무리뉴 감독의 무리한 언플로 폼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컸으나 오히려 선발 출장할 때마다 골을 박아넣으며 첼시 스트라이커 중에서 믿을 만한 건 에투밖에 없다는 의견에 힘을 넣어주었다.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홈 경기에서는 무리뉴 감독이 후반에 총공세를 펼치면서 교체 투입되었다. 그런데 후반 14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디에고 코스타가 에투의 발에 걸려 넘어졌고 주심은 곧바로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이후 키커로 나선 코스타가 강력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경기를 뒤집었다. 이후 아르다 투란에게 한 골을 더 내줬고 결국 첼시는 합산점수 1-3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3-14 시즌 종료 후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자유계약으로 2014년 8월 27일 (한국시간) 에버튼으로 이적하였다.

2.7.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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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 FC의 서브 공격수로 낙점받았고 어느 정도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2014-15 시즌 도중 세리에 AUC 삼프도리아와 2년 반 계약에 동의했다는 기사가 떴다.
2015년 1월 27일 (한국시간) 삼프도리아 이적이 확정되었다. 등번호는 9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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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삼프도리아로 이적한지 1주일도 안 되어서 감독인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와 추가 훈련을 놓고 대판 싸웠고, 퇴단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화해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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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7일 터키 쉬페르리그 소속의 안탈리아스포르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안탈리아스포르의 구세주로 자리잡았다. 리그 15경기에서 13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 득점 1위를 기록 중이다. 하위권팀이던 안탈리아스포르는 그의 활약 덕분에 7~9위 정도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유수프 심세크(Yusuf Şimşek) 감독이 물러나 공석인 팀 감독까지 임시로 맡게 되었다.
2018년 1월 30일 안탈리아스포르와 상호계약해지를 했고 다음날 오후 3시 코니아스포르와 계약 정식 서명을 하였다. 등번호는 81번. 8월 4일 코니아스포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유는 높은 임금 때문이라고 추측. 2018년에는 카타르 SC에서 뛰고 있다. 등번호는 81번이다.
2019년 9월 8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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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역대 월드컵 최연소 출전 2위에 해당하는 만 17세 3개월의 나이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카메룬 대표팀에서도 그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0, 200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을 이끌었고 2006, 2008년 대회에서는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남겼다. 또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통산 18골로 대회 최다 득점 기록도 가지고 있다. 반면 월드컵에는 4회 출전[15]하여 통산 3골 1도움을 기록했지만 네 번 모두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1년 3월 26일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지역예선 원정에서 세네갈한테 깨지고 6월 4일 안방에서 설욕전을 벌이려고 했는데 0:0 무승부 상태에서 종료 직전에 얻은 페널티킥을 에투가 허무하게 실축해서 무재배 모드가 되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1경기 남겨놓고 조 1위 세네갈에 승점이 5점이나 밀려서 본선 직행은 안드로메다로, 게다가 조 2위 추가진출도 물 건너 갔다. 만일 그 페널티킥이 들어가서 1:0 승리를 거두었더라면 승점 차이가 2점으로 좁혀져 그나마 희망이 있었지만... 그저 지못미.
2012년에는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지역예선 최종전에서 본선 진출을 위해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팀은 2:1로 승리하고도 골득실에 밀려 카보베르데한테 본선 진출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카메룬은 모래알 조직력을 과시하며 3전 전패로 광탈했고, 에투 본인도 조별리그 1경기만 뛰고 대회가 끝나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흑인 특유의 탄력과 폭발적인 스피드, 그리고 타고난 센스를 바탕으로 한 엄청난 골 결정력을 보유했던 스트라이커로, 중앙 뿐만 아니라 좌우 윙포워드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선수다.[16]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준 탄력적인 모습은 칭찬받을 만하다. 비단 수비라인을 찢어발기며 득점을 올리는 걸 제외하더라도, 윙포워드 에이스들의 돌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위칭하던 모습, 중앙 미드필더들이 유기적으로 판을 짜올 때의 대응해주는 예민함은 왜 에투에게 흑표범이란 별명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전성기 토레스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상대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고 뒷공간을 털어먹는 능력이 탁월했는데, 전성기의 스네이더가 있던 인테르와 데쿠, 차비, 이니에스타가 있던 바르셀로나에서 처럼 창의적인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들과 찰떡 궁합이었다.
