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페시 모드

 

[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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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디페시 모드
Depeche Mode
'''
'''멤버'''
'''마틴 고어, Dave Gahan, 앤디 플레처, 전 멤버(빈스 클라크, 앨런 와일더)[43]'''
'''입성 연도'''
'''2020년'''
'''후보자격 연도'''
'''2006년'''
'''}}}#ffd700 후보선정 연도}}}'''
'''}}}#ffd700 2017년, 2020년}}}'''

[image]
'''Depeche Mode'''
'''출신'''
잉글랜드 [image] 에섹스 베이즐던[2]
'''장르'''
신스팝, 뉴웨이브, 얼터너티브 록, 일렉트로닉 록
'''활동'''
1981 ~
'''소속'''
Mute[3], Sire, Reprise, Capitol, Virgin, Columbia,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4]
'''링크'''

위 프로필 사진은 2017년 Spirit 앨범 프로모 사진[5]. 왼쪽부터 앤디 플레처, Dave Gahan, 마틴 고어
1. 소개
1.1. 결성 과정
1.2. 80년대
1.3. 빈스 클라크 탈퇴 이후
1.4. 80년대 초
1.4.1. 1983년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
1.4.2. 1984~1985년 히트작이자 문제작 Some Great Reward
1.4.3. 80년대 중후반
1.4.4. 90년대 초, 리즈시절과 앨런 와일더의 탈퇴
1.5. 3인조로 새출발하다
1.5.1. 2000년대 이후
2. 멤버
2.1. 마틴 고어
2.2. Dave Gahan
2.3. 앤디 플레처
3. 전 멤버
3.1. 빈스 클라크
3.2. 앨런 와일더
3.2.1. 여담
3.3. 가사의 특징
3.4. 종교관
4. 음악계에 미친 영향
5. 디스코그래피
6. 뮤트 레코드와의 관계
7. 여담

[image]
1984년 이들의 이름을 미국 시장에 알린 <People Are People> 발표 당시.
[image]
1987년 Music for the Masses 발매 당시 프로모 사진. 이 앨범 발매 후 로즈볼 스태디움에서 성황리에 투어를 마치며 미국 시장에서도 확실히 자리잡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걸린 프로필 사진도 이 사진이다.
[image]
1993년 Songs Of Faith and devotion 발매 시절의 사진.
[image]
앨런 와일더 탈퇴 후 모습. 2009년 Sound of The Universe 발매 당시.

1. 소개


“They’re the biggest cult band in the world”

"그들은 세계 최대의 컬트 밴드입니다"

안톤 코빈 NME

'''뉴 오더, 펫 샵 보이즈와 함께 80년대 신스팝을 이끌고 심지어 헤비 메탈계에까지 영향을 준 위대한 밴드.''' 마릴린 맨슨, 나인 인치 네일스, 람슈타인, 스매싱 펌킨스, 데프톤즈, 트래비스, 린킨 파크, 콜드플레이 등 당대 최고의 밴드들이 심심찮게 그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1980년대 뉴웨이브 열풍이 유행할 당시에 결성되었던 4인조 신스팝 밴드로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뉴 오더, 펫 샵 보이즈와 함께 2010년대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신스팝적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2014년 NME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0대 아티스트' 중 37위에 들었다. 링크 매머드 신스 사운드와 음산한 기타 리프를 동등하게 다루는 아레나 지향형 록 사운드는 디페시 모드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되어 있다.
2017년 시점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앨범 판매량이 1억 장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음반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밴드이다. 그해 빌보드 200차트에서 주간 5위를 찍었는데, 판매량의 상당 부분이 실물 앨범이었다고 한다. 앨범 판매를 집계하는 빌보드 200 차트는 전통적인 앨범 판매/다운로드 건수에 더해, 한 앨범에서 1500번 이상 유료 스트리밍 혹은 10곡 이상이 다운로드 될 경우 각각 1건(Unit)으로 집계돼 차트에 반영되는데, 2017년 4월 첫째 주 빌보드 200차트에 따르면 당시 발매된 Spirit 앨범 판매가 6만 4천 건이었고, 그중 6만 2천 6만 2천 건이 실물 앨범 판매량이었다고 한다. 링크
물론 투어는 말할 것도 없다. Spirit 활동 당시 투어인 <Global Spirit Tour>는 2017년 5월 5일에 시작해 20187월 25일에 마무리한, 무려 130번 무대에 섰던 대장정이었으며, 이는 그들의 투어 역사상 두 번째로 긴 기간이었다.[6]

1.1. 결성 과정


초창기 멤버는 Dave Gahan과 마틴 고어(Martin Gore), 앤디 플레처(Andrew Fletcher), 빈스 클라크(Vince Clarke)였다.
사실, 디페시 모드의 전신이 되는 밴드가 이미 있었다. 원래는 학교 친구인 앤디 플레처와 빈스 클라크는 No Romance in China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그런데 1980년 어느날, 베이즐던(Basildon)에 있는 반 고흐(Van Gogh)라는 에서 마틴 고어를 만나 신시사이저를 추가한 3인조 밴드가 되었고, 밴드명을 '''컴퍼지션 오브 사운드(Composition of Sound)'''라고 바꾼다. 이후 Dave Gahan이 오디션을 통해서 우연히 보컬로 합류한다.
사실은 말이 오디션이지 순전히 우연으로 결정되었는데, 컴퍼지션 오브 사운드 멤버들이 프론트맨 역할을 할 메인 보컬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을 때, 지역의 스카우트 홀[7]에서 누가 데이비드 보위의 히어로즈를 부르는 걸 빈스 클라크가 듣고 인상적이어서 합류 제의를 했다고 한다. Dave가 훗날 말하기를, 사실 그 노래는 잼 세션 중에 여러 사람이 뒤섞여 부른 거였는데 그냥 '''내가 했다'''라고 대답하고 합류 제의에 응했다고. 링크
그리고 2주 후 빈스 클라크가 Dave에게 전화를 걸어 오디션을 치르게 했다. 이때 세 곡이 주어졌는데, 두 곡은 빈스 클라크가 쓴 곡이었고, 한 곡은 록시 뮤직의 곡이었다. 빈스 클라크의 회고에 따르면 Dave가 자신의 자작곡을 불렀을 땐 그저 그랬는데, 록시 뮤직 노래는 꽤 잘해서 합격시켰다고 한다. 링크
보컬이 정해지면서 밴드명이 바뀌었는데, Dave Gahan이 우연히 테이블에 놓인 프랑스의 패션 잡지 Depeche Mode를 보고 즉석에서 결정했다고 한다. 링크 의미는 패션을 빠르게 전달한다(fashion dispatch)는 뜻으로, 그 뜻에 걸맞게 유행을 주도하는 그룹이 되고 싶어서였다고.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유행통신 정도. 디스패치와 어원이 같다.
이후 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인지도를 쌓았는데, 런던의 어느 에서 공연을 했을 때 뮤지션 Daniel Miller가 자신이 세운 인디 레이블인 뮤트 레코드에 들어오라고 50 대 50으로 제안을 한다. 거액을 제안하는 회사들도 많았지만, 그가 가장 믿을만해서 뮤트 레코드에 들어간다. 링크
앤디 플레처의 말에 따르면 당시 멤버들은 돈보다는 Daniel Miller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의 레이블을 선택했다고 한다. 2017년 인터뷰에서 만약 당시에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에 와서 이 인터뷰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링크
이렇게 해서 선보인 데뷔 싱글 'Dreaming Of Me'가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1.2. 80년대


1집은 빈스 클라크가 대부분의 곡을 썼는데, 여타 신스팝 밴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발랄한 음악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음악적인 견해 차이와 스튜디오 작업을 선호했던 빈스 클라크와 자주 다투었는데 Yazoo 다큐멘터리를 보면 빈스 클라크는 너무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얻은 성공이 부담스러웠고, 대중들에게 대처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믿을수 없을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럼으로써 불행했었다고 고백했다. 그 당시 기자들이나 음악쪽에 종사한 사람들의 인터뷰도 같이 있는데 그 당시엔 디페시 모드와 빈스 클라크 모두 순진했었다고.
빈스 클라크와 더불어 앤디 플레쳐도 인터뷰에 응했는데 그는 "그는 이미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으며 결국, 원년멤버였던 빈스 클라크(Vince Clarke)는 탈퇴하게 된다.[8] 그러나 빈스는 자기신념이 확고했던 사람이었고, Alison Moyet과 Yazoo를 결성해 성공을 거둔다. 이후 The assembley를 거쳐, 앤디 벨과 함께 이레이저를 결성해 자기 만의 길을 갔다.

1.3. 빈스 클라크 탈퇴 이후



1.4. 80년대 초


1982년 2집부터는 마틴 고어가 팀의 주도권을 쥐면서 전곡을 작사 작곡했으며, 1983년에 발매된 3집부터는 빈스 클라크를 대신해서 앨런 와일더(Alan Wilder)가 큰 역할을 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발랄 콘셉트에서 아예 벗어난 건 아니었다.
2집 수록곡 <Meaing of Love> 뮤직비디오를 보면 뽀뽀뽀가 따로 없다. 참고로 앨런 와일더가 합류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앨범 참여는 3집부터이지만, 방송 활동은 2집부터 했었다. 뒤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는 꽃미남이 앨런이다.
사실, 가사 내용은 동화적인 뮤비 내용과는 딴판이다. '''From the notes that I've made so far Love seems something like wanting a scar(지금까지 내가 만든 노트에서 사랑은 상처를 원하는 것 같다)'''라며 사랑의 의미를 확신하지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후 가사의 방향성이 암시되는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활동은 보이밴드 이미지로 갔다. 지금도 간간이 회자되는 충격과 공포의 방송이다.

독일의 TV 쇼에서 닭을 안고 2집 타이틀 곡 <See You>를 립싱크하는 모습
2015년에 Dave Gahan이 당시를 회상한 인터뷰. 텍스트본 2017년 방송에서도 회자된 흑역사 링크 다행히도 이 방송을 끝으로 이런 예능에 나갈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독일이다.


1.4.1. 1983년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


이 해에 발매된 앨범 <Construction Time Again>은 2017년 앨범 Spirit 공개 후 다시 거론되는 앨범인데, 사실상 이 앨범부터 밴드의 색깔이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있다. 링크
이는 이 앨범에 사회를 다룬 곡들이 다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폐기물에서 나오는 소리를 활용하는 등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실험적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랄한 멜로디와는 달리 'Everything Counts'는 여피 시대 기업의 탐욕을 냉소적으로 비판했으며, 'The Landscape Is Changing'은 환경 재앙을 우려하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었다. 또한 'Pipeline'은 폐기물을 이용한 소리를 넣어 노동 문제를 다루었다고 한다.
당시는 동서 냉전 시기였기 때문에 언론에 의해 막시스트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틴 고어는 당시 인터뷰에서 선진국이 후진국을 착취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사회주의에 대해 말했을 때, 그것은 영국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제 사회주의를 의미한다(The thing is when we talk about socialism, we don’t mean “English Socialism” we mean “International Socialism”.)'''라는 발언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Construction Time Again>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인 'And Then'의 가사를 보면 '''Let's take the whole of the world/The mountains and the sand/Let all the boys and the girls/Shape it in their hands'''라는 구절이 있다. 즉 세상을 알아서 다시 만들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며, 앨범의 제목과도 일맥상통한다.
디페시 모드 멤버들은 대부분 노동 계급 출신이었기에 당시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링크 이는 80년대 초 잡지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는데, 메인 보컬 Dave Gahan은 '''왜 우리 나라에 미군기지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마가렛 대처의 군비 축소 정책을 깐다. 링크 참고로 마가렛 대처는 군비 축소 효과를 보기 위해 미국의 군사 정책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앨런 와일더는 유일하게 중산층 출신이었으나, 2000년대 초반 팬이 '''마가렛 대처를 단어 하나로 표현해 보라'''고 질문하자, '''Senile(노망난)'''이라고 했을 정도로 대처를 극혐했다.링크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마틴 고어는 당시 인터뷰에서 '''왜 사람들이 정치에 발을 들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And Then'의 가사에서 언급한 혁명도, 무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라는 의미였다고 하며, 이는 2017년에 발표한 앨범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생각이다.

I really don’t understand why people go into politics – what makes someone at 16 or 17 decide to go into parliament? It’s got to be people themselves. People’s attitudes have got to be changed. For instance, when I wrote “All we need’s universal revolution”, I didn’t mean, like, everyone to take up arms, but more a total change of attitude.

