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판보멀

 


'''마르크 판보멀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클럽'''
'''PSV'''}}}
{{{-2 47대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올리버 칸
(2002 ~ 2008)

'''마르크 판보멀'''
'''(2008 ~ 2011)'''

필립 람
(2011 ~ 2017)

'''네덜란드 축구 국가 대표팀 역대 주장'''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
(2008~2010)

'''마르크 판보멀
(2011~2012)
'''

로빈 판페르시
(2012~2014)

''' 네덜란드의 축구감독 '''
''' 이름 '''
'''마르크 판보멀'''
'''Mark van Bommel'''
''' 본명 '''
마르크 페터르 헤르튀다 안드레아스 판보멀
Mark Peter Gertuda Andreas van Bommel

''' 출생 '''
1977년 4월 22일 (47세) /
네덜란드 림뷔르흐주 마스고프시 마스브라흐트
''' 국적 '''
네덜란드
''' 신체 '''
187cm | 체중 85kg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포르튀나 시타르트(1992~1999)
'''PSV 에인트호번(1999~2005)'''
FC 바르셀로나(2005~2006)
'''바이에른 뮌헨(2006~2011)'''
'''AC 밀란(2011~2012)'''
PSV 에인트호번(2012~2013)
''' 감독 '''
네덜란드 U-17 대표팀(2014~2015 / 코치)
사우디 대표팀(2015~2017 / 코치)
PSV U-19(2017~2018)
호주 대표팀(2018 / 코치)
PSV 에인트호번(2018~2019)[1]
''' 국가대표 '''
79경기 10골(네덜란드 / 2000~2012)
1. 개요
2. 클럽 커리어
3. 국가대표 커리어
4. 플레이 스타일
5. 감독 커리어
6. 여담
7. 경력
7.1. 대회 우승
7.2.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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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네덜란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고, 한국에서는 '반 봄멜', '반봄멜'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0년대 PSV 에인트호번의 중흥에 일조하고, 2010년대 바이에른 뮌헨에 최초 외국인 주장으로서 다시 유럽의 강팀으로 만들고, 조국 네덜란드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에 일조한 미드필더. 네덜란드에서도 손꼽는 유능 자원이었으며, 바이에른 뮌헨의 최초 외국인 주장이었다. 커리어 내내 하나같이 쟁쟁한 클럽에서 활약했다는 점[2],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79경기나 출장했다는 점[3]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대 손꼽히는 홀딩 미드필더로 진가를 발휘했던 선수이다. 은퇴 후인 2014년부터 네덜란드 U-17 축구 대표팀, 사우디 아라비아,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석 코치를 맡다가, 2018년 6월 PSV 에인트호번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 클럽 커리어


고향 팀인 RKVV 마스브라흐트 유스에서 축구를 시작한 반 봄멜은 훗날 장인이 되는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지휘하던 포르투나 시타르트에 입단해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리고 PSV에 입단해서 박지성과 함께 리그를 깨부순 후 아르연 로벤, 마테야 케즈만 등과 함께 팀을 떠난다.[4]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린 저력으로 FC 바르셀로나에 합류한다.
하지만 FC 바르셀로나에서 반 봄멜은 거친 성격 때문에 차비 에르난데스, 에드미우송 등에게 밀려 있었고[5] 결국 한 시즌만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6][7] 바르셀로나 시절 주로 후보로 출장하긴 했지만 리그에서 24경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9경기에 출장하며 경기수를 채웠기 때문에 라 리가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메달을 받을 수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다시 주전을 차지하게 되었고, 은퇴한 올리버 칸에 이어 팀의 주장을 맡으며 뮌헨 최초 외국인 주장이 되었다. 그러나 반 봄멜이 주장이 된 08-09 시즌은 감독 클린스만의 삽질로 인해 성적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09-10 시즌에는 아나톨리 티모슈크가 영입되었지만 여전히 주전으로 중용되었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화를 가져간 후로도 그의 파트너로 활약하면서 팀의 분데스리가와 포칼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는 서서히 주전 자리를 잃어갔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루이스 구스타보까지 오면서 주전의 기회가 거의 없게 되자 10-11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AC 밀란으로 이적한다.
밀란에서 반 봄멜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 당시 팀은 피를로를 이적시키고 가투소와 세도르프는 나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외 플라미니 등은 할 말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밀란의 중원을 이끈 것이 반 봄멜이었다.
밀란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친 뒤, 에인트호번에 리턴하고 그 곳에서 은퇴한다.[8]

