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혁

 

'''김정혁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2011 KBO 퓨처스 남부리그 타격왕'''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3번'''
이만기
(2010)

'''김정혁
(2011)'''

이준형
(2012~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9번'''
카도쿠라 켄
(2011)

'''김정혁
(2012~2017)'''

이원석
(2018~)


'''삼성 라이온즈 전력 분석원'''
'''김정혁
金正奕 / Jung-Hyuk Kim
'''
'''생년월일'''
1985년 8월 3일 (39세)
'''출신지'''
경상북도 포항시
'''신체'''
182cm, 82kg
'''학력'''
포항초 - 포철중 - 포철공고 - 동국대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1년 신고선수 입단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11~2017)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8~2010)
'''프런트'''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2018~)
'''등장곡'''
Launchmonkey Lewis - Bills
'''응원가'''
노브레인 - 한밤의 뮤직[1]
1. 개요
2. 선수 생활
2.1. 프로 입단 전까지
2.2. 2011 시즌
2.3. 2012 시즌
2.4. 2013 시즌
2.5. 2014 시즌
2.6. 2015 시즌
2.7. 2016 시즌
2.8. 2017 시즌
2.9. 현역 은퇴
3. 이야깃거리
4. 연도별 주요 성적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이자 現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 주 포지션은 3루수.[2]
포철공고동국대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복무를 마친 후 삼성 라이온즈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 선수 생활



2.1. 프로 입단 전까지


동국대 시절이나 상무 복무 시절에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상무 복무 첫 해에는 51경기에 출장해 46안타 4홈런 25타점 24득점 타율 0.317을 기록했고, 두번째 해에는 78경기에 출장해 59안타 6홈런 27타점 28득점 타율 0.278을 기록했다.

2.2. 2011 시즌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 후 2군에서 대타나 대수비로 출장하다가 5월부터 선발로 출장하기 시작했는데… 무려 '''4할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무척이나 성실해 자정까지 연습할 정도의 노력파라 다른 2군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저러한 활약에 신고선수가 정식으로 1군 등록이 가능한 6월 1일에 바로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1군에는 올라오지 않아 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1군에서 기용하기에는 수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로스터가 확장되는 9월에는 1군에 올라오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손목 부상으로 10월 4일이 되어서야 1군에 등록되었다. 정규 시즌 게임이 고작 3경기가 남았을 때 올라온 것. 안습.
2011 시즌에 최종적으로 2군 남부리그 타율 1위('''0.418'''), 최다 안타 1위(102개), 최다 3루타 1위(6개), 타점 3위(57타점), 득점 3위(58득점) 등을 기록했다. 또한 71경기에 출장했는데 멀티 히트를 친 경기가 무려 30경기.
다만 팬들의 의견과는 달리, 현장에서 김정혁의 1군 중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상황이다. 우선 류중일 감독은 수비가 되는 선수를 1군으로 올리는 경향이 있고, 거기다 삼성의 주전 3루수 박석민은 김정혁과 동갑이다. 거기다 지명타자로 가자니 삼성의 지명타자 포지션에 오를 선수들은 '''이승엽'''. '''최형우''', 채태인이다.

2.3. 2012 시즌


2012 시즌에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는데, 불과 3경기만에 손목 부상을 당하면서 약 3개월 동안 결장했다. 복귀 후, 타율이 겨우 2할대를 턱걸이할 정도로 죽쑤다 시즌 막바지에야 타격감을 회복해 마지막 10경기 동안 0.464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0.269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2.4. 2013 시즌


손목 부상이 재발해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또 8월 중순에서 9월 하순까지 장기간 결장하면서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못 했다. 김정혁이 장기간 결장한 덕분에,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했던 정병곤성의준이 주전으로 기회를 받을 수 있었고 둘은 1군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2.5. 2014 시즌


2011년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못하면서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3루수로 출장하다가 정현의 3루 출장 비율이 늘면서 1루수로 출장했다. 8월 초반부터 결장하면서 2군 시즌을 마쳤지만, 0.302의 타율로 2011년 이후 3년 만에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10월 8일 조동찬이 허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정식선수로 재전환됨과 동시에 3년 만에 1군에 올라왔다.

2.6. 2015 시즌


2군에서 4번 타자 3루수로 출장하다가 4월 26일 1군에 올라왔다. 그동안 2군에서 17경기에 출장해 19안타 1홈런 10타점 .333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동안 주전 1루수를 맡았던 구자욱의 타격 페이스가 떨어진지라 1군에 올라오자마자 7번타자 1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1군에서는 기회를 잘 못 받았지만, 팀 내에서는 소문난 노력파라서 그런지 류중일 감독이나 최형우나 김정혁의 활약을 기대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첫 경기에서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팀도 졌다.
그리고 두 번째 출장 경기인 4월 28일 LG전에서는 임지섭을 상대로 안타를 기록했다. 만 서른살에 나온 프로 첫 안타. 이후로는 구자욱이 다시 주전 1루수로 복귀하면서 대타나 대수비로 나오다가 채태인김태완의 복귀가 다가온 5월 11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6월 19일 1군에 올라왔다. 박석민이 허벅지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대신 3루수로 선발 출장한 백상원이 6월 18일 두산전에서 3타수 무안타 1볼넷 1삼진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못 보여준데다 6월 19일 SK전 선발이 김광현이었기 때문이었는데, 7번 3루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박석민의 복귀를 앞둔 6월 29일에 조현근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8일 이승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9일 두산전에서 9회초에 2사 후 2루타를 친 나바로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2사 1,2루 상황에서 김재현의 좌전 안타를 치자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하며 추가점을 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반면 타격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면서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9월 22일 전날 옆구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진 구자욱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월 30일을 마지막으로 1군에서 말소된 뒤,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2.7. 2016 시즌