저는 사람들이 왜 정치에 입문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16세나 17세의 사람들이 국회로 진출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우리에 필요한 모든 것은 보편적 혁명"이라고 썼을 때, 저는 모든 사람들이 무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완전히 바꾸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무렵부터 마틴 고어와 앨런 와일더는 윤리적 이유로 인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9]

1.4.2. 1984~1985년 히트작이자 문제작 Some Great Reward


이후에는 음악 성향이 어둡고 서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데뷔 앨범인 Speak & Spell과 90년대 초 앨범 Violator를 들어보면 같은 밴드가 만들었다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 인더스트리얼, 고딕을 대폭 수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의 성향은 점점 동시대 밴드들과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포텐은 초기의 명반으로 꼽히는 Some Great Reward에서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가사 역시도 BDSM, 페티시, 신성모독, 간통과 같은 매우 불건전한 주제를 내세워 팝 음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이들의 핵심 주제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문제작 'Master and Servent'는 제목부터가 BDSM을 암시하여 논란이 됐었고, 이를 계기로 디페시 모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BDSM이 됐다.
다만, BDSM을 다루었다고 해서 SM 플레이를 직접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등장한다. 연인 관계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거나 어느 한 쪽에게 리드당하는 것을 이러한 관계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곡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BDSM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 불평등에 대한 일종의 풍자라는 해석도 있다.
빌보드지 에디터가 꼽은 디페시 모드의 명곡 20선 기사에서도 단순히 BDSM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곡으로 해석했다. 링크
참고로 마틴 고어는 이 앨범을 준비할 시기에 극도로 보수적인 기독교인 여친과 헤어지고 베를린으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호기심에 현지의 BDSM 클럽을 탐방한 적은 있으나, 이를 주제로 다룬 곡은 한두 곡에 불과하다고.링크[10]
이들의 미국 시장 첫 히트곡 'People Are People'도 사람에 대한 차별과 증오를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았기에 당시에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노래로도 인식되었지만, 게이 커뮤니티의 지지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 노래는 미국 시장에는 1985년에야 알려졌으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3위까지 올랐다고 한다. 링크
특히 'People Are People'은 독일에서 처음으로 1위를 했는데, 이 곡이 1984년 서독 올림픽 관련 TV 방송에서 BGM으로 쓰인 것이 계기였다. 덕분에 이들의 인기가 치솟자,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는데, 인터뷰를 못 따낸 매체에서는 주작까지 저질렀다고 한다. 대표적인 매체로는 지금도 10대 타깃으로 발행되는 팝음악 잡지 <Bravo>가 있는데[11], 예를 들면 이들이 20세 이하의 모든 사람들을 혐오한다는 식이었다.링크 이런 류의 스토리가 먹혔기 때문에 잡지는 잘 팔렸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Bravo>의 표지를 장식했던 디페시 모드의 모습이다. #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표지에 등장한 연예인들의 모습 링크
<Blasphemous Rumours>는 원래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으나 종교계의 거센 반발로 인해 방송 금지를 먹었기 때문에 <Sombody>를 더블 타이틀 곡으로 밀었다고 한다. 링크 이 곡에는 타악기 샘플이 쓰였는데 초기 인더스트리얼 음악 스타일이 이 곡을 통해서 나타났다.
여담이지만, 1985년도에 국내에서 발매된 '''Some Great Reward''' 앨범을 보면, 곡 제목마다 번역이 되어 있었다. 링크 여기서는 <Master And Servent>가 삭제된 채로 발매되었다.
반면 본국에서 신성모독 논란이 있었던 <Blasphemous Rumours>는 아무 문제 없이 발매되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단체의 세력이 강함을 생각하면 매우 의외인 부분인데, 가사의 내용이 자살을 기도한 소녀가 자살에 실패한 후 마음을 고쳐 먹고 신앙심을 갖고 살았으나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소녀의 오빠가 이를 슬퍼하며 하느님의 유머 감각이 역겹다고 비난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원 출처
다만, 유교 사상이 강한 우리나라 특성상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높으신 분들은 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묘사한 부분에 공감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당시는 해외 음반도 검열을 해서 발매 여부를 결정하던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이었다.
이처럼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20대 초중반 밴드로서는 파격적으로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었기에 이들은 종교적인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청소년들,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이 시기에 이들은 공산주의 진영인 동구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링크 당시는 냉전 시대라 서방 서계의 음악이 금지되었음에도 이들은 1985년헝가리폴란드에서 첫 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음악이 동구권에서 특히 인기를 끈 이유로는 음악의 우울함과 인더스트리얼적인 성향이 거론되며, 공산주의 정권에 배신감을 느낀 동구권 젊은이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1.4.3. 80년대 중후반


다음 작품인 Black Celebration은 잘 만들어진 앨범이기는 했어도 전작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많았으며 상업적으로도 부진한 편이었다. 다만, 이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인더스트리얼과 신스팝으로 대변되던 이들의 전기와 록을 받아들이는 후기를 이어주는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음 앨범인 <Music For The Masses>에서 이들은 본격적으로 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평론과 대중들은 이러한 변화에 꽤 호의적인 편이었다. 이 앨범을 계기로 이들은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도 굉장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고, 이 시기에 멤버들은 미국의 로즈볼에서의 라이브 실황을 담은 앨범인 <101>을 발매한다. 성황리에 끝난 이 공연은 <Music For The Masses> 앨범 활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투어이자, 101번째 투어였다. 앨범 명칭이 <101>인 것이 그래서이다.
이 공연 실황은 밥 딜런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D.A. 페네베이커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으며, 이듬해인 1989년에는 시사회까지 했다.

이 공연 후 음악지 <Spin>의 인터뷰에 응한 Dave는 '''공연이 끝난 후 어떻냐?(What about after a gig?)'''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공연이 끝난 후 폐쇄공포증을 느끼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만약 감정이 끓는점까지 치솟아 누군가를 해칠 것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온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내용이다. 후술하겠지만, 이후에 그는 약물중독에 빠지며, 7년 후에는 자살 기도까지 한다. 링크
When it comes to a close situation in a small room, I often feel very claustrophobic. I don’t like that kind of intensity. Sometimes you get to the boiling point where you actually think you can kill someone, just to release some energy or to find out what it feels like. I don’t know if I could actually do it if it came to it, but I’m not scared of being killed myself.

1.4.4. 90년대 초, 리즈시절과 앨런 와일더의 탈퇴


다음 앨범인 Violator는 팬들과 평론가들 양쪽 모두에게 극찬을 받는 명반으로, 독일의 크라우트 록과 블루스, 일렉트로니카를 모두 섞어 전기와 후기를 가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앨범이었다. 빌보드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 상위권을 모두 석권하여 이들이 미국 시장까지 정복한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음반을 발매한 후에 메인 보컬 Dave Gahan은 미국의 여러 밴드들에게 흥미를 느꼈는데 그 중에서 제일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제인스 어딕션이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그런지, 얼터너티브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이들을 보고 자신이 10대 시절 펑크 밴드 댐드를 봤을 때 느꼈던 전율을 다시 느꼈다고 한다.
이 밴드의 보컬리스트 페리 페럴을 동경해서 그런지 락커 스타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 부인의 취향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부인이 머리 긴 남자를 좋아했다고. 이 여성은 원래 디페시 모드의 미국 홍보 담당자였는데, 제인스 어딕션 관련 업무도 담당하고 있어서 그에게 미국 얼터너티브 록을 소개했다.
얼터너티브, 가스펠, 트립 합, 인더스트리얼 록 음악까지 수용한 Songs Of Faith and Devotion은 미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게 되고, 그들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으나 Dave의 약물 중독과 이혼, 자살 기도, 마틴 고어의 알코올 의존증, 앤디 플레처의 신경쇠약으로 인해 밴드의 내부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앨런 와일더는 탈퇴하게 된다. 당시 멘탈이 멀쩡했던 멤버는 앨런 와일더밖에 없었다
당시 투어는 158일간 이어진 밴드 사상 가장 긴 투어였는데, 투어의 규모가 큰 만큼 통제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 번은 이들의 소속 레이블인 뮤트 레코드의 사장 대니얼 밀러가 투어에 나가 봤는데 공식 마약상을 소개받고 경악했었다고. 링크
참고로 대니얼 밀러는 뮤지션이 마약을 하는 것이 창의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인물이었다. 디페시 모드 멤버들이 데뷔 당시 대부분 10대였기 때문에, 마치 보호자가 된 심정으로, 이들이 마약에 손대지 않도록 보호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고, 멤버들의 부모님도 일일이 다 만나 봤다고 한다. 링크
게다가 원래 멤버들이 소속사 사장 대니얼 밀러를 뮤지션으로서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밀러 앞에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처음엔 회사가 워낙 작아서 사장이 운전 기사 역할까지 했고, 스튜디오에선 공동 프로듀서로서 함께했으니 애초에 일탈을 할 틈이 없었다.
덕분에 80년대 시기의 대부분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되었으나[12] 80년대 후반부터 투어가 많아지면서 슬슬 일탈을 하기 시작했다. 링크
이들의 최전성기였던 90년대 초반은 마약 문제가 심각한 시기이기도 했다.
디페시 모드 관련 인터뷰를 집대성한 전기물 <Stripped: Depeche Mode>에 따르면 마틴 고어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Martin Gore: There were diffrent levels of debauchery for all the diffrent members of the band. I think I was worse on the Violation tour - there was a lot of ecstacy still lying around. we use to go out all the time and take quite a lot.

밴드의 다른 모든 멤버들의 방탕의 정도는 달랐습니다. (90-91년)Violation 투어에서는 제가 더 심각했던 것 같아요. 거기엔 다량의 엑스터시가 늘 놓여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밖에 나가서 꽤 많이 복용하곤 했습니다.

이미 80년대 후반에 마틴 고어는 당시 클럽에서 유행하던 엑스터시를 복용해 봤고, Dave도 같이 했었다
다만 마틴은 부작용으로 우울증을 경험하고 엑스터시를 바로 끊었지만, Dave는 점점 강한 마약을 찾다가 헤로인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같은 책에서 앤디 플레처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인터뷰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40세 미만은 본인 세대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Andy fletcher: "Ecstacy has never been my choice of drug-most people under the age of 40 have tried. but, you never know, I could be Prime Minister one day; I just tasted it and spat it out again."

(당시) 40세 미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도했던 마약인 엑스터시는 결코 저의 선택이 아닙니다. 하지만 누가 알겠어요. (복용을 한다면) 제가 언젠간 총리가(된 듯한 기분이) 될 수도 있겠죠. 저는 그냥 맛만 보고 뱉었어요.

이 때문에 당시 멤버 전원이 엑스터시를 복용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앨런 와일더의 복용 여부는 확인되지 않으나, 타인의 마약 복용에 굳이 개입하지는 않았던 입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 팬이 먀약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Take ’em or leave ’em.(하든지 말든지)'''라고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답변했었다. 링크
다만, 표현은 그렇게 했어도 실제 앨런은 Dave의 마약 복용을 말리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오랜 시간 틀어박혀 있는 워커 홀릭이라 유흥과도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Viollator 다음 앨범인 <Songs Of Faith and Devotion>의 경우, 그래서 여러모로 앨런의 공헌이 컸다.
또한, 당시 어지간한 젊은이들 대부분이 엑스터시를 해 봤다는 앤디 플레처의 말은 변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훗날, 60~70년대에 출생한 영국 정치인들이 정부 요직을 맡은 후, 젊은 시절 마약 투약 흑역사가 뒤늦게 드러나 빈축을 샀는데 이들이 했던 마약은 무려 코카인, 아편으로, 그나마 소프트 드러그로 분류되는 엑스터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마약이었다. 그리고 보리스 존슨 총리는 코카인은 흡입했으나 재채기를 해서 몸에 흡수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링크 [13]
다만, 1992년, <Songs of Faith and Devotion> 앨범을 녹음했을 당시부터는 멤버들도 심각성을 인식했고, 앨범 발매 후, 투어에 들어갔을 때는 멤버들이 데이브를 위해 심리 치료사를 붙여 주기도 했다. 문제는 데이브가 심리 치료사를 찾지 않았다는 것. 당시 데이브는 마틴에게 '''너도 폭음을 하는 주제에'''라고 말하며 화를 냈다고 한다. 링크

1.5. 3인조로 새출발하다


투어가 끝난 후 마약 중독이 악화된 데이브는 마약을 끊기 위해 여러 번 재활원을 찾았지만, 재발이 반복됐고, 1996년 <Ultra> 앨범 녹음 도중에는 목 상태까지 악화되어 도중에 녹음을 중단한다. 그리고 그해 5월 28일에는 데이브가 마약 과다복용으로 2분간 심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응급조치로 간신히 소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자 그대로 죽었다가 깨어난 것인데, 실제로 당시 기사에선 임상적 사망을 겪었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당시 마틴은 상황이 절망적임을 절감하고, 데이브가 소생하지 못한다면 원래 썼던 곡들을 본인의 보컬로 녹음해 완성할 생각까지 했었다고. 하지만 멤버들은 포기하지 않고 데이브가 재활을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1997년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몇몇 사람들은 앤디 플레처에게 '''왜 보컬을 교체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앤디 플레처는 '''데이브는 절대로 나에게 마틴 대신 다른 작곡가를 쓰라고 하지 않았다'''며 데이브의 목소리와 마틴이 쓴 곡이 디페시 모드라고 했다.
훗날,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Tim Simenon은 당시를 회고한 인터뷰에서 정규 앨범이 나올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뮤트 레코드의 사장 대니얼 밀러가 일단 3곡을 작업하자 했다고 한다.
녹음 도중에 Dave가 병원에 실려가고, 임상적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약 2주 후에 Dave는 신원 보증인을 대동한 상태에서 'Barrel of a Gun'을 녹음했다고 한다.
링크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심기일전하여 제작한 1997년 재기작 <Ultra>로 그들은 또 한번 건재함을 알렸다. 이후 3인조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차트 성적은 좋았지만, 이 앨범은 유일하게 투어가 없었던 앨범이다. 이는 멤버들이 투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또 받고 싶어하지 않았고, 특히 보컬 Dave Gahan의 건강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서였다.
그럼에도 매체 인터뷰 요청은 쇄도했다. 이는 1996년 Dave의 약물 사고로 인해 이들이 사회면에 등장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게다가 심정지 상태에서 소생한 것 자체가 대중들의 흥미를 끌 만한 가십 거리가 되었고, 저 당시 전 세계적으로 헤로인 중독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다른 유명인들의 헤로인 중독 문제와 맞물려 거론되었던 것이다(...)[14]
당연히 그중에는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기레기도 섞여 있었으나, Dave는 고해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중독 체험을 적나라하게 털어놨는데, 이는 화장실에서 헤로인을 흡연하는 청소년들을 실제로 봤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하는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치부를 털어놨다는 것이다. 1997년 Q 매거진 3월호 인터뷰가 그중 하나인데, 1994년 연말에 아들이 자신을 보러 왔을 때 마약 복용 사실을 들켰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15]
이듬해인 1998년에 베스트 앨범인 <The Singles 86-98>를 발매하면서 투어를 재개한다.
이 앨범엔 신곡으로 Only When I Lose Myself가 실렸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컬 Dave Gahan은 투어 기간 내내 전문 상담 기관의 상담 프로그램을 성실히 따랐다고 한다. 관련 기관 상담사와 지속적인 미팅을 가졌던 것인데 이 기사를 통해 미국의 재활 프로그램이 어떤 식인지를 엿볼 수 있다.[16]

여담으로 훗날 2017년 인터뷰에서 Dave Gahan이 투어 뒷얘기를 털어놓았는데 그에게는 술을 전혀 안 마신 상태에서 참여한 생애 첫 투어였다고 한다.
와인 1잔 정도는 괜찮았기 때문에 당시 멤버별로 와인이 배분되었으나, Dave는 자신이 일단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폭음하는 스타일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써 참고 있었다가 탈의실에서 멤버들이 다 보고 있을 때 와인 6~7병을 벽에 던졌다고 한다링크 원문은 '''“I remember launching six or seven bottles of wine at the wall because I couldn’t drink it”'''
참고로 마틴은 1993-1994년 투어 당시에는 하루에 와인을 두 병이나 마셨고, 결국 과음으로 인해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후 술을 하루에 와인 두 잔으로 줄였지만, 아예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 Dave에겐 주변에 애주가가 있다는 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훗날 2003년 독일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1996년의 마약 과다 복용 사건 이후, 금주를 하며 절제된 삶을 잘 유지하고 있는 데이브의 자제력에 경의를 표한다며 동료를 칭찬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은 다행히도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없었다고.
다만, 2005년 무렵 마틴이 이혼으로 인해 과음 습관이 재발하자 이후 그도 술을 끊어, 과거 모든 멤버가 술을 즐기는 주당 밴드였음에도 밴드 내에 금주자가 2명으로 늘어났다. 유일한 음주자가 앤디 플레처인데, 주량을 많이 줄인 게 일주일에 와인 5병이라고 한다.