특유의 활동량을 이용한 전방압박능력 또한 상당히 뛰어나서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들의 진을 빼게 만들고는 했다. 간혹 골키퍼에게 백패스로 가는 공을 가로채 골로 연결시키기도 했으며 골킥같은 상황에서조차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골키퍼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또한 결승전같은 큰 경기에서의 클러치 능력이 엄청났던 선수이기도 하다.[17]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RW 6위)
  • FIFA 올해의 선수 3위: 2005
  • FIFA FIFPro 월드 XI: 2005, 2006
  • UEFA 올해의 팀: 2005, 2006
  • UEFA 올해의 공격수: 2005-06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05-06
  •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6
  • FIFA 클럽 월드컵 골든볼: 2010
  •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10
  • 라리가 득점왕: 2005-06
  • 세리에 A 올해의 팀: 2010-11
  •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MVP: 2012-13
  •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톱 33: 2011-12 (RF 2위), 2012-13 (RF 1위)
  •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12년 9월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맨 오브 더 매치: 2010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득점왕: 2006, 2008
  •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003, 2004, 2005, 2010
  • 아프리카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0
  • CAF 올해의 팀: 2005, 2006, 2008, 2009, 2010, 2011
  • ESM 올해의 팀: 2004-05, 2005-06, 2008-09, 2010-11
  • 옹즈 드 옹즈: 2005, 2006
  • 골든풋: 2015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선수 경력 상: 2016
  • 돈 발론 2000년대 베스트 XI: 2010[18]

5.3. 통산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기타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7-98
레가네스[A]
세군다 디비시온
30
4
0
0
0
0
-
-
1998-99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1
0
0
0
0
0
-
-
1998-99
에스파뇰[A]
라리가
0
0
0
0
0
0
-
-
1999-00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2
0
0
0
3
0
1
0
마요르카[A]
라리가
13
6
0
0
-
-
-
-
2000-01
마요르카
라리가
28
11
5
2
-
-
-
-
2001-02
마요르카
라리가
30
6
1
1
9
3
-
-
2002-03
마요르카
라리가
32
14
6
5
0
0
-
-
2003-04
마요르카
라리가
32
17
2
0
7
4
2
1
2004-05
바르셀로나
라리가
37
25
1
0
7
4
-
-
2005-06
바르셀로나
라리가
34
26
0
0
11
6
2
2
2006-07
바르셀로나
라리가
19
11
2
1
4
1
3
0
2007-08
바르셀로나
라리가
18
16
3
1
7
1
-
-
2008-09
바르셀로나
라리가
36
30
4
0
12
6
-
-
2009-10
인터 밀란
세리에 A
32
12
2
1
13
2
1
1
2010-11
인터 밀란
세리에 A
35
21
4
5
10
8
4
3
2011-12
인터 밀란
세리에 A
-
-
-
-
-
-
1
0
안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2
13
1
0
0
0
-
-
2012-13
안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5
10
3
2
16
9
-
-
2013-14
안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4
2
0
0
0
0
-
-
2013-14
첼시
프리미어 리그
21
9
5
0
9
3
2
0
2014-15
에버튼
프리미어 리그
14
3
2
0
4
1
1
0
삼프도리아
세리에 A
18
2
0
0
-
-
-
-
2015-16
안탈리아스포르
터키 쉬페르리그
31
20
1
0
-
-
-
-
2016-17
안탈리아스포르
터키 쉬페르리그
30
18
0
0
-
-
-
-
2017-18
안탈리아스포르
터키 쉬페르리그
15
6
0
0
-
-
-
-
코니아스포르
터키 쉬페르리그
17
6
1
0
-
-
-
-
2018-19
카타르 SC
카타르 스타즈 리그
17
6
3
3
-
-
3
1

6. 나이 논란


다른 아프리카 선수들처럼 나이를 속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에투의 경우 논란을 유발한 사람이 소속팀 감독이었던 주제 무리뉴였다. 이 논란은 무리뉴가 2014년 2월, 한 인터뷰에서 '''"(현재)첼시에는 도무지 믿을만한 공격수가 없다. 한 명 있긴 한데 나이가 32세인지, 35세인지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에투의 전 여자친구 안나 바란카가 에투의 실제 출생연도가 1974년, 즉 13-14 시즌 기준으로 '''39세'''라는 인터뷰를 하면서 커져나갔다.# 특히 바란카의 말대로라면 바르사인테르에서 2년 연속 트레블을 했을 때의 나이가 35세라는 얘기니 사실이라면 이건 뭐 충공깽. 그러니 실제로 에투가 나이를 속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런 세계적인 선수가 20대에 레알 마드리드 유스에 있었다는 건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 어쨌든 자신이 한 인터뷰 때문에 난처해진 무리뉴는 공식적으로 한 말이 아니고 농담삼아 한 말인데 그걸 보도하는 것은 언론 윤리에 어긋난다며, 에투는 세계적인 클럽들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만 4번 한 선수라고 칭찬하며 수습을 시도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에투는 자신을 향한 논란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다가 3월 9일 29R 토트넘전에서 선제골을 넣자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 허리를 부여잡고 걷는 일명 노인 세리머니로 자신의 생각을 유쾌하게 표현하였다. 이 세리머니를 본 무리뉴는 논란을 잠재우는 데 좋은 세리머니였고 지금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6월 2일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독일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도 골을 넣고 또 한 번 노인 세리머니를 보여주었다.