3. 국가대표 커리어


[image]
2000년 10월 7일, 키프로스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를 치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유로 2004 직전 자신의 부상 등으로 인해 두 대회 출전이 좌절된 바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16강에서 뉘른베르크의 전투라 불린 혈투끝에 포르투갈에게 패하고만다. 이후 마르코 반 바스텐 감독과의 불로 대표팀의 스텝이 총 사퇴하지 않는 한, 대표팀에서 뛰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유로 2008 이후 첫 친선 경기에서 대표팀에 복귀하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장인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에 의해 중용되었고, 나이젤 데 용과 함께 중원을 책임지면서 팀의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이후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가 은퇴한 후 주장으로 임명되었지만, 2년 뒤 유로 2012에서는 노쇠화로 인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조별리그 탈락에 일조하였으며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대표팀을 은퇴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젠나로 가투소하비에르 마스체라노처럼 빼어난 활동량과 뛰어난 대인 마크 능력을 갖췄는데, 상기한 두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하던 강건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는 강점 덕분에 중원 장악 능력이 뛰어났다. 단, 선수생활 말년에는 활동량과 기동력 면에서 여러 한계를 드러내면서 특히 대표팀에서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스피드는 평범한 편.
뛰어난 피지컬과 높은 활동량과 강인한 체력의 삼위일체를 갖춘 홀딩 미드필더였고, 피지컬과 활동량으로 상대 중원을 담구는 동시에 수비 라인을 보호하고 공을 빼앗아 피치의 중원을 장악하는 게 반 봄멜식 플레이의 정수. 여기에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인한 득점력도 가지고 있었으나 네덜란드 리그 이후로는 그리 발휘해 볼 기회가 없었다. 단점으로 성격이 불같고 다혈질이라 불필요한 카드를 받거나 팀 동료나 감독간의 불화가 잦았던 편. 반 봄멜은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마르코 반 바스텐이 임명된 후 갈등을 빚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바 있다. 장인인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선임된 이후 복귀했지만.
이런 성격이 단점으로도 작용하지만 피치 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주고, 필드 안팎으로도 적극적으로 의견 교환을 하며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알면 바로바로 인정하는 편이기 때문에 주장 역할에 어울리며 오랫동안 주장으로 활약했다.
재미있는 건 그런 플레이로 욕을 먹던 반 봄멜이 월드컵 결승전까지 팀을 캐리하면서 레드카드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플레이가 원숙하지 못했던 바르셀로나 시절 이런것 때문에 에드미우송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이적하는 원인이 된다. 그렇지만 사실 옐로카드는 무수히 수집해서 다음 경기에 못 나오는 일은 잦았어도 레드카드는 거의 받은 적이 없다. 어느 정도 통제하고는 있었다는 말.

5. 감독 커리어


마르턴 스텍켈렌뷔르흐 감독[9] 에게 발탁되어 네덜란드 U-17 코치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장인어른인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코치를 지냈으며 2017-18 시즌에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PSV U-19 감독을 지냈다. 2018년 다시 장인을 따라 호주 대표팀 코치를 지냈다가 PSV 1군 감독이 되었다. 2018-2019시즌에는 준우승을 했으나 2019-20시즌 PSV의 순위가 4위로 추락하면서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6. 여담


  • 2001년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딸 안드라와 결혼해서 2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 축구를 시킨다. 장남 2002년생 토마스는 축구선수로 MVV 마스트리흐트에 소속되어 있고 2004년생인 루벤은 에인트호번 유스팀에 소속되어 있다.
  • 한국인 팬들에게는 박지성과의 관계가 알려져 있다. 박지성이 네덜란드에 있을 시절에 만났는데, 박지성이 적응하지 못하던 시절에 어떻게 저런 애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압박을 줬지만 박지성이 부진을 탈출하자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고 사과했으며 그 반동으로 많은 지지를 보냈다. 자신이 꼽는 베스트 11에 꼬박꼬박 박지성을 집어넣을 정도.
  • 네덜란드 국적의 축구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 탓이기도 한 듯. 영어 인터뷰도 수준급으로 소화해낸다.

7. 경력



7.1. 대회 우승


  • 포르튀나 시타르트 (1992/93 - 1998/99)
    • 네덜란드 에이르스터 디비시 (1) : 1994/95
  • PSV 에인트호번 (1999/00 - 2004/05, 2012/13)
    •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4) : 1999/00, 2000/01, 2002/03, 2004/05
    • KVNB 베이커 (1) : 2004/05
    • 요한 크루이프 실드 (4) : 2000, 2001, 2003, 2012
  • FC 바르셀로나 (2005/06)
    • 스페인 라 리가 (1) : 2005/06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 : 2005/06

  • FC 바이에른 뮌헨 (2006/07 - 2010)
    • 독일 분데스리가 (2) : 2007/08, 2009/10
    • DFB-포칼 (2) : 2007/08, 2009/10
    • DFB-리가 포칼 (1) : 2007
    • DFL-슈퍼컵 (1) : 2010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 : 2009/10
  • AC 밀란 (2011 - 2011/12)
    • 이탈리아 세리에 A (1) :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 2011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

7.2. 개인 수상


  • 1999 네덜란드 올해의 유망주
  • 2001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
  • 2005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
  • 2005 네덜란드 골든 부츠
  • 2005 ESM 베스트 일레븐
[1] 시즌 도중 경질[2] 지금의 PSV만 기억한다면 놀랄 일이지만 봄멜이 활약하던 당시 PSV는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거두어낸 팀이다.[3] 반 봄멜의 출장경기수인 79경기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1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4] 케즈만과 로벤은 04-05 시즌에 첼시로 이적했다. 반 봄멜은 그 다음 시즌에 이적[5] 나머지 한 자리는 데쿠가 차지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니에스타마저 성장하며 교체선수에서도 우선순위가 밀렸었다.[6] 이 때의 앙금이 남아 있었는지 후에 201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상대 미드필더로 만난 차비와 이니에스타를 향해 시종일관 고함을 지르며 위협했다고 한다.[7] 재밌게도 정작 2006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반 봄멜이 차비, 이니에스타를 제치고 선발 출전했다. 이후 후반 61분경 헨릭 라르손과 교체되었다.[8] 여담으로, 은퇴 경기에서 퇴장당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박지성이 에인트호번에 임대를 다녀온 뒤, 은퇴를 하게 된다.[9] 1972년생 암스테르담 출신 축구인으로 1982년생 동명이인과는 달리 무명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