1.5.1. 2000년대 이후


2001년 밀레니엄 첫 앨범인 Exciter가 발표되었고, 이후 Playing The Angel(2005), Sounds of the Universe(2009), Delta Machine(2013), 2017년 발매된 최근작 Sprit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앨런 와일더의 탈퇴 때문인지 편곡이나 작곡 면에서 탈퇴 이전보다 못하다는 평도 여럿 있는 듯 하나 전체적인 앨범의 퀄리티는 준수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
2016년 인터뷰에 멤버들이 설명하는 역대 앨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2017년 3월 17일에 14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Spirit이 발매되었다. 메타크리틱이나 롤링 스톤을 비롯한 평단에서는 비교적 호평이지만, 팬들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은편. 눈에 띄게 새로운 시도는 없지만 이 정도면 수작이라는 평부터, 이제 똑같은 방식이 진부하다는 평도 있는데 전체적으론 실망스럽다는 평이 우세한 편.
2017년 독일에 기반을 둔 음악 웹진 NBHAP가 디페시 모드 역대 모든 앨범들의 최악의 부분과 최고의 부분을 분석한 기사를 내놨다. 링크
앨범으로서 수록곡들과의 유기적인 조화를 중시하는 관점이므로, 워스트 파트로 지적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곡 자체의 완성도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2017년,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 공개 40주년을 맞아 이 곡을 커버한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앞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룹 탄생의 계기를 만든 곡이고, 마틴 고어와 Dave Gahan이 보위 팬이기도 하니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곡.

2017년 투어에서 보컬 Dave Gahan이 최초로 랩을 시도했다. 전체 영상
여기에 추가된 랩은 1997년 <Ultra> 앨범의 타이틀곡 'Barrel of a gun'을 부를 때 마지막에 힙합 그룹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17]의 곡 <The Message>에 나오는 랩을 인용한 것이다.
인용된 가사는 '''Don't push me ’cause I'm close to the edge/I'm trying not to lose my head(It's like a jungle sometimes/It makes me wonder how I keep from going under)'''으로 빈민가 흑인들의 비참한 삶을 묘사한 내용이라고 한다. 링크[18]
사실, 원래는 마틴 고어가 'Barrel of a gun'을 쓸 때 랩의 느낌을 가미하려고 의도했는데, 이 곡의 가사 내용은 성경의 카인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 절망에 빠진 죄인의 심정을 묘사한 것이었다. 내용적인 면에서나 스타일 면에서나 맥락이 있는 인용이자,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에 대한 오마쥬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19년 11월에 안톤 코빈이 감독한 다큐 영화 <Spirits In The Forest>가 극장에 공개되었다. 디페시 모드의 투어를 보러 가는 여러 지역의 남녀 6명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내용이라 한다. 현재 온라인으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링크

1.5.2.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2017년에 처음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후보로 선정되었다. 링크
201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수상후보로 본 조비, 라디오헤드 등과 함께 선정되었다. 아쉽게도 수상은 본 조비에게 돌아갔다.
202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수상후보로 또 들어갔다. 결국 2020년에 공연자 부문에 헌액되었다. 링크
특기할 만한 점은 전 멤버 빈스 클라크와 앨런 와일더도 같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애초에 홈페이지에서 투표를 실시할 때도 현재 사진이 아닌, 전 멤버 앨런 와일더가 있던 시절인 1987년도 사진을 내걸었다.
이로써 디페시 모드는 존경하는 데이비드 보위 선배의 뒤를 따라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참고로 보위가 헌액된 해는 1996년인데 이 해는 Dave Gahan이 마약으로 죽을 뻔해서 디페시 모드가 해체될 뻔한 해였다.
여담으로, 디페시 모드의 팬인 나인 인치 네일스도 올해 같이 헌액되었다. 트렌트 레즈너가 라디오 채널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팬들과 디페시 모드에게 축하드린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참고로 트렌트 레즈너는 1986년에 디페시 모드의 <Black Celebtaion> 투어를 클리블랜드에서 본 적이 있었다. 당시 경험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링크

“It was the summer of ’86. I’d dropped out of college and was living in Cleveland trying to find my way in the local music scene. I knew where I wanted to go with my life but I didn’t know how to get there. A group of friends and I drove down to Blossom Music Center amphitheatre to see the ‘Black Celebration’ tour. DM was one of our favourite bands and the ‘Black Celebration’ record took my love for them to a new level.

“I’ve thought about that night a lot over the years. It was a perfect summer night and I was in exactly the right place I was supposed to be. The music, the energy, the audience, the connection… it was spiritual and truly magic. I left that show grateful, humbled, energized, focused, and in awe of how powerful and transformative music can be… and I started writing what would eventually become ‘Pretty Hate Machine’.”

이 공연에서 음악의 마법 같은 힘을 체험한 레즈너는 데뷔 앨범인 <Pretty Hate Machine>에 들어갈 곡을 쓰기 시작했으니, 레즈너에게 디페시 모드는 자신을 뮤지션의 길로 이끈 운명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19]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멤버들이 각자 온라인으로 수락 연설을 했다.
멤버들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분위기인데, 코로나 사태가 반영되어 자세히 들어보면 대화 내용이 웃프다.
콘서트가 없다는 앤디 플레처의 말에 마틴 고어는 '''우리 콘서트 하고 있지 않냐?'''며 입으로 'personal jesus' 기타 전주를 흉내내고, 이어서 데이브가 '''Reach out touch(and faith)'''라고 받는다.
전 멤버로서 같이 헌액된 빈스 클라크와 앨런 와일더에 대해서는 '''DM(디페시 모드) 패밀리의 일원이자 역사의 일부'''라며 감사를 전했다.
데이브는 같이 밴드를 할 기회를 준 멤버들에게 감사한다면서, 음악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솔직히 말해서 뭘 했을지 몰랐을 거라고 하니, 앤디 플레처는 '''넌 여전히 자동차를 훔쳤겠지'''라고 짓궂게 디스하고, 뻘쭘해진 데이브는 음악이 내 인생을 구했다고 대답한다.
이어서 마틴이 '''우리도 여기 없었을 거다'''라면서 서로서로 멤버들에게 감사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투어 세션인 Peter Gordeno, Christian Eigner, 뮤트 레코드의 대니얼 밀러, 매니저인 조너선 케슬러, 안톤 코빈, 멤버들의 가족, 팬 등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마무리했다. 링크

2. 멤버



2.1. 마틴 고어


'''본명'''
'''마틴 리 고어''' (Martin Lee Gore)
'''국적'''
영국 [image]
'''출생'''
1961년 7월 23일 / 잉글랜드 에섹스 대거넘
  • 디페시 모드에서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하고,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각종 악기(기타, 베이스 기타, 피아노, 멜로디카)와 보컬, 코러스까지 담당하는 만능 뮤지션. 1999년에 이보 노벨로 상을 받았을 정도로 작곡 실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시상식 장면.
  •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작곡은 매우 기이한 경험이라고 한다. 영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링크
  • 매 앨범에 마틴 고어가 부르는 솔로곡이 한두 곡은 꼭 있으며, Dave Gahan이 부르는 곡에도 코러스를 꼭 넣는다. 음반에 보너스 트랙으로 실리는 데모 버전 보컬도 마틴이 도맡았다. Dave Gahan이 진한 바리톤 음색이라면 마틴 고어의 보컬은 청량한 바이브레이션이라 좋은 대조를 이룬다.
  • 빈스 클라크 탈퇴 후에는 사실상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면서 음악의 주도권을 잡았지만, 2005년부터 보컬 Dave Gahan도 작사 작곡에 참여하고 있다.
  • 빈스클라크, 앨런 와일더와 음악적 견해차로 다투어 이들이 탈퇴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독재자라는 평도 있었고, Dave Gahan도 한때 그 점에 불만을 내비친 적이 있었으나, 2005년 이후에는 음악적 접근 방식이 바뀌면서 Dave Gahan과도 협업해 곡을 만들 때도 있다.
  • 후술하겠지만, 2010년 이후에는 빈스 클라크와도 화해하여 VCMG라는 팀을 만들어 협업으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 원래 마틴에게 작곡은 개인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작업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굳이 음악적 견해차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 2004년에 그웬 스테파니에게 같이 곡을 쓰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그러한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그녀의 곡을 위해 기타를 연주해 주었다고 한다. 그 곡이 'Wonderful Life'이다. 원래는 그녀의 솔로 1집에 실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곡이 넘쳐서 2006년에 발매된 2집에 실리게 되었다고 한다.링크
사실, 이 곡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그웬 스테파니의 첫사랑이 디페시 모드의 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요절했고, 첫사랑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옛 남친이 좋아했던 밴드의 송라이터에게 곡 작업을 요청했던 것이었다.링크 마틴이 그 곡을 위해 기타를 연주해 준 것은 팬심에 대한 보답이었던 것.
  • 2003년, 솔로로서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을 당시 인터뷰를 보면, 솔로 활동은 외롭다며 밴드 활동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앨런 와일더가 있었을 당시엔 넷이서 서부 영화의 무법자들처럼 같이 술을 마시면서 즐거웠는데, 이젠 멤버들 중에 술 친구가 앤디 플레처밖에 없다는 내용.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Dave Gahan도 솔로 앨범 활동을 시작해서 밴드 해체 궁예 기사가 나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2005년 앨범부터는 Dave도 작곡에 참여하고, 공동 작곡까지 하는 등 오히려 파트너십이 굳건해졌다. 2013년 같은 매체에 실린 Dave Gahan의 인터뷰에 따르면, 마틴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작곡가로서의 마틴에 대해 진정으로 경탄과 존경심을 느낀다고 한다. 링크
  • 음악적으로 데이비드 보위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학창 시절 외국어 과목으로 독일어를 선택한 것을 계기로 독일에 관심을 가졌는데, 1985년 당시에는 현지 여성과 베를린에서 동거한 적도 있었다. 베를린을 좋아하는 이유는 밤새 신나게 놀 수 있어서라고 링크
독일에서 2년을 생활한 덕분에 독일어가 유창하며, 독일어 노래를 리메이크한 적도 있다. 링크
  • 게다가 80년대 초반 파운드화 강세로 인해, 베를린에서 녹음을 하는 것이 제작비가 훨씬 싸게 먹혔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도 독일에 갈 일이 잦았다. 보위가 앨범을 녹음했던 베를린의 한자(Hansa) 스튜디오에서 그들도 녹음을 했다. 링크
80년대 당시 미디어에서는 디페시모드의 음악을 아동용 크라프트베르크라고 부른 적도 있었고, 이들의 음악이 독일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라 여러모로 독일과 인연이 깊다.
2003년, 리메이크 앨범 발매를 계기로 독일 매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쿠르트 바일의 음악을 좋아하여 그의 곡 'Lost In The Stars'를 앨범에 수록했다고 한다. 링크 마틴이 리메이크한 Lost In The Stars
  • 알고 보면 2010년대 케이팝 남자 아이돌들의 아이템인 하네스를 80년대부터 착용한 패션 리더였다. 심지어 셔츠 위에 착용하는 것도 아니고 상탈한 상태에서 착용했다
[image]
결국 어머니도 아들의 여장을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집을 방문했을 때 스타킹 같은 걸 신고 있었는데, 벗은 스타킹을 어떻게 해야 햐냐고 질문했더니 그냥 검은 빨래와 함께 세탁기에 넣으라고 대답하셨다 한다.링크

