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강동원'''
'''姜棟元 | Gang Dong-won'''

<colbgcolor=#595959> '''출생'''
1981년 1월 18일 (43세)
[image] 부산광역시 사하구
'''국적'''
[image] 대한민국
'''본관'''
진주 강씨
'''신체'''
186cm[1][2], B형
'''가족'''
외증조부 이종만[3], 아버지 강철우[4], 어머니, 누나
'''학력'''
남양초등학교 (졸업)
경원중학교 (졸업)
거창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기계공학 /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영화전공 / 석사)
'''종교'''
무종교(무신론)[5]
'''데뷔'''
2003년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소속'''
YG엔터테인먼트
'''취미'''
맛집 기행, 목공, 운동, 음악감상, 웹서핑
'''특기'''
축구
'''링크'''

1. 개요
2. 데뷔 전~모델 시절
3. 배우 활동
4. 필모그래피
4.1. 영화
4.2. 드라마
5. 그 외 활동
5.1. 뮤직비디오
5.2. 방송
5.3. 라디오
5.4. 개인 방송
5.5. 음반
5.6. CF/광고
6. 수상 경력
7. 기타
8. 금수저라는 오해
9. 친일파 후손 논란
9.1. 관련된 행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배우.
수려한 외모,186cm 의 키, 그리고 112cm의 긴 다리를 소유하고 있다. 기존의 미남 배우들인 장동건, 정우성, 고수와는 다른 곱상한 꽃미남상이며 2000년대 이래로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는 '예쁜 남자' 신드롬의 주역. 패션 모델 출신이며 무려 9~10등신에 달하는 비율을 가지고 있다. 한쪽 눈은 유쌍, 다른 쪽은 연한 속쌍꺼풀을 가지고 있다. 각각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짝눈이 매력이자 연기적 장점이며 뾰족하고 높게 솟은 콧날이 마치 직각삼각형을 얹어놓은 것처럼 인상적이다.
전형적인 배우의 루트를 거치지 않았고 데뷔 초기에 보여준 다소 어색한 연기로 인해 배우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였으나 배우로서의 목적 의식을 갖고 묵묵히 노력한 덕분인지[6] 이제는 대중들에게 연기력 또한 인정받아 가는 추세. 특히 꾸준한 작품 활동이 큰 인정을 받고있다. 일부 인기 영화배우들이 신비주의로 인해 대박 영화 한 두 편 찍고 나면 몇 년씩 쉬면서 CF만 찍는 반면[7], 강동원의 경우 매년 한 두편씩 꾸준히 영화를 찍고 다양한 배역을 맡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기에 그런 부분에서 평가가 높다. 추가로, 그는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많이 찍기 위해 광고 촬영은 줄이려 한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광고로 인한 수입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기할 때.[8]
필모그래피를 보면 출연작 속 캐릭터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9] 본인은 배역이 겹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 중 연달아 흥행한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매 작품이 개봉할 때마다 '강동원이 곧 장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맡은 배역은 다른 배우가 절대로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독보적인 연기적 존재감을 자랑한다. 캐릭터를 본인의 스타일대로 개성있게 살려내며 표정 연기 또한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특히, 액션 연기 분야에서 칭찬받은 적이 많다.[10] 본인도 액션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드러낸다.[11] 다만 그의 작품을 본 대중들의 반응이 연기보다는 주로 그의 외모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씁쓸한 사실 역시 존재한다. 안정적인 길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강동원의 행보는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본인도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다.[12]
영화계에서의 높은 입지와 타율이 괜찮은 필모그래피 및 스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에 비해서 수상 경력은 빈약한 편이다. 데뷔 초에 신인상과 인기상을 여러 개 받은 이후 2010년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의형제》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본인은 상 받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 또한, 아직 1,000만 관객을 모은 적이 없지만 강동원은 오롯이 혼자서 티켓 파워를 발휘하는 배우로 평가 받는다. 2016년 CGV리서치센터가 관객 1,0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관객들이 믿고 영화를 보게 만드는 배우 2위(28.2%)를 차지했다. 하지만 본인은 천만 배우 타이틀에 대해서도 아쉬운 것이 없고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13]
2016년 인터뷰에서는 '향후 5년이 자신의 연기인생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고 YG로 이적한 이유가 '열악한 영화 환경에 대한 싫증과 한국 영화의 세계화, 아시아 시장에 대한 겨냥' 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이 배우의 행보에 더 기대를 갖고 눈여겨 볼 만하다.
영화계에서는 '강동원은 이미 브랜드나 마찬가지다'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일단 강동원이 출연하면 못해도 본전은 뽑는다고 한다.[14]

2. 데뷔 전~모델 시절


[image]
'''학창 시절 (강동원 졸업사진)'''
중학교 때는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굉장히 잘했었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어릴 적 별명은 ''''오골계''''였다고 한다. 출처 어렸을 적엔 평범한 외모였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서 까맣게 그을렸기에 그런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위의 졸업사진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지는 까무잡잡하고 동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이의 모습이다. 지금의 외모로 자리잡힌 건 고등학교 시절로 보인다.
자율학교거창고를 입학고사에서 200점 만점에 192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입학한다. (단 강동원이 입학할 당시엔 자율학교가 없었다. 그때엔 그냥 지역 명문고) 고등학교 입학 후 어릴 적 부모님에 의해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하게 된 것이 한이 됐었는지 축구부에 합류할 기회를 잡자 제대로 활약하게 되면서 학업에 소홀했다고 한다. 이 당시 반항심에 거의 백지로 시험지를 내다시피 한 적이 있는데 전교 200명 중 198등을 한 적도 있다고. 고3때, 부모님의 기대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생각에 독하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기계공학과에 특차로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공계 쪽에 재능을 보였고 본인은 수와 셈에 능해 당연스럽게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강동원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과에 온 문과생'.
'''대학시절'''
강동원에겐 대학시절이 썩 유쾌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진 않다. 이래저래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모델시절 함께했던 지인 배정남이 방송에서 했던 말로 보면 모델생활 중에도 학비를 벌기위해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든 생활을 한적도 있다고 한다. 따뜻한 사람인데 당시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2학년때 지하철에서 캐스팅 돼 모델계에 입문했다. 빼놓을 수 없는 얘기로, 모델계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탑모델이었다. 모델일때도 다리길이가 유명했는데, 강동원은 키가 186cm이지만 다리길이는 112cm로, 키 190cm의 모델들의 다리길이와 비슷했다고 한다.
한국 모델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섰고 프라다 런웨이에 초청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그때 이미 배우를 준비중이었기 때문이다. 2002 GQ 대한민국을 뒤흔든 18인 중 설경구, 거스 히딩크 등과 함께 선정된 유일한 남자 모델이자, 일본 언더커버, 넘버나인같은 당시 유명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그가 원하는 옷이라면 뭐든지 주겠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 버버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디자이너 우영미의 뮤즈. 모델계를 떠나서도 그녀의 유일한 뮤즈라고 한다. 모델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듯 하다.
하지만 자신은 모델보다는 배우에 뜻을 품고 있었어서 모델에서 배우로 전업하게 된다. 훗날 다시 모델에 복귀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모델계에 미련은 조금 있지만 모델 시절 연예인들의 쇼 출연으로 신인 모델들이 제약을 받는 일이 많아 자신은 절대 캣워킹을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아무래도 이건 자신이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인 듯하다.

