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욱/선수 경력

 




1. 아마추어 경력


''''''대구고''' 재학 중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타율
경기
타석
타수
득점
총안타
2루타
3루타
타점
도루
희타
희비
4사구
삼진
병살
장타율
출루율
OPS
2010년
0.183
16
74
60
9
11
2
1
8
8
0
1
13
12
0
.250
.324
.574
2011년
0.444
18
77
54
22
24
3
5
21
11
1
5
17
9
0
.685
.539
1.224
통산
0.307
34
151
114
31
35
5
6
29
19
1
6
30
21
0
.456
.433
.889
컨택 능력이 좋고 선구안을 갖추고 발도 빨라 1번이나 3번타자로 활약하며 2011년 제9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다.
원래 투수를 꿈꿨으나 고등학교 때 입스가 찾아와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야구도 관둔 적이 있다.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들을 때 교실에서 보이는 야구장을 볼때마다 다시 뛰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들었다고 한다. 다시 이를 악물고 투수로 시작했는데, 시합에서 유야무야 대타도 아닌데 갑자기 "니 쳐봤제? 준비해 준비해"하며 공을 치라고해서 나가서 2루타를 쳐낸다. 그 이후 "니 내일부터 바로..."하며 내야수로 쭉 활약하게 된다. 원래 중견수였으나 외야수가 상위 지명을 받기 힘든 신인 드래프트를 고려하여 3루수로 전향[1]했고 외야를 보던 선수를 3루로 돌린 만큼 스텝과 포구 등 전반적인 기본기가 부족하며, 이를 고려한 듯 팀에서도 장기적으로 외야수로 보고 지명했다는 '''근거없는 낭설'''이 떠돌았으나 '''고등학교 때 외야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직접 밝혔다. 실제로 고교야구 기록을 찾아보면 구자욱이 참여한 모든 공식시합의 기록에 3루수 출장으로 돼있다.
2012 신인지명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전체 12번)에 연고 팀이라 할 수 있는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었다. 체격이 189cm, 86kg로 키에 비해 마른 체구로 프로필상 같은 팀의 조현근보다 더 마른 체격이었다. 어느 정도 체중을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2. 프로 경력



2.1. 2012 시즌


2012 시즌 초반 2군 주전 3루수 김정혁이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며 운 좋게 김정혁의 3번 3루수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0.288의 타율로 고졸 신인치곤 그럭저럭 쓸만한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중심 타선에서 25개의 도루를 했다는 것은 고무적이었지만, 고교 때 좋은 선구안을 가졌다는 평과 달리 볼넷/삼진 비율이 나빴다. 시즌 중에는 출장 경기수보다 삼진 개수가 더 많을 때도 있었다.

2.2. 군 복무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다. 훈련소를 마치고 3, 4달만에 배팅을 치는데 배팅볼에 헛스윙할만큼 감을 잃었고 그 모습을 발견한 감독이 '아무것도 하지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윙만 돌려라'고 지시해 단체운동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진짜 못했다고 회상하며 그 당시 감독님이 매일같이 "쟤는 도대체 누가 뽑아왔냐고" 불평했다고 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2013년에는 3번이나 5번 타자로 출장했다. 시즌 중반에는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반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0.301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장타율이 늘었고 볼넷/삼진 비율도 꽤나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13 시즌 말 동아시아컵에 상무-경찰청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거기서 좌익수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애시당초 입단 당시의 플랜이 외야수로의 전향이었고, 상무에 하주석 - 오선진이 입단하면서 내야수가 확충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2014년에는 1루수로 주로 나오면서 우익수와 지명타자로도 나왔는데, 삼성에서 요청이 온 것은 아니고, 본인이 3루를 부담스러워 하기에 코칭스태프에서 편하게 타격할 수 있는 코너나 지타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일단 3루 연습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포지션은 삼성에 복귀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0.357의 타율로 타율 1위를 하며 남부리그 타격왕을 수상했다. 남부 리그서 조평호와 단 둘밖에 없는 ops 9할, 3-4-5 슬래시라인 돌파에 성공. 또한 10kg 가량 몸을 불리면서 86kg까지 찌웠다.
U-21 야구 월드컵에 참가해서 4할이 넘는 타율과 6번의 도루를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덤. 이 대회서는 2루수와 중견수로도 나왔는데(상무에서는 1,3루,좌익,우익으로만 나오고 중견을 본 적은 없었다), 14시즌에 투수, 포수, 유격수를 제외하면 모든 포지션을 나온 셈이다.
U-21 감독을 맡았던 이정훈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탐을 내기도 했으나 삼성이 일찌감치 트레이드 불가 선수로 막아버려서 영입에 실패했다.
이후 팀에 합류하면서, '''만 22세'''에 군필 선수가 되었다.