벨트에 장식용 수갑을 달기도 했는데, 요즈음 세대가 보기에도 파격적이어서 팬아트로 등장한다.
  • 2005년 투어 때는 날개를 달고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2009년 투어부터는 더 이상 날개를 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자녀들이 당시 사진들을 봤다고 한다. 여담으로 둘째딸 패션도 아버지의 패션 DNA를 물려받은 듯하다.
  • 동영상이 마틴의 날개옷이 등장한 공연 장면이다. 앞서 언급한 스커트도 착용했는데, 80년대와는 달리 바지 위에 착용했다. 우리나라의 철릭과 비슷한 느낌. Dave는 제이린드버그의 수트를 입었다. 2분 경에 마틴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을 때 Dave가 등 뒤로 다가와 합체하는 부분이 하이라이트.
  • 금발에 벽안인 전형적인 백인의 외모라 믿기진 않지만, 사실 마틴 고어는 친부가 미군 육군 병사인 흑인 혼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부모는 이혼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틴 고어가 태어났을 당시만 하더라도 흑백 결혼은 범죄시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틴 고어가 어렸을 때 친모는 백인과 재혼하여 그는 새아버지가 친아버지인 줄 알고 자라왔다고 한다.
  • 마틴이 쓴 80년대 초반 히트곡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 곡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마틴 고어는 자신의 친부가 흑인인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반으로 미국에서 친부와 감동적인 상봉을 했다는 훈훈한 사연이 전해져 온다. 다만, 마틴은 인터뷰 때마다 친부와 관련된 일을 자세히 말하는 것을 거절하는데, 가족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 한다. 이미 소속사 차원에서 사생활 관련 질문은 안 받는다고 사전에 기자들에게 통보하여 철저히 선을 그어 왔다고 하는데, 악명 높은 찌라시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반응. 링크
멤버 Dave Gahan은 2017년 인터뷰에서 마틴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를 소개했다.
언젠가 자신에게 이메일로 이러한 메시지를 보냈다 한다.
“Well, I’m so happy the universe somehow came together at some point and the universe pushed us together so we’ve got to do this.”(그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주가 어느 순간 함께 왔고, 우주가 우리에게 힘을 가했기 때문에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정말 기뻐)
평소에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얘기라 그 메시지를 받는 순간 정말 기뻤다고.
  • 2001년 앨범 활동 당시 보도 자료에 따르면 Dave는 마틴과의 관계를 오래된 스카프신발의 착용감에 비유했다. 서로 성격이 너무나 다르고, 서로를 그렇게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 디페시 모드 활동 전에는 테스코에서 계란 파손 관리를 했다고 한다. 링크 20분마다 깨진 계란을 치우고 새 박스를 놓았는데, 20분 후에 가 보면 새 박스에 든 계란도 깨져 있었다고
  • 만 16세[20] 때인 1977년에 은행 캐셔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주말에 밴드 활동을 해 오면서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은행 업무로 번 돈으로 야마하 CS5 신시사이저를 구입했다고. 빈스 클라크의 말에 따르면 이 장비 때문에 같이 밴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링크
  • 운전을 배운 적이 없어서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다. 80년대 초반 인터뷰를 보면 좋아하는 게임 목록이 나온다. 링크
  • 2005년 앨범 타이틀곡 'Precious'는 이혼을 한 마틴 고어가 자녀들을 위해 쓴 곡이다. 그래서 월간조선의 음악 기사 담당 기자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담았다며 이 곡을 소개하기도 했다. 링크
  • 2014년에 댄서[21] 겸 배우 출신인 20세 연하 여성과 결혼하여 도둑놈 대열에 등극했다. 이후 딸 둘을 낳았다. 2017년 앨범 수록곡인 'Eternal'은 핵전쟁이 났을 때 아이를 지키겠다는 아빠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여담으로, 전처 사이에서 이미 2녀 1남을 낳아 현재 아이가 다섯인 다둥이 아빠이다.
  • SF 장르 애호가이기도 하다. 2015년에 나온 솔로 앨범 SF 장르에서 영감을 얻은 연주곡 음반이다. 링크 당시 12살이었던 아들과 블레이드 러너를 감상했다고 한다.

  • 디페시 모드의 2009년 앨범인 의 수록곡 'Peace'를 리믹스한 독일의 DJ Justus Köhncke이 들려준 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마틴은 먼저 기타로 작곡을 하고 이를 전자 악기로 변환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링크
  • 합성 식품을 먹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인삼은 먹지만 비타민은 먹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링크
  • 2013년에 프랭크 오션과 함께 녹음을 한 적이 있었다. 원래는 channel ORANGE 앨범의 후속작으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묻힌 듯하다.링크 참고로 프랭크 오션은 디페시 모드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디페시 모드가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나눴고, 이를 계기로 마틴 고어와 녹음을 했던 것이다. 링크
  • 뮤트 레코드 트위터 계정을 통해 2020년 11월 17일 컴백을 예고했다. 이는 2021년 1월 29일에 발매될 솔로 EP 홍보로 드러났다. 링크 1 티저


2.2. Dave Gahan


'''본명'''
David Gahan(개명 전 David Callcott)
'''국적'''
영국 [image]
'''출생'''
1962년 5월 9일 / 잉글랜드 에섹스 에핑
  • 디페시 모드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다. 독보적인 바리톤 음색이 매력적이며, 영국의 음악잡지 Q 매거진이 선정한 위대한 가수 100명 중에 들었을 정도로 뛰어난 라이브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링크
  • 알고 보면 성씨 발음으로 인해 영고라인에 든 유명인사다. Gahan의 원어 발음은 간ː에 가까우나 영국 현지에서도 제각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주로 가한이라고 잘못 읽는 경우가 많다. 데뷔 이후 30년이 넘도록 이러한 일들이 워낙 많다 보니 본인도 포기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독일 미디어에서 올바른 발음을 알리는 동영상까지 만들었다.
참고로 이 동영상에 garn이라고 쓰인 실타래가 나온 것은 꼬아서 만든 실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garn과 발음이 같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 본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다면 데이브 가안이 되어야겠지만,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다면 이라고 써야 한다.
  • 여담으로 Dave Gahan의 새아버지가 아일랜드계이다. 1989년 팬클럽 소식지를 통해 밝혀진 내용인데, Gahan이란 성씨가 아시아계 성씨냐는 팬의 질문에 아일랜드계 새아버지의 성씨라고 답변했다. 링크 훗날 자신의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새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었다.

  • Dave Gahan의 친부는 말레이시아[22] 영국인인데, Dave가 아기였을 때 이혼한 후 연락이 끊어졌다. 이후 어머니는 아일랜드계 남성과 결혼하여 그에게 Gahan이란 성을 물려주었고 그는 새아버지친아버지인 줄 알고 자랐다. 빅 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던 새아버지 덕분에 그는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랐다. 링크
하지만, 새아버지는 그가 10살 무렵 돌아가셨고, 이때 갑자기 친부가 나타났다가 사라져 그에게 정신적 혼란을 주었는데, 이후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를 훔쳐 타고 폭주를 즐기다 14살 때 경찰에 잡혀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접하면서 정신을 차렸고 이것이 훗날 Depeche Mode 멤버들과 만나는 인연이 된다. 링크
  •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를 걱정하여 친부에 대한 것은 일절 묻지 않았으나, 훗날 가정을 꾸리고 아들이 태어난 뒤,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친아버지의 행방을 찾았다. 1989년에 팬클럽 소식지를 통해 자신의 혈통을 밝힌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또한 아들이 태어나기 직전인 1988년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가 무슨 사연으로 가정을 떠났는지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아버지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셨다면 연락을 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링크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이 90년대 초 사망 소식이었다고 한다. 1997년 인터뷰에 따르면 누군가를 통해서 소식을 듣긴 했는데, 그의 친부도 그가 디페시 모드의 멤버인 걸 알고, 아들의 기사를 스크랩해 두고 있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그의 친부도 몸에 문신이 많았다고 한다.
  • 비행청소년 시절에 그래피티를 하다 경찰에 잡혔는데, 자신의 성씨태그로 써서 꼬리를 밟힌 웃픈 일화가 있다. 그리 흔한 성씨도 아니어서 금방 들켰다고 한다.
  • 4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첫 번째 고비는 1993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대성공을 거둔 투어를 돌 때였는데, 공연 도중 마약으로 인한 심장 발작을 겪었다. 두 번째1995년에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을 때였다.
세 번째1996년헤로인코카인을 섞은 스피드볼 주사를 놓아 심정지가 2분간 왔었을 때였는데, 구급대원이 포기하지 않고 응급조치로 살려냈다. 이때 임사체험 비슷한 것을 했다고 한다.
당시 외신에 따르면 재활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마약을 했기 때문에 내성이 없어서 금방 쓰러진 것이었다고 한다. 이미 1994년부터 치료는 시도해 왔으나[23] 금방 재발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다 막다른 곳에 와서야 겨우 끊을 수 있었다. 여담으로 재활에 성공한 후에 딸이 태어났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때 구급대원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던 아이였다. [24]
네 번째2009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공연을 할 때였는데, 갑자기 대기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처음에는 위장염 진단이 나왔으나, 추가로 한 초음파 검진 결과 방광암 초기임이 밝혀져 바로 암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치료가 성공적이라 지금까지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초기에 암을 발견한 덕분에 항암치료 기간이 짧아서 모발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링크
이 때문에 별명이 Cat인데 고양이 목숨이 9개라는 속담에서 온 것.
  • 같은 멤버인 마틴 고어와 마찬가지로 성공한 데이비드 보위 덕후이다. 게다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로 만나는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자신의 딸이 보위의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나이도 비슷해서 자주 얼굴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보위가 뉴욕에서 콘서트를 했을 때, 백스테이지에서 보위와 만난 적도 있었는데, 보위가 먼저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한다.
Dave가 인터뷰에서 회고한 바에 따르면, 자신의 우상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기이했다고. 처음엔 부담스러워 정중히 거절하려 했으나, 같이 콘서트를 보러 온 아내가 가 보라고 해서 용기를 내어 만났다고 한다. 링크
  •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 Dave Gahan에게 데이비드 보위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자신은 결국 납지붕[25]이나 훔치는 좀도둑으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링크 펑크 음악과 데이비드 보위를 접한 것을 계기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보위의 를 부르는 그를 우연히 본 마틴 고어, 앤디 플레쳐, 빈스 클라크가 그를 밴드의 보컬로 영입해 디페시 모드가 결성되었으니, 여러모로 운명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보위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끼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때 아내와 딸이 다가와 안아주며 위로했다고. 링크.
  • 2009년 인터뷰에서는 보위가 마약에 대해 경고하는 메시지에 좀 더 귀를 귀울였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 본래 작사 작곡은 마틴 고어가 전담해 왔으나 2005년 앨범부터 작사 작곡에 참여하기 시작해 2009년 앨범 때는 작곡 멤버로 자리 잡았다. 보너스 트랙으로 실린 은 마틴과 공동 작곡했다. 본인의 솔로 앨범을 이미 두 장 낸 바 있으며, Soulsavers라는 팀과 2번 컬래버 음반을 내는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마틴 고어와 마찬가지로 블루스가스펠의 영향을 받았으며, Soulsavers와 컬래버를 했을 때 이러한 취향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링크
Soulsavers와 두 번째 컬래버 음반을 낸 2015년 당시, 마틴 고어를 LA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마틴은 너 우릴 두고 바람 피우고 있어(“You’re sort of cheating on us”)라고 농담을 시전했다 한다. 링크[26]
  • 자녀들의 근황이 허핑턴 포스트에 실렸다. 첫아들 잭은 이미 결혼했고, 딸 스텔라 로즈는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동영상을 보면 아버지의 TS 버전이라 여겨질 정도로 외모와 목소리가 아버지를 빼닮았다. 링크 아빠 앨범의 표지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2015년에 발표된 Soulsavers와의 컬래버 앨범 표지가 딸의 작품이다. 링크 기사에는 디페시 모드 앨범 이미지라고 나와 있지만, 기자의 착오인 듯하다. 여담으로 이 앨범의 수록곡 Shine 뮤직비디오는 둘째 아들이 찍어줬는데 현 부인이 이전 배우자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삼남매의 사이는 좋은 듯.
  • 멤버 중 유일하게 20대 초반에 결혼했으나 이후 2번 이혼했으며, 3번째 결혼 상대인 현재의 부인과 가장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첫 번째 부인은 10대 시절 만났는데, 음악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디페시 모드 활동 초기에는 팬클럽 관련 업무도 맡는 등 정성껏 내조를 했으며, 팬들 사이에서도 이미지가 좋다. 2번째 부인은 원래는 불륜 상대였는데, 그에게 헤로인을 소개하여 둘이 같이 마약을 했지만, 그가 더 깊숙이 빠지자, 질려서 떠났다고 한다.[27]
그가 갱생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 현 부인은 인디 영화 배우이자 대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인 1995년 경엔[28] 그가 유명인인지도 몰랐으며[29], 알고 나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대했다고 한다. 반면 Dave는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반했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친구 사이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2005년 앨범에 수록된 Dave의 자작곡인 Suffer Well 뮤직비디오에 현재의 부인이 천사 역할로 등장했는데, 가사가 자전적인 내용 임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
뮤비에 달린 댓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들도 적절한 캐스팅이라고 인정. 그 외에도 본인이 쓴 여러 곡에서 현재의 부인이 뮤즈로 등장한다.
  • 이 문서의 메인 프로필 사진에 보이는, Dave가 착용한 큰 해골 반지는 부인이 선물해 준 것이다. 2013년 인터뷰에 따르면, 반지를 선물한 부인이 이걸 보면 항상 삶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때부터 이 반지를 즐겨 착용해 왔으며 뮤비에도 등장한다. 몇 년 후 Dave는 아내의 생일에 즈음해 자신의 팔에 아내의 이름을 문신으로 추가하여 화답했다.

  • 자신의 공연에서 팬을 며느리로 맞게 되었다. 디페시 모드가 이스라엘에서 공연했을 때 Dave의 아들이 아버지의 공연을 보러 왔는데 마침 그 자리에서 현지 여성과 대화를 트게 되고 결혼으로 이어졌던 것.
  • 딸바보이다. 2013년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딸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LOL이라고 나름 유행어를 써서 보냈더니 딸이 아빠.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 80년대 리즈 시절 모습이 샤이아 라보프가 연상된다는 반응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있다. 링크 해외 웹에선 앞으로 디페시 모드 영화가 나온다면 젊은 시절 Dave Gahan은 샤이아 라보프가 맡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링크
  • 밴드 이름을 패션 잡지에서 따와서 지어준 장본인답게 패션 브랜드 광고에도 여러 번 출연했었다. 2004년SPA 브랜드 H&M 광고에 출연했으며, 2006년에 제이린드버그 광고에 출연했는데, 당시 투어와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했던 회색 수트도 이 브랜드 제품이었다. 2017년에는 디올 옴므 광고 캠페인에도 등장했다. 링크.
  • 사실 가수를 하기 전에 패션 관련 분야를 전공했었다. 배우 클로에 세비니와의 인터뷰에서 언급된다. 구체적으로는 Window Dressing이라고 매장 쇼윈도 디스플레이에 대한 것을 배웠는데, 밴드 활동과 병행할 수 없어서 3년 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그때의 경험 때문에 무대에서 입을 의상을 선택할 때도 원단까지 꼼꼼하게 고른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가 다녔던 학교는 South Essex College로 빈스 클라크가 결성한 야주의 보컬 알리슨 모예도 이곳 출신이다. 직업 전문 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교육기관인 듯하다. [30]
  • 2년 후 같은 잡지에서 이번에는 반대로 인터뷰어의 입장이 되어 당시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프리다 지아니니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링크 참고로 이 잡지는 패션계 인사들의 인터뷰가 실리는 인터뷰 전문 잡지이다.
  • 현란한 마이크 돌리기가 특기이다. 앞서 언급된 클로에 세비니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에는 수줍음을 타서 땅만 보고 노래를 불렀지만,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무대가 커지면서, 넓은 공간을 메꾸기 위해 이런 개인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안톤 코빈이 처음으로 감독한 A Question of Time 뮤직비디오에 살짝 등장한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잘 돌린다. 링크 1 링크 2 본인 말에 따르면 마이크는 댄스 파트너라고 한다.
  • 트렌드를 빠르게 전달한다는 밴드 명칭과는 대조적으로, 의외로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었다.
2000년 Dave의 팬들이 디페시모드 공식 이메일을 통해 Dave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일을 보냈으나 몇 달이 지나도 응답이 없자, 참다 못해 앨런의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왜 그는 답장이 없느냐는 질문을 보냈다.링크
이에 대해 앨런은 이렇게 답변했다.
No, he just doesn’t get computers. Somehow, I doubt whether he has internet or e-mail access yet. It’s possible that he hasn’t even seen the DM website. Don’t be too hard on him – I’m sure he appreciates everybody’s wishes.
(그는 컴퓨터가 없습니다. 그가 아직 인터넷이나 이메일을 사용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요. 공홈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에게 너무 심하게 하지 마세요 – 저는 그가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확신합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데이브는 2000년에 앨런의 홈페이지에 등판해 짧은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매우 느리다고 했다.링크 [31]