2군 전지훈련에 참가했는데, 시범경기 도중 1군에 합류해 수비가 떨어지는 나성용을 대신해 백업 1루수를 맡았다.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4월 11일 1군에서 빠진 정인욱을 대신해 12일 1군에 등록됐다. 4월 22일 정인욱이 1군에 올라오자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28일 김현우, 최선호와 함께 1군에 올라왔다.
6월 4일 한화전에서 조동찬 대신 3루 대수비로 출장해 7회 말 송창식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6월 14일 대구 SK전에서 솔로 홈런을 쳤다. 시즌 2호 홈런. 그러나 팀 타선이 '''살인적인 식물 타선'''을 보여 준 끝에 4:1로 패했다. 그나마 김정혁이 홈런을 쳐서 영봉패를 면한 것.
6월 17일 번트를 시도했는데 '''하필이면 세게 맞아서 2루주자였던 이지영이 아웃되었다.'''
6월말까지 기회를 살리지 못하며 6월 25일 1군에 올라온 조동찬에게 밀려났다.
그러나 조동찬이 2일 만에 부상으로 빠지며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롬 발디리스구자욱이 차례대로 복귀하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7월 22일 선발로 내정된 아놀드 레온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9일 전날 얼굴에 공을 맞아 시즌 아웃된 최재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이성규가 등록됐다. 10월 3일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10월 8일 최종전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는데 1회와 5회 실책을 범하는 OME를 보여줬다. 1회엔 성의준의 송구를 놓쳤고 5회엔 송구를 잘못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실책을 범했다.

2.8. 2017 시즌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가 4월 26일 나성용, 박근홍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4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4
11
5
0
0
0
2
2
0
4
0
0
.455
.455
.455
.910
2군에 간 다린 러프를 대신해 1루수로 나와, 4월 27일 KIA전에서 5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으로 팀은 패배했지만 입단 후 처음으로 1경기 4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28일 SK전에서는 안타 없이 삼진만 2개를 당했고, 이후 조동찬이 1루수로 나오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다린 러프의 복귀를 앞두고 5월 1일 박근홍과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3주 가량 결장했다가 6월 4일 복귀했다.
6월 6일 임현준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6일 잠실 두산전에서 선발 9번 타자로 출장해서 5타수 4안타 1타점 2득점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대역전승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9일 대전 한화전에서 선발 6번타자로 출장해서 5타수 3안타 3타점 2득점을 기록하면서 맹활약을 펼쳤다. 이날 압권은 9회 초였는데, 1사 만루 상황에서 팀이 4-5로 한점 뒤진 가운데 정우람과 상대하게 된 김정혁은 정우람의 6구를 타격해서 좌중간쪽의 기적의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만들어내면서 팀의 승리를 이끈 히어로가 되었다. 그 날 수훈선수가 되었는데 본인 프로 데뷔 첫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정새미나 리포터가 한화 김정혁이라고 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김정혁 본인은 넘어갔다.
그러나 이전에도 그랬듯이 고질적인 약점인 선구안과 수비 능력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부진, 대수비로 밀려났다. 6월 21일 이후 안타를 1개도 못 치다가 7월 18일 롯데전에서 모처럼 선발 출장 기회를 받았으나, 3타수 무안타 2삼진을 당하면서 다음 날인 19일 1군에서 제외됐다.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유는 팔꿈치 부상이라고 한다. 그를 진료했던 의사는 야구는커녕 일상 생활을 어떻게 했냐고 할 만큼 팔꿈치 통증이 심했다고 한다. 재능이 부족하면 피나는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준 안타까운 케이스.[3]

2.9. 현역 은퇴


2018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은퇴 이후에는 삼성 전력분석원을 하기 때문에 가끔씩 라이온즈 티비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3. 이야깃거리


  • 강민호포철공고 때 친구로, 김정혁이 고교 시절 1년 유급하는 바람에 동기는 아니다. 고교 때의 유급으로 1살 어린 배영섭과 대학 동기가 되었다. 또한 김정혁도 배영섭 못지 않게 타격폼이 특이하다. 그래서 삼갤에서는 사무라이라고 불린다.
  • 오승환의 <순간을 지배하라>에 보면 유독 오승환에게는 강하다고. 청백전에서 붙었다가 오승환을 맞춘 일화도 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1
삼성 라이온즈
3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12
1군 기록 없음
2013
2014
2
5
.000
0
0
0
0
0
2
0
0
.000
.000
2015
17
18
.167
3
0
0
0
1
3
0
1
.167
.211
2016
46
106
.236
25
1
1
2
11
13
1
10
.321
.299
2017
31
84
.274
23
5
0
0
13
15
3
6
.333
.319
<color=#373a3c> '''KBO 통산'''
(5시즌)
99
215
.237
51
6
1
2
25
33
4
17
.302
.291
[1] 삼성 김정혁 삼성 김정혁 워어워 삼성 김정혁 삼성 김정혁 워어어 삼성 김정혁 김정혁 그 스윙 속에 널 맡겨버려 삼성 김정혁[2] 상무 복무 시절에는 1루수나 좌익수로 더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같이 복무하던 모상기와 포지션이 겹쳤다.[3] 현역 시절 코칭스태프가 쉬면서 하라고 말릴 정도로 훈련을 열심히 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