3. 배우 활동


본인의 연기 겸 드라마 데뷔작은 2003년 3월부터 방영한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다음으로는 2003년 7월부터 방영한 드라마 《1%의 어떤 것》으로 싸가지 없으면서도 잔정 있는 꽃미남 재벌 2세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2004년 1월에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15] 에서 최희철 역을 맡았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목소리와 김하늘과 치고받는 억척스러운 억양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4년 7월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16]에서 정태성 역을 맡았다. 여기서 제대로 꽃미남 이미지로 꽂혔고 강동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우산 들어주는 장면[17]은 한국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심쿵' 장면으로 남았으며 이후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강동원 본인은 우스갯소리로 이 광경을 극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언급했다. 본인은 이 당시, 신인으로서 얻은 폭발적인 인기에 '이 영화에서 얻은 인기가 얼마나 갈까'라는 회의감에 젖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극까지도.
'''<영화 늑대의 유혹>'''
2004년 8월에는 SBS 드라마 《매직》에서 차강재 역을 맡았다. 이는 마지막 드라마 작품으로, 강동원은 열악한 드라마현장이 본인이 드라마를 하지않는 이유라고 밝히기도했다.
2005년 9월에 개봉한 사극 영화 《형사 DUELIST》에서 슬픈 눈 역을 맡았다. 본인도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지만 생각보다 흥행이 많이 되지 않아서 상심이 컸던 듯. 흥행은 잘 되지 않았지만 청룡영화상 조명상, 미술상과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10대영화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강동원이 시상식에서 꽤나 기뻐했던 걸로 아는데.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형사의 칼싸움 신이 오마쥬되기도 했다. 2015년 10주년 행사에도 참여했다. 본인은 훗날 이 영화를 가장 인생터닝포인트였다고 말했다.
2006년 9월에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 정윤수 역을 맡았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7년 2월에 개봉한 《그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 목소리 역을 맡았다.[18][19]
2007년 10월에 개봉한 《M》에서는 한민우 역을 맡았다.
2009년 12월에 개봉한 《전우치》에서는 도사 전우치 역을 맡았다.[20]
2010년 2월에 개봉한 《의형제》에서는 북한 간첩 송지원 역을 맡았다. 송강호와 훌륭한 케미를 형성하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이후 강동원은 김윤석, 황정민과 작품 내에서 훌륭한 케미를 이뤄내 남남 케미의 끝판왕으로 군림한다.[21]
2010년 11월에 개봉한 《초능력자》에서는 초능력자(초인) 역을 맡았다.
2010년 11월 18일 사회복무요원 이행을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다.[22]
2010년 《러브 포 세일》에서 제이 역을 맡았다.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Camellia)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로 《지구를 지켜라》로 유명한 장준환 감독의 작품.[23] 이후 도쿄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으나 한국 개봉은 하지 않았다.
2013년 《더 엑스》에서 X 역을 맡았다. 김지운 감독의 단편영화.
2014년 7월에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악덕 관리 조윤 역을 맡았다. 강동원의 악역 연기와 한복 자태, 검술 등이 특히나 호평받았다.
2014년 9월에 개봉한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선천성 조로증을 앓는 아이의 철부지 아빠인 한대수 역을 맡았다.
2015년 11월에 개봉한 《검은 사제들》에서 최준호 부제 역을 맡았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소재의 오컬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544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으며 연기력 또한 인정받았다.
2016년 2월에 개봉한 《검사외전》에서 꽃미남 사기꾼 한치원 역을 맡았다. 약 97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크게 흥행했다.
황정민과 함께 서로의 티켓파워를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2016년 11월에 개봉한 《가려진 시간》에서 실종되었다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돌아온 소년인 여성민 역을 맡았다. 개봉 시기가 좋지 않아 흥행엔 실패했지만 한국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과 동시에 흔치 않은 소재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2016년 12월에 개봉한 《마스터》에서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김재명 역을 맡았다.
2017년 12월에 개봉한 《1987》에 잘생긴 남학생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팜플렛이나 CM 등에서 등장 관련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에 상영관마다 강동원이 등장하는 씬에서 웅성이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강동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전,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불이익을 받을 것을 감수하고 1987 제작진에게 제일 먼저 달려왔다고 이한열 기념사업회에서 밝혔다. 저예산 영화로 제작될 뻔 했던 1987은 제일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힌 강동원 덕분에 투자자가 모여 지금의 규모로 제작되었고, 강동원이 맡은 이한열의 기념사업회에서는 강동원에게 감사를 표했다.[24]배우 강동원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CGV 용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여사와 함께 영화를 관람한 후, 무대인사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훔쳤다. https://youtu.be/XbDQhZWRyKw 다른 무대인사 진행 도중에도 울고있는 관객을 보며 자신도 같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2018년 2월에 개봉한 《골든슬럼버》에서 평범한 택배기사 김건우 역을 맡았다. ‘golden slumbers’는 실제 영국 밴드인 비틀즈의 노래이다.
쓰나미 LA》에서 보 역을 맡았다. 강동원의 첫 할리우드 출연작이며,[25]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서퍼로 출연할 예정이다. 배급사 측은 영화 속에서 서핑하는 모습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정의로운 시민 역할로 스펙터클한 액션과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며 전부 영어대사로 연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이먼 웨스트 감독이 연출을 맡았었는데, 스콧 만 감독으로 바뀐 뒤 다시 닉 카사베츠[26] 감독으로 교체된 듯 하다.[27] 미국 LA역사상 가장 강력한 쓰나미가 도시를 강타한다는 소재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영국과 멕시코에서 번갈아가며 촬영하며 유럽 로케는 루마니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2018년 4월에 크랭크인하고 2019년 북미 개봉 예정이었지만 일정 문제로 제작이 지연되고 있다.
2020년 7월 개봉한 《반도》에서 초토화된 땅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되는 군인 출신 한정석 역을 맡았다. 반도는 영화 부산행의 속편으로, 부산행의 시점으로부터 4년이 지난 뒤 국가 기능이 멈추고 재난으로 폐허가 된 반도에서 탈출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사투를 그린다. 부산행, 서울역으로 세계관을 이어온 연상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2019년 6월 24일 크랭크인 & 2019년 10월 31일 크랭크업. 코로나로 인해 극장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4. 필모그래피



4.1. 영화


Filmography
'''주연'''}}} {{{#202020,#dfdfdf '''2004. 2. 20'''
배형준 감독 / 최희철 역
'''주연'''}}} {{{#202020,#dfdfdf '''2004. 7. 22'''
김태균 감독 / 정태성 역
'''주연'''}}} {{{#202020,#dfdfdf '''2005. 9. 8'''
이명세 감독 / 슬픈 눈 역
'''주연'''}}} {{{#202020,#dfdfdf '''2006. 9. 14'''
송해성 감독 / 정윤수 역
'''조연'''}}} {{{#202020,#dfdfdf '''2007. 2. 1'''
박진표 감독 / 유괴범 역
'''주연'''}}} {{{#202020,#dfdfdf '''2007. 10. 25'''
이명세 감독 / 한민우 역
'''주연'''}}} {{{#202020,#dfdfdf '''2009. 12. 23'''
최동훈 감독 / 전우치 역
'''주연'''}}} {{{#202020,#dfdfdf '''2010. 2. 4'''
장훈 감독 / 송지원 역
'''주연'''}}} {{{#202020,#dfdfdf '''2010. 11. 10'''
김민석 감독 / 초인 역
'''주연'''}}} {{{#202020,#dfdfdf '''2014. 7. 23'''
윤종빈 감독 / 조윤
'''주연'''}}} {{{#202020,#dfdfdf '''2014. 9. 3'''
이재용 감독 / 한대수 역
'''주연'''}}} {{{#202020,#dfdfdf '''2015. 11. 5'''
장재현 감독 / 최준호 역
'''주연'''}}} {{{#202020,#dfdfdf '''2016. 2. 3'''
이일형 감독 / 한치원 역
'''주연'''}}} {{{#202020,#dfdfdf '''2016. 11. 16'''
엄태화 감독 / 여성민 역
'''주연'''}}} {{{#202020,#dfdfdf '''2016. 12. 21'''
조의석 감독 / 김재명 역
'''주연'''}}} {{{#202020,#dfdfdf '''2018. 2. 14'''
노동석 감독 / 김건우 역