그 때부터 데이브는 앨런과 이메일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다. 하지만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2013년 타임지 인터뷰에 이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는데 핸드폰 문자 메시지는 주고받지만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2009년클로에 세비니와 했던 인터뷰에서는 팬들의 반응을 온 몸으로 느끼기 위해 일부러 인이어 착용을 안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최근 공연에서는 착용하고 있다.
  • 2020년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모든 가수들의 활동이 올스톱된 상황에서 부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마스크 착용과 자택에 머물 것을 홍보하는 사진을 올려 근황을 알리고 있다. 부인 또한 마스크를 착용한 커플샷을 올렸다.
  • 2020년 4월 18일에 코로나 19 사태에 관한 공식 동영상이 올라왔다. 뮤트레코드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인디 레코드 가게를 돕기 위해 릴레이 동영상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여기에 소속 가수로서 동참한 것이다. 링크

2.3. 앤디 플레처


'''본명'''
Andrew John Leonard Fletcher
'''국적'''
영국 [image]
'''출생'''
1961년 7월 8일 / 잉글랜드 노팅엄
태어난 곳은 노팅엄이지만 두 살 때 베이즐던으로 이주해서 빈스 클라크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본래는 베이스 기타 연주자였으나, 원년 멤버 빈스 클라크가 전자음악 밴드가 되자고 하여 졸지에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게 되었다 링크
하지만, 현재는 음악보다는 재정 실무나 매니저, 법무 관련 업무 등 사업 관련 영역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매니저가 24시간 상주하는 게 아니라서 매니저가 근무하지 않는 시간대에는 그가 사실상 매니저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무대 위에서보다는 뒤에서 처리하는 업무가 훨씬 많은 멤버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로즈볼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101>에서는 하는 거 없이 그냥 논다고 농담하여 졸지에 병풍 멤버 이미지가 박혔으나, 멤버들 간의 의견 차이를 조율하고, 생각을 체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Dave의 말에 따르면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멤버라고. 링크
2011년에 디제이 셋으로 혼자 투어를 할 때 단독 내한한 적이 있었다. 무려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된 일정이었다. 링크 클럽 Eden에서 디제잉을 했다고 한다. 증거 영상
유일하게 안경을 착용했던 멤버였'''었'''다. 그래서 멤버들이 대기실에서 앤디의 안경을 소속사 사장인 대니얼 밀러의 안경과 바꿔치기 하는 장난을 치곤 했다고 한다. 링크
하지만 2017년 무렵부터 Dave Gahan이 노안 때문에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으므로 이젠 옛말. 그러나 공연 때를 기준으로는 유일하게 안경을 착용하는 멤버이다.
십대 시절 여친과 장기간 연애를 하다 30대에 결혼하여 1남 1녀를 낳고 지금까지 해로하는 보기 드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단순한 멜로디의 가벼운 팝을 좋아한다고 한다. 링크
키가 무려 190cm로 멤버 중 최장신이다.

3. 전 멤버


전 멤버인 빈스 클락과 앨런 와일더에 대해서는 이 에 대략적인 스토리가 소개되어 있다.
한때 사이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현재는 모두 화해한 상태. 빈스 클라크와 마틴 고어는 2012년에 합동 음반을 냈고, 2010년 2월 17일 로열 앨버트 홀 자선 공연 때는 앨런 와일더가 깜짝 출연하여 Somebody를 공연했다.
2010년 앨런 와일더가 디페시모드 현 멤버들과 재회한 소감을 말하는 인터뷰
로열 앨버트 홀 무대는 데이브가 앨런에게 전화를 통해 연락하여 성사되었다.링크
또한 마틴은 그해 10월에 열린 앨런의 프로젝트 밴드 Recoil의 공연에 등장해 디제잉을 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링크 영상
그리고 이를 계기로 앨런은 2011년에 발매된 디페시 모드 리믹스 앨범에도 참여한다. 리믹스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
2020년에 이들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에 디페시 모드의 멤버로서 모두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다. 참고로 이 부문은 단지 그룹의 멤버였다고 무조건 드는 것이 아니라, 멤버별 개별 심사까지 거쳐 선정되는 것이다. 이는 심사 위원들이 이들의 기여도를 높이 평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1. 빈스 클라크


'''본명'''
Vincent John Martin
'''국적'''
영국 [image]
'''출생'''
1960년 7월 3일 / 잉글랜드 사우스 우드포드
1집을 마지막으로 떠난 창단 멤버이다.
2011년 리믹스 앨범인 Remixes 2: 81–11에 참여했다. 링크 그가 리믹스한 곡은 'Behind the Wheel'이다.
빈스가 마틴에게 테크노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오랜 만에 이메일을 보내자, 마틴은 이에 응하면서 리믹스 앨범에 참여해 달라고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링크 이렇게 성사된 컬래버 음반이 <VCMG>이다.
2020년에 디페시 모드의 멤버로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에 같이 들어갔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디페시 모드가 후보로 지명되었던 2018년에 이미 불참 의사를 밝혔다.

They deserve all of the credit. All I did was started the band — you know what I’m saying? I wouldn’t go. Apart from that, I don’t have a nice suit.

(그들은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저는 밴드를 시작한 것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저는 안 갈 거예요. 그거 말고도 이유가 또 있는데 저는 멋진 수트가 없어요)

이레이저 동료인 앤디 벨이 동성애자인지라 덩달아 동성애자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2004년 결혼했으며 자식도 있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2009년 피치포크 인터뷰에 응한 앤디 플레처에 따르면, 뉴욕에서 빈스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고, 한 번은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3.1.1. VCMG




3.2. 앨런 와일더


'''본명'''
Alan Charles Wilder
'''국적'''
영국 [image]
'''출생'''
1959년 6월 1일 / 잉글랜드 런던 해머스미스
1982년 합류 이후 1995년까지 함께했던 멤버.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로서 디페시 모드의 최고 명반으로 손꼽히는 Violator 앨범에 큰 공헌을 했다. 해당 문서에도 언급되지만, 본래는 심플한 발라드 스타일이었던 'Enjoy the silence'에 비트를 가미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앨런이었고, 편곡에 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왔다고 한다. 본래는 키보드 연주자로 영입되었으나, 드럼도 연주할 줄 알아서 1993년 <Songs of Faith and Devotion> 앨범 때는 드러머를 맡는다.
멤버 중 유일한 런던 출신[32]이자 중산층 출신으로, 부모님의 격려를 받으며 8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St Clement Danes School 그래머스쿨[33]에서 플루트를 배웠다. 방과 후에는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을 배웠다고 한다.
디페시 모드에 합류한 계기는 1982년에 음악 잡지 '''멜로디 메이커'''에 실린 구인 광고였다.
광고에는 '''Keyboard player needed for established band – no timewasters(기존 밴드에 필요한 키보드 연주자 - 시간 낭비자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단 21세 이하라고 연령 제한이 있었다.
59년생인 앨런은 당시 나이가 만으로 22였으나 나이를 속이고 지원한다. 그래서 멤버 중 유일한 50년대생이자 최연장자가 되었다.
[image]
처음에는 투어를 위한 키보드 연주자였지만, 이듬해인 1983년에는 앨범 녹음에도 정식 참여했다.
이 앨범에는 그가 작곡한 곡도 두 곡 있는데 'Two Minute Warning', 'The Landscape Is Changing'이다.
이듬해 1984년에 'If You Want'라는 곡이 정규 앨범에 수록되었고, 이후 마틴 고어, 대니얼 밀러와 공동 작곡한 'Black day'를 1986년에 싱글 B사이드에 수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작곡에 참여하지 않고 편곡과 프로듀싱, 연주에만 전념한다. 여담으로 앨런이 밴드에 있었을 때는 앨범 프로듀서 명단에 Depeche Mode가 공동 프로듀서로 표기되어 있으나, 앨런 탈퇴 후 나온 앨범에는 외부 프로듀서만 기재되어 있다. 앨런의 공헌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
그가 멤버로 있었을 때는 샘플링을 이용한 음악적 실험을 많이 했다. 1984년에 나온 이들의 히트곡 'People Are People'은 부엌에서 가재도구를 던져서 낸 소리를 녹음해 사용했으며, 1986년 앨범 <Black Celebration>의 수록곡 'Stripped'의 도입부에 나오는 소리는 실제 오토바이를 공회전시켰을 때 나온 소리를 샘플링했다고.링크
1995년 7월 탈퇴를 선언한다. 마틴 고어와 앤디 플레처에게는 직접 통보했고, 미국에 거주하는 Dave에게는 그의 집주소로 팩스를 보내 알렸는데, 당시 헤로인에 쩔어 살던 Dave는 답장을 안 했다고.링크
다만, 앨런이 본인의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뒷얘기에 따르면 1996년에 앨런의 딸이 태어났을 때 Dave가 크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보내 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뒤늦게 연락을 하긴 했던 것 같다.
'''출처: http://www.recoil.co.uk/#!/evidence/qa-vault/qa-depeche-mode/qa-depeche-mode-alans-departure/'''

I didn’t hear back directly from Dave but he did send Hep and I a huge bunch of flowers when Paris was born and we saw him on a couple of occasions quite soon after. I’m sure he understands exactly why I left and he has been nothing but a perfect gentleman regarding the whole situation.

Dave가 약을 끊은 후 앨런 와일더는 다시 연락을 주고받고 왕래를 해 왔으며[34], Dave도 종종 미디어를 통해 앨런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곤 했다.
2000년 무렵, 앨런 와일더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1999년 Dave Gahan이 현 부인과 결혼할 때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날 앨런은 스케줄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으나, 이후 부부 동반으로 만나 오랜 만에 회포를 풀었다고 한다.링크
2000년 시점의 발언이라 이미 과거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당시엔 Dave와는 여전히 가까이 지냈던 반면 마틴에 대해서는 다소 불편한 감정이 남았던 듯하다. [35]
1997년 앨범 <Utra> 프로모션 당시 마틴은 전 멤버 앨런 와일더를 염세주의자라고 불렀는데, 이를 기억한 앨런의 팬들은 '''팬들과 자주 소통하는 그가 염세주의자'''라는 것은 이상하다고 질문을 보내 왔다.
이에 대해 앨런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이 사람을 매우 가려서 사귀는 편이라 어떤 의미에선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마틴이 말한 '''염세주의자'''는 앨런이 매우 냉소적이고 비꼬기를 잘한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다만, 앨런이 미디어가 일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며, 기사에 나온 마틴과 앤디의 말을 크게 담아 두지 않는다고 언급한 부분도 있으니 판단은 알아서.[36]
한편, 비슷한 시기에 Dave가 라디오 채널 전화 인터뷰에서 앨런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앨런이 밴드에 공헌한 부분을 많이 언급하며, 10년 넘게 함께 한 가족 같은 존재임을 강조했다. 링크 더불어, Dave가 멤버들을 미운정 고운정 쌓인 형제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나는데, 훗날 앤디 플레처가 Dave에 대해 비슷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이 밴드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부분.
밴드 탈퇴 후 3년 시점에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은 그룹 내에서 많은 보상을 받는 특권을 누렸고,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다고 한다.링크
밴드 멤버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보다는 자신의 삶을 누리려는 결정이었던 듯하다.
여담으로, 활동 당시엔 일부 매체에서 앨런과 앤디를 구분하지 않고 기사를 내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앨런은 '''It just shows how little research some of these so-called journalists do.(소위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일부가 얼마나 조사를 안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1994년 말에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퍼스셔에서 직접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영국 공군(RAF)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그가 운전하는 차량 바로 옆 언덕에 쳐박혀 비행사 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링크 앨런의 말에 따르면 10초만 더 나아갔어도 자신은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한다. 10억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나는 드문 일이 자기한테 있었다고
앞서 언급했듯이, 2010년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청소년 암 환자 돕기 자선 공연에 깜짝 출연하여 옛 멤버들과 재회한 후, 이듬해인 2011년에 디페시 모드 리믹스곡 앨범인 <Remixes 2: 81–11>에 참여했다. 그가 참여한 곡은 <Sound of Univerce> 앨범 수록곡인 'In Chains'이다. 링크
이 때문에 앨런 와일더가 디페시 모드 멤버들과 재결합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나 앨런 본인은 개인 활동에 만족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링크

3.2.1. 여담


앨런은 스티븐 호킹 박사의 팬으로 호킹 박사가 나오는 다큐를 즐겨 보았다고 한다. 이를 호킹 박사의 딸이 알고 아버지에게 전하자, 호킹 박사는 디페시 모드의 음악은 물론, 앨런의 개인 프로젝트인 Recoil 앨범까지 관심 있게 듣는 팬이 되었다고 한다.
호킹 박사의 딸이 이 사실을 앨런에게 직접 전했고, 앨런은 매우 영광스러워했다. 링크

Hi, I don’t know if this’ll reach you but as a Depeche Mode / Recoil fan, I happened to notice that you enjoyed my dad’s (Stephen Hawking) TV series last year. I have to admit that I found it rather boring but then that’s probably because there wasn’t a mention of me! Through me, my dad has become quite a DM / Recoil fan. Unlikely combination I know but it’s true! Anyway, just wanted to say keep up the good work!

