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
1. 개요
http://weiv.co.kr
1999년 한국의 락 등 대중음악의 역사를 정리한 평론가 신현준[1] 씨 등이 주축이 되어서 설립한 음악 웹진 사이트. 업데이트는 아주 가아끔 올라오는 수준이지만 izm과 달리 좀 더 인디/얼터너티브 쪽 음악들을 다룬다. izm에서는 다루지 않은 외국 인디 앨범이나 아티스트들에 대한 정보나 리뷰가 많은 편이여서 자료 가치는 상당한 편. 이 때문에 은근히 한국 인디 음악 팬덤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2. 상세
Weiv라는 명칭은 중의적으로, Wave를 소리나는대로 발음한것도 있지만, View의 애너그램도 들어가있다.
비단 외국 인디 록이나 얼터너티브 뿐만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을 발굴하고 재평가하는데도 신경을 많이 쓴 편이다. 그 예로 신중현, 산울림, 김민기, 들국화, 양병집 같은 네임드 뮤지션의 앨범 리뷰는 다 있다! 심지어 희귀 관련 앨범도 웬만해선 있다. 다만 90년대를 넘어서면 조금 애매해진다.
이외 브라질 음악, 이탈리아 모던/인디 록, 러시아 록, 중국 록 등 덕후급의 특집들이 산재하니 한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여기 출신으로 유명해진 필진으로는 차우진(나른고냥)[2] 과 최민우(daft), 장호연 등이 있다. 특히 최민우는 활동 초창기부터 신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력으로 음악 팬들 사이에서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G 드래곤 1집 리뷰.
단점이라면 사이트 디자인이 불친절하다. 검색도 불편하고 깨진 링크도 간혹 보인다. 허나 이것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아티스트 분류를 최근엔 업데이트하지 않아서 최근에 올린 리뷰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디자인 변경을 하려고 해도 자료량이 많아서 힘들듯.
3. 자유게시판(1999~2012)
...하지만 그보다는 자유게시판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유명했다. 줄여서 웨게라고 불렸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거의 DCinside 수준으로 유동닉이 왔다갔다하고 다소 카오틱했는데, 회원 가입제를 도입한 이후로는 그런 카오틱한 성격이 다소 순화되었다는듯. 운영자가 자유 게시판을 잠시 닫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음악적 정체성을 아주 중시하여 김윤아와 서태지는 거의 주적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특히 서태지의 7집 발매 당시에는 서빠와의 키배가 절정에 달했었다. 그때 웬만한 매체에서 '서태지의 음악 스타일에 찬반양론이 갈리고 있었다~' 식의 기사는 대부분 이곳에서의 키배가 주요 소스였다. 사실 공식 리뷰들도 서구권 락의 계보를 중시하고 엄격한 장르 구분의 잣대가 기본 논조인 곳이라 이런 순혈주의자들은 소녀시대 나오면서 다 수정주의로 전향했으니 이젠 상관없지만 장르적인 문법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서태지의 음악을 그다지 호의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때의 게시판 수준이 어땠는지를 극단적으로 요약하면 이와 같다. 요즘 디시와 같다고도 해도 이상할게 없다. 당시 기준으로 디시가 차라리 더 얌전해 보였을 정도다.
숱한 논란거리를 만들어 낸 뒤 웨이브 게시판에 학을 떼고 나간지 오래 된 모 인물의 경우는 예전과 비해 순화되고 난 게시판 분위기에도 그의 논지[3] 가 떡밥거리로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다만 후술할 사케르를 거치며 소도로 게시판 분위기가 완전히 이동한 2024-11-28 06:11:51현재는 그런 거 거의 없지만 잊힐 때마다 그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리고 동두천찰리라고 하는 고정닉 및 그 후계라고 볼수 있는(?) 일명 공구리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서남 방언을 기반[4] 으로 하면서 그 특유의 독설에 80년대 신스팝을 예찬하는 등의 독특한 게시물과 성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블로그도 있었는데 즉흥/상업적으로 변해버린 일렉트로니카씬과 한국 인디 음악씬을 까고[5] 디페시 모드를 필두로 한 80년대 신스팝이나 70~80년대 팝음악, 한국 가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논지였다. 다만 지금은 웨이브 필진 같은 제도권 음악평론가들의 압박 운운하는 영어 메세지[6] 만 남기고 무기한 휴지에 가깝게 블로그를 내린 상태. 대신 사케르에서는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7]
한때 디시스러웠던 웨이브의 모습은 일단의 자유게시판 상주인들이 웨이브에서 독립한 또다른 음악평론커뮤니티인 사케르에서 이어지고 있다가 해당 항목에서 서술한 2013년 분열사건 이후 또 거기서 파생된 소도에서 이어지고 있다. 기존 웨이브 자유게시판에는 각종 공연 홍보 광고글들만 가끔 올라오다가 2012년 사이트 리부트 이후로는 아예 게시판 링크가 사라졌다. [8]
일반적인 음악 커뮤니티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라서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데꿀멍한다. 안티 힙스터적인 입장으로 국내 인디는 물론 해외 인디, 특히 힙스터들이 열광하는 라디오헤드나 아케이드 파이어 같은 밴드들을 싫어하고 몇몇 이들은 국내 아이돌을 맹신적으로 찬양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본질은 힙스터였던 이들이 대부분인지 라디오헤드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상당히 많은 리플이 달렸었다.
