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료헤이
栗 良平(くり りょうへい)
(19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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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가이다. 구리 료헤이는 필명으로, 본명은 이토 미츠구(伊藤貢). 한국에서는 《우동 한 그릇》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홋카이도 스나가와시 출신으로 병원에서 10년간 근무했다. 고교 시절 안데르센의 동화를 번역한 것을 취미삼아 구연동화의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1989년 《우동 한 그릇》을 발표, 그 해 2월 공명당 오오쿠보 나오히코 의원이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 작품을 낭독해 회의장을 눈물바다로 만든 일을 계기로 크게 히트하여[1] 일본 사회에서 일대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평소 홋카이도대학 의학부 출신이라고 자칭하고 다녔다가 학력위조가 드러나면서 인생줄이 꼬이기 시작한데다가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간통과 사기를 골고루 벌이면서 완전히 묻혀졌다. 시가현의 한 소바집에 세들어 살면서 소아과 의사를 자칭하며 주민들로부터 약값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아내는가 하면,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소바집 주인에게 렌터카 비용 명목으로 10만 엔을 빌려가 그대로 자취를 감추는 등의 소액 사기행각을 저질렀다.[2] 뿐만 아니라 텐트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통하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고, 자기 작품을 영화화한다며 여러가지 사기를 저질렀다. 또한 종교 문제에도 개입하여 쇼호지(正法寺)라는 절 주지의 차녀와 사귀며 이 절의 소속 종단을 바꾸어 자신이 가로채려고 시도했으나 쇼호지의 소속 종단인 진언종 다이고파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아 소송전으로 비화했고,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까지 가서 패소했다.
이렇다보니 '옛 애인이 밝히는 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의 거짓 인생'이라는 고발 르포까지 나왔을 지경. 다만 한국에서는 이런 뒷사정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사만화가 주완수가 그리고 쓴 '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을 보면 아내인 켄짱(별명)의 말을 듣고 나서야[3] 자신도 이 작가가 사기죄로 재판을 받고 구속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책자에선 책이 발행된 2003년 당시에는 복역중으로 2014년에나 석방된다고 언급되었다.
또한 대표작인 《우동 한 그릇》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것 치고는 이야기의 흐름이 지나치게 그럴 듯하다는 점이나, 작중의 시대 배경인 1970년대의 생활상을 고려해도 곳곳에 앞뒤가 맞지 않는 묘사들[4] 이 너무 많다는 등의 지적이 나오면서 실화 기반이 아닌 100% 순수 창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작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도 그보다 《우동 한 그릇》에 관한 자료가 더 많다. 또한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작가의 이력에 대한 정보만 간략하게 나와 있을 뿐 그가 저지른 학력위조와 사기 등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2011년 말경 한 편집자가 수감 사실 및 사기에 대한 걸 간략하게 서술해 놓았다.[5] 또한 일본 구글 검색창에 구리 료헤이의 이름을 입력하면 자동완성 검색어로 '구리 료헤이 사기', '구리 료헤이 체포' 등이 딸려나오는 실정.
(19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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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의 소설가이다. 구리 료헤이는 필명으로, 본명은 이토 미츠구(伊藤貢). 한국에서는 《우동 한 그릇》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홋카이도 스나가와시 출신으로 병원에서 10년간 근무했다. 고교 시절 안데르센의 동화를 번역한 것을 취미삼아 구연동화의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1989년 《우동 한 그릇》을 발표, 그 해 2월 공명당 오오쿠보 나오히코 의원이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 작품을 낭독해 회의장을 눈물바다로 만든 일을 계기로 크게 히트하여[1] 일본 사회에서 일대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2. 범죄
그러나 평소 홋카이도대학 의학부 출신이라고 자칭하고 다녔다가 학력위조가 드러나면서 인생줄이 꼬이기 시작한데다가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간통과 사기를 골고루 벌이면서 완전히 묻혀졌다. 시가현의 한 소바집에 세들어 살면서 소아과 의사를 자칭하며 주민들로부터 약값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아내는가 하면,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소바집 주인에게 렌터카 비용 명목으로 10만 엔을 빌려가 그대로 자취를 감추는 등의 소액 사기행각을 저질렀다.[2] 뿐만 아니라 텐트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통하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고, 자기 작품을 영화화한다며 여러가지 사기를 저질렀다. 또한 종교 문제에도 개입하여 쇼호지(正法寺)라는 절 주지의 차녀와 사귀며 이 절의 소속 종단을 바꾸어 자신이 가로채려고 시도했으나 쇼호지의 소속 종단인 진언종 다이고파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아 소송전으로 비화했고,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까지 가서 패소했다.
이렇다보니 '옛 애인이 밝히는 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의 거짓 인생'이라는 고발 르포까지 나왔을 지경. 다만 한국에서는 이런 뒷사정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사만화가 주완수가 그리고 쓴 '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을 보면 아내인 켄짱(별명)의 말을 듣고 나서야[3] 자신도 이 작가가 사기죄로 재판을 받고 구속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책자에선 책이 발행된 2003년 당시에는 복역중으로 2014년에나 석방된다고 언급되었다.
또한 대표작인 《우동 한 그릇》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것 치고는 이야기의 흐름이 지나치게 그럴 듯하다는 점이나, 작중의 시대 배경인 1970년대의 생활상을 고려해도 곳곳에 앞뒤가 맞지 않는 묘사들[4] 이 너무 많다는 등의 지적이 나오면서 실화 기반이 아닌 100% 순수 창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작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도 그보다 《우동 한 그릇》에 관한 자료가 더 많다. 또한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작가의 이력에 대한 정보만 간략하게 나와 있을 뿐 그가 저지른 학력위조와 사기 등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2011년 말경 한 편집자가 수감 사실 및 사기에 대한 걸 간략하게 서술해 놓았다.[5] 또한 일본 구글 검색창에 구리 료헤이의 이름을 입력하면 자동완성 검색어로 '구리 료헤이 사기', '구리 료헤이 체포' 등이 딸려나오는 실정.
[1] 작품이 알려진 것 자체는 전 해인 1988년 연말에 한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된 것이 최초였다.[2] 피해를 본 소바집 주인이 직접 시가현 지역 언론에 폭로한 사건이다.[3] 아내와 우동 한 그릇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아내가 일본에서는 그 책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서 작가가 여기저기서 돈만 받아 챙기는 사기를 저질렀다고 알려줬고,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인터넷을 찾아 봤지만 한국 인터넷에는 이에 대한 자료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거의 사회적으로 매장된 수준이었다고.[4] 예를 들면 작중에서 우동(일본어 원판에서는 메밀소바) 한 그릇의 가격이 150엔이라고 나오지만, 이 가격은 당시의 물가를 감안하면 지나치게 비싼 금액이었기 때문에 연예인 타모리는 자신이 진행하는 후지 TV의 예능 '와랏테 이이토모'에서 이 점을 지적하면서 그 당시 150엔이면 인스턴트 메밀소바 3개는 살 수 있었을 가격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5] 2017년 기준 한국어 위키백과의 구리 료헤이 문서를 보면 아예 첫머리에 "일본의 단편 소설가이자 '''범죄인'''"이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