'''Thank you- it’s good to know both of you like the music. He’s a top bloke, your old man – not that I pretend to know what he’s on about most of the time 😉 but I find the study of the universe absolutely fascinating nonetheless. Just last night I watched a very interesting documentary about ‘black smokers’ (no, not Samuel L Jackson); hydro-thermal vents on the bottom of the ocean located along a massive fault line which circles the planet and is wrapped up with the whole process of continental drift.'''

세 번 결혼을 했는데, 상대 여성이 모두 뮤지션이었다. 첫 번째 부인과는 아이 없이 이혼하고, 밴드 '미란다 섹스 & 가든'의 멤버인 여성과 90년대 중반에 두 번째 결혼을 하여 1남 1녀를 낳았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에 이혼하고 20세 연하의 여성과 현재 결혼 생활 중이다.
여담으로, 그의 홈페이지에는 두 번째 부인이 남긴 멘트가 지금도 남아 있다. 남편이 주방을 어질러 놓는다는 내용이다
1988년 스핀 인터뷰에 따르면 나일론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 섬유로 만든 의류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링크 반면, 합성 식품은 먹는다고. 원래는 synthetics이란 단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성 질문이다.

3.3. 가사의 특징


가사의 콘셉트가 노골적으로 성적인 의미가 강하다. 어떻게 보면 얀데레적인 요소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가사의 화자로 등장하는 마조히즘적인 캐릭터들은 서브컬쳐에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BDSM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은유적인 표현이라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휘둘리겠다는''' 내용을 담은 지금의 아이돌 가사 콘셉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37]. 특이한 콘셉트로 활동하는 몇몇 아이돌의 선구자 격인 셈. 앞서 언급한 <Master and Servant>가 대표적이다.
또 흔히 생각하는 달달하고 꽁냥꽁냥한 연인 관계가 아닌, 애증 관계를 콘셉트로 했다는 점에서 빌리 아일리시bad guy에 묘사된 관계를 연상케하기도 한다.
다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풍자하는 중의적 표현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 또한 디페시 모드 가사의 특징이다. 특히 뮤직비디오에 그런 의도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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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a new game 새로운 게임이야
We like to play you see 우린 놀고 싶어 보다시피
A game with added reality 현실이 더해진 게임
You treat me like a dog 넌 날 개처럼 다루고
Get me down on my knees 날 무릎꿇게 하지
We call it master and servant 우릴 주인과 하인이라 불러
We call it master and servant
It's a lot like life 그건 삶과 많이 닮았어
This play between the sheets With you on top and me underneath
종이 한 장 차이로 넌 위에 난 밑에서 놀지
Forget all about equality 평등은 모두 잊어버려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주인과 하인 놀이를 하자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It's a lot like life And that's what's appealing
그건 삶과 많이 닮았고 그게 매력이지
There's a new game 새로운 게임이야
We like to play you see 우린 놀고 싶어 보다시피
It's a lot like life And that's what's appealing
그건 삶과 많이 닮았고 그게 매력이지
There's a new game 새로운 게임이야
We like to play you see 우린 놀고 싶어 보다시피
A game with added reality 현실이 더해진 게임
You treat me like a dog 넌 날 개처럼 다루고
Get me down on my knees 날 무릎꿇게 하지
We call it master and servant 우릴 주인과 하인이라 불러
We call it master and servant
It's a lot like life 그건 삶과 많이 닮았어
This play between the sheets With you on top and me underneath
종이 한 장 차이로 넌 위에 난 밑에서 놀지
Forget all about equality 평등은 모두 잊어버려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주인과 하인 놀이를 하자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It's a lot like life And that's what's appealing
그건 삶과 많이 닮았고 그게 매력이지
If you despise that throwaway feeling From disposable fun
네가 일회용 재미로 날 깔본다면
Then this is the one 그래 바로 이거야

Domination's the name of the game 게임이란 이름의 지배
In bed or in life 침대에서나 삶에서나
They're both just the same 그건 똑같아
Except in one you're fulfilled At the end of the day
네가 결국엔 만족했다는 걸 빼면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주인과 하인 놀이를 하자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Let's play master and servant
Come on master and servant 어서와요 주인과 하인


이같은 연인간의 주종 관계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노예가 되겠다는 희생적인 태도를 보여 주는 설정으로 활용되기도 하므로 디페시 모드의 가사에는 은근히 여심을 공략하는 요소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Behind the Wheel>인데, 여기서 여자에게 운전대를 넘기겠다는 것은 그녀에게 기꺼이 조종당하겠다는 것을 암시한다. 참고로 작사가인 마틴 고어는 운전면허가 아예 없는데, 서구권에서 성인 남성에게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이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걸 생각하면 파격적인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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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ttle girl 나의 작은 소녀여
Drive anywhere 어디든 달려요
Do what you want 그대가 원하는 대로
I don't care 난 걱정안해요
Tonight 오늘 밤
I'm in the hands of fate 난 운명의 손 안에 있어요
I hand myself Over on a plate 나 자신을 기꺼이 넘겨요
Now 지금
Oh little girl 오 작은 소녀여
There are times when I feel 내가 이 시간을 느낄 때
I'd rather not be The one behind the wheel 난 차라리 운전대를 잡지 않겠어요
Come 다가와
Pull my strings 날 조종해요
Watch me move 내가 움직이는 걸 봐요
I do anything 난 뭐든지 해요
Please 부디
Sweet little girl 귀엽고 작은 소녀여
I prefer You behind the wheel And me the passenger
난 그대가 운전하고 내가 승객인 게 더 좋아요
Drive 달려요
I'm yours to keep 날 가져요.
Sweet little girl 귀엽고 작은 소녀여
I prefer You behind the wheel And me the passenger
난 그대가 운전하고 내가 승객인 게 더 좋아요
Drive 달려요
I'm yours to keep 날 가져요.
Do what you want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I'm going cheap 비싸게 굴지 않을게요.
Tonight 오늘밤
You're behind the wheel tonight 당신이 운전대를 잡는 오늘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찬송가스러운 가사들도 은근 포진해 있다. <Ultra> 앨범의 수록곡 'Home'이 그러한데, 가사를 번역한 블로거가 일부러 그런 문체로 번역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성경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많다.링크
이는 마틴 고어가 평소 탐구한 주제가 성(Sex)과 성(Holy)이기 때문이다.

3.4. 종교관


분명 CCM 뮤지션이 아님에도 워낙 다루는 주제가 독특해 이 항목이 따로 있는데, 단순히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굳이 특이할 것도 없지만, 이 경우는 그렇다고 종교를 무조건 부정하지도 않으며, 영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기 때문이다.
2009년 음악 잡지 <Mojo>에서 이 주제로 특집 인터뷰 기사를 낸 적도 있었다. 링크
전 멤버를 포함해 모든 멤버들이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니며 성장했다. 특히, 원년 멤버인 빈스 클라크, 현 멤버인 마틴 고어와 앤디 플레처는 어린 시절 주말에 교회를 같이 다니던 친구였으며, 마틴은 음악 찬양 활동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앤디 플레처는 1980년에 크리스천 록 페스티벌에 갔을 때 U2를 본 적도 있다고 한다.링크 참고로 앤디 플레처는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성경을 언급할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Dave Gahan의 경우는 교회를 다니는 걸 좋아하진 않았지만, 어린 시절엔 성가대 활동은 즐겼다. 중간에 합류한 멤버인 앨런 와일더의 경우, 아버지의 강요로 억지로 교회를 나가야 했기에 18세부터는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았지만, 교회 음악은 즐겨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멤버들이 음악적으로는 가스펠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가사가 많은 편이다. Blasphemous Rumors는 신앙의 아이러니를 꼬집는 내용이고, Personal Jesus는 TV를 통해 설교하고 전화를 통해 헌금을 모금하는 TV 선교사들과 그에 빠져드는 신도들을 비꼬는 내용이다. 이외에도 그들의 거의 모든 음반에는 종교에 대한 메시지를 꼭 넣고 있다.
다만, 무신론이라기보다는 종교계의 편협함을 꼬집는 내용들이 많은데 이는 마틴 고어의 전 여친이 극도로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여서 그를 속박했던 것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TV에 나온 여성의 노출 장면을 보기만 해도 변태라고 낙인찍혔다고.링크 결국 여친과 헤어지고, 베를린으로 이사를 간 마틴 고어는 그곳에서 유흥의 세계에 눈을 뜬다[38]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노래를 부르는 밴드의 보컬 Dave Gahan은 그리스 정교회 신자라는 점이다. 출처 원래 어머니가 구세군에서 일했기에 어린 시절 기독교를 접하긴 하였으나, 종교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왔는데, 헤로인 중독으로 2분 동안 심장이 멈췄다살아난 체험을 계기로 달라졌다. 당시 그가 마약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 준 여친이 그리스계 미국인이었고 이 커플은 정교회식으로 혼인한다. 즉 부인따라 개종한 것. 이후 Dave Gahan은 2008년 자신의 솔로 앨범을 통해 종교적인 언급을 해 왔고 이에 관한 팬의 질문에 답변한 인터뷰도 있다. 대략 요약하자면, 종교에 관해서는 수천 년 동안 혼란이 이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솔직히 무엇을 믿는다고 확언하긴 어렵지만 어떤 종류의 높은 힘이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실, 1997년 NME 인터뷰에서도 이미 신에 대한 믿음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엔 주일학교를 땡땡이쳤지만, 마약 중독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마약을 끊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발언이 선교사 발언처럼 비치는 것은 싫다면서 이런 부류 사람들은 또 다른 종류의 약쟁이라고 신랄하게 디스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마틴 고어와 종교관이 매우 비슷하다. 2012년 CNN 인터뷰에서도 종교와 관련해 마틴과 비슷한 의구심을 느낀 적이 있다고 밝힌 바가 있다. 당시 소울세이버스라는 팀에 피쳐링을 했을 때 가사를 쓴 곡 중에 Presence of God(신의 임재)라는 곡이 있는데,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열린 눈과 귀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진정하게 이해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마틴 고어는 딱히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01년 Q 매거진 인터뷰에서 '''저는 매일 일어나서 햇빛을 보고 놀라운 산 경치를 봅니다. 그리고 저는 신이 무엇이든 간에 신의 손길을 좀 더 느낍니다(I wake up every day and I see sunshine and I see amazing mountain views and I do feel a bit more in touch with God, whatever God is)'''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후 Q 매거진 인터뷰에서는 그동안 종교를 가지기를 원했지만, 어떤 종교도 따를 수 없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링크 1 링크 2
마틴은 2001년 잡지 <Uncut> 5월 호 인터뷰에서는 예수는 사랑하지만 조직화된 종교를 거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39] '''예수는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이며, 예수에 관한 책을 접할수록 점점 예수를 사랑하게 되지만, 기독교는 그와는 다른 것이므로, 예수에 대한 사랑이 기독교인이 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링크

기독교 비판 메시지와는 반대로 은근 찬송가스런 가사와 곡들도 있다. 특히 <Songs Of Faith and Devotion> 앨범은 가사의 모티브를 성경에서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가스펠의 영향을 받았다.

한편, 신성 모독 논란을 불렀던 <Personal Jesus>를 조니 캐쉬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는데 디페쉬모드도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참고로 조니 캐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조니 캐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공교롭게도 이분도 과거의 삶이 Dave Gahan과 공통점이 있다.
2009년, 마틴 고어는 음악 잡지 'Mojo'와 가진 인터뷰에서 <Sounds Of The Universe> 앨범의 수록곡 'Peace'에 대해 영적인 주제를 다룬 곡이라고 설명했으나, 그렇다고 다시 태어난 기독교인이나 뉴에이지 히피라는 인상을 주기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우주(the universe)와 좀 더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는 한다고. 링크 참고로 원문의 '''the universe'''는 천문학적 개념의 우주뿐만 아니라 삼라만상, 전 인류라는 개념으로도 쓰이는 표현이다. 해석은 알아서 링크 이후 마틴은 우주(the universe)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2013년 , <Delta Machine> 앨범 발표 당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기자가 디페시 모드의 음악에 '십자가, 천사, 구원자들' 같은 신성한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링크 공동 송라이터인 Dave Gahan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Martin and I are both interested in that yearning to feel whole with yourself and the world. It’s something that we all want to feel.
>마틴과 저는 둘 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온전하게 느끼고 싶은 열망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이 큰 턱수염을 달고 하늘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우주가 가진 진정한 힘을 믿고, 음악은 분명 그 일부분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사람들을 조화롭게 모이게 한다는 것이다.(I don’t claim to have this image of a man in the sky with the big beard, but I do believe the universe has a real power and I think music is definitely a part of that. It brings people together in harmony.)
이 인터뷰가 나온 해에 발매된 <Delta Machine>의 타이틀 곡 'Heaven'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에도 이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Heaven'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숭고한 사랑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맡은 티머시 새센티(Timothy Saccenti) 감독은 테렌스 멜릭 감독의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답지만, 어둡고 뒤틀린 이미지를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뉴올리언즈의 버려진 가톨릭 성당을 배경으로, 부두교에서 힌트를 얻은 상징적인 스토리와 이미지를 혼합했는데, 참고로 부두교 문서에도 나오듯, 원래 부두교는 흑인들이 백인들의 가톨릭 신앙을 자신들의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수용한 종교 문화이며, 저주인형과는 무관하다. 어찌 보면, 서로 다른 문화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사례인 것이다.
당시 디페시 모드의 앨범은 흑인 음악 장르인 블루스크라프트베르크로부터 영향을 받은 전자 음악이 섞여 있었는데, 감독은 이들 음악의 근원이 뉴올리언즈부두교 문화에 있다고 느꼈고, 그래서 현지 문화 조사를 했다고 한다. 링크 블루스 문서에 있는 설명처럼, 원래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이 부르던 노동요와 백인들의 기독교 음악이 합쳐진 것이다. 또한 부두교는 백인들의 가톨릭 신앙을 흑인들이 자신들의 토착 종교 문화를 바탕으로 받아들인 것인데, 이 모든 것은 당시 고난에 허덕이던 흑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었다.
뮤비에서는 신이 기독교 문화권에서 흔히 알려진 '''턱수염 달린 남성'''으로 묘사되지 않고, 여성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는데, 이 점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링크
즉, 신의 존재는 받아들이지만, 교리에 얽매여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대립하는 것은 혐오하는 것이 이들의 신념인 것이다.
또한 2015년 인터뷰에서 Dave Gahan은 어떤 종교나 책에서도 확실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something more than that(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인간들의 삶이 우스꽝스럽고 무의미해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링크