'''주연'''}}} {{{#202020,#dfdfdf '''2018. 7. 15'''
김지운 감독 / 임중경 역
'''주연'''}}} {{{#202020,#dfdfdf '''2020. 7. 15'''
연상호 감독 / 한정석 역



'''개봉 연도'''
'''제목'''
'''배역'''
'''비고'''
2004년
그녀를 믿지 마세요
최희철
주연
늑대의 유혹#s-3
정태성
2005년
형사 DUELIST
슬픈 눈
2006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s-3
정윤수
2007년
그놈 목소리
유괴범
조연
엠(M)
한민우
주연
2009년
전우치
전우치
2010년
의형제
송지원
초능력자
초인
2012년
러브 포 세일
제이
주연[28]
2013년
더 엑스(X)
X
2014년
군도: 민란의 시대
조윤
주연
두근두근 내 인생
한대수
2015년
검은 사제들
최준호 부제
2016년
검사외전
한치원
가려진 시간
여성민
마스터
김재명
2017년
1987
잘생긴 남학생[29]
특별출연
2018년
골든 슬럼버
김건우
주연
인랑
임중경
2020년
반도
한정석
미정
쓰나미 LA
Beau
브로커


4.2. 드라마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비고'''
2003년

위풍당당 그녀
민지훈
데뷔작
1%의 어떤 것
이재인
주연
2004년

매직
차강재

5. 그 외 활동



5.1. 뮤직비디오


'''발표 연도'''
'''아티스트'''
'''곡명'''
2001년
J.ae

LINK
비가와
조성모
다짐
2010년
주형진
헤어지자고[30]
2012년
강동원 in a day[31]
2016년
비밀을 말하다[32]
2019년
[33]

5.2. 방송


'''날짜'''
'''방송사'''
'''방송명'''
'''역할'''
'''비고'''
'''2004년'''
2월 9일

전파견문록
게스트
(with 김하늘, 주영훈)
2월 12일

해피투게더1
(with 김하늘, 박혜경)
2월 15일

브레인 서바이버

7월 10일
공감토크쇼 놀러와
(with 조한선, 이청아, 김정화
7월 12일

야심만만
(with 조한선, 이청아, 이성미, 박미선) #
7월 15일

해피투게더1
(with 조한선, 자두
7월 18일
여걸 파이브 아름다운 만남

'''2005년'''
9월 19일

한미일 마술대격돌
게스트
(with 최현우
'''2015년'''
11월 4일

JTBC 뉴스룸
게스트
인터뷰 일기예보

5.3. 라디오


'''날짜'''
'''방송사'''
'''방송명'''
'''역할'''
'''비고'''
'''2014년'''
8월 25일

두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게스트
#
'''2018년'''
2월 9일

배철수의 음악캠프
게스트


5.4. 개인 방송


'''연도'''
'''방송 플랫폼'''
'''비고'''
2019년
유튜브채널
모노튜브
브이로그 강동원&친구들[34]영상모음
2020년
강동원 X 모노튜브 Live영상

5.5. 음반


'''연도'''
'''앨범'''
'''표지'''
'''제목'''
'''비고'''
2015년
검은 사제들 OST
[image]
Victimae Paschali Laudes (Deacon Choi & Priest Kim Ver.)
#
메이킹
2018년
1987 OST
[image]
가리워진 길 - 이한열
#
가리워진 길 - 연희
#
골든 슬럼버 OST
[image]
힘을 내 (친구들 with 신해철 Ver.)
#

5.6. CF/광고


'''방영 연도'''
'''기업'''
'''브랜드'''
'''비고'''
2000년
한국네슬레
네스카페
#
2002년
CJ39쇼핑
CJ몰

CJ제일제당
가쓰오우동
#
2003년
햄스빌 포코포코

OB맥주
카스

예신퍼슨스
스멕스

2003년~2005년
KTF
굿타임찬스, 매직엔, K-ways
# # #
2004년
매일유업
카페라떼
#
썬업 뷰티 콜라겐

2005년
더베이직하우스
베이직하우스
#
팬택앤큐리텔
팬택
#
2006년~2007년
삼성물산 제일모직
엠비오

LG전자
싸이언
# #
샤프전자
리얼딕
#
2008년~2009년
세정과 미래
크리스크리스티

2009년
대선주조
봄봄(소주)
#
2009년~2011년
남양유업
프렌치카페
#
2010년~2011년
코원시스템
코원
#
2011년
남양유업
프렌치카페 카페믹스[35]
#
2012년~2014년
프렌치카페 루카
#
2013년
아디다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
2014년
한국유니클로
유니클로 슬림피트 스트레이트 셀비지 진, 유니클로 후리스풀짚재킷
# #
2015년~2019년
남양유업
프렌치카페 루카스나인, 프렌치카페 루카스나인 라떼
# # #
2016년~2017년
코오롱
코오롱스포츠 안타티카
#
2017년
한국유니클로
유니클로 슬림피트 데미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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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주)플래시드웨이브코리아
PL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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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상 경력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2003년
MBC 연기대상
남자 신인상
1%의 어떤 것
2004년
제3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남우상
늑대의 유혹
제25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제9회 여성관객영화상
그나마 가장 희망적인 남성 캐릭터상
그녀를 믿지 마세요
제2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
제4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제7회 디렉터스 컷 어워드
올해의 신인연기자상
씨네21 영화상
올해의 남자신인배우
늑대의 유혹
2005년
제28회 황금촬영상
신인남우상
제3회 CGV 관객이 뽑은 올해의 영화상
올해의 신인남자배우상
그녀를 믿지 마세요
늑대의 유혹
제4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매직
제26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형사 DUELIST
2010년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의형제
2016년
InStyle 스타 아이콘
스크린 남자 배우 부문

