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독교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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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정당으로 공식 명칭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1] 이다. 약칭 CDU(체데우). 한국어 약칭은 '''기민련'''이 맞고 조금씩 사용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민당'''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정당들이 항상 당명 끝에 '당'을 붙인 것이 이러한 번역에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에서는 풀네임을 '''기독민주당'''으로 표기하고 약칭을 기민당으로 표기하고 있다.
중도우파 성향의 정당으로서 자유보수주의와 기독교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과거 나치스와 반동주의자들[2] 의 기억으로 주류 우파가 굉장히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북유럽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중도우파 정당들이 보수적인 경우가 있지만 CDU/CSU는 거의 국민정당 취급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중도우파 정당 치고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2. 역사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1947년 콘라드 아데나워가 반나치계 우파세력을[3] 모아서 창당한 중도우파 정당이다. 이후 친미반소 외교와 '''사회적 시장경제'''[4] 를 내걸고 22년간 집권하면서 라인강의 기적을 주도하였다.
1966년에 사민당과 대연정을 하고 1969년 선거에서 승리한 사회민주당이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하면서 정권을 잃다가 1982년 자민당이 사민당과의 연정을 끝내고 헬무트 슈미트 당시 총리의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면서 재집권했고 헬무트 콜의 주도로 16년간 장기집권하였다. 이 기간동안 기존의 대소강경책을 버리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서 1990년 동서독 통일을 달성하였다. 헬무트 콜 총리는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유럽연합을 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5] 그러나 헬무트 콜 총리 후반기에 급진적인 통일정책의 부작용과 동서 간의 갈등으로 인해 장기간의 경기침체를 겪었고 1994년 총선에서 간신히 승리했지만 이후에도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서 1998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정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2000년대 이후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줄타기 하다가 실패한 이후 기민당에서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가 되면서 다시 정권을 잡긴 했는데 지지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원전 지지 정책을 내걸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2011년~2012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대참패하였다. 그러다가 2013년 들어 지지율을 회복하여 총선에서 41.5%의 득표율을 얻어 대승리했지만 과반에는 5석 못미치는 의석을 확보했다.(311석/630석) 거기에다가 자민당이 대패하면서 4년간의 보수연정은 종결되었다. 그래서인지 독일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하게 되었다. 흑-녹 연정 이야기도 나왔지만 실제적 가능성은 적었고, 그냥 메르켈이 녹색당 노선을 빠르게 흡수하는 것으로 끝났다.
당명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딱히 종교 근본주의 정당은 아니고, 기독교와 민주정의 모순 없는 조화, 곧 기독교 민주주의를 지향한다.[6]
3. 특징
독일 기독교민주연합과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은 모두 검정색을 상징색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로 파란색을 사용한다.[7] 참고로 당사 이름이 콘라트 아데나워 하우스(Konrad-Adenauer-Haus)다. 원래는 옛 서독의 실질 수도인 본에 동명의 건물이 있었는데 통일 이후 베를린에 새로 지었고 원래의 당사는 2003년에 폭파 해체한 모양이다. 베를린의 콘라트 아데나워 하우스는 티어가르텐(Tiergarten)에서 가까운 편이다. 건물 외형도 제법 보기 좋게 지어져서 시간 내서 둘러보기에도 나쁘지 않다.
3.1.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과의 관계
바이에른 주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으며 대신 바이에른에서만 활동하는 자매당인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SU, 기사련 또는 기사당)[8] 과 함께 활동한다. 그래서 분데스타크(Bundestag, 연방 하원)에서는 두 당이 '''CDU/CSU'''라는 단일한 교섭단체를 구성한다. 독일의 분데스라트(Bundesrat, 연방 상원)는 각 '주'를 대표하여 각 주 간의 관계, 연방 헌법 등에 관해 조정하는 특수 기관이라는 성격이 강해서 교섭단체 개념이 없으니 구성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주의회와 지방의회에서는 두 당이 공존하는 경우가 없으므로(바이에른 외 다른 주는 기민당, 바이에른 주에서는 기사당만 활동) 둘이 교섭단체를 구성할 일이 없다. 유럽의회 선거의 경우, 독일은 전국 단일 명부를 사용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했기 때문에[9] 두 당이 따로 나온다.[10] 그래도 유럽 차원에서는 두 당이 동일한 정당에 소속되며[11] 유럽의회 내에서도 두 당이 동일한 교섭단체에 가입한다. 기민당과 기사당은 유럽 정당과 유럽의회 교섭단체 모두 친EU,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 인민당 소속이다.
