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동 방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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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구정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무덤. 불국사역 앞 불국로타리 바로 옆에 있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27호.
경주에서 '''유일하게''' 다른 신라 무덤과 달리 방형(네모 모양)이라는 특징이 있다.
경주를 돌아다니다보면 알 수 있듯이 경주의 큰 신라 고분들은 모두 둥근 외형을 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네모꼴이라는 특이한 모습으로 주목받았다. 네모꼴 고분은 장군총이나 태왕릉 모양에서 알 수 있듯 고구려식 왕릉의 특징 중 하나라서 이 무덤도 주인이 통일신라에서 벼슬을 얻어 일하게 된 안승이나 그 후손 같은 옛 고구려인이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네모 모양이라는 점 외에 내부는 전형적인 신라 후기 굴식 돌방무덤이고, 무덤 외부의 호석 십이지신상이나 무인상, 사자상[1] 등등도 신라 후기 왕릉 양식이다. 네모라는 점만 빼고는 안이나 밖이나 전부 신라 스타일이란 것이다. 장식을 볼 때 신라 기준으로도 고위 귀족이나 왕릉급이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참고로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의 북서쪽, 낭산 자락에 위치한 능지탑이라고 하는 방형(方形)의 석탑과도 관련지어 보는 경우도 있다. 문무대왕이 화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인데, 능'''탑'''이라고 이름은 되어 있지만 십이지상이 각 벽마다 장식되어 있는 점에서 능탑과 구정동 방형분이 유사한 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딱히 결론이 나온 건 아니고 그냥 그런 게 있다(..)는 정도이다.
고 이근직 교수는 이 무덤을 44대 민애왕의 무덤이라고 비정했다. 조성 시기가 가까운 괘릉이나 흥덕왕릉에서 보이는 석사자들이 간략화되었다던지, 십이지상의 표현의 변화상 등을 고려해서 비교적 늦은 후기 신라 왕릉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애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이 경주시 서쪽에 따로 있긴 하지만, 신라왕릉 문서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듯 사실 신라왕릉은 대부분 한때 잊혀졌다가 먼 후대에 후손이 비정한 것으로, 무열왕릉 등 증거가 나와 확실해진 몇몇 케이스 외에는 진짜 그 왕의 무덤이 맞는지 확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민애왕릉 역시 이견이 많다.
그럼 그냥 신라왕릉인데 왜 뜬금없이 이것만 유일하게 네모 모양이냐면 아직 밝혀진 정설이 없다(...). 그냥 좀 특이한 신라식 무덤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무덤 한 쪽에 안쪽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는데 내부는 먼 과거 언젠가 이미 도굴당했기 때문에 돌로 만든 관만 있고 텅 비어있다. 그리고 그대로 열려있기 때문에 들어가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매우 낮기 때문에 거의 쪼그려서 들어가야 한다.
비슷한 케이스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은현리 적석총이 있다. 고구려, 백제 초기 무덤 양식인 적석총이 뜬금없이 일찍이 신라권에 포함된 동남권 지역에 있다. 은현리 적석총도 삼국시대 고분은 확실하며 지금은 붕괴돼 있지만 원래는 위쪽으로 오를수록 좁은 형태를 이루는 피라미드형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구정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무덤. 불국사역 앞 불국로타리 바로 옆에 있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27호.
경주에서 '''유일하게''' 다른 신라 무덤과 달리 방형(네모 모양)이라는 특징이 있다.
2. 무덤의 주인
경주를 돌아다니다보면 알 수 있듯이 경주의 큰 신라 고분들은 모두 둥근 외형을 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네모꼴이라는 특이한 모습으로 주목받았다. 네모꼴 고분은 장군총이나 태왕릉 모양에서 알 수 있듯 고구려식 왕릉의 특징 중 하나라서 이 무덤도 주인이 통일신라에서 벼슬을 얻어 일하게 된 안승이나 그 후손 같은 옛 고구려인이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네모 모양이라는 점 외에 내부는 전형적인 신라 후기 굴식 돌방무덤이고, 무덤 외부의 호석 십이지신상이나 무인상, 사자상[1] 등등도 신라 후기 왕릉 양식이다. 네모라는 점만 빼고는 안이나 밖이나 전부 신라 스타일이란 것이다. 장식을 볼 때 신라 기준으로도 고위 귀족이나 왕릉급이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참고로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의 북서쪽, 낭산 자락에 위치한 능지탑이라고 하는 방형(方形)의 석탑과도 관련지어 보는 경우도 있다. 문무대왕이 화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인데, 능'''탑'''이라고 이름은 되어 있지만 십이지상이 각 벽마다 장식되어 있는 점에서 능탑과 구정동 방형분이 유사한 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딱히 결론이 나온 건 아니고 그냥 그런 게 있다(..)는 정도이다.
고 이근직 교수는 이 무덤을 44대 민애왕의 무덤이라고 비정했다. 조성 시기가 가까운 괘릉이나 흥덕왕릉에서 보이는 석사자들이 간략화되었다던지, 십이지상의 표현의 변화상 등을 고려해서 비교적 늦은 후기 신라 왕릉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애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이 경주시 서쪽에 따로 있긴 하지만, 신라왕릉 문서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듯 사실 신라왕릉은 대부분 한때 잊혀졌다가 먼 후대에 후손이 비정한 것으로, 무열왕릉 등 증거가 나와 확실해진 몇몇 케이스 외에는 진짜 그 왕의 무덤이 맞는지 확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민애왕릉 역시 이견이 많다.
그럼 그냥 신라왕릉인데 왜 뜬금없이 이것만 유일하게 네모 모양이냐면 아직 밝혀진 정설이 없다(...). 그냥 좀 특이한 신라식 무덤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무덤 한 쪽에 안쪽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는데 내부는 먼 과거 언젠가 이미 도굴당했기 때문에 돌로 만든 관만 있고 텅 비어있다. 그리고 그대로 열려있기 때문에 들어가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매우 낮기 때문에 거의 쪼그려서 들어가야 한다.
비슷한 케이스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은현리 적석총이 있다. 고구려, 백제 초기 무덤 양식인 적석총이 뜬금없이 일찍이 신라권에 포함된 동남권 지역에 있다. 은현리 적석총도 삼국시대 고분은 확실하며 지금은 붕괴돼 있지만 원래는 위쪽으로 오를수록 좁은 형태를 이루는 피라미드형으로 추정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