2017년
뉴욕아시아영화제
아시아스타상
가려진 시간
2020년
제29회 부일영화상
남자 인기스타상
반도

7. 기타


  • 좌우명은 공자의 명언인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으로, 데뷔 이후 변함없는 좌우명이라고 한다.
  • 이정진이 사무실에서 사투리 연기를 하는 모델을 보고 생김새가 맘에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사투리가 안 고쳐져서 그랬던건데 연기하는걸로 착각했었다고.. 지금도 연기 외에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온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안다. 여담으로 여욱환이 《강심장》에서 한 얘기로는 2002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이탈리아에서 생쇼(?)를 한 적이 있다고(...). 동영상
  • 가수 주형진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강동원은 주형진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주형진은 강동원의 발성 연습을 돕는 등 현재까지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 때문인지 친분은 배우들보다는 감독과 더 많은 듯. 2012년 11월 강동원의 대체 복무 소집 해제 당일 공백 기간을 기다린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형진의 노래에 강동원의 하루를 담은 강동원 in a day를 영상과 무료 음원으로 공개했다. 10년이 넘는 서울 생활 내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남산타워와 63빌딩, 노량진 수산시장 등에 나타난 강동원을 만날 수 있다. 2016년, 화보를 찍는 도중 주형진의 신곡 '비밀을 말하다' 발표 소식을 듣고 본인이 먼저 뮤직비디오 출연을 제안해, 노개런티로 다시금 출연하며 우정을 과시했다.
  • 활동 초기에는 《해피투게더》, 《공감토크쇼 놀러와》 등에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작품 활동 때문에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한 꼭지에 출연하는 것을 제외하면 노출이 정말 없다. 공식 팬미팅도 없다. 무대인사 등을 제외하면 접할 기회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사생활 노출도 꺼리는 편이다. 때문에 지인들의 인스타그램 등 SNS에 근황이 뜨면 팬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운 편이다.
  • 과거에는 팬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생일파티 겸 팬미팅을 했었다. 수많은 팬들이 소액씩 모아 장소 대관과 생일선물 준비 등 행사를 진행하고 참여한 팬들에게 나눠줄 여러 굿즈를 제작했다. 그 후 강동원의 설득으로 생일선물은 받지 않기로 하고 기부 등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당시 생일파티에 다녀온 팬들의 후기에 의하면 강동원은 선물을 받지 않는 이유를 열거하며 자신한테 이런거 하지 말라고, 솔직히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물 대신 영화를 봐달라고 했다고. 그 후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강동원의 요청으로 생일파티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열린 생일파티 겸 팬미팅은 무료로 진행되었다. 현재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팬들과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단관 행사를 진행한다. 2015년 검은사제들 단관 행사에 다녀온 팬들이 강동원의 말을 옮긴 후기에 의하면 강동원은 몇 년간 생일파티를 그만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도 생일이 방학이라 생일파티를 거의 안해봐서 아직도 민망하고, 사실 생일파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처음 생일파티를 시작할 때도 강동원이 거절했지만 카페 운영진들이 팬을 뭐라고 생각하는거냐고 혼냈다고 한다. 그 후 중간에 한번 더 거절의사를 밝혔지만 또 운영진들이 혼내서 계속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렇다고 생일파티가 싫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팬들을 만나서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생일파티는 하지 않지만 단관 행사는 언제든지 참여할 것이고 오히려 영화 얘기를 많이 할 수 있고 할 말도 더 많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 2007년 소속사인 더맨 모델 매니지먼트와 결별한 후 2013년 uaa에 들어가기 전까지 개인매니저와 활동했다. 2016년 yg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며 혼자 활동하는 것이 힘들어 큰 기획사로 들어갔음을 밝혔다. 해외 프로젝트 추진 등을 홀로 감당하는 건 더이상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uaa는 소속 연예인이 5인 이하인 소규모 기획사이다.)
  • 태연, 한승연, 수지, 효린 등 수많은 여성 연예인의 이상형을 독차지 하고 있다. 특히 태연은 《친한친구#s-2》 마지막 방송에 육성 녹음으로 출연했는데, 막방 슬픔의 눈물을 순식간에 마르게 할 정도. 일본 성우 히로하시 료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다. 성우 여행사 한국 편에서 히로하시는 강동원 사진만 계속 사댔다. 그리고 대만 편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강동원이라구요!"라고 따지는 신이 있는 것을 봐서는 확실한 팬. 그리고 한국에 단독적으로 방문할 때도 강동원이 출연한 영화 DVD를 사들고 갈 정도. 그리고 만화 《해파리 공주》의 작가 히가시무라 아키코도 8권 후기에서 강동원 팬임을 인증. 뿐만 아니라 일본 패션지 SPUR 2013년 7월호의 강동원 특집코너에서 강동원과 직접 만난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이 만화 내용에 따르면 《배가본드》와 《원피스》를 좋아한다고 한다. 히가시무라 만화도 읽어본 적이 있다고. 더불어 여타의 인터뷰들을 보면 덕력이 상당한 것 같다. 덧붙여 건프라 덕후이다.
  • 인기 상승하는 중에 여자 친구[36]가 있음을 밝혔었다. 6~7년 정도 사귀고 결별한 듯. 이후 공개연애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원빈이나영의 열애설이 보도된 날 두 사람과 함께 덩달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되었다. 여성들의 공공재였던 강동원빈 중 원빈이 열애를 인정했으니 이제 남은 건 강동원 뿐이라며 강동원은 평생 공공재 솔로로 남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원빈 이나영 열애가 알려졌을 때 강동원 공공재가 함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 부산 출신답게 돼지국밥, 밀면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음식들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한정식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던 곳만 갔지만 이제는 맛집을 다니며 새로운 음식을 접해보는 게 좋다고. 미식가 기질이 있는 듯하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맛이 없는 음식을 먹으면 공허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 2021년 기준 한국나이 41세로 굉장한 동안이다
  • NC 다이노스 팬이다. 과거에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NC 경기를 직관하는 사진 한장과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의 목격담이 있었기 때문에 NC 팬으로 추정만 되었었는데[37] 2020년 6월 한 유튜브 라이브에서 KBO 리그에서 어떤 구단을 응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NC를 응원하고 있으며, 최근 성적이 좋아 기분이 아주 좋다고 했다. 또 누나 가족들도 응원하고 있다고 답해 오피셜. 관련영상
  • 이탈리아 세리에 AAC 밀란의 골수 팬으로도 유명하다. 축구경기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 밀란의 레플을 입는다거나, 생일 케이크커팅때 밀란 유니폼을 입고 자른 짤이 널리 퍼진 적이 있다.
  • 강호동과는 종씨에 파까지 같다고 한다.
  • 2015년 11월 4일 JTBC 뉴스룸 2부에 출연해서 손석희 앵커와 대담을 나누었다.링크 11년 만의 방송출연인 데다가, 생방송이라 그런지 매우 긴장해서 땀까지 뻘뻘 흘렸다. 사투리 억양까지 튀어나온다. 그래도 벌벌 떨면서도 할 말은 조곤조곤 했다. 평소 팬들 외에는 노출되기 힘들었던 면모를 많이 보여 호평이 많다. 그리고 대담이 끝나고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일일 기상캐스터가 되어 날씨예보를 하고 돌아갔다. 일기예보를 마치고 프레임에서 나간 줄 알았는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 정려원과의 열애설이 찌라시를 통해 돌았다. 박효신의 소개를 통해 교제중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강동원은 정려원은 사적으로 모르는 사이라며 그분에게 누가 될까 죄송하다며 부인했고 정려원 측도 부인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강동원은 지금껏 이런식의 찌라시에 별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꽤나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고 새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최초 유포자를 잡아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한다.
  • 탈모가 아니냐는 의혹이 구글에서 강동원을 치면 가장 먼저 연관검색어가 뜰 정도이다. 강동원이 작은 얼굴에 비해 넓은 이마를 가졌고 M자 두상이기 때문에 탈모에 취약할 것이고, 항상 긴 머리를 하는 이유가 탈모를 숨기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이마를 까면 항상 넓이가 같아, 그저 이마가 넓은 것 뿐이다.
  • 한양대학교 축제때 각 학과별로 주점을 열었는데, 기계과에서 강동원[38]을 내세워 장사를 하는 바람에 여자 손님들이 죄다 기계과로만 몰려가 다른 학과 주점들이 전부 망해버렸다고 한다.
  • 끊임없이 김은숙 작가의 신작이 나올때마다 이름이 나오고 있다. 딱히 작가가 원한다는 인터뷰나 배우가 출연제의를 받은것도 아님에도, 둘이 만나게 되면 흥행배우와 흥행작가의 만남이다 보니 주위에선 같이 작업하길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8. 금수저라는 오해


금수저 배우로 알려져 있어 데뷔전 부유한 삶을 누렸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데뷔 당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릴 적 집안 환경은 넉넉지 않았으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반 사원에서 시작해 강동원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부사장까지 올라간 신화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어 태어나자마자 유복하게 살아온 금수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39]
2008년, 선박왕을 소재로 한 드라마 <내 여자> 측에서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내 여자>의 주요 촬영지인 SPP 조선의 부사장이 강동원의 아버지라는 것을 기사화하며 강동원이 금수저라는 보도가 처음 나오게 되었다. 강동원 측에서는 여러번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2017년 외증조부 친일파 논란으로 인해 금수저라는 오해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강동원의 인터뷰와 부친 강철우의 프로필에 따르면 강동원의 부친은 중견기업 대선조선, 대기업 기아중공업의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IMF 때 실직하여 중소기업인 부산산업기계로 이직하였다. 그리고 중견기업 SPP조선과 합병하고 8년 뒤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고 한다. 이는 강동원이 배우로 데뷔하고 5년 후의 일이다. SPP조선은 2017년에 폐업했다.
'''아래의 인터뷰를 보면 강동원은 어린시절부터 금수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데뷔 초에 밝힌 일화 (2004, 스타고백)'''

어린시절 일화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근무하셨는데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일터에 나가셨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오셨고, 나는 수십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은 끝에 손가락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내 손가락에는 낫에 베인 흉터가 남아 있다.