4. 음악계에 미친 영향


고딕풍 음악과 가사, 뿅뿅거리는 신스 간의 결합은 1980년대 말 태동한 초창기 레이브 음악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LFO의 리더 마크 벨 [40]은 LFO의 데뷔작 Frequencies 앨범 속지에서 최면적인 그루브Hypnotic Groove의 개척자로 브라이언 이노, 탠저린 드림, 크라프트베르크,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와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참조 마크 벨은 이후 Exicter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벨 본인은 프로듀싱에 대해 재미있었지만 이상한 경험이라고 했는데, 12살때 팬이었던 밴드가 자신한테 휴가를 요청하거나 뭘 먹어야 할지 묻는게 상당히 초현실적이었던 모양. 출처
신스팝 밴드이지만, 헤비메탈계에도 은밀하고 위대하게 영향을 미친 밴드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에 신스팝 밴드는 진짜 밴드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기타와 드럼이 있어야 진짜 밴드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찌 보면 헤비메탈 뮤지션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에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글의 자료가 되는 롤링스톤 기사를 참조하길 바란다.
디페시 모드는 인간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두운 내면을 음악으로 표현해 왔는데 이것이 헤비메탈 뮤지션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데프톤즈, 린킨 파크, 스매싱 펌킨스, 더 킬러스, 트렌트 레즈너가 좋아하는 밴드 중에 하나이다. Personal Jesus는 마릴린 맨슨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또한 보컬 Dave Gahan은 이 기사에 대한 화답으로, 디페시 모드와 메탈리카가 의외로 공통점이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디페시 모드의 음악처럼 어두운 순간도 있지만, 그 깊숙한 곳엔 귀에 잘 들어오는 코러스와 팝적인 편곡이 있다는 것. 링크
이들의 곡을 좋아하는 뮤지션들은 장르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위 글에도 나오지만 디페시 모드의 곡을 리메이크한 뮤지션 중에는 수잔 보일, 조니 캐시도 있다. 팝페라, 헤비메탈, 컨트리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초월한 것이다.
마틴 고어의 말에 따르면 리메이크 요청을 한 뮤지션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닌 뮤지션들도 있었지만, 팬심에 화답하여 웬만하면 허락한다고 한다.
그 덕분에 애플뮤직 같은 해외 음원 사이트에 엄청나게 많은 커버 버전들이 있다.
이들의 대한 헌정의 의미로 트리뷰트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는데, 참여 라인업이 매우 화려하다. 스매싱 펌킨스, 데프톤즈, 람슈타인, 더 큐어가 참여하였고 미국과 독일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람슈타인이 공연에서 자주 부르는 Stripped가 바로 이들의 곡이다.
린킨 파크의 마이크 사노다가 이들의 히트곡 Enjoy The Silence를 리믹스하기도 했다. 또한 이 밴드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은 어린 시절 디페쉬 모드의 5번째 멤버가 되고 싶어했다고 한다.

5. 디스코그래피




6. 뮤트 레코드와의 관계


뮤지션 대니얼 밀러(Daniel miller)가 설립한 인디 레이블 뮤트 레코드에서 배출한 세계적인 스타로, 알고 보면 중소기획사 출신 스타이다.
대니얼 밀러는 디페시 모드 정규 5집까지 공동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1980년 가을, 영국의 어느 에서 공연하는 그들을 본 대니얼 밀러는 백스테이지를 찾아가 '''언제 또 연주할 거냐, 다음에도 또 보고 싶다'''고 말을 걸었고, 이게 인연의 시작이 된다. 링크
그 다음 주에 다른 클럽에서 이들의 공연을 본 대니얼 밀러는 싱글 음반을 내자고 제의를 했다.
당시 대니얼 밀러는 이들을 메이저 레이블과도 연결시켜 주려고 했으나, 멤버들은 뮤트 레코드에서 나온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서 대니얼 밀러와 함께하기를 원해 결국 뮤트 레코드에 안착한다.
다만 계약서로 묶인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에 굳이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던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원래 대니얼 밀러는 이들을 메이저 레이블과 연결해 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더 좋은 조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놓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처음부터 수익 배분도 50 대 50이었다. 정식 계약서 작성은 2001년부터인데, 그 전까지는 매니지먼트 관련 부분은 멤버들에게 어느 정도 재량권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보험 회사 출신인 앤디 플레처가 그룹의 재무설계까지 짰다고 한다. 그룹의 재정 업무는 지금까지도 앤디 플레쳐가 맡고 있으며, 마틴 고어는 스스로 Grabbing hands라는 저작권 회사를 세운다.
회사가 워낙 작다 보니, 처음엔 사장인 대니얼 밀러가 이들을 공연 장소에 데려다 주는 운전기사 역할도 맡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팬클럽 운영 업무는 Dave Gahan의 당시 여친이 맡았다. 그리고 몇 년 후 Dave의 첫번째 부인이 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 사이에서는 첫부인이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걸 보면 병크 없이 운영을 잘한 듯하다.
아무래도 인디 레이블이다 보니, 이처럼, 초창기에는 가내수공업(?) 같은 시스템으로 매니지먼트가 이루어졌다.
다만, 1986년을 기점으로 업무 체계가 나름 전문화되기 시작한다. 1986년에 이들이 <Black Cepebtaion> 투어를 했을 때, 투어 활동을 담당하는 회계사로, 당시 22세였던 경영대학원 출신 Jonathan Kessler가 영입되었는데, 점점 업무 범위가 넓어지면서 30세도 되기 전에 임원급 매니저로 올라섰다.링크 그는 지금도 밴드와 인연을 이어 가는 매니저이다.[41]
2013년부터 디페시 모드는 더 이상 뮤트 레코드 소속이 아니지만, Daniel miller는 그들에게 멘토로 남아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링크
2017년에 나온 최근작인 Spirit의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도 대니얼 밀러가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Daniel miller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최근까지도 앨범에 이 소속사의 마크를 새긴다고 한다.
디페시 모드 멤버들은 자신들을 발탁한 대니얼 밀러가 아니었다면, 80년대 당시에 쏟아져 나온 뉴웨이브 밴드들의 아류로 인식되다 곧 사라졌을 거라며 매우 고마워한다.
또한 멤버 개인은 아직까지는 뮤트 소속으로 남아 있다. 마틴 고어의 경우, 2015년에 발매한 솔로 앨범은 뮤트의 고유 넘버가 새겨졌다. 링크
대니얼 밀러가 이들과 함께 했던 기간에 나왔던 앨범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한 기사가 있다. 대니얼 밀러의 말에 따르면, 마틴 고어는 스튜디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반면 앨런 와일더는 사운드에 관심이 많아 미세 조정 작업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링크

7. 여담


  • 밴드명을 따온 프랑스 패션잡지 디페쉬 모드는 1976년에 창간되어 2001년에 폐간됐다. 이젠 디페시 모드하면 밴드를 먼저 떠올리는 상황이 되었다. 참고로 원조 디페시 모드 잡지 표지는 이렇게 생겼다. 링크
  • 우리나라에서 유독 표기법 때문에 영고라인에 든 밴드이다. 프랑스어를 따서 이름을 지은 영국 밴드라는 점 때문인지, 한글 표기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국내 매체 보도를 보면 데페체 모드, 데페셰 모드 등 뒤죽박죽이다. 게다가 메인 보컬 Dave Gahan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게이한, 게헌, 개헌, 게이언, 가한 등 천차만별이다. 그나마 원래 발음에 가까운 표기가 '간', '가안'인데 한글로 적으면 이상해 보여서 그런지 잘못된 표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 이들의 히트곡 Everything Counts에는 뜻밖에도 Korea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가사 번역 다만 Korea는 'Career', 'Insincere'와 라임을 맞추기 위해 들어가서 특별한 뜻은 없다.
Martin Gore에 의하면 동양의 다국적 기업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당시 전 세계를 쥐어잡고 있었던 동양의 다국적 기업은 일본(Japan) 기업밖에 없어서 당연히 Japan이 들어갔지만 들어보니 라임이 영 아니여서 Korea로 변경했다고 한다. 가사의 내용은 모든 것을 계량화하려는 경쟁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곡이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영감을 준 나라 중에 태국도 있었는데, 서구의 사업가들의 부패한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같은 앨범 수록곡 'Shame'은 이에 대해 느낀 부끄러움을 담았다.
  • 동성애자들이 굉장히 선호하는 밴드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멤버들은 그런 성향이 없다고 밝혔다.

  • 듀란 듀란의 보컬리스트 사이먼 르 본이 당시에 무시했던 밴드였다고 한다. 디페쉬 모드가 2005년에 모 방송에 출연해 회상한 바에 따르면, '너, 너! 내 앞에서 걔네 얘기 하지 마!' 라고 했다고. 해당 동영상 4분 44초 쯤에 나온다.

또 다른 사용자가 올린 같은 영상의 댓글에 따르면, 이 에피소드는 1982년경, 영국의 음악 프로그램 'Top of the Pops' 출연 당시의 일이었을 거라고 한다.
디페시 모드에 대한 전기물 에 따르면 80년대 초 앤디 플레처 또한 사이먼 르 본을 불편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They saw themselves as top of the premier football league(그들 자신을 프리미어 축구 리그에서 최고라 여겼다)는 것이다. 링크 80년대 초에 듀란듀란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디페시 모드는 조금씩 뜨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위상 차이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이들에 대해 호의적이었다고.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가 Dave Gahan과 록시뮤직 트리뷰트 앨범에서 컬래버를 한 적도 있었다. 마침 둘 다 LA에 거주하고 있었고, 록시뮤직의 팬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반 정보