한편 시즌 종료 후 무리뉴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난 오늘 33세가 됐다.[19] 어떤 멍청이가 날 늙었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번 시즌에는 늙은 내[20]가 젊은 선수들(페르난도 토레스[21], 뎀바 바[22])보다 더 나았다. 사람들은 내가 미국이나 중동에서 은퇴할거라 생각하지만 다음 시즌에도 챔스에 나가는 클럽에서 뛸 것이다. 현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주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 뛸 생각이며 37세가 되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도 참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때 좋았던 무리뉴와의 관계가 악화되나 싶었지만 에버튼 FC으로 이적할 때 인터뷰에서 "무리뉴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밖에 없다. EPL에 입성하게 된 것이나 엄청난 경기들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무리뉴 덕분이었다"고 말해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주었다. 은퇴 후에도 가장 먼저 축하를 해준 사람이 무리뉴였다면서 무리뉴는 축구를 하며 만난 사람들 중 최고 중 하나이며 위너이자, 타고난 리더라고 극찬하였다.

7. 여담


  • 바르셀로나 시절 호나우지뉴와의 불화설이 매우 유명했다. 두 선수의 불화설이 돌던 시기가 당시 바르사의 침체기와 맞물리면서 팀 분위기가 더 혼란해진 면이 있었다. 그래도 잘 화해했기에 지금은 공개적으로 생일 축하 영상편지를 띄울 정도로 친하다.
  • 리오넬 메시와도 친분이 깊다.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본 선수라서 아들처럼 생각하는 지 에투가 메시를 가리켜 "내 친아들만큼 사랑한다"거나 "내 아들같은 선수"라고 수시로 발언할 정도이다. 메시가 갓 데뷔했을 무렵 에투의 조언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고 고마움을 표현한 적도 있다.
  • 후배 선수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애정어린 충고를 많이 남기곤 한다. 대상은 주로 에덴 아자르마리오 발로텔리. 해당 선수의 팬들에게는 에투의 조언이 엄청난 명언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아자르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과체중 논란에 시달리며 먹튀로 전락하자 다시 한 번 재조명받고 있다.
  • 유명하게 떠돌아다니는 '가짜 일화'가 하나 있다. 삼프도리아와의 경기 전 당시 감독이던 주제 무리뉴가 에투에게 "넌 소심해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절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에투는 발끈해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 500달러를 걸고 내기했다. 그리고 박스 안에서 에투는 삼프도리아 수비수의 차징을 받는 순간 곧바로 시뮬레이션을 시전, 하지만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심판에게 딱 걸리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벤치에 앉아 있던 무리뉴는 대 폭소, 에투는 어필을 해보고 주변의 삼돌이 선수들 역시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에투의 표정을 보면 삐질거리는 게 눈에 보인다. 결국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에투는 심판 조롱죄로 2경기 추가 출장정지를 받게 된다라는 것이 내용. 헐리우드영상, 해당 일화를 팩트 체크하는 영상
  • [23]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공격수들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 /samɥɛl eto fis/. fils는 '아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단어다. 발음은 /fis/. 영어에 대응될 수 있는 단어로는 '주니어(junior, jr)'가 있다. 즉, '사뮈엘 에토 2세'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2] 윙어로도 뛸 수 있었으며, 윙어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3]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4] 실제로도 에투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아프리카 선수는 없다. 발롱도르를 수상한 조지 웨아조차 에투보다 확실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5] 트레블을 2번 달성한 선수는 에투를 포함해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제라르 피케, 세르지오 부스케츠, 다니 아우베스, 페드로 로드리게스, 바이에른 뮌헨의 마누엘 노이어, 토마스 뮐러, 제롬 보아텡, 데이비드 알라바, 하비 마르티네스까지 총 13명이 있다. 그러나 2년 연속 트레블과 2개 클럽에서의 트레블은 오직 에투만 보유한 기록. 참고로 에투를 제외한 12명은 각각 바르셀로나에서 7명이 08-09 시즌과 14-15 시즌, 뮌헨에서 5명이 12-13 시즌과 19-20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다.[6] 당시 레알 마드리드도 다시 에투를 데려올 의향은 있었으나, 이미 Non-EU 선수가 3명으로 가득찬 상태였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복귀는 무산된다.