어렸을 때 유치원에 공짜로 다니는 행운을 얻었다. 박봉의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는 내 유치원 등록금까지 지원해줄 사정이 안됐다. 누나만 유치원에 정식으로 다녔다. 머리가 커 누나와 ‘맞먹기’ 전만 해도 난 누나의 뒤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순한 동생이었다. 누나가 유치원에 가면 집에 혼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날마다 유치원에 쫓아갔다. 그런 나를 보고 당리유치원의 정옥주 선생님이 유치원에 무료로 다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 덕분에 난 유치원 졸업장도 갖게 됐다.

중학생 때 일화

그날의 내 옷차림은 이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던 추리닝(트레이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대부분이 청바지를 입고 맵시를 뽐내고 있는데 나만 뒤떨어져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날 반 대표로 장기자랑대회의 사회를 봤다.

수십명의 친구들 앞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서 있으려니 솔직히 창피했다. 추리닝 패션이 10년 후인 현재 이렇게 유행할 줄 알았으면 ‘패션의 선구자’인 척 자랑을 할 걸 그랬다(^ ^). 당시 난 옷이라곤 추리닝 두벌밖에 없었다. 그것을 갈아입으며 살았고,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소풍 날 옷 때문에 빚어진 아픈 기억으로 ‘(옷)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풍 갔다온 뒤 철딱서니 없이 엄마한테 옷을 갖고 한바탕 투정을 부렸던 모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을 앞둔 어느날 내 방안에 곱게 포장된 옷 한벌이 놓여있었다. 비싼 니트 상의였다. 돈도 없었을 텐데 엄마가 왜 그랬는지. 가슴이 찡해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난 그 옷이 닳도록 고등학교 때까지 입었다.

대학생 때 일화

1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 이모부 집에 기거하며 골프연습장에서 고된 아르바이트를 했다.

■ 재벌설 보도 당시 강동원 측의 반박기사

강동원의 한 지인은 1일 "강동원의 아버지가 SPP중공업의 부사장이라는 게 알려지고 난 뒤, 마치 강동원이 재벌 2세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면서 "강동원의 아버지는 30여년간 중공업 분야에 종사했고, 말단 사원에서 출발해 올해 초 부사장에 이른 분"이라고 말했다. (2008, 중앙일보)

■ 그 이후의 재벌설 반박

1.

<의형제>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지원’은 돈 때문에 ‘한규’(송강호 분)와 손을 잡는다. 현실 속 강동원도 극중 지원처럼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을까.

그는 “돈 때문에 마음 고생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자장면, 바나나 같은 음식도 잘 못 먹었어요. >외식도 자주 못했고요. 대학교 등록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했을 정도로 어려웠어요.” (2010, 맥스무비)

2.

"잘못 알려진 거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기아자동차에 다니셨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고 프라이드 소형차를 10년 넘게 탔다. 사원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 집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고등학교 때 IMF가 오면서 집안이 심하게 휘청거렸고 아버지가 실직하셔서 조그마한 중소기업으로 옮기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완벽주의자로 꼼꼼한 성격 덕에 일을 너무 잘하셔서 회사를 옮기시면서 정말 빠르게 승진하셨다. 아버지가 원래부터 중역이었던 것처럼 알려졌는데 내가 연예계 데뷔한 뒤에야 대기업으로 옮기신 거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하기 이틀 전에 아버지가 '나 부사장 됐다' 하면서 명함 주시더라. 솔직히 좀 황당했다" (2008년에 부친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고 알려져있는데 <그녀를 믿지마세요>는 2004년 작품이므로 강동원이 착각했거나, 기사에 잘못된 내용이 실린 것이라 추측된다.)

이어 강동원은 "연예계 데뷔도 용돈 벌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다. 대학교 때 1주일에 용돈이 5만원이라 몇 달 진짜 아껴서 옷 한 벌 사는 처지였다. 친구들이 프로필 사진 찍어서 모델 에이전시에 보내보자고 하긴 했는데 연기자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대학 생활 재미도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에 남녀공학을 다녔더니 대학에 와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 >기계과에 입학해서 기계를 만질 줄 알았는데 온갖 수학과 역학만 하다 보니 심심풀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지만 가수를 시키려고 했다. 가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온갖 잡일 시키면서 밥도 안 사 주는 거다. 소속사 가수 CD 돌리다가 맨날 빵에 컵라면 먹으며 살았다. 좀 기분 나쁜 티라도 내면 집에 안 보내주는 거다. 안산까지 차 끊기면 끼어 잘 데도 없는데. 말 그대로 '노예 계약'을 해서 결국 부모님이 물어줄 거 물어주고 잘 해결했다. 없는 살림에 정말 죄송했다"며 옛날 이야기 하니 재미있다고 소리 내어 웃었다. (2010, 마이데일리)

3.

'엄친아'설에 대해

"우리집 사정을 아는 저의 고향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배꼽을 잡고 웃어요. 아주 평범한 아이였어요. 또한 집안 형편도 기사에 난 것처럼 부유하지 않았어요. 그냥 중산층 가정이에요. 모델로 데뷔한 뒤에도 집안 형편이 나빠져 제가 돈을 보내드려야 할 때도 있었어요. 우리 가족은 공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인데 자꾸 기사가 나와 속상해요. 얼마 전에도 누나 가게 사진이 뜻하지 않게 나와 정말 황당했어요." (2009, 스포츠칸)

4.

“재벌 2세설이 계속되고 있어요. 아버지가 재벌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요. 아버지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부사장이세요. 그런데 마치 재벌인 것처럼 알려졌죠. 재벌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세요. 때문에 당연히 저도 재벌 2세가 아니에요. 아버지 재벌설이 2~3년 전부터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부사장 되신 지도 2~3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사실 가족 얘기를 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미 아버지는 공개돼서.” (2010, 뉴스엔)

5.

어렸을 때 집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는데, 누나는 자기 입고 싶은 옷 사는 대신 내 옷 사주라고 양보했다. 누나한테 두드려 맞기도 했는데 사이가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옛날에 누나가 이단옆차기 해서 내가 유리창에 처박혔을 때도 그때만 그랬지 사이가 좋았다. (2010, 인터뷰365)

6.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웃음) 초등학생 때 아파트 15층에 살았었다. 어렸을 때부터 창밖을 내다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국어선생님이 내 별명을 ‘꿈꾸는 소년’이라고 지어준 적도 있다. “우리 동원이는 꿈꾸는 소년이야, 만날 창밖만 보고 있어….”