4. 기타
재밌게도 창당 초기부터 노동조합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던 독일 사민당에 못지 않은 노동 대표성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보수 정당들이 보통 기업인들이나 전문직 종사자들, 그리고 전통적 가치를 대변하는 다양한 조직들을 대표하고, 노동 대표성은 노동계 인사 몇 명 영입하는 구색맞추기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특이한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기술직 종사자들 같은 노동자들을 우대하는 독일 사회의 분위기가 기민련이 노동 대표성을 갖도록 한 것에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4.1. 역대 선거결과
1949 31.0% 149/402[12]
1953 45.2% 243/487[13]
1957 50.2% '''270/497'''[14]
1961 45.3% 242/499[15]
1965 47.6% 247/496[16]
1969 46.1% 242/496[17]
1972 44.9% ''215/496''[18]
1976 48.6% 243/496
1980 44.5% 226/497[19]
1984 48.8% 244/498
1987 44.3% 223/497
1990 43.8% '''347/662'''[20]
1994 41.4% 294/672[21]
1998 35.1% ''245/669''[22]
2002 38.5% 248/603
2005 35.2% ''226/614''[23]
2009 33.8% 239/622[24]
2013 41.5% '''311/631'''[25]
2017 26.8% ''200/709''[26]
4.2. 기타
비유럽권 유학생에게 최대 숙적같은 존재이다. CDU가 집권하는 주마다 기존의 입장을 뒤엎고 유럽권 대학생의 학비를 전액 면제시켜주는 것과 동시에 비유럽권 대학생에게 학기당 1500유로(기존 5배)의 학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대학교 질을 높이기 위해서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이미 시행했으며 외국인에게 가장 관대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27] 도 2017년 겨울학기부터 신입생을 상대로 학비를 받기로 했다. 독일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했거나 난민 또는 빈곤층은 면제이다. 현재 재학생은 '''아직''' 해당사항은 없다.[28] 그렇기에 반발도 만만치 않은데 학비와 대학 연구 또는 수업 질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다.[29][30] 또한 유럽권 학생의 등록금은 전액(0유료) 면제 되었기에 학생 수의 10%밖에 안 되는 비유럽권 학생에게 기존의 5배 이상의 학비를 받아도 커버가 안 된다. 이 때문에 아시아 학생을 타겟을 삼은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31]
대표적 보수정당이지만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편이다. 탈원전에도 기민당 내 반대자도 있지만 긍정적인 이들도 적지 않으며, 그레타 툰베리의 슬로건을 중앙당사 유리 외벽에 걸어놓기도 하였으며,# 앙겔라 메르켈도 2019년 9월 23일날 툰베리가 참석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툰베리의 연설에 감명받았다며 "2038년까지 탈석탄국이 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5. 동독 기독교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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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lich-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정식 명칭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이지만, 통칭 동독 기독교민주연합으로 불린다.
놀랍게도 동독에도 서독과 같은 이름의 "기독교민주연합"이 있었다.[32] 물론 사회주의통일당(공산당)의 위성정당에 불과했지만... 1945년 창당되었다. 당초에는 중도우파를 표방하였으나 동독 건국 이후 좌경화되어, 1952년에는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동독 기민당은 다른 위성정당들처럼 인민의회 500석 중에서 52석을 보장받았다.
앙겔라 메르켈도 동독 기독교민주연합에 가입해서 활동했었다. 1990년 3월 동독 최초이자 최후의 자유선거에서 보수연합인 "독일연합"을 주도하여 승리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의 통일 직후 서독 기독교민주연합에 흡수되었다.