4. 출신 유명인
ExCF의 관리인인 Dr. Gothick 역시 수 년 전부터 '고두익'등의 필명으로 리뷰기사를 작성한다거나, 게시판에 활동 혹은 눈팅하고 있으며('팔보채'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유동닉으로) 또한 Dr. Gothick 본인의 과거 흑역사와 적지 않게 관련된 곳인듯 하다.
그 외에도 여기를 거쳐간 뮤지션들의 경우 인디 록 밴드인 포니의 리더나 모 음악 웹진 창립 회원이자 필자와 뮤지션, 인디 뮤지션의 이권 지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기동 단편선[9] , 오지은(가수), 오도함, 로보토미[10] 등등이 있으며, 평론가 및 필진을 비롯한 업계 종사자들로는 idology 편집장 미묘, 사케르 및 긱가이드코리아 운영자 및 IRRLVNT Music 레이블 대표 영준비 등 이 게시판 출신 유명인이 꽤 많다.
5. 리부트
2012년, 사이트를 리부트했다. 게시판은 사라진 듯. 대신 구 홈페이지로 갈 수 있는 링크를 따로 마련했다. 2014년엔 구 홈페이지도 문제가 생기자 구 웨이브 글을 신 웨이브에도 복원하기 시작해 드디어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쉽게도 일부만 복원되었지만.
리부트 이후로 사이트에 글이 올라오는 텀이 굉장히 길어졌다. 2012년 이후 틈틈이 올라오던 weekly weiv 기획도 9월 이후로 더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2016년에 다시 활동 중이다. 간간히 글이 올라온다.
2019년에 사이트 개설 20주년을 맞았다.
6. 관련 문서
[1] 대학교수 및 음악평론가, 배우 신현준씨와 동명이인이다[2] 네이버 뮤직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이기도 하다. 야구선수 차우찬과 혼동하기 쉬운 이름인데 관련은 없다.[3] 포스트락 리스너인데, 정치적 성향이 친보수이며(디시인사이드풍 게시판 시절 weiv의 정치성향은 대다수가 친진보였다.), 복돌이를 옹호하는 논지를 펼쳤었다.[4] 초창기 동두천찰리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전라도 출신인데 어려운 가정환경과 못생긴 외모를 딛고 상경한후 어찌어찌 수도권 미군 클럽의 문물을 받아먹어서 당시 최신 외국 팝의 유행을 접했다는 이야기라는듯 하다. 상당기간동안 팬티스타킹 페티시에 관한 의견을 자주 피력해왔다.[5] 이 과정에서 청국장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6] 다만 블로그를 닫게 된 실질적인 원인은 블로그 관리자가 모 극단 홈페이지에서 극단 사장 혹은 단원들의 사진을 도용해서 사칭한 사건때문이라고 한다. [7] 단 소도에서 활동하는 '공구리'라 불리는 해당 인물과 유사한 문체를 쓰는 인물은 weiv 시절 신스팝 이야기 쓰던 공구리, 사케르시절 이탈로 디스코와 신스팝 찬양하는 블로깅을 하다가 사칭해서 인실좆된 공구리와는 별개의 인물이라는 설이 있음. 어떤 유동닉의 추측(@)으로는 소도 공구리는 3대째에 디시인사이드 락갤러라는 의혹도 있다고 한다. 그 의문점이 신스팝이나 이탈로 디스코 이야기를 소도와서는 이상하리만치 꺼내지 않는다는것. 이 의혹에 소도대 공구리는 "요즘 흥미가 떨어졌고 음악취향도 사이클이 있다"는 식으로 해명.[8] 구 게시판 자체는 살아있으나 지금은 홍보글조차도 없고 어느새 2013년 사케르 분열기를 전후해서 문학인 기믹(...)을 갖고 있는 모 고정닉이 뻘글을 좀 꽂았다(...).[9] 당시 디뮤라는 HN으로 활동. 별건 없고 인디뮤직에서 중간 2음절만 따온거라 한다.[10] 당시 똘똘이라는 HN으로 활동. 사케르 운영자 영준비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정모에서도 '똘똘이'라고 쓰여진 모자(...)를 쓰고 왔다는 증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