(좌중 폭소) 언젠가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방충망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15층에서 떨어져서 네 조각이 났더라. 방충망을 잇는 기역자 모양의 플라스틱 이음새가 박살이 났더라고. 난 죽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오시면 창밖을 내다봤다고 혼날 텐데….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아 방충망 사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고. 그래서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아무도 몰래 수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플라스틱 대신 끼워넣을 것을 찾다가 아파트 분리수거함을 뒤져 알루미늄 캔을 기역자 모양으로 다 잘라서 방충망에 연결했다. 한달 뒤에 아버지가 문득 베란다 창문을 보시다가 “어? 이게 뭐지?” 하시는 거다. 그거 제가 예전에 떨어뜨려서 고쳐놓은 거라고 그랬더니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그게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칭찬이었다. (좌중 폭소) 그러다보니 이해하기가 상당히 쉬웠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이란걸. (2014, 한겨레)

7.

-엄친아라는 사실로도 꾸준히 화제가 되는 스타다. 아버지에게는 어떤 아들인가.

"재벌도 아닌데 계속 그러신다. 아버지는 지금 월급 부사장이다. 어릴 때에는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연기 때려치고 공부하라고 하실 때 신경쓰지 말라고 했었다. 내 일에 가족들이 터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보통 가족들이랑 똑같다. 만나면 잠깐은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스트레스 받는다. 그래서 명절에 잘 안내려간다.(웃음)" (2016, enews24)

8.

"어느순간 사람들이 나를 부잣집 아들이라고 알더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에 논두렁길로 학교 다니고 기숙사 생활하고 데뷔해서도 한동안 회사에서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순간 부잣집 아들이라고 기사가 나오고 방송에도 나오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기사를 써주지도 않더라"고 덧붙였다. 강동원은 "아버지가 대기업 부사장이라고 하는데 원래 중소기업 다니시다가 그 회사가 합병을 해서 부사장이 됐다. 그런데 대기업 부사장이란 기사가 그러고 두 달 뒤에 나왔다"면서 "그 회사도 대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다" (2018, 스타뉴스)

9.

"저는 진짜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거든요. 어렸을 때 논두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연탄을 때면서 살았죠. 대학 시절에는 서울로 상경해서 기숙사와 하숙집을 전전했고, 연기자로 데뷔하고 나서도 사무실에서 지내다가 그 뒤 조금씩 삶이 바뀌었을 뿐이죠." 그러나 그는 귀공자 같은 외모 때문에 종종 여러 오해를 받는다. 그는 "무엇보다 '부잣집 아들'이라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억울해했다. (2018, 연합뉴스)


9. 친일파 후손 논란


2017년 2월 18일 모 여초 커뮤니티에 강동원의 10년 전(2007년) 인터뷰가 올라왔다.
[image]
2007년, 강동원은 인터뷰를 하면서 모 연예인과 사돈지간(친가)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외가 쪽 이야기로 넘어오며 외할머니와 외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를 언급하였다. 문제는 친일파인 외증조부를 긍정적으로 언급했다는 것. 이로 인해 논란이 확산되었다. 즉, 2007년에 강동원이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친일인명사전이 완성되기 전'''이었고, 이 인터뷰도 크게 화제되지 않았지만 10년 뒤인 2017년에 다시 화제가 되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 된 것.[40]
논란이 시작되고 8~9일 뒤인 2017년 2월 27일 영화 전문 잡지 맥스무비는 삼일절 특집으로 연예인 중에 친일파의 후손과 독립군의 후손을 비교하는 기사(카드뉴스)를 작성했다. 그 카드뉴스에는 강동원의 외증조부인 이종만은 1급 친일파이고, 위안부 창설을 지원했으며, 친일 행위를 대가로 광산 채굴권을 획득했다고 나와 있었다. '''(이후에 1급 친일파, 위안부 창설을 지원했다는 내용 등은 왜곡된 내용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어떤 개인이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맥스무비 카드뉴스 URL을 링크했던 글을 강동원 측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신고요청 하였고 관련된 메일을 네이버 측으로부터 받은 블로그 주인이 글이 신고 당했다는 글을 작성하면서 '강동원 측이 외증조부가 친일파라는 게시글을 지우고 있다'며 논란이 더욱 확산되었다.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블로그 글을 신고하여 게시 중단'을 한 것이지, 법적 대응을 한 것이 아니다.)
YG엔터가 이후에 밝힌 입장에 따르면 '카드뉴스에 사실과 다른 내용(1급 친일파, 위안부 창설)이 있어서 삭제 요청을 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게시글 신고로 논란이 된 시점에는 해당 카드뉴스에 외증조부와 관련하여 왜곡된 내용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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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3월 1일, 이와 같은 논란이 기사화 되었고 3월 3일에는 유명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강동원과 관련된 논란을 기사화 하였다. [Q&D] "할아버지는 예술이었다?"…강동원, 친일 후손의 실체 17 디스패치는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편찬실장 이용창을 인터뷰하였는데, '''맥스무비 카드뉴스에 실린 이종만의 친일 행적에 대해 상당한 부분이 왜곡되었음이 드러났다.''' 사실은 다음과 같다. 관련 기사
1. '1급 친일파'가 아니다.
강동원의 외증조부 이종만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었으나 이종만을 '1급 친일파'라고 지칭한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등재 시 '급수'를 구분하지 않는다.'''
2. 위안부가 아니라 위문대에 기부한 것 이다.
이종만이 위문대에 기부했는데, 위안부와 위문대는 명백히 다르다. '''위문대의 대는 주머니 대(袋)로 병사들에게 전하는 주머니(보급품)라는 뜻이다. 위안대, 정신대 등의 부대 대(隊) 자와 다르다.''' 따라서 위안부가 위문대에 포함된다고 보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 ''이종만 씨는 1937년에는 위문품대에 금 1,000원을 기탁했고, 1939년에는 1000원을 헌금해 그 돈으로 통조림 3,600개를 구입했다고 기록돼있다. 물론 위문물품을 담을 주머니를 만들기 위해 부녀자들이 동원되었지만 위안부와는 다르다."(이용창) 이는 조선일보[41]와 매일신보[42]에도 보도 되었었다.
3. 친일 행위를 해서 채굴권을 얻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종만이 친일 행위를 해서 채굴권을 따냈다는 자료나 기록이 없어 둘 사이 '''정확한 연관관계를 밝혀낼 수 없다.''' 물론 당시 채굴권을 따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친일 행위를 해서 채굴권을 따냈다는건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이용창은 ''이종만 씨가 채굴 사업권을 몸으로 부딪쳐 얻었는지, 돈을 주고 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증거가 있는 사실만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이종만의 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종만(1886~1977) : 강원도에서 지하자원 개발과 광산업에 종사하며 강원도 평강 개간사업, 함경남도 영흥 범포 개척 등을 추진했다. 1928년 함경남도 함흥과 신흥 등지에서 폐광 위기에 있던 금광을 개발하여 성공한 뒤, 평안북도 자성의 금은광구를 소유하여 '광산왕'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조선 제일의 철광 자성광산도 소유했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1937년 6월 대동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사장에 취임했고, 대동광산중앙조합 이사장과 대동농촌사 이사장을 겸했다. 대동출판사도 설립했다"''(친일인명사전)
디스패치 기사가 난 이후에도 편찬실장 이용창이 이종만의 죄를 축소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은 이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 이용창의 답변'''
같은 날, 소속사 YG에서는 외증조부 게시물 삭제 논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하면서 '''강동원 개인이 삭제조치한 것이 아니라 소속사 차원에서 요청했으나 포털의 특성상 배우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며,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삭제를 요청했다'''고 해명했다.YG "강동원 게시물 삭제 요청, 사실과 다른부분 때문"(공식입장전문)
맥스무비 또한 입장을 발표하였다. 맥스무비 측 “강동원 인적사항, 공식 게시물 아니다”(전문) "해당 카드뉴스는 개인 회원이 제작, 게재한 개인 콘텐츠이며 맥스무비와 무관하다.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한 관리 시스템을 정비할 것이다. 또, 사실과 다른 내용이 확산돼 개인의 명예훼손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바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맥스무비가 적극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다만, 구글 캐시에 남아있는 자료에 의하면 이는 개인이 제작한 것이 아닌 맥스무비의 공식 기사인 것이 확인되어서 거짓 사과문에 대한 2차 논란이 불붙게 되었다. 또, 맥스무비가 주장한 '개인 회원이 제작한 것'이라는 해명은 맥스무비가 영화 커뮤니티인 익스트림무비에 마치 책임전가를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맥스무비와 관련된 커뮤니티 사이트는 익스트림무비가 유일하기 때문. 익일에 그에 대한 해명문이 익스트림 무비에 올라왔다. 강동원 이슈 관련, 맥스무비에서 보내왔습니다
'''3월 5일 강동원 본인의 공식 입장이 발표되었다.'''
강동원 사과…“역사 더욱 공부하고 또 반성하겠다” (전문)