6. 외부 링크
[1] 영어로는 Christian Democratic Union of Germany.[2] 국가인민당(DNVP)를 비롯한 제2제국의 부활을 지향하는 극우파들, 제국군/국방군 군부세력 및 프로이센 융커 지주계층. 이들은 제2제국의 기득권을 쥐면서 민주주의를 탄압했고 바이마르 공화정 때도 민주주의에 반대하며 나치와 손잡아서(하르츠부르크 전선, 다만 항상 사이가 좋은건 아니었다) 히틀러 내각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차대전 이후 이들은 1차대전의 주요 전범인 것과 2차대전을 도왔다는 죄로 연합국에게 파시스트 다음의 주범으로 낙인되었고, 그 결과 프로이센 공국 이후로 계속되는 군국주의적 독일 군부는 해체되었고 동독과 폴란드 서부를 소련이 점령해서 융커의 경제적 기반인 대농장 역시 몰수당했다. 독일의 주류 우파세력 역시 과거의 권위주의적, 국가사회주의적 보수주의에서 벗어나서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개혁적인 자유보수주의로 바뀌었다.[3] 콘라드 아데나워는 1930년대 초반 쾰른 시장으로 재직 도중 나치의 탄압으로 쫓겨나서 10년 넘게 은둔생활을 하였다. 패전 이후 미군이 그러한 경력을 높이사서 임시 쾰른 시장으로 앉히면서 공직에 복귀하였다.[4] 철저한 자유지상주의에 입각한 영미식 자본주의와도, 국가가 주도하는 북유럽 복지국가와도 구별되는 자본주의 체제. 모든 기업에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보장되고 다수의 은행들이 기업을 간접적으로 지배한다.[5] 유럽 공동체를 유럽연합으로 강화하였다. 현재의 단일통화(유로), 유럽중앙은행, 유럽의회, 유럽헌법 등이 모두 이 시기부터 논의된 것들이다.[6] 다만 자매정당이자 독일 기민련보다 좀 더 보수적인 바이에른 기사련이 2018년 바이에른주에서 공공건물 십자가 부착 의무화 조례를 발표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반면에 기민련은 이름과 달리 세속적이고 여러종교를 포용하는 정당이라 이러한 행동을 취하기는 어렵다.[7] 비슷한 케이스로 일본 자유민주당도 공식적 당 상징색은 초록색이지만 실제로는 빨간색을 주로 사용한다.[8] 독일 기민당은 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영어로는 Christian Democratic Union '''of''' Germany)으로 쓰지만, 바이에른 기사당은 Christlich-Soziale Union '''in''' Bayern(영어로는 Christian Social Union '''in''' Bavaria)라고 쓴다. 굳이 직역하자면 전자는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이지만, 후자는 바이에른'''에서의''' 기독교사회연합이 돼서 조어 구조상 다소 차이가 있는 셈. 어차피 중요한 차이는 아니지만...[9] 유럽의회 각 회원국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서 자국 내에서 지역구를 여러 개로 나눠도 되고 하나로 합쳐도 되며, 선출 방식도 알아서 정할 수 있다. 물론 아무렇게나 정하면 안 되고 몇 가지 요건은 충족시키는 범위 내에서 결정해야 한다.[10] 그래서 가끔 바이에른에서 기민당 찍는 유권자가 몇 %가 나오는지, 바이에른 밖에서 기사당 찍는 유권자가 몇 %가 나오는지가 관심거리가 되기도 하는 듯... 독일의 다른 선거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광경이니깐...[11] 유럽을 단위로 하는 정당이 있는데 대개는 각국에 있는 성향 비슷한 정당들끼리 모여서 유럽 정당을 구성하는 식으로 운영한다.[12] 독일당, 자유민주당과 연정[13] 독일당과 연정[14] 역대 최고득표율, 독일당과 연정[15] 자유민주당과 연정[16] 1965년부터 1966년가지 자유민주당과 연정,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사회민주당과 대연정[17] 사민-자유 연정으로 정권상실.[18] 98년까지 1당을 상실한 유일한 선거.[19] 1982년부터 자민당과 연정수립[20] 두번째 단독과반수 확보, 역대 최다의석[21] 5연승이자 헬무트 콜의 4번째 내각.[22] 1당 상실. 두번째 정권상실[23] 사회민주당과 연정(대연정)[24] 자유민주당과 연정[25] 3연승이자 역대 2번째 최다의석이나 바로 직전의 연정 당인 자유민주당이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0석으로 광탈하면서 사회민주당과 대연정.[26] 역대 최저득표율, 사민당과 대연정[27] 하필 외국인에게 가장 우호적인 주여서 그런지 유학생들이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28] 하지만 독일은 서류상 계약은 불변이 원칙이기에 해당 코스(학사, 석사)를 입학 할 당시 계약대로 기존 학비를 지불 할 확률이 높다.[29] 한국에서는 이해 안 되는 주장이지만 거의 주립 혹은 국립인 독일 대학교 구조상 학비와 대학교의 수업 혹은 연구와 상관관계는 매우 적다.[30] 기존 학비가 300유로일 때 이 금액은 전부 학생 복지에 쓰였지 대학교의 연구질 상승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31] 아시아권 학생이 졸업장 취득 후 귀국률이 꽤 높다.[32] 이것은 자유민주당도 마찬가지. 그러나 동독의 자유민주당과 서독의 자유민주당은 이름이 완전히 달랐다. 참고로 사회민주당은 구색정당이 되지 못하고 공산당한테 흡수되어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이 된다(…).