녹음 시기는 1995년 이었지만, 1997년에 발표한 음반으로 보컬은 Dave Gahan, 베이스 기타는 존 테일러가 맡았다. 아쉽게도 애플뮤직에서도 검색이 안 되는 절판 음반이라 유튜브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앨범 표지에 나온 여성은 녹음 당시 존 테일러의 와이프였던 아만다 드 카드네(Amanda De Cadenet)이다. 당시 듀란 듀란을 탈퇴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로 결심한 존 테일러가 세운 인디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음반이었다. 다만, 존 테일러는 21세기가 되자, 다시 듀란 듀란으로 복귀한다.
2002년에 존 테일러가 듀란 듀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Dave의 보컬 스타일을 사랑한다고 한다. 가수로서 훌륭한 스타일을 지녔다고 생각한다고. 링크
또한 듀란 듀란의 키보디스트 닉 로즈는 2011년 'Personal Jesus' 리믹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링크 Personal Jesus (M.A.N. Remix)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여기서 M.A.N.은 Andrew Wyatt, Mark Ronson, Nick Rhodes를 말한다.
그리고 2015년에 사이먼 르본 본인이 트위터에 등판해 I've always lovd Depeche Mode ... always!라고 멘션을 남겼다.링크
워낙 옛날 일이어서 그런지, 양쪽 팬들도 위에 언급된 저 일화는 그냥 웃고 넘어가는 분위기인 듯하다. 실제로 양쪽 다 덕질하는 팬들도 많은 편이다.
  • 국내 언론에는 좀처럼 등장할 일이 없는 밴드이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기사갑자기 등장한 적이 있었다. 디페시 모드의 투어 전담 마사지사가 평창동계올림픽에 온 미국 남자 아이스 하키팀의 마사지를 맡았다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영문 기사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있는데, 디페시 모드의 곡 제목을 이용한 드립들이 깨알 같다.
  • 배우 클로에 세비니가 이들의 열성 팬이다. 클로에 세비니가 2009년에 Dave Gahan과 대담을 나눈 인터뷰 기사도 있다. 입덕 초기에 1988년에 열린 101 콘서트를 가려고 했는데, 베이비 시터 알바로 받는 돈은 티켓을 사기에 너무 부족해서 아는 남자애를 통해 티켓을 구하려 했더니 핸드잡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순진했던 그녀는 그 말이 뭔지를 몰랐는데, 친구들이 하지 말라고 해서 응하지 않았고, 결국 콘서트는 못 갔으나 그 뒤에는 콘서트를 여러 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서양판 백괴사전언사이클로피디아에 Dave Gahan은 초능력 마법사로 분류된다 설정은 80년대 미국 애니메이션 히맨 시리즈에서 따왔는데 마이크로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다고 한다. 링크 마틴 고어는 Dave의 영혼의 형제이며 또 다른 이름은 Adora 공주라고.
  • 80년대에는 관객들이 신발을 던지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90년대에는 공연장에서 관객이 마약 봉지를 던지기도 했다고링크
21세기에 들어서는 다크 초콜릿 투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링크
  • 마틴 고어와 Dave Gahan은 열성적인 데이비드 보위 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보위가 별세했을 때 각각 자신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애도 메시지를 남겼다. Dave의 페북 메시지 특히 마틴은 평소 과묵한 성격에 비춰 보면 이례적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 독일의 인더스트리얼 밴드인 KMFDM가 'Kill Muther Fucking Depeche Mode'란 문구에서 이니셜을 따서 밴드 이름을 지었다는 루머가 있었다. 실제로 이들의 노래 'Sucks' 가사 중에 we hate Depeche Mode라는 구절이 있다. 링크
이에 대해 잡지 '스핀'의 기자가 Dave Gahan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니,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죠'라고 반응했다. 링크
그런데 KMFDM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는 그런 문구가 아니었다고 한다. 링크
본래는 Kein Mitleid Fur Die Mehrheit(다수를 동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독일어 문구 이니셜이었으나, 영어권 사람들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무슨 소리냐고 자꾸 되물었고, 누군가가 Kill Muther Fucking Depeche Mode라고 하는 건 어떠냐고 장난을 쳐서 그때부터 그걸 컨셉으로 밀었다고.
  • 리믹스 곡이 엄청나게 많은 밴드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일의 전자 음악 전문 웹진 '일렉트로닉 비츠'에서 그중 베스트를 따로 선정한 특집 기사를 내기도 했다. 링크
  • 밴드 명칭도 그렇고, 특이한 옷차림으로 유명했던 밴드라, 이들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패션을 주제로 한 기사도 있었다.
  • 자국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반응이 좋은 밴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영국 차트에서 흥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나, 관객 동원력에서 차이가 있다. 이들의 역대급 공연으로 회자되는 로즈볼 공연만 해도 미국에서 열린 것이었는데, 자국에서 열린 단공보다 규모가 컸고, 독일에서는 아직도 그 정도 규모의 관객 동원력을 유지한다고 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서 처음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는 미국에서 을 분리된 영역으로 인식하는 정서가 있어서라고 하는데, 디페시 모드 멤버들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닌 게, 락찔이 항목에 언급된 이매진 드래곤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21세기에 활동하는 유명 밴드도 그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오히려, 자국인 영국에서는 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없다고 한다. 다만, 나라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보니, 미국에 비하면 쏠림 현상이 심하다고 앤디 플레처가 지적하기는 했다. 반면, 미국은 규모가 크다 보니 나름 컬트적인 영역을 강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80년대 후반부터 테크노 씬이 발달하면서 이들은 그쪽에서 엄청난 지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90년대와 2000년대에 활동한 미국의 록 뮤지션들이 이들의 영향을 은근히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미국 록계에서도 재평가되었으며, 그 덕분에 2020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인기와 음악적 평가 양쪽에서 이들의 위상이 높았던 나라는 독일인데, 앞서 언급된 바처럼, 마틴 고어가 독일과 유독 인연이 깊었고, 크라프트베르크의 나라인 만큼, 키보드가 중심이 되어 첨단 장비로 다양한 사운드 실험을 하는 이들의 음악이 독일 대중들의 취향에 맞았다. 또한 원래 유럽이 테크노 계통 장르가 유독 발달한 문화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수상 실적을 보면 자국보다는 독일이 의외로 좋다. 독일의 그래미 어워드에 해당하는 에코 상 후보에 매번 들어갔으며, 2009년 에코상 시상식 무대에서 최초로 신곡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고 링크 2010년과 2014년에는 Best International Rock/Pop Group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 시상식 영상[42] 음악을 심층적으로 다룬 기사도 독일 쪽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 외에도 공산주의 독재를 겪었던 동유럽 국가에서 꾸준히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심지어는 서방 음악이 금지되어 정식으로 음반이 들어오기 전에도 팬층이 있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러시아 팬들은 우리나라의 광복절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전승 기념일5월 9일이 보컬 Dave Gahan의 생일이기도 하여 자국의 국경일인 이 날을 Dave의 날이라 부른다고 한다.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영국 발음은 베이즐던이지만, 미국식 발음인 바즐던으로도 흔히 통용된다.링크 [3] 2013년 이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으나, 전 소속사 대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음반에는 계속 표기한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4] 컬럼비아 레코드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산하로 흡수되었다.[5] 참고로 1983년 앨범에도 망치를 들고 있는 이미지가 있다.[6] 참고로 이들의 전성기였던 <Songs of Faith and Devotion> 앨범 활동 당시 투어는 1993년에 시작해 1994년까지 이어졌으며 공연 횟수는 총 157번이었다.[7]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보이스카웃에서 쓰는 건물이라고 나온다. 아마 지역 문화 시설 같은 개념인 듯. 링크[8] 멤버들이 화나 있었다고 위에 언급한 다큐멘터리에서 빈스가 말하는 부분이 있다.[9] 다만 앨런의 경우는 생선은 먹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 홈페이지에 갈무리된 Q&A를 보면 '스시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Yes, although I prefer sashimi.'라고 대답했다. 또한 마틴 고어는 팬클럽 회지에 따르면 한때는 생선도 먹지 않기로 했다가 Rock Eel을 거부할 수 없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참고로 Rock Eel은 영국인의 소울푸드피시 앤드 칩스에 들어가는 생선이다. 또한 2015년 팬과 채팅을 했을 때 피시 타코를 좋아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생선은 먹는 듯하다. 링크[10] 참고로 BDSM을 비롯한 서구권의 페티시 클럽은 불상사 예방 차원에서 사전에 룰을 고지하고 이를 준수할 것을 의무화하는데, 그중에는 모르는 사람과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을 하지 말라는 것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조할 것.[11] 참고로 사이트만 들어가 봐도 하이틴 타깃 잡지임을 알 수 있다. 링크[12] 여담으로 80년대 초중반 영국 뉴웨이브 씬에서도 나름 마약 문제가 심각했다. 컬쳐 클럽의 보이 조지는 1986년에 헤로인 중독 사실이 발각되어 치료를 받았고 이는 그룹 해체로 이어졌다. 같은 시기 듀란 듀란의 경우는 비교적 상황이 양호했지만, 이들이 코카인을 즐긴다는 루머가 돌아다녔고, 이는 훗날 멤버들의 고백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같은 시기 디페시 모드는 이러한 일에 휘말리지 않았다. [13] 이는 서구권에선 엑스터시를 마약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래서 마약 중에서 최고로 쎈 헤로인에 중독된 Dave만 약쟁이로 인식되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뒤늦게 클럽에서 엑스터시가 유행하여 신종 마약 문제가 심각했다고 대서특필했지만, 본고장에선 이미 구종 마약이었다.[14] 당시 같이 거론된 인물들은 스매싱 펌킨스드러머인 지미 체임벌린, 스톤 템플 파일럿츠의 보컬인 스콧 웨일런드, 앨리스 인 체인스의 레인 스탤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다들 하나같이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지금까지 멀쩡하게 활동하는 인물은 지미 체임벌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뿐이며, 스콧 웨일런드와 레인 스탤리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15] 물론 당연히 전처는 그 이후 아들을 못 만나게 했고, 해당 인터뷰에도 언급되지만, 재활원 치료를 마친 1996년 12월에야 어렵게 허락을 받아낸다.[16] 여담으로 이 인터뷰에서는 Dave의 전처 소생 아들이 자신의 엄마의 허락을 받고 콘서트를 보러 왔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즉 전처도 Dave의 갱생을 인정했다는 얘기다.[17] 1979년에 데뷔한 힙합계의 전설적 그룹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들어간 힙합 아티스트이다. [18] 1982년에 발표된 이 곡은 그 전까지만 해도 파티용 음악이었던 힙합이 흑인들의 삶의 목소리를 담아 내는 음악이 될 수도 있음을 알리는 의미 있는 곡으로 평가된다.[19] 그리고 2017년에 레즈너는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Dave Gahan과 마주쳤다 한다. Q 매거진 기사[20] 참고로 영국은 의무 교육 기간이 만 16세까지이다.[21] 산타바바라의 극장에서 서커스의 요소가 있는 극장식 댄스 쇼를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청소년 댄서 유망주들도 양성한다고 한다. 링크[22] 해외 사이트에선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이 부계 쪽 조상이라 나온다. 나무위키의 말레이시아 문서에도 나오듯이 말레이시아를 구성하는 민족 중에는 인도계도 있다.[23] 훗날 1997년 Q 매거진 3월호 인터뷰를 통해 그 시절 일을 적나라하게 털어놨었는데, 1994년 연말에 자신의 어머니와 전처 소생 첫아들이 오랜 만에 자기를 보러 집에 찾아온 날에도 마약을 하다 기절했었고, 깨어난 후에도 마약 주사기를 찾았다고 한다. 그때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어머니와 7살 난 아들의 진심 어린 위로에 뉘우치고 재활원에 들어갔지만 나오자마자 재발했었다. [24] 참고로 이와 아주 비슷한 일이 이미 9년 전에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머틀리 크루의 니키 식스 관련 내용을 참조할 것. 이 때문에 지금도 해외 음악계에서 이들의 사례가 죽었다가 살아난 뮤지션들의 사례로 같이 묶여서 회자된다.[25] 참고로 영국의 과거 건축물 지붕은 납으로 만든 판자를 올려 만들었는데, 21세기에도 이런 건축물의 지붕을 벗겨 가는 도둑들이 있다고 한다. 기사 여담으로, 노트르담 대성당도 납지붕을 올린 건축물이라, 화재 사건 당시 주변의 대기가 으로 오염되었다고 한다. 링크 그래서 대신 티타늄 같은 친환경 자재를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전통 그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영국에서 납 지붕 절도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은 유적 보호법 때문에 매번 전통 그대로 복원해야만 해서 생기는 문제다. [26] 여담으로 이 인터뷰에서 기자는 마틴 고어가 빈스 클라크와 컬래버를 했던 사실을 언급하는데, 마치 전 남친이랑 만난 것처럼 해석되게 중의적인 말장난을 친다.(This is a rum old do considering that in 2012 Martin hooked up with an ex, and recorded an entire album with Vince Clarke.) 근데, 사실, 디페시 모드 결성 전에는 마틴 고어가 두 밴드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중 한 밴드가 데이브의 친구가 몸담은 밴드였고, 데이브는 리허설을 하는 친구를 위해 음악 장비를 옮겨 주러 갔다가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를 불러 봤는데, 이걸 빈스 클라크가 듣고 데이브를 영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틴이 양다리를 걸친 덕분에 데이브를 영입할 수 있었다. [27] 원래는 디페시 모드의 미국 쪽 홍보 담당자였다. 그래서 1988년 로즈볼 콘서트를 다룬 다큐 영화 <101>에도 등장했다. 이 시점부터 불륜이 시작되어 별거로 이어졌고, 미국으로 이주해 1992년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결혼 선물로 흡연용 헤로인을 받았다고 한다(...) 앤디 플레처는 평소 이 여성을 탐탁치 않게 여겨서 그 여자의 이상형은 약에 쩔어 삐쩍 꼴은 남자인데, Dave도 결국 그렇게 되었다고 디스했다. 링크 같은 기사에서는 이 여성이 Dave와 결혼하기 이전엔 건즈 앤 로지즈의 드러머였던 스티븐 애들러와 동거한 경험이 있다 언급되는데, 스티븐 애들러도 심각한 마약 중독자였다. 다만 Dave는 자신이 마약을 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두 번째 부인이 자신을 마약으로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Dave의 설명에 따르면 두 번째 부인은 심각한 중독자는 아니었고 살짝 손을 댄 수준이었는데, 자신이 더 깊이 빠져 부인을 비참한 지경에 빠트렸기에 부인이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름 죄책감을 드러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28] Dave가 잠시 머물렀던 애리조나의 재활원에서 만났는데, 훗날 Dave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 부인은 당시 그곳에 환자로서 왔던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왔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부인도 과거에 약물을 했었다는 억측이 난무했기에 해명한 듯.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재활원 관련 업무를 했던 사람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29] 그도 그럴 것이, 현 부인은 원래 재즈 마니아로, 빌리 홀리데이, 존 콜트레인이 활동했던 시절 음악이 관심사였다. 나중에 연인으로 발전했을 때, 시절 장발의 Dave가 나온 잡지 사진을 보고 이 사람 누구야?라고 했는데, Dave는 그 순간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참고로 부인과 교제할 당시의 Dave는 긴 머리를 자르고 과거의 깔끔한 스타일로 돌아왔다.[30] 참고로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에도 언급되지만 영국에서 college라는 단어는 16세까지 의무 교육을 마친 후 대학 입시 준비나 전문적인 훈련을 받기 위해 가는 2년제 교육기관을 말한다. 이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대학교 개념이라,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학력 위조를 했다고 오해하기도.링크 [31] 가운데 네모칸 중에서 가장 오른쪽에 마우스를 대면 나온다.[32] 사실 디페시 모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에섹스이다. 영어권 사람들이 느끼기에 에섹스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에섹스 특유의 액센트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에서 결성된 밴드의 유일한 서울 출신 멤버 같은 위치인 듯.[33] 7년제 대학입시 대비 인문계 중등학교를 말한다.[34] 앨런의 말에 따르면 약만 안 하면 Dave는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과거 Dave의 마약중독에 대해 도덕적인 이유로 비난하지 않고, 마약 때문에 본래의 좋은 성격을 잃어버린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35] 앨런이 디페시 모드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전 뉴비였던 Dave와 가장 친했다는 얘기도 있다. 디페시 모드의 전신인 컴퍼지션 오브 사운드 멤버들이 영입한 게 Dave였으니 어찌 보면 뉴비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링크[36] 홈피 곳곳을 보면 앨런이 언론을 얼마나 극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여담으로 해외에 출간된 디페시 모드 전기 <Stpipped>에 인용된 내용을 보면 1993년 투어 당시 NME 기자가 유독 앨런을 공격하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이에 앨런이 조목조목 반박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NME 기사는 앨런에게 허위 사실 유포로 고소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수위가 센 내용이었다. 또한, 같은 시기 Q 매거진 인터뷰를 보면, 기자가 앨런과도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앨런이 거절했고, 멤버들도 앨런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하기로 했다고 나온다. 링크 교차검증을 해 보자면 정황상 기레기의 농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37] 빅스의 <다칠 준비가 돼 있어> 라든가 블락비의 <Toy> 등이 이런 계열이다. 심지어 빅스는 <Chained UP> 활동 시 노예 콘셉트를 내세우기도 했다.[38] 여담으로 앨런 와일더의 말에 따르면, 그 이후 마틴은 껍데기에서 나와 클럽과 바를 찾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이때부터 마틴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고 한다. 당시 마틴의 술버릇은 옷을 벗는 것이었다고 한다.[39] 사실, 기독교를 인정하느냐와는 별개로, 예수님은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니체이다. 즉 기독교 반대≠예수 혐오가 결코 아니다.[40] 비요크 프로듀서로도 활동했다. 2014년 수술 합병증으로 타계[41] Jonathan Kessler는 독립적으로 사무실을 꾸려 여러 가수들의 업무를 맡고 있는데 그가 담당한 뮤지션 중엔 위켄드도 있다. 보컬 Dave Gahan의 절친이기도 하며, 그가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2017년에는 Artist & Manager Awards에서 상을 받았다.링크 [42] 2018년에도 후보에 들었으나, 이 시상식에서 수상한 힙합 그룹이 나치를 찬양하는 병크를 저질러 시상식 자체가 없어졌다. 즉, 디페시 모드가 후보로 들어간 마지막 연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