'''- 강동원 공식입장 전문 -'''

안녕하십니까. 강동원입니다. 먼저 외증조부와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점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외증조부의 미담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외할머니가 독립유공자의 자손이셨기 때문에 외증조부에 대한 미담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왔고, 2007년 인터뷰를 한 시점에는 그 분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이 혼란스러웠고, 충격도 컸습니다. 더욱이 가족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했고, 또 관련된 자료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미숙한 대응과 관련해 관련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빠르게 제 입장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도 모두 사과드립니다.

저 또한 배우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고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점, 미숙한 대응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 빠른 시간 내 제 입장을 말씀드리지 못한 점, 모두 저의 잘못이라 통감합니다. 저는 제 외증조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알게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역사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또 반성해나가겠습니다. 아울러 미약하게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일로 심려 끼쳐드린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요약하자면 '''친일파 외증조부의 집에 독립운동가문인 외할머니가 며느리로 들어갔고, 어린시절부터 외증조부의 미담을 전해준 외할머니가 독립운동가 집안이였으므로 의심없이 그 미담만을 믿고 있었던 것.''' (강동원의 외할아버지인 이영조는 강동원이 태어나기 전인 1975년에 사망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기사를 통해 알려진 이종만의 행적을 본다면 외할머니가 전해준 미담은 기부, 교육사업, 사회사업과 관련된 미담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식입장을 통해 밝혀진 사실로는 '''외할머니가 구포 만세운동 노원필의 장손녀'''라고 한다. 즉, 독립운동가 노원필의 손녀가 친일파 이종만의 며느리라는 것. 관련기사 이 보도로 인해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친일파 집안에 시집가는 게 말이 되냐'는 일부 잡음이 가라앉았다.[43]
3월 6일 맥스무비는 해당 게시물에서 친일파인명사전 등재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표현들은 왜곡되었으며 지속적으로 해당 게시물의 2차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 대응하겠다는 두번째 공식입장을 발표하였다. 그 후 맥스무비는 왜곡된 카드뉴스가 올라온 곳에 게시글 삭제를 신고요청 하였고, 1급 친일파와 위안부 창설 등 왜곡된 내용을 수정한 경우에는 포털사이트 측에서 게시글을 다시 허용해 주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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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관련된 행보


2017년 12월, 영화 1987 개봉 이후에는 강동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밝혀지지도 않았던 2016년에 1987에 처음으로 캐스팅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기사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들어갈 걸 감수하고 영화에 참여한 것'''에 대해 대중의 호의적인 반응이 늘어났으며, 2017년 4월 언론들이 '친일파 후손 강동원이 1987에 참여해도 되는가' 하고 기사를 내자 '''이한열기념사업회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강동원의 1987 출연에 대해 직접 나서서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고 그 이후로도 수시로 감사를 표했다. 강동원은 단순히 영화만 촬영한 게 아니라 이한열 열사 묘소, 이한열 기념관을 수차례 들르며 본인의 배역에 다가가고자 노력했고 촬영을 마칠 때까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댁에 수시로 들렀다고 한다. ‘극중 아들’ 강동원에게 김치 선물한 이한열 열사 어머니
후에 1987의 감독과 제작자가 밝힌 바로는 이런류의 영화에 배우들이 선뜻 출연할 수 없던 시기에 강동원이 적극적으로 출연 의사를 밝혀준 덕분에 나머지 캐스팅이 가능했으며 규모 있는 상업영화로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강동원이 극중 비중이 큰데도 특별출연을 하였는데 이 또한 강동원이 제작사의 제작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아래는 강동원의 인터뷰 내용

