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건친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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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건친박연합'''
'''약칭'''
친박연합
'''창당일'''
2006년 5월 3일 (한국의미래를준비하는당)
'''당명 변경'''
2006년 8월 18일 (선진한국당)
2010년 3월 31일 (친박연합)
2012년 2월 29일 ('''국가재건친박연합''')
'''해산일'''
2012년 4월 12일
'''당 색'''
진청 (#13007D)
'''해산 전 대표'''
정라곤
'''해산 전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로 155
우도빌딩 5층 (효창동)
1. 개요
2. 역사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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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6년 5월 3일 창당되어 2012년 4월 12일에 해산된 보수정당으로 박정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참여한 정당이다. 약칭 '''친박연합'''(친박연대와는 다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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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미래를준비하는당
선진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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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연합
국가재건친박연합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고건 전 총리를 지지한다면서 '''한국의미래를준비하는당'''(한미준)으로 창당됐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는 공식적으로 "나와는 상관없는 정당"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언론에 자신과 엮어서 기사를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 대선을 앞두고 고건이 뜨니까, 정치권 주변 인사들이 고건 이름을 팔아서 만든 정당이라는게 정설이다. 결국 모든 출마자가 낙선.
이후 '''선진한국당'''으로 개명하였으나,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는 불참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 만들때 참여한 이용휘가 복당하고[1], 박정희의 조카이자 김종필의 처남인 박준홍(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영입하여 친박연합으로 개칭하였다.
이름 덕분에 광역 정당비례를 통해 대구에서는 14.30%, 경북에서는 10.14%를 득표하며 각각 제2당/제3당으로 비례 당선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2] (그 외 영주시 제2선거구에서도 당선, 기초의원 12명 당선-부산 2명/대구 5명/경북 5명). 같은 친박 "연합" 계열인 미래연합보다 성과가 좋았다. 그러나 선거 직후 이용휘가 경질되고[3], 박준홍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정라곤[4]이 대표가 되었다.
2012년에는 국가재건친박연합으로 개칭했는데, 약칭은 친박연합이고,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선거용지에는 친박연합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이미 새누리당박근혜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5]에서 굳이 박근혜, 박정희와 연관된 정당에 투표할 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당명 스틸 한나라당, 국민생각 등에도 미치지 못하고, 기대했던 구미시 갑의 김석호 후보도 18%에 불과하면서 등록이 말소됐다.[6] 김석호 후보는 정당 해산과 함께 다시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
다만 김석호 후보는 '여론조사'가 실시되어 후보자 토론회에 나갔더라면 좀 더 선전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특히나 지난 5회 지선에서 친박연합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출마했을 당시 적극적인 홍보로 인지도를 높인 구미시 갑 김석호 후보의 18%를 비롯하여 국가재건친박연합이 상당한 득표를 거둔 지역이 많지만, 새누리당이 이기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한 군데도 여론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여론조사만 했더라면 후보자 토론회에 나갈 수 있었는데 당을 알릴 수 있던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3. 관련 문서



[1] 이후 사실상 이용휘의 사당이 되었다고 무방하다.[2] 참고로 이 선거에 미래희망연대(구 친박연대)는 불참하였다.[3] 이후 이태희와 함께 한나라당(2012년)을 창당했다가 당내 계파갈등으로 분산되었고, 2017년 현재는 친박연대 대표최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4] 봉화군 부군수를 지냈으며,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영덕군수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5] 이 무렵에 미래희망연대가 새누리당으로 최종 흡수되었다.[6] 2014년 헌법재판소가 득표율 미만 정당 해산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