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정

 

'''역대 1인 우승자'''
<color=#373a3c> '''11대'''
<color=#373a3c> →
<color=#373a3c> '''12대'''
<color=#373a3c> →
<color=#373a3c> '''13대'''
'''2010년 6월 15일'''

'''2010년 11월 9일'''

'''2011년 1월 11일'''
김태경

'''강수정'''

피터 바돌로뮤
'''149회'''

'''175회'''

'''183회'''
[image]
'''이름'''
강수정 (姜水晶)
'''출생'''
1977년 6월 29일 (46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키'''
168cm
'''학력'''
대치초등학교
역삼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생활디자인학과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SNS'''

1. 개요
2.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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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직''' KBS 간판 아나운서로 2002년 KBS 28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KBS부산방송총국 지방 순회 근무시 KBS 부산의 9시 뉴스 진행을 맡았으며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은 바로 여걸파이브(이후 여걸식스로 개명). 지금의 무한걸스같은 여성 단체 예능의 기본을 거의 다 만든 여걸 5에서 강수정은 168cm의 훤칠한 키와 아나운서 이미지에 괜찮은 외모로 조혜련, 정선희, 이혜영, 현영[1]등이 같이 있던 MC들 중에선 상위권이라 인기가 있었다. 이 때부터 안티가 조금씩 생겨났다. 남자 스타 출연만 하면, 손냄새를 맡는다던가......
노현정 이전[2] KBS에서 아나테이너를 키우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 그나마 성공적이었던 인물. 하지만 그 의도가 너무 눈에 보이는데다가 여걸파이브 때 사용했던 공주기믹 때문에 엄청나게 안티가 늘어나서 이후의 방송행보에 크게 걸림돌이 되었다.
정세진의 뒤를 이어 클래식 오디세이를 2005년 7월 8일부터 2006년 3월 9일까지 진행을 맡았다. 아나테이너가 어울리지 않게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된 것을 두고 시청자들[3]의 우려가 많았으나, 정세진이 후배 강수정을 적극 옹호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이전에 <세상은 넓다> 등에서는 보여준 제법 감칠맛나는 진행 솜씨를 무색케하는 발진행으로 출연 기간 내내 시청자 게시판에서 까였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다 하차했다.[4]
해피 선데이 등 KBS의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창 잘 나갈때 2006년 KBS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같은 예능 출연이지만 뉴스 앵커를 하며 아나운서를 유지한 노현정과는 달리 예능MC 쪽의 길을 가게 되었고, 결국 2006년엔 프리 선언 이후 MC로 사실상 전업한 뒤 홍콩 금융계에서 일하는 모 펀드매니저와 밀회 끝에 결혼했다.

강수정 결혼생활의 알려진 일면.
왠지 프리 선언한 이후부터 고정 출연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몇 주 이내에 말아 먹거나 종영시키는 징크스가 생겨서 말아먹는다고 '국밥', '파괴의 여신' 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며 심지어 잘 나가던 프로그램도 강수정이 투입되면 급격히 말아먹으니 강수정 본인이 못하는 건 아님에도 이렇게 망하는 건 정말 징크스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사실 김성주와 달리 프리선언 초기에는 경쟁 방송사였던 MBC, SBS 등에서 환대받으며 굉장히 잘나갔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는 케이블 쪽에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PD가 이 징크스가 두려워서 강수정을 기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케이블 TV도 그녀의 네임밸류 때문에 기용하는 것이지, 케이블에서도 여전히 잘 안 풀리는 모습.
본인이 능력도 되고 노력도 하는데 이런 걸 보면 정말 딱할 지경. 심지어 본인 스스로 '''파괴의 여신'''이라고 자신을 분석한 글을 보고 공감했다고 할 정도로 안습해져 버렸다. 숱한 아나운서들이 방송사의 아나운서실이라는 철의 장막 안에 있을 때는 방송사의 후광으로 인해 능력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후광이 없어짐과 동시에 처참하게 몰락하는 반복되는 과정을 그녀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아 보인다.

2. 그 외


친오빠 강동원TV CHOSUN 기자 겸 앵커로 근무 중이다.[5]
2004년 11월 28일 스타골든벨에 출연했을 때는 이주현에 의해 '''개그우먼'''으로 오해를 받았다. 여걸파이브에서 보여준 이미지 때문인 것으로 추정. 우여곡절 끝에 막판까지 살아남아 골든벨 문제까지 갔지만 결국 실패했다.
우리말 겨루기 39회 '특별한 도전, 특별한 만남' 코너에서 前 MC인 김현욱과 한 팀을 이루어서 5단계까지 갔으며, 1대 100에 나와서 맹활약을 펼쳤다.
2011년 4월, 쌍둥이 출산 3개월을 앞두고 사산을 해 홍콩에서 요양했다. # 이후 2014년 8월 아들을 출산했다. #
2016년 9월 MBN에서 방송되는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청백전-사이다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 오랜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2018년 10월 18일에 해피투게더 시즌4에서 현영, 정선희, 이혜영과 같이 오랜만에 지상파에 모습을 드러냈다.



[1] 조혜련, 정선희만 종영까지 고정이고 이혜영, 현영 등은 중간 합류.[2] 이전 편집본에서 노현정의 성공에 고무되어 후속으로 기획된 아나테이너로 서술되어 있었으나 그 반대이다. 다만 노현정의 극적인 성공과 퇴사, 그리고 현재까지 돌아다니는 많은 상상플러스 짤들로 인해 노현정의 존재감이 더 크게 부각되었을 뿐이다. 당시엔 강수정이 얼짱 아나운서로 유명했으며, 딱딱한 방송기계 언론인으로 통하던 아나운서의 모습을 배제하고 예능형 방송인으로 등장하여 대중에게 '최초의 아나테이너' 로 일컬어졌다. 물론 이전에도 손범수. 최은경 등 아나테이너라는 용어는 없을지언정 시초라 할만한 선배들은 존재하였으나 언론인으로의 인지도는 확실히 쌓았으며 이후 활동에서도 아나운서들이 교양프로그램에서 기본적으로 수행하던 MC의 포지션을 유지하며 활동했었다. 아예 입사 초반부터 예능으로 포지션을 잡아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아닌 출연진으로 커리어를 쌓으며 아나테이너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것은 강수정이 거의 최초다. 동시기 몇을 더 꼽자면 김경란과 노현정 정도가 있으나 이들은 아나운서와 사회자로의 정체성 또한 확실했다. 노현정의 성공 이후 상상플러스는 일부러 노림수를 그쪽으로 잡고 계속 여자아나운서를 투입하였고, 그 결과 후임으로 들어온 아나운서들 중 박지윤, 최송현도 은퇴하고 방송인과 연기자의 길을 걷게된다. 공채 개그맨과 연기자의 개념이 희박해진 시기에 방송사들이 아나운서를 통해 자사 전속 출연진을 확충하려던 시도의 결과물로 보여진다.[3] 심야 시간의 클래식 음악 방송이라 대부분 고정 팬이다.[4] 전임자 정세진이 무려 5년 동안 진행하였는데 그의 분위기와 진행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강수정의 진행이 상대적으로 많이 미흡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클래식 음악에 아무런 소양도 애정도 없이 건성으로 어설프게 진행하는 모습이 클래식 애호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말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고선 좋은 진행을 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 후임자는 박지윤이었는데 당시 신입으로서 스포츠 뉴스에서 인기를 올린 그였기에 역시 일부 우려가 있었으나 처음 우려와 달리 호평을 받았다.[5] 배우인 강동원과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