‘1987’ 속 강동원의 비중이 생각보다 많아 왜 특별출연으로 표기된 건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에 강동원은 “물론 특별출연으로 제안 온 것은 아니었다. 좋은 취지의 영화인데 제작비 부담을 줄 순 없었다. 제작사 측은 미안해했는데 감독님과 진작 대화 나눴던 부분이었고, 특별출연하겠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장준환 감독이 GV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강동원은 2016년 즉, 친일파 조상 논란이 있기도 전에 1987에 출연할 것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2017년 초에 친일파 조상 논란이 불거지자 자신의 출연을 염려하며 "저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장준환 감독은 "그래서 니가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고. 강동원이 그렇게 생각해주고 마음을 써준 것이 너무 감사했다고 밝혔다. 감독이 밝힌 강동원 캐스팅 뒷이야기_ 영화 1987 특별GV 합창상영회 중에서 _ 용산CGV
2019년 1월에는 '''이한열기념사업회에 2억을 익명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기사
[1] 강동원과 작업한 의상전문가나 디자이너들이 강동원 키가 186cm라 옷을 길게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 본인도 키가 186cm가 조금 넘는다 직접 언급. https://youtu.be/00JDQYk41J0. 또한 연예계 데뷔 전, 대한민국 남모델 최초로 프레타포르테에 진출하면서 정확한 키 프로필이 공개됐던 당시에도(모델은 해외 글로벌 무대 진출 시 키를 속일 수 없다.) 186cm였다.[2] 키가 186cm인 강동원은 본인이 몸무게를 75 - 72 - 67 - 65의 4단계로 나누어서 관리한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단계마다 화면 속 얼굴의 라인이 달라진다고 한다. 스스로 작품을 할때마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맞게 체중 증량이나 감량을 하여 조정한다고 한다. 검은 사제들 촬영 당시에는 71~72kg이었다고 하고, 실제로 평상시에 72kg 근처로 유지된다고 한다. 마를수록 컨디션이 안 좋아 술도 별로 못 마시고, 최고 몸무게인 75kg 근처일 때가 컨디션이 제일 좋다고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51104132419172 [3]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북지(황군)위문품대' 자금 지원.[4] 前 SPP중공업 부사장.[5] 2015년 11월 4일 JTBC 뉴스룸에서 밝혔고,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은 천주교라고 한다.[6] 본인의 성격상, 어떠한 분야든 완벽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부단히 노력한다고 한다.[7] 대표적인 경우로 원빈이 있다. 영화 아저씨 이후 작품 활동이 하나도 없고 CF만 찍는 걸로 유명하며 이 점으로 인해 비판을 많이 받는다. 얼마나 공백기가 기냐면, 아저씨에 함께 출연했던 김새론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작품이 하나도 없다.[8] 광고업계 관계자들이 본인과 일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과 잘 맞는 콘티가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안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괜찮은 콘티가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연기 외적으로, 정확히 연기자로서가 아닌 본인 자신을 소비할 때 가장 까칠해진다고. 광고가 안 좋은 게 나오면 오랫동안 영향이 있으므로 절대 하루 이틀만 계산해선 안되며, 거액만 생각하고 CF를 선택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고 한다. 본인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돈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소신을 밝혔다.[9] 사형수, 도사, 초능력자, 북한 간첩, 구마 사제, 사기꾼, 군인, 특기대원, 택배 기사, 유괴범, 베스트셀러 소설가,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세월의 법칙을 거스른 소년, 자객, 좀비 아포칼립스 생존자 등[10] 배우겸 무술 감독인 정두홍은 강동원의 액션에는 부드러움이 있다고 장점을 설명하면서, 전에 무용을 했던 영향을 받아서인지 2~3년에 걸쳐 익숙해지는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속 회전 액션을 두 번 만에 완성했다고 밝혔다.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그가 액션 장면에도 감정을 넣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마저 눈빛으로 표현해주어서 감정이 풍부하고 처절한 느낌의 액션이 완성되었다며 극찬을 했다.[11] 2020년 6월 16일 반도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예전에 상급자 코스를 거의 다 끝냈고 액션팀에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해서 영화 ‘반도’를 촬영할 때 액션 스쿨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12]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출처[13] 출처[14] 하지만 아래 영화 흥행여부를 보면 실패한 영화들이 있기는 하다.[15] 강동원의 영화 데뷔작[16] 인터넷 소설 유명작가 귀여니 원작.[17] 정확히 말하면 단속이 떠서 급하게 이청아 옆에 숨어 우산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우산을 슬쩍 드는 장면이다.[18] 참고로 강동원의 목소리(정확하게는 '그 놈' 연기할 때의 목소리)와 그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되었던 이형호 유괴 사건의 가해자 목소리가 89.6% 일치한다는 것이 《출발! 비디오여행》을 통해 밝혀졌다. 전문가 曰 90%를 넘으면 거의 동일인 수준이다. 성대 떨림과 말하는 패턴이 비슷하다. 완벽한 성대모사 수준이다.[19] 그러나 영화상 설정과 다르게 실제 이형호 유괴 사건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범행 패턴과 사건 정황상 목소리의 인물은 사건의 주동자가 아니라는 것이 범죄 전문가들의 정설이고, 실제 유괴와 돈을 가져오는 등의 행동을 한 주동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그에게 전화 통화를 담당하게 시켰다고 추정되고 있다. 공범이긴 하나 그야말로 전화 통화 외에 실제 직접적 행동은 거의 하지 않은 걸로 추정된다.[20] 여담으로 전우치 복장을 입고 연기할때 '나는 루피다' 라는 생각으로 했다고 한다.[21] 송강호 曰, 보통 대선배와 작업하게 되면 배우겠다는 자세로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은데 강동원은 일단 자기부터 잘 하고 보겠다고 이야기해서 물건이구나 싶었다고.[22] 공익 판정 사유가 습관성 탈골인데 커리어에서 액션 영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해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관계자에 따르면 강동원은 액션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도 탈골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선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 공익 판정은 데뷔 전에 받은 것이라고. 신검을 두번 받았지만 두번 다 공익 판정이 났다. 실제로 습관성 탈골로 인해 공익 뿐 아니라 면제 판정을 받은 연예인과 일반인이 꽤 있어, 공익 판정은 사실상 논란될 이유가 없었다.[23] 카멜리아(Camellia)는 대한민국의 부산을 배경으로 해, 사랑을 통한 대한민국, 일본, 태국의 아시아 3개국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이다. 태국의 위싯 사사나티엥, 일본의 유키사다 이사오, 한국의 장준환 감독이 참여하였다. 김동호 부산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제작을 맡아, 2010년 제15회 부산 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첫 상영되었고, 일본에서는 같은 해 10월 25일 제23회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24] 이한열 기념사업회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영화 ‘1987’의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출연하겠다고 한 배우는 3명이 있었다고 한다.[25] 유튜브 브이로그인 모노튜브 5화에서 자신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생각과 소신을 밝혔다. https://youtu.be/pvY6B7iHC4Q[26] 영화 노트북 감독[27] 현재까지도 아무런 정보가 없고 정확히 누가 감독을 맡았는지 모르는 상태[28] 단편영화[29] 실제 스탭롤 상으로 이렇게 나와있다. 제일 먼저 감독을 찾아온 강동원에게 장준환 감독이 이 배역밖에 없다고 보여줬을 때도 이렇게 써뒀었다고.[30] 강동원이 출연한 1분짜리 프로모션 영상만 공개되었다.[31]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소집해제 기념으로 공개한 특별 영상이다. 주형진이 지은 삽입곡은 "One Fine Day"라는 이름으로 새 앨범 Slow Tempo에 재편집하여 수록되었다.[32] 네이버 뮤직 인터뷰 (2016-01-18)[33] 모노튜브 채널 브이로그를 재편집하였다.[34] 모노튜브 측의 기사에 따르면 강동원의 오랜 지인이 유튜브에서 유명인 브이로그 채널을 론칭하였고, 팬들을 위해 출연을 결심하였다고 한다.[35] 팬들 사이에서 레전드로 칭해지는 전설의 광고.[36] 전 모델.[37] 헌데 그 목격담 이후에 난 기사에서 "제가 부산 출신이라 가족들은 야구팀 응원할 때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다. 그런데 저는 그러지 않았다. 그 때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 그 느낌을 좀 알겠더라. 지금도 무조건 롯데를 응원하지는 않는다. 지는 팀을 응원하기도 하고 그런다. 좀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나 보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이 기사만 보면 부모님이 롯데 팬인 것으로 추정된다. 허나 후술할 2020년 6월 유튜브 라이브에서는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을 창원에서 보냈고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창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본인은 창원 사람이라고 칭했다.[38] 얼굴마담 겸 안주 담당.[39] 의외로 연예계 기사에 이런 오보나 왜곡보도들이 꽤 많다. 한 기자가 단편적으로 어설프게 취재를 해서 올리면 다른 기자들이 그대로 갖다 베끼는 경우가 많고, 대충 직업 종류로 실제 부를 추측할 수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강동원처럼 대기업 부사장이라는 편견으로 실제보다 부유한 정도나 시간을 크게 보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부를 줄여서 보고 보도했다가 후에 시간이 지나 다시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직원이 많지 않은 중소기업 사장이 부모라는 걸 취재해서 평범한 가정인 듯 보도했는데, 실제로는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업종에 따라 소수의 직원과 사장으로 원맨기업에 가깝게 운영되는 중소기업이 사장의 능력으로 강소기업인 경우도 있어서, 의외로 대기업 부사장보다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소유주)이 비교도 안 되게 더 큰 부를 누리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많긴 하지만, 보통 동일 업종에서 상위권으로 갈 수록 부에 대한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사회에서 직업명만으로 부를 판단하는게 의외로 틀리는 경우가 많다.[40]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지난 2005년 이종만을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계속해서 흠결 여부를 조사했고, 2009년 최종적으로 수록했다.[41] 1937년 7월 21일 "종로 3정목 대동광업회사 사장 이종만 씨는 19일 애국부인회 조선본부를 찾아가 황군위문품대로 금 1,000원을 기탁했다. 계원은 감격해 이를 취했다고 한다"[42] 1939년 7월 6일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장병들에게 보내는 위문대가 차츰 감소돼 가고 있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겨, 대동광주식회사 사장 이종만 씨와 전 회사원 일동이 현금 1000원을 지난달 28일 군 애국부에 헌금했다. 군 사령부는 이 뜻에 감격, 통조림 3,600개를 전선 제일선에 보냈다고 한다"[43]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이자 독립운동가인 손정도 목사의 딸이며,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자 역시 독립운동가인 손원일 제독의 누나였던 손진실 씨도 윤치호의 이복동생이자 윤치영의 사촌동생인 윤치창과 결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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