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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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변호사, 전직 대학교수이자 친박연대의 대표최고위원이다. 배우자는 이은영 친박연대 대표이다.
2. 생애
1962년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서 태어났다. 울진매화초등학교, 매화중학교, 협성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에 합류하며 정치를 시작한다. 그러나 2003년 말 김원웅, 유시민 등의 당 집행부가 당을 인터넷으로 해산 결의를 하여 열린우리당에 합당시키려고 하자[2] 반발하였다. 개혁국민정당 해산 후 잠시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가 한국의미래를준비하는당(약칭 한미준)을 결성하여 고건 지지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고건은 이 정당과의 연관성을 부정했고, 결국 조용히 잊혀지게 된다.
이후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박근혜 캠프에서 사이버·문화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명박에 밀려 대선 후보가 되지 못했다.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는 동안 이전에 친분이 있던 노무현 장례식에도 방문한 듯 하다. #
결국 친박계인 탓에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진성호에게 밀려 공천에서 탈락했으며, 이에 불복해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진성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3] 같은 해 8월 자유선진당을 탈당하고 친박연대 서울시당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육영수 영부인 35주기 때 박근령과도 접촉했다. #
이후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해서 친박연대를 탈당하고, 선진한국당(구 한미준)에 입당하며 당명을 친박연합으로 개정하고 사무총장을 지냈다. 이 시기 김무성과도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박준홍과 갈등을 빚어 당에서 탈당했다.
이후 2011년에 다시 정당 창당을 시도하여 영남신당으로 창준위를 등록했으나 결국 엎었고, 연말에 자유평화당에 입당했다. 2012년 1월에 자유평화당을 영남신당자유평화당으로 바꾸더니 3월에는 아예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개정하였다.
한나라당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등록이 취소되자, 민족주의를 고수하던 이태희와 결별하여 영남신당 세력을 규합하여 희망한나라당을 창당하였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으나, 묻혔다.
이후 2013년에 새정치국민의당(약칭 새정치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 이후 정찬용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과 접촉했다. #
2015년에 밝은당을 거쳐 개혁국민신당(약칭 개혁신당)으로 당명을 개정하였다. 이후 박준영 前 전남지사와의 접촉이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
그러더니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유한열 전 의원을 뜬금없이 대선후보로 추대했으나 거절당했고, 문재인 지지를 다시 선언했다. 하지만 같은 해 가을에 다시 개혁국민신당을 친박연대로 당명을 변경하며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이 걸어온 행보는 좌우를 마구 오가는 수준으로, 중도진보계열의 개혁국민정당, 한미준에서 다시 보수계열의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국가재건친박연합, 자유평화당, 한나라당(2012년)으로 이동했고, 이후 중도진보계열의 희망한나라당, 새정치당, 밝은당, 개혁신당을 거쳤고 다시 보수계열인 친박연대로 변신했다. 그 이인제보다도 정치성향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편.[4]
차라리 친박연대에 계속 몸담고 있었더라면 그나마 계속되는 원외생활은 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만 본인이 거부했으니...[5] 한나라당에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20대 총선에서는 중랑구 을 선거구에 공천될 가능성도 높았다.
2020년 5월 류근찬과도 접촉했다. #
3. 소속 정당
4. 선거 이력
[1] 19대손 휘(徽) 항렬[2] 애초에 이 정당은 후단협으로 고통받던 노무현 후보의 지원이 목적이었고 결국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데다가, 친노, 호남 신주류가 신당을 창당하면서 사실상 수명이 끝나 대통합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었다.[3] 이 때 이용휘와 함께 경선에서 맞붙었던 후보 중 한 명이 다름아닌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이다.[4] 사실 이인제는 당의 성향이 중도보수라는 것은 비슷했다. 친노가 주류인 정당은 가지도 않았고.[5] 비슷한 케이스로 이우현이 있는데 이우현도 민주당계 진영에 있다가 친박연대로 당적을 옮겨 버틴 후 새누리당 후보로 19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