[7] LFP 기준 25골로 디에고 포를란과 동률이었지만 피치치(라리가 득점왕) 시상을 주관하는 마르카에서 에투의 시즌 득점을 24골로 기록하며 1골 차이로 피치치를 놓치게 된다.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도 무산. (포를란, 앙리 공동 수상)[8] 2006, 200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의 첫 골을 모두 에투가 득점했다.[9] 세부적인 계약 내용은 이브라히모비치 ↔ 에투 + 3500만 파운드.[10] 그리고 즐라탄이 떠난 바르셀로나는 다음시즌 챔스 우승을 차지한다. 안습..[11] 비단 에투뿐만이 아니라 몇몇 스타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라리가 선수들 중 국내에서 저평가를 받은 인물은 한두명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같은 시기 사라고사에서 뛰었던 디에고 밀리토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디에고 포를란. 게다가 같은 라리가 출신이라 해도 페르난도 토레스다비드 비야와 같은 스페인 국적의 선수들에 비하면 이들의 인지도는 거의 '''공기'''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월드컵에서의 활약이나 인테르의 트레블이 없었다면 국내에서 이들을 탑클래스의 스트라이커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꼭 저 시절까지 가지 않아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르히오 아구에로다비드 실바와 같은 선수들 역시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기 전까지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게다가 페르난도 토레스, 다비드 비야,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외모 때문에라도 인지도가 어느정도 있었는데 에투는 얼빠마저 없었다. 한국에서 축구선수를 평가하는데엔 은근히 얼굴이나 이미지가 비중을 꽤 차지하는데 에투는 둘 다 좋지 않았다. 혹자는 차라리 국적이라도 프랑스나 독일에 이름이라도 간지나는 카이저였다면 발롱도르 3회 수상도 했을거라고...[12] 이를 메시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메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에투에 대한 저평가는 리오넬 메시가 아직 전성기에 접어들기 전부터 있어왔으며, 오히려 에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메시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인 인테르의 트레블 전후의 일이다.[13] 문제는 무리뉴가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할때도 에투를 스트라이커로 사용한적은 없다. 당시 무리뉴는 에투를 오른쪽 윙포워드로 기용했다. 다만 토레스나 뎀바 바나 에투보다 원톱에서의 기량이 떨어졌기 때문에 에투를 기용한 것이고 애초에 첼시 보드진에서 무리뉴를 거쳐간 스트라이커라는 이유만으로 에투를 원톱 자원으로 영입한 것 자체가 판단미스였다.[14] 여담 항목 참조[15] 1998, 2002, 2010, 2014[16] 과르디올라가 처음으로 메시 폴스 나인을 활용한 것으로 잘 알려진 08-09 시즌 엘클에서도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한 메시와 스위칭하면서 윙포워드 역할을 잘 수행해 냈다. 인테르 시절 첫 시즌인 09-10 시즌 수비적인 임무도 상당히 부여 받았고 챔스 토너먼트에서 4-2-3-1 포메이션이 자리잡힌 후에는 우측면에서 거의 수비형 윙어 수준의 역할을 부여 받아 아주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트레블의 숨은 공신이 되었다. 10-11 시즌에는 왼쪽 사이드에서 플레이를 시작하는 경우가 좀 더 많아졌는데 부진의 늪에 빠진 공격진을 하드캐리하며 흑마법에 빠진 팀을 홀로 구해내곤 했다.[17] 당장 득점을 올린 결승전만 나열해도 00 올림픽 결승전, 0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 02-03 코파 델 레이 결승전(2골), 05-06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08-0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10 클럽 월드컵 결승전, 10-11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2골) 등이 있고 이 경기들을 모두 승리하였다. 또한 09-10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밀리토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하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통산 3경기 2골 1어시를 기록했다. 이 중에서 2006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아예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18] 링크[A] A B C 임대[19] 생일 기념 인터뷰였다.[20] 13-14 시즌 9골 5도움[21] 13-14 시즌 5골 5도움[22] 13-14 시즌 5골 3도움[23] 합성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세리머니다.(!) 2011 클럽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뒤 팀 동료가 건네준 비닐봉지를 들고 춤을 추며 세리머니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