2.3. 2015 시즌


'''즉 구자욱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30년 전에 멸종했다가 나타난 ‘슈퍼 유틸리티 플레이어’인 겁니다. 그리고 위에 등장한'''[2]

'''모든 ‘전천후 타자 선배’들보다 월등한 타격 실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이성훈 SBS 기자(SBS Sports 주간야구 8월 3일 방송분 구와 숫자들 - 구자욱 '다재다능함'의 가치)


현 삼성을 이끄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충격적 데뷔. 엄청난 타율과 툴을 보여주며 리그 일대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4. 2016 시즌


자욱라이온즈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팀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부상으로 한달 가량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시즌 막판에 체력문제로 인해 페이스가 떨어져 타율왕 도전에 미끄러진것이 옥에 티였다.[3]


2.5. 2017 시즌




2.6. 2018 시즌


3년 동안 붙어다녔던 정신적, 기술적 스승인 이승엽 없이 보내는 첫시즌이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한 뒤 부진을 겪으며 힘들었지만, 초반 부진을 딛고 일어서서 후반기에 놀라운 각성을 한다.


2.7. 2019 시즌


겨우내 벌크업을 하여 10kg이상 몸무게를 불려 90kg까지 늘렸다. 팀내 거포 부재로 인한 요구와 맞물려 장타력 향상을 목표로 20홈런 정도 치던 것에서 더욱 욕심을 내는 모습. 스캠을 거치며 김한수 감독은 강한 2번 배치를 위해 구자욱을 2번타자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정확도에 이상이 생기며 커리어 로우를 향해 가고 있다.



2.8. 2020 시즌



지난 시즌 너무 부진해서 올 시즌 연봉이 삭감되었다. 이 와중에 프런트와 마찰을 빚었다.[4]
시즌 초 다시 똑딱스윙을 부활시키며 높은 타율을 기록하다가 6월 들어 다시 부진하며 타율을 많이 깎아먹었다. 심지어 팀이 반등해야되는 시기에 부상이 자주 찾아온 탓에 누구보다 아쉬운 시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본인의 타격 스타일을 확립하고, 주루센스도 개선되면서 내년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2.9. 2021 시즌




3. 국가대표 경력



3.1.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시즌 후 11월 4일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을 앞두고 U-24 대표팀에 합류한 기사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삼팬들은 구자욱도 결국 삼적화되었다고 안타까워하였다.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 선동열호의 대표팀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등번호를 원래 달던 65번이 아니라 자신이 존경하는 멘토의 36번을 달고 출전하기로 하였다. 소속팀에선 당연히 평생 달 수 없는 번호여서 대표팀에서라도 꼭 달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락을 받으려고 미리 번호 주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안 달면 가만 안 둔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1차전에서 처음에는 잘 때린 타구가 잡히는 등 아쉬운 모습이었으나 끝내 무안타로 침묵하였다. 2차전에서도 무안타로 침묵하며 10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으며 결승전마저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해 대회 12타수 무안타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당연히 함덕주, 김윤동과 함께 이번 대회를 말아먹은 역적이 되어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팀의 중심타자가 이렇게 최악의 성적을 내었으니 U-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성적도 당연히 좋을리가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일본과 만난 2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1] 비슷한 경우가 손아섭으로, 부산고 시절에 유격수를 봤다.[2] 여기서 언급된 선수는 김무관, 이광은, 박용근, 서동욱[3]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9월까지 최형우, 김태균과 1~5리의 미세한 차이로 수위타자 싸움을 펼쳤으나 막판의 부상 여파로 타율이 전체 6위까지 떨어져 버렸다. 반면 경쟁자였던 최형우김태균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그대로 타율 1, 2위를 차지했다.[4] 박해민보다 작게 받는데, 박해민은 다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구자욱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에 삼팬들이 프런트